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3458><colcolor=#fff> 보리스 파시 Boris Pas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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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00년 6월 20일 |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 |
사망 | 1995년 5월 11일 (향년 94세) |
미국 캘리포니아주 그린브래 | |
국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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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 모스크바 제12김나지움 |
직업 | 군인 |
최종 계급 | 대령 |
참전 |
제1차 세계 대전 러시아 내전 제2차 세계 대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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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군인.2. 생애
1900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종교활동을 하기 위해 미국으로 온 러시아 정교회 신부 아버지와 몬테네그로계 성직자 가족의 딸이었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2.1. 제1차 세계 대전
1913년 모스크바의 제12김나지움에 입학했다. 1년 후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해 16세의 나이로 러시아 제국군에 징집되었고, 전쟁 기간 동안 제52포병여단에서 몇몇 전투에 참전했으나, 주로 YMCA의 통역 및 활동을 도왔다. 러시아 내전 발발 이후 게네랄 코르닐로프 순양함에서 볼셰비키들과 싸웠다. 내전 종식 후 베를린을 거쳐 다시 미국으로 돌아왔다.2.2. 미국으로 돌아오다
1930년 미 육군에 입대해 정보 장교로 고속승진을 했다. 1942년 대령으로 진급했고, 1943년 버클리와 샌프란시스코의 스파이들을 색출하는 작전또한 지휘했다. 이후 맨해튼 프로젝트 인사들 중 공산주의 간첩 색출을 지휘했다. 그해 9월 이탈리아에 파병되어 나치 독일의 우라늄석 및 과학자 확보 미션 알소스 임무를 지휘했다.1945년 중반 벨기에,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에서 원자력 스페츠나츠 작전을 개시해 프레데리크 졸리오퀴리의 자택에서 400여건의 문서를 입수한뒤 나치 독일의 원자폭탄 제조 프로그램 정황을 확보했다. 추가로 농축 우라늄-238 석 수십톤을 획득해 리틀보이가 제조되는데에 보탰다.
1946년 일본으로 파견되어 더글라스 맥아더의 해외관계 담당 참모로 근무했으며, 일본 정교회와 모스크바 총대주교회의 통일을 막았다. 이후 1950년대 초 미국 중앙정보국 부서 중 PB/7 부서의 책임자가 되어 소련의 원자력 시설들을 연구했다.
1957년부터 미국 국무부에서 근무했다.
2.3. 사망
1995년 5월 11일 캘리포니아주 그린브래에서 사망하였고, 샌프란시스코의 세르비아인 묘지에 안장되었다.3. 미디어
- 영화 《 오펜하이머》에서 케이시 애플렉이 연기했다. 오펜하이머는 동료인 슈발리에가 공산주의자 혐의를 받자 이를 수습하기 위해서 보리스 파시와 면담하였다. 슈발리에의 행적을 적당히 둘러대서 혐의를 벗게 하려 한 것. 하지만 이는 순진한 판단이었다. 이는 이후 진술 번복으로 인해 오펜하이머가 공격받는 요인 중 하나가 된다. 보리스는 오펜하이머에게 예의를 갖추며 매우 침착하게 대응하지만 그 와중에도 공산주의 혐의를 날카롭게 캐는 등 만만치 않은 인사임을 보여준다. 오펜하이머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던 그로브스도 보리스와 만났다는 말을 듣자 '당신 제정신이냐. 저런 작자와 만난다고?'라며 크게 우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