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6 09:31:15

존 오비 미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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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오비 미켈의 역임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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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지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아메드 무사
(2015)
존 오비 미켈
(2016~2019)
아메드 무사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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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오비 미켈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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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지리아의 前 축구선수
파일:john-mikel-obi-2008-1589363374-38428.jpg
<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존 오비 미켈
John Obi Mikel
본명 미켈 존 오비
Mikel John Obi[1]
출생 1987년 4월 22일 ([age(1987-04-22)]세)
나이지리아 플래토 주 조스
국적
[[나이지리아|]][[틀:국기|]][[틀:국기|]]
신체 188cm / 체중 83kg
직업 축구 선수 ( 수비형 미드필더 / 은퇴)
주발 오른발
소속 <colbgcolor=#eeeeee,#191919><colcolor=#000000,#e5e5e5> 유스 플래토 유나이티드 (2002~2004)
프로 FK 륀 포트발 (2004~2006)
첼시 FC (2006~2017)
톈진 터다 (2017~2018)
미들즈브러 FC (2019)
트라브존스포르 (2019~2020)
스토크 시티 FC (2020~2021)
쿠웨이트 SC (2021)
국가대표 91경기 6골 ( 나이지리아 / 2005~2019)

1. 개요2. 클럽 경력3. 국가대표 경력4. 플레이 스타일5. 수상
5.1. 대회 기록5.2. 개인 수상
6. 미켈은 과연 첼시의 레전드일까?7. 여담

[clearfix]

1. 개요

나이지리아의 전 축구선수. 수비형 미드필더 답게 태클 능력과 일대일 마크 능력이 좋고 체격이 뛰어나지만 제공권은 그리 뛰어나지 않다. 뛰어난 피지컬을 활용하여 상대 선수를 등지고 공을 지키는 키핑에 능하며 탈압박 능력 또한 상당히 준수하다. 나이지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에서는 공격형 미드필더로도 종종 기용된다.

첼시에 무려 10년동안 몸담았던 선수로, 클로드 마켈렐레를 이을 재목으로 주목받았으나 기대만큼 성장하지는 못했다.[2] 하지만 특유의 플레이스타일, 팀에 대한 충성심과 헌신으로 아직까지 팬들에게 레전드로 기억되고 있는 선수이다.

2. 클럽 경력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존 오비 미켈/클럽 경력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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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국가대표 경력

전화를 받고 혼란스러웠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지만 1억 8천만 명의 나이지리아 국민을 실망하게 할 수 없었다.
2018 러시아 월드컵 아르헨티나와의 최종전을 앞둔 당시의 마음가짐을 잘 나타낸 인터뷰.

미켈은 2005년, 나이지리아 U-20 국가대표에 선발되어 2005 FIFA U-20 월드컵에서 팀을 준우승으로 이끌었으며, 실버 볼을 수상했다.[3] 2005년 8월 17일, 리비아와의 친선경기에서 성인 국가대표에 데뷔하였다.

이후 2006, 2008, 2010까지 3번의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나이지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으로 출전하면서 팀의 중심으로 자리잡아갔으나, 안타깝게도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는 무릎 부상으로 인해 출전이 좌절되었다. FIFA 월드컵 출전을 위해 수술 후 대표팀으로 합류했지만, 몸 상태가 좋지 않아 결국 탈락하게 된 것이다.

2013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는 조별리그 1경기, 결승전에서 MOM에 선정되는 등 뛰어난 활약으로 조국을 우승으로 이끌었으며, 대회 베스트 11에 선정되었다. 같은 해 2013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브라질에도 출전하였는데, 스페인 중원을 씹어먹는 극강의 활약을 펼쳤다!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에도 출전하여 이란전 MOM에 선정되는 등 우수한 활약을 보여주며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이후 16년 만에 나이지리아를 16강으로 진출하는데 기여했지만, 16강에서 프랑스에 패해 탈락하였다.

2016년 3월 24일, 미켈은 아메드 무사의 뒤를 이어 나이지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의 주장으로 선임되었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남자축구에서는 와일드카드로 선발되어 나이지리아 축구 올림픽대표팀의 주장도 맡게 됐다.

애틀랜타에서 전지훈련을 하다가 브라질에 제때 도착하지 못해 몰수패 일보 직전까지 가는 열악한 여건[4][5] 속에서도 8강에 진출했고, 8강전인 덴마크와의 경기에서 1골 1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나이지리아의 2:0 승리에 크게 기여했다. 다만, 독일에 패해 금메달 도전은 실패했고, 대신 3위 결정전 상대였던 온두라스를 꺾으며 나이지리아는 축구 동메달을 차지했다. 그 뒤에는 당연히 미켈의 공로가 있었는데, 주장으로써의 리더십과 공격형 미드필더를 맡은 에이스 역할, 전술 지시, 식사, 교통수단 등 자금 확보, 감독 선수 선수단장 역할을 다 한 미켈의 공이 컸다.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에도 출전하였다. 다만 조별리그 진출 혹은 탈락의 명운이 걸린 아르헨티나전을 네 시간 앞두고 자국에서 장례식장을 가던 아버지가 납치범에 의해 납치되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접했다. 그래도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이 경기에서 풀타임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다행스럽게도 아버지는 구출[6]되었으나 팀은 1-2로 패하면서 아쉽게도 16강 진출에는 실패했다. 해당 기사.

2019년 7월 18일, 자신의 공식 SNS를 통해 국가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

기대치에 비해 아쉬웠던 클럽 활약하고는 달리 국대에서는 FIFA 월드컵,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올림픽 축구,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등 모든 대회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친 애국자형 선수이다.

4. 플레이 스타일

'등지고 딱딱' 이 한 마디로 모든 설명이 끝난다.

실제 유스시절이나 린 오슬로에서 잠깐 뛸때만 하더라도 공격형 미드필더였다. 출처 실제 물리학자같이 축구를 한다고 주목을 받는 이유도 특유의 키핑능력이 매우 뛰어나기 때문인데 실제 경기를 보다보면 볼을 자기진영에서 어지간해서는 잘 안뺏긴다. 공격적인 능력이 워낙 좋았던 선수여서 첼시 데뷔 시즌 때는 무리뉴가 윙어로도 뛰게 했었다. 만약 미켈이 첼시가 아닌 맨유로 갔다면 장기적으로 폴 스콜스를 대체할 중앙이나 공격형 미드필더로 성장했을 가능성이 높았지만 인생은 역시 알 수 없는 것이고 엄청난 진통 끝에 이적한 첼시에서 그에게 주어진 역할은 수비형 미드필더 였다.[7]

본래 이전에 마켈렐레의 장기적 대체자로 데려왔던 선수는 마이클 에시엔이었다. 1년전 데려온 티아구 멘데스가 나쁘지 않은 활약을 했음에도 비슷한 포지션을 맡고 있던 에시엔을 데려온 이유도 이 때문이었으나 문제는 에시엔이 마켈렐레롤만 맡기에는 생각보다 다방면에 능했다는데 있다. 에시엔이 마켈렐레를 대체하기에는 그가 가진 다른 재능이 아까웠는지 아니면 미켈이 공을 간수하고 패스하는 능력이 그가 직접 공격에 가담하며 플레이하는 것 보다는 좋은지에 대한 판단이 섰던 것인지 무리뉴는 뜬끔없이 미켈을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에 놓고 플레이를 시켰다. 여전히 볼을 간수하는 실력은 좋았으나 문제는 수비였다. 수비 위치를 잡는 능력이나 미리 대응하여 상대방의 역습을 차단하는 스피드나 활동량은 미켈에게 기대하기 어려웠지만 공격의 시발점으로 기술과 피지컬이 모두 뛰어난 선수를 쓰는 것이 아주 이상적이라고 생각했던 탓인지 그 자리에 미켈을 꾸준히 세웠고 현재로서는 수비형 미드필더가 아닌 미켈은 생각하기 어렵다.

하지만 위에 서술한 바와 같이 기동성이나 활동량이 뛰어난 편이 아니라서 최근 각광받는 포메이션인 4-2-3-1의 투볼란치 역할로는 제 능력을 100% 보여주지는 못 한다. 대신 4-3-3의 원볼란치로 에서 포백 앞에 서있으면서 홀딩 미드필더 가깝께 뛰면 더 좋은 활약을 보여준다.

아무래도 미켈의 가장 큰 단점이 바로 기동성과 활동량인데, 부족한 기동성과 활동량을 보완해줄 수 있는 하미레스와 같이 많이 뛰어주는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와 활약할때 가장 좋은 능력을 보여준다.

꾸준히 서다보니 포백라인 앞에서 포백을 보호하는 능력도 어느정도 발달되고 수비적으로 풀어나가면서 공격의 시발점 역할을 하는데는 굉장히 능하기에 11/12 UEFA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같이 수비 위주의 경기를 운영할 때 능력이 극대화 된다.

데뷔 초기에는 투박한 플레이와 거친 태클을 많이 시도하여서 경고도 많이 받았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거친 플레이는 자제하는 편인듯 했다.

자타공인 첼시빠의 장지현 해설위원이 청소년 때나 지금이나 플레이 스타일이 바뀌지 않았다고 얘기하기도 했는데, 그만큼 첼시 시절에 더 잘할 수 있는 선수였는데 아쉽다고 평하는가 한편 그래도 기본기 만큼은 확실한 선수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위에 서술한 바와 같이 볼키핑이 굉장히 좋은편이다. 차비 에르난데스 이니에스타 같이 기술적이고 정교한 볼키핑도 잘하지만 뛰어난 피지컬도 뛰어나서 볼을 등지고 버티는 볼키핑을 많이 한다. 사실 탈압박을 잘하는 수비형 미드필더가 흔하지 않기 때문에 정말 유용한 자원임은 분명하다. 전방부터 강한 압박을 해오는 현대축구에서 수비진영부터 압박을 풀어나오면 공격작업이 훨씬 수월해지기 때문이다. 다만 볼키핑과는 다르게 킥력은 매우 좋지 않다. 초반에는 난데없는 슛으로 찬스를 날려먹는 짓을 많이해 욕 좀 먹었으나, 이젠 본인도 이를 잘 알고 있는지 공격시에 문전으로 침투도 잘 하지 않고 슈팅 시도 자체를 잘 하지 않는편인데, 그나마 가끔씩 중거리슛 찬스가 와도 유효슈팅으로 잘 연결 되지 않는다. 이러한 단점은 득점 기록에도 잘 나타난다.

5. 수상

5.1. 대회 기록

  • 나이지리아 U-23 축구 국가대표팀

5.2. 개인 수상

6. 미켈은 과연 첼시의 레전드일까?

애매한 전설의 경계, 미켈은 레전드일까?

미켈은 첼시에서 10년이란 세월을 함께하면서 많은 우승컵을 들어올리는데 기여하고 2000년대 이후부터 시작된 첼시의 전성기를 함께한 선수다. 그저 벤치에만 앉아 있으면서 우승한게 아니라 꾸준히 로테이션 이상의 입지로 출전했고, 2012년 첼시의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대활약하며 첼시의 역사상 첫번째 챔피언스 리그 우승에 기여했다.

그러나 적지 않은 사람들이 미켈은 그저 오랫동안 뛴 선수지 실력이 부족하므로 미켈은 첼시의 레전드가 아니라는 주장을 한다. 영국 현지에서 한 설문조사에서도 미켈은 첼시의 최고의 레전드가 아니라는 의견이 61%나 나왔다.[8]

그러나 사실 미켈은 첼시의 레전드라 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선수다.

미켈은 첼시의 창단 이후로 얻은 트로피의 적지 않은 수를 본인의 커리어로 가지고 있다. 첼시의 레전드 기준은 레바뮌급 클럽이랑 같은 잣대를 들이밀기엔 약간 부족한 부분이 있다. 만약 첼시가 레바뮌 급 클럽만큼 레전드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며 월클의 퍼포먼스를 요구한다면, 레바뮌보다 역사적으로 월드클래스 선수가 적은 첼시는 존 테리, 램파드, 드록바, 체흐, 애쉴리 콜 외에는 레전드라고 할만한 선수가 조금밖에 없을 것이다.

또한 어떤 사람들은 미켈을 실력으로 문제삼는데, 경기에 나오지도 못하는 알바로 아르벨로아 파울루 페헤이라 등이 레전드로 대우받는 점도 생각해봐야 한다. 레알 마드리드가 원탑 명문클럽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아르벨로아가 과연 레전드의 기준 중 '퍼포먼스'에서 미켈보다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을지도 생각해야 한다. 상대적으로 역사가 별로인 팀에선 50의 퍼포먼스로 레전드로 대우받는다면, 명문팀이자 강팀에서는 100, 200의 퍼포먼스를 보여줘야 한다. 아르벨로아가 전성기 때는 잘했다곤 하지만 당시에도 레알 마드리드 주전 선수중에 구멍 논란에 끊임없이 시달렸던 선수이며, 아르벨로아가 주전에서 밀리고 레알은 귀신같이 4시즌 동안 3번의 챔스 우승을 했다.

또한 파울루 페헤이라는 2시즌 정도는 좋은 활약을 해주고 그 뒤로는 잦은 부상으로 기량이 떨어지면서 많은 경기에 나오지 못한 선수다. 기량 저하 이후 출전 자체를 거의 하지 않으니 첼시팬들이 답답할 일이 적었다는 점과, 로만 구단주와 팬들이 그렇게나 바래왔던 첼시의 리그 우승을 이적한 첫해부터 2년 연속으로 도왔으며 (04-05 / 05-06) 팀에 대한 애정으로 이미지가 실질적인 공헌도에 비해 좋은 선수다. 미켈은 2012년에 주전으로 뛰면서 첼시의 첫번째 챔피언스 리그 우승에 기여한 선수고 2012년 외에도 단기적으로 주전으로 뛰기도 하고 대부분의 시즌에서 로테이션으로 팀에 공헌한 선수다. 첼시에서 보낸 10시즌동안 미켈의 실질적인 공헌도가 페레이라와 비교해서 떨어진다고 볼 수 없다.

사실 미켈이 많은 사람에게 까이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어느 정도의 기량을 가져 첼시에서 로테이션급의 입지로 출장했기 때문이다. 15-16 시즌 전반기 마드리드 더비에서 보여준 아르벨로아의 끔찍한 폼을 생각했을때 과연 카르바할, 다닐루 등의 선수가 줄부상당했을때 아르벨로아가 주전으로 뛴다면 과연 레알팬들이 끔직한 퍼포먼스에도 레전드로 대우해줄까? 실제 아르벨로아는 본인 고별전에서조차 엄청난 퍼포먼스를 보여줬지만 그가 레알을 떠난 후에도 레전드 대우를 받는 것은 실력 외적인 이유[9]가 크다.

결론적으로, 미켈은 첼시의 구단 창단 이후 최고의 전성기에 오랫동안 많은 경기에 출장하여 기여했으며 적어도 구단 차원에서는 확실한 레전드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미켈이 중국으로 이적했을때 첼시 그 자체인 존 테리가 LEGEND라는 표현으로 SNS에 작별인사를 올린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7. 여담

본명은 존 마이클 은체쿠베 오빈나(John Michael Nchekwube Obinna)이지만 2003년 FIFA 17세 이하 세계청소년 선수권대회 당시 나이지리아 축구협회가 '마이클(Michael)'을 미켈(Mikel)'로 잘못 제출하는 바람에 미켈(Mikel)로 유니폼이 잘못 프린트 되었다. 사실 스펠링을 이렇게 크게 틀리기 굉장히 힘드나 아마도 나이지리아 축구협회의 전적인 잘못보다는 2003 U-17 대회가 열린 곳이 핀란드 였는데 이곳에서는 영어식 이름인 Michael을 핀란드에서 Mikael로 쓰는 경우가 많고 이런 식의 번역이 전달되다 보면서 미켈의 이름이 John Michael Obi에서 아예 John Obi Mikel로 바뀌게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미켈(Mikel)을 본 순간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본인도 미켈로 불리기를 원한다.

파일:image_1941643401488431372194.jpg

합성으로 오해받는 경우가 많은 짤인데 실제로 한국에서 한국 기자가 진행한 인터뷰다! 한국에서 존 미켈을 만나다 (한국 팬들에게 보내는 영상 메시지, 미켈이 부르는 강남스타일 포함)

대한민국 내에선 해외축구 갤러리 한 첼시팬의 명문으로 인해 물리학자라는 별명이 붙어있다. 텐진 테다로 이적한 후 한국에서 성사된 인터뷰에서는 이 별명에 대해 '전혀 몰랐었고 고국 나이지리아는 물론이고 잉글랜드에서도 특별한 별명이 없었는데 한국 팬들이 나에게 관심을 가져주니 정말 놀랍다.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또한 강남스타일을 실제로 부르고 핸드폰도 한국 것[10]을 좋아하고 한국 음식 중에서 아프리카 음식과 맛이 비슷한 김치를 좋아한다고 이야기했는데, 이게 가식적으로 말하는 게 아니라 진심이 드러나서 이 인터뷰 이후로 한국 내 미켈의 팬이 상당히 늘어났다. 나이지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의 에이스인 것도 재평가받고 저런 멘탈이라 첼시에서 오래 있을 수 있었구나 이야기가 나올 정도. 이후 본인이 직접 저 명문을 듣고 감사를 표했다.


[1] 나이지리아 축구협회의 실수로 얻은 이름을 공식적인 이름으로 개명했다. 개명 전 이름은 존 마이클 은체쿠베 오빈나(John Michael Nchekwube Obinna). [2] 루드 굴리트 시절부터 첼시의 팬으로서 첼시 경기들을 쭉 지켜봐왔던 장지현 해설위원은 오히려 10대 당시보다 단점이 더 늘고 장점은 퇴색되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3] 참고로 해당 대회 챔피언은 아르헨티나이며, 동갑 리오넬 메시가 골든볼을 수상했다. [4] 다행히 애틀랜타에 본사가 있는 델타 항공의 지원으로 마나우스에 경기 6시간 전에 도착했다. 나이지리아가 1996 애틀랜타 올림픽 남자축구 우승국인지라, 이래저래 애틀랜타는 나이지리아에게 좋은 기억이 있는 동네다. [5] 미켈은 일본과의 경기시작 불과 6시간 전에 도착했을 당시 “멋진 비행이었다”라는 명인터뷰를 남기며 선수들 사기를 북돋았다. 해당 기사. [6] 다만 납치 도중에 고문을 당해 봉합수술을 받아야만 했다. [7] 사실 미켈이 이적했을 당시만 하더라도 미켈은 프랭크 람파드의 장기적 대체자였으나 문제는 프랭크 람파드는 폼은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는데 마켈렐레는 떠날 때가 되었다는 점이었다. [8] 사실 현지인들은 질문 자체가 이상하다고 했다. 미켈과 같이 뛴 선수만 생각해도 존 테리, 프랭크 램파드 등이 있는데 이들을 제치고 미켈이 '최고'의 레전드냐는 질문은 매우 이상하며 오히려 이 점을 감안하면 39%라는 수치도 놀라운 것이다. [9] 유스 주장 출신, 후배 푸쉬, 라커룸 주장, 분위기 메이커, 레알 야당 대표라는 다크나이트 이미지 등과 레알 대표로 광고, 방송 출연이 잦았던 점도 한 몫했다. [10] 첼시에 있을 때 써보고 핸드폰은 한국 것이 좋다는 인식이 생겼다고 한다.-삼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