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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네스 세계 기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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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llest man ever
(인류 역사상 최장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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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대상 | 기록 | 장소 | 등재 시일 | |||
<rowcolor=#000,#fff> 로버트 워들로(Robert Wadl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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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2 cm(272 centimet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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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United States (Al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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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네스 세계 기록 설명 페이지 |
<colbgcolor=#000><colcolor=#fff> 로버트 워들로 Robert Wadlow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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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로버트 퍼싱 워들로 Robert Pershing Wadlow |
출생 | 1918년 2월 22일 |
미국 일리노이주 얼턴 | |
사망 | 1940년 7월 15일 (향년 22세) |
미국 미시간주 매니스티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아버지 | 해럴드 워들로 |
어머니 | 어머니 애디 워들로[1] |
형제자매 |
남동생 해럴드 워들로 주니어, 유진 워들로 여동생 헬렌 워들로, 베티 워들로 |
신체 |
키 272.34 cm[2] 체중 197.5kg[3] 손 32.4 cm 발 470 mm 윙스팬 288 cm |
사인 | 패혈증, 염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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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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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과 함께 찍은 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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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함께 찍은 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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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동생들과 함께 찍은 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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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 사진. |
미국 일리노이 출생의 인물. 272 cm의 키로 인류 역사상 최장신이다.
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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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후 6개월의 로버트 워들로.[4] |
1918년 2월 22일 일리노이 얼턴에서 해럴드 워들로와 에디 워들로의 3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이 때까지는 정상이었으나, 갓 태어나자마자 수술을 받았는데 뇌에 이상이 생겨 생후 1주일부터 성장호르몬이 과다하게 분비되기 시작하였다. 당시 의술로는 수술이 너무 위험해서 치료하지 못했다. 이후 그의 키는 계속해서 커져만 갔는데, 8살 때 키가 6피트(183 cm)가 되어서 아버지보다 키가 컸으며, 키가 너무 컸기 때문에 그가 다니던 초등학교에선 그를 위해 새로운 책상을 준비했다고 한다.
9세 때부터 그는 유명인사가 되어 많은 기자들과 사람들을 상대하였다. 많은 사람들은 그를 보기 위해 먼 곳에서 오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이 때 한 서커스단에서 서커스 단원 입단 제의도 받았지만 가족들은 로버트가 구경거리로 전락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으며, 로버트가 죽을때까지 서커스 하는 것을 극도로 완강하게 거부했다. 그러면서 서커스 단장한테 한다는 말이 "난 못 시켜, 서커스 절대로 못 시켜!!"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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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세 때 키가 7피트(213 cm)가 되었다. 명세를 듣고 온 당시 복싱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이었던 프리모 카르네라 (1906.10.26~1967.6.29)와 함께 포즈도 취했는데, 198 cm인 프리모보다 키가 컸을 뿐만 아니라 체격도 비슷할 정도였다.[5]
13세 때 그의 키는 224 cm에 육박하였는데, 이 때 보이스카우트에 입단하게 되면서 그는 가장 키가 컸던 보이스카우트 단원으로 기록되게 되며 이 사실이 신문에도 실리게 된다.[6]
또래보다 1.5배는 큰 키에 의해서 많은 놀림을 받았을 거라 생각하기 쉽지만 교우관계는 원만했다.[7] 그는 11살 때 지역 YMCA에 들어가 수영과 농구를 즐겨했으며 도장 수집도 했다고 한다. 로버트는 키만 비정상적으로 컸을 뿐이지 관심사는 대체로 또래들과 비슷했다. 사진 찍기, 책 읽기, 우표 수집, 그리고 라디오 듣기가 그의 취미였다. 그는 학교에서 대체로 좋은 성적을 받았으며, 다른 이들과 친하게 지냈다.
고등학교에서 그의 성적은 더욱 좋아졌다. 물론 여러가지 부활동도 참여하였다.
16살 때 8피트(244 cm)를 돌파했고, 1936년 고등학교를 졸업했을 때 252 cm가 되어 있었다.
그는 법학을 공부하기 위하여 대학교에 입학하였다. 그러나 이 때 키가 너무 큰 나머지 다리가 그의 무게를 지탱하지 못하여 지팡이를 짚고 다리 보호대를 착용하며 다니게 되었다. 그는 이 때부터 지팡이나 목발만 이용했으며,[8] 휠체어는 일생동안 단 한번도 쓰지 않았다. 그 상태에서 점점 걸어다니기 힘들어지면서, 대학을 자퇴하게 된다.
자퇴 이후 로버트는 아버지와 함께 미국의 41개 주 800여 곳의 도시를 방문하는 행보를 보였다. 1938년에는 한 신발 회사를 위한 홍보 투어를 하게 되었는데 그 때 구두를 협찬으로 받았다. 이것을 포함하여 그가 신었던 신발들은 정말 컸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미국의 몇몇 신발가게와 박물관에 전시되었다.
로버트는 프리메이슨이 후원하는 청년조직인 드몰레이 교단에 속해 있었고, 이후 프리메이슨이 되었다. 1939년 11월까지 로버트는 일리노이의 그랜드 롯지 소속이었다.
1939년 존 로건(267 cm)의 키를 뛰어넘으면서 인류 역사상 최장신이 되었고, 사망 1달 전 272 cm가 되었다.
3. 사망
로버트 워들로의 장례식. 관의 길이만 330 cm, 무게는 450kg에 육박했다.
워들로의 다리는 그의 신장을 지탱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다리 보호대를 사용했다. 1940년 7월 4일 미국 독립기념일의 한 축제 현장에서 그가 착용하고 있던 다리 보호대가 발목에 염증을 일으켰다. 다리에 감각이 둔감해져 있던 그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패혈증으로 발전, 고열에 시달리다 7월 15일, 향년 22세로 요절했다. 사망 직전에도 성장 중이었음을 감안하면 단 1년만 더 살았더라도 9피트(274.32 cm)를 넘겼을 것이라고 여겨진다.[9][10] 그의 장례식에는 27,000여명이 참석해 애도를 표했고 그는 자신의 고향인 일리노이 주 얼턴에 안장되었다.
그가 태어나고 자랐던 도시인 얼턴에 생전 그의 키와 같은 그를 본뜬 상이 있다. 미시건 주의 한 박물관에도 비슷한 것이 있다. 이곳에는 현재까지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자신의 키를 비교해 보고는 한다.
4. 성장 과정
나이 | 키 | 체중 |
출생 | 51 cm | 3.2 kg |
생후 1주 | 67 cm | 8.0kg |
생후 6개월 | 88 cm | 14 kg |
1세 | 100 cm | 20 kg |
생후 18개월 | 130 cm | 30 kg |
2세 | 138 cm | 34 kg |
3세 | 150 cm | 40 kg |
4세 | 160 cm | 48 kg |
5세 | 169 cm | 64 kg |
6세 | 170 cm | 66 kg |
7세 | 178 cm | 72 kg |
8세 | 183 cm | 77 kg |
9세 | 189 cm | 82 kg |
10세 | 200cm | 100 kg |
11세 | 211 cm | 109 kg |
12세 | 213 cm | 130 kg |
13세 | 224 cm | 120 kg |
14세 | 226 cm | 150 kg |
15세 | 239 cm | 161 kg |
16세 | 247 cm | 170 kg |
17세 | 251 cm | 173 kg |
18세 | 254 cm | 177 kg |
19세 | 260 cm | 220 kg |
20세 | 262 cm | 221 kg |
21세 | 264 cm | 223 kg[11] |
22세 | 272 cm | 198 kg |
5. 여담
- 키가 컸던 만큼 여타 다른 신체 부위도 매우 거대했다. 손바닥 길이는 32.4 cm, 발 크기는 47 cm였으며, 양팔을 좌우로 폈을 때의 너비 윙 스팬이 288 cm였다고 한다.
- 엄청난 대식가였다. 하루에 8,000 kcal 정도의 음식을 먹어치웠다고 한다. 미국 최고의 보디빌더 로니 콜먼[12]의 시즌 중 식단이 5,600kcal임을 생각해보면 실로 어마어마한 수치인데, 이는 신진대사량이 엄청난 거인증 환자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다. 일반적인 사람들에 비해서 몸무게가 3 ~ 4배 정도 무거우므로 그만큼 먹는 것이 당연하다. 다만 다른 거인증 환자들이 많게는 수만 kcal의 음식을 먹어치운다는 걸 감안하면 거인증 환자치고는 많이 먹는 편은 아니다.
- 또한 9세 때[13] 소파에 앉은 아버지를 1층에서 2층까지 소파채 들고 올라갈 정도로 힘이 장사였다. 성장호르몬은 근육 발달에도 굉장한 영향을 미치는데, 근력 자체는 키워주지 않지만 근육의 전체적인 양을 늘려주는 기능을 한다. 그래서 헤비급 보디빌더들이 종종 사용하는 약물들 중 하나가 성장호르몬이다.
- 전술했듯이 주변 사람들은 그를 신사적인 거인(Gentle Giant)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생전 그의 친절한 성격을 보면 잘 어울리는 별명이다.
- 1937년 19세에 클리포드 아담스(Clifford Adams)와의 인터뷰 자막 영상이 업로드되었다. 녹색은 아담스, 하늘색은 워들로. # 당시 아담스는 워들로를 8피트 7인치(261 cm)라고 소개했는데 이후로도 죽을 때까지 계속 성장하는 바람에 공식 기록은 272.34 cm로 남았다. 그리고 높아진 키에 따라 목소리는 음성 변조를 거친 듯, 혹은 주기율표상 크립톤 이하의 비활성 기체를 들이마신 듯[14] 매우 굵어졌다.
[1]
혼전 성은 존슨.
[2]
기네스 세계 기록 공식 기록. 기네스 세계 기록 측정 후 사망 직전에는 285 cm였다는 소문도 있다. 276cm라는 설도 있는데 사망하고 나서도 키의 성장이 멈추지 않았으며, 관에 들어가기 직전에 재어본 워들로의 키는 276cm였다는 설이 있다. 1년 정도만이라도 더 생존했더라면 인간 키의 한계점으로 여겨지는 9.5ft(289.56cm)를 넘어설 수도 있었다고 한다. 또 성장판이 닫힐 때까지 생존했다면 280cm, 혹은 그 이상까지 노려볼 수 있었을 것이다. 참고로 현대 인간의 유전자 상 이론상으로 도달할 수 있는 최대 신체 사이즈는 키 300cm, 손 크기 36cm, 발 사이즈 500mm, 체중 1000kg 정도이니 로버트 워들로는 거의 그 한계치에 근접했던 것이다. 출처: GUINESS 2020.
[3]
BMI 상으로는 비만이지만 저 키에 200kg을 넘지 못하는것이면 오히려 정상 체중이면서 날씬한 편이다.
[4]
당시 그의 몸무게는 30파운드(14kg)였으며 이는 2세 영아의 평균 체중에 해당한다. 이때부터 그는 또래에 비해 빠른 성장력을 보여줬다.
[5]
위의 사진 속에서 왼쪽 인물이 12세 때의 로버트 워들로(당시 213 cm), 오른쪽 인물이 프리모다.
[6]
로버트가 보이스카우트에서 활동하던 모습을 담은 영상에선, 아이들이 놋다리 밟기와 비슷한 놀이를 하던 중 로버트의 차례에서 넘어가지를 못해 당황하다 이윽고 다리 사이로 신나게 지나가는 모습이 나온다.
[7]
되려 거구를 상대로 따돌림을 하는 건 어려웠을 수도 있다.
[8]
2024년 8월 8일 기준 현존 최장신인
술탄 쾨센도 251 cm라서 주로 지팡이를 짚고 다닌다고 한다.
[9]
질병이나 사고없이 살다가
자연사를 했다면 12피트(365.76 cm)를 넘겼다고 추정된다. 하지만 그 사이의 의술 발전으로 뇌수술을 해서 더 이상의 성장을 멈췄을 수도 있다.
[10]
아마 뇌수술을 한후에 키는 10피트(304.8cm)였을 수 있다.
[11]
BMI 지수로는 중등도비만이나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절대 비만이 아니며 오히려 저 키의 기준으로는 정상 체중 ~ 과체중의 사이이다. 왜냐하면 키가 커지면서 체내의 부피도 자동으로 커지기 때문이다. 애시당초 세계 최장신한테 BMI 지수를 적용하는 것이 훨씬 더 많이 어색하다.
[12]
키 180 cm 시즌 체중 138kg
[13]
당시 키 189 cm, 체중 82kg.
[14]
참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