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 후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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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 옹정제의 후궁 돈숙황귀비 | 敦肅皇貴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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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년도 | <colbgcolor=#fff,#1f2023>?[1] ~ 1725년 12월 27일 | |||
시호 | 돈숙황귀비(敦肅皇貴妃) | |||
지위 | 측복진⇒귀비⇒황귀비 | |||
성 | 연씨 | |||
가계 |
부친 순무 연하령(年遐齡) 오빠 연희요(年希堯), 연갱요(年羹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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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군 | 옹정제 | |||
자녀 | 황4녀, 황7자, 황8자, 황9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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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청나라 세종 옹정제가 매우 총애한 후궁이며 순무 연하령의 딸이자 청나라 육군 군인 겸 정치가 연갱요 장군의 이복 동생이다.2. 생애
강희 48년, 옹정제가 양백기 옹친왕이 되면서 연갱요 일가가 옹정제의 속인으로 배정되었다. 그리고 연씨는 불과 12~13살의 나이로 옹정제와 혼인했다. 연씨가 처음부터 측복진이었는지 격격이었다가 측복진이 되었는지는 불명이다. 옹정제와의 사이에서 3남 1녀를 낳았다. 하지만 4명의 자식들은 모두 유산하거나 어린 나이에 요절하였고, 그나마 자식들 중 가장 오래 살았던 아들 복혜(福惠)도 불과 8살에 죽었다.[2]1722년 강희제가 붕어하고 옹정제가 보위에 오르자 그녀 또한 귀비로 책봉했다.
옹정 3년 11월 8일 옹정제가 "황고승하숙조삼재(皇考升遐倏周三载)"때문에 경릉을 알연하여 제사를 위해 북경 교외의 원명원에서 어가가 허베이성 준화시로 갔다. 당시 그녀는 병이 깊었기 때문에 따라 갈 수 없었고 11월 14일 옹정이 경성으로 돌아와 동짓날에 지낼 제사를 준비했다. 옹정제는 병이 아주 깊은 그녀에게 매우 비통한 감정을 표시했다.
옹정 3년 1725년 11월 15일. 옹정은 명을 내려 그녀를 황귀비로 책봉했지만, 8일 뒤인 1725년 11월 23일에 불과 서른 안팎의 나이로 원명원에서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옹정제는 직접 그녀의 시호를 돈숙황귀비(敦肅皇貴妃)로 내렸다.
옹정제는 그녀가 죽은 이후 그녀의 오빠인 연갱요의 직위를 박탈하고 92가지 죄를 물어 자결하게 했지만, 그녀의 다른 형제들은 무사했고 부친 연하령의 장례는 일등공의 예로 치러졌다. 이후로도 연씨 가문은 양황기 한군 가문으로서 계속 권세를 누렸다.
3. 자녀
- 황4녀 (1715년 ~ 1717년)
- 황7자 복의(福宜) (1720년 ~ 1721년)
옹정제 즉위 전에 요절함
- 황8자 화석친왕(和碩親王) 복혜(福惠) (1721년 ~ 1728년)
요절하였다. 옹정 13년 화석친왕으로 추봉되어 시호 "회(怀)"를 받았다.
- 황9자 복패(福沛) (1723년)
유산되었다.
4. 대중매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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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드라마
보보경심 - 연비 (배우: 육매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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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드라마 화락궁정착유년 - 연주원 (배우:
리샤민즈) 여주인공으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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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드라마
몽회 - 측복진 연씨 (배우: 정경문)
- 2023년 드라마 정호우견니는 현대극인데 역사다큐를 만드는 사람들을 다루고 있다. 극중 역사다큐에서 2011년 드라마 궁쇄심옥에서 연씨를 맡았던 동려아가 연씨를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