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fff><colbgcolor=#0047a0> 본관 | 남평 문씨[1] |
출생 | 1924년 11월 27일 |
전라남도 곡성군 죽곡면[2] | |
사망 | 2008년 10월 12일 |
서울특별시 | |
묘소 |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2묘역 |
상훈 | 건국훈장 애족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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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2. 생애
문채호는 1924년 11월 27일 전라남도 곡성군 죽곡면에서 아버지 문종석(文宗錫)과 어머니 김해 김씨 김경명(金京明)의 딸 사이의 무녀독남으로 태어났다. 이후 밀양 박씨 박판의[3]와 혼인하여 슬하에 5남 1녀[4]를 두었다.그는 1943년 10월 중순 강제 징집되어 중화민국 산서성 안읍(安邑)[5]지구에 주둔하던 일본제국 육군 제3541부대에 배속되었다. 그러던 중 한국광복군이 만주에 있다는 소문을 들은 그는 1944년 12월 동료 2명과 함께 탈영을 감행해 국민혁명군 진영에 합류했고, 1945년 4월 충칭으로 가서 토교대(土橋隊)에 입대하여 광복군 총사령부 경위대(光復軍總司令部 警衛隊)에 배속되었다.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경비를 맡고 일본군과 전투를 벌이는 등 특수 임무를 수행하다 8.15 광복을 맞이했다. 그는 임시정부 요인들의 가족을 보호하는 역할을 수행하다 1946년 6월에야 한국으로 귀환했다.
귀국 후 서울에서 광복군에 복무하던 그는 조병옥으로부터 특수경찰대에서 일할 것을 제안받았지만 경찰들이 일본 군복과 비슷한 제복을 입은 것을 보고 정나미가 떨어져서 거절했다. 이후 고향으로 돌아간 그는 6.25 전쟁 때 구례군 구례읍 봉동리로 피난갔다가 휴전협정이 체결된 뒤에도 그곳에 본적을 두고 정착해 소작을 짓거나 노동을 하면서 아내와 6남매를 부양했다. #
그러다가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은 후 광복회에 가입해 광복군의 독립운동에 관한 홍보 활동을 벌였고 2008년 10월 12일 서울특별시에서 병사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10월 14일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2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