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blewidth=400px><table align=right><tablebgcolor=#FFFFFF><tablebordercolor=#CC0000><#CC0000><width=100>
||<-2><:><#CC0000>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
全国重点文物保护单位
중화인민공화국 국무원 공포 ||
全国重点文物保护单位
중화인민공화국 국무원 공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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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칭 | 한국어 | 베이하이와 단성 |
간체 | 北海及团城 | |
번체 | 北海及團城 | |
영어 | Beihai and Round city | |
분류 |
고건축 및 역사기념건축물 (古建筑及历史纪念建筑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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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 명 ~ 청 | |
일련번호 | 1-0106-3-059 | |
주소 |
중화인민공화국
베이징시
시청구 원진루1호 北京市西城区文津街1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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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재 | 1961년 | |
차수 | 제1차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 | |
국가 지정 명승지 등급 | AAAA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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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도심 속 베이하이공원
중화인민공화국 베이징시에 위치한 정원. 원래는 중난하이와 같이 묶여있는 자금성의 원림이었으나 중난하이가 중화민국 북양정부의 대총통부로 사용되면서 분리되어 현재도 중화인민공화국 주석과 국무원 총리실 및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로 사용되고 있다. 때문에 베이하이만 별개의 공원으로 개방되었다.
2. 역사
현 베이하이는 명청시기에 건축된 것이지만 사실 이 정원은 요나라부터 시작해서 금나라와 원나라까지도 황실의 원림을 조성하였던 곳이다. 요나라 시기에는 이 곳에 황실 별궁인 요서행궁(瑶屿行宫)이 존재하였으며, 1179년 금 세종이 이 요서행궁을 크게 확장하여 호수 및 인공섬을 조성하고 전각들을 더 설치하고, 명칭도 대녕궁(大宁宫)으로 교체하였다. 현재 베이하이의 중심인 충화다오 섬도 금 세종대에 만들어졌다.이후 원 세조시기부터 원 혜종시기에 이르기까지 충화다오 섬을 총 3번 확장하였으며, 베이하이 공원 앞의 소규모 성채인 단성(团城)도 이 때에 조성된다. 당시 베이하이는 태액지(太液池)로, 충화다오 섬은 봉래(蓬莱)로, 단성은 영주(瀛洲)로 불리었다.
1420년 영락제의 베이징 천도 이후 베이하이의 동쪽에 자금성이 건축되었고, 베이하이 남쪽에 중난하이를 조성하여 베이하이와 중난하이를 하나로 묶어 서원(西苑)으로 칭하였고 자금성 황성 범위 내로 들어간다.
만력제시기에 충화다오 섬의 중심전각인 광한전(广寒殿)이 무너지고, 이 자리에는 청나라 순치제가 백탑을 건축함과 동시에 주변 전각들을 묶어 영안사(永安寺)를 조성한다.
1741년, 건륭제는 베이하이의 대규모 확장공사를 시작하였고, 현 충화다오 섬 밖의 주요 건축물들은 죄다 이 시기에 최초로 조성된다. 이후 서태후 시기에도 이 정원의 확장이 지속되었고, 의화단 운동시기 8개국 연합군에 의해 파괴되었으나 이내 복구된다.
중화민국이 건국된 이후에도 이 권역은 구 청나라 황실의 재산으로 인정받았으나 1925년에 중난하이에 총통부를 건설함과 동시에 베이하이를 시민공원으로 개방하였고, 중화인민공화국 시기에도 중난하이를 중앙관청으로 사용하면서 이 지역은 완전히 중난하이와 분리된다.
3. 건축물
3.1. 충화다오 섬(琼华岛)
베이하이의 중심권역으로, 요나라가 행궁을 지은 장소이다. 줄여서 충다오(琼岛)라고도 부른다.사진 | 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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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안사(永安寺) 1651년, 순치제가 창건한 사찰이다. 원래 이 권역은 광한전(广寒殿)으로, 금나라의 별궁이 위치 해 있었으나 만력제 때 사라진다. 불탑인 백탑(白塔)이 유명하며 이 백탑은 현재 베이하이의 상징으로 존재하고 있다. 그 외에도 정각전(正觉殿), 보안전(普安殿), 성과전(圣果殿), 종경전(宗镜殿), 전각방(转角房), 순산방(顺山房)등의 건축물들로 구성되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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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고루(阅古楼) 1741년 건륭제에 의해 건설된 누각으로, 고대 중국의 수묵화 495점으로 내부를 장식하였다. 현재는 약 10만점의 중국 예술품이 내부에 소장되어 있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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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주전(智珠殿) 1751년 건륭제에 의해 건축되었으며, 내부에는 문수보살을 봉안하였다. |
3.2. 동안(东岸)
사진 | 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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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복간(濠濮间) 건륭제에 의해 지어진 정원으로, 건륭제가 신하들과 연회를 열 때에 사용하였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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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방재(画舫斋) 1751년 건륭제에 의해 건설된 정원으로, 선잠단 남쪽의 인공림 안에 조성되었다. 중앙에 인공호수가 존재하고 호수 기준 동서남북으로 전각이 4개 존재하며, 북쪽 전각에 화방재 현판이 달려 있으며 남쪽은 춘우림당(春雨淋塘), 동쪽은 고가정(古柯庭), 서쪽은 소령농(小玲珑)이라는 현판이 달려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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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잠단(先蚕坛) 구단팔묘 중 하나로, 잠신인 서릉씨(西陵氏) 누조(嫘祖)에게 제례를 지내는 전각이다. 1522년 가정제가 최초로 조성하였으며, 1754년 건륭제에 의해 베이하이 공원 내부로 들어온다. 제례일은 경칩이후 해일(亥日), 제례 주관자는 황후였다. 현재 구단 중 유일하게 비공개이다. |
3.3. 북안(北岸)
사진 | 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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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서천(小西天) 1768년부터 1770년까지 건륭제에 의해 지어진 이궁으로, 어머니 효성헌황후를 위해 건축하였다. 중국에서 가장 거대한 정방형 전각으로, 전각은 인공수로에 둘러싸여 있으며 내부에는 점토불상 1좌와 226점의 아라한상이 존재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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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설당(快雪堂) 1775년 건륭제에 의해 건설된 전각으로, 징현당(澄观堂)과 욕란헌(浴兰轩)의 2개 전각으로 이루어져 있다. 내부에는 고대부터 원나라에 이르는 중국의 유명 예술작품들로 꾸며져 있으며, 현재는 쾌설당 서법박물관(快雪堂书法博物馆)으로 사용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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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범경(西天梵境) 1759년 건륭제에 의해 창건되었으며, 베이하이 공원에서 충화다오 섬고 함께 베이하이의 상징 중 하나로 쓰이는 장소이다. 대서천(大西天)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리며, 1980년 일반인에게 공개하였고 현재는 베이징시 문물연구소(北京市文物硏究所)로 사용되는 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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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심재(静心斋) 명나라시절부터 있었던 전각으로, 당시에는 베이하이 권역이 아닌 그냥 일반 관사였다. 그러다가 1757년에 건륭제가 정원으로 개조하면서 베이하이 권역으로 들어오게 된다. 당시에는 건륭소화원(乾隆小花园)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리었다. 부속전각으로 소서옥(素书屋), 운금재(韵琴斋), 벽선정(碧鲜亭), 배차오(焙茶坞), 엄화헌(罨画轩), 심천랑(沁泉廊), 침란정(枕峦亭) 등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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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룡정(五龙亭) 용택정(龙泽亭), 용서정(涌瑞亭), 부취정(浮翠亭), 징상정(澄祥亭), 자향정(滋香亭)의 5개 정자가 있다고 해서 오(五)룡정이다. 1603년 만력제에 의해 지어졌으며, 주로 황제들이 낚시를 하면서 노는 곳이었다. 그러다가 건륭제가 담장을 짓고 다리를 석교로 바꾸는 등의 개조를 하였으며, 의화단 운동시기 파괴되었다가 1974년에 복원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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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복사(阐福寺) 소서천과 서천범경 사이에 있는 사찰로, 효혜장황후의 묘(廟)였다. 이후 건륭제가 효성헌황후를 기리기 위해 1747년에 사찰로 개조한다. |
3.4. 단성(团城)
사진 | 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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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성(团城) 베이하이 공원 앞에 있는 원형의 성채로, 원래 금나라 대녕궁의 일부였다가 원나라시기에는 영주(瀛洲)라는 이름으로 불리었다. 이후 건륭제가 수리하여 현재의 모습으로 만들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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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광전(承光殿) 단성 정 중앙에 있는 전각으로, 원나라시기에 의천전(仪天殿)이라는 이름으로 건축되었다. 이후 1690년 강희제에 의해 중건되었으며 명칭도 승광전으로 교체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