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6:45:05

보두앵 2세(라틴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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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두앵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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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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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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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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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두앵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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욜랑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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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두앵 2세
Baudouin II
파일:Baldwin II_Latin Emperor.jpg
보두앵 2세의 인장
파일:TEGEO_Saint-Louis_recevant_la_sainte_couronne_de_Baudouin_II.jpg
보두앵 2세로부터 그리스도의 왕관을 받는 성왕 루이
이름 보두앵 2세 드 쿠르드네(Baudouin II de Courtenay)
출생 1217년
라틴 제국 콘스탄티노플
사망 1273년 8월
나폴리
가문 파일:Arms_of_the_House_of_Courtenay.png 쿠르트네 가문
배우자 마리아 드 브리엔 (1234년 결혼)
부모 아버지 피에르 드 쿠르트네
어머니 욜랑드 드 에노
종교 기독교 ( 로마 가톨릭)
재위기간 1228년~1261년(실효 황제), 1261년~1273년(망명 황제)
1. 개요2. 생애

[Clearfix]

1. 개요

라틴 제국의 5대 황제이자 실질적인 마지막 황제.

2. 생애

파일:main-qimg-c554af3bea8d74af6ae6066f6333a64e.png
보두앵 2세가 통치를 시작한 시기의 상황[1]

보두앵 2세는 로베르의 아우이자 피에르의 사남으로 로베르가 사망했을 때 나이가 11살이었기 때문에 장 드 브리엔이 섭정을 맡았다. 하지만 1237년 장이 사망한 후 라틴 제국은 동로마 제국의 망명 정권인 니케아 제국 제2차 불가리아 제국의 침공을 받아 쇠퇴하기 시작했고 보두앵 2세는 제국을 살리기 위해 서유럽의 여러 나라에 원조를 요구하였다.

파일:640px-HolyCrown.jpeg.jpg
보두앵 2세가 루이 9세에게 팔아넘긴 예수 그리스도의 왕관
유물을 팔거나 돈을 빌리는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끝에 자금과 병력을 마련했으나, 1242년 쿠만족 유민을 받아줬다는 이유로 몽골 제국의 분노를 사게되어[2] 카단 오구르[3]가 이끄는 몽골군이 불가리아를 초토화시킨 후 트라키아 일대를 침공하자 콘스탄티노플 밖으로 나와 한차례 싸워 이겼으나 이어지는 싸움에서 패하고 포로로 잡혔다.[4]

이후 몽골과의 협상을 통해 복귀하고, 카라코룸에 사절을 보내 몽골 제국과의 외교관계를 수립하지만 이 사건으로 몽골의 조공국이 된것은 물론 보두앵 2세가 유럽 곳곳을 돌아다니며 구한 돈과 병력을 모두 잃어 결국 니케아 제국에 대항할 능력을 완전히 상실하고 만다.

1261년 라틴 제국군이 콘스탄티노폴리스를 비운 사이에 니케아 제국의 황제 미하일 8세의 공격을 받아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가 함락될때, 밤을 틈타 항구를 통해 도주했고 보두앵 2세는 이탈리아로 망명했다. 이렇게 라틴 제국은 멸망하고 미하일 8세는 니케아 제국의 황제에서 동로마 제국 팔레올로고스 왕조를 세우게 된다.

그 후 보두앵 2세는 이탈리아에서 라틴 제국의 황제를 계속 자칭하고 있었지만 1273년 56살의 나이로 사망하고 그의 자손들이 라틴 제국 황제를 대를 이어 자칭했지만 별 소용은 없었다. 1383년 보두앵 2세의 마지막 후손인 자크 데 보(Jackques des Baux)가 후사 없이 세상을 떠났다.

자크는 앙주 공작 루이 1세에게 라틴 제국의 황제 칭호를 넘겼지만 루이 1세는 명목만 남은 황제 칭호를 쓰지 않아 계승이 단절되었다. 베네치아 공화국은 단순히 후원만 했을 뿐 라틴 제국의 계승권은 수용하지 않았다.


[1] 라틴 제국은 이미 트라키아 일부를 제외하면 통치권을 잃었으며, 테살로니카 왕국 이피로스 전제군주국이 집어삼켜 테살로니카 제국을 선포하는등 사실상 라틴 제국은 밀려나고 제2차 불가리아 제국, 니케아 제국, 테살로니카 제국이 서로 콘스탄티노플을 두고 경쟁하게 된지 오래이다. [2] 1239년까지 쿠만족에게 은신처를 제공해줬다는 혐의였다. [3] 오고타이 칸의 아들 [4] 이때, 한동안 보두앵 2세가 죽었다는 소문이 돌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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