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 대전의 일본군 군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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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제국 해군의 항공모함 계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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龍驤 |
1. 개요
일본 제국 해군의 정규항공모함 류조( 龍 驤).1929년 11월 26일 진수, 1933년 5월 9일에 취역해서, 1942년 8월 24일에 침몰한 일본 제국 해군의 정규항공모함이다. 사이즈만 보면 경항공모함으로 보이고, 함대 컬렉션 등의 게임에서 경항공모함으로 분류되는 바람에 오해받고 있지만 당시 기준으로는 분명히 정규항공모함으로 분류되었으며, 실전에서도 그렇게 쓰였다.
이 항공모함의 아이덴티티(?)이자 치명적인 결점이 바로 지나치게 균형을 깨트린 구조이다. 하부(선체)에 비해 상부(격납고, 함교, 비행갑판 부분)가 말도 안 되게 높다. 사람이 밟고 있는 곳 밑을 하부, 그 위를 상부로 보면 왜 구조가 균형이 맞지 않는다고 하는지 알 수 있다.
2. 제원
전장 | 180m |
전폭 | 20.3m |
흘수선 | 5.6m |
기준배수량 | 10,600t |
만재배수량 | 12,732t |
최대출력 | 65,000hp |
최대속력 | 29kt |
항속력 | 14kt로 10000 해리 |
함재기 수 | 48기 |
승무원 | 924명 |
3. 상세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에서 일본의 해군력은 영국과 미국의 6할로 제한되었고, 항모 역시 예외가 아니어서 8만 톤의 할당량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일본은 이 할당량을 아카기와 카가의 개수작업으로 대부분 써 버렸고, 이대로는 영미에 대항할 수 없다며 고민에 빠졌다.그러나 일본은 배수량이 1만 톤 이하인 항모는 몇 척을 만들든 조약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점을 이용해서 1만톤 이하의 소형항모를 전력화할 계획을 세웠다. 영국과 미국처럼 커다란 항모를 여러 척 운용할 수는 없는 상황에서 작은 항모를 무진장 뽑아내서 대항하려고 한 것. 원래는 와카미야를 대신하는 신형 수상기 모함이었던 류조는 그런 이유로 계획이 변경되어 항공모함으로 건조되었다.
후루타카급 중순양함의 선체를 개조한 후 평갑판과 격납고를 얹은 형상으로 만들어졌으며, 본래 배수량이 8천 톤 남짓이라 조약의 제한에는 여유가 어느 정도 있었다. 그래서 군령부는 본래 20대 탑재할 예정이었던 함재기를 두 배로 늘리라고 요구하였다. 무리하게 격납고를 한 층 더 올리는 개조에는 이런 배경도 있었다.
그런데 류조가 거의 완성되어 가던 무렵 체결된 런던 해군 군축조약으로 이 계획 자체가 흔들리고 만다. 1만 톤 이하 항공모함도 조약으로 항모 제한에 들어가버렸기 때문. 소형 항모를 여러 척 만들기가 불가능해졌고, 한 척으로는 이도저도 안 되는 계륵이었다. 결국 당초 계획했던 운용이 불가능해진 류조는 졸지에 애물단지 신세로 전락했고, 궁여지책으로 실전에서 어떻게든 써먹을 수 있는 수준으로 만들려는 개조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이미 선체가 완성된 상황에서 수평으로 사이즈를 늘릴 수는 없었으므로 작은 선체 위에 수직으로 쌓아올리는 방식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함재기 탑재공간을 늘리기 위해 격납고를 어거지로 한 층 더 올려버리면서 무게중심이 말도 안 되게 위쪽으로 쏠려, 흡사 전국시대의 세키부네를 연상시키는 언밸런스한 디자인으로 완성되고 말았다.
그런데 억지로 격납고를 2층으로 만든 결과, 배의 무게중심이 올라가고[1] 부력도 감소했다. 게다가 메인 연료탱크가 함의 가장 아래쪽 중심에 설치되었는데, 여기에 든 연료를 써 버리면 아래쪽의 무게가 줄어 안 그래도 위쪽으로 쏠린 무게중심이 더욱 위쪽으로 올라갔다. 그래서 메인 연료탱크에 들어간 연료를 절대로 사용할 수 없는 엄청난 모순에 처하고 말았다.[2] 배의 무게중심이 올라가면 왜 문제인가? 배가 급선회라도 하면 옆으로 쓰러져서 침몰한다! 겨우 1만 톤짜리 배를 정규항모로 써먹으려고 무리하게 2층 격납고를 붙였기에 벌어진 참사였다.
결국 일본군은 3년식 14cm포를 보다 가벼운 12.7cm 고각포로 바꾸고, 연장고각포 2기를 철거하여 고각포의 수를 12문에서 8문으로 줄였다.[3] 배에 벌지를 붙여서 배의 부력을 늘리고, 기관을 줄이고, 배 밑바닥에 밸러스트를 약 550톤 설치하는 등의 개조를 하여 무게중심을 낮추는 데 성공했다. 또한 측하부를 향해 나있는 연돌의 위치를 높여서 바닷물이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그런 탓에 오히려 속력은 당초 계획보다 떨어졌만 어떻게든 항해는 할 수 있을 최소한의 안정성은 확보되었다.
결국 그렇게 1931년 4월 2일 진수를 거쳐 1933년 5월 9일에 준공. 이후로도 토모즈루 사건이 원인이 되어 복원성을 높이기 위해 벌지를 크게 하는 등 1차 개장을 받는다. 여기에 또 함수와 함미의 건현이 너무 낮은 탓에 1935년에 터진 제4함대사건 당시 후방 격납고의 문이 파괴되면서 침몰의 위기를 겪은 후 2차 개장을 하였다.
하지만 완전한 문제해결에는 이르지 못한 채 항상 아슬아슬한 항해를 했다고 한다. 실제로 커브를 도는 와중에 그대로 자빠질 뻔한 적도 몇 번 있었다는 모양으로, 류조가 급커브를 도는 도중에 격납고에 있던 선원이 천장을 올려다 봤더니 엘리베이터 출입구 사이로 바다가 보였다는 일화까지 있을 정도다.
히류와 소류 등의 본격적인 항모가 등장하기 이전까지 일본 해군의 몇 없는 항모로서 파일럿들이 엄청난 맹훈련을 받았다고 한다. 매일같이 해가 저문 야간에도 이착함 훈련을 하는 탓에 매달 훈련 중 사망자가 나왔다고. '적귀, 청귀조차 류조라는 이름을 들으면 줄행랑을 친다'는 우스개까지 있었다는 모양이다. 이 덕분인지 일본 해군의 탑 에이스로 평가받는 이와모토 테츠조를 배출해낸 배이기도 하다. 사카이 사부로 역시 이 배에서 이착함 훈련을 받은 적이 있다. 다만 사카이 사부로는 항모에 소속된 파일럿으로 근무한 적은 없다.
다만 진주만 공습을 준비하면서 이 배가 키워낸 정예 파일럿들은 모두 나구모 기동부대로 이동한다. 예를 들어 일본군내에서 뇌격의 신이라 불리던 무라타 시게하루는 이 배에서 아카기로, 이와모토 테츠조는 쇼카쿠로 넘어갔다. 덕분에 정작 태평양 전쟁에서는 자신이 키워낸 베테랑 파일럿들은 다른 함선들에 넘겨주고, 별 볼일 없는 파일럿들을 데리고 작전에 임해야 했다.
3.1. 문제점
일본군이 마개조를 했지만, 류조에는 여러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배의 무게중심이 높다는 게 모든 문제의 근원이었다.-
안정성이 떨어진다.
심한 파도가 일면 배가 전복될 수 있고, 급선회라도 하면 배가 중심을 잃고 옆으로 쓰러져서 침몰할 수 있으므로 이 문제는 매우 심각했다. 적이 공습이라도 해오면 급선회를 해서라도 피해야 하는데, 급선회를 못하면 그냥 폭탄 맞고 죽어야 한다. 어뢰라도 접근하면 다가오는 어뢰를 보고도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급선회해서 침몰하던지, 어뢰맞고 침몰하던지 똑같기 때문. 일본군이 대공포까지 줄이면서 무게중심을 낮추려고 한 것도 그 때문이다.
-
함재기의 수가 적다.
원래부터 워싱턴 군축조약의 헛점을 노려 양산할 계획이었기에 24기라는 부족한 함재기 적재량을 가지고 있었는데, 런던 군축조약 이후 부랴부랴 격납고를 2층으로 만들어서 48기로 증강했지만 그럼에도 정규항모(주력항모) 치고는 수가 좀 부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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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화력이 약하다.
무게중심을 낮추려고 대공포를 줄인 탓이다. 늘리려고 해도 무게중심이 위로 올라가면 망하니까 그럴 수가 없다. 태평양전쟁의 양상을 보면 전전에 개발되어 각국 항모에 탑재된 3~5인치급 함포체계는 무겁기만 하지[4] 대공용으로 거의 쓸모가 없었고 대함용으로도 거의 쓸모가 없었다.[5] 하지만 아직 항모의 개념이 안 잡혀 있던 전쟁 전 항공모함은 순양함의 선체를 기본으로 하여 최소한의 대함 자위 능력을 요구했기에 5~8인치 함포를 달았고, 전쟁 중 도크에 들어와 수리하면서도 떼지 않고 고집한 예가 많았다. 하지만 침몰해 그런 수리도 못 받은 항모도 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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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가 느려졌다.
원래 30노트급으로 만들려고 했는데, 만들고 보니 29노트가 되었다. 항공모함이 느리면 여러가지로 애로사항이 많으니 별로 좋지 않지만 무게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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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교가 너무 작다.
항공모함이라면 흔히 연상하는 커다란 함교가 없다. 비행갑판 아래에 함교가 위치한다.[6] 갑판 위 상황을 육안으로 확인하고 명령을 내려 조율하기 위해 존재하는 곳이 함교인데 갑판 밑에 덜렁 붙여 놓은 탓에 갑판 위 상황을 직접 보고 확인할 수 없게 되었고, 따라서 항공기 통제부터 항해지시까지 매우 힘들어진다. 함교를 세우면 되겠지만, 그러면 기껏 낮춰놓은 무게중심이 도로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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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갑판이 좁다.
길이가 156.5m에 폭이 23m이므로, 조종사의 이착함이 쉽지 않았다.
결국 함재기 탑재수가 늘어났다는 것 이외에는 모든 것이 기존 성능보다 다운그레이드되는 대참사가 벌어지고 말았다. 개장해도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기에, 없그레이드가 되었다.
4. 운용
4.1. 중일전쟁
중일전쟁이 일어난 후, 류조는 많은 작전에 참가했으며 아카기와 카가가 보수작업 등으로 자리를 비울 때는 제1항공전대에 편입되기도 했다. 1941년 4월부터는 4항전 기함이 된다.4.2. 남방작전
태평양 전쟁이 일어난 후, 일본군은 남방작전을 벌였고 류조도 여기에 참가한다. 그런데 문제는 대기 중인 정규 항모는 류조가 유일했다!다른 항모들은 모두 진주만 이후의 정비나 오스트레일리아 방면의 작전에 투입되었기 때문. 어쨌든 류조는 동남아시아 방면을 침략하는 일본군을 지원했고, 싱가포르를 거쳐 자바해 해전 등에도 참가하고 인도양까지 진출하며 대활약했다. 대공포로 초계정을 침몰시키는 등의 정신나간 짓도 했다.
1942년 4월에는 경항모 쇼호가 4항전에 소속되었고, 5월 3일에는 정규항모만큼 거대한 상선개조항모 준요도 배속된다. 그러나 쇼호는 산호해 해전에서 쇼카쿠의 삽질로 침몰한다. 삽질 내용은 해당 문서를 참조.
4.3. 아쿠탄 제로
미드웨이 해전 당시 4항전은 알류샨 열도를 공격하는 통칭 AL작전을 담당했는데, AL작전 자체는 성공[7]했지만 당시 류조 소속의 코가 타다요시 1등 비행병조가 탑승했던 A6M 전투기가 아쿠탄 섬에 거의 손상없이 추락했다. 제로센 항목에 있는 바로 그 뒤집힌 채 추락한 제로센과 미군 라운델이 달린 제로가 그것인데, 통칭 '아쿠탄 제로' 또는 '코가의 제로' 등으로 불린다.[8] 미국은 이 기체를 노획한 뒤 집중적으로 연구해서 제로센의 모든 비밀을 알아냈다. 일본에서는 미드웨이 해전만큼이나 중대한 사건이라고 여겨지고 있으며, 4항전을 알류산 열도로 보내 전력을 분산시킨 실책은 미드웨이 해전의 중요한 패배 원인이 되었다.그러나 아쿠탄 제로 때문에 제로센의 비밀이 미국에 노출되어서 F6F 헬캣이 만들어졌다느니 하는 일본의 주장에는 허점이 있다. '제로센 킬러'로 불리는 F6F 헬캣과 대전기 최강의 함재기 F4U 콜세어는[9] 개발을 시작한 연도가 미드웨이 해전은 물론 진주만 공습보다 더 전인 1938년부터였다. 아쿠탄 제로가 노획된 시점보다 한참 앞서 있었으니, 아쿠탄 제로 운운하는 일본의 정신승리는 완벽한 뻥카다.
일본의 평가를 보면 제로기의 비밀이 탄로난 것이 마치 엄청나게 중요한 무엇이 들통난 것 취급을 하면서 역으로 제로기의 비밀이 탄로나지 않았으면 미군은 이길 수 없었다/고전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하는 뭔가 병신같은 논리가 은연중에 깔려있음을 알 수 있다. 실상은 제로의 비밀이고 뭐고 그저 연합군의 대응을 조금 더 수월하게 만들었을 뿐 연구가 없어도 제로기는 연합군의 후속기에 박살날 운명이었다. 노획 후 테스트 비행을 통해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당시 테스트 파일럿이었던 에릭 브라운은 전후에 회상하길 "최고의 비행기였다. 적어도 1943년 중반기까지는" 이라고 평했다. 사실 일본 빼고 이 사건을 저 정도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국가는 없다. 그뿐 아니라 저 미드웨이 해전부터 미 해군의 존 S. 타치 소령이 개발한 전술, 타치 위브가 대 제로센 전술로 정식 도입되면서 F6F 헬캣 이전에 F4F 와일드캣에게도 교환비가 밀리게 된다.
4.4. 최후
과달카날 전투에 참가한 류조는 동부 솔로몬 해전에 참가한다. 본대와 분리되어 미끼가 된 류조는 핸더슨 비행장 폭격을 위해 항공대를 출격시켜 폭격은 성공하나 미군에게 발견되어 B-17의 공격을 받지만 모두 피한다. 그러나 새러토가 함재기들의 공습을 받고 어뢰 한발과 폭탄 네발을 맞고 침몰한다. 귀중한 항모를 미끼로 내세운 일본군의 실책이 빚은 참사였다. 그리고 이 실책은 이전에도 있으며, 이후에도 두 번이나 반복된다. 이후 일본군의 쇼카쿠급 항공모함 쇼카쿠와 즈이카쿠는 엔터프라이즈에게 3발의 폭탄을 명중시켜 중파시킨 후 연료부족을 핑계로 삼아 철수한다.이에 대해서는 약간 이야기가 있는데, 류조가 미끼라면 가장 잘 알고 있을 지휘부인 즈이카쿠와 쇼카쿠에선 또 류조가 미끼인 것을 몰랐다고 한다. 이때문에 단순히 임무가 달라 분할되어 작전을 진행하던 도중 격침된 것 뿐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4항전의 경항모 쇼호가 산호해 해전에서 5항전과 별도로 행동하다가 쇼카쿠의 삽질로 무의미하게 격침된 점을 감안하면 그냥 병크. 경항모가 단독으로 행동하면 격침되기 쉽다는 것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일본군은 교훈을 무시한 것이다.
만약 류조를 진심으로 미끼 취급하여 내던졌다면 이건 더욱 심각한 바보짓이다. 일본의 주장에 따르면 류조는 미끼 역할을 수행한 후 과달카날로 향하는 수송부대를 엄호할 예정이었다고 하나, 류조가 중간에 격침되면서 호위를 제공할 수 없게 되어 수송함대는 아무 대책 없이 과달카날로 가야 했다. 쇼카쿠와 즈이카쿠가 있었지만, 그 두 척은 엔터프라이즈를 공격한 후 연료부족을 이유로 후퇴했으므로 수송함대 호위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공중세력으로 호위를 해줘야 하는 항모는 미끼로 던져버리고, 공백을 메워줘야 하는 다른 항모들도 후퇴해버리면 수송함대가 어떻게 되겠는가. 결국 수송선들과 그들을 호위하던 제8함대 기함 초카이, 제6전대(기함 아오바), 제2수뢰전대 등은 미군의 공습으로 아까운 구축함과 수송선만 잃고 철수해야 했다.
류조를 미끼로 던져서는 안 되었던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미드웨이 해전 이후 일본군의 정규항모는 쇼카쿠급 항공모함 2척을 제외하면 류조밖에 없었고, 느리디 느린 개조항공모함까지 포함해도 히요와 준요 정도가 추가될 뿐이다. 그나마도 히요는 걸핏하면 고장나서 항구에서 전장으로 나가는 경우가 드물었다. 겨우 세 척 남은 항모를 이런 식으로 낭비해서야 어떻게 전쟁을 지속한단 말인가?
5. 평가
기술적으로는 그 후소급 전함과 어깨를 견줄 정도의 결함함이다. 다만 일본 기술력의 문제라기보다는 해군군축조약의 규제를 회피하려다가 발생한 사태였다. 일단 나오자마자 고자가 되게 생긴 물건을 그냥 갖다버릴 수는 없어서 어떻게든 되살려보려고 애썼던 결과물이 바로 류조였던 것이다. 꼼수 부리다 당했으니 쌤통이라 해야 할지, 그래도 애는 썼으니 안쓰럽다고 해야 할지 고민인 물건.후루타카급 중순양함의 선체를 개조하여 항공모함으로 만든 배가 류조이므로 후루타카급 중순양함 후루타카와 카코, 아오바급 중순양함 아오바, 키누가사와는 준자매함이기도 하다. 류조보다는 덜하지만 이들 모두 작은 선체로 인해 고충이 많았으며, 일본 배답게 상당한 결함이 내포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실전에서는 후소급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많이 활약했다. 엔터프라이즈의 '비교대상' 항목에서는 류조, 후루타카, 카코, 키누가사 4척이 '나름대로 수훈함'으로 분류되었을 정도이며, 아오바는 맞수 항목에 이름을 올렸다. 실적만 놓고 따지면 충분히 성공한 셈이다.
미국에도 설계를 잘못해서 결함덩어리가 된 나왈급 잠수함이 있는데, 이 친구들도 전황을 뒤집는데 기여하고 여기저기 구르면서 수훈함이 되었다.
6. 다른 매체에서의 등장
네이비필드에서는 일본군 2차 항공모함으로 나온다. 그 전까지 오요도와 호쇼를 몰며 그 성능의 어중간함에 몸부림치던 일본군 플레이어들에게 단비와 같은 함으로, 여전히 동급의 타국 함선들에게는 뒤쳐지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손싸움으로 갈 만한 성능까지는 올라서게 된다.월드 오브 워쉽에서는 일본 6티어 항공모함으로 등장한다.
함대 컬렉션의 칸무스는 류조(함대 컬렉션) 문서를 참고. 이 게임에서 류조가 경항공모함으로 나오는 바람에, 류조를 경항공모함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참고로 아쿠탄 제로가 북방서희를 통해 구현되어 있다.
Naval Creed:Warships에서는 일본 3티어 2차 트리 항공모함으로 등장한다. 다만 다음 티어인 히류부터 다이호까지는 실력으로 미항을 찍어 누를 수 있게 된다
전함소녀에서 등장한다.
벽람항로에서도 의인화되어 등장한다.
7. 관련 링크
[1]
이때 무게중심이 얼마나 높았는지 무게중심의 위치가 흘수선으로부터 무려 3.895미터 위(경하기준)였다.
[2]
그렇다고 연료탱크를 위쪽으로 올리면 무게중심이 올라가 연료를 채울 수 없는 모순이 하나 더 벌어진다. 그냥 이렇게 생긴 게 문제.
[3]
당시는 아직 미해군도 영국해군도 항공모함에 6인치 이상급 함포를 여러 문 다는 걸 이상하게 생각지 않던 시기였지만 일본의 경순양함이 흔히 장비하는 대수상용 14cm(약 5.5인치)함포조차 달기 어려웠던 류조에 아카기, 카가, 렉싱턴급처럼 8인치급 함포를 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류조에 달려 있는 것은 고각포(대공포)다. 대전 후기 타 열강의 항모나 구축함도 5인치급 대공포는 흔히 달고 있다.
[4]
마운트 위에 올라와 있는 포탑이 다가 아니다. 시설과 작업공간과 탄약고 등 포탑의 몇 배가 되는 부피와 무게를 잡아먹는 뿌리가 함체 안에 있다.
[5]
예외적인 성공례로 미국의
5인치 38구경장 양용포가 있지만 이것도 전전에는 대수상용 51구경장과 대공용 25구경장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6]
항모의 전방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비행갑판 밑에 뭔가 유리창 같은게 넓게 있는게 보일텐데 그게 함교다.
[7]
문제는, AL작전 자체가 미드웨이 해전, 즉 MI 작전을 위한 미끼용 위장 작전이었는데, 정작 MI작전이 대실패함으로써 반쪽짜리 작전이 된 것이다.
[8]
조종사인 코가는 불시착 도중의 사고로 목이 부러져 즉사했으며, 이후 기체와 함께 발견된 그의 시신은 미국식으로 장례가 치러졌다.
[9]
콜세어는 함재기 중에서 이견의 여지가 없는 최강이었을 뿐 아니라 제트기를 제외한, 당시 상용중이던 모든 전투기중에서도 모든 방면에서 사각이 없는 최강의 기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는 명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