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0-27 05:40:04

루이스 드 카몽이스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 2007년 포르투갈의 공영방송국(RTP)이 포르투갈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가장 위대한 포르투갈인 100명'을 선정. 단, 중복 투표가 포함됨.
TOP 10
1위 2위 3위 4위 5위
안토니우 드 올리베이라 살라자르 알바루 쿠냘 아리트리데스 드 수사 멘데스 아폰수 1세 루이스 드 카몽이스
6위 7위 8위 9위 10위
주앙 2세 인판트 동 엔히크 페르난두 페소아 세바스티앙 주제 드 카르발류 바스쿠 다 가마
11위~100위
11위 12위 13위 14위 15위
살게이우 마이아 마리우 소아르스 파도바의 안토니오 아말리아 호드리게스 에우제비우
16위 17위 18위 19위 20위
프란시스쿠 사 카르네이루 조르제 누누 핀투 다 코스타 누누 알바르스 페레이라 주앙 페레이라 드 알메이다 주제 무리뉴
21위 22위 23위 24위 25위
아고스티뉴 다 시우바 에사 드 케이로스 에가스 모니스 디니스 1세 페르난두 노브레
26위 27위 28위 29위 30위
주제 에르마누 사라이바 아니발 카바쿠 실바 움베르투 델가도 조제 아폰수 루이스 피구
31위 32위 33위 34위 35위
마르셀루 카에타누 페드루 누네스 안토니우 비에이라 플로르벨라 이스팡카 페르디난드 마젤란
36위 37위 38위 39위 40위
마리아 지 루르드 핀타실구 주앙 1세 소피아 드 멜로 브레이네르 안드레센 안토니아 페레이라 파더 아메리쿠
41위 42위 43위 44위 45위
안토니우 다마지우 아폰수 드 알부케르크 마누엘 1세 주제 사라마구 아라곤의 이사벨
46위 47위 48위 49위 50위
카타리나 에우페미아 카를루스 파레지스 주제 소크라트스 페드루 알바레스 카브랄 루이 드 카발로
51위 52위 53위 54위 55위
브리테스 지 알메이다 알베르투 주앙 자르딩 알마다 네그레이루스 바스쿠 곤살베스 알바루 시자 비에이라
56위 57위 58위 59위 60위
벨미로 데 아제비로 수사 마르틴스 마리아 두 카르모 세아브라 안토니우 안드라지 카를루스 1세
61위 62위 63위 64위 65위
마리자 비제우의 엘레노르 호자 모타 안토니우 테익세이라 레벨로 아폰수 3세
66위 67위 68위 69위 70위
비토르 바이아 바르톨로메우 디아스 오텔루 사라이바 드 카르발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허만 호세
71위 72위 73위 74위 75위
마리아 2세 카를루스 로페스 아폰수 코스타 폰테스 페레이라 드 멜루 가구 코티뉴
76위 77위 78위 79위 80위
히카르두 아라우주 페레이라 마누엘 소브리뉴 시몽이스 마누에우 마리아 바르보자 드 보카주 헬리오 페스타나 조르주 삼파이우
81위 82위 83위 84위 85위
안토니우 샹팔리모 안토니우 로부 안투느스 질 비센트 마리아 헬레나 비에이라 다 실바 미겔 토르가
86위 87위 88위 89위 90위
나탈리아 코레이아 에드가 카르도주 페르낭 멘데스 핀투 루시아 수녀 알프레도 다 실바
91위 92위 93위 94위 95위
요한 21세 다미앙 드 고이스 주앙 4세 조아킹 아고스티뉴 아델라이드 카베치
96위 97위 98위 99위 100위
알메이다 가헤트 안토니우 젠틸 마르틴스 안토니우 바리아슈에스 파울라 레고 마리아 조앙 피레스
출처
같이 보기: 위대한 인물 시리즈
}}}}}}}}} ||

파일:루이스 드 카몽이스.jpg
Luis Vaz de Camoes

1. 개요2. 일생3. 여담

[clearfix]

1. 개요

포르투갈 시인.

대표작으로는 바스쿠 다 가마 인도 항로를 발견하기까지의 과정을 다룬 대서사시인 우스 루지아다스(Os Lusíadas)가 있으며, 포르투갈의 문학을 형성한 작가로 알려져 있다.

2. 일생

루이스 바스 드 카몽이스( 포르투갈어:Luís Vaz de Camões)[1]라는 이름으로 리스보아에서 태어났으며, 코임브라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1545년부터 궁정에서 일했으나 다혈질적인 인해 성격으로 여러번 체포되고 석방되기를 반복했다. 1547년 세우타에서 무어인과 결투를 벌이다 오른쪽 안구가 적출되었고, 수감되었으나 1567년에 다시 복권되었고 《우스 루지아다스》의 초고를 완성했다.

우스 루지아다스는 궁정에 알려져 그가 국왕으로부터 신임을 받게 되는 계기를 만들었으나, 그의 삶은 궁벽해졌고 비참한 생활을 이어가다 역병에 걸려 죽었다. 시체는 제로니무스 수도원에 매장되었으나, 1755년 리스보아 대지진때 시체가 소실되었다.

3. 여담

  • 카몽이스의 초상화를 보면 한쪽 눈이 감겨진 모습인데, 1547년 북아프리카 세우타에서 벌어진 무어인들과의 전투에서 오른쪽 눈을 잃었기 때문이다.
  • 포르투갈 정부와 브라질 정부가 공동으로 선정해 포르투갈어 사용국의 작가에게 수여되는 카몽이스 상은 그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 포르투갈어 포르투갈의 문화의 해외홍보를 전담하는 포르투갈 정부기관인 카몽이스청 또한 그의 이름에서 따왔다.
  • 그의 사망일로 알려진 6월 10일은 포르투갈의 날[2]이란 이름으로 포르투갈의 국경일로 지정되어 있다.

[1] 브라질 포르투갈어로는 루이스 바스 지 카몽이스로 발음한다. [2] 공식 명칭은 포르투갈, 카몽이스, 포르투갈 공동체의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