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6:17:55

대성사 목불좌상

파일:서울특별시 휘장_White.svg 서울특별시의 유형문화재
91호 92호 93호
양호거사비 대성사 목불좌상 원지동 석불입상 및 석탑

파일:서울특별시 휘장_White.svg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92호
대성사 목불좌상
大聖寺 木佛坐像
소재지 <colbgcolor=#fff,#191919> 서울특별시 서초구 남부순환로328길 49
분류 유물 / 불교조각 / 목조 / 불상
수량 / 면적 1軀
지정연도 1993년 4월 10일
소유자
(소유단체)
대성사
관리자
(관리단체)
대성사
<colbgcolor=#ff8c00> 대성사 소개 영상. 목불좌상은 2분 4초부터 나온다.

1. 개요2. 역사
2.1. 대성사2.2. 불상
3. 상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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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성사 대웅보전(극락전)에 있는 아미타불 좌상이다. 대성사(大聖寺)는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동 우면산 기슭( 예술의전당 바로 위에 위치하고 있다. 실제 진입로를 예술의전당과 공유하고 있다.)에 있는 이다.

2. 역사

2.1. 대성사

대성사는 백제 때 세웠다고 전하는 이다. 일설에 따르면, 384년( 침류왕 1년) 9월에 인도의 마라난타 대사가 포교를 위해 중국 동진을 거쳐 백제에 왔는데, 오는 도중에 풍토병에 걸려 고생했다. 그 뒤 백제에 도착하여 우면산의 물을 마시고 병이 씻은 듯이 나아서, 우면산에 대성초당(大聖草堂)을 건립한 것이 대성사 역사의 시작이라고 한다. 실제로 《 삼국사기》에 따르면, 저 무렵에 침류왕이 마라난타 대사를 환대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를 보아 저 일화가 사실을 가능성은 높다.

3.1 운동 때에는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인 백용성 스님이 이곳에 머물면서 불교계의 독립운동을 이끈 장소가 되었다. 그래서 일제 경찰이 이곳에 불을 질렀다. 6.25 전쟁 때 또 한 번 파괴당했다가 1954년에 복구하여 오늘에 이른다.

2.2. 불상

이 목불좌상은 상술한 백용성 스님이 대성사에 머물던 1911년에서 1919년 사이에 제작했다고 알려져있다. 다만, 백용성 스님이 칠불암에서 모시고 왔다고도 한다. 만든 목적은 불심을 통해 독립운동을 하기 위한 의지를 다지기 위해서였다.

3. 상세

나무(木)로 만들었으며, 앉아있는(坐) 부처님(佛)의 상(像)이라 하여 '목불좌상(木佛坐像)'이라 부른다. 다만, 도금을 해두어 금빛이 돈다.

몸을 살짝 앞으로 구부렸다. 오른손은 정면을 향해 있으며 약지와 중지를 구부려 엄지와 맞닿게 했고, 왼손은 배 쪽에 대었으며 오른손처럼 약지와 중지를 위로 향해 구부렸다. 얼굴은 전체적으로 둥근 편이나 살짝 길며 표정은 부드럽다. 머리 위에는 둥근 구슬이 있고[1], 머리와 육계[2]의 경계선 부분에는 반달 모양의 중간계주가 새겨져 있다. 가사를 착용했으며 왼쪽, 오른쪽 어깨에 다 걸쳤다.

옷주름을 비롯한 전반적인 선이 유려하다. 이 불상 조선 후기의 양식을 계승하여 근대 초기에 만들었다는 점에서 유물적 가치가 있다. 이를 인정받아 1993년 4월 10일에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92호로 지정받았다.

[1] 이를 정상계주라고 한다. [2] 상투같이 생긴 것인데, 상투와는 다르다. 상투는 머리카락만 올리는 것이고, 육계는 불교설화에 따르면 부처님의 정수리 뼈가 솟아 저절로 상투 형태가 된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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