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8-19 10:02:40

낸시 케리건

낸시 케리건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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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3c3b6e,#141425> 하계 올림픽
1908 1908 런던 파일:독일 제국 국기.svg 엘사 렌슈미트 1920 1920 안트베르펀 파일:스웨덴 국기.svg 스비아 노렌
동계 올림픽
1회 1924 샤모니 파일:미국 국기.svg 비아트릭스 로프렌 <colbgcolor=#3c3b6e,#141425> 2회 1928 생모리츠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프릿지 버거
3회 1932 레이크플래시드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프릿지 버거 4회 1936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 파일:영국 국기.svg 세실리아 콜레지
5회 1948 생모리츠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에바 파릭 6회 1952 오슬로 파일:미국 국기.svg 텐리 올브라이트
7회 1956 코르티나담페초 파일:미국 국기.svg 캐럴 하이스 8회 1960 스쿼밸리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샤우켜 데이크스트라
9회 1964 인스브루크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레진 하이저 10회 1968 그르노블 파일:동독 국기.svg 가브리엘 세이페르트
11회 1972 삿포로 파일:캐나다 국기.svg 카렌 마그누센 12회 1976 인스브루크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디아네 드 리우
13회 1980 레이크플래시드 파일:미국 국기.svg 린다 프래티아니 14회 1984 사라예보 파일:미국 국기.svg 로잘린 섬너스
15회 1988 캘거리 파일:캐나다 국기.svg 엘리자베스 맨리 16회 1992 알베르빌 파일:일본 국기.svg 이토 미도리
17회 1994 릴레함메르 파일:미국 국기.svg 낸시 케리건 18회 1998 나가노 파일:미국 국기.svg 미셸 콴
19회 2002 솔트레이크시티 파일:러시아 국기.svg 이리나 슬루츠카야 20회 2006 토리노 파일:미국 국기.svg 사샤 코헨
21회 2010 밴쿠버 파일:일본 국기.svg 아사다 마오 22회 2014 소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김연아
23회 2018 평창 파일:오륜기.svg 예브게니야 메드베데바 24회 2022 베이징 파일:러시아 올림픽 위원회 기.svg 알렉산드라 트루소바
25회 2026 밀라노·
코르티나담페초
파일:국기.svg ? 26회 ? 파일:국기.svg ?
  • 1912년 올림픽에는 종목으로 추가되어있지 않았고, 1916년 올림픽은 제1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취소,
    1940년과 1944년 올림픽은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취소됨.
  • 1994년 릴레함메르 올림픽부터 동하계 올림픽 개최 주기가 2년마다 번갈아 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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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3c3b6e,#141425> 하계 올림픽
1908 1908 런던 파일:영국 국기.svg 도르시 그린호프 스미스 1920 1920 안트베르펀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테레사 웰드
동계 올림픽
1회 1924 샤모니 파일:영국 국기.svg 에델 무켈트 <colbgcolor=#3c3b6e,#141425> 2회 1928 생모리츠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비아트릭스 로렌
3회 1932 레이크플래시드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마리벨 빈슨 4회 1936 가르미슈파르텐키르헨 파일:스웨덴 국기.svg 비비 안네 헐튼
5회 1948 생모리츠 파일:영국 국기.svg 지네트 알트웨그 6회 1952 오슬로 파일:프랑스 국기(1794-1815, 1830-1958).svg 자케린 두 비에프
7회 1956 코르티나담페초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인그리드 웰든 8회 1960 스쿼밸리 파일:미국 국기(1959-1960).svg 바바라 롤스
9회 1964 인스브루크 파일:캐나다 자치령 국기.svg 페트라 버카 10회 1968 그르노블 파일:체코 국기.svg 한나 마스코바
11회 1972 삿포로 파일:미국 국기.svg 재닛 린 12회 1976 인스브루크 파일:동독 국기.svg 크리스틴 에라스
13회 1980 레이크플래시드 파일:독일 국기.svg 다그마 럴츠 14회 1984 사라예보 파일:소련 국기.svg 키라 이바노바
15회 1988 캘거리 파일:미국 국기.svg 데비 토머스 16회 1992 알베르빌 파일:미국 국기.svg 낸시 케리건
17회 1994 릴레함메르 파일:중국 국기.svg 천루 18회 1998 나가노 파일:중국 국기.svg 천루
19회 2002 솔트레이크시티 파일:미국 국기.svg 미셸 콴 20회 2006 토리노 파일:러시아 국기.svg 이리나 슬루츠카야
21회 2010 밴쿠버 파일:캐나다 국기.svg 조아니 로셰트 22회 2014 소치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카롤리나 코스트너
23회 2018 평창 파일:캐나다 국기.svg 케이틀린 오스먼드 24회 2022 베이징 파일:일본 국기.svg 사카모토 카오리
25회 2026 밀라노·
코르티나담페초
파일:국기.svg ? 26회 ? 파일:국기.svg ?
  • 1912년 올림픽에는 종목으로 추가되어있지 않았고, 1916년 올림픽은 제1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취소,
    1940년과 1944년 올림픽은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취소됨.
  • 1994년 릴레함메르 올림픽부터 동하계 올림픽 개최 주기가 2년마다 번갈아 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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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미국 피겨 선수권.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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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1914년) ~ 50회(196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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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6px -1px -11px;"
<colbgcolor=#3c3b6e,#141425><colcolor=#fff> 1회 1914 뉴헤이븐 테레사 웰드 <colbgcolor=#3c3b6e,#141425><colcolor=#fff> 2회 1915 취소 WWI
3회 1916 취소 WWI 4회 1917 취소 WWI
5회 1918 뉴욕시 로즈메리 베리스퍼드 6회 1919 미개최
7회 1920 뉴욕시 테레사 웰드 8회 1921 필라델피아 테레사 웰드
9회 1922 보스턴 테레사 웰드 10회 1923 뉴헤이븐 테레사 웰드
11회 1924 필라델피아 테레사 웰드 12회 1925 뉴욕시 비어트릭스 로크런
13회 1926 보스턴 비어트릭스 로크런 14회 1927 뉴욕시 비어트릭스 로크런
15회 1928 뉴헤이븐 메리벨 빈슨 16회 1929 뉴욕시 메리벨 빈슨
17회 1930 프로비던스 메리벨 빈슨 18회 1931 보스턴 메리벨 빈슨
19회 1932 뉴욕시 메리벨 빈슨 20회 1933 뉴헤이븐 메리벨 빈슨
21회 1934 필라델피아 수잰 데이비스 22회 1935 뉴헤이븐 메리벨 빈슨
23회 1936 뉴욕시 메리벨 빈슨 24회 1937 시카고 메리벨 빈슨
25회 1938 필라델피아 조앤 토저 26회 1939 세인트 폴 조앤 토저
27회 1940 클리블랜드 조앤 토저 28회 1941 보스턴 제인 본
29회 1942 시카고 제인 본 30회 1943 뉴욕시 그레천 메릴
31회 1944 미니애폴리스 그레천 메릴 32회 1945 뉴욕시 그레천 메릴
33회 1946 시카고 그레천 메릴 34회 1947 버클리 그레천 메릴
35회 1948 콜로라도 스프링스 그레천 메릴 36회 1949 콜로라도 스프링스 이본 C. 셔먼
37회 1950 워싱턴 D.C. 이본 C. 셔먼 38회 1951 시애틀 소냐 크로퍼
39회 1952 콜로라도 스프링스 텐리 올브라이트 40회 1953 허시 텐리 올브라이트
41회 1954 로스앤젤레스 텐리 올브라이트 42회 1955 콜로라도 스프링스 텐리 올브라이트
43회 1956 필라델피아 텐리 올브라이트 44회 1957 버클리 캐럴 하이스
45회 1958 미니애폴리스 캐럴 하이스 46회 1959 로체스터 캐럴 하이스
47회 1960 시애틀 캐럴 하이스 48회 1961 콜로라도 스프링스 로런스 오언
49회 1962 보스턴 바버라 롤스 퍼즐리 50회 1963 롱비치 로레인 핸런 }}}}}}}}}
51회(1964년) ~ 100회(20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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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3c3b6e,#141425><colcolor=#fff> 51회 1964 클리블랜드 페기 플레밍 <colbgcolor=#3c3b6e,#141425><colcolor=#fff> 52회 1965 레이크플래시드 페기 플레밍
53회 1966 버클리 페기 플레밍 54회 1967 오마하 페기 플레밍
55회 1968 필라델피아 페기 플레밍 56회 1969 시애틀 재닛 린
57회 1970 털사 재닛 린 58회 1971 버팔로 재닛 린
59회 1972 롱비치 재닛 린 60회 1973 미니애폴리스 재닛 린
61회 1974 프로비던스 도로시 해밀 62회 1975 오클랜드 도로시 해밀
63회 1976 콜로라도 스프링스 도로시 해밀 64회 1977 하트퍼트 린다 프래티아니
65회 1978 포틀랜드 린다 프래티아니 66회 1979 신시내티 린다 프래티아니
67회 1980 애틀랜타 린다 프래티아니 68회 1981 샌디에이고 일레인 자약
69회 1982 인디애나폴리스 로잘린 섬너스 70회 1983 피츠버그 로잘린 섬너스
71회 1984 솔트레이크시티 로잘린 섬너스 72회 1985 캔자스시티 티파니 친
73회 1986 유니언데일 데비 토머스 74회 1987 타코마 질 트레나리
75회 1988 덴버 데비 토머스 76회 1989 볼티모어 질 트레나리
77회 1990 솔트레이크시티 질 트레나리 78회 1991 미니애폴리스 토냐 하딩
79회 1992 올랜도 크리스티 야마구치 80회 1993 피닉스 낸시 케리건
81회 1994 디트로이트 - 82회 1995 프로비던스 미셸 콴
83회 1996 산호세 타라 리핀스키 84회 1997 내슈빌 미셸 콴
85회 1998 필라델피아 미셸 콴 86회 1999 솔트레이크시티 미셸 콴
87회 2000 클리블랜드 미셸 콴 88회 2001 보스턴 미셸 콴
89회 2002 로스앤젤레스 미셸 콴 90회 2003 댈러스 미셸 콴
91회 2004 애틀랜타 미셸 콴 92회 2005 포틀랜드 미셸 콴
93회 2006 세인트루이스 사샤 코헨 94회 2007 스포캔 키미 마이즈너
95회 2008 세인트 폴 미라이 나가수 96회 2009 클리블랜드 알리사 시즈니
97회 2010 스포캔 레이첼 플랫 98회 2011 그린스보로 알리사 시즈니
99회 2012 산호세 애슐리 와그너 100회 2013 오마하 애슐리 와그너 }}}}}}}}}
101회(2014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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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colbgcolor=#3c3b6e,#141425><colcolor=#fff> 101회 2014 보스턴 그레이시 골드 <colbgcolor=#3c3b6e,#141425><colcolor=#fff> 102회 2015 그린스보로 애슐리 와그너
103회 2016 세인트 폴 그레이시 골드 104회 2017 캔자스시티 카렌 첸
105회 2018 산호세 브래디 테넬 106회 2019 디트로이트 알리사 리우
107회 2020 그린스보로 알리사 리우 108회 2021 라스베이거스 브래디 테넬
109회 2022 내슈빌 머라이어 벨 110회 2023 산호세 이사보 레비토
111회 2024 콜럼버스 앰버 글렌 112회 2025 ? }}}}}}}}}
피겨 스케이팅 내셔널 역대 챔피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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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fe1d8><colcolor=#000000> 낸시 케리건
Nancy Kerrigan
파일:낸시 케리건.jpg
1994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 은메달 획득 당시
본명 낸시 앤 케리건(Nancy Ann Kerrigan)
국적
[[미국|
파일:미국 국기.svg
미국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파일: 기.svg
속령
]]
출생 1969년 10월 13일 ([age(1969-10-13)]세)
매사추세츠 주 스톤햄
신체 162cm
종목 피겨 스케이팅
은퇴 1994년
링크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2. 선수 경력
2.1. 1986-87 시즌2.2. 1987-88 시즌2.3. 1988-89 시즌2.4. 1989-90 시즌2.5. 1990-91 시즌2.6. 1991-92 시즌2.7. 1992-93 시즌2.8. 1993-94 시즌
3. 커리어4. 기타5.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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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前 피겨 스케이팅 선수이며, 1994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 은메달리스트 & 1992 알베르빌 동계올림픽 동메달리스트이다. 2004년 미국 피겨 스케이팅 명예의 전당에 헌정되었으며 토냐 하딩 습격 사건의 피해자로 유명하다.

2. 선수 경력

케리건은 강한 점프 선수로서의 초기 인상을 남겼지만, 컴펄서리에서는 비교적 약했다. 1989-90 시즌 이후 컴펄서리가 폐지될 때까지 그녀는 계속해서 컴펄서리에 의해 제지되었다.

2.1. 1986-87 시즌

1986 NHK 트로피에서 5위를 하고 1987 전미 주니어선수권에서 4위에 오르면서 자국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2.2. 1987-88 시즌

1988 전미선수권에서 12위를 기록했다.

2.3. 1988-89 시즌

1988 스케이트 아메리카에서 5위, 1989 전미선수권에서 5위를 기록했다. 1989 동계 유니버시아드에서 동메달을 땄다.

2.4. 1989-90 시즌

1989 친선경기에서 5위, 1989 트로피 랄리크에서 3위를 기록했다. 1990 전미선수권에서는 4위를 기록했다.

2.5. 1990-91 시즌

1990 트로피 랄리크에서 3위, 1990 나치온스 컵에서 1위를 기록했다.
파일:1991 전미선수권 여자 싱글 포디움.jpg 파일:1991 세계선수권 여자싱글 포디움.jpg
1991 전미선수권 1991 세계선수권
1991 전미선수권에서 3위를 차지하면서 내셔널에서의 상승세가 계속되었다. 따라서 1991 세계선수권 출전권을 얻었으며, 이 대회에서 동메달을 땄다. 이 대회에서 동료인 크리스티 야마구치 토냐 하딩이 각각 금, 은메달을 따내면서 세계선수권에서 단일 국가로는 처음으로 여자 싱글 시상대를 스윕했다.

2.6. 1991-92 시즌

1991 스케이트 아메리카에서 2위를 기록했다.
파일:1992 전미선수권 여자싱글 포디움.jpg 파일:1992 알베르빌 동계올림픽 여자 싱글 포디움.jpg
1992 전미선수권 1992 알베르빌 동계올림픽
1992 전미선수권에서 2위를 차지하며 올림픽 대표로 선발되었다. 1992 알베르빌 동계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땄고 1992 세계선수권에서는 은메달을 땄다.

2.7. 1992-93 시즌

파일:1993 전미선수권 여자싱글 포디움.jpg
1993 전미선수권
크리스티 야마구치가 은퇴한 상황에서, 케리건은 1993 전미선수권에서 비록 실수가 있었지만 우승을 차지했다. 1993 세계선수권에선 쇼트에서 1위에 올랐으나, 프리에서는 거의 모든 점프에서 손을 짚거나 넘어지는 실수가 나왔고 결국 최종 5위로 마무리했다.

2.8. 1993-94 시즌

올림픽 선발전을 겸한 전미선수권을 앞둔 1994년 1월 6일, 케리건은 피겨계를 넘어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한 범죄의 희생양이 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토냐 하딩 습격 사건 문서 참조.

결국 케리건이 전미선수권을 기권한 가운데, 토냐 하딩이 우승했고 미셸 콴이 그 뒤를 이었다.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케리건은 올림픽 대표 2자리 중 한 자리에 들어가게 되었고, 미셸 콴은 대체 선수로 대표팀과 동행하게 되었다. 케리건은 부상에서 빨리 회복하여 집중 훈련을 재개했다.
파일:1994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 여자 싱글 포디움.jpg
1994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
습격이 있은 지 7주 후, 1994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이 열렸고 케리건은 쇼트와 프리에서 모두 훌륭한 경기를 선보였다. 그녀는 쇼트에서 1위를 차지했지만, 프리에서 옥사나 바이울에게 역전당하였고 결국 금메달을 옥사나 바이울에게 아슬아슬하게 내주었다.[1] 케리건은 2위를 차지한 것에 대해 불만과 실망감을 드러내는 것으로 보였다.[2] CBS에서 이것에 대해 방송하였는데, 이게 습격 사건 피해자라는 이미지를 보호해 온 케리건에 대한 동정심과 여론을 악화시켰다. 후에 올림픽 폐막식에 불참했고, 미국으로 떠났다.[3]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는데, 월트 디즈니 월드 퍼레이드에서 케리건이 미키 마우스와 함께 관람객들에게 웃는 얼굴로 손을 흔들며 케리건이 미키 마우스에게 중얼거리는 말이 그대로 녹음되었는데, "It’s so corny.", "so dumb… I hate it.", "This is the most corny thing I’ve ever done."[4]세계선수권에도 불참하였으며 이 시즌을 끝으로 은퇴했다.

3. 커리어

올림픽
은메달 1994 릴레함메르 여자 싱글
동메달 1992 알베르빌 여자 싱글
세계선수권
은메달 1992 오클랜드 여자 싱글
동메달 1991 뮌헨 여자 싱글
유니버시아드
동메달 1989 소피아 여자 싱글

국제대회
대회 84–85 85–86 86–87 87–88 88–89 89–90 90–91 91–92 92–93 93–94
올림픽 3rd 2nd
세계선수권 3rd 2nd 5th WD
피뤠텡 1st
나치온스 컵 1st
트로피 랄리크 3rd 3rd
친선경기 5th
유니버시아드 3rd
스케이트 아메리카 5th 2nd
노버랫 트로피 1st
NHK 트로피 5th
국내대회
전미선수권 9th N 11th J 4th J 12th 5th 4th 3rd 2nd 1st WD
미국 올림픽 페스티벌 3rd 1st
J=주니어, N=노비스, WD=기권

4. 기타

  • 스타크래프트 시리즈 사라 케리건은 이 사람의 이름에 유래되었다. 이는 디자인 구상 당시 전반적인 캐릭터의 모델인 레드얼럿 시리즈의 타냐 토냐 하딩과 이름이 비슷한 타냐를 빗대서 낸시 케리건의 이름을 따왔다.
  •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토냐 하딩은 기술성, 이 선수는 예술성이 뛰어난 것으로 소개하였는데, 낸시 케리건 선수도 예술성보다는 기술성이 뛰어난 선수였다. 트리플-트리플 콤비네이션 점프를 했었고, 점프의 안정적인 성공률[5]이 좋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하딩보다 우위를 점하기 쉬웠다. 반면 토냐 하딩은 트리플 악셀, 트리플 콤비의 기술 난이도는 높았지만, 점프의 안정성이 낮았다.
  • 토냐 하딩 습격 사건의 피해자인 것과 별개로 1994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에서는 다소 프로답지 못한 모습을 보여줬다. 메달 시상식이 우크라이나 국기와 국가를 준비하던 당시, 천루에게 옥사나 바이울에 대한 불만을 쏟는 모습이 미국 방송 카메라에 잡혔다. 경기가 끝나고 폐막식 대신 디즈니 퍼레이드에 참가하여 언급한 불만에 대한 변명을 했지만, 이 때부터 자국 여론은 좋지 못했고 이미지가 추락했다. 반대로 옥사나 바이울은 미국 아이스 쇼에 초청을 받으며 미국 언론에서 "은반의 요정"으로 각광받았다. 다만 낸시 캐리건이 해당 발언으로 인해 지나치게 비난을 받는다는 의견 역시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당시 현장에 있던 관계자로부터 "옥사나 바이울이 우느라 메이크업이 지워져서 다시 손 봐야 하기 때문에 시상식이 지연되고 있다"고 잘못 전달받은 상황이라, 보통의 선수 입장에서는 충분히 짜증스러운 상황인 것은 분명했다. 왜냐하면 포디움에 오른 선수들은 스케이트화를 계속 신은 채로 대기해야 하는데, 경기가 끝난 후에도 스케이트를 계속 신고 있으면 딱딱한 스케이트화로 인해 발목과 다리가 상당히 아프기 때문이다.즉 낸시의 언행이 잘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그렇다고 하여 그녀가 이렇게 큰 비난을 받는 것도 다소 가혹하다는 의견이다. 특히나 아주 사소한 차이로 평생의 꿈인 금메달을 놓친 캐리건의 입장에서 기분이 좋았을 리가 없었을 것이다.
  • 하지만, 낸시 케리건의 여론을 정말 악화시킨 것은 옥사나 바이울에 대해 불만을 토로한 것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케리건은 토냐 하딩 습격 사건의 피해자라는 인식과, 사실상 그녀의 마지막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간발의 차이로 놓쳤다는 여론이 강했기 때문이다.[6]하지만, 케리건이 폐막식에 불참하고 미국으로 떠난 뒤, 케리건이 디즈니 퍼레이드에서 웃는 얼굴로 그녀 옆에 있던 미키 마우스에게 짜증과 불평을 한 것이 그대로 녹음되어 방송되며 여론이 극도로 나빠졌다. 바이울에 대해 불만을 표출한 것은 실망감에 이해할 수 있다는 반응이 많았으나, 무려 200만 달러 스폰서인 디즈니의 행사에서 미키 마우스에게[7] 짜증을 낸 것은 변명할 수 없었다. 게다가, 그 직후 디즈니가 NBC의 아침 토크쇼에 케리건이 출연하도록 주선했는데[8] 어떤 이유에선지 낸시 캐리건이 제시간에 오지 않아, NBC의 아침 토크쇼에서는 텅 빈 의자가 생방송으로 그대로 송출되었고, 방송이 끝나기 직전에야 케리건이 나타났다.
  • 은퇴 이후 아이스 쇼 무대에 오르고 주니어 시절의 김연아의 경기를 해설하는 등 선수 및 해설가로서는 성공적이고 모범적인 삶을 살았으나, 아픈 가정사를 가졌다. 용접공인 아버지가 집을 저당잡힐 정도로 딸의 스케이팅에 지원을 해줬으나 2010년, 여러 면에서 문제가 많았던 오빠와의 큰 다툼으로 인한 충격으로 심장 마비로 사망하였다. 낸시의 어머니도 당시 그 자리에 있었으나 시력이 실명에 가까운 상태[9]라 무슨 일이 일어나는 중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음에도 법정에 서서 증언을 하는 등 가혹한 일을 겪어야 했다.

5. 관련 문서


[1] 프로토콜 결과, 기술점수에서는 낸시는 5.7점을 3개, 5.8점은 6개를 받았다. 반면 바이울은 5.5점 1개, 5.6점 1개, 5.7점 1개, 5.8점 5개, 5.9점을 1개 받았다. 예술점수에서는 낸시는 5.9점을 6개 받아 미국 관중들은 거의 낸시의 금메달을 예상하고 있었다.[10] 그런데 당시 동독 출신 독일 심판이었던 얀 호프만이 바이울에게 예술점수 0.1점을 더 주어서 바이울 역시 낸시처럼 5.9점을 6개를 받게 되었을 뿐더러, 그로 인해 낸시와 바이울의 점수를 1위로 채점한 심판의 수가 동점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당시에는 예술점수로 순위에 우위를 두었던 채점제였기 때문에 예술점수를 조금 더 높게 받은 바이울이 금, 낸시가 은메달이 되었다. CBS TV는 이 논란을 냉전시대 동서 분단으로 묘사함으로써 격앙된 평가를 했으며, 그로 인해 얀 호프만은 북미에서 까일대로 까였다. 위에서 얘기했듯이 같은 유럽, 그것도 같은 공산권 출신 선수에게 점수를 더 주었다고 까였다. [2] 올림픽 관계자들이 우크라이나 국가와 국기를 20분 넘게 찾느라 시상식이 지연됐었는데 옥사나 바이울이 울어서 화장이 지워져 다시 고치느라 시상식이 지연됐다고 누군가 케리건에게 잘못 알렸다. 실망한 기색이 역력한 케리건은 함께 대기하던 천루에게 “Oh, Come on. So She's going to get out here and cry again. What's the difference?” 라고 불만을 터뜨리는 것이 카메라에 잡혔다. [3] 당시 그녀의 소속사는 이것이 노르웨이 보안 팀이 그녀에게 살해 위협 때문에 떠나라고 충고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지만, 이것은 나중에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대신 그녀는 2백만 달러의 스폰서인 월트 디즈니 월드에서 예정된 홍보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노르웨이를 일찍 떠났다. [4] "진짜 진부해.", "완전 바보같아… 진짜 싫다.", "내가 했던 것 중 가장 진부한 일이야." 라는 의미인데, 당시 언론에서 "Icy Nancy" 라고 대놓고 부를 정도로 평판이 추락했다. [5] 전문 용어로는 Consistency(컨시)라고 한다. [6] 당시 낸시 케리건의 나이가 24살이었는데, 이는 여자 싱글 선수로서는 많은 나이다. [7] 당연하지만, 인형탈을 쓴 직원이었다. [8] 여론을 악화시키는 논란에 대해 해명을 하라는 의미일 가능성이 높았다. [9] 이 때문에 케리건은 시각 장애인 단체의 대변인을 맡기도 했다.


[10] 당시 프리 스케이팅에서 트리플 토룹+트리플 토룹 컴비네이션 점프를 성공했다. 첫번째 트리플 토룹은 회전수가 부족했지만, 당시에는 개별 요소에 점수를 주지 않았던 구채점제였고 무엇보다 3회전+3회전 컴비네이션은 일부 최상위권 선수들도 시도조차 못하는 최고난도 점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