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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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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론2. 비판
2.1. 음악판을 10대 위주로 획일화했다는 비판2.2. 음악적 역량에 대한 비판
2.2.1. 음악적 역량 비판에 대한 반론
3. 표절 논란
3.1. 표절 논란에 대한 반론
4. 서태지의 평가 양상에 대한 비판
4.1. 팬들의 문제
4.1.1. 사실 왜곡4.1.2. 궁예질과 편가르기
4.1.2.1. 양현석과 일부 서빠 사이의 뿌리 깊은 갈등
4.1.3. 팬덤의 보수화4.1.4. 빠와 까의 콜라보레이션4.1.5. 팬덤 간의 충돌
4.2. 언론계의 문제4.3. 사회의 문제
5. 앨범에 대한 비판과 그 반론
5.1. 서태지 솔로 2집5.2. 음악 스타일

1. 서론

  • 이 문서는 서태지, 혹은 서태지 팬덤에 대한 비판적인 관점들을 모아서 정리한 것으로, 음악 분야의 특성상 참여자들의 주관이 강하게 개입되어 있을 수 있음을 고려하여 판단하는 게 좋다.
  • 상반된 의견이 공존하므로 서술된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읽는 사람 개개인이 생각하며 받아들이는 게 좋다.
  • 전반적인 내용을 요약하자면, 모 아니면 도 식의 극단적인 평가가 공존하는 대표적인 인물이라 할 수 있다.

2. 비판

2.1. 음악판을 10대 위주로 획일화했다는 비판

2020년대로 접어들어 미스트롯, 미스터트롯 같은 실버 콘텐츠가 부상하여 지금은 사그라든 비판이지만, 2010년대까지만 해도 10대 취향 아이돌 판을 만든 장본인이란 이유로 비판이 있었다. 즉, 서태지가 댄스 음악만 안 했어도 춤판으로 획일화되진 않았을 거란 주장이었다.

사실 이는 서태지가 데뷔했던 90년대에 문화 콘텐츠에 돈을 쓰는 소비자들이 주로 10대였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지갑을 여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판이 돌아가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10대가 판치게 만들었다기보단 기성세대가 밀려났다고 보는게 옳다.

1980년대까지 우리나라의 음반 시장은 제대로 된 판매량 집계도 안되었고, 가수의 인기를 방송, 엽서, 음반 등 4~5가지 수치로 측정했다.

여기에는 라디오나 텔레비전 방송을 시청하는 기성세대들도 포함되기 때문에 1980년대 후반에는 음반을 사거나 덕질을 하는 젊은 층[1]과 방송을 통해 접하거나 자가용이나 여가시간에 들으려고 음반을 사는 기성세대[2]가 적절히 조화를 이루어 젊은 층의 지지가수들, 기성세대들이 즐겨듣는 가수들이 인기에 따라 가수왕을 가져가기도 하고 조화롭게 구성되었던 시기이다.

젊은 층의 덕질에도 여러모로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기성세대들과 가요계에 반영되는 비율이 엇비슷하거나 조금 앞섰던 것.

그래서 당시 10대들은 '기성 세대가 음반을 구입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반박했으나, 기성 세대들은 '먹고 사느라 바쁜 데 음반에 어떻게 돈을 쓰냐'며 반박했다.[3]

지금으로서는 이해하긴 어렵지만, 저 당시엔 고작 5,000원짜리 테이프 하나 구입하는 것도 사치라고 여길 정도로, 기성 세대들 사이에선 문화 생활에 투자를 하는 것이 사치라는 인식이 강했다.

이는 당시 기성세대들이 굶주림을 겪었기 때문인데, 저 당시 물가로 테이프 하나 가격이 밥 한끼였기 때문이다. 그 돈이면 자녀들 문제집 하나 사 준다는 생각이었기 때문에 집이 엄격한 경우, 테이프 하나 구입하는 것도 눈치를 봐야 했다.[4]

다만, 지금의 노년층 중에는 이렇게 지독하게 아껴서 현금 자산을 보유한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자신들의 청년 시절, 중년 시절과는 달리 문화 생활 소비에 너그러워진 경우가 많고, 지금은 판이 바뀌어서 오히려 노년층 위주로 콘텐츠가 쏟아지고 있다.
그래서 현재 시점에선 그러한 이유로 서태지가 비난받지는 않는 편이다.

2.2. 음악적 역량에 대한 비판

서태지는 한국에서는 대중화적이지 않았던 미국 음악 스타일을 가져와 발표했다. 다만, 매스컴을 수용하는 대중들 사이에서 서태지는 항상 새로운 장르의 음악을 한다는 일종의 착각이 퍼져나갔다. 서태지는 미국 음악을 수입해서 파는 사람이기에 무역업자라는 별명이 붙었으며 서태지 본인도 이를 인정하였다.[5][6]

음악적 역량 역시도 과대평가 되었다는 견해가 있다. 서태지의 초기 음반들이 국내에서는 상당히 앞선 완성도와 음악성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고 하더라도, 그의 추종자들이 이미 시도되었던 장르를 가져와서 만든 것에 불과한 그의 음악을 마치 서태지가 기존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음악을 만들었고 그것이 세계 최고의 음악인 양 칭한다는 것이다.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의 거대한 팬덤은 그러한 양상이 두드러졌다.

서태지가 아이들 활동 시절 주로 영향을 받았던 비스티 보이즈 사이프러스 힐과 같은 힙합 그룹은 당시 국내에서는 인지도가 전무했고 2022년 현재도 국내에서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서태지가 모티브를 따왔거나 비슷하게 만든 곡들이 한국에서는 마치 장르를 새롭게 '창조한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7] 이렇게 다양한 뮤지션들의 곡에서 영향을 받다 보니 4집 같은 경우 앨범의 통일성이 떨어지는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훗날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 곡들이 일부 표절논란에 휘말리기도 했다. 활동 당시 표절로 판명난 곡은 없었고, 지금도 원곡 가수 측에서 문제 제기를 한 적은 없기 때문에 표절의혹에 대해서는 찬반논쟁이 많으나, 결국 대부분의 곡들이 이미 존재하던 뮤지션들의 곡이나 스타일에서 따왔다는 점에서는 독창성 측면에서 아쉬움이 있을 수 밖에 없다.

사실 그가 시도한 장르도, 그 이전에 국내에서 시도를 하였다. 예를 들면 랩의 경우는 홍서범, 신해철 현진영이 이미 시도한 바가 있었는데, 신해철의 경우는 본격적인 랩이 아니며, 현진영이 개인적 사건으로 인해 활동을 중단하면서, 일반 대중들은 난 알아요를 최초의 랩송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홍서범의 경우, 김삿갓이 신해철이나 현진영보다도 먼저 곡을 낸 데다, 흑인 음악을 꽤 진지하게 연구하여 만든 최초의 제대로 된 랩송이 맞긴 한데, 요즘으로 치면 싱글 음반으로 한 곡 하나 만 수준이라 대중들에게 큰 인상은 남겼을지언정 오래간 지속되지는 않았다.

2.2.1. 음악적 역량 비판에 대한 반론

서태지가 1집 2집에서 난 알아요 하여가, 우리들만의 추억 등에서 보여준 랩과 락의 결합에 대해 이동연 교수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은 흑인과 백인의 분리된 생각이 없으니까 이런 음악이 가능한것 같다라고 말했는데, 이에 대해 실제로 랩 음악에 록사운드를 결합한것은 이미 80년대에 Run DMC에 의해 시도되었던 것이다.라는 지적이 존재한다.

이 발언에 대해 마치 서태지가 이러한 크로스오버를 최초로 시도한 것처럼 인식되게 만들었다는 비판이 있으나 이는 오해이다. 앞서 언급된 문제의 발언을 본문 그대로 옮기자면 다음과 같다. 출처는 문화 평론가 이동연 교수의 저서 <새로운 유토피아를 꿈꾸며>이며, 대형 도서관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동연: 사실 당신이 랩뮤직을 들고 나왔다 하더라도 거의 리듬, 박자, 멜로디가 단순한 미국의 랩의 특성과는 다르게 이미 1집부터 록적이고 메탈적인 성향이 드러나 있습니다. 물론 미국에도 그런 경우는 있지만 이것이 당신의 랩이 갖는 독특한 점이고 어떤 점에서는 랩에 대해 낯선 대중들이 친밀하게 소화할 수 있게 된 연유라고 생각합니다. 록/메탈적인 요소와 랩의 요소 사이에 어떤 친연성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단지 본인의 애초의 록적인 뿌리를 마저 버릴 수 없었던 데서 오는 기형적인 결합이었습니까?

서태지: 저는 랩과 메탈이 굉장히 같은 점이 많고 같은 길을 간다고 생각해요. 랩이랑 록, 테크노랑 트래쉬가 화성 같은 걸 봐도 굉장히 비슷한데, 특히 테크노와 트래쉬는 제가 장난삼아 여러 번 해 봤는데, 보통 트래쉬 음악에 테크노적인 소스를 집어 넣어도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외국에도 그러한 예는 있지만 양자가 다 잘 어울리지는 않는 것 같아요. 저는 메탈과 랩 음악을 둘 다 좋아하고, 한국에서는 백인과 흑인의 분리된 생각이 없으니까 그저 자연스러울 수 있고요, 우리나라니까 <교실 이데아>나 <하여가> 같은 곡들이 가능하다고 봐요.

이 인터뷰에서 이동연은 랩과 락의 결합이 이미 외국에서 있었다는 점을 알고 질문을 던지고 있으며, 서태지도 이 점을 인정하면서 답변을 하고 있다.

3. 표절 논란

서태지는 PC통신, 다음카페 시절부터 표절 혐의가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이에 대한 서태지 옹호자들은 "그냥 그렇게 들릴 뿐 완전 다른 곡이다"라고 반격하고, 비판자들은 '스타일을 빌려온 것'과 '표절'은 천지 차이라고 반격하는데, 유사성의 기준이 사람에 따라 다르다 보니 회전문 같은 논란만 되풀이되고 있다.

표절 논란에 대해 서태지는 다음과 같은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여기서 서태지는 "누구나 알고 있듯이 레퍼런스한 것은 사실이지만, 표절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고요."라고 말했다.[8]


서태지의 표절 의혹을 받는 곡들이 명확하게 표절이 아니라는 근거 자체는 없지 않냐는 비판이 있다. 대부분 '들어보면 별로 안 비슷하다'나 '비슷하지만 표절은 아니고 오마주이다' 같이 주관적이고 '음악이 평가가 좋고 유명하니 표절일 가능성이 낮다'는 식의 두루뭉실하고 듣는 사람마다 다른 의견이 많아서 표절 의혹을 완벽하게 해소하지는 못하고 있다.

Come Back Home처럼 아예 사이프러스 힐 측에서 신경 안 쓴다고 밝힌 케이스[9]나 6집의 표절논란으로 인해 KoRn[10], 림프비즈킷[11]과 같이 해당 표절시비 대상곡의 원작자가 인지하고 표절이 아님을 밝히지 않는 이상 오랫동안 표절시비는 논란으로만 남을 것으로 보인다.

3.1. 표절 논란에 대한 반론

서태지 표절 논란에 대한 반론 입장에서는 표절논란은 서태지에게만 제기된 것이 아니며, 최근에 한 유튜버가 마구잡이로 표절 의혹을 제기한 것이라고 비판한다. 실제로 90년대 히트곡들의 경우 사이버 렉카 채널의 주된 공격 대상이 되고 있는 만큼 무분별한 표절 주장은 적절히 판단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표절 의혹 자료가 전체를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표절이라고 보기 애매할 정도로 일부분을 비교하는 것이라는 점도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대표적으로 난 알아요에 대해서는 나무위키에 다음과 같은 반론이 기록되어 있다.

또한 하여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된 부분이 외국 민요를 인용한 것이라고 당시 그 부분을 애드립으로 연주해던 기타리스트 이태섭이 해명한 바 있다.[12]

컴백홈에 대해서는 서태지 측에서 사이프러스 힐에게 표절이 아님을 인증 받겠다고 해명했다. 링크 훗날 2014년경 사이프러스 힐의 멤버 B-Real은 레딧에서 자신이 당시 컴백홈에 대한 논란을 알고 있었으나 쿨 (cool)하게 넘어갔다고 밝혔다.[13] 컴백홈 등이 문제가 된 것은 사이프러스 힐의 래퍼 B리얼의 '창법과 플로우'를 따라했다는 것인데, 애초에 창법과 분위기가 유사하다고 표절이라 단정짓기는 어렵다.

교실 이데아에 대해서는 단순히 'Y'all'발음과 라임이 유사한 것이며 표절이 아니라고 반박한다.

스매싱펌킨스를 표절했다는 의혹을 받았던 5집 수록곡 Take Five에 대해서는 빌보드닷컴에서 1998년도의 위대한 곡 98곡 중 74위로 꼽혔으니 표절일 가능성이 낮다고 주장한다. 링크

평가는 다음과 같다. 참고로 결코 케이팝 중에서만 선정 것이 아니며, 심지어 기자가 언급했듯이, 차트에 없는 곡임에도 선정되었다.
74. Seo Taiji, "Take Five" (Did not chart)
Seo Taiji remains South Korea’s “Culture President” for a reason -- he pioneered the industry’s embrace of diverse genres.
“Take Five” marked another sonic transformation, one that eschewed the rap-rock of his prior group Seo Taiji and Boys. While his self-titled album was coated in the heavy metal of his early days, this track takes on a sunnier disposition with flahses of late-’90s college rock. After all, “Take Five” was a message to fans that he’d return to music after retiring in 1996. -- CAITLIN KELLEY

Korn 과 Deftones 와 Limp Bizkit 에게 각자들의 인터뷰에서 서태지의 노래들을 들려주었는데, "우리들이랑 비슷한 쟝르이지만 우리들과 똑같지는 않고 그(서태지)만의 독특한 색깔이 묻어나오는 음악들이다." 라는 식의 긍정적인 말들을 언급하였다.

또한 의혹이 제기된 곡들 중에는 7집 앨범의 수록곡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으나 해외의 평가 사이트인 올뮤직닷컴에서는 별 4개를 주며 높게 평가했다. 링크 문서도 참조할 것. 물론 올뮤직닷컴의 평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으나, 리뷰어들이 본문에서 비교 대상으로 언급한 뮤지션이 그 나라에서도 그리 대중적인 인물이 아님을 참작한다면, 그 장르에서 저명한 The Used, Finch, blink-182의 음악을 몰랐을 가능성은 희박하기 때문이다.

모아이의 경우, 비슷한 부분은 반주로 깔리는 리듬 뿐이며 효과음의 음색도 매우 다르다고 반박한다. 링크 모아이

여담으로 인터넷의 서태지를 까는 댓글에서는 '서태지가 표절한 것을 들킬까봐 은퇴했다.', '서태지가 인터넷이 발달하기 전에 잠적하고 활동을 그만두었다.'라는 식으로 비난한다. 그런데, 실제로 서태지가 서태지와 아이들 4집 이후 돌연 은퇴한 것은 맞지만 서태지는 결코 잠적한 적이 없다. 서태지는 이후 솔로 활동을 재개하였으며 TV에 출연하거나 콘서트도 진행하는등 활동을 이어나갔다.

4. 서태지의 평가 양상에 대한 비판

4.1. 팬들의 문제

4.1.1. 사실 왜곡

비판자들은 서태지 본인보다는 서태지의 팬덤이나 언론플레이를 지적하기도 한다.

앞서 말했듯이, 본인 스스로도 이미 존재하고 있던 음악적 스타일을 차용하여 본인의 음악을 만들었음을 인정했음에도, 언론이나 팬덤에서 서태지가 그러한 스타일을 처음 창조해낸 인물인 양 이야기하여, 기존 음악 팬들, 특히 프라이드가 강한 록 음악이나 헤비메탈팬들에게 어그로를 끌었다"는 주장이다.

서태지의 팬덤 중 일부 몰지각한 팬들은 서태지의 음악계에 미친 영향을 강조하기 위해, 한국음악을 서태지 이전/서태지 이후로 나누고 그 전까지의 음악계의 수준을 지나치게 비하하는 언동도 서슴치 않는 경우가 많아 7-90년대 한국음악을 좋아하는 팬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경우도 많다. 서태지 식 록이나 메탈만이 진리이고 국내 인디 밴드 및 서양 밴드들의 음악은 배척하거나, 서태지가 시도했던 장르만을 최고의 장르로 우대하고 다른 장르는 무시하는 태도를 계속적으로 보이고 있는 것이 그 예이다. 물론 이후 서태지 본인은 NELL이나 Pia 등 실력있는 인디 밴드를 지원하여 인디 음악 및 록 음악의 저변을 넓힌 공로는 있기는 하나, 앞서 말한 팬들은 딱 거기까지만 인정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거기서 나아간 것이라고 해봤자 모던 록이나 브릿팝에 대한 관심 정도이며 메탈의 경우 거의 알려지지 못했다는 것이다.

서태지 문서의 반론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서까 vs 서빠의 구도는 평행선을 달릴 수 밖에 없는 게 서태지는 따라쟁이 vs 재해석한 명곡들의 구도라서 심판이 있어도 관점에 따라 판정이 다를 수 밖에 없다.[14] 문제는 눈살 찌푸려지는 신격화. 서빠들의 입장에서는 모함으로 들릴 수도 있으나, 과거 엔하위키 시절 비판 항목이 들어서기 전의 서태지 문서가 다른 문서들과 얼마나 괴리감이 있었는 지를 보면 부정하기 힘들 것이다. 다른 아티스트의 항목을 보면 업적과 병크, 칭찬과 까대기가 혼재해 있는 읽기 유쾌하게 작성되어있는 데 반해 서태지 항목만큼은 찬양 일색이었다. 서태지 항목에 몇 번 손대 본 사람은 알 것이다. 보통은 반론이 덧붙여지고 수정되어야 할 문구가 그냥 삭제된다. 심지어 음악적 평가 이외에도 개인에 따라 취향을 탈 수 있는 부분인 모기 소리 보컬이라든가 부족한 언변, 어이없는 TV프로 출연 등에 대한 지적도 그냥 삭제되어 버리거나, 객관성이 없는 비판이라는 식으로 반론이 덧붙여진다.[15] 근데 이것은 사실 비판이라기보단 서태지의 독특한 점을 재미있게 묘사하는 내용이라는 것은 인정하지 못한다.

락 갤러리, 악숭[16] 등의 음악 커뮤니티에서 서태지 언급 자체를 안 좋게 생각하는 것은 서태지 자체의 문제라기 보다 결국 키보드 배틀이 벌어지고 전쟁으로 까지 번져 싸우게 되니까이다. 후술되었다시피 10년전의 떡밥을 가지고 매번 반복되는 일이다. 서빠들도 지겹겠지만 그 덕분에 서까가 양산된 것도 엄연한 사실.

또한 서태지를 감싸고 도는 팬덤의 태도는 다른 모든 사람을 서까 또는 서빠라는 이분법적인 잣대로 나누는 것에서 출발한다. 사실 어떠한 뮤지션을 좋아한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좋아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서태지의 음악이 맘에 들더라도, 그 사람의 어떤 점은 맘에 안 들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일부만이라도 맘에 들지 않는다는 표현을 하는 순간 안티로 낙인찍어버리는 태도는 원래 그를 좋아하던 팬들까지도 치를 떨게 만들며, 새로운 팬의 유입을 차단하고 있다. 이는 그냥 빠순이에 가까운 태도일 뿐으로, 그들이 신격화하는 서태지라는 뮤지션의 이름을 오히려 깎아내리는 셈이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서태지컴퍼니 주최의 락 페스티벌인 ETPFEST 등에 출연하는 밴드가 맘에 드는데도, "서태지"라는 사람이 관련되었다는 것만으로 가지 않는 경우도 있다.

4.1.2. 궁예질과 편가르기

사실 궁예질과 편가르기는 모든 팬덤, 어쩌면 인류 역사에 출몰한 모든 집단에서 다 나타나는 것인데, 후술하겠지만, 기레기가 촉발한 창조 논란과 이간질, 그리고, 당사자인 양현석의 잘못된 처신으로 인하여 일부 팬들이 확대해석을 했고, 이로 인한 논란이 빚어졌다.
4.1.2.1. 양현석과 일부 서빠 사이의 뿌리 깊은 갈등
사실, 일부 서태지 팬이 YG를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서태지와 아이들 해체 직후부터 있었던 뿌리 깊은 갈등이라 할 수 있다. 원래는 일부 양현석 개인 팬이 서태지와 아이들을 해체키로 결정한 서태지를 비난하면서 시작되었으나, 애초에 워낙 소수였고, 당시엔 '서태지 기념사업회' 등이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 추억을 보존하는 각종 행사를 기획하는 등 서태지와 아이들 모두를 아름답게 추억하는 분위기였기에 표면으로 드러나진 않았다.

게다가 양현석이 기획사 양군기획(후에 YG로 명칭 변경)을 차리며 자신의 사업을 시작했을 때도 서태지와 양현석은 누가 보기에도 끈끈한 관계였다. 홍보 차원에서 스스로 가수 활동을 시작하기로 결심한 양현석은 훗날 흑역사가 된 솔로 1집을 발표한다. 이 앨범에 서태지는 '아무도 안 믿어'라는 곡을 주었고, 피처링까지 하기도 했다. 또한 양현석은 '은퇴선언'을 부른 시나위의 신대철을 겨냥한 듯한 '무시'라는 곡에 가사를 써서 신대철을 '머릴 길러댔던 돼지'라고 디스하기도 했다.

하지만 악성 개인팬이 표면화된 것이 바로 이 시점이기도 하다. 양현석이 가수 활동을 시작하면서 매스컴은 양현석에게 서태지 관련 질문을 쏟아 냈는데, 양현석에 여기에 일일이 답변하는 것이 일부 서태지 팬에겐 '추억팔이'로 비쳤던 것.

이로 인해 한때 PC통신에선 키배가 벌어지기도 했으나, 서태지가 6집으로 컴백하고 한동안 기획사가 없는 상태에서 양현석이 잠시 매니지먼트를 맡아주면서 논란은 즉시 사그러들었다. 또한 당시 '태지의 화(話)' 전국투어에도 게스트로 참여하는 등 둘의 관계는 상당히 좋은편이였다.[17] 여담이지만, 훗날 YG 소속 가수가 되는 SE7EN의 집 지하실을 서태지가 연습실로 쓰기도 했다. #

이후 2002년에 열린 제2회 ETP[18]에선 YG패밀리가 무대에 올랐으며, 서태지 15주년 기념 공연[19]에서는 빅뱅이 영상 공연 형식으로 참여해 '필승'을 부르는 등 한동안 양 팬덤은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나 YG가 크게 성장하면서 이 논란이 다시 불거지기 시작했다. YG가 각종 사건 사고로 언론에 오르내리면서 이미지가 나빠졌으며, 더 이상 YG쪽과의 콜라보레이션이 없었고, 서태지와 양현석도 몇 년간 연락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양현석은 2014년 12월에 방영된 '힐링캠프'에 나와 '자신이 가정을 꾸리면서 둘 사이에는 더 이상 공통 관심사가 없어져 다소 어색한 관계가 되었다'고 해명했으나, 애초에 양현석에 대해 불편한 감정을 갖고 있던 일부 태지팬에겐 불난 데 기름을 부은 격이 되었다. 또한 마지막으로 언제 만났는지조차 제대로 기억 못하는 발언이 더더욱 불을 지폈다(...)[20]
특히 2NE1이 2집 앨범 타이틀 곡을 '컴백홈'으로 정한 것이 일부 서태지 팬의 어그로를 끌었다. 산다라박의 비니 패션과 헤어스타일이 특히 서태지를 연상케하여 노렸다는 느낌을 주었다.

안 그래도 서태지를 연상케한다는 기사가 나오기도 했고... # 물론 제목이 같은 곡이 전 세계에 한둘이 아니고, 산다라박 패션은 오마주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해외 K팝 팬들은 '컴백홈' 하면 2NE1 노래만 생각한다.
물론, 이것만으로는 YG가 비판을 받기에는 다소 애매하나, 원래 양현석은 가수 SE7EN의 노래 <난 알아요>를 내놓을 때도 굳이 서태지에게 의사를 물어 보았다. 하지만 2NE1 때는 그러지 않았기 때문에 서태지 팬들은 이것을 양현석이 서태지를 배신하기 시작한 증거라고 본 것이다. 그리고 훗날 상황을 보면 그 짐작이 결코 궁예가 아니었다

다만 YG와 관련된 모든 것을 서태지와 관련지어 해석하는 일부 팬은 정도가 지나쳤다고 볼 수 있다. 싸이의 신곡 뮤직비디오에 정우성이 출연하는 것을 서태지를 엿 먹이기 위한 의도로 해석하는 것. 힐링캠프 이지아 편에서 정우성이 긍정적으로 언급되었다는 게 그 이유다. 물론 모든 음모론이 그렇듯이 따져 보면 여러모로 허점이 많다.

한편, 2014년 10월 디스패치에서 악동뮤지션의 새 음원 발표 날짜가 서태지의 음원 발표 날짜와 겹친 것이 마케팅 전략이 아니냐고 의혹을 제기하기는 했지만, 저 시기에 컴백한 가수들이 한둘이 아니라서 금세 사그라들었다.

사실, 알고 보면 이는 일종의 얀데레로, 이러한 글들을 올리는 이들의 상당수는 본래 YG 소속 가수와 서태지의 콜라보레이션을 학수고대하던 이들이었다. 안티와 팬은 한 끗 차이 과거 팬들 사이에서 나온 팬픽만 보더라도 서태지와 양현석은 애틋한 커플로 그려졌다. 그리고 이수만은 이들에게 불행을 안기는 악의 축이었다.[21]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역전. 오히려 '누구처럼 언플은 안 한다'며 이수만을 개념인으로 치켜세우는 사람도 한때 있었다.
사실, 이는 저 당시 각종 아이돌 커뮤 정치질로 인해 YG의 병크를 이유로 SM을 띄우는 글들이 대거 등장한 탓도 있다.
다만 2019년 시점에서 양 소속사 아이돌들의 각종 사건사고를 보면 다소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의미 없는 비교로 보일 부분이 많다.

문제는 이러한 구체적인 사정을 모르는 신생팬들이 이들의 음모론을 사실인 줄 알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바로 그런 이유로 이러한 분위기를 바람직하지 못하다 보고, 설득을 시도하는 서태지 팬들도 있다. 특히 디시인사이드 서태지 갤러리의 경우 뜬금 없는 YG글은 절대로 개념글에 올라가지 못하며, 설령 올라갔다 하더라도 궁예질이란 비판을 받는다. 또한 서태지 팬인 척 하고 일부러 YG를 끌어들이는 어그로 패턴이 흔하게 발견된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22]

다만, 2019년 현재 시점에서 보면, 일부 지나친 부분은 있지만, 일부 서태지 팬들의 반감이 마냥 근거가 없다고 보기도 어렵게 되었다.

결정적인 계기는 2018년 JTBC의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인 믹스나인에서의 발언이었는데 서태지와 아이들이란 그룹 이름을 지은 사람을 죽여버리고 싶었다'''라는 발언이 여과 없이 방송에 그대로 나간 것이다.

이 발언은 일반 대중들에게도 비판을 받았다. 만약 양현석이 불화설을 의식했더라면 오히려 이러한 발언을 삼갔어야 하며, 설령 순간적인 실언이었다 해도, 본인의 회사가 기획하는 프로그램이므로 그 발언은 사전에 편집할 수 있었다.

게다가 현재 YG엔터테인먼트 2대 주주 네이버이므로 YG엔터테인먼트가 포털에 관여한다는 의심 또한 마냥 근거가 없다고 보기도 어렵게 되었다.

정리하자면, 연예 커뮤니티의 정치질이나 음모론에 일부 서태지 팬이 낚이기는 하였으나, 양현석이 스스로 논란을 자초한 부분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4.1.3. 팬덤의 보수화

앞서도 지적된 문제이지만 서태지가 음악계에 미친 영향력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서태지 이후의 아이돌 음악을 지나치게 비하하는 팬들도 있다. 또한 현재의 아이돌이 서태지의 음악을 잘 모른다는 이유로 악플을 다는 사람도 있다.

윤하가 유희열을 백발 할아버지인 줄 알았다고 했다가 토이 팬들에게 악플 세례를 받은 것과 비슷하게, 애프터스쿨의 나나는 '서태지에 대해서 잘 모른다'고 솔직하게 발언했다가 서태지 팬들의 악플을 받았다. 또한 MAMA 무대에서도 서태지가 소격동을 부를 때 가만히 앉아 있었다는 이유로 현재 아이돌들이 대선배를 예우하지 않는다고 비난하는 반응도 있었다.

하지만 이후 <컴백홈>에선 자리에서 일어나 춤을 추며 즐기는 아이돌이 많았고, 실제 기사들도 그 점을 강조했다

현재 아이돌이 서태지의 자식뻘이란 점을 생각한다면 의외로 큰 반응이었다 볼 수 있다. 또한 방송의 음향이 현장과 달라서 빚어진 오해도 일부 있을 수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 컴백홈 시작할 때 걸 그룹 멤버들이 다리 꼬고 앉았다고 비난을 받은 것이 그러한 예라 할 수 있는데, 사실 이 장면은 베이스 연주가 조용하게 흘러나올 때의 모습이다. 보통 조용한 연주가 나오면 가만히 앉아서 연주에 귀를 기울이기 때문에 소리만 제대로 들렸다면 연주를 감상하는 모습으로 여겨졌을 것이지만, MAMA 본방 때는 베이스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음향이 열악했기 때문에 연주를 듣는 모습으로 비치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 저 당시 진짜 문제는 아시아권에서의 인기만을 기준으로 아이돌들에게 상을 몰아주어, 정작 대선배인 서태지는 빈손으로 돌아가게 한 시상식의 편향성에 있는 것인데, 일부 팬들은 엉뚱한 곳에다 화풀이를 했던 것이다. 아이돌 팬들이 모이는 커뮤니티에서도 서태지 무대에 대한 반응이 하나같이 칭찬 일색이었음을 생각한다면, 아이돌에 대한 필요 이상의 비난은 신생팬 유입의 걸림돌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또한,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으니 현재 아이돌 팬덤과는 다르다는 지나친 자부심도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

앞서 지적된 과장된 평가도 사실은 90년대 초반 음악계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예를 들면 유튜브 댓글 중에는 90년대 가수들은 다들 가요무대 스타일로 정장에 정자세로 노래했는데 서태지의 등장으로 바뀌었다는 역사왜곡 수준의 주장도 있다.

반면 40대 팬들의 경우 생업이나 가정에 올인하느라 굳이 가수 취향으로 부심을 부리는 것에 관심이 없다.
앞서 언급된, 서태지를 몰라서 비난 받은 아이돌 가수의 사례도 중년층이 아닌, 청년층에서 나온 비난이었다.
중년팬의 경우 “우리가 많이 늙었네” 하며 세월의 무상함을 느꼈다는 식의 반응이 많다.

그런데 그 아래 세대 신생팬들의 경우 입덕 계기가 서태지 음악의 매니악한 면에 이끌린 것도 있고, 그들의 10대 시절인 2000년대 초반에는 상대적으로 아이돌 가수가 침체했던 시기라 현재의 아이돌 문화를 받아들이기엔 너무 나이가 많다.

또한 2010년대 들어서 전 세계적으로 락 음악이 침체하다 보니, 서태지가 지금까지 꾸준히 활동하는 몇 안 되는 국내의 네임드급 락 뮤지션의 위치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는데(...) 이로 인해 일부 팬들이 락부심을 부리게 되는 케이스도 있다. 과거에 락부심을 부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서태지가 까임의 대상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지는 부분.
이러한 부류는 시스템의 인형인 아이돌과 아티스트는 다르다면서 아이돌과 아티스트를 지나치게 분리해서 본다.[23]

하지만 주류 대중문화인들에게 시스템의 인형 딱지를 붙이는 락부심, 마이너부심의 근원을 따져 보면 그 동기가 그리 순수하지 않다.[24]

특히 우리나라에서 락부심은 70년대 디스코 폭파의 밤으로 대변되는 서구권의 인종차별, 마초주의에다 90년대에 갑툭튀한 운동권 출신 평론가들이 만들어낸 혼종에 가깝다. 특히 후자는 90년대 초에 록 떡밥을 물고 진보 사상을 설파하려고 밑밥을 깔았는데, 이렇다 보니, 본고장 록 문화의 다양한 측면이 알려지지 못하는 폐단이 생겼다.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의 서태지는 부정하고 록 뮤지션 서태지의 면모만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도 운동권 출신 평론가들이 끼친 폐단이다.
이들은 앵무새처럼 시스템에 저항하지 않으면 꼭두각시라는 말을 반복하는데, 과연 시스템 안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정작 그 말을 하는 본인들도 기존의 시스템을 영리하게 이용하고 있다.[25]
하지만 서태지는 운동권 출신 평론가들이 등장하기 이전에도 장르적 스펙트럼이 넓은 음악팬들 사이에서 나름 인정받는 분위기였다. 문제는 이런 순수 음악팬들이 매스컴과는 거리가 멀다 보니, 팬이 아닌 사람들은 뭔가 의도가 있어서 띄워졌다고 오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26]

게다가 원래 10~20대가 20~30년 전부터 활동한 중견 가수를 좋아하는 것 자체가 그들 또래 사이에서는 비교적 특이한 취향인데, 이러한 점에 나는 남들과 다르다 마이너부심을 부리는 부류들이 항상 어느 시대이든 존재했다. 서태지 또한 이제는 중견 뮤지션 대열에 들어섰기 때문에 이러한 부류들의 과시용 대상이 된 것이다. 이러한 부류의 경우, 서태지 뮤직비디오에 해외의 케이팝 팬들이 찬사 댓글을 다는 것조차도 아이돌 팬 유입이라는 이유로 싫어하는데, 이는 과거 음악팬들 사이에서 존재했던 전형적인 마이너부심 증상이다.

이러한 부류가 인터넷상에서 과대 대표되어 입덕 장벽이 되는 것을 대다수의 서태지 팬들은 우려한다.

4.1.4. 빠와 까의 콜라보레이션

한편, 이러한 상황을 악용하여 의도적으로 서빠를 자극하는 발언을 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 사실이다.

2002년에 열렸던 제2회 이티피 페스트의 경우 YG 패밀리가 출연하는 것을 비판하는 서태지 팬들의 반응을 왜곡하여 '서태지 팬들이 듣보잡 인디 밴드들 출연을 반대한다'는 식으로 이간질하는 자가 등장했는데, 이로 인해 록 마니아들이 서태지 팬들을 오해하는 경우도 있다.
문제는 이런 글들은 지난 일이라 증거가 남지 않아서, 그런 일들이 있었는지 모르는 사람들도 많고, 이미 그때 이간질에 데인 서태지 팬들은 서태지에 대해 조금이라도 비판적으로 보이는 의견에 과민 반응을 보이게 되었다는 것이다.[27]
정작 이간질을 한 장본인은 뒤로 빠져서 서태지 팬들 문제가 많다는 이야기를 확대 재생산하고, 이런 어그로에 팬들이 낚여서 키배가 벌어지는 악순환이 빚어진다.

또한 인터뷰 진행자가 유도신문성 질문을 던져 평론가에게서 격한 반응을 이끌어내고, 이것이 서빠를 자극해 졸지에 그 평론가가 서까로 몰리는 일도 있다.

예를 들면 의도적으로 서태지의 표절 시비를 언급하면서 '서태지 팬들은 서태지가 외국 음악의 모방을 받았음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을 던지면, 질문을 받은 평론가는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답변을 하게 되는데, 이를 본 서태지 팬들은 그 평론가가 서태지의 음악을 부정적으로 생각한다고 오해하는 것이다.[28]

이처럼 의도적으로 어그로성 떡밥을 던지는 사람들에 의해 서태지 팬들이 필요 이상으로 예민한 반응을 보이면, 이를 서까가 이용하여 빠와 까의 콜라보레이션이 끊이지 않는 악순환이 빚어진다.

이러한 여러 요인들로 인해 서태지의 경우 유독 모 아니면 도 식의 극단적인 평가가 많으며 중립적인 평가가 나타나기 어렵다.
물론 모든 유명인들이 그렇기는 하지만, 시대적 상징성으로 인한 온갖 어그로들이 출몰하기 때문에, 이러한 키배로 피로감을 느껴서 서태지에 대해 애초 별 관심이 없었던 사람들이 팬들에게 거부감을 느끼는 경우도 있으며, 이는 사실 어그로들이 노리는 것이다.[29]

심지어 같은 필자가 한 달 사이에 자아 분열을 보이는 사례도 있다. 일례로 김학선 평론가는 2022년 6월 22일 동아일보 서태지와 BTS의 차이라는 기사를 송고했다. 논조를 보면 서태지와 케이팝 그룹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서태지는 음악뿐만 아니라 활동에도 주체성을 갖고 있었다라며 서태지를 찬양했다.[30]
하지만 한 달 후 7월 22일에 디스패치에서 나와서 한 발언은 서태지와 아이들도, (찾아보면) 비슷한 곡들이 많다. 그래서 문화 대통령은 과한 수식어다. 그 당시 해외 음악 트렌드를 잘 가져온 감각있는 뮤지션으로 보면 된다.이다. 링크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실험적인 음악성을 언급하면서 찬양하다가 레퍼런스가 과하다고 말을 뒤집은 것이다.[31]
4.1.4.1. 지능형 안티
한편, 최근에는 이러한 상황을 이용해 팬코를 하는 지능형 안티도 등장했다.
이들의 수법은 이러하다.
  • 그동안 팬들이 축적한 자료를 집대성해 쓴 글을 뜬금없이 여러 커뮤에 뿌림
    물론, 자유로운 게시판의 특성상 서태지 활동기가 아닐 때 이런 글이 갑자기 올라왔다 해서 이상할 것은 없다.
    하지만, 진짜 팬들은 주로 자신이 활동하는 게시판에서만 가끔씩 글을 올리는데, 팬코를 하는 지능형 안티는 같은 시기에 여러 커뮤를 돌며 삐라를 살포하듯이 같은 글을 뿌려대므로, 모르는 사람들은 극성스런 서태지 팬이 서태지에 대한 생각을 주입하기 위해 알바를 한다고 오해하기 쉽다. 그리고 이에 반감을 느낀 안티들이 서태지를 깎아내리는 파생글을 쓰는 패턴이 이어진다.
  • 극소수가 다양한 정치성 커뮤에서 활동
    일베에서 클리앙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의 커뮤를 돌며 같은 날에 토씨 하나도 다르지 않은 글을 뿌려댄다. 다만 이들 커뮤의 공통점이 있는데, 서태지의 전성기를 기억하는 세대들이 활동하는 커뮤이며, 10~20대들이 주로 활동하는 커뮤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래서 같은 날에 같은 글이 일베와 클리앙에 뜨는 경우도 있다. 이는 출처 세탁을 위한 수법이기도 하다. 또한 하나같이 정치적인 글이 활발히 올라오는 커뮤이며, 글의 주제도 이에 최적화되어 있어 정치 관련해서 어그로를 끌기도 좋다. 이는 서태지가 장기간 공백기를 가짐에도 어그로들에게 떡밥이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실제로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많은 논객과 언론인들이 서태지를 정치적인 주제로 엮어서 다루어 왔기 때문이다.

4.1.5. 팬덤 간의 충돌

모든 팬덤이 그렇기는 하지만, 서태지의 다양한 음악 성향 만큼이나 팬들 성향도 다양하다. 크게 보면 음악에 집중하는 음빠, 외모에 반한 얼빠, 그리고 유사연애적 성향을 보이는 일부 망상분자들이 있다. 즉, 온갖 성향의 팬들이 총망라된 것이 서태지 팬덤이다 보니 충돌도 있다.

비교적 건전한 편이긴 하지만, 음빠 중에서도 충돌이 있는데, 이들 중에 일부 락 꼰대처럼 타 장르를 무시하는 팬이 있는 경우, 서태지 이외 타 뮤지션을 무시하는 팬이 있는 경우에는 음빠끼리도 감정이 상할 수 있고, 나아가 타 팬덤과의 충돌로 이어진다.[32] 다만, 일부 독선적인 음빠의 경우는 대중적인 커뮤보다는 블로그나 유튜브에서 노는 편. 그래도 음빠는 음악을 오래 들을수록 관심 분야가 넓어져 타 뮤지션의 음악도 폭넓게 듣는 경우가 많다. 의외로 아이돌 음악에도 너그러운 경우가 많다.[33]

얼빠의 경우, 서빠의 종착역은 얼빠란 얘기가 있을 정도로 음빠 중에서도 많으므로 의외로 충돌은 없다.[34]

진짜 문제가 되는 것은 망상 분자다. 이들의 경우, 자기들만이 독점하려는 심리에서 팬덤 이간질에 앞장서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택 침입 같은 스토킹 범죄도 일으키니 그야말로 만악의 근원. 이들의 경우, 그 행태가 일부 여초 커뮤니티의 막장성과 비슷해서 그러한 커뮤니티에 모이는 일부 무개념 아이돌 팬들이 하듯이 일종의 정치질을 한다. 이 때문에 타 가수에 대한 비방을 서슴지 않는다. 대다수 팬들이 보기에 이들은 팬덤의 이미지와 나아가 서태지의 이미지를 실추 시키는 암적인 존재이다.[35]

다만, 중요한 것은 아무리 가수가 위대하다고 해서 팬들 개개인의 성향이 여기에 반드시 비례하는 게 아니란 것이다.
예시로 들기엔 다소 민감하지만, 전설적인 해외 뮤지션의 팬 중에도 아이돌 팬 저리가라 할 정도로 타 뮤지션 팬과 신경전을 벌이거나, 유사연애 망붕족이 있다. 국내 기준으로는 서태지 팬덤 규모가 비교적 큰 편이라 두드러져 보이는 것이다.

4.2. 언론계의 문제

서태지의 실제 인터뷰 기사를 보면 "나는 해외 뮤지션(림프 비즈킷이나 콘 등)에 비하면 발톱의 때도 안 된다"고 하는 등 겸손한 표현이 많다. 또한 언론 기사도 엄밀히 따져 보면 서태지가 처음 그러한 스타일을 창조했다고 쓴 것은 없다. 서태지가 솔로 2집으로 컴백하면서 하드코어라는 명칭이 회자되기 전에도, 노바소닉 등의 밴드가 하드코어 장르 음악을 하는 것으로 매스컴에 소개된 바가 있는데, 대중의 주목을 크게 받지 못해 금세 잊혔고, 일반 대중들의 뇌리엔 서태지가 처음 한 것처럼 기억에 남았던 것이다.[36]

또한 6집에서 절정에 달했던 하드코어 논란에 대해서도 서태지의 잘못이라고 볼 수는 없다. 서태지 본인이 자신의 장르를 하드코어라고 말한건 맞지만, 서태지 안티를 하던 언더밴드들까지도 6집은 하드코어란 말을 입에 달고 있었다. 심지어 핌프 록이라는 정체불명의 용어를 뮤지션들이 사용하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당시만 해도 코어-메탈의 구분은 골수 코어팬이 아닌이상 제대로 구분 안 하는게 보통이었고 이건 지금도 그렇다. 아니 구분을 못 한다. 당시 서태지를 싫어하던 뮤지션들에게도 코어-메탈의 개념자체가 전혀 안 잡혀 있었다고 봐도 된다. 애당초 뉴메탈이란 개념이 널리 퍼진때도 아니었고.[37]

단지 문제가 있다면 서태지가 어떤 장르를 했을 때 언론이 그 때만 스포트라이트를 비췄다는 것이고, 그로 인해 해당 장르에 문외한인 사람들에겐 서태지가 이를 처음 시도한 것으로 오해를 하게 됐다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이것은 서태지의 경우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비주얼락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엑스재팬, 글램 락을 대표하는 데이빗 보위, 심지어 인더스트리얼의 황제로 일컬어지는 나인 인치 네일스도 모두 그 장르를 처음 만든 것은 아니었다.

또한, 일부 언론에서는 문화예술 분야 인물들을 다룰 때, 서태지와 그다지 접점이 없는 뮤지션들에게도 서태지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던져 어그로를 끌기도 했다.
당연히 이러한 질문을 받은 뮤지션들이 서태지에 대해 긍정적으로 답변할 리가 없고, 이러한 인터뷰의 내용이 까와 빠들 사이에서 확대 재생산되기도 하였다.

단지, 90년대에 문화대통령 같은 상징성이 있었다는 핑계로 기레기들이 이런 무리수를 두었던 것인데, 사실 이러한 수법은 서태지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2010년대에도 지속된다.

무엇보다도 근본적인 문제는 언론 환경과 기자들의 태도에 있다.
당장, 해외 뮤지션들에 대한 기사 아카이브를 찾아 보면, 외국에서는 매체마다 따로 인터뷰를 하는 것이 일반적임을 알 수 있다. 그렇게 해야 심도 높은 인터뷰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해외 뮤지션들이 나온 인터뷰 기사를 보면 뮤지션이 음악에 담고자 한 내용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매체를 보면 기자회견 형식으로 이뤄지는 단체 인터뷰가 많아 매체마다 인터뷰 내용이 대동소이하며, 이는 서태지에 관한 인터뷰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겨레의 음악 전문 담당 기자였던 서정민 기자가 이 문제를 다음과 같이 비판한 적이 있는데, 모든 경우에 해당되는 문제다. 링크
아이돌 같은 경우는 이제 보통 라운드 인터뷰를 한다. 예전에는 개별 인터뷰를 했지만 이제는 매체가 너무 많이 늘어서 라운드 인터뷰만을 한다.
아이돌을 다루고 싶어도 그러다 보면 늘 비슷한 얘기만 하지 깊은 얘기를 하기 힘들다. 거의 똑같은 기사가 나가고 아무리 다르게 쓰려고 해도 거기서 거기다. 회의가 들기도 한다. 분명히 다루긴 다루어야 하는데 이걸 어떻게 다루어 하는지가 계속 풀어야 하는 고민이고 숙제다.
내가 제작자라면, 음악적인 부분을 인정받고 싶은 제작자라면 신뢰하는 음악기자와 개별적으로 깊게 인터뷰를 하자고 할 텐데 지금 현실에서 그렇게 하면 인터뷰를 하지 못한 다른 매체들에서 복수하는 기사를 쓰니까 그게 무서워서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도 있다.
전체적으로 음악 기사의 질이 다 떨어졌다. 하향평준화가 돼버렸다. 아이돌 음악 기사에서는 좋은 기사가 나올 가능성이 극히 드물어졌다. 즉, 인터뷰 따내기 경쟁에 혈안이 된 매체에서 담합을 하여 개별 인터뷰를 못하게 하다 보니, 음악인의 진심을 듣는 심도 높은 인터뷰가 불가능해졌다는 것이다. 따라서 좋은 이야기든 나쁜 이야기든 판에 박은 이야기만 나오고, 이게 대중들에게 선입견으로 작용하게 된다.

또한 개별 인터뷰를 따냈다고 하더라도, 기자들의 관점이 음악과는 동떨어져 있다는 것도 문제점이다.
신비주의라는 언론계의 비난과는 달리, 실제 서태지는 음악적인 질문을 던지는 기자에 대해서는 경계심을 허물었다는 증언도 있다. 90년대 당시 서태지를 인터뷰했던 황태훈 기자의 인터뷰에 따르면, 4집 수록곡 '필승' 도입부 북소리가 독특하다고 질문을 꺼냈더니 '그건 벨레디라는 아프리카 토속 타악기 소리예요'라고 답변했다고 한다. 하지만, 애초에 이러한 질문을 꺼내는 기자가 없으니 인터뷰에 음악 이야기가 담기기 어려운 것이다.

또 한 가지 문제는, 서태지가 데뷔 당시에 국내에선 생소했던 해외 장르로 이슈가 되었기 때문에, 자의든 타의든 간에 서태지=새로움이란 프레임이 형성되었고, 자료 조사를 게을리하던 기자들은 이런 익숙한 프레임에 맞춤 타성적인 기사를 쓴다는 것이다. 그것이 서태지에 대한 긍정적 평가이든 부정적 평가이든 간에, 이러한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긍정하는 쪽은 서태지는 새롭다라고 하면 되는 것이고, 부정하는 쪽은 서태지는 새롭지 않다라고 하면 그만이기 때문에 상당수의 기사나 리뷰가 흑백논리 이분법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해당 분야에 대해 성실하게 자료 조사를 하려는 태도이다.
해외 연예인 전문 리포터의 모범 사례로 거론되는 에릭 남을 보면 자신이 인터뷰를 하는 유명인에 대해 항상 철저히 사전 조사를 하여 질문 내용이 뻔하지 않고, 알맹이가 있다고 호평을 받는데, 우리나라에선 기존에 쓰여진 기사를 복붙한 듯한 뻔한 기사들이 남발되며, 거기서 벗어난 듯한 기사라 하더라도, 그냥 청개구리처럼 안티적으로만 가면 참신한 기사라고 착각하는 기자들이 많으며, 이는 서태지의 경우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4.3. 사회의 문제

서태지 3집이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은 음악으로 주목을 받자, 시사잡지와 인문사회 평론 잡지에서 서태지를 주목하기 시작했고, 사회계 인사 가운데서도 서태지의 팬임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촉발된 관심이 음악이 배제된 것이 많았다는 것이다.

물론, 평론가 강헌처럼 서태지를 음악가로서 진지하게 다룬 사람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실제로 1994년에 강헌이 창간한 인문사회 계간지 <Review> 창간호는 서태지가 모델이었고, 이 잡지에 실린 대담은 보기 드문 양질의 인터뷰였다. 하지만, 이후 숟가락 얹기 식으로 이슈에 동참하는 운동권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으며, 이들은 사회 변혁 운동가의 역할을 서태지에게 기대했다. 냉전 종식과 구 공산권의 붕괴 이후 방향을 잃은 좌파계열 운동권들 중에 일부가 당시 포스트 모더니즘 열풍에 동승해서 대중문화 비평가로 변신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때 주로 언급된 게 서태지였던 것이다.[38] 이 때문에 3집, 4집 당시에는 서태지에게서 사회 운동가의 역할을 기대하고 서태지의 팬이 된 이들도 있었으나, 이후 서태지의 음악 성향이 내면적으로 기울면서 저항정신이 흐려졌다고 비판하는 이들이 나타났다. 일례로, 서태지가 활동을 중단했던 시기에는 서태지가 컴백하여 상업적인 댄스 음악으로 물든 가요계를 정화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PC통신을 중심으로 봇물처럼 터져 나왔고, 이러한 주장이 다른 가수 팬들에게 반감을 사기도 했다. 즉, 서태지에게 과도하게 저항자 이미지를 투영하려는 팬들에 의해 서태지의 또 다른 정체성인 케이팝 댄스음악 아이콘이 부정 당한 것이며, 이는 서태지에 대한 입체적인 이해를 방해했다고 볼 수 있다.[39]

5. 앨범에 대한 비판과 그 반론

5.1. 서태지 솔로 2집

2000년도에 출시된 이 앨범이 국내에서는 절대적으로 마이너였던 랩코어, 뉴 메틀을 인기의 노래로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라고들 생각하는 서빠들이 많은데, 이미 1990년대 초반부터 그런 류의 음악은 한국에도 알려져 있었으며, Rage Against The Machine, KoRn, Limp Bizkit 등은 서태지 컴백 전부터 한국에서도 인기있던 밴드였으며, 이런 스타일의 국내 인디밴드들이 이미 결성되어 활동중이기도 했다. 서빠들이 주로 이야기하는 국내에선 생소한 마이너 밴드였는데 서태지 덕분에 한국에서 인기를 끌게 되었다는 말은, 원래 그들을 좋아하던 팬들에게는 주객전도에다가 모욕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외국이나 국내의 상위문화에서 이미 유행하던 음악들을 서태지가 받아들여 시도한것을 외국문물이나 인디씬에 무지하던 하위문화인 어린이 및 청소년 계층이 그것을 서태지가 창조한 고유의 음악으로 받아들이면서 생긴 촌극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국내 대중들에게 생소한 장르인건 사실이며, 그 들이 서태지의 컴백과 음악으로 생전 듣도보도못했던 장르를 접했을 가능성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서태지 이후로 한국에서 뉴 메틀하는 밴드가 대중적으로 성공을 거두거나 인기를 거뒀는가?를 생각해보면 서태지 덕분에 인기를 끌게 되었다라는 말 자체는 애초에 대꾸할 값어치도 없는 치기어린 서태지팬들의 착각일 뿐. 서태지가 들고나와서 인기 끌었다고 다른가수들이나 밴드들도 따라하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지만 팬들은 여전히 과거에 살고있는것이다.

…라고 적혀있는데, 당시 인디씬의 흐름을 꿰고 있었고 동시에 서태지의 팬이었던 이들 다수가 증언하는 얘기는 좀 다르다. 당시 인터넷 상에서 활동하던 인디밴드 매니아들 사이에서 유명했던 말이 “인디에서 나왔으면 5천장, 가장 대중에 널리 알려진 밴드 음악인이 들고 나왔으면 5만장 팔릴 음악을 서태지가 들고나와 선주문만 100만장 팔아치웠다.” 였다. 즉, 매니아들 사이에서나 유명했지 대중들은 거의 모르는 장르의 음악을 들고 나와서 대중에게 알렸다는 뜻이다. 실제로 서태지 6집 이전에 뉴메탈에 포함될만한 음악을 들고 나왔지만 서태지 6집 이후로 반응이 좋아졌던 노바소닉의 사례나[40], TTL로 이름을 바꾼 스피드 012 콘서트가 2001년에는 갑자기 뉴메탈 밴드를 대거 초청하는 노선으로 바꾼 것을 비롯해 당시 갑자기 그 수가 늘어았던 밴드 음악 페스티벌들, 그 바람을 타고 TV에 진출하기 시작한 밴드들과 서태지의 전국투어를 기점으로 인디씬의 규모가 커진 점 등이 이를 방증한다.

국내에서 생소한 밴드들이었다는 인디씬을 대상으로 하면 틀릴 수 있으나, 대중을 대상으로 하면 어느정도 맞는 말이며, 이게 그들을 좋아하던 팬들에게 모욕이 되지도 않는다. 더군다나 해당 장르를 서태지가 창조한 고유의 음악으로 받아들인 팬들은 그리 많지도 않았다. 당장 표절이니 뭐니 메이저 방송국의 연예 프로그램에서 떠들어대기 바빴던 시절이고, 후술된 안티 서태지 공연의 명분 중 하나가 '서태지가 밴드 조직한다고 인디씬의 인재들을 쏙쏙 빼먹는다'였기 때문에, 서태지의 팬들도 이미 이 장르의 음악을 하는 밴드들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더군다나 서태지의 공연에 그들을 다수 초청해서 오프닝 무대를 꾸며주기까지 했는데 팬들이 그걸 몰랐을까? 그 밴드들이 서태지를 통해 촉발된 바람을 타고 예전보다 더 큰 인기를 누리게 된 것은 사실이기도 하고. 잠깐이지만 ‘하드코어하다’는 말이 유행어가 되기도 했었음을 떠올려 보라. 대중에 대한 서태지의 영향력은 적어도 그 시절까지는 막강했다. 7집 시절까지도 더블스코어로 그 해 음반판매량 1위를 찍는 등 어느정도까진 유지되었을 정도인데, 하물며 6집이야 말해 무엇할까?

또, 시나위 출신인 서태지의 예로 들면서 서태지는 원래 록 음악을 해오던 사람이라서 조예가 깊다고 하며 원래 하던 장르를 다시 찾아간 것 뿐인데 무슨 무식한 소리들하냐고 서태지의 팬들은 주장하곤 했었다. 실제로 시나위출신인건 맞지만, 이미 서태지가 솔로2집을 내기 한참전에 서태지의 행태에 대한 비판곡인 ' 은퇴선언'이 이미 시나위 앨범으로 나왔던 상태. 서태지를 디스하는 곡을 수록하여 이미 서태지팬들에게 각종 협박/위협등을 당할정도의 시나위로서는(혹은 팬들은) 언제는 비난의 대상이 되고 언제는 시나위 출신이란게 정당성을 심어주니 참 아이러니 할 수 밖에 없었다. 거기다가 시나위의 리더 신대철이 여러 매체에 나와서 한 소리나, 최근의 신해철의 죽음으로 각종 팟캐스트[41]에 출연해서, 시나위 멤버였을적에 조차 서태지 레드 제플린 이 누구에요를 시연하셨다고 한다. 다만 이때 서태지는 이제 음악의 세계에 막 발을 디딘 고등학생이었음으로 이걸 문희준하고 등치시키는건 억지다.[42]

좀 원점으로 돌아와 레드 제플린을 모르는건 분명히 죄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렇게 유명한 뮤지션을 모르며 락을 한다는거 자체가 깊이 있는 락커는 아니었다는 반증이다. 실제로 시나위 시절 서태지는 고등학교 중퇴한 한 소년이었고, 신대철의 증언에 따르면 그냥 시나위의 팬이라 시나위 노래들의 코드를 잘 외우고 있는 수준이었으며 당시에 와해전수준까지 내몰렸던( 임재범이 갑자기 군대에 갔고 2집의 김종서가 급탈퇴를 하였으며 3집의 대실패로 팀해체까지 심각하게 고민하던 시기) 시나위에겐 더 여유롭게 멤버를 구축할 만한 수준이 안 되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레드 제플린은 결국 시나위에 들어와서 신대철이 들어보라고 추천해줬다고...

위 두 문단은 논리가 전혀 맞질 않는다. 신대철과 서태지의 불화는 서태지의 장르적 식견과는 별개의 사안일 뿐이다. 2000년 당시 기준으로 10년도 더 지난 일화를 바탕으로 서태지의 음악적 조예를 논하는 것 역시 어불성설이다. 그보다는 서태지가 1집부터 꾸준히 앨범에 락 음악을 실어왔고, 나아가 1집의 난 알아요, 2집의 하여가, 3집의 교실이데아, 4집의 필승, 5집의 Take Three를 포함한 일부곡들에서 보여줬듯 랩과 그루브, 락의 결합을 꾸준히, 다양한 관점에서 시도해온 뮤지션임에 주목하는 편이 훨씬 더 생산적일 것이다. 따지고보면 6집은 1집부터 지속해서 해왔던 장르적 결합 시도를 앨범 단위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밀고 나간 작업물인 셈으로 봐야 하며, 이런 작업을 10년동안 해온 서태지가 이 장르에 대한 식견이 없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참고로 계간지 <리뷰> 1997년 겨울호에도 비슷한 인터뷰가 나오지만, 늬앙스는 다르다. 사실 팟 캐스트 이이제이는 진행자가 서까라 처음부터 악의적인 방향으로 방송을 이끌어갔음을 고려해야 한다. 초대 손님의 발언보다 진행자의 발언이 앞선 방송이었던 것이다. 반면 계간지 리뷰에서 김호경은 처음부터 중립적인 입장에서 신대철이 이야기를 최대한 풀어 나가도록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리고 저 인터뷰에서는 ''우리는 전생에 비트족이었다"는 발언까지 한다. 즉 인터뷰에 따라 서태지에 대한 감정이 달라지는 걸 알 수 있다. 음악 경력은 짧지만 눈빛만을 보고, 즉 향후 성장 가능성과 열정을 보고 기용했다는 것이다. 또한 신대철은 이이제이에서의 발언을 포함해 서태지에 대하여 사실이 아니거나 진위가 의심가는 말을 여러 차례 해왔다. 서태지의 작명에 대한 이야기라던가, 아이들 1집 기타녹음 세션 참여 관련 발언 등.

이는 당시 서태지의 나이가 어렸음도 고려해야 한다. 당시 10대였던 서태지에겐 1969년에 데뷔한 레드제플린보다는 80년대를 대표하는 메탈리카, 건즈 앤 로지스, 머틀리크루가 친숙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게다가 서태지가 처음 록을 접했던 것은 80년대 초였지만, 한국 록의 대부를 아버지로 둔 신대철은 그보다 훨씬 일찍 록 음악을 접했으므로 신대철의 발언은 세대 차이도 고려해서 받아들여야 한다. 신대철이 록 음악을 처음 접했을 때는 레드제플린이 한창 활동하던 시절이었으니 당연히 신대철에겐 레드제플린이 친숙했겠지만, 80년대 헤비메틀 밴드를 통해 록을 처음 접한 소년 서태지에겐 옛날 가수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사실, 80년대는 헤비메탈의 황금기로, 지금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으로 추앙받는 메탈리카, 메가데스, 잉베이 맘스틴, 아이언 메이든 등 이루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훌륭한 헤비메탈 뮤지션들이 모두 이 시기에 쏟아져 나왔으니, 그 시대 음악만 파도 들어야 할 음악의 범위가 어마무시하게 방대하다. 80년대 메탈 덕후였던 서태지에게 그 이전 시대 음악은 관심 밖이 될 수밖에 없어을 것이다. 이미 그 때부터 록 음악은 범위가 워낙 방대해져서 한 밴드의 디스코그래피만 따라가기에도 벅찬 상황이 되었다. 예를 들면 레드 제플린과 동시대에 활동한 딥 퍼플 같은 경우 밴드 활동 역사가 분기별로 나뉠 정도이며, 시기별로 음악색도 다르다. 여담으로 딥 퍼플 문서에도 언급되듯이 국내 기준으로는 레드 제플린보다는 딥 퍼플이 더 잘 알려져 있었다.
당연히 록커 사이에서도 관심 영역이 다른 경우가 많았고, 시나위도 물론 예외는 아니었다. 김종서만 해도 음악 취향이 신대철, 서태지와 달랐다. 누구나 처음에는 동시대 가수들의 노래를 계기로 음악에 입문하고, 그 후 경력이 쌓이면서 그 이전 시대의 음악을 접하고, 원래 관심 없던 장르의 음악으로까지 관심을 넓히게 된다. 그런 점을 생각한다면, 서태지가 처음에 레드 제플린을 몰랐다는 것이 서태지 솔로 2집의 진정성을 깎아내리거나, 서태지 음악 인생 전체를 깎아내리는 근거는 될 수 없다.아무리 첨에 음악 무식자라도 20년 넘게 음악을 들었다면 더 이상 음악 무식자일 수 없다.

무언가 대단한 컴백을 기대했던 <서태지와 아이들> 세대는 이제 모두 대학생이 되었고, 시대도 많이 바뀌었다. 옛날처럼 듣도보도 못한 음악이 아니었다. 서태지는 전혀 새롭지 않았다. 서태지가 무언가 바꿔줄줄 알았던 기대는 차츰 냉소로 바뀌었고, 이 때다 싶었는지 각종 언론과 음악 평론가들은 신나게 서태지를 까댔다. 문화적 파괴력을 이 시점에서 완전히 잃었다는 주장도 있지만 그 당시 신승훈, 김건모도 밀리언셀러를 간신히 하거나 밀리언셀러 지위에서 내려왔다. 전성기가 지난 가수가 110만장 판매고면 누가봐도 괜찮을 편이다. 더군다나 장르는 국내에서는 그때나 지금이나 마이너한 메탈.

…라는데, 그 후로 20여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는 많은 이들이 서태지가 다시 돌아와서 많은 걸 바꿨다고 평가한다. 특히 사전녹화 도입은 음악방송 문화를 점진적으로 바꾸었고, 매운맛 밴드 음악들에 대한 유입 창구가 되었던 점이나, 당시 서태지를 통해 인디씬으로 유입된 팬들이 시민단체들과 연합하여 순위프로 폐지나 공연문화 활성화, 인디음악 소개 활동을 펼쳤던 점 등 생각보다 많은 변화가 있었다. 110만장 판매량도 인디씬에서조차 서태지가 아니었으면 최대 5만장 판매될 앨범이었다는 주장이 광범위하게 인정받았던 걸 고려하면 오히려 대단한 수치라고 봐야 한다. 전술했듯 서태지의 음악이나 패션 등에서 대중에게 보인 파괴력은 적어도 7집 때까지는 유지되었다고 봐야 한다. 즉 20여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보면 그 정도면 잘한 것이라는 게 대세인듯. 문화대통령이라고 불리는 빠에 대한 반감을 가진 사람들이 문화적 파괴력이 없다고 까고 있으니 아이러니할 뿐이다.

당시 태동기를 넘어섰던 인디씬에서는 안티 서태지 운동을 전개했다. 참고 기사 몇 년 후에 노브레인 등의 몇몇 인디밴드들은 그저 한번 튀어보려는 것 이상의 시도는 아니었다고 고백한 바도 있지만, 당시 일부 인디 밴드들과 그 팬덤에서는 서빠들의 락 공연에 가서 풍선 흔들기서태지 덕분에 Limp Bizkit같은 애들이 한국에서 인기라든가 콘보다 서태지가 더 좋은 거 같던데?라든가 하는 아이돌 빠순이 같은 행태에 좀 빡쳤던 거... 라고 하는데, 락 공연에서 풍선 흔든 건 서태지 6집 컴백 공연이 유일했고, 실제로 서태지를 지렛대 삼아 Limp Bizkit이나 콘 같은 음악에 입문한 사람들의 수는 어마무시하게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자기네들이 열심히 락의 저항 정신, 순수성 그런 거 추구하고 있는데, 서태지가 갑자기 나타나 그저 흉내낸 음악을 미친듯이 팔아치우고 있다'라면서 서태지로 대표되는 상업주의적 가요판에 대한 저항이라는 명분을 내세웠는데, 지금 들어보면 좀 비논리적이지만 다양성의 시대로 가는 과도기적인 시점에서 벌어지는 부작용 쯤으로 이해하면 될 듯하다. 다만 엄연히 따지자면 위의 거창한 서술과는 달리 안티서태지운동은 단순히 "너희는 진정한 락이 아니다" 라는 중2병스런 락부심적인 우월감이라기보단 지나치게 신격화되던(그들이 보기에) 서태지라는 아이콘에 대한 일종의 우상파괴적 성격이 짙은 쇼에 가까웠다.[43] 순대퍼포먼스나 서태지에대한 적대적인 뉘앙스의 행동들이 존재하긴했지만 그냥 위악적인 어그로질에 가깝고 정작 공연장에선 멘트만 그렇지 실제론 그냥 밴드홍보나 돈벌이에 가까운 행동을 보이는 등 그리 진지한 성격의 디스가 아니었다.[44]

사실 공연장에 황산을 뿌리겠다느니 등등 협박을 한것은 서태지팬덤이었고 소수 밴드들의 철없는 장난질에 팬들이 죽자고 달려들어 낚인것에 가까웠다.[45] 운동에 참여했던 그외 인디밴드들조차 전부 서태지를 싫어했던 입장이었다고 일반화 할 수도 없는지라 안티서태지는 "서태지는 가짜고 진정한 음악을 보여주자" 라는 거창한 게 아니라 그저 명분에 불과했고 좋게 말하면 "대담한 반문화적 장난" 이고 나쁘게 말하면 그저 "관심병 어그로" 였다.[46]

이를 주도하던 노브레인은 멤버 교체 이후 상업적 펑크로 방향을 틀었고, 닥터코어 911은 이정현 무대 뒤에 서서 핸드싱크 선보인것을 보면 아이러니하긴 하다. 다만 엄연히 따지자면 노브레인은 안티서태지운동을 주도한 차승우가 탈퇴한것으로 색깔이 상업적펑크로 바뀐것에 속한다.

5.2. 음악 스타일

다양한 음악 스타일을 표현해내고, 만들어내는데다 한곡 한곡을 따져봤을 때는 꽤나 물건이 나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팬이건 아니건 중립적으로 봤을 때 이런 성향이 관점에 따라 디스코그래피는 물론 앨범 전체에 악영향을 끼쳤다고 느껴지는 것도 있다.

예를 들면 4집에서의 1996, 그들이 지구를 지배했을 때 Come Back Home을 수록하면서[47] 앨범 자체 곡의 통일성을 무너뜨린 것이라든가[48] 6, 7집에서 8집으로 넘어가면서의 과도한 음악 스타일의 변화는 디스코그래피 자체의 흐름을 깨뜨리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인지 4집처럼 같은 앨범의 수록곡임에도 불구하고 팬들의 취향에 따라서 곡마다의 호불호가 크게 갈리는 편이며, 솔로활동의 디스코그래피 내에서도 각 앨범마다 팬층이 크게 나뉘어지는 편이다. 특히 5, 6, 7집에서는 그런 게 그나마 적었지만, 8집에서의 호불호는 정말 명확하게 갈릴 정도.

본인이 하고 싶은대로 할 자유가 있으니 딱히 고정된 스타일을 노릴 필요는 없지만, 프로젝트 음악도 아니고 본인의 정규 앨범 자체가 이렇게나 스타일이 들쑥날쑥한 것에 대해서는 적지 않은 팬들이 유감을 표하고 있는 부분이다. 예를 들면 "서태지 끝까지 좋아하고 싶긴한데, 7집에서의 매력의 랩과 크로스오버가 없어진 건 아쉽다.", "서태지 끝까지 좋아하고 싶긴 한데 8집은 영 귀에 안들어온다. 6, 7집이랑 너무 이질감 든다."라는 식으로. 결국 골수적인 코어 팬층을 제외하면 상대적으로 고정 팬은 별로 없는[49] 뮤지션이 된 셈. 실제 서태지와 아이들 3집이 발매 되었을 때 2집 당시 팬들 상당 수가 떨어져나갔었다. 떨어져 나간만큼 신생 팬들이 들어섰고 이는 7집 활동 후 8집 앨범이 발매되었을 때도 똑같은 상황이 벌어졌었다.

그러나 가수가 경력이 길어지면서 음악적인 변신을 더해가는 것이 실망의 이유가 될 수는 있어도 비판의 이유가 되긴 힘들다. 한 앨범의 곡들이 통일성이 없다고 깔 수는 없는 것이, 앨범을 받아들이고 구성하는 기준에 따라 그 의미가 많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앨범을 제작할 때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가 우선이냐, 앨범을 통일하는 장르가 우선이냐에 대한 생각과 그 기준도 가수마다, 또 팬마다 다르기 때문. 주제를 우선시 한다면 수록곡들의 장르가 모두 다른 백화점식 구성이라도 그 메세지에서 통일성이 있다며 크게 개의치 않겠지만 장르를 우선시 한다면 같은 주제라 하더라도 한 앨범에 여러 장르나 상반된 장르의 곡이 있는 것만으로도 앨범의 통일성을 해친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사람마다 해당 가수가 쭉 같은 장르만 해주길 원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다양한 장르를 시도하고 보여주길 원하는 사람이 있는 만큼 결국 음악 스타일의 변화는 사람마다 반응이 다를 수 밖에 없다.

다른 가수들로 예를 들면, 이런 계열로 가장 이질감이 큰 가수가 이승환이다. 감미로운 발라드로 인기를 끌었으나 본인은 락을 선호해서 갈수록 락의 비중이 높아진 앨범을 발매하고 콘서트도 신명난 락페스티벌이 되었고 발성도 갈수록 자기 취향의 발성으로 바꾸어서 팬들 사이에서 호불호가 명백히 갈린다. 김건모 같은 경우는 신나는 댄스곡에서 소울풍의 음악을 중심으로 한 가수가 되었다. 그러나 김건모의 스타일 자체가 원래 소울풍이었기에 잘 어울리고 무난히 넘어간 편. 신승훈도 변신을 꿈꾸었으나 목소리 자체가 변신할 수 없는 목소리였고, 가수 이소라는 아예 락 앨범을 발표하기도 했다. 서태지의 6촌 형인 신해철 역시 서태지 만큼이나 다양한 장르를 했는데, 거의 모든 앨범이 백화점식 구성에 앨범마다 장르도 달랐다.[50]

즉, 다른 가수들에게도 흔히 일어나고, 현대 아이돌들도 앨범마다 다른 장르를 선보이기도 하지만 그것에 대한 아쉬움을 표하는 사람은 많아도 비판까지 가는 사람은 평론가가 아닌 이상에야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생각하면, 사실상 서태지가 아니었으면 크게 까일 것도 아닌 일인 것.


[1] 이 계층을 필두로 올라선 가수들이 다름아닌 조용필, 전영록, 이용, 김범룡, 김완선, 이선희, 이지연 등이다. 이들은 10대에게 열광적인 인기를 얻었고 집집마다 아이들이 사진을 구해다가 도배를 해놓거나 공연을 따라다니는 등 젊은 팬덤을 구축한 이들이다. [2] 이들을 필두로 올라선 가수들이 주현미, 김연자, 현철, 최진희 등이다. [3] 정확히는 시간이나 소비개념이나 10대가 돈쓰기에 기성세대에 비해 너무 압도적으로 앞섰다. [4] 응답하라 1997에 나오는 성시원 같은 경우야 아버지인 성동일이 걍 포기해서 그런 거고, 저 당시에 덕질 하려면 부모님과 싸워야만 했다. [5] 서태지, "나는 '문익점' '수입업자' 맞다", JTBC, 2014년 10월 20일 [6] 다만 이건 인정했다기 보다는 자조적인 투로 자신을 비판적으로 보는 사람들을 비꼬았다는 것이 더 정확하다. [7] Come Back Home이나 4집 몇몇 곡에서는 사이프러스 힐 멤버 B-Real의 목소리 창법을 따라했는데 당시 팬들은 '원래 갱스터 랩은 다 그랬다', '레퍼런스한거니까 괜찮다'라는 식으로 얼버무리고 넘어가기도 했다. 다만 B-Real 본인은 서태지 논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고 직접 밝혔다. [8] 하지만 아래 영상 댓글만 봐도 서태지의 표절 논란을 비난하는 댓글이 많으며 일부 옹호하는 댓글과 싸움이 벌어지기도 한다. [9] 멤버인 B-Real이 2014년도에 레딧 Q&A에서 이를 언급하였다. [10] 2004년 서태지와의 합동공연으로 인해 한국에 입국하자마자 보컬 조나단 데이비스는 서태지의 모든 앨범을 구매하여 들어봤고 6집, 7집이 마음에 든다고 밝혔다. [11] SBS 한밤에서 미국으로 찾아가 6집앨범을 들려주고 어떠냐고 질문했고 KoRn이나 우리같이 노래하지 않는다며 말문을 열었고 이어서 자신들을 따라하는 일본밴드들이 있어 싫은데 서태지는 독창적이라며 칭찬했다. [12] 다만 이 논란에 대해서 서태지는 유감을 표하기도 했으며, 표절과 관계없이 서태지와 이태섭이 기타 솔로 파트에 대해서 명확한 상의가 없었다는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13] B-리얼이 컴백홈을 '멋지다'고 했다고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가끔 있는데 이것은 'cool'이라는 단어를 맥락 상 잘못 해석한 것으로 보인다. [14] 서빠들이 외국 평론가들에게 평론을 의뢰한 것도 괜히 심판을 부른 격이라고는 하나, 사실 평론 의뢰 자체는 비판받을 일이 아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를 알리기 위해 나서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다. [15] 특히 나무위키에서 서태지에 대해 조금이라도 좋지 않게 써있는 부분이 있으면 꼭 반론이라며 불필요한 설명이나 내용을 덧붙인다. [16] 여긴 정확히 말하면 자기도 서태지를 좋아하면서 서태지 팬들을 까는사람들이 많다. 다만 이것도 2000년대 중반 정도까지의 이야기고, 악숭 망하고 악숭 유저들이 다수 유입된 Rock Chicken 에서는 오히려 서태지에 대해 호의적인 편이다. [17] 라이브 앨범 수록곡 중 '컴백홈'하고 '하여가'에 게스트로 참여했다. [18] 서태지가 기획해 2001년부터 2009년까지 열렸던 록 페스티벌 [19] 서태지의 곡을 후배 가수들이 부르는 공연으로, 서태지는 직접 무대에 오르지 않았다. [20] 본인은 8년전이 마지막 만남이였다고 하나 정작 8집 활동 기록을 담은 dvd에는 6년전 2008년 당시 만난 영상이 수록되어 있다. [21] 이는 H.O.T 전성기 당시 서태지팬덤과 H.O.T 팬덤이 앙숙이었기 때문이다. 서태지와 아이들 해체 후 등장한 아이돌 그룹인 데다가 십대들의 대변자 콘셉트였기 때문에 서태지의 저항적인 이미지를 이용해 먹은 게 아니냐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 [22] 뜬금없이 서갤에 가서 양현석이 EXO 컴백을 방해한다는 음모론을 편다거나. [23] 하지만, 보이 밴드로 시작한 해리 스타일스가 아티스트로 인정받은 사례도 있는 등, 해외에서도 그 경계선은 명확하지 않다. [24] 일례로 82년생 김지영의 작가 조남주가 칼럼에서 가상의 모녀를 등장시켜 서태지와 방탄소년단을 갈라치기 했는데, 현실에선 오히려 모녀끼리 서로의 덕질을 이해하며 공감대를 쌓는 경우가 많다. 애초에 조남주가 작위적으로 자신의 사상을 설파하는 성향임을 고려하면 정말 순수한 팬인지도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25] 후술하겠지만, 서태지와 아이돌을 비교하면서 갈라치기를 하는 평론가도 이러한 풍토에서 등장한 것이다. [26] 그런데 서태지가 정치적 발언을 삼가는 성향이다 보니, 앞장서서 서태지를 띄웠던 이들이 최근에 와서는 서태지가 사회적 이슈를 외면한다고 내치는 분위기가 되었다. 특히 크리스말로윈처럼 누구도 시스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을 드러내는 곡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안 한다. 사실, 김영대, 김성대처럼 지금까지 서태지를 꾸준히 호의적으로 평가하는 평론가들은 어떤 거창한 메시지나 수식어로 인해 정작 서태지 음악의 본질이 주목받지 못했다고 본다. [27] 참고로 저 당시에 이간질을 주도했던 이가 지금은 태세를 전환해 서태지는 현재 활동 중인 아이돌과는 달리 주체적인 뮤지션이었다는 식으로 올려치기를 하는데, 이 또한 아이돌팬을 자극해 어그로를 끌려는 수법이다. [28] 일례로 이런 기사가 있다. 링크 그런데 여기서 서태지 팬들이 레퍼런스 언급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는 것은 정확히 말하자면, 이를 표절로 엮는 발언에 대한 것이다. 실제로 레퍼런스 논란이 일었을 때 서태지 팬들이 내세우는 주요 반박 논리는 레퍼런스와 표절은 다르다이다. 마찬가지로, 서태지 팬 중의 한 사람인 배순탁 또한 레퍼런스 자체를 문제 삼는 사람은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답변한 것이다. 하지만 김학선이 애초에 서태지 팬을 비난하는 늬앙스를 깔고 질문했기 때문에 서태지 팬들은 이 질문에 응답한 배순탁이 서태지 안티라고 오해한 것이다. [29] 실제로 아이돌팬들이 모이는 커뮤에서도 자주 나타나는 현상인데, 젊은 세대들은 병먹금으로 대응하지만, 비아이돌 팬들의 경우 이런 수법을 눈치 채지 못하고 일일이 반박하여 어그로 팬들에게 낚이는 경우가 있다. [30] 서태지와 아이들 전성기에 우호적인 언론이나 팬들이 했던 발언을 그대로 복붙한 수준이다. [31] 김학선은 2000년대 초반부터 평론가 활동을 했던 사람으로, 애초에 서태지에 호의적인 평론가가 아니었기 때문에, 지난 발언에 비추어 보면, 서태지에 대한 논란을 몰라서 저렇게 발언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참고로 위에 언급된 유도신문성 질문을 던진 평론가와 동일인이다. 앞서 언급된 동아일보 기사의 경우는 피치포크의 평가를 인용했는데, 여러 해외 매체에서 서태지를 케이팝의 대부로 높이 평가하다 보니, 평소 성향과는 다르게 이에 편승했다고 봐야 한다. 실제로 트렌드에 따라 태세 전환을 하는 평론가들은 은근히 많다. 예컨데 인디씬을 신성시하다가 케이팝 아이돌 평론으로 갈아타거나, 메갈리아 등장 시 이들의 주장에 맞장구를 쳤던 사람들이 있다. [32] 심한 경우, 서태지가 직접 뮤지션을 선정한 리메이크 프로젝트도 서태지가 타 가수에 굽신거리는 모양새라고 피해망상적인 주장을 한다. [33] 일례로 방탄소년단에 대해서는 리메이크와 공연 참여를 계기로 ‘방탄 아들들’이라며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팬들이 급증했다. 특히 40대 아재 팬들 사이에서는 남자 아이돌로서는 까방권을 얻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34] 이는 홈마를 소비하는 문화가 없기 때문이다. 홈마가 등장하기 이전에 입덕한 팬들이 상당수라, 얼빠라 해도 공식 사진, 잡지 사진을 공유하는 정도가 고작이다. [35] 암이란 표현이 단순한 비유가 아닌 게, 독선적인 음빠의 경우 성격상 패거리를 지어 어울리진 못하고 골방에서 혼자서 소리치는 방구석 여포짓 정도로 그치지만, 망상분자형 악성 팬은 같은 성향끼리 무리지어 각 커뮤를 휘젓고 다니며 트위터 선동질도 하기 때문에 암세포의 속성과 닮았다. [36] 실제로 노바소닉 보컬이었던 김진표는 "우리가 하드코어 한다고 할땐 아무도 몰라주더니 서태지가 한다고 하니까 다들 주목하더라"고 언론 인터뷰에서 불평한 적도 있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김진표가 서태지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고 저런 인터뷰를 했던 게 아니다. 실제로 김진표는 서태지 성덕으로 유명했다. [37] 뉴메탈의 전조는 90년대 후반부터 있었지만 본격적인 2세대 밴드들이 인기를 끌고 한국에 청취자가 많아진것은 2000년대 초중반이었다. [38] 당시 방황하던 운동권들의 대다수는 참여연대 류의 개혁적 시민운동이나 민주노총 같은 합법적 노동운동으로 넘어갔지만, 일부는 문화비평으로 가거나 아예 SF와 판타지 등 도서출판 혹은 문화산업계에 직접 진출하였다. 문화산업쪽으로 넘어온 사람들은 대부분 당시 양적으로 급팽창하던 한국 영화판에 들어가서 쉬리와 JSA 이후 21세기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를 이룬다. 대중음악계로 넘어온 사람은 원래 서울대 PD운동의 이론가였던 이적 정도뿐이다. [39] 이런 흐름은 1996년 부터 불기 시작한 홍대 인디씬에 상당히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서태지가 은퇴를 선언한 이후에 운동권 출신 문화평론가들의 관심은 서서히 바람이 불기 시작했던 홍대 인디씬으로 넘어가는데, 이들은 여기서도 또다시 저항성, 진정성 운운하면서 인디뮤지션들의 음악을 자신들의 입맛대로 난도질해버렸기 때문이다. 이런 흐름은 2000년대까지도 계속 이어져서 결국 홍대 인디씬이 자생할 수 있는 상업적 기반을 갖추는데 실패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40] 사실 멤버 유명세와 펌프 잇 업 수록으로 상당히 대박친 상황에서 서태지 덕에 2집이 1집 이상으로 대박치게 만들었다 보는 게 맞지, 서태지 앨범 덕에 반응이 좋아졌다는 말은 좀 그렇다. 평론가들 평가를 반전시키는 영향이었다면 틀린 말은 아니겠지만. [41] 대표적으로 이이제이 신대철 편 [42] 물론 문희준 본인도 실제로 모르는 건 아니여ㅆ고, 본인이 군제대 후 첫 방송에서 해명했다. # [43] 락, 펑크문화의 특성중 하나인데 과거 70년대 섹스피스톨즈의 여왕까기나 기타 전설적인 락스타들을 리스펙하는 동시에 디스한 경우와 대체로 성격이 비슷하다. [44] 그러나 위 참고 기사에도 나오듯이, 진보적 성향의 정치 운동을 하는 사람이 포함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그 일원 중 실제로 구의원 출마를 한 사람도 있었다. 링크 즉, 애초에 정치 세력이 끼어 든 운동이었다. 다만, 노브레인 같은 뮤지션들은 그런 쪽엔 관심도 없고, 서태지에 대해서도 별다른 감정이 없었다. 후술하겠지만, 심지어 차승우는 중학교 때부터 서태지의 음악을 좋아했다는 인터뷰까지 했다. 훗날, 노브레인의 히트곡 '넌 내게 반했어'를 이명박 측에서 캠페인 송으로 선점하면서, 노브레인은 진보 진영으로부터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원래는 어느 정당이든 상관없이 누구나 노래를 이용할 수 있다고 허락한 것인데, 이명박 측이 가장 먼저 컨택하였고, 이로 인해 이명박을 지지한다는 오해를 받게 된 것이다. 이후 노브레인은 정치색을 보이지 않고 활동한다. 근데 이 내용은 노브레인의 브레인을 담당했던 차승우가 빠져나간 후의 얘기고, 안티 서태지 공연 당시에는 차승우가 노브레인에서 브레인 역할을 맡고 있었다. 다만 차승우도 2008년 인터뷰에선 당시 행동에 대해 지나쳤다고 인정했다. 링크 [45] 애초에 운동을 주도한 차승우부터가 서태지와 아이들 시절 2집앨범 하여가의 팬이었으며 서태지의 음악적 수준과 성과는 인정한다고 고백한 바 있다, 고 했으나 그건 당시 공연에서 수년 뒤에 한 얘기고, 공연 당시에는 철없는 장난질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없었다. [46] "시작은 안티서태지였으나 점점 그냥 밴드들 홍보가 되갔다" 라는 당시 행사에 있었던 사람들의 말이 이를 증명한다. [47] 곡을 넣자고 제안한 건 양현석이었다. 양현석이 만악의 근원 [48] 생각해보라. 슬픈 아픔 Come Back Home 둘 다 명곡인 건 사실이지만, 한 앨범의 수록곡들로 생각해보면 절대 한 앨범 안에 들어가 있는 곡이라고는 일절 상상이 안갈 정도로 스타일이 정반대의 곡이다. 앨범자체가 서태지와 아이들 셀프프로듀스 방식이었기 망정이지 외부 프로듀서를 썼으면 둘 중 한 스타일이 갈려 앨범에 수록 되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실제 뮤지션 중에서도 저런 식으로 앨범의 곡을 구성하는 프로듀서들도 드물고. [49] 물론 이건 서태지가 90년대에 주로 활동했고 2014년 이후로는 9년 가까이 앨범 한장 안내고 있어 유입이 적은 탓도 있다. [50] 솔로 앨범만 봐도 주 장르가 1집은 발라드, 2집은 뉴 웨이브, 팝인데 3집은 테크노고 4집은 인더스트리얼 록, 하드 록, 국악이며 5집은 재즈에 6집은 아카펠라, 펑크, 팝 발라드고 밴드 앨범의 경우 넥스트 1집은 테크노 록, 2집은 프로그레시브 록, 3집은 프로그레시브 메탈, 4집은 심포닉 메탈에 5집은 뉴메탈, 6집은 헤비 메탈이다. 때문에 언니네 이발관 이석원처럼 이걸 가지고 까는 사람도 있긴 했다. 이석원도 나중엔 신해철이니까 가능했던 것이라고 인정하긴 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