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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徳川和子/源和子[1]( 1607년 11월 23일 - 1678년 9월 2일)
도쿠가와 히데타다와 정실 스겐인의 5녀로, 그 유명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손녀다.
남북조 시대 남조[2]의 키타바타케 노부코/미나모토노 신시(北畠信子/源信子)[3] 이후 삼백 년 만에 처음으로 등장한 천황의 정실이자[4] 역사상 유일한 막부 정이대장군의 딸 출신의 중궁이다. 진짜 세이와 겐지이자 황실 분가였던 가마쿠라 막부[5]와 무로마치 막부도 무가라는 이유로 딸이 황후가 되지 못한 걸 생각한다면 당시 에도 막부의 권세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다.
고미즈노오 덴노의 중궁이며, 나라 시대 이후 처음으로 등장한 여천황 메이쇼 덴노의 어머니이다. 흔히들 황후라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 명칭은 제2의 황후급이었던 중궁(中宮)이었다.
2. 생애
게이초 2년( 1607년) 10월 4일 에도 성 오오쿠에서 태어났다. 본래 이름은 카즈코였으며, 마츠히메(松姫) 혹은 카즈히메(和姫)라고 불렸다.1612년(게이초 17년) 고미즈노오 덴노가 즉위하자 할아버지인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손녀인 카즈코의 입궁을 추진하였고, 1614년(게이초 19년) 입궁 선지가 내려졌다. 그러나 오사카 성 전투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사망, 고요제이 덴노의 붕어 등으로 미루어졌다.
1618년(겐나 4년) 여어(女御)가 되어 들어갈 전각을 만들기 시작했지만 고미즈노오 덴노가 총애하는 궁녀 요츠츠지 요츠코(四辻与津子)가 황자 카모노미야(賀茂宮)(1618∼1622)[6]를 출산한 것이 알려지면서 입궁에 문제가 생겼다. 하지만 요츠츠지 요츠코와 그 자녀들이 쫓겨나면서 일단락된다.
1620년(겐나 6년) 입궁에 앞서 6월 2일 종3위에 임명되었고, 6월 18일에 고미즈노오 덴노의 여어(女御)가 되어 입궁하였는데, 입궁 행렬이 니조 성(二条城)에서부터 성대하게 이어졌다고 한다. 이 때 일본 황실은 탁음을 꺼린다고 하여 이름의 발음을 카즈코에서 마사코로 바꾸게 된다.
1623년(겐나 9년) 마사코가 회임하였고, 같은 해 6월 도쿠가와 이에미츠가 정이대장군이 되었다. 그리고 그 해 11월 19일 황녀 오키코 내친왕을 낳았다.
1624년(간에이 원년) 11월 28일에 중궁에 책봉되었다.
1625년(간에이 2년) 9월 황녀 온나니노미야(女二宮)를 낳았고, 1626년(간에이 3년) 11월 13일 황자 다카히토 친왕(高仁親王, 1626 ~ 1628)을 낳았지만 첫 아들인 다카히토 친황은 1627년(간에이 4년)에 요절하였고, 둘째 아들인 황자 와카미야(若宮)도 낳자마자 요절하였다.
1629년(간에이 6년) 승복사건(紫衣事件)으로 인하여 고미즈노오 덴노가 양위를 하게 되고, 그녀의 딸인 카즈노미야 오키코 내친왕이 메이쇼 덴노로 즉위하자 토후쿠몬인(東福門院)이라는 원호(院号)을 받고 남편을 따라 은거하였다. 고미즈노오 덴노가 인세이를 벌였음에도 불구하고 다름아닌 중궁의 비호 때문에 막부는 이에 간섭할 수 없었다.
3. 가족관계
- 남편: 제108대 고미즈노오 덴노
- 제2 황녀: 오키코 내친왕(興子内親王)
- 제3 황녀: 온나니노미야(女二宮, 1625~1651)
- 제2 황자: 다카히토 친왕(高仁親王, 1626~1628)
- 제3 황자: 와카노미야(若宮, 1628)
- 제4 황녀: 아키코 내친왕(昭子内親王 또는 顕子内親王, 1629~1675)
- 제6 황녀: 나츠코 내친왕(賀子内親王, 1632~1696)
- 제7 황녀: 키쿠노미야(菊宮, 1633~1634)
[1]
우지(氏)를 사용했을 경우 미나모토노 마사코.
[2]
메이지 덴노가 정통으로 인정했다. 특이한 점은 당시 승자는
북조였고 현
일본 황실은 북조의 후손이다.
[3]
우지(氏)인
미나모토(源)와 이름인 信子를
음독으로 읽은 것이다.
[4]
내전기를 제외하고 보면
헤이안 시대에 최초로
무신정권을 연
타이라노 키요모리의 딸이자
헤이안 시대 마지막 황후
타이라노 도쿠시(平徳子) 중궁으로, 자그마치 오백 년이나 거슬러 올라간다.
[5]
초대 쇼군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그의 딸 미나모토노 오히메를 입궁시키려다가 요절해서 불발되었다.
[6]
사인은 불분명한데 독살 의혹이 존재한다. 친모인 요츠츠지 요츠코가 자신을 낳았지만 도쿠가와 카즈코를 황후로 맞이하는 문제가 불거지면서 친모인 요츠츠지와 함께 쫒겨났고 이후 의문사했는데 이와 관련해서 도쿠가와 막부 차원의 살해가 있었던게 아닌가 하는 의혹이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