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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원형 틀에 축을 달아서 회전할 수 있게 만든 도구.
2. 역사
자연계에 이미 존재하는 물건을 모방하지 않고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낸 가장 대표적인 초창기 발명품 중 하나다. 구동부가 본체와 완전히 분리되어야만 하는 작동 원리로 인해 몸의 각 부위와 어떤 형태로든 세포가 연결되어 지속적인 영양 공급이 필요한 생명체는 지금까지 어떤 종류도 바퀴의 원리를 이용하는 형태로는 진화하지 못했다.[1] 기껏해야 자신의 몸을 바퀴처럼 둥글게 말아 이동에 사용하는 동물이 몇 종 있는게 전부이며, 이것은 '바퀴'가 의미하는 발명의 의의와는 좀 다르다. 바퀴의 핵심은 단순히 둥근 형태로 이동하여 마찰력을 줄이는게 아니라 축이 존재하여 굴러간다는게 핵심이다.고고학적 증거들에 따르면 바퀴가 처음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4000년 경으로서, 탈것에 부착된 것이 아니라 도공(陶工)들이 토기를 만들 때 사용하는 물레에 사용되었다. 바퀴달린 탈것을 사용했다는 가장 오래된 기록은 기원전 3500년경 메소포타미아였다. 유사한 시기에 인도와 중국에서도 바퀴를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서는 황제 헌원씨(黃帝 軒轅氏)가 만들었다는 전설이 있다. 이는 이름인 '軒轅'에 부수로 '수레 거(車)'가 들어간 것이 그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 이후, 바퀴는 빠른 속도로 북서 유럽으로 전파되었다. 처음에 바퀴 달린 탈것은 의식(儀式)이나 행사를 위해 사용되었고, 곧 전쟁에 이용되었다. 바퀴 달린 탈것이 물건을 나르는데 이용되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약 1000년이 지난 이후부터였다.
최초의 바퀴는 통나무를 원반 모양으로 잘라내어 다듬은 형태이거나, 3개의 널빤지를 서로 결합시켜 원형으로 깎은 형태였다. 이러한 바퀴는 무거운데다 오래 견디지 못하고 쉽게 부서졌으므로, 이를 강하게 만들기 위해서 얇은 나무나 구리로 만든 테를 둘러 사용하였다. 기원전 2000년경에는 바퀴살이 달려 훨씬 가볍고 튼튼한 바퀴가 처음으로 나타나 이용되기 시작했다. 이런 바퀴는 1848년에 통고무 타이어, 1888년에 진짜 타이어가 발명된 이후에도 한동안 개량을 거듭하며 만들어졌다.
2.1. 신대륙엔 왜 없었을까?
신대륙으로 불리던 아메리카 대륙의 문명들( 마야 문명, 아즈텍 제국, 잉카 제국 등등)에서 출토된 어린이용 완구 등의 물건들에서 바퀴 자체의 흔적은 발견되지만, 정작 콩키스타도르들이 이곳에 진출하기 시작한 16세기가 되기 전까지는 바퀴가 실용적으로 사용되지 않았다.이는 아메리카 대륙에는 바퀴를 끌만한 대형 가축이 없었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북아메리카에서 야생마는 기원전 1만 년쯤에 멸종해버렸고[2], 아메리카들소는 아시아의 들소보다 성질이 사나워서 당시 원주민들이 길들일 수가 없었다.[3] 남아메리카 대륙은 더 심각해서 애초에 길들일만한 대형 초식동물이 거의 없었다. 길들인 동물은 낙타과에 속하는 과나코와 비쿠냐 정도였으며[4], 이마저도 덩치가 작은 편이라서 수레를 끄는 동물로 쓰기에는 적절하지 못했다.
사실 중남미의 더 큰 문제는 자연환경, 특히 지형 자체가 바퀴를 활용하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그나마 환경이 받쳐줬다면 동물을 활용하기 어려워도 인력으로라도 수레를 활용할 가능성이 있었겠지만 중남미는 적도 인근의 더운 지역이기 때문에 문명은 그나마 사람 살만한 고지대를 중심으로 발전했는데, 중남미의 산악지대는 그 악명높은 융가스 도로나 테이블 산을 보면 알겠지만 그야말로 흉악 그자체라 수레가 다닐만한 도로를 내느니 그냥 사람이 짊어지고 오르내리는 게 나은 수준이었다. 사실 잉카 제국이 위치한 안데스산맥 지역은 오늘날에도 도로나 철도를 만들기가 매우 어려운 곳으로, 잉카 제국 시절의 도보용 도로는 지금도 쓰일 정도이다. #
2.2. 한반도에서의 바퀴 문화
한반도의 역사에도 적어도 고려시대까지는 바퀴를 이용한 수레/ 마차가 자주 쓰였다. 특히, 전쟁이 잦았던 삼국시대에는 수레가 많이 쓰였다. 고구려 벽화에 종종 발견될 정도로 고구려에서는 애용했던 도구였고, 신라 및 고려시대에 쓰였던 도로가 몇 군데 발견되기도 하는 등[5] 아예 안 썼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고려 후기부터 왜구 침입으로 인해 말이 부족해지기 시작하면서 쇠퇴하였고 결국 조선에서는 수레가 널리 활용되지 못했다.물론 조선시대에도 안 쓴 것은 아니지만, 산악지형과 하천/개울이 많은데다가 조선 조세정책의 근본적인 문제인 만성적 재정부족으로 인해 포장된 도로(인프라)를 전국적으로 설치할 여유도 없었다. 게다가 조선의 말은 다소 작아 수레를 끌기 힘들었으며[6] 소는 대부분 농사에 동원했고, 그나마 있는 가축조차도 국토 지형상 대량으로 키울만한 여건이 안 되어 수레를 굴릴 동물도 적었다. 여기까지는 신대륙에서 수레/마차가 통용되지 못했던 이유와 유사하다.
여기에 더해 조선은 이미 삼면이 바다로 된 환경이어서 대규모 투자를 해가면서 까지 굳이 쓸 이유가 없었다. 대부분 상품을 나루(도/진, 포, 항)까지 실어와 해상으로 운반했기 때문이다.[7] 운하에서도 보듯 근대 철도/도로가 발달하기 전까지는 세계적으로 수운의 효용성이 압도적이었다. 또한, 불편한 도로 자체를 방어수단으로 활용하고자 했기 때문에 이러한 의견은 각광받기 어려웠다.
물론 조선시대 사람들도 수레의 유용함을 몰랐던 것은 아니며, 조선 후기로 갈수록 민생증진 등을 목적으로 수레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의견이 실학자들을 중심으로 대두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제한적이지만 한양 근처나 영남 일부지역 등 번성한 곳에서는 도로를 포장하여 수레가 많이 다녔다는 기록이 있다.
상용 외 군용 목적으로는 전차로 잘 사용했다. 고려시대까지는 방호벽을 세우고 그 주변에서 방진을 구축하는 형태로 사용했고 고려 후기부터는 화차도 등장한다.
3. 중요성
바퀴는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위대한 발명품 중의 하나이다. 바퀴로 인해 인류는 장거리 이동과 대규모의 물자수송이 가능하게 했고 전쟁, 정치, 경제, 산업, 기술 등 모든 분야에서 문명의 발전을 이뤄냈다. 그래서 불[8], 문자와 함께 바퀴를 인류 3대 발명품으로 꼽는 이들도 있다. 이처럼 종래에는 바퀴의 사용이 불의 사용과 마찬가지로 곧 문명의 발전과 직결된다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운송 수단으로 바퀴를 이용하지 않으면서도 높은 수준을 보여준 문명권들도 존재했다. 바퀴의 사용은 인류 문명에 있어 필수적인 요소였다기보다는 특정한 문명권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특수한 요소였던 셈이다.엄밀히 말하자면, 바퀴는 그저 효율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한계도 있는 물건이다. 바퀴는 생각보다 만들기가 까다롭고 제대로된 작동을 위해서는 반드시 유지보수가 필요하다. 바퀴살/바퀴축이 부서진다면 그만한 낭패도 없다. 지형도 꽤 가린다. 바퀴의 개수에 따라서 차이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한 점 또는 선에 가까운 좁은 면에서 지면 등에 접촉하기 때문에 적은 바퀴로는 큰 접지압에 대응하기 어렵다. 만약에 접지압 때문에 바퀴가 진창같은 무른 지대에 빠지는 일도 일어날 수 있다. 이외에도 나무뿌리같은 장애물에 걸리는 경우 난감한 상황이 일어난다. 때문에 바퀴를 오래 쓰기 위해서는 적절한 도로를 만들어야 하는데 도로 역시 돈을 계속 잡아먹는 괴물이다.
종합적으로 과거에는 바퀴를 사용하는 경우가 인간이나 가축이 직접 물건을 짊어지는 것보다 단점도 많고 가격 대비 성능이 떨어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지역에 따라서는 현지인들이 선호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신대륙만 그런 게 아니라 중세 유럽도 비슷한 이유로 마차 여행보다 도보/승마가 주류였다. 특히 문명권 내에서는 도로 정비가 그래도 상대적으로 수월해서 바퀴가 자주 쓰였지만, 문명과 문명 사이의 교류에서는 그런 보수 유지를 기대하기 어렵기에 바퀴로 된 운송 수단이 잘 쓰이지 않았다. 가령 사막 지대의 캐러밴들은 낙타를 이용했으며 구대륙 문명권을 오가는 물자 운송은 선박을 통해[9] 이루어졌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은 산업혁명 이후 증기기관을 비롯한 열기관(동력기관)이 등장하면서 격변하게 된다. 동력기관은 무게도 많이 나가고 스스로 움직일 수는 없지만, 열 에너지를 운동에너지로 바꿀 수 있었고 인간이나 동물과 비교해서 힘과 일률이 월등했기 때문에 이전에는 하기 어려웠던 큰 힘이 들어가는 일들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효율 덕택에 동력기관을 사용한 산업과 운송이 가능해졌고, 바퀴나 도로의 유지비도 충분히 부담할 수 있는 것이 되었다. 따라서 산업화가 이루어진 사회에서는 엔진을 비롯한 기계가 많아지고 이전보다 무거운 장비들도 제조되면서 바퀴를 이용하는게 오히려 효율적이게 되었고, 산업화 이후에는 바퀴를 이용하지 않는 문명권은 사실상 없다고 할 수 있다.
4. 확장 의미: 회전 수
관련 문서: 타우(수학)어떤 둘레를 빙 돌아서 제자리까지 돌아오는 횟수를 세는 단위. 그 둘레가 원인 경우, 정확히 [math(2pi{rm,rad})]과 같다. 양자역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디랙 상수의 정의에도 1바퀴가 들어간다([math(h = 2\pi\hbar)]).[10]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틀리게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 단위이다. 빙 돌아서 제자리로 돌아와야 1바퀴지만 반만 돌아도 1바퀴로 세는 사람이 많다.
징역 1년을 1바퀴라고 하는 경우가 있다.
이전부터 무차원량인지 논란이 되었던 물리량이다. 한 학자는 [math(\sf A)]라는 차원을 부여할 것을 주장하기도 했다.
5. 언어별 명칭
<colbgcolor=#f5f5f5,#2d2f34> 언어별 명칭 | |
한국어 | 바퀴, 발통 |
한자 | 輪(륜) |
영어 | wheel(휠) |
페니키아어 | 𐤈(테트)[11] |
한국어 '바퀴'는 순우리말이다. '바회(15C)>박회(18C)>박희/박휘(19C)> 바퀴'로 정착했다. '박회>박휘'를 통해 모음조화가 깨져감을 확인할 수 있다. 중간에 어쩌다가 ㄱ이 들어갔는지는 알기 어렵다. ' 바위'도 '바회'였기에 동음어 충돌을 회피하기 위해 ㄱ을 첨가했다는 견해도 있다. '바위'와 '바퀴'로 분화시켜 둘을 구분하려 했다는 것인데 현대 국어에서도 윤활유 그리스를 나라 그리스과 구별하기 위해 '구리스'로 발음하는 등 동음이의어를 형태를 달리하여 피하려는 경우가 더러 있으니 꽤나 합당한 견해로 보인다.
간혹 발통이라고도 불린다. 대표적인 예시가 왕발통.
한자로는 주로 ' 輪'(바퀴 륜)을 쓴다.
영어로는 ' wheel'이라고 하지만 다소 의미 폭이 다르다. 가령 차체를 아래서 떠받치는 자동차 바퀴 뿐만 아니라 스티어링 휠(운전대 핸들)을 지칭하기도 한다. 또한, 한국에서 '휠'은 타이어 안의 금속 몸체 부품(바퀴살)을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 휠 참고.
6. 기타
- 칭기즈 칸에 대적하던 타타르 부족은 접대의 관습을 어기고 손님으로 왔던 예수게이를 독살했다가 훗날 세력을 키운 칭기즈 칸에 의해 수레바퀴보다 큰 남자, 즉 일정 연령 이상의 남자[12]들을 모조리 죽여버렸고 나머지 여자와 아이들은 그대로 몽골족에 흡수되어 사라졌다. 이후 칭기즈 칸이 정복 활동을 벌일때도 마찬가지로 수레바퀴보다 큰 남자를 죽이는 것을 자행했다. 독특한 선별기준과 해당되는 대상을 모조리 죽여버렸다는 그 잔혹함 때문에 역사관련 창작물에서 몽골족이 등장하거나, 가상의 세계관에서 몽골족을 모티브로 삼은 부족이나 인물이 나올때 수레바퀴를 언급하며 위협하거나, 아니면 그대로 실행하는 것이 일종의 클리셰가 되었다.
- 수레바퀴는 야인시대 합성물의 필수요소이다. 김두한이 사망하는 장면에서 나오는데 전투에 임하는 사람들이 공격을 받아 넘어지는 곳으로 활용된다. 보통 " 1972년 11월 21일, 김두한은 오랜 지병이었던 고혈압으로 쓰러졌다"라는 나레이션과 함께 쓰인다.
- 구획이 수레바퀴 바퀴살처럼 뻗어나가는 식으로 구성된 도시들도 있다. 일종의 방사형 도시라고 할 수 있다. 대개 정중앙에는 통치와 관련된 기관이 위치해있다. 각 세력들이 중앙과 바로 오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지형이 완전히 평탄하지 않고서는 이러한 구획을 갖추기 힘들다. 창작물에서는 상징성을 강조하고자 이러한 구조의 도시들이 많이 나타난다.
- 전륜성왕에서 언급되는 요소이다. 전륜성왕은 바퀴를 굴리는 왕이라는 뜻이다.
- 현재까지 인간이 바퀴를 굴려서 얻어낸 가장 빠른 속력은 프랑스 고속열차 TGV를 이용해서 기록한 574.8km/h이다.
7. 관련 문서
[1]
한
세포안의
세포 소기관 수준으로 가면 지금의 모터와 유사하게 축이 분리된 기관이 있긴하다. 예를 들어
미토콘드리아의
ATP 합성효소라든가.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소기관 수준이지 다세포생물에서 기관과 기관이 완벽히 분리되는 것은 현재까지 생물학 연구로 볼때는 아예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2]
현존하는 북아메리카 대륙의 야생마인
머스탱은 유럽인들이 진출한 후, 그들이 데려온 말들이 야생화한 외래종이다.
[3]
근현대에야 길들이는 데 겨우 성공해서 오늘날에는 야생 들소보다 사육 들소가 훨씬 많다.
[4]
이것들을 길들여 가축화한 것이 각각
라마와
알파카이다.
[5]
봉무동 유적이나 옥천읍 구일리 983번지에 도로 흔적이 남아있다
[6]
말 자체를 운송수단으로는 많이 썼지만 수레를 연결한 마차로는 잘 안 썼다. 가성비가 떨어질 뿐더러 서민들은 농기구, 운송수단,
밥(...) 등 다용도로 쓸 수 있는 소를 더 선호했기 때문.
[7]
그래서 백제도 바퀴 문화가 딱히 발전하진 못했다. 해상교통이 더 싸고 편하니까.
[8]
엄밀히 말해 불은 발견한 것이지 발명한 것이 아니다. 불을 일으키는 도구인 성냥, 라이터, 가스토치는 발명이 맞다. 하지만 발견은 기존에 있던 것을 알게 되는 것이며 발명은 인간의 필요에 따라 기존의 것을 모방하여 만들거나 새로운 것을 만드는 행위를 말한다. 인간이 출현하기 전부터 불은 존재하는 것이었고, 그저 불을 경험으로 알게 되고, 발화 원리와 방식을 터득했을 뿐이다.
[9]
이 점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물론 지금은 육상 교통이 매우 편리해졌지만, 여전히 수송량 측면에서 선박을 능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10]
[math(h)]는
플랑크 상수이다.
[11]
서체에 따라 [math(\oplus)]로 렌더링되기도 하고 [math(\otimes)]로 렌더링되기도 한다.
[12]
사실상 영유아 이하를 제외한 청소년 이상의 남자들은 전부 해당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