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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無 痲 醉 手 術마취없이 수술을 하는 것. 마취가 없으니 당연히 의사에겐 수술의 난이도가 급상승하고, 환자는 심한 고통에 몸부림 치게되고, 기절할 가능성도 높으며, 가끔은 과다출혈로 인해 쇼크사까지 가는 경우도 있다. 마취제가 없던 시절에는 어쩔 수 없이 이런 식으로 수술이 이루어졌지만 19세기에 마취제가 발명된 이후에는 이런 무마취수술이 거의 사라졌다. 마취제와 관련된 내용은 마취의 역사 문단으로.
무마취수술은 약품이 부족한 환경에서는 현재도 이뤄지는 경우도 있다. 가령 전쟁터에서 적군의 총이나 폭발물 파편에 맞아 부상을 입은 군인이 야전병원에서 총탄이나 파편을 빼내는 수술을 받아야 할 때 약품이 부족하거나 상태가 너무 위험해서 마취를 할 시간조차 부족한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무마취 상태에서 빼내는 수술을 받기도 한다.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종교적인 이유나 성인식으로 하는 포경수술( 할례)을 고대에는 마취가 없어 무마취상태에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포경수술을 했지만 현재는 종교적인 이유로 포경수술을 한다고 해도 마취를 한다. 아프리카 원주민 사이에서는 아직도 무마취에 비위생적인 방식으로 포경수술을 하는 경우가 있다.
2. 사례
- 미즈키 시게루 : 일본의 만화가. 일본군에 징집되고 제2차 세계 대전에 동원된 후에 실제로 무마취수술을 받은 인물이다. 폭격을 당해 한쪽 팔을 잘라야 했는데 마취제도 없이 한쪽 팔을 절단하는 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팔 없이 평생을 만화가로 살아왔다. 자세한건 해당 문서로.
- 오상의 성 비오 : 맹장염을 치료받기 위해 수술을 받을 때 자신을 대속제물로 삼겠다고 해서 마취 없이 수술 받았다. 도중에 기절한 후 깨어나서 온전히 고통을 느끼지 못한 자신을 책망하면서 울면서 기도했던 건 덤.
- 한용운 : 머리에 총을 맞아서 맞은 총알을 제거하는 수술을 마취도 없이 받았다고 한다. 참고로 총을 맞게 된 경위가 너무나도 안타깝다. 당시에 승려로 위장해서 돌아다니는 일제의 스파이가 많았는데, 한용운을 스파이로 오해해 맹수로부터 보호해준다는 핑계로 같이 가다가 쏴버렸다고 한다. 물론, 이 사람들은 수술 이후에 선생에게 정중히 사과했고, 선생은 " 나라를 잃었으니 괜한 오해를 할 법도 하다."며 모두를 용서해주었다고 한다. 이 때의 후유증으로 한용운은 평생 머리를 이유 없이 흔들거리는 체머리 증상을 가지고 살았다.
- 허명회 : 운수회사에서 근무 중 일어난 단순 사고로 실제로 무마취수술을 받은 인물이다. 버스기사에게 요금통을 받으려다 요금통을 놓치는 바람에 떨어뜨려 요금통을 발에 맞았는데 일할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껴 치료를 미루다가 통증이 심해져 병원에서 마취제도 없이 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마취를 할 수 있는 환경이었지만 마취없이 수술하면 빨리 낫지 않느냐는 근거없는 이야기에 그대로 마취없이 수술을 했다고 한다. 해당 문서로.
- 그 밖의 사례
- 현대에 사용 중인 마취제 발견 이전의 각종 수술[1]
- 총탄에 맞은 군인 자신이 직접 총탄을 빼내는 수술
- 유태인 신생아, 일부 무슬림의 종교의식과 일부 원주민(주로 아프리카 원주민)의 성인식으로 행해지는 포경수술( 할례) 중 마취를 하지 않는 환경에서 이루어지는 수술. 현대에 사용중인 마취제 발견 이전에는 당연히 이런 방식으로 포경수술이 이루어졌으며, 현대에도 마취가 안 되는 환경에서는 이런 식의 포경수술이 이루어진다. 넬슨 만델라는 16세때 성인식으로 포경수술을 받았는데 마취 없이 받았다고 한다.
- 관우는 당대의 명의 화타의 집도로 팔에 박힌 화살[2]의 제거 수술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화타는 당시 나름의 마취제도 갖추고 있었던 것 같지만 관우는 이 약을 사용하지 않고 수술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물론 이 이야기 중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사실인지는 알아내기가 어렵다.
- 남극 탐험대원으로 원정을 간 의사 레오니드 로고조프 (당시 27세)는 원정 도중 맹장염이 오자 무마취로 스스로 자기 배를 개복 후 봉합까지 몇번을 쇼크로 기절하면서도 근성으로 성공했다(...) 자가수술 문서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