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404C36><colcolor=#fff,#fff> 모리야마 슈이치로 [ruby(森, ruby=もり)][ruby(山, ruby=やま)][ruby(周, ruby=しゅう)][ruby(一, ruby=いち)][ruby(郎, ruby=ろう)] | Syuichiro Moriyama[1] |
|
|
|
본명 | 오오츠카 히로오 ([ruby(大塚 博夫, ruby=おおつか ひろお)]) |
출생 | 1934년 7월 26일 |
일본 제국 아이치현 나고야시 | |
사망 | 2021년 2월 8일 (향년 86세) |
일본국 사이타마현 | |
국적 |
[[일본| ]][[틀:국기| ]][[틀:국기| ]] |
직업 | 배우, 성우, 내레이터 |
신체 | 173cm, A형 |
가족 | 양친, 배우자, 슬하 1남 1녀 |
학력 | 니혼대학 (예술학부 / 중퇴) |
소속사 | 오피스 모리야마 (최종 소속) |
활동 시기 | 1954년 ~ 2020년 |
링크 |
[clearfix]
1. 개요
|
2. 생애
1934년 7월 26일, 아이치현 나고야시에서 태어났으며, 초등학교 4학년 때 아이치현 이누야마시로 이사를 갔다.아이치현립 이누야마 고등학교 재학 시절에는 경식 야구부에 소속했고, 야구 선수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당시 공수주의 균형이 어우러진 외야수였다. 아이치현 대회에서 4강까지 올랐지만 고시엔 출전의 꿈은 이루지 못했다. 투수 겸 외야수로 프로 데뷔를 목표로 했지만, 3년 선배였던 혼다 이츠로가 주니치 드래곤즈에 소속하고 있던 인연으로부터 실현된 연습 경기에서[2], 모리야마는 프로 선수들과의 실력차에 압도당했다. 그래서 고민 끝에 프로의 꿈을 포기하고 영화의 길로 나아갈 것을 결정했다. #
원래는 배우가 아니라 카메라맨을 목표로 했다. 후일 인터뷰에서 "내가 이 세계에 들어간 것은, 음, 사고지. 배우가 되려고 했던 게 아니라 TV 카메라맨을 목표로 하고 있었던 거야. 다만, 카메라맨의 학교를 나와도, 18세 정도의 애송이에게는 카메라 같은 것은 만지게 해 주지 않는다. 케이블을 설치하거나 할 뿐인 어시스턴트밖에 못 시키니까, 재미도 아무것도 없다. 찍는 쪽을 한다면, 찍히는 쪽을 공부해도 실수는 없을까, 라고 생각해 배우의 공부를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니혼대학 예술학부 중퇴 후, 1953년에 극단 토게이[3]의 제1기 연구생으로 입단했다. 입단 이후, 항상 극단의 중심 멤버로서 활약해 수많은 연극에 출연했다. 이듬해에는 NHK TV 개국 첫 연속 드라마 〈꿈꾸는 백조〉의 제5화에 출연해, 브라운관에 데뷔했다. 이후 인기 드라마 〈특별 기동 수사대〉나 시대극, 액션 작품을 중심으로, 형사부터 카리스마 있는 악역[4]까지 폭넓게 연기했다. NG를 전혀 내지 않기 때문에 많은 감독이 중용했지만, 모리야마 본인은 '커닝을 잘해서'라고 농담조로 말하고 있다. #
모리야마 슈이치로 "목소리의 일로 말하면, 내 경우에는 라디오 드라마로 시작하고 있었지. 옛날에는 NHK는, 1시간의 라디오 드라마를 생방송으로 하고 있었어. 지금은 생각할 수 없다. 성우라고 말하면, 착각하고, 입만으로 연기하는 사람이 있지만. 라디오 드라마에서도 애니메이션에서도 역시 연기는 몸을 움직여주지 않으면 안된다. 목소리만으로 연기는 할 수 없어."
#
1960년대부터는 특유의 차분한 저음을 살려, 외화
더빙에서도 활약했다. 주로
닛테레나
TBS의 양화극장에서 기용되었다.
장 가방,
찰스 브론슨,
리노 벤투라, 리처드 분,
스펜서 트레이시 등
하드보일드하고 무게감 있는 목소리가 어울리는 배우들의 더빙을 많이 맡았다. 그중에서도 대표작은 1973년부터 6년간에 걸쳐 방송된 미국 드라마 〈
형사 코잭[5]〉이다. 미국 배우
텔리 사바라스가 연기한 터프한 주인공 코잭 경위의 일본어 더빙을 맡아, 인기 성우가 되었다. 배우로서도 성공했기 때문에 얼굴과 목소리가 일치해 인식되는 스타 성우의 선구적인 존재였다.
#애니메이션에서는 스튜디오 지브리 영화 〈 붉은 돼지〉의 주인공 포르코 로소 역이 가장 유명하다.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모리야마의 대표작 중 하나다. 스즈키 토시오에 의하면 미야자키 하야오가 〈형사 코잭〉의 팬이었기 때문에 망설임 없이 모리야마를 주연으로 지명했다고 한다. # 모리야마는 후일 인터뷰에서 이 작품에 대해 아래와 같이 말하고 있다.
애니메이션 〈
붉은 돼지〉는 원래는
일본항공의 기념 작품으로, '점보의 기내에서 내보내는 애니메이션의 내레이터를 해달라'라고 하는 이야기였어. 그때는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씨로부터 직접 전화가 있었지만, 내 안에서는 "애니메이션은 아이가 보는 것"이라는 감각이 있어서, 평소 애니메이션 같은 것은 보지 않으니까. '미야자키라고 합니다만··'이라고 들어도, '어느 미야자키씨?'라고,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딸이 눈앞에서 두 손을 버벅거리며 '거절하면 안 돼!'라고 말해서 수락한 것 같은데, 말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웃음). 예전부터 비행기에 관심이 있었고 조종을 공부한 적도 있었기 때문에 조종사의 마음을 잘 알았다. 녹화장에서 나만
애드리브를 넣어도 멈출 수가 없었어. 나 이외의 배우가 애드리브를 넣으면 미야자키 씨가 말렸지만.
1999년 7월에
뇌경색을 앓아 손발저림 등 후유증에 시달렸지만, 말년에도 평생 현역으로서 활발하게 활동했다. 배우로서 주로 원숙한 노신사 역이나 중후한 정치가 연기를 선보였고, 영화 팬들에게는 〈
쉘 위 댄스〉의 히로인 마이의 아버지 역이 유명하다. 성우로서는
내레이터로서 많은 작품에 출연했으며,
TV CM[6]이나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등의 내레이션도 많이 담당했다. 국내 일본 드라마 팬들에게는 〈
트릭〉의 오프닝 해설자로 유명하다.2020년 12월, 사이타마현 구키시의 자택에서 넘어져서, 허리 등이 골절되어 입원했다. 입원중에 원래 나빴던 폐가 더욱 악화되었다. 잠깐 회복되었지만 2021년 2월 8일에 병세가 급변해 폐렴으로 사망했다. 유작은 NHK 연속 TV 소설 〈 옐〉이다. 모리야마의 공식 트위터를 운영한 소속사가 모리야마의 부고를 보고하는 것과 동시에 "연예 생활 63년간, 팬 및 관계자 여러분에게는 지대한 지원을 해 주어, 정말로 감사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삼가 보답하겠습니다"라고 적었다. 장례식은 가족 장례식으로 집행했다.
3. 출연작
자세한 내용은 모리야마 슈이치로/출연작 문서 참고하십시오.4. 여담
- 어렸을 때부터 목소리가 굉장히 낮았다고 한다. 모리야마는 자신의 공식 홈페이지에서 "9살 무렵 타계한 아버지의 목소리를 닮았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유치원 때부터 이 목소리로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합창할 때 '이 안에 어른이 섞여 있다!'고 했고, 동네 아주머니는 안쓰러워하며 '아이고 불쌍해라~'는 말까지 들었다. 이 목소리는 아버지가 주신 상속세가 들지 않는 유산이다. 이 목소리 덕분에 80세가 넘은 지금도 먹고 살 수 있으니까"라고 적었다.
-
주니치 드래곤즈의 열렬한 팬으로 유명했으며, '우리 매스컴 드래곤즈회'의 명예 회장도 맡았다. 만화가
미즈시마 신지에게 '야구 극도'라는 칭호를 받기도 했다. 고교 시절에는 야구부 소속이었고, 연예계 관계자와 야구팀도 짜고 오전에 2경기를 소화할 정도로 야구를 좋아했다. 80대까지 현역으로 야구를 이어갔다.
# 또한
골프도 굉장히 좋아해서, ‘연예문화인 골프 동호회’ 대표도 맡았다.
선수는 물론 감독, 코치, 끝은 프런트의 자세까지, 잘도 여기까지 팀을 세세하게 보고 있는 것이라고, 저도 감탄을 넘어 어이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 배경에는 고등학교 시절 모리야마 씨의 강렬한 야구 체험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중략) 그런 경험 때문에 동경했던 드래곤즈 유니폼을 입는 선수나 감독들에게는 애정을 쏟으면서도 매서웠습니다. (중략) 드래곤즈를 계속 사랑한 모리야마씨는, 2011년을 끝으로 우리 매스컴 드래곤즈회의 회장을 물러난 후에도 명예회장으로서 응원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3년 전, 진구 구장 인터넷 뒤편의 야외 흡연소였습니다. 담배를 피우면서 경기 모니터 TV를 보고 있던 모리야마 씨를 보고 인사했더니, 그로부터 경기 종료 직전까지 1시간 가까이, 그 자리에 선 채로 끝없이 드래곤즈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헨리 스즈키 (도쿄 주니치 스포츠 보도 부장) #
- 좌우명은 '평생 현역'. '사람의 수명은 120세설'을 주장하기도 했다. # 모라야마의 소속사 대표 모리모토 유코는 "어떤 일이라도 맡아, 따뜻하고 긍정적인 사람이었습니다"라고 말했다. #
- 신인 성우를 육성하기 위해, 성우 양성학교로서 모리야마 학원을 만들었다. 또한 인터뷰에서 "요즘 성우들은 잘하지만 개성이 없다. 성우 학교가 나쁘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 자신을 성우보다는 배우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인터뷰에서 "이 목소리 덕분에 목소리 일도 많고, 최근에는 성우라고 소개되기도 하지만, 나 자신은 역시 배우, 연기자라고 생각하고 있다. 지금까지 무대에서 상당수 연출을 해왔고 후배 육성에도 힘써왔다. 성우 양성학교로 모리야마 학원도 만들었지만, 당연히 키우고 싶은 것은 배우야. 성우의 일을 착각하고 있는 사람이 많지만, 역시 몸을 움직여서 연기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라고 말했다.
- '배우'와 '성우'의 차이에 대해서는 "없어요. 똑같아요. 표현하는 것은 같아요. 배우들은 몸으로 메이크업을 하고 의상을 입고, 움직임을 넣어서 인물을 표현할 것입니다. 성우는 목소리만으로 표현합니다. 자주 성우 지망쪽에서 착각하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목소리만큼은 자신 있어요'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은데요, 성우도 몸을 드러내고 표현하는 일이기 때문에 '똑같다'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
- 텔리 사바라스와 친분이 있었다. 모리야마는 인터뷰에서 "내가 할리우드에 가면 안내해줬고, 텔리가 일본에 왔을 때는 내가 안내해 '테리', '슈'라고 부르며 친하게 지냈다"라고 말하고 있다. #
- 아내 케이코는 아이치현 이누야마 고등학교 동창으로, 모리야마의 가정교사이기도 했다. 장남은 회사를 다니고 있으며, 딸은 시집가서 각각 두 손자를 낳았다. #
- 연예인 친목 단체 ' 쇼와 9년회'의 멤버였다. 이 해에 태어나 맹활약한 연예인이 많았기 때문에 결성된 친목회였다.
- '형사 코잭'과 ' 붉은 돼지'는 모리야마 본인의 블로그에서도 크게 거론하고 있었을 정도로 그를 상징하는 작품이었다.
- 2022년 10월 21일에는 모리야마의 생애와 후배들에 대한 생각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때로는 옛 이야기를 / 모리야마 슈이치로 성우라고 불린 배우'가 개봉됐다. 후배 성우 노자와 마사코, 선배 오오츠카 치카오의 아들 오오츠카 아키오, 가토 토키코, 나카오 아키라 등이 출연했다.
5. 외부 링크
[1]
영어 위키백과나
IMDb에는 'Shûichirô Moriyama'라고 등재되어 있지만, 모리야마 슈이치로의
공식 홈페이지에는 'Syuichiro Moriyama'라고 적혀있다.
[2]
당시는 고등학생이 프로와 경기를 하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고 한다.
[3]
노자와 마사코도 이 극단 소속이었다.
[4]
특유의 약간 탁성이 들어간 저음덕분에, 악역을 자주 연기했다.
[5]
원제는 KOJAK. 1973년부터 1978년까지 미국 CBS TV에서 방영된 형사 드라마. 일본에서는
형사 콜롬보와 함께 해외 형사 드라마의 아이콘급으로 인기를 자랑했었다.
[6]
CM에서는 '브랜디, 물로 나누면 아메리칸'(
산토리)이나 '으~응, 만자이!'(만자이) 같은 내레이션이 사랑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