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5 09:20:38

리즈 유나이티드 FC/역사


1. 개요2. 창단3. 전성기 (1964~1975)4. 암흑기 (1975~1987)5. 두 번째 전성기 (1988~2001)6. 나락 (2001~2020)
6.1. 길었던 희망 고문
7. 최근 성적

1. 개요

잉글랜드 축구 클럽 리즈 유나이티드 FC의 역사를 설명하는 문서.

2. 창단

원래 1904년에 '리즈 시티 FC'라는 이름으로 팀이 창단되었으나 선수에 대한 불법임금 지불로 인해 팀이 해산돼버린다. 때마침 제1차 세계 대전 기간이어서 다시 창단할 수도 없었던 상황. 결국 1919년 다시 창단하게 되고 1920년 풋볼 리그에 정식 참여하게 된다.

3. 전성기 (1964~1975)

1960-70년대 돈 레비 감독의 지휘 하에 리버풀과 함께 잉글랜드를 대표하는 강팀으로 군림했다. 63-64 시즌 2부 리그 우승으로 1부에 승격, 이듬해 1부 준우승을 차지한다. 1968년에는 처음으로 인터-시티 페어스컵 우승을 차지했고, 68-69 시즌 팀 창단 처음으로 리버풀을 2위로 밀어내며 1부 리그 우승을 달성한다. 기세를 몰아 71년에 2번째 인터-시티 페어스컵 우승을 차지했고, 1972년에는 FA 컵을 차지한다. 1973년 UEFA 컵 위너스 컵[1] FA 컵[2]에서 모두 준우승에 그치며 잠시 주춤(?)했지만, 73-74 시즌 다시 1부 리그 우승컵을 차지한다. 그러나 팀의 정신적 지주 잭 찰튼이 은퇴하고, 레비 감독이 잉글랜드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옮기면서 격동의 70년대 중반으로 접어들게 된다.

4. 암흑기 (1975~1987)

74-75 시즌을 기점으로 리즈의 황금기는 막을 내리게 된다. 레비의 후임으로 더비 카운티를 1부 리그 우승으로 이끈 브라이언 클러프를 영입하나, 강압적인 성격의 클러프와 리즈 선수들간의 불화가 생기며 클러프가 취임 44일만에 사임하는 사태를 맞았고[3] - 일례로 브라이언 클러프는 취임하자마자 리즈 선수들을 불러모아놓고 그 동안 레비와 너희들이 이룬 명성은 전부 사기라고 말하며 스스로 악감을 거침없이 드러냈다. - 특히 에디 그레이에게 '네가 만약에 말이었다면, 나는 총을 쏴서 널 죽였을것이다' 라고 말한 일화는 유명하다. 에디 그레이는 잉글랜드내에서도 입지전적 선수로 오늘날까지 존경받고 있음을 생각하면 브라이언 클러프의 성격이 얼마나 모났으며 리즈 감독을 맡은 저의가 의심 될 정도다. 일부러 리즈를 망치기 위해 리즈에 부임했다고해도 무리가 없다.[4], 거기다가 바이에른 뮌헨과의 유로피언 컵 결승전에서 패한 뒤 서포터들이 심판 판정에 불만을 품고[5][6] 난동을 부리는 바람에 4년간 클럽 대항전 출전 금지라는 중징계까지 받는다. 그 이후로 리즈는 서서히 성적이 떨어지며 결국 81-82 시즌에 2부 리그로 떨어진다. 이후 많은 우여곡절을 겪다 86-87 시즌 승격 플레이오프 결승전까지 가지만, 찰턴에게 패배하며 2부 리그에 머물게 되었다. 하지만 이때 그들은 어두운 터널의 끝을 볼 수 있었다.

5. 두 번째 전성기 (1988~2001)

1988년에 감독을 하워드 윌킨슨으로 바꾸면서 다시 도약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89-90 시즌에는 노장 고든 스트라칸 개리 스피드 등의 활약으로 드디어 2부 리그에서 우승하며 1부 리그로 돌아왔다. 승격 2년 뒤인 91-92 시즌 20여년 만에 다시 한 번 리즈는 1부 리그 정상에 서게 된다.[7] 이후 2001-02 시즌까지 우승컵은 없었지만 7시즌을 베스트 5 이내에 위치하며 강팀으로써의 면모를 보여준다.

1997년에 피터 리즈데일이 새 회장이 된 뒤 1999-00 시즌에는 최종전에서 극적으로 리버풀[8]을 끌어내리면서 3위로 리그를 마감, UEFA 챔피언스 리그 진출권을 획득했고, 그해 UEFA 컵 4강에 진출하며 자신들의 이름을 전유럽에 알리게 되었다.[9] 2000년 오프 시즌 당시 전 시즌 결과에 고무된 피터 리즈데일 회장은 엄청난 자금을 풀어 리오 퍼디난드, 로비 킨, 올리비에 다쿠르 등을 입단시켰고, 거기에 이언 하트, 게리 켈리, 앨런 스미스, 조나단 우드게이트, 해리 큐얼 등 유스팀부터 올라온 선수들과 리 보이어같은 유망주들을 사재기하며 구성한 팀은 젊은 패기로 똘똘뭉쳐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그해 UEFA 챔피언스 리그 4강에 올랐지만 리그에서는 승점 1점 차이로 4위에 그쳐 UEFA 챔피언스 리그 진출권을 다시 리버풀에게 넘겨준다.[10] 1년이라도 더 빨리 EPL의 챔피언스리그 4팀이 나갔더라면 어쩌면 리즈의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6. 나락 (2001~2020)

2001-02 시즌을 준비하면서 전년도에 데려온 로비 킨을 헐값에 팔아 버리고 로비 파울러와 세스 존슨을 영입한다. 하지만 비싼 값을 치르고 데려온 세스 존슨은 극악의 적응력을 보이며 망해 버렸다. 겨우 5위로 마감하긴 했으나, 이때부터 리즈의 몰락이 보이기 시작했다. 당시 리그 4강권, UEFA 컵 4강, 챔피언스 리그 4강으로 기세등등해진 선수들은 높은 주급을 원했고, 이를 위해 구단주는 은행 대출로 힘들게 요구를 들어주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챔피언스 리그에 진출하지 못하게 되어 버리면서 거기 걸려있던 막대한 중계권 수입을 놓쳐버린 타격이 컸다. 상환해야 할 금액이 급속도로 불어나자 선수 판매에 나서지만 대부분 헐값에 팔아 버려 제대로 된 이윤을 남기지 못했다. 결국 2002-03 시즌을 앞두고 퍼디난드를 라이벌 맨유로 팔고, 명장 테리 베너블스를 감독에 앉히는 초강수를 두고 리버풀에서 공격형 MF 닉 밤비를 사서 호주 출신 마크 비두카와 짝을 지었으나, 팀은 더욱 부진하여 리그 15위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특히 이 시즌 강등팀 웨스트햄과 승점 5점 차이를 기록해 치욕적인 모습을 보였으며, 베너블스도 8개월만에 쫓겨났다. 다만 이 시기에 기쁜 일이 있다면 제임스 밀너가 2002년 12월 26일 선더랜드전에서 16세의 나이로 득점하여 웨인 루니의 기록을 뛰어넘었고, 2003년 5월 4일 원정에서 아스날을 2-3으로 꺾은 게 전부이다. 2003-04 시즌이 시작되기 전에 2000만 파운드 이상의 가치를 가졌던 해리 큐얼을 헐값에 리버풀로 팔아버리는 바보 같은 짓을 해버린다.[11]

전성기 내내 좋은 선수들을 마구 영입하던 것만 보면 참 좋아보였지만, 속내로 보면 눈물날 정도였다. 당시 구단주인 피터 리즈데일과 감독인 데이비드 오리어리는 주급으로도 엄청난 비용을 소모했으며[12] 리즈 팬들에게 금기사항인 금붕어 어항 사건(회장실에 있는 금붕어 어항 관리비로 25만 파운드(5억원 가량)를 소모했음) 등 리즈시절에 1억 파운드 가량을 써가며 돈을 그야말로 물 쓰듯 했는데 문제는 그 돈을 은행에서 대출로 해결했으며, 대출의 근거는 '다음 시즌에 UEFA 챔피언스 리그 나가면 중계권료로 이만큼 들어올테니 갚을 수 있음'이라는 식. 결국 UEFA 챔피언스 리그에 진출하지 못하면서 수입은 격감하고 그 은행빚이 리즈의 발목을 잡아가는 모양새였다.

기타 영입과 뻘짓을 나열하자면
  • 로비 킨: 영입 - 인터 밀란 1200만 파운드, 이적 - 토트넘 핫스퍼 700만 파운드;
  • 올리비에 다쿠르: 영입 - 에버튼 720만 파운드, 이적 - AS 로마 330만 파운드;
  • 로비 파울러: 영입 - 리버풀 1100만 파운드, 이적 - 맨체스터 시티, 기본 이적료 300만 파운드+출장 횟수 및 성과에 따른 추가 옵션 300만 파운드;
  • 마이클 브리지스: 영입 - 약 1천만 파운드에 이적, 자유계약으로 방출.
  • 세스 존슨: 영입 - 더비 카운트 1000만 파운드, 이적 - 자유계약. (당연히 0파운드)
  • 리 보이어: 리버풀의 900만 파운드 이적 실패, 02-03 시즌 후 자유계약.
  • 이언 하트: 바르셀로나의 1200만 파운드 이적 거절, 03-04 시즌후 자유계약으로 레반테 행.
  • 아론 레넌: 토트넘으로 100만 파운드에 방출. 아론레논은 EPL시절이 아닌 챔피언쉽 강등 이후 이적한 케이스로 이 목록에 넣기에는 무리가 있다. 선수본인 자체가 리즈에서 탈출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그래서 레넌에 대해 리즈 서포터들은 극렬한 반감을 보이는 편.
  • 대니 밀스: 맨체스터 시티로 이적. 문제는 밀스의 높은 주급 중 상당수를 리즈가 내 줘야 했다.
  • 조나단 우드게이트: 뉴캐슬로 700만 파운드에 이적. 당시 잉글랜드의 중앙 수비수로서 존 테리, 웨스 브라운, 레들리 킹과 비견되는 유망주 치고는 낮은 가격이었다.

결국 03-04 시즌이 되어가며 선수진의 깊이는 너무나도 얇아져 버렸고, 그 선수진을 보충하기 위해 디디에 도미, 라민 사코, 주마나 카마나, 시릴 샤퓌스, 살로몬 올렘베, 호케 주니오르, 저메인 페넌트 등의 선수들을 임대했으나, 이름만 듣고 풋볼 매니저의 사기선수로 착각하면 안된다. 성공한 선수는 저메인 페넌트 뿐. 특히 호케 주니오르는 2002 월드컵 당시 브라질 국가대표 멤버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처참한 수비력을 보여주며 팀의 핵심 구멍으로 활약해 버리게 된다. 게다가 03-04 시즌 당시 리즈의 선수진은 너무나도 얇았기에 부진함의 극을 달리던 호케 주니오르를 대체할 만한 중앙 수비수 조차도 없어서 눈물을 머금고 계속 출장하게 되었다.[13]

03-04 시즌 당시에도 스미스-비두카의 공격진과 제임스 밀너-저메인 페넌트의 양 윙은 프리미어 리그에서도 수준급인 실력이었으나 미드필더와 수비수의 큰 공백을 결국 극복하지 못하며 결국 팀은 03-04 시즌 말에 아스날에게 0-5로 패배하며[14] 풋볼 리그 챔피언십으로 강등당했다.

강등 직후 부채를 갚기 위해 선수들을 싼값에 팔고 주급 부담을 줄이기 위해 계약이 만료된 선수를 계속 방출하였지만 빚을 갚기에는 터무니없이 적었다. 리즈는 재정 파탄을 선고받았고 FA로부터 승점 감점이라는 제재까지 당하게 된다. 이때 자신들의 홈구장인 엘런드 로드(Elland Road)와 훈련장 소프 아크도 리즈 시에 매각되었으나 매각 비용과 같은 액수의 바이백 조항을 달아놓긴 했다. 그리고 엘런드 로드는 13년이 지난 2017년에서야 다시 구단 소유로 돌아왔다. 리즈 유나이티드는 2004년 부터 2017년까지 연간 1.7m 파운드를 임대료로 지불했었다.

2부 리그 초기인 04-05 시즌에는 리즈가 내 줄 수 있는 알량한 주급을 받아들여줄 수 있는 자유계약 선수들을 중심으로 영입하여 간신히 구색을 맞추었으나, 당시 리즈의 임시 구단주였던 매켄지 교수가 훈련장 및 구장 매각, 빚들의 탕감 및 상환 기간 연장, 선수단의 주급 구조 개선, 티켓값 상승(...)등 다양한 방법을 총동원한 끝에 1억 파운드의 빚을 3천만 파운드 수준으로까지 낮추는 데 성공하였으며 유스 선수들을 올려가면서 팀의 체질 개선에 힘쓴 결과, 풋볼 리그 챔피언십 첫 시즌에 안정적으로 남는 데 성공하였다.

그리고 매켄지 교수는 리즈의 재정 안정을 어느 정도 달성한 후 새로이 구단주로 첼시를 말아먹은 전력[15]이 있는 켄 베이츠 산타 클로스에게 빚을 승계하는 조건(1982년에 첼시 FC도 이렇게 샀었다.)으로 1천만 파운드에 팀을 넘기게 된다. 05-06시즌이 되면서 05-06 시즌끼지는 플레이오프권까지 진출하는 등 다시 1부 리그 승격의 희망을 가지게 하기도 하였으나,가 아니라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으며 프레스턴을 꺾고 플레이오프 결승에서 왓포드를 만났으나 왓포드에게 3:0으로 져 승격에 실패. 06-07 시즌 중간에 당시 주장이던 케빈 니컬스의 이적요청 니콜스는 결국 친정인 루튼으로 복귀한다. 이적요청도 루튼이 어려우니 루튼으로 돌아가겠다는게 표면적인 이유였다. -감독인 케빈 블랙웰과 전 주장이었던 폴 버틀러 사이의 라커룸 주도권 갈등, 케빈 블랙웰 이후 신임 감독 및 수코였던 데니스 와이즈 및 거스 포옛의 동시 이적- 이적의 이유는 뉴캐슬 유나이티드의 총디렉터를 맡기 위해서- 등 별별 사건이 동시에 터지며 추락을 거듭하여 풋볼 리그 챔피언십 2006-07 시즌을 22위로 마감하며 3부 리그인 풋볼 리그 1까지 강등당하게 된다. 3부 리그에서 가장 경기장이 큰 팀이라는 칭찬 아닌 유명세까지 받았을 정도였다.[16]

게다가 2007년에는 3천 5백만 파운드의 빚을 막지도 못해서 부도를 내기도 하는 등 그야말로 나락 그 자체로 떨어져가는 분위기였다.

이런 절망 속에 몇몇 해외 구단 인수 떡밥이 돌기도 했다. 풋볼 리그 챔피언십으로 강등당한 왓포드와 같이 하위 리그로 강등당한 구단을 좀 더 싸게 사면서도 좀 이름값이 있는 구단으로 거론되기도 했지만 거의 소문일 뿐이었다.

그리고 켄 베이츠에 이어 바레인 투자은행의 살라 누르딘에 이어 맞이하게 된 구단주인 마시모 첼리노의 시기가 오면서 팀이 또 한번 요동치고 있다.

새로운 구단주가 된 마시모 첼리노는 과거 칼리아리 칼치오 구단주 시절에도 감독을 자주 갈아치우기로 악명이 높았던 구단주인데 역시나 리즈에 부임한 1년 반 동안 6명의 감독을 갈아치웠다.
  • 브라이언 맥더못: ~2014년 4월 맥더못의 경우 첼리노가 오기전에 이미 임명된 감독이었다.
  • 데이빗 호커데이: 2014년 7월~8월[17]
  • 디르코 밀라니치: 2014년 9월~10월
  • 닐 레드피언: 2014년 11월~2015년 5월[18] 리즈에서 오랜기간 코치 및 수석코치를 맡은 인물로 이 당시도 임시체제였다.
  • 우베 뢰슬러: 2015년 7월~10월
  • 스티브 에반스: 2015년 11월~

게다가 2014년에 이탈리아, 특히 자신이 구단주로 있던 세리에 A의 자원들을 주로 영입하였는데 그렇게 들어온 선수들이 너무 많아서 팀에 융화되지도 못하였고 실력도 어중간했다. 그러다보니 수적으로는 풍성한 스쿼드였으나 질적으로는 2013-14 시즌 득점왕이던 로스 맥코맥의 공백을 메우는데에도 실패하며 팀이 하위권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그나마 첼리노 구단주가 세금 포탈 문제로 법정 다툼중이고, 리즈를 인수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까지 확실한 인수 세력이 등장하지는 않다보니 현재까지는 구단 내의 문제가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상태.

6.1. 길었던 희망 고문

이러니 저러니 힘들게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지난 시즌 비록 승격 PO에서 패배하여 승격은 실패했지만 예전 영광을 되찾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보게되었다. 09-10 시즌 현재 3부 리그에서 1경기를 덜 치뤘지만 2위 찰튼과 승점 4차를 유지하며 1위를 달리고 있다. 거기다 FA 컵에서 영원한 라이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만날 가능성도 있어 많은 축구 팬들을 설레게 하고 있다.

2009년 12월 8일. 캐터링 타운과의 FA 컵 3라운드 재경기에서 5-1로 대승을 거두고 6년 만의 로즈 더비에서 1-0 승리를 거두기도 했다. 그리고 대망의 09-10 시즌 최종전. 한 명이 퇴장당한 상태에서 브리스톨 시티에 2-1 역전승을 거두며 밀월을 승점 1점 차로 찍어 누르고 챔피언십(2부 리그) 승격에 성공했다. 승격 확정 후 선수, 스태프, 관중할 거 없이 운동장에 나와서 뒤엉켜 기뻐하는 모습에는 기쁨을 넘어서 한이 서려있다는 것이 느껴질 정도.

2010년 11월 8일 15라운드까지 진행 중인 상황에서 2부 리그 승격 후 첫 시즌에서 승점 23점으로 8위에 올라 있다. 3위와 승점 차이가 5점, 4위와는 1점 차이로 엎치락뒤치락하는 사이로, 첫 시즌에 승격을 기대하기는 무리겠지만 다른 승격 동지인 밀월이 중하위권에서 구르는 것과 달리 희망적인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다.[19] 다만 번리 원정 5:2 패배, 프레스턴 홈경기에서 4:6(...) 패배, 카디프와의 홈경기 0:4 패배 등 이따금씩 대량실점하는 것이 문제점이었다.

카디프전 패배 이후 6승 3무의 상승세가 이어지면서 22R 크리스마스 기준으로는 2위까지 올랐다. 특히 선두 QPR을 상대로 그라델의 2골로 2:0 완승을 거두기도 했다.

2011년 1월 20일 27라운드까지 치룬 상황에서 5위로 선전하고 있다. 승격 가시권인 2위 스완시 시티에 2점 뒤진 5위라 희망이 있긴 하지만 득점만큼 실점도 많아 허약한 수비진 때문에 치고 올라가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득점은 공동 1위 실점도 4위...득실율은 +4). 뭐 3~6위까진 플레이오프를 치루기에 지금 순위만 지켜도 승격 희망이 있긴 하지만.

10-11 시즌 전에 팀의 주포였던 저메인 벡포드를 잃었으나 브래들리 존슨 및 닐 킬케니 등의 선수들이 각성하고 팀의 중심인 로컬 보이 조니 호슨이 꾸준히 활약하고 있고, 유망주 및 챔피언십 리그의 타 팀의 쩌리로 영입한 선수들의 포텐이 터지면서 승격 후 첫 시즌이지만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그만큼 타 팀에서 리즈의 핵심 선수들을 이적시키려 하는 모습을 보여서 리즈 팬들은 기대감 반, 불안감 반으로 윈터 브레이크를 지켜보고 있는 듯.

불행 중 다행으로 팀의 핵심 선수들은 지켜내는 데 성공했으나 영입도 임대 영입을 제외하고는 딱히 없는 편. 여전히 득점력은 후덜덜하나 실점도 다른 승격 경쟁팀들보다 훨씬 많아서 리즈 팬들은 매일매일 앨런드 로드 극장을 관람하는 중.

결국 2010-11 시즌은 막판의 수비 조직력 불안 문제로 인해 승격 경쟁에 필요한 승점을 얻어내지 못했고 최종전에서 챔피언십 우승팀 QPR 상대로 2:1 승리를 거두면서 유일하게 더블을 기록했지만 팰리스 원정에서 3:0 대승을 거둔 6위 노팅엄 포레스트에 승점 3점차로 밀려 7위로 시즌을 마감, 승격은 다음 시즌 이후로 미루어지게 되었다. 39라운드[20]까지 5위에 올라있었으나 40~44라운드에서 2무 3패에 그친 것이 뼈아팠다.[21] 리그에서 81득점을 기록하며 노리치 시티 다음으로 득점수가 많으나 70실점은 리그 상위권 팀 중 가장 많은 실점수였다.

시즌 종료 후 수비 불안의 주범으로 지목받던 골키퍼 카스퍼 슈마이켈을 방출시키고, 야망이 크던 브래들리 존슨과 닐 킬케니를 방출시켰으나 전 토트넘, 포츠머스 출신 수비형 미드필더 마이클 브라운을 영입하였고, 팀 내 주전 윙어 둘을 지켜내는데 성공하며 팀의 밸런스를 맞춰가며 프리시즌에서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여담으로 리즈의 공격수인 다비데 솜마가 6개월짜리 부상을 끊었는데 이 부상 사실을 공식 홈페이지에서 알리기 전에 자신의 트위터에서 먼저 이야기해버렸다. 결국 감독이 이 사실을 알게 된 후 분노하였고, 이 사건 후부터 리즈 선수들은 모두 자기 트위터를 삭제하였다.

2012년 9월, 영국 언론에 따르면 바레인 지역 투자은행인 걸프 파이낸스 하우스가 5천만 파운드에 리즈의 영입을 시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리고 걸프 파이낸스 하우스가 성명을 통해 리즈를 인수하는 내용의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2015년 2월에는 헐리우드 스타이자 리즈의 서포터인 러셀 크로우가 리즈 인수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트위터에서 이야기하기도 했으나 8월에 다시 트위터를 통해 '리즈 인수를 하지 않는다'라고 밝혔다. 리즈 인수를 할 투자자를 구하기가 어려웠고 러셀 크로우 개인도 럭비 팀에 투자하다 보니 리즈까지 손댈 여력이 되지는 못하는 상황인 듯.

2015년 4월에는 에너지 드링크 회사인 레드불에서 인수 준비 중이라는 기사가 떴다.[22] '리즈 레드불스'되는 건 아니겠지... 하지만 레드불 측이 직접 '투자계획이 없다'고 밝히면서 끝.

2017년 3월에는 말썽 많던 구단주였던 마시모 챌리노가 물러나고 안드레아 라드치아니가 새 구단주가 되었다. 그리고 2017년 6월에는 홈 구장인 엘런드 로드를 다시 구입하는 데 성공하였다. 예전처럼 임차료 내며 경기장을 쓰는 신세는 덜게 되었고 홈 구장을 다시 사올 수 있을 만큼 팀의 재정상황에 숨통이 트였다는 것으로 볼 수 있을 듯.

거기다 2018-19시즌 마르셀로 비엘사 감독을 부임시키며 팀은 승격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으나 승격 실패.

2019-20시즌엔 1위를 수성한 끝에 우승하면서 마침내 승격을 이루어냈다!

7. 최근 성적

7.1. 2011-12 시즌

웨스트 햄, 카티프 시티 등의 팀들이 챔피언십에서 승격을 노리고 상당한 영입을 벌이는 동안 리즈는 선수 방출한 양에 비해서 영입을 하는 데 실패하였다. 마이클 브라운을 자유계약으로 영입하고, 골키퍼를 카스퍼 슈마이켈에서 앤디 로네건과 폴 라훕카로 교체하고, 약점으로 지목되면 측면 수비수를 셀틱 FC에서 대런 오데아를 임대 영입하는 데에서 그치고 만다.

팬들의 우려대로 챔피언십 리그 첫 경기인 사우스햄튼 전에서 1-3으로 털리고, 다음 경기인 미들즈브러와의 경기도 답답한 경기 끝에 0-1로 패배. 물론 11-12 시즌 챔피언십이 약팀들이 강팀들을 잡아버리는 혼돈의 카오스 상태이긴 하지만 어쨌든 초반 2연패를 당한 리즈 팬들은 몇 년간 간신히 벌어놓은 이적료 7M을 그대로 경기장 보수에 돈을 꼬라박아버린 켄 베이츠를 까야 하나 고민중.

그래서인지 초반에는 무척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돈도 없어서 주전 선수들을 죄다 팔아먹으면서 선수 수급도 전혀 못하는 덕분에 9월 8일 5차전까지 강등권과 1점차인 19위로 주저앉아서 또 3부 리그 강등당할 불안함을 보여줬으나 그 뒤로 5승 2무를 거두며 강등권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승격권으로 도무지 들어가지 못하여 올 시즌도 승격 희망은 사실상 접어버린 듯 싶다. 20경기가 넘도록 9~10위 중위권을 유지했는데 6위 플레이오프와 3점차밖에 승점이 떨어지지 않아서 리즈 팬들은 승격 희망을 가지게 했지만 이게 좀처럼 승점을 좁히지 못했다. 즉 리즈가 이기면 다른 팀들도 이기고 지면 다른 팀들도 지면서 이 순위는 그대로 유지되었고 막판 40, 41차전을 패하면서 6점차로 벌어졌다. 곧이어 연패를 기록하면서 44차전에선 61점으로 12위로 추락해버렸다. 남은 2경기를 이겨도 6위 71점을 따라잡을 수 없기에 올 시즌도 2부 리그에 남게되었다. 결국 더 이상 희망이 없어지자 남은 경기를 지면서 46차전이 끝난 2011-12 챔피언십 최종 순위는 14위로 마무리했다.

7.2. 2012-13 시즌

31차전까지 리그 12위로 전 시즌이랑 별다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냥 2부 리그 잔류 중위권 안착 가능성이 큰 현실. 중간에 닐 워녹 감독을 경질하고 레딩 FC에서 경질된 브라이언 맥더못 감독을 선임했지만 승격 경쟁은 무리였다. 42차전까지 리그 11위로 이번 시즌도 2부 리그 잔류가 확정되었다.

7.3. 2013-14 시즌

시즌 개막 전 애증의 켄 베이츠가 바레인의 사업가 살라 누루딘에게 팀을 넘겼다. 16차전까지 리그 5위를 기록하며 모처럼 승격 희망이 보이는 듯 하지만 10위와 승점 차가 3점. 뭐 4위와 승점 차도 2점이라 더 오를 가능성도 있지만 언제라도 뒤바뀔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23경기 17골을 뽑아낸 로스 매코맥의 활약으로 23라운드 반환점을 돌며 승점 35점으로 7위를 확보 중. 6강 플레이오프권까지는 단 한 골의 득실차만이 남아 있다. 하지만 셰필드 웬즈데이에게 0-6 대패를 당한 것을 비롯한 부진이 이어지면서 28차전에는 11위까지 추락해버렸고 6위와 승점차도 8점으로 벌어져 이번 시즌도 힘겹게 되었다. 결국 계속 순위는 하락하면서 41차전까지 16위를 기록하며 올 시즌도 승격 좌절.
4월에는 구단주가 전 카타니아 구단주인 마시모 첼리노로 바뀌었고, 새 구단주가 바뀌면서 브라이언 맥더못 감독은 6월에 상호 합의에 의한 계약 해지로 팀을 떠났다.

풋볼 리그 컵은 3라운드에서 강호 뉴캐슬을 만나 2-0 패배하며 탈락. FA 컵도 64강전에서 리그2(4부 리그) 로치데일에게 0-2로 패하면서 일찌감치 탈락했다.

7.4. 2014-15 시즌

리즈 유나이티드 FC/2014-15 시즌 문서 참고.

7.5. 2015-16 시즌

리즈 유나이티드 FC/2015-16 시즌 문서 참고.

7.6. 2016-17 시즌

시즌이 시작되면서 리즈 유스 출신 유망주인 알렉스 모왓, 루이스 쿡, 찰리 테일러를 향한 비드가 있었던 듯 하나 모왓은 재계약에 서명하면서 지켜냈고 아직 계약이 남은 테일러는 지켜냈으나 유망주 루이스 쿡을 본머스에 £7m에 팔았다. 주장이던 솔 밤바는 9월 '개인적인 사정'을 이유로 계약을 해지했고, 이후 카디프로 자유 이적했다.

짧은 연승과 짧은 연패를 오가며 22라운드 기준 오랜만에 승격 플레이오프권인 5위까지 올랐다. 다만 12위 반슬리와도 승점 7점밖에 차이나지 않을 정도로 순위표가 촘촘한 상황이라 이후의 성적은 두고 볼 필요가 있다. 이후 플레이오프권에서 밀려나지 않은 채 39라운드 기준 레딩과 4-5위를 경합하고 있어서 플레이오프 진출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14-15 시즌의 리즈가 화끈한 공격력으로 부실한 수비진을 커버하며 승점을 벌었고 15-16 시즌의 리즈는 공격력은 약해졌는데 수비가 헐거워져서 매 경기 1실점은 깔고가몀서 승점을 날려먹었다면 이번 시즌의 리즈는 초반에는 다소 수비 조직력이 흔들려서 애를 먹었으나 처음 6경기 이후로 수비가 단단해지면서 승점을 효율적으로 먹고 있는 중. 그리고 이번 시즌에는 유스팀 소속이었던 17세의 호나우두 비에이라[23] 선수의 포텐이 터지면서 루이스 쿡의 공백을 메워주고 있다. 특히 뉴질랜드 대표 공격수인 크리스 우드가 꾸준한 활약으로 득점 선두에까지 오르며 승격을 향한 희망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시즌 막판 6경기에서 1승만을 기록하는 부진에 빠지며 2경기를 남긴 채로 7위로 밀려나 버렸다. 6위 풀럼에게 3점 차로 역전을 당했는데, 설상가상으로 6위권 경쟁팀들인 셰필드 웬즈데이는 5연승, 풀럼은 4연승을 기록하며 리즈의 승격 가능성은 점점 희박해지고 있다. 45라운드에서 노리치에게 0-3으로 뒤지던 경기를 저력을 발휘해 3-3으로 따라붙었으나, 이날 셰필드 웬즈데이는 이기고 풀럼은 비기면서 이들과 승점 차를 좁히는 데 실패했다. 1경기만이 남은 가운데 6위 풀럼에게 승점 3점 차에 골 득실이 14점이나 뒤지게 되어 승격 무산이 거의 확정적이다.

최종순위는 7위로 다음 시즌에도 EFL 챔피언십에 남게되었다.

3월에 마시모 첼리노 구단주가 물러나고 새 구단주로 안드레아 라드리차니가 첼리노의 지분을 흡수하여 새 구단주가 되었다. 그리고 시즌이 끝난 후 구단은 재정악화 당시에 리즈 시에 팔았던 엘런드 로드를 다시 바이백으로 구입하였다.

7.7. 2017-18 시즌

지난 시즌에 7위까지 팀을 올린 개리 몽크 미들즈브러 FC의 감독으로 떠난 뒤 새 감독으로 토마스 크리스티안센을 선임했다. 크리스티안센은 선수시절에는 바르샤 출신 스트라이커였고, 지난 시즌에는 키프로스 소속 프로 구단인 아포엘에서 지휘봉을 잡고 유로파 16강까지 팀을 올린 경력이 있다. 함부르크의 스트라이커 피에르미셀 라소가를 임대 영입했다.

2018년 1월 7일에 열린 FA컵 3라운드 에서 EFL 리그2의 뉴포트 카운티에 2:1로 패하며 탈락했다.

1월 24일에 6개월간의 디자인 과정과 10000명의 팬들의 감수를 거쳤다는[24] 새 엠블럼을 공개했는데, 이게 보통내기가 아닌지라 한시간만에 몇천명이, 하루만에 7만7천명이 새 엠블럼을 반대하는 서명운동에 참여를 했을 정도로 반응이 좋지 않았다. 그 외에도 애스턴 빌라 제니트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공식 트위터가 대놓고 조롱하는 트윗을 올리는 등 전세계적으로 웃음거리가 된 끝에 결국 하루만에 디자인을 재고해 보겠다며 철회하겠다고 하고 기존 엠블럼을 18-19시즌까지 사용을 연장하겠다고 발표했다. 그 전 시즌의 유벤투스 엠블럼에 대한 역반응을 뛰어넘어, 13-14시즌의 에버튼 FC 엠블럼 이후 최악의 디자인 개편이었다는 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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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의 엠블럼 시안.

초반에는 돌풍을 보이기도 했지만 박싱데이 전후로 연패의 늪에 빠지며 감독을 해임하고 폴 헤킹버텀으로 교체하였으나, 큰 반전을 보이지 못하며 최종 리그 순위는 13위에 머무르며 마쳐서 다음 시즌도 챔피언십에서 보내게 되었다.

시즌 후 폴 헤킹버텀을 해임하고 마르셀로 비엘사를 2년 계약으로 선임했다.

7.8. 2018-19 시즌

자세한 내용은 리즈 유나이티드 FC/2018-19 시즌 문서를 참조하기 바랍니다.

7.9. 2019-20 시즌

파일:리즈 유나이티드 FC 100주년 로고.svg
리즈 유나이티드 FC 100주년
1919~2019
파일:1280px-Leeds_United_Champions.jpg
2019-20 EFL 챔피언십 우승
자세한 내용은 리즈 유나이티드 FC/2019-20 시즌 문서를 참조하기 바랍니다.

7.10. 2020-21 시즌

자세한 내용은 리즈 유나이티드 FC/2020-21 시즌 문서를 참조하기 바랍니다.

7.11. 2021-22 시즌

자세한 내용은 리즈 유나이티드 FC/2021-22 시즌 문서를 참조하기 바랍니다.

7.12. 2022-23 시즌

자세한 내용은 리즈 유나이티드 FC/2022-23 시즌 문서를 참조하기 바랍니다.

3년만에 결국 재강등이라는 결과를 낳았고, 문제는 강등이 된 이후인데 안드레아 라드리차니 구단주는 UC 삼프도리아를 인수하기 위해 사실상 리즈 유나이티드와는 관계가 끝날 것으로 보였다. 문제는 라드리차니가 자금이 없어서 삼프도리아 인수 자금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엘런드 로드를 담보로 돈을 대출했다는 것. 이것이 현실화되면 리즈는 또다시 지난 강등 이후 엘런드 로드의 소유권을 잃은 상황을 그대로 반복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7.13. 2023-24 시즌

자세한 내용은 리즈 유나이티드 FC/2023-24 시즌 문서를 참조하기 바랍니다.

[1] 위너스 컵 결승전 상대는 AC 밀란이었다. 추후 당시 주심이었던 그리스인 심판이 밀란으로부터 뇌물을 받았음이 공식조사로 밝혀졌다. 심판은 평생 자격정지의 징계를 받았으나 밀란은 아무런 징계도 받지 않았다. 즉 불공정한 심판이 개입된 결승전이었다. 또한 뇌물 제공자가 밀란이었음을 감안하면 우승컵 박탈이 당연하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리즈팬들은 당시 경기를 두고 우승컵을 박탈당했다고 생각한다. [2] 당시 FA컵 우승팀은 2부 소속이었던 선덜랜드 AFC였고, 결승골을 넣은 선수가 이안 포터필드였다. [3] 이 사건과 관련된 영화로는 2009년에 나온 '댐드 유나이티드'(The Damned United)라는 영국 영화가 있다. [4] 이 후 브라이언 클러프는 노팅엄 포레스트의 감독으로 부임했고, 그곳에서 UEFA 챔피언스 리그 2년 연속 우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운다. 하지만 여기도 클러프 사임 이 후 3부 리그 강등까지 가면서 추락했던 게 리즈랑 판박이다. [5] 당시 하이라이트 장면을 보면 피터 로리머의 결정적 골이 오프사이드로 무효가 되는 등 바이에른에게 유리한 판정이 많았다. [6] 로리머의 골이 오프사이드가 된 것 외에도 베켄바우어의 핸드볼을 페널티킥으로 인정하지 않은것과 알란 클라크를 쓰러뜨린것을 두고도 페널티킥을 선언하지 않은 것은 오심이라는 의견이 대체적이다. [7] 이 때의 핵심 선수가 바로 에릭 칸토나였다. [8] 리버풀은 최종전에서 18위였던 리즈의 지역라이벌 브래드포드 시티 AFC에 0:1로 패하며 3위에서 4위로 내려갔다. 이로 인해 브래드포드는 윔블던을 제치고 극적으로 잔류에 성공했고, 윔블던은 이후 1부에 복귀하지 못하고 해체되었다. [9] 하지만 당시 4강전에서 만난 터키 갈라타사라이 SK에게 1무 1패(2-2, 0-2)로 탈락했는데 터키 원정에서 리즈 서포터 2명이 칼에 맞아 살해 당하는 일이 터져 국제적으로 더 알려지게 된다. 범인인 갈라타사라이 서포터들의 증언으론 터키 국기와 갈라타사라이 깃발을 밑닦는 자세를 하며 도발했다고 한다. 두 팀은 이 사건 전후로 만난 적이 없음에도 FM시리즈에는 리즈와 갈라타사라이를 라이벌로 기재할 정도. 리즈를 제치고 결승에 올라간 갈라타사라이는 아스날까지 제치고 대회 우승을 거둔다. [10] 당시 잉글랜드에 UEFA 챔피언스 리그 3팀이 나갈수 있었다. 그러나 3팀임을 감안해도 프리미어 리그 출범 이후로 우승은 커녕 챔스 진출도 1회뿐인지라 리즈의 프리미어 리그 시절이 다소 미화된 것도 사실이지만 이 시절을 오늘날 리즈 시절로 회상하는 것은, 단순히 성적이 좋았기 때문이 아니라 당시 리즈가 20대 초반이 주축이 된 경험이 미천한 선수들로 일군 패기의 성과를 추억하는 것으로 단순히 과하게 미화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 [11] 이 당시 영입때 벌어진 사태는 다음과 같다. 큐얼의 계약이 1년 남았고, 괜히 안 팔면 얘 성격을 볼 때 그냥 자유계약으로 나갈 거 같아서(2002-03 시즌에 리 보이어를 리버풀로 이적시키려다가 실패하여 자유계약으로 풀려 버린 선례가 있었다.) 조금이라도 돈을 받고을 팔려고 시도 → 리버풀이 리즈의 재정 상황을 알고(급전이 필요한 상황) 일시불 700만 파운드로 가격을 후려침 → 리즈가 이적료를 좀 더 받아내려고 첼시, 맨유와 이적료 경쟁을 붙이려 시도함 → 큐얼이 이 사실을 알고 언론에 '리버풀 이외의 다른 팀의 이적 제의는 거절할 것임'이라고 언플을 함. → 큐얼의 언플을 보고 리버풀이 500만 파운드로 가격을 더 후려침, 맨유, 첼시는 700만 파운드를 제시. → 큐얼이 리버풀과의 협상만 동의함. 결국 눈물을 머금고 키웰을 리버풀로 500만 파운드에 판매 → 큐얼이 이적료 중 자신 및 에이전트에게 돌아갈 돈으로 200만 파운드를 내놓으라고 소송을 검 → 결국 리즈가 건진 돈은 300만 파운드. 재정이 악화된 상황에서 벌어진 눈물겨운 상황이다. [12] 세스 존슨의 이적 당시 존슨의 에이전트는 주급으로 18,000 파운드를 요구하려 했으나 구단측이 25,000 파운드를 주급으로 제시했다고 밝힐 정도. 문제는 이 선수의 주급은 유망주라서 저렴한 편이었고(2010-11 시즌 현재 리즈의 핵심 선수 4명의 주급을 합쳐도 존슨의 주급보다 저렴하지만), 웬만한 선수들의 주급이 5~6만 파운드 수준이었다. [13] 주니오르는 임대 복귀한 후 AC 밀란에서도 계속 구멍 노릇을 해서 레버쿠젠으로 방출당한다. 레버쿠젠에서는 영입 직후에 잠깐 반짝하나 그 이후에 또 구멍이 되었다. [14] 티에리 앙리가 4골을 집어넣으며 맹활약한 경기로도 유명하다. 이 경기로 앙리는 아스날에서 150번째 골을 달성했다. [15] 하지만 말아먹은 것만 강조되지만 이 양반이 구단주로 있던 시절 첼시가 중상위권 강호였으며 위너스컵 우승 및 리그 4강 진입과 같은 성적도 거뒀다. 물론 빚이 쌓이고 쌓이면서 결국 첼시를 로만 아브라모비치에게 팔게 된다. [16] 엘런드 로드 경기장은 관중석이 4만석이 넘었는데 이는 3부 리그에서 유일했다. 참고로 1979~1980년 UEFA 챔피언스 리그 전신인 유러피언 컵을 2년 연속 우승하며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렸다가 리즈와 같이 3부 리그 소속이던 노팅엄 포레스트 경기장 조차도 3만 석이 되지 않는다. 경기장을 고치면서 39,600석으로 줄었지만. 그러다가, 2017~18시즌에 선덜랜드 AFC가 3부리그로 강등당하면서 5만석 가까운 49,000석 경기장을 가진 선덜랜드가 3부리그에서 가장 큰 경기장을 보유한 구단이 되어있다. [17] 논 리그 출신의 무명 감독이었고, 6경기 말아먹고 짤렸다. [18] 리즈에서 임시 감독만 3번 했다. [19] 1위로 승격한 노리치는 7위 [20] 승격 경쟁팀이었던 노팅엄 상대로 4:1 대승을 거뒀을 시점이다. [21] 그중에는 하위권 팀 더비에게 당한 2:1 역전패나 3부리그 강등 위기의 크리스탈 팰리스 원정에서 당한 1:0 패배도 있었다. [22] 레드불은 뉴욕 레드불스를 포함, 오스트리아, 독일, 가나 등 여러 곳의 축구단을 운영 중이다. [23] 이름만 들으면 를 모두 갖춘 완벽한 축구 선수의 이름인데, 이 선수는 1998년생 기니비사우 출신으로 아버지가 실제로 호나우두의 이름을 따 아들의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이 선수의 쌍둥이의 이름은 호마리우인데 호마리우 역시 리즈 유스 팀에서 뛰고 있다. [24] 이후 밝혀진 바에 따르면 실제로 디자인을 감수받은 것이 아니라, 리즈 구단 하면 가장 의미 있는 것이 무엇인지 묻는 수준의 질문을 던져서 가장 많이 나온 대답이 '팬들'이자 그걸로 디자인을 한 것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