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6:54:21

사우디아라비아-예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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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멘 사우디아라비아
1. 개요2. 역사적 관계
2.1. 고대2.2. 중세2.3. 근세2.4. 현대
3. 상호 교류4. 예멘 내전5.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예멘 사우디아라비아의 대외 관계에 대한 문서이다. 예멘과 사우디는 언어, 문화, 종교 분야에서 많은 공통점을 공유하는데 아랍어가 국어이고 이슬람교가 국교이기 때문이다. 물론 차이점 역시 적지 않은 편인데, 예멘이 이슬람화하면서 예멘인들도 아랍인이라는 카테고리로 통합되었으나, 지정학적 이유로 양국 모두 다른 역사를 걸어왔기 때문이다. 예멘에서 순니파와 시아파 사이의 갈등이 커지면서 2010년대부터 내전이 발생되자, 사우디아라비아를 중심으로 한 걸프 아랍 순니파 국가들이 아랍 연합군을 결성해 내전에 개입하면서 양자 사이의 갈등도 커지고 있다.

2. 역사적 관계

2.1. 고대

오늘날에는 아라비아 반도에 위치한 아랍어권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고대에는 문화가 적잖이 달랐다. 사막 위주의 헤자즈, 네지드 지방과 다르게 예멘은 강수량도 풍부하여 농업에 유리했을 뿐 아니라 동아프리카와도 가까이 있었던 지역이었고, 동시에 인도양 해양 무역의 요충지였기 때문이다. 고대 당시에는 예멘 일대가 훨씬 부유할 수밖에 없었고 이러한 연유에서 네지드 사막의 킨다 왕국은 예멘의 힘야르 왕국에 종속국이었다.

2.2. 중세

번영을 누리던 힘야르 왕국은 에티오피아 악숨 왕국의 침략을 계기로 붕괴하였다. 힘야르 왕국이 무너지면서 예멘 일대의 농업 생산력을 책임져주던 마리브 댐도 무너지고 예멘 일대는 아라비아 반도에서 제일 부유하고 힘있는 지역에서 제일 난민을 많이 배출하는 지역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한편 아라비아 반도에서 예언자 무함마드가 지지자들을 끌어모아, 메카를 정복하고 아라비아 반도를 통일하면서 예멘 일대의 주민들도 이슬람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마리브 댐 붕괴 이후 난민이 되어 이리저리 뿔뿔이 흩어지기를 반복하던 예멘의 여러 부족집단들은 정통 칼리파 시대 당시 이슬람 정복전쟁에서 용맹을 떨쳤다. 문제는 정통 칼리파 시대 제3대 정통 칼리파 우스만 이븐 아판의 치세 들어서 이슬람 제국의 중심지가 이라크로, 우마이야 칼리프조 치세에는 시리아 일대로 이동하였다는 점이다. 아라비아 반도는 대제국의 중심지가 되기에는 생산력이나 인구 부양력이 너무 빈약했고, 기후가 가혹했기 때문에 이는 필연적인 일이기도 했다.

압바스 칼리파조 시대가 되면 예멘의 북부와 네지드 지방은 일종의 내부 변방 지대가 되어버린다.[1] 한 편 예멘의 남부 해안 지역은 이집트 일대와 활발하게 교역하면서, 아라비아 반도에 이웃한 히자즈나 네지드 지역보다는 오히려 이집트와 더 많은 공통점을 공유하게 되었다.[2] 이는 근현대 들어서 아라비아 반도 여타지역에서는 와하브파가 유행하는 가운데, 예멘 일대는 이집트의 영향으로 순니파 샤피이파가 우세한 상황으로 그대로 연결된다.

2.3. 근세

예멘은 인도양에서 홍해로 향하는 길목에 위치해있고, 사우디아라비아의 주요 대도시들은 홍해와 면한 히자즈 지방에 접해 있다. 이 때문에 예멘 일대의 정세 변화는 히자즈 지방의 정세 변화로, 반대로 히자즈 지방의 정세 변화는 예멘의 정세변화로 바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대항해시대 당시 포르투갈 왕국은 이집트의 맘루크 왕조 함대를 격파한 후 아라비아 반도 각지에 항구도시들을 점령하고, 이를 요새화하였다. 포르투갈인들은 1506년 홍해 입구의 소코트라, 1507년에는 무스카트를 정복하고 아덴마저 여러차례 침공하기 이른다. 당대 가톨릭 교조주의 성향이 강했던 포르투갈이 예멘 일대에서 패권을 차지할 경우 메카와 메디나 성지순례 루트가 심각한 위협을 받을 것은 분명했다. 포르투갈인들은 인도양에서 무슬림들을 태운 선박들을 나포하면 항복한 사람이나 민간인 할것 없이 임산부도 가리지 않고 마구잡이로 학살하는 것으로 악명 높았으며, 이미 십자군 전쟁 당시 1183년 르노 드 샤티용의 십자군 함대가 히자즈 제다 부근에서 순례자들을 태운 선박을 침몰시킨 사례도 있었기 때문이다. 근세 당시 히자즈 지방을 장악했던 오스만 제국은 성지 순례 루트 보호를 위해[3] 결국 북예멘 일대를 대군을 동원하여 정복하고, 16세기 중반 아덴 일대의 포르투갈 세력을 축출해내는데 성공하였다. 하지만 오스만 제국은 남예멘 일대까지 직접 지배하는 것은 포기하는데, 보급 비용도 많이 들거니와 및 현지 자이디파 예멘인들의 저항도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오스만 제국은 예멘의 남부 일대 관련해서는 포르투갈 세력이 집적대지 못하게 감시만 하는 선에서 그쳤다.

2.4. 현대

예멘 남부 해안은 19세기 영국의 지배를 받았다. 한 편 리야드 토후국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편을 들며 오스만 제국군과 맞서 싸웠고, 그 결과 히자즈 왕국이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독립되었는데, 이는 오늘날 사우디아라비아의 전신이 된다. 오스만 제국의 해체 결과 1918년에는 북예멘 역시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독립하고 예멘 왕국이 들어섰다. 예멘 왕국은 이집트 왕국과 히자즈 왕국 사이에서 줄타기 외교를 벌였다.

예멘 남부는 영국령이었다가 1967년 소련의 지원을 받아 아랍 세계의 이슬람 국가에서 유일한 공산체제의 남예멘으로 독립되었고, 1970년대 예멘 왕국에서도 쿠데타로 공화정이 들어섰으며, 자본주의 사회였음에도 정치적으로는 사회주의의 영향을 받은 체제였으며(단 북예멘은 공산주의는 아니었다),[4] 여러 갈등이 있었지만 훗날 사우디아라비아를 포함한 여러 아랍 국가들의 중재로 남북이 서로 타협을 했고, 1990년에 통일을 결정해 예멘은 통일 국가가 되었다.

3. 상호 교류

이웃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애증의 관계가 심각하게 좋지 않다. 예멘 내전 이외에도 사우디아라비아가 예멘에게 현재의 공화국이 아니라 기존 왕정을 지원했던 역사적 앙금과 사우디아라비아의 곡물 재배 농장에서 일하는 예멘인에 대한 저임금 노동 착취 때문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문제인 곡물 재배는 꽤 고된 일임에도 워낙에 저임금이라 예멘인들에게 불만이 가득했다. 지금은 폐간된 월간잡지 지오에서 이 문제를 다룬 바 있다.

오랜 세월 사우디아라비아와 예멘 사이에는 텅빈 룹알할리 사막 뿐이라 뚜렷한 국경이 없었고 이 때문에 몇 차례 분쟁이 있었는데, 2000년 제다 조약으로 오늘날의 국경선이 확정되었다. 2004년 사우디아라비아가 이 국경에 방벽을 세우려 했으나 예멘 측에서 조약 위반이라 따져서 건설이 중단되었다.

그래서 두 나라는 국경을 오가는 것이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사우디아라비아는 예멘인들 모아다가 자기 나라 넓은 사막 보리에서부터 복숭아 무화과 같은 농작물, 과일들을 재배하고 있다. 이게 돈이 엄청 들기에 밀 같은 경우는 수입해오는 돈 3배 이상을 들여야지 재배하여 수확할 수 있다고 한다. 즉 이게 죄다 석유 파는 돈으로 유지되는 것이라 석유 떨어지면 막장 될 듯.[5]

4. 예멘 내전

상술한 상황에서 결국 예멘에 내전이 터졌고 그 난민들이 떼거리로 몰려들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이참에 자국 근처에 있던 시아파들을 정리해버릴 겸 내전에 뛰어들어 미국 튀르키예의 묵인 하에 반군들을 두들겨 패고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목표 달성 대신에 심각한 졸전으로 국제적 망신을 당하고 있다.

내전 중인 예멘에서 콜레라가 확산되고 있지만, 정작 사우디측은 예멘에서 콜레라가 확산되고 있다는 것은 과장이라고 주장하며 인도주의적 책임을 부인하고 있다. # 2018년 3월 16일에 사우디와 예멘 후티반군이 내전 종식을 위해 비밀리에 회담중이라는 보도가 나오자 사우디와 예멘 정부는 부인했다. # 3월 28일에 사우디는 예멘의 인도적 위기 해결을 위해 UN에 9억 3천만 달러를 기부했다. # 2018년 4월 3일에 후티반군이 사우디 선적 유조선 1척을 공격했다고 밝혔지만, 후티반군은 아랍동맹군 군함 3척을 공격했다고 밝혔다. # 2018년 4월 23일에 예멘 반군은 사우디군이 예멘 북부 히즈자 주의 예식장을 두차례나 폭격하면서 하객 등 50여 명이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 그리고 5월 12일에 후티 반군과 사우디와 연합한 정부군이 격렬한 전투를 벌이면서 최소한 112명이 사망했다. # 6월 13일에 사우디 정부는 아랍에미리트와 연합하면서 호데이다를 탈환하는 작전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 그리고 호데이다에서 후티반군과 전투하는 과정에서 후티반군 30명, 연합군 9명이 사망했다. # 거기에다 사우디군의 호데이다 공격으로 인해 예멘에서는 수백만 명의 민간인들의 원조차단이 우려되고 있는 상황이다. #

사우디아라비아에도 예멘 내전을 피해 사우디로 피난온 난민들도 상당히 많은 편이다. 하지만 사우디 정부가 예멘 난민 수천명을 추방하거나 다시 전선에 보내고 있다. # 그리고 예멘반군의 유조선공격으로 인해 사우디측은 홍해 원유수송을 잠정중단했다. # 2018년 8월 2일에 호데이다의 병원과 수산시장이 대규모 공격을 받아 민간인 100여명이 사상한 사건을 두고 사우디측과 예멘 반군측이 상대방의 소행이라고 책임을 전가했다. # 2018년 8월 9일에 에이피(AP)통신은 사우디가 이끄는 연합군이 예멘 북서부의 사다 주에 보복공격을 가해 어린아이들을 포함한 수십명이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 하지만 사우디가 주도하는 아랍연합군은 11일에 성명을 내고 후티 반군이 소년병을 여전히 모집한다고 비판했다. #

2018년 8월 28일에 유엔인권위원회에서는 사우디가 주도한 예멘 공습이 전쟁범죄에 해당된다고 발표했다. # 하지만 이에 대해선 사우디측이 반박했다. # 그러다가 이례적으로 오폭을 인정했다. # 2018년 10월 11일에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사우디에 예멘에서 일어나는 공습을 중단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라고 촉구했다. # 2018년 11월 10일에 예멘 정부의 공보장관과 후티 반군의 공보장관이 사우디로 망명한 일이 발생되었다. #

2019년 3월 12일에 유엔은 사우디아라비아가 주도하는 아랍동맹군의 폭격에 예멘 북부에서 어린이 12명과 여성 10명 등 모두 22명이 숨지고 30여명이 부상했다고 주장했다. # 그리고 2019년 6월 9일에 후티 반군은 사우디 남부의 지잔 공항을 드론으로 공격했다고 밝혔다. # 6월 19일에 후티 반군은 사우디 남부의 발전소에 미사일 공격을 했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 그리고 후티 반군에 의해 사우디 남서부의 아브하 공항이 공격당했다. # #

그리고 같은 이슬람 국가들이지만 종파, 정치적으로도 차이점이 크다. 사우디아라비아는 거의 수니파 왕정이고 예멘은 구 북예멘 일대에 시아파들도 일부 있으며, 과거에는 사회주의의 영향으로 독립된 남예멘도 있었다보니 사회주의 체제의 영향도 받아서 정치적으로도 갈등이 있다.

2020년 12월 30일에 사우디는 아랍 연합군이 아덴의 임시대통령궁을 공격하려던 후티 반군의 무장 무인기를 요격해 격추했다고 밝혔다. #

2021년 2월 10일에 후티 반군이 사우디의 아브하 공항을 드론으로 공격했다. #

사우디아라비아가 예멘에 4억2천만 달러(약 4천700억원)어치의 연료를 지원하기로 했다. #

사우디가 하디 대통령을 하야시켜 구금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5. 관련 문서



[1] 9세기 말 예멘에는 시아파의 일파인 자이드파가 여타 순니파들과의 마찰을 피해 자리를 잡았고, 네지드 내륙 사막지방은 이슬람 주류 순니파와 심각한 갈등을 빚던 카르마트파가 자리잡았다. [2] 예멘의 순니파들은 대부분 샤피이파이다. [3] 오스만 제국 이전 맘루크 왕조가 안정적으로 관리하던 메카와 메디나 성지 순례 루트를 오스만 제국이 제대로 관리를 못할 경우 제국 내 무슬림 신민들이 동요하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그리고 오스만 제국이 예루살렘과 메카, 메디나를 영토로 둔 것은 오스만 제국의 최대 숙적인 사파비 제국과의 전쟁에서 결정적인 이점으로도 작용한 것도 무시할 수 없다. [4] 정치 역시 서구권 및 제1세계와의 외교도 있었으나 긴밀하진 않았으며 친서방 수준까진 아니었다. 물론 나중에 친서방 성향을 띄기도 했으나 완전히 친서방적으로 가진 않았다. [5] 이스라엘 키부츠도 비슷한 상황이다. 유태인들의 돈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했다. 물도 없던 척박한 곳에서 사해와 요르단강 물을 마구 끌어다 쓰고, 결국 튀르키예에게 물을 수입해오는 형편으로 무리하게 사막에서 키부츠를 운영하는 판국이다. 골란 고원이 있지만 거긴 시리아와 국경 분쟁으로 잘하면 폭격을 맞을 곳이라 그런데 현재 시리아도 시리아 내전 발발 이후에는 반군, IS들과 전쟁 싸우느라 이스라엘에 그리 큰 신경을 쓰지 못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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