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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광〉 1935년 12월호
1. 개요
한국의 단편소설. 작가는 김유정이다.2. 줄거리
주인공[1]은 데릴사위로, 예비(?) 장인님이 무려 3년 7개월 동안 새경[2] 없는 머슴으로 부려먹고 있다. 이 예비 장인님은 동네에서 욕필이라 불리며[3] 악명[4]이 자자하다. 주인공이 그 머슴살이를 하는 이유는, 장인님의 차녀 점순이를 아내로 맞이하기 위해서인데 장인님은 점순이의 키가 작은 것을 들먹이며 아직 덜 자랐다는 이유로 도통 성례(결혼)를 시켜 주지 않고, 내외를 운운하며 점순이를 잘 만나게 해 주지도 않는다
사실, 장인님의 이런 행동은 주인공의 노동력을 빼먹기 위한 것으로, 주인공 이전에 점순이 데릴사위를 2명 들였지만 다들 머슴질에 지쳐서 도망쳤다. 점순이의 언니 때는 그보다 더해서 무려 14명의 데릴사위를 들였다고. 주인공은 앞서의 2명에 비해 어리숙하여 미루면 미루는 대로 잘 속는데다 힘은 세서 농사일에 부려먹기 좋기[5] 때문에, 셋째딸이 자라서 데릴사위를 들일 수 있을 때까지 장인님은 온갖 수단을 다해서 주인공을 붙잡아 놓을 속셈이다. 주인공은 어리숙한 척하면서도 장인의 그 수단을 다 알고 있지만, 알고만 있을 뿐 어찌할 수 없으니 계속 속아주면서 눌러붙어 지낸다. 가끔 성례시켜 달라고 파업과 태업, 관청에 호소[6][7], 실력행사에도 나서지만 그때마다 장인님에게 번번히 처절하게 진압당할 뿐... 물론 장인 역시 무조건 큰소리 떵떵 칠 입장이 못 되니, 이 녀석이 일하지 않으면 한해 농사는 물론이고 여러 온갖 집안 집밖 잡일들을 망칠 게 뻔한지라 때론 때리고, 때론 호통도 치고, 때론 애걸복걸[8][9]도 하면서 최대한 오랫동안 집에 묶어놓고 농사일을 시키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웬일로 말짱하게 밥을 잘 이고 온[10] 점순이는 주인공에게 성례를 시켜 달라고 아버지를 조르라며 채근하고, 장인님이 거절하면 어쩌느냐고 하자 "수염을 잡아채지 뭘 어떡해, 이 바보야!"[11] 하고 화를 낸다. 흐뭇해진(?) 또는 "이 바보야!"라는 말에 절망한 주인공은 폭발하여 마침내 장인님에게 대들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이제껏 막상 대들어 본 적이 없었기에 일단 꾀병으로 시작하다가, 점순이가 엿보고 있다는 걸 알자 바보처럼 보일까 봐 적극적으로 나서서 장인님의 수염을 잡고 "이걸 까셀라부다!"하며 상남자임을 어필(…)한다. 이에 장인님이 지게 작대기로 어깨를 내리치자 주인공은 홧김에 장인님을 떠밀어서 굴려버리고 일어나면 다시 굴리기를 반복한다.
부려만 먹고 왜 성례는 안 시켜주냐 - 얘 키가 커야 성례를 시켜주지 하면서 이렇게 치고 받는 사이, 약이 오른 장인님은 주인공의 영 좋지 않은 곳을 움켜잡아서
그러나 편을 들어 주려니 여겼던 점순이는 그 모습을 보자마자 "에그, 이 망할 게 아버지 죽이네!"라며 장모님과 함께 달려들어서 뒷치기를 하고, 점순이의 배신(?)에 얼이 빠진 주인공은 장인님의 지게 작대기에 머리가 터지도록 개 맞듯이 피나오듯 얻어터지면서 이번에는 얄짤없이 쫓겨나리라 각오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을 내쫓으면 당장 농사지을 사람이 없는 장인님은, 주인공의 터진 머리를 손수 치료하고 궐련 담배도 찔러 주면서 "올 가을에는 꼭 성례시켜 주마, 나가서 콩밭이나 갈아라."고 다독거릴 수밖에 없으며 주인공은 그게 또 고마워서 "다시는 안 그러겠어유!"라며 콩밭을 갈러 나간다. 결국 소설 끝까지 혼례는 못 이룬다.
참고로 전개 구조상 후반부에서는 결말이 절정보다 앞에 있다. 윗 문단에서 얘기한 장인님의 거짓말과 그걸 또 순진하게 믿는 주인공의 대화가 먼저 나오고,[15] 그 뒤에 점순이의 배신(…)이 터진다. 정확히는 "그러나 '이때는' 그걸 모르고 잡아당겼다" 부터 해서 도치부분이 나온다. 주인공의 입장에서 도저히 이해 못 할 점순이의 행동을 강조하고, 사건이 마무리되어도 또 똑같은 사건이 반복될 것을 암시하기 위해 전개 구조를 살짝 뒤집은 것. 그래서 본문만 놓고 보면 주인공이 점순이의 행동에 넋이 나가서 멍하니 있는 장면으로 끝난다.
===# 전문 #===
봄·봄 김유정 “장인님! 인제 저…….” 내가 이렇게 뒤통수를 긁고, 나이가 찼으니 성례를 시켜줘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면 대답이 늘, “이 자식아! 성례구 뭐구 미처 자라야지!”하고 만다. 이 자라야 한다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아내가 될 점순이의 키 말이다. 내가 여기에 와서 돈 한 푼 안 받고 일하기를 삼 년 하고 꼬바기 일곱 달 동안을 했다. 그런데도 미처 못 자랐다니까 이 키는 언제야 자라는 겐지 짜장 영문 모른다. 일을 좀 더 잘해야 한다든지, 혹은 밥을 많이 먹는다고 노상 걱정이니까 좀 덜 먹어야 한다든지 하면 나도 얼마든지 할 말이 많다. 허지만 점순이가 아직 어리니까 더 자라야 한다는 여기에는 어째 볼 수 없이 고만 빙빙하고 만다. 이래서 나는 애최 계약이 잘못된 걸 알았다. 이태면 이태, 삼 년이면 삼 년, 기한을 딱 작정하고 일을 해야 원 할 것이다. 덮어놓고 딸이 자라는 대로 성례를 시켜 주마, 했으니 누가 늘 지키고 섰는 것도 아니고, 그 키가 언제 자라는지 알 수 있는가. 그리고 난 사람의 키가 무럭무럭 자라는 줄만 알았지 붙배기 키에 모로만 벌어지는 몸도 있는 것을 누가 알았으랴. 때가 되면 장인님이 어련하랴 싶어서 군소리 없이 꾸벅꾸벅 일만 해왔다. 그럼 말이다. 장인님이 제가 다 알아채서, “어참, 너 일 많이 했다. 고만 장가 들어라.” 하고 살림도 내주고 해야 나도 좋을 것이 아니냐. 시치미를 딱 떼고 도리어 그런 소리가 나올까 봐서 지레 펄펄 뛰고 이 야단이다. 명색이 좋아 데릴사위지 일하기에 싱겁기도 할뿐더러 이건 참 아무것도 아니다. 숙맥이 그걸 모르고 점순이의 키 자라기만 까맣게 기다리지 않았나. 언젠가는 하도 갑갑해서 자를 가지고 덤벼들어서 그 키를 한번 재볼까 했다. 마는 우리는 장인님이 내외를 해야 한다고 해서 마주 서 이야기도 한마디 하는 법 없다. 우물길에서 언제나 마주칠 적이면 겨우 눈어림으로 재보고 하는 것인데 그럴 적마다 나는 저만침 가서 ‘제에미 키두!’하고 논둑에다 침을 퉤, 뱉는다. 아무리 잘 봐야 내 겨드랑(다른 사람보다 좀 크긴 하지만) 밑에서 넘을락 말락 밤낮 요 모양이다. 개 돼지는 푹푹 크는데 왜 이리도 사람은 안 크는지, 한동안 머리가 아프도록 궁리도 해보았다. 아하, 물동이를 자꾸 이니까 뼉다귀가 움츠라드나보다, 하고 내가 넌즛넌즈시 그 물을 대신 길어도 주었다. 뿐만 아니라 나무를 하러 가면 서낭당에 돌을 올려 놓고 ‘점순이의 키 좀 크게 해줍소사. 그러면 담엔 떡 갖다 놓고 고사드립죠니까.’ 하고 치성도 한두 번 드린 것이 아니다. 어떻게 되먹은 킨지 이래도 막무가내니……. 그래 내 어저께 싸운 것이지 결코 장인님이 밉다든가 해서가 아니다. 모를 붓다가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까 또 싱겁다. 이 벼가 자라서 점순이가 먹고 좀 큰다면 모르지만 그렇지도 못한 걸 내 심어서 뭘하는 거냐. 해마다 앞으로 축 불거지는 장인님의 아랫배(가 너무 먹는 걸 모르고 냇병이라나, 그 배)를 불리기 위하여 심곤 조금도 싶지 않다. “아이구 배야!” 난 몰 붓다 말고 배를 쓰다듬으면서도 그대루 논둑으로 기어올랐다. 그리고 겨드랑에 꼈던 벼 담긴 키를 그냥 땅바닥에 털썩 떨어치며 나도 털썩 주저앉았다. 일이 암만 바빠도 나 배 아프면 고만이니까. 아픈 사람이 누가 일을 하느냐. 파릇파릇 돋아오른 풀 한숲을 뜯어 들고 다리의 거머리를 쑥쑥 문대며 장인님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논 가운데서 장인님도 이상한 눈을 해가지고 한참 날 노려보더니, “넌 이자식, 왜 또 이래 응?” “배가 좀 아파서유!”하고 풀 위에 슬며시 쓰러지니까 장인님은 약이 올랐다. 저도 논에서 철벙철벙 둑으로 올라오더니 잡은참 내 멱살을 움켜잡고 뺨을 치는 것이 아닌가…… “이자식아. 일 허다 말면 누굴 망해놀 속셈이냐. 이 대가릴 까놀자식?” 우리 장인님은 약이 오르면 이렇게 손버릇이 아주 못됐다. 또 사위에게 이자식 저자식 하는 이놈의 장인님은 어디 있느냐. 오죽해야 우리 동리에서 누굴 물론하고 그에게 욕을 안 먹는 사람은 명이 짜르다 한다. 조그만 아이들까지도 그를 돌아세놓고 욕필이(본 이름이 봉필이니까) 욕필이, 하고 손가락질을 할 만치 두루 인심을 잃었다. 허나 인심을 정말 잃었다면 욕보다 읍의 배참봉댁 마름으로 더 잃었다. 번히 마름이란 욕 잘하고, 사람 잘 치고, 그리고 생김생기길 호박개같애야 쓰는 거지만 장인님은 외양이 똑 됐다. 장인에게 닭마리나 좀 보내지 않는다든가 애벌논 때 품을 좀 안 준다든가 하면 그해 가을에는 영락없이 땅이 뚝뚝 떨어진다. 그러면 미리부터 돈도 먹고 술도 먹이고 안달재신으로 돌아치던 놈이 그 땅을 슬쩍 돌라 안는다. 이바람에 장인님집 외양간에는 눈깔 커다란 황소 한놈이 절로 엉금엉금 기어들고, 동리 사람들은 그 욕을 다 먹어가면서도 그래도 굽실굽실 하는 게 아닌가…… 그러나 내겐 장인님이 감히 큰소리할 계제가 못된다. 뒷생각은 못하고 뺨 한 개를 딱 때려놓고는 장인님은 무색해서 덤덤히 쓴 침만 삼킨다. 난 그속을 퍽 잘 안다. 조금 있으면 갈도 꺾어야 하고 모도 내야 하고, 한참 바쁜 때인데 나 일 안하고 우리집으로 그냥 가면 고만이니까. 작년 이맘때도 트집을 좀 하니까 늦잠잔다구 돌멩이를 집어던져서 자는 놈의 발목을 삐게 해놨다. 사날씩이나 건숭 끙끙, 앓았더니 종당에는 거반 울상이 되지 않았는가…… “예, 그만 일어나 일 좀 해라. 그래야 올 갈에 벼 잘되면 너 장가 들지 않니.” 그래 귀가 번쩍 띄어서 그날로 일어나서 남이 이틀 품들일 논을 혼자 삶아 놓으니까 장인님도 눈깔이 커다랗게 놀랐다. 그럼 정말로 가을에 와서 혼인을 시켜 줘야 온 경우가 옳지 않겠나, 볏섬을 척척 들여쌓아도 다른 소리는 없고 물동이를 이고 들어오는 점순이를 담배통으로 가리키며, “이 자식아, 미처 커야지 조걸 무슨 혼인을 한다구 그러니 원!”하고 남 낯짝만 붉혀 주고 고만이다. 골김에 그저 이놈의 장인님, 하고 댓돌에다 메꼰코 우리 고향으로 내뺄까 하다가 꾹꾹 참고 말았다. 참말이지 난 이꼴하고는 집으로 차마 못 간다. 장가를 들러갔다가 오죽 못났어야 그대로 쫓겨왔느냐고 손가락질을 받을 테니까……. 논둑에서 벌떡 일어나 한풀 죽은 장인님 앞으로 다가서며, “난 갈 테야유. 그동안 사경 쳐내슈.” “너 사위로 왔지 어디 머슴살러 왔니?” “그러면 얼찐 성례를 해줘야 안하지유. 밤낮 부려만 먹구 해준다, 해준다……” “글쎄, 내가 안하는 거냐, 그년이 안 크니까.”하고 어름어름 담배만 담으면서 늘 하는 소리를 또 늘어놓는다. 이렇게 따져나가면 언제든지 늘 나만 밑지고 만다. 이번엔 안 된다, 하고 대뜸 구장님한테로 판단 가자고 소맷자락을 내끌었다. “아, 이자식이 왜 이래 어른을.” 안 간다구 뻗디디구 이렇게 호령은 제맘대로 하지만 장인님 제가 내 기운은 못 당한다. 막 부려먹고 딸은 안 주고, 게다 땅땅 치는 건 다 뭐야……. 그러나 내 사실 참 장인님이 미워서 그런 것은 아니다. 그 전날, 왜 내가 새고 개 맞은 봉우리 화전밭을 혼자 갈고 있지 않았느냐. 밭가생이로 돌 적마다 야릇한 꽃내가 물컥물컥 코를 찌르고 머리 위에서 벌들은 가끔 붕, 붕, 소리를 친다. 바위 틈에서 샘물 소리밖에 안 들리는 산골짜기니까 맑은 하늘의 봄볕은 이불 속같이 따스하고 꼭 꿈꾸는 것 같다. 나는 몸이 나른하고 몸살(병을 아직 모르지만)이 날려구 그러는지 가슴이 울렁울렁하고 이랬다. “어러이! 말이! 맘 마 마……” 이렇게 노래를 하며 소를 부리면 여느때 같으면 어깨가 으쓱으쓱한다. 웬일인지 밭을 반도 갈지 않아서 온몸이 맥이 풀리고 대구 짜증만 난다. 공연히 소만 들입다 두들기며…… “안야! 안야! 이 망할 자식의 소(장인님의 소니까) 대리를 꺾어들라.” 그러나 내 속은 정말 안야 때문이 아니라 점심을 이고 온 점순이의 키를 보고 울화가 났던 것이다. 점순이는 뭐 그리 썩 예쁜 계집애는 못된다. 그렇다구 또 개떡이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고, 꼭 내 아내가 돼야 할 만치 그저 툽툽하게 생긴 얼굴이다. 나보다 십년이 아래니까 올해 열여섯인데 몸은 남보다 두 살이나 덜 자랐다. 남은 잘도 훤칠히들 크건만 이건 위아래가 뭉툭한 것이 내 눈에는 헐없이 감참외 같다. 참외 중에는 감참외가 제일 맛좋고 예쁘니까 말이다. 둥글고 커다란 눈은 서글서글하니 좋고 좀 지쳐 찢어졌지만 입은 밥술이나 톡톡히 먹음직하니 좋다. 아따, 밥만 많이 먹게 되면 팔자는 고만 아니냐. 헌데 한 가지 과가 있다면 가끔가다 몸이(장인님이 이걸 채신이 없이 들까분다고 하지만)너무 빨리빨리 논다. 그래서 밥을 나르다가 때없이 풀밭에서 깨빡을 쳐서 흙투성이 밥을 곧잘 먹인다. 안 먹으면 무안해 할까봐서 이걸 씹고 앉았느라면 으적으적 소리만 나고 돌을 먹는 겐지 밥을 먹는 겐지……. 그러나 이날은 웬일인지 성한 밥채루 밭머리에 곱게 내려 놓았다. 그리고 또 내외를 해야 하니까 저만큼 떨어져 이쪽으로 등을 향하고 웅크리고 앉아서 그릇나기를 기다린다. 내가 다 먹고 물러섰을 때, 그릇을 챙기는데 난 깜짝 놀라지 않았느냐. 고개를 푹 숙이고 밥함지에 그릇을 포개면서 날더러 들으라는지, 혹은 제 소린지, "밤낮 일만 하다 말 텐가!" 하고 혼자서 쫑알거린다. 고대 잘 내외하다가 이게 무슨 소린가, 하고 난 정신이 얼떨떨했다. 그러면서도 한편 무슨 좋은 수가 있나 없는가 싶어서 나도 공중을 대고 혼잣말로, "그럼 어떡해?" 하니까, "성례시켜 달라지 뭘 어떡해." 하고 되알지게 쏘아붙이고 얼굴이 빨개져서 산으로 그저 도망친다. 나는 잠시 동안 어떻게 되는 심판인지 맥을 몰라서 그 뒷모양만 덤덤히 바라보았다. 봄이 되면 온갖 초목이 물이 오르고 싹이 트고 한다. 사람도 아마 그런가 보다, 하고 며칠내에 부쩍 (속으로) 자란 듯싶은 점순이가 여간 반가운 것이 아니다. 이런 걸 멀쩡하게 아직 어리다구 하니까……. 우리가 구장님을 찾아갔을 때 그는 싸리문 밖에 있는 돼지우리에서 죽을 퍼주고 있었다. 서울엘 좀 갔다오더니 사람은 점잖아야 한다구 웃쇰이(얼른 보면 지붕 위에 앉은 제비꼬랑지 같다) 양쪽으로 뾰죽히 삐치고 그걸 애헴, 하고 늘 쓰담는 손버릇이 있다. 우리를 멀뚱히 쳐다보고 미리 알아챘는지, "왜 일들 허다 말구 그래?"하더니 손을 올려서 그 애헴을 한번 후딱 했다. "구장님! 우리 장인님과 츰에 계약하기를……" 먼저 덤비는 장인님을 뒤로 떠다밀고 내가 허둥지둥 달려들다가 가만히 생각하고, '아니 우리 빙장님과 츰에.'하고 첫번부터 다시 말을 고쳤다. 장인님은 빙장님, 해야 좋아하고 밖에 나와서 장인님, 하면 괜스리 골을 내려고 든다. 뱀두 뱀이래야 좋으냐구 창피스러우니 남 듣는 데는 제발 빙장님, 빙모님, 하라구 일상 당조심을 받아오면서 난 그것두 자꾸 잊는다. 당장두 장인님, 하나 옆에서 내 발등을 꾹 밟고 곁눈질을 흘기는 바람에야 겨우 알았지만…… 구장님도 내 이야기를 자세히 듣더니 퍽 딱한 모양이었다. 하기야 구장님뿐만 아니라 누구든지 다 그럴 게다. 길게 길러둔 새끼손톱으로 코를 후벼서 저리 탁 튀기며, "그럼 봉필씨! 얼른 성례를 시켜 주구려, 그렇게까지 제가 하구싶다는 걸……" 하고 내 짐작대로 말했다. 그러나 이말에 장인님이 삿대질로 눈을 부라리고, "아 성례구 뭐구 계집애년이 미처 자라야 할 게 아닌가?" 하니까 고만 멀쑤룩해져서 입맛만 쩍쩍 다실 뿐이 아닌가. "그것두 그래!" "그래, 거진 사년 동안에도 안 자랐더니 그 킨 은제 자라지유"다 그만두구 사경 내슈……" "글쎄, 이자식아! 내가 크질 말라구 그랬니. 왜 날 보구 떼냐?" "빙모님은 참새만한 것이 그럼 어떻게 앨 낳지유?(사실 빙모님은점순이보다도 귓배기가 작다)" 장인님은 이말을 듣고 껄껄 웃더니(그러나 암만 해두 돌 씹은 상이다) 코를 푸는 척하고 날 은근히 곯리려고 팔꿈치로 옆 갈비께를 퍽 치는 것이다. 더럽다. 나두 종아리의 파리를 쫓는 척하고 허리를 구부리며 그 궁둥이를 콱 떼밀었다. 장인님은 앞으로 우찔근하고 싸리문께로 쓰러질 듯하다 몸을 바로 고치더니 눈총을 몹시 쏘았다. 이런 쌍년의 자식, 하곤 싶으나 남의 앞이라니 차마 못하고 섰는 그 꼴이 보기에 퍽 쟁그러웠다. 그러나 이밖에는 별반 신통한 귀정을 얻지 못하고 도로 논으로 돌아와서 모를 부었다. 왜냐면 장인님이 뭐라구 귓속말로 수군수군하고 간 뒤다. 구장님이 날 위해서 조용히 데리고 아래와 같이 일러주었기 때문이다(뭉태의 말은 구장님이 장인님에게 땅 두 마지기 얻어부치니까 그래 꾀엿다고 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 않는다) "자네 말두 하기야 옳지, 암 나이 찼으니 아들이 급하다는 게 잘못된 말은 아니야. 허지만 농사가 한층 바쁜 때 일을 안한다든가집으로 달아 난다든가 하면 손해죄루 그것두 징역을 가거든!(여기에 그만 정신이 번쩍 났다) 왜 요전에 삼포말서 산에 불좀 놓았다구 징역간 거 못 봤나. 제 산에 불을 놓아도 징역을 가는 이땐데 남의 농사를 버려두니 죄가 얼마나 더 중한가. 그리고 자넨 정장을(사경 받으러 정장 가겠다 했다) 간대지만 그러면 괜스리 죄를 들쓰고 들어가는 걸세. 또 결혼두 그렇지. 법률에 성년이란 게 있는데 스물하나가 돼야지 비로소 결혼을 할 수가 있는걸세. 자넨 물론 아들이 늦을 걸 염려하지만 점순이루 말하면 이제 겨우 열여섯이 아닌가. 그렇지만 아까 빙장님의 말씀이 올 갈에는 열일을 제치고라두 성례를 시켜주겠다 하시니 좀 고마울겐가. 빨리 가서 모붓든 거나 마저 붓게, 군소리 말구 어서 가." 그래서 오늘 아침까지 끽소리 없이 왔다. 장인님과 내가 싸운 것은 지금 생각하면 전혀 뜻밖의 일이라 안할 수 없다. 장인님으로 말하면 요즈막 작인들에게 행세를 좀 하고 싶다고 해서, "돈 있으면 양반이지 별게 있느냐!" 하고 일부러 아랫배를 쑥 내밀고 걸음도 뒤틀리게 걷고 하는 이판이다. 이까진 나쯤 두들기다 남의 땅을 가지고 모처럼 닦아놓았던 가문을 망친다든가 할 어른이 아니다. 또 나로 논지면 아무쪼록 잘 봬서 점순이에게 얼른 장가를 들어야 하지 않느냐……. 이렇게 말하자면 결국 어젯밤 뭉태네 집에 마슬간 것이 썩 나빴다. 낮에 구장님 앞에서 장인님과 내가 싸운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대구 빈정거리는 것이 아닌가. "그래 맞구두 그걸 가만 둬?" "그럼 어떡허니?" "임마, 봉필일 모판에다 거꾸로 박아놓지 뭘 어떡해?"하고 괜히 내 대신 화를 내가지고 주먹질을 하다 등잔까지 쳤다. 놈이 번히 괄괄은 하지만 그래놓고 날더러 석유값을 물라구 막 찌다우를 붙는다. 난 어안이 벙벙해서 잠자코 앉았으니까 저만 연신 지껄이는 소리가, "밤낮 일만 해주구 있을 테냐?" "영득이는 일년을 살구두 장갈 들었는데 넌 사년이나 살구두 더살아야 해?" "네가 세번째 사윈줄이나 아니? 세번째 사위" "남의 일이라두 분하다. 이자식아, 우물에 가 빠져 죽어." 나중에는 겨우 손톱으로 목을 따라고까지 하고, 제 아들같이 함부로 훅닥이었다. 별의별 소리를 다해서 그대로 옮길 수는 없으나 그 줄거리는 이렇다……. 우리 장인님 딸이 셋이 있는데 맏딸은 재작년 가을에 시집을 갔다. 정말은 시집을 간 것이 아니라 그 딸도 데릴사위를 해가지고 있다가 내보냈다. 그런데 딸이 열 살 때부터 열아홉 즉 십년 동안에 데릴사위를 갈아들이기를, 동리에선 사위부자라고 이름이 났지마는 열네 놈이란 참 너무 많다. 장인님이 아들은 없고 딸만 있는 고로 그담 딸을 데릴사위를 해올 때까지는 부려먹지 않으면 안된다. 물론 머슴을 두면 좋지만 그건 돈이 드니까, 일 잘하는 놈을 고르느라고 연방 바꿔들였다. 또 한편 놈들이 욕만 줄창 퍼붓고 심히도 부려먹으니까 밸이 상해서 달아나기도 했겠지, 점순이는 둘째딸인데 내가 일테면 그 세번째 데릴사위로 들어온 셈이다. 내 담으로 네번째 놈이 들어올 것을 내가 일도 잘하고 그리고 사람이 좀 어수록하니까 장인님이 잔뜩 붙들고 놓질 않는다. 세째딸이 인제 여섯살, 적어두 열 살은 돼야 데릴사위를 할 테므로 그 동안은 죽도록 부려먹어야 된다. 그러니 인제는 속 좀 채리고 장가를 들여달라구 떼를 쓰고 나자빠져라, 이것이다. 나는 겉으로 엉, 엉, 하며 귓등으로 들었다. 뭉태는 땅을 얻어부치다가 떨어진 뒤로는 장인님만 보면 공연히 못 먹어서 으릉거린다. 그것도 장인님이 저 달라고 할 적에 제 집에서 위한다는 그 감투(예전에 원님이 쓰던 것이라나, 옆구리에 뽕뽕 좀 먹은 걸레)를 선뜻 주었더면 그럴 리도 없었던 걸……. 그러나 나는 뭉태란 놈의 말을 전수히 곧이듣지 않았다. 꼭 곧이들었다면 간밤에 와서 장인님과 싸웠지 무사히 있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러면 딸에게까지 인심을 잃은 장인님이 혼자 나빴다. 실토이지 나는 점순이가 아침상을 가지고 나올 때까지는 오늘은 또 얼마나 밥을 담았나, 하고 이것만 생각했다. 상에는 된장찌개하고 간장 한 종지, 조밥 한 그릇, 그리고 밥보다 더 수부룩하게 담은 산나물이 한 대접, 이렇다. 나물은 점순이가 틈틈이 해오니까 두 대접이고 네 대접이고 멋대로 먹어도 좋으나 밥은 장인님이 한 사발 외엔 더 주지 말라고 해서 안된다. 그런데 점순이가 그 상을 내 앞에 내려 놓으며 제 말로 지껄이는 소리가, "구장님한테 갔다 그냥 온담 그래!"하고 엊그제 산에서와 같이 되우 쫑알거린다. 딴은 내가 더 단단히 덤비지 않고 만 것이 좀 어리석었다, 속으로 그랬다. 나도 저쪽 벽을 향하여 외면하면서 내 말로, "안된다는 걸 그럼 어떡헌담!"하니까, "쇰을 잡아채지 그냥 둬, 이 바보야!" 하고 또 얼굴이 빨개지면서 성을 내며 안으로 샐죽하니 튀들어가지 않느냐, 이때 아무도 본 사람이 없었게 망정이지 보았다면 내 얼굴이 에미 잃은 황새새끼처럼 가여 웁다 했을 것이다. 사실 이때만치 슬펐던 일이 또 있었는지 모른다. 다른 사람은 암만 못생겼다 해두 괜찮지만 내 아내 될 점순이가 병신으로 본다면 참 신세는 따분하다. 밥을 먹은 뒤 지게를 지고 일터로 갈려 하다 도로 벗어던지고 바깥 마당 공석 위에 드러누워서 나는 차라리 죽느니만 같지 못하다 생각했다. 내가 일 안하면 장인님 저는 나이가 먹어 못하고 결국 농사 못 짓고 만다. 뒷짐으로 트림을 꿀꺽하고 대문 밖으로 나오다 날 보고서, "이자식아, 왜 또 이러니." "관격이 났어유, 아이구 배야!" "기껀 밥 처먹구 무슨 관격이야, 남의 농사 버려주면 이자식아 징역간다 봐라!" "가두 좋아유, 아이구 배야!" 참말 난 일 안해서 징역 가도 좋다 생각했다. 일후 아들을 낳아도 그 앞에서 바보, 바보, 이렇게 별명을 들을 테니까 오늘은 열쪽이 난대도 결정을 내고 싶었다. 장인님이 일어나라고 해도 내가 안 일어나니까 눈에 독이 올라서 저편으로 힝하게 가더니 지게막대기를 들고 왔다. 그리고 그걸로 내 허리를 마치 돌 떠넘기듯이 쿡 찍어서 넘기고 넘기고 했다. 밥을 잔뜩 먹어 딱딱한 배가 그럴 적마다 퉁겨지면서 밸창이 꼿꼿한 것이 여간 켕기지 않았다. 그래도 안 일어나니까 이번에는 배를 지게 막대기로 위에서 쿡쿡 찌르고 발길로 옆구리를 차고 했다. 장인님은 원체 심청이 궂어서 그러지만 나도 저만 못하지 않게 배를 채었다. 아픈 것을 눈을 꽉 감고 넌 해라 난 재밌단 듯이 있었으나 볼기짝을 후려갈길 적에는 나도 모르는 결에 벌떡 일어나서 그 수염을 잡아챘다. 마는 내 골이 난 것이 아니라 정말은 아까부터 벽 뒤 울타리 구멍으로 점순이가 우리들의 꼴을 몰래 엿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말 한마디 톡톡히 못한다고 바라보는데 매까지 잠자코 맞는 걸 보면 짜장 바보로 알 게 아닌가. 또 점순이도 미워하는 이까짓 놈의 장인님하곤 아무것도 안되니까 막 때려도 좋지만 사정 보아서 수염만 채고(제 원대로 했으니까 이때 점순이는 퍽 기뻤겠지) 저기까지 잘 들리도록 '이걸 까셀라부다!'하고 소리를 쳤다. 장인님은 더 약이 바짝 올라서 잡은 참 지게막대기로 내 어깨를 그냥 내려갈겼다. 정신이 다 아찔하다.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그때엔 나도 온몸에 약이 올랐다. 이녀석의 장인님을, 하고 눈에서 불이 퍽 나서 그 아래 밭 있는 넝알로 그대로 떠밀어 굴려버렸다. "부려만 먹구 왜 성례 안하지유!" 나는 이렇게 호령했다. 허지만 장인님이 선뜻 오냐 낼이라두 성례시켜 주마, 했으면 나도 성가신 걸 그만두었을지 모른다. 나야 이러면 때린 건 아니니까 나중에 장인 쳤다는 누명도 안 들을 터이고 얼마든지 해도 좋다. 한번은 장인님이 헐떡헐떡 기어서 올라오더니 내 바짓가랭이를 요렇게 노리고서 단박 움켜잡고 매달렸다. 악, 소리를 치고 나는 그만 세상이 다 팽그르 도는 것이, "빙장님! 빙장님! 빙장님!" "이자식! 잡아먹어라, 잡아먹어!" "아! 아! 할아버지! 살려줍쇼, 할아버지!"하고 두팔을 허둥지둥 내절 적에는 이마에 진땀이 쭉 내솟고 인젠 참으로 죽나보다 했다. 그래두 장인님은 놓질 않더니 내가 기어이 땅바닥에 쓰러져서 거진 까무러치게 되니까 놓는다. 더럽다, 더럽다. 이게 장인님인가? 나는 한참을 못 일어나고 쩔쩔맸다. 그러나 얼굴을 드니(눈엔 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사지가 부르르 떨리면서 나도 엉금엉금 기어가 장인님의 바짓가랭이를 꽉 움키고 잡아나꿨다. 내가 머리가 터지도록 매를 얻어맞은 것이 이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가 또한 우리 장인님이 유달리 착한 곳이다. 여느 사람이면 사경을 주어서라도 당장 내어쫓았지, 터진 머리를 볼솜으로 손수 지져 주고, 호주머니에 희연 한 봉을 넣어 주고 그리고, "올 갈엔 꼭 성례를 시켜 주마. 암만 말구 가서 뒷골의 콩밭이나얼른 갈아라." 하고 등을 뚜덕여 줄 사람이 누구냐. 나는 장인님이 너무나 고마워서 어느덧 눈물까지 났다. 점순이를 남기고 인젠 내쫓기려니 하다 뜻밖의 말을 듣고, "빙장님! 인제 다시는 안그러겠어유!" 이렇게 맹세를 하며 부랴부랴 지게를 지고 일터로 갔다. 그러나 이때는 그걸 모르고 장인님을 원수로만 여겨서 잔뜩 잡아당겼다. "아! 아! 이놈아! 놔라, 놔." 장인님은 헷손질을 하며 솔개미에 챈 닭의 소리를 연해 질렀다. 놓긴 왜, 이왕이면 호되게 혼을 내주리라 생각하고 짖궂이 더 댕겼다. 마는 장인님이 땅에 쓰러져서 눈에 눈물이 피잉 도는 것을 알고 좀 겁도 났다. "할아버지! 놔라, 놔, 놔, 놔, 놔라." 그래도 안되니까, "애 점순아! 점순아!" 이 악장에 안에 있었던 장모님과 점순이가 헐레벌떡하고 단숨에 뛰어 나왔다. 나의 생각에 장모님은 제 남편이니까 역성을 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점순이는 내 편을 들어서 속으로 고수해 하겠지---. 대체 이게 웬 속인지(지금까지도 난 영문을 모른다) 아버질 혼내 주기는 제가 내래 놓고 이제 와서는 달겨들며, "에그머니! 이 망할 게 아버지 죽이네!" 하고, 귀를 뒤로 잡아댕기며 마냥 우는 것이 아니냐. 그만 여기에 기운이 탁 꺾이어 나는 얼빠진 등신이 되고 말았다. 장모님도 덤벼들어 한쪽 귀마저 뒤로 잡아채면서 또 우는 것이다. 이렇게 꼼짝도 못하게 해놓고 장인님은 지게막대기를 들어서 사뭇 내려조졌다. 그러나 나는 구태여 피하려지도 않고 암만해도 그 속 알 수 없는 점순이의 얼굴만 멀거니 들여다보았다. "이자식! 장인 입에서 할아버지 소리가 나오도록 해?" |
3. 출판·수록
김유정이 1935년 잡지 〈조광〉 12월호에 발표했다.7차 교육과정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수록되어 있었고, 검정 교과서 체제로 바뀐 8차 교육과정 이후 교과서에도 꾸준히 실리는 편이라 대부분의 학생들이 내용을 알고 있다. 간혹 비슷한 배경에 여주인공 이름이 똑같은 같은 작가의 다른 소설과 내용을 헷갈리는 사람도 나온다.[16]
2016학년도 평가원 6월 모의고사 국어 영역에 출제되었다.[17]
공무원 시험에서는 단골 출제되는 지문중 하나로 2018년 9급 국가직에 출제된 적이 있다.
4. 특징
소설 제목에는 다양한 해석이 있다. 계절적 배경인 ' 봄'을 '보다'라는 해석이 있고, 작품의 계절적 배경인 '봄'과, 사랑과 청춘이 마음에 다가오는 시기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봄'이라는 해석도 있다. 또, 점순이를 사랑하는 '나의 봄'과 '나'에 대한 사랑의 태도를 보이는 '그녀의 봄'이라는 해석이 있다. 그 외에도, 작품의 결말부에서 장인이 한 '내년 봄엔 성례시켜 주마'라는 말에 주목해서, 내년 봄에도 그 다음번 봄에도 장인이 계속 '다음 봄, 다음 봄'하며 성례를 미룰 것이라는 것을 암시해 매해 봄마다 희망과 절망이 반복한다는 해석도 있다.보통 고전소설 하면 뜻도 알아듣기 힘들고 재미없다는 인식이 강하지만, 이 소설은 몇 가지 고어(古語)를 사용하는 문장이나 사투리를 제외하면 가볍고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내용도 복잡한 내용 없이 두 남녀의 풋풋한 사랑과,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골때리는 이야기와 상황을 담고 있어 보다보면 묘한 실소를 짓게 되는 작품.
시대를 앞서간 츤데레인 점순이의 행동이 감상 포인트.[18] 전체적으로 토속적이고 코믹한 내용 때문에 만화나 영화로 각색되기도 했는데, 상당수의 미디어 믹스에선 결국, 결혼에 성공하는 해피 엔딩으로 각색되곤 한다. 『꿈이 있는 장』에서 출판한 만화판에선 마지막에 주인공의 친구인 뭉태가 노름한 게 순사에게 걸려서 땅을 뺏기고 쫓겨난 것에 대한 원한으로 낫 들고 욕필이를 진짜로 죽이려 들다가 주인공한테 저지를 당하고,[19] 결국 욕심쟁이 장인도 생명의 은인이 된 주인공한테 딸을 허락해 준다. 1983년 TV 문학관판에서도 결혼에 성공하는데 - 그 이유가 총각은 징용하고 처녀는 정신대로 모집한다는 소리에 덜컥 겁이 나서 일찍 결혼시키려 한 것... 뭐, 단순히 그것 때문만은 아니지만.[20]
이외에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을 역임하기도 한 작곡가 이건용이 소규모 오페라로 만들기도 했다. 2008년 KBS TV 문학관에서는 '봄, 봄봄'이라는 제목으로 단편 드라마화했다. 배경을 현대의 제주도로 바꾸고, 드라마 설정도 어린 시절 사고로 부모를 잃고 아버지 친구 집에서 자란 주인공이 그 집 농장에서 일하면서 그 집 딸을 짝사랑하는 것으로 설정을 바꾸었다. 주인공과 농장 주인인 아버지 친구(원작의 장인)의 투닥거림은 여전하지만 아버지 친구의 딸(원작의 점순이)의 츤데레 행위는 볼 수 없다는 점이 아쉽다. 하지만 원작의 해학을 잘 살렸고, 아름다운 제주도 농장의 풍경으로 눈을 시원하게 해주는 작품이니 한 번 볼 만하다.
1인칭 주인공 시점인 소설로,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다.[21] 다른 소설과 크게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역순행적 구성(역전적 사건 구성)이다. 무슨 구성이나면 "절정" 부분 속에 결말이 삽입되어 있어, 기존 소설들의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 형태가 아니라 뚜렷하게 구분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런 구성을 통해 장인과 데릴사위의 싸움 장면의 희극적인 부분을 극대화함으로써 사건의 긴장감과 해학성을 더욱 부각시켰다. 이런 특이한 구성이 봄·봄이 좋은 평가를 받는 이유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참고로 실레마을의 실존 인물들에게서 벌어진 실제 이야기로 쓴 소설이라고 한다.
동백꽃(소설)과 겹치는 점이 많다. 특히 여주인공인 점순이의 이름이 같은데다 캐릭터성도 츤데레로 겹치고, 쑥맥에 눈새인 주인공이 등장하며, 점순이의 아버지는 둘 다 마름이고, 시간적·공간적 배경까지 같기 때문에 서로 헷갈리기 쉽다. 설정이 똑같은 캐릭터에 내용만 조금 다른 수준.[22] 동백꽃은 봄봄의 2탄이라 봐도 무방하다. 실제로 두 소설이 발표된 시기는 겨우 5달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봄·봄 1935년 12월, 동백꽃 1936년 5월)
작중에서 장인어른은 본인을 빙장님이라 부르라고 옆에서 딴지를 건다. 그러나 사실 빙장이라는 호칭은 남의 장인을 높여 부르는 호칭이지 본인의 장인어른을 부르는 호칭이 절대 아니다. 마치 아들이 자기 아버지를 부를 때 춘부장이라고 부르는 꼴(...). 그래서 그렇게 보면 잘 알지도 못하는 한자어를 사용함으로써 장인의 허세부림을 알 수 있는 부분. 주인공으로 하여금 자신을 '남의 장인'이라고 부르게 하는 것이니 결국 주인공에게 딸을 시집보내지 않을 것이라는 암시라는 해석을 하는 사람도 있다.
다만 '어리숙한데다 일 잘하는 주인공을 볼 때 장인 입장에서 부려먹을 때까지 부려먹다가 결혼시키는 게 나름 최선의 선택이라 결혼을 시켜주기는 할 것이다'라는 해석도 있는데, 당시 시대는 딸을 20살 가까이 처녀로 묵혀두는 건 상상하기 힘든 일인 데다가 점순이가 다른 더 좋은 혼처가 나올 만한 상황도 아니라면 저만한 남자가 없기는 하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일리는 있는 해석. 점순이가 주인공에게 마음이 없지도 않은데다[23] 주인공이 일 잘하고, 어리숙해서 적당하게 구워삶아 놓으면 도망도 안 가고 점순이의 여동생이 적당히 커서 다른 호구를 데릴사위랍시고 들일 때까지 버틸만한 위인이다 보면, 오히려 둘이 결혼에 성공하는 쪽이 더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참고로, 이 작품의 바탕이 된 실화에서는 둘이 결혼하는 데 성공하였다.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주인공의 모티브는 최순일이고, 봉필 영감의 모티브는 김종필이다. 실제로 소설 속 점순이의 모티브가 된 인물은 김시만으로, 딸인 최금자는 자신의 가족들이 소설 속에서 애꿎게 그려진 것이 속상하기도 했지만 사람들 가슴 속에 지워지지 않는 인물로 남게 된 것이 한편으로 흐뭇하기도 하다며 웃었다고도 하였다. 관련 기사
5. 등장인물
- 나
- 점순이(봄봄)
- 봉필 영감
6. 미디어 믹스
6.1. 영화
1969년 김수용 감독이 해당 작품을 영화 《 봄·봄》으로 만들었다.6.2. 드라마
1979년 4월 20일자 KBS-TV <문예극장>에서 처음 드라마화됐다. 이때 제작진은 최경식 각색, 김충식 연출로 구성됐다.KBS1 TV 문학관에서 1983년, 2008년에 두 차례 해당 작품을 영상화했으며, 1983년판은 최경식 극본/김충식 연출, 2008년판은 이수인 극본/이건준 연출로 각각 구성됐다. 1993년 5월 7일자 MBC 베스트극장에서도 영상화됐으며, 각색은 김혜린, 연출은 정운현 PD가 각각 맡았다.
6.3. 애니메이션
자세한 내용은 봄·봄/애니메이션 문서 참고하십시오.7. 관련 문서
[1]
1983년
TV 문학관에서는 '만복'이란 이름으로 나온다.
[2]
머슴에게 주는 일삯을 말한다.
[3]
본명은 봉필인데 욕 잘한다고 욕필이라 부른다.
[4]
첫째로는
마름이라는 지위를 이용한 동네 사람 착취하기로, 둘째로는 욕 잘 하기로.
[5]
마음먹고 나서면 남들이 사흘 일할
모내기를 하루만에 마칠 정도다.
[6]
그러나 구장이 장인님을 통해 밭을 얻어 부치고 있기 때문에 결국 헛수고였다. 구장도 그냥 안 된다고는 할 수 없으니 법에서 허락한 나이가 아니라며 어기면 징역이라고 겁을 주고 그래도 나이가 차면 결혼할 수 있다면서 달랜다.
[7]
이때 주인공은 점순이 키가 자라야 결혼할 수 있다는 장인에게 빙모님(=장모님)은 점순이보다 귓배기 하나가 더 작은데 그 분은 어떻게 낳았냐며 묵직한 팩트를 날리니, 장인은 헛웃음을 치다가 코를 푸는 척 하면서 주인공의 옆구리를 찌른다. 물론 주인공 역시 파리를 쫓는 척 하면서 장인의 엉덩이를 걷어찬다.
[8]
이때의 레퍼토리는 이번에는 확실히 결혼시켜주겠다고 하는 것이다.
[9]
시공사에서 나온 '만화로 보는 한국단편문학선집' 와 주니어김영사에서 나온 '만화 한국 대표 문학선' 중
김동화가 그린 봄봄에서 잘 표현된다. 늦잠 잔다고 장인이 주인공에게 돌을 던져서 다리를 삐자 사나흘을 끙끙 앓으니, 처음에는 험한 얼굴로 윽박지르던 장인이 결국 울상이 되어서 좀 일어나라며 일해서 가을에 수확이 잘 되어야 너 장가도 들지 않겠냐며 꼬드긴다.
[10]
점순이의 특기가 밥 나르다 엎어뜨려 모래밥 먹이기.
[11]
이 당시에는 비유적인 표현이 관용됐을 시기다. 또한, 인권이 지금보다 희박한 시절이기 때문에 이런 표현이 한참 수용될 수 있었던 시기다.
[12]
비명을 지르길, "빙장님!! 할아버지!!"
[13]
역시 비명을 지르길, "이놈아 놔라 놔! 아! 아! 할아버지!" 이 시절 할아버지는 깍듯히 모셔야할 귀한 분으로 여겨졌기에, 상대를 할아버지라 부르는 것은 상대방을 그 정도로 대우해 준다는 의미이다. 즉, 정말로 자기 조부를 찾는게 아니라 방금전까지 까버릴까보다, 요놈새끼 하면서 싸우던 두 사람이 고환을 붙잡히자마자 '놔라! 놔! 아이고, 아이고! 선생님! 봐주십시오!' 하는 장면인 것.
[14]
춘천
김유정문학촌 야외정원에 이 명장면(?)을 재현한 캐릭터 조형물이 있다.
[15]
하지만 워낙 열린 결말로 끝난 작품이기 때문에 진짜 혼례를 시켜주겠다고 약속했다라고 해석해도 거의 무방하다. 장인어른 수염이랑 부랄도 잡았는데 솔직히 이번에도 안시켜주면 진짜 뭔일 저지를지 모르지(...)
[16]
동백꽃(소설)의 점순이의 딸이 생존 중이라는
영상이 있는데, 사실은
봄봄의 점순이의 딸이라고 한다.
[17]
정확히 말하자면 A형. B형에는 최일남의 흐르는 북이
수능특강 지문에서 연계되어 출제되었다.
[18]
사실 장인님의 마을사람에게 하는 고압적인 자세의 츤데레 행위가 더욱 강하다.
[19]
사실 저지한 건 점순이 여동생 춘희. 얼굴에다 대고 고춧가루 테러를 갈겼다.(!!)
[20]
사실
정신대의 실체를 미리 알고 딸을 시집보내 화를 면한 케이스보다 그냥 돈을 벌러 일본으로 간다는 생각에 순순히 갔다가 일본에게 속아서 돌아오지 못한 사례가 많다.
[21]
작품 내에서 "희연"(
일제강점기 시절 담배)이라는 단어를 통해 알 수 있다.
[22]
다만 캐릭터 설정은 거의 같지만 캐릭터성은 상반된다. 봄·봄에서는 장인이, 동백꽃에서는 점순이가 악랄한 일면이 묘사되지만 동백꽃의 점순이 아버지와 봄봄의 점순이에게는 딱히 나쁜 면이 드러나지 않는다.
[23]
사실 점순이도 자기 아빠 수염을 잡아채서라도 빨리 결혼시켜달라고 조르지 않고 뭐하냐고 갈굴 정도이니 주인공과 결혼을 하고 싶은 생각인 것은 분명하다. 단지 '수염을 잡아챌 기새로 졸라봐!'를 '정말 수염을 거머쥐고 두들겨패!'로 잘못 이해한 주인공의 비유적 표현 이해 능력 부족이 문제였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