최근 수정 시각 : 2024-03-03 02:29:35

선동열/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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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즌 전2. 페넌트 레이스
2.1. 4월2.2. 5월2.3. 6월2.4. 7월2.5. 8월2.6. 9월2.7. 10월
3. 총평4. 시즌 후

1. 시즌 전

이종범을 은퇴시켜서 논란이 되었다.그리고 삼성 라이온즈 갤러리에서는 양준혁 은퇴와 연관지어 선 감독이 한결같은 남자라고 했다 그리고 이것을 듣고 빡친 바람의 손자가 기아를 폭격하게 되는데..

2. 페넌트 레이스

2.1. 4월

SK와의 개막 2연전에서 허접한 경기력을 보여주며 2연패. 특히 공격야구 드립 쳐놓고는 깝깝한 타격을 보여줘 불안한 출발을 보여주었다.

다음 삼성전에서도 1승 1패를 거두었다. 타격은 기아가 1위라 해놓고 4월 13일 기준으로 기아의 팀타율은 1할대라 까였었다(더군다나 1승은 윤석민만을 앞세운 승리였다). 여기에 조범현을 능가하는 어이없는 투수교체를 시전중. 2점차에서 고우석, 조태수를 올려 게임을 포기해버려 기아팬들은 어이 상실중. 여기에 이미 조범현이 포기한 2번 신종길, 3번 안치홍을 고집하여 제대로 말아먹고 있다.[1] 이런 식으로 가다가 LG시절 김재박의 재림이 아니냐며 우려중.

마침내 4월 24일 허접한 경기력의 끝을 보여주며 한화에 대패하였다. 특히 양아들이라 불린 박경태는 선발에서 패전조로 밀려났으면서도 원아웃도 못잡고 5실점. 여기에 동점인 상황에서 박지훈, 진해수를 올려 대량 실점, 지고 있을 때 손영민을 올리는 어처구니 없는 투수교체를 선보였다. 압권은 투수진을 다써서 마무리 유동훈을 큰 점수차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올리기.

일각에선 삼성 시절 SK에게 4연패 광탈당한 한국시리즈 때의 팀운영보다 더 안좋은 팀운영중이라고 비판했다. 핵심 전력선수들의 부상과 불펜 투수들의 투지 부족을 원인이라고 말하고 있긴 하지만 실상 조범현 감독의 운영보다도 더 안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탓에 우승은 커녕 최하위를 할거라는 우려가 나왔었다.

2.2. 5월

결국 4월 마지막 경기를 끝내고 선감독은 자신이 선수 파악이 부족했다고 인정했다. 그리고 그 이후 기아는 서서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투수쪽에선 박지훈, 홍성민, 한승혁등의 영건들을 적극 기용했고, 야수쪽에서는 윤완주, 이준호 등에게 기회를 주면서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5월 11일 기준으로는 5월 전적이 5승 2무 1패였다! 4월에 팬들 사이에서 일던 비판은 호의적인 평가로 바뀌었다.

그러나 이후 5월 20일 경기까지 두산, 삼성, 롯데[2]를 상대로 루징시리즈 시전에다 선발과 타격, 수비가 총체적 난국을 보여주며 답이 없는 상황이었다. 여기에 5월달 경기를 통해 우승 또는 리빌딩에 전념하겠다는 기사가 나오자 팬들은 지금 팀이 7위인데 리빌딩 하자고 데려온 줄 아냐며 욕하고 있었다. 이렇게 기대를 모았던 선동열이 계속 삽질만 하자 전임감독 조범현 명장론이 서서이 고개를 들고 있었다. 2004년 요미우리의 데자뷔? [3]

5월 22일 뜬금없이 최향남을 영입해서 팬들을 황당하게 만들었다. 후배선수들 앞을 막는다며 팀의 레전드인 이종범을 은퇴시켰으면서 이종범보다 딱 1살밖에 안 적은 최향남을 영입. 호사방에서마저 이에 대해서는 비판적이다. 뭐 최향남이 자유분방한 스타일이라 팀 내에서 파벌(?)을 구축할 일도 거의 없고, 혹시나 늦게나마 포텐이 터질 가능성도 감안했으리라 보이지만... 사실 자기가 직접 은퇴시키려고 영입한 거다[4]

22일부터의 한화 이글스 3연전에서는 3연승 스윕을 달성. 방망이에 붙은 불이 자기 불펜에까지 번진 한화와는 달리 무너질 듯 무너질 듯 하면서도 꿋꿋이 승리를 지켜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22일에는 불펜진이 총출동하여 3:4로 꾸역꾸역 승리를 지켜냈고, 23일에는 박지훈/ 유동훈 듀오로 1:4의 안정적인 승리를 해냈으며, 24일에는 타선도 폭발하면서 3:12로 압도적으로 승리했다. 이어 25일부터의 LG 트윈스 3연전 또한 스윕하며 6연승을 달렸으나.. 29일부터의 두산 베어스 3연전에서는 1승 2패를 기록. 다시 팬들을 답답하게 했었다.

선수단 파악이 늦은 점, 이종범을 은퇴시키고 좌완에 집착하는 등 고집스러운 부분은 비판점으로 찍히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투수 육성과 교체 타이밍에 대해서는 전임 조범현 감독에 비해 신들린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5] 당장 손영민 심동섭이 없이 필승조라고는 박지훈[6] 하나뿐인 상황에서 박빙 경기를 대부분 가져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실제로 28일 기준으로 KIA의 득점은 8개구단 중 꼴찌였고, 실점이 한화에 이어 7위였다(실점이 많을수록 낮은 순위). 그런데도 승률이 5할이었다.

2.3. 6월

6월 1일부터 2일까지 SK 와이번스와의 2연전에서 1:0 영봉패를 당하며[7] 팬들의 속을 타게 만들고 있다. 조뱀현이 불러와라! 그나마 3일 11:2의 점수로 대승을 거두기는 했지만... 이날 거둔 11점 쪼개서 영봉패 당한 경기에 2~3점씩 주고 싶은 심정 그리고 삼성전 졸전 끝에 2연패. 그나마 장점으로 꼽히던 투수교체도 6월 6일 경기에서 말아먹으며 박지훈 빼고 뭐 한 게 있냐며 까이는 상태. 그리고 기아의 순위는 아직도 7위다.
12일 경기에서 넥센에 0:13 영봉패를 당했다. 그리고 며칠 전만해도 같은 위치에 있었던 삼성은 제 페이스를 찾아 순위를 야금야금 높이고 있다. 이쯤되면 서정환의 재평가도 필요한 수준.

6월 19일 삼성전에도 졸전끝에 7:1 패배. 20일에도 10안타에 상대팀이 에러 2개를 했는데도 7년만에 12회 0:0 무재배. 특히 양아들 짐짝이 10회초 1사 2, 3루에서 루킹삼진 당하자 덕아웃에서 껄껄껄 거리는 장면이 잡혀 팬들의 혈압을 높혔다.

여기다 경기 전 인터뷰에서 팀이 7아인 상황에서 정말 여유롭게 일희일비 하지않겠다며 껄껄껄 거려 팬들 혈압을 마구 높혔다. 아예 기아갤의 유행어는 껄껄껄.

6월 23일과 24일 SK전에서 꾸역꾸역 이기며 연승을 챙기고 이후 LG, 한화전에서 스윕까지 챙기며 계속 연승 행진을 하여 재재평가(...)가 일어나고 있다. 와중에 LG는 DTD

2.4. 7월

6월 중순까지는 암울했으나 7월 1일까지 7연승을 해서 5할 승률을 달성하였다. 이후 가까스로 5할을 유지하면서 7월 둘째주에 DTD로 내려간 LG, 김성근의 저주로 8연패를 달성한 SK를 제치고 5위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하고 있다. 특히 최향남이 마무리로 활동하면서 3세이브를 올리는 등 대활약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를 영입한 선동열을 "신의 한수"로 찬양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하지만 비로 인해 선수들이 컨디션 조절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승패가 들쭉날쭉하던 상황. 일단 5할 승률을 수성하기 위해 전반기 총력전을 펼치겠다고 선언했다.

7월 20일 한일 레전드 매치가 기획되었고, 선동열 감독은 "시즌에 집중해야 하기에 레전드 매치까지 따로 신경 쓸 겨를이 없다"면서 슬슬 몸을 풀고 있다(...) 츤데레
나이가 들어 구속이 줄었다는 게 120km 후반대다... 선수들이나 팬들이나 하나같이 선수등록하시라며 농담같지 않은 농담을 했다.

결국 전반기 마지막 두산과의 경기를 위닝시리즈로 가져가며 5할+1로 전반기를 마쳤다.

7월 20일 한일 프로야구 레전드 올스타 경기에서 선발로 등판, 1이닝 2K 무실점으로 호투하고 마운드를 조계현에게 넘겼다. 비록 1사 이후 1,2루 상황을 맞았지만 후속타자들을 모두 삼진으로 돌려세워 여전히 죽지 않았음을 보였다. 후반기에 그냥 마무리로 등록하시죠

2.5. 8월

열악한 불펜진을 이끌며 어떻게든 5할 승률을 넘어서기 위해 고군분투하였다. 하지만 8월 3일 두산 베어스에게 최향남이 9회말 양의지의 역전 끝내기 2루타를 맞은 것을 보면 감독의 재량만으로 지키는 야구를 하는 데에는 한계가 거의 온 것으로 보인다.
심동섭은 부상으로 시즌 아웃되고, 박지훈은 체력 고갈로 2군행, 한기주는 구속이 올라올 생각을 안 하고, 손영민은 일단 사생활 문제가 산적해 있으니... 그나마 남아있는 최향남도 체력 한계와 상대팀의 분석이 되어가는 시점이라 하루빨리 필승조를 새로 구해야 하는 상황. 유동훈 좀 안 보면 안 됩니까

8월 9일 무등 야구장 넥센 히어로즈와의 경기를 승리로 마치며 5연승을 달리고 있다. 선발진이 안정된 가운데 한기주올라오는 거 자체가 문제인 손영민이 1군에 가세시키며 불펜을 더 탄탄히 하였다. 그리고 드디어 유동훈이 2군으로 쫓겨났다!

8월 10일 경기는 우천취소되고, 8월 11일부터 12일까지 무등야구장에서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를 가졌으나 3:1과 4:2로 모두 패배하고 말았다.

8월 14일과 15일 잠실 LG전 경기는 모두 우천취소되었고, 16일에 경기를 가졌지만 컨디션 난조 때문인지 3:10으로 크게 패하였다. 이후 8월 17~19일 문학 야구장 SK 와이번스전에서는 스윕패까지 당하였고, 6연패를 달리며 5위로 주저앉고 말았다.

8월 20일 기준으로 만만하게 보던 삼성에게 털린 4위 두산 베어스와의 승차가 4로 적은 편이 아니다. 4강 또는 리빌딩 집중 중 한쪽을 확실히 택해야 하는 상황.

2.6. 9월

9월 3일 기준으로 5할 승률에서 -1이며, 4위 두산과의 승차는 3게임이다. 치고 올라가기는 어려워 보이는데 포기하자니 또 아까운 애매한 상황. 일단 선동열 감독은 총력전을 암시했다. 이 주 SK와의 3연전이 가을야구 진출권을 따낼 마지막 기회가 될 수도 있다.

9월 5일 SK와의 경기는 치열한 밀당 끝에 6:3으로 패배하였고, 9월 6일 경기는 0:2로 승리. 9월 7일에는 김광현을 불방망이로 털며(!) 3:11로 대승. 생각지도 못한 위닝 시리즈를 챙겼다.

하지만 9월 8일과 9월 9일 LG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연장 접전 끝에 패배를 연속으로 달성하면서 또다시 분위기가 침체되었고, 9월 10일도 완패하며 만만하게 보던 LG에게 스윕 3연패를 당하고 말았다. 지나친 좌우놀이와 허술해진 수비 문제 개선이 시급한 상황이다. 대체로 전문가들은 KIA가 4강권으로 진입하기 힘들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9월 12일 롯데 자이언츠전에서도 9회초 최향남이 3점을 허용하며 3:1 역전패. 이젠 선동열 감독의 지키는 야구 자체에 의문을 가지는 사람까지 생기고 있다.

결국 가능성이 희박한 4강 진입은 접고 내년 시즌을 기약하기로 했다. # 와중에 나지완 홍재호의 군입대를 연기하려 한다는 이유로 또 까였다.

9월 16일 SK 와이번스전에서 3:2 8회말 무사 1,2루에 이호준의 파울 판정 문제로 선수단을 철수시켰다가[8] 퇴장을 당하였다. # 한대화, 김시진에 이은 시즌 세 번째 감독 퇴장 사례이자 본인 커리어 사상 최초 퇴장 사례이기도 하다.[9]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당시 무사 1,2루 상황이었기에 SK로 넘어갈 수 있는 흐름도 깨고, 선수들에게도 자극을 주기 위해 그런 행동을 하였다고 보고 있다.
이후 홍성민이 이호준에게 몸에 맞는 공을 허용하며 무사 만루의 위기를 맞았으나, 박정권을 3루수 직선타로, 김강민을 병살타로 잡아내면서 추가 실점을 막았다. 팀은 3:2로 승리를 지켜냈다.
이후 이 선수단 철수 건으로 KBO 측에서는 100만원의 벌금형을 내렸다. #

9월 18일 두산 베어스전에서 7회까지 2피안타 1볼넷 3탈삼진 무실점으로 호투하던 서재응을 조기강판(...)하고 쓸데없이 불펜을 가동시켰다며 까였다. 이때까지 서재응이 던진 공 개수는 달랑 74개. 이후 손영민은 아웃카운트를 하나도 잡지 못하고 2루타를 허용하고 바로 강판, 한승혁이 주자 한 명을 불러들이며 분식회계, 잘 던지던 홍성민 오재일에게 뜬금없이 솔로 홈런을 맞으며 서재응의 승리를 날려버리고 말았다.(...) 물론 불펜투수들에게 경험치를 쌓게 해 주기 위해서였겠지만, 역시 선동열의 선발 불신은 어디 안 간다는 평. 그나마 연장전 이닝을 모두 삼자범퇴로 끝내며 필승조 구축은 나름대로 잘 진행되는 모습을 보였다는 게 다행이다. 물론 기아 타선도 같이 침묵했다 경기는 2:2로 무승부로 끝났다. 다만 이 경기에서 다른 이유에서 인성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경기 시작 전 두산의 지명타자로 내정되어 있던 윤석민이 경기 전 스트레칭 중 허리 부상으로 인하여 병원으로 이송이 되었다. kBO 규정 상 지명타자 출장 선수는 한 타석을 반드시 소화해야 하기에 두산은 지명타자 자격권을 박탈당하여 선발투수였던 이용찬이 4번타자로 나와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에 김진욱 감독이 심판에게 규정은 알고 있으나 경기 시작 전에 불의의 사고로 일어난 일이니 교체요청을 하였고, 심판진은 선동열 감독에게 양해를 구해보겠다고 하였으며 선동열 감독은 흔쾌히 수락하여 두산은 최준석으로 지명타자를 교체할 수 있었다. 당시 상황이 두산은 플레이오프 직행 티켓을 노리고 있었고 KIA도 4위 롯데와 근소한 5위여서 매 경기가 중요한 상황이었음에도 상대팀의 사정을 배려해 주었다는 신사다운 인성을 보여줬다는 평을 받았다.[10]

9월 19일 두산전은 6:0 패배, 9월 20일과 21일 삼성전에서도 5:0, 9:2로 패배하고 말았다. 사실상 남은 경기를 포기하는 모습을 보여 엄청나게 까였으며, 조범현을 다시 모셔와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시즌 종료 후 대대적인 팀 개혁에 나선다고 한다. 와중에 FA선수 사달라는 소리를 해서 또 까였다.

2.7. 10월

10월 2일 롯데전에서 패배하면서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가 확정지어졌다. 선동열 감독은 일찌감치 내년 시즌을 준비하기 위한 마무리 훈련을 기획하였다. 5일 훈련 1일 휴식 하필 기자가 갸레발의 달인 이선호

3. 총평

지나치게 자기 스타일을 고집한다는 평이다. 얼마 안 되는 불펜 자원으로 승리를 지켜내는 투수 운용과 사실상 방치 상태였던 2군을 원활하게 돌아가게 만든 것에 대해서는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출루 후에 약속된 듯이 지시하는 희생번트와, 그렇게 주자를 보내 놓고도 불러들이지 못하는 모습 때문에 욕을 먹고 있다. 물론 이순철 타격코치의 공(?)도 있다.[11] 지키는 야구를 추구하지만 실책도 작년에 비해 급증했다.[12]

한편 레전드 킬러라는 명성(?)답게 인사관리도 칼같이 하는 모습을 보였다. 팀의 정신적 지주였던 이종범을 은퇴시키며 너무 이른 나이에 옷을 벗기는 게 아니냐는 소리를 듣기도 했지만, 철밥통 이건열을 2군으로 유배내려보낸 것에 대해서는 대체로 환호하는 분위기. 이순철은 절친이라 못 짜르는 듯 시즌이 끝나자마자 일본인 코치를 전부 물갈이하면서 역시 피드백을 빠르게 가져갔다.

삼성 시절에 이어서 KIA에서도 신인을 뽑을 때 대졸 선수를 선호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기사를 보면 성장이 더 필요할 수 있는 고졸과는 달리 어느 정도 기본기를 갖춘 대졸은 즉전감으로 쓸 수 있고[13], 방출된다 하더라도 대학교는 나왔기 때문에 고졸보다는 사회 적응이 더 쉽다는 이유 등이 반영된 듯하다. 키워쓰는 것에 익숙한 두산이 신인을 전부 고졸 선수로 지명한 것과는 대비되는 모습.

시즌 말 4강에 실패하면서 남은 경기를 완전히 포기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까이기도 했다. 적어도 지지는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라도 보여야 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상당했다.

아직 부임 1년차라 더 두고 봐야 하겠지만, 선수와 지원이 좋은 팀에서 훌륭한 커리어를 쌓다가 그보다 못한 팀에 와서 폭망한 김재박의 길을 따라갈 조짐도 보였다.

4. 시즌 후

오키나와 마무리캠프에서 선수들과 훈련하다 종아리 근육이 파열되어 6주 진단을 받았다고 한다. 선수들과 뛰다 종아리 부상 행동으로 선수들에게 모범을 보였다는 점은 어찌됐건 긍정적인 요소.

[1] 이는 3번이나 4번에 투입하려던 이범호의 부상으로 인해 어쩔 수 없는 성향이 있기는 하다. 그나마 안치홍의 경우에는 득병이지만 3할을 치고 있지만 광주의 자존심이었던 바람의 아들마저 은퇴시키면서까지 코칭스태프가 애지중지 키우려 했던 신종길은... [2] 게다가 롯데는 그 이전 분위기가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투타가 다 무너져 기아전 직전의 넥센 3연전에서 26실점 3득점을 기록했을 정도니. 그런 롯데를 상대로 대 롯데전 12연패. 스윕까지 당하면서 야구팬들이 고인이 되어가는 팀도 살리는 허준, 나이팅게일 야구 드립을 시전하며 비웃는 데다 기아 팬들까지도 왜 롯데만 만나면 호랑이보약이 되냐며 자조하는 중. [3] 일본의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하라 타츠노리가 2002년에 우승을 하고서도 2003년에도 선두를 달리다가 3위로 떨어지는 바람에 윗분의 괘씸죄를 사서 경질되었다. 요미우리의 전설적 에이스였던 호리우치 츠네오가 구단 경영진의 기대를 품고 감독을 맡았으나, 2004년, 2005년 시즌에 팀은 중하위권으로 더 떨어졌고, 결국 하라 명장론이 대두되어 2006년부터 다시 하라가 지휘봉을 잡게 되었다. [4] 결과적으로 최향남이 마무리 투수로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이 영입은 신의 한 수가 되었다. [5] 어차피 이분 전공이기도 하고... [6] 신인으로서 시즌 초부터 무사만루 상황에서 등판하는 등 빡세게 구르며 급성장하였다. 이것은 선동열 감독의 배짱 혹은 어거지 리빌딩이 통한 케이스로 여겨진다. [7] 참고로 이 날 SK의 선발은 일명 기나쌩 클럽으로 불리우는 김광현. [8] 몰수패 방지를 위해 그라운드에 선수 한 명은 남아 있었다. 박기남, 김선빈, 윤완주, 이준호 등이 돌아가면서 그라운드를 지켰다. [9] 이때까지 선동열은 선수로서도 감독으로서도 퇴장을 당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이를 감안한다면 선동열 감독은 상당히 파격적인 행동을 한 셈. [10] 불과 한달 전 12회 말 2사 만루 상황에서 우천으로 경기를 중단하지 않느냐고 항의했던 이만수 감독과 굉장히 대조적이라는 평도 있었다. [11] 실제로 2012년 시즌 팀 희생타가 132개로 1위다. 2위 SK와는 14개 차이. 하지만 팀 득점에서는 시즌 내내 하위권에 머물렀다. 시즌이 끝나며 553점으로 3위를 기록하긴 했지만 한 경기에서 대량 득점을 낸 경기가 많아 이 정도. 정작 필요할 때 득점지원이 되지 않아 패배한 경기가 상당히 많다. [12] 2011년 시즌 팀 실책은 67개로 최소실책 1위를 자랑했으나, 2012년에는 88개로 96개 LG에 이어 최다실책 2위를 기록. 물론 수비코치가 제 몫을 하지 못한 문제도 있긴 하지만, 무등야구장이 2012년부터 천연잔디를 깔게 되면서 불규칙 바운드가 많아진 영향도 있다. [13] 실제로 2010년 초반기에는 리그를 호령하는 젊은 신인들을 보기 힘든 상황이다. 최형우, 양의지 등 중고 신인들이 신인왕을 차지하는 모습도 나오고 있고... 2000년 초중반기 한국 야구의 주춤했던 인기 때문에 야구선수로서의 꿈을 가진 어린이들이 줄어들면서 야구 유망주도 자연히 줄어든 게 그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같은 기간 동안 2002 한일 월드컵 특수로 축구 유망주들이 무더기로 쏟아지는 것과는 대비된다. 하지만 2000년 후반기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2008 베이징 올림픽/야구 등으로 야구 열기가 부활한 후, 2010년 후반기 들어 다시 특급 유망주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