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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1914년) ~ 50회(1963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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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3c3b6e,#141425><colcolor=#ffffff> 1회 | 1914 뉴헤이븐 | 테레사 웰드 | <colbgcolor=#3c3b6e,#141425><colcolor=#ffffff> 2회 | 1915 | 취소 WWI |
3회 | 1916 | 취소 WWI | 4회 | 1917 | 취소 WWI | |
5회 | 1918 뉴욕시 | 로즈메리 베리스퍼드 | 6회 | 1919 | 미개최 | |
7회 | 1920 뉴욕시 | 테레사 웰드 | 8회 | 1921 필라델피아 | 테레사 웰드 | |
9회 | 1922 보스턴 | 테레사 웰드 | 10회 | 1923 뉴헤이븐 | 테레사 웰드 | |
11회 | 1924 필라델피아 | 테레사 웰드 | 12회 | 1925 뉴욕시 | 비어트릭스 로크런 | |
13회 | 1926 보스턴 | 비어트릭스 로크런 | 14회 | 1927 뉴욕시 | 비어트릭스 로크런 | |
15회 | 1928 뉴헤이븐 | 메리벨 빈슨 | 16회 | 1929 뉴욕시 | 메리벨 빈슨 | |
17회 | 1930 프로비던스 | 메리벨 빈슨 | 18회 | 1931 보스턴 | 메리벨 빈슨 | |
19회 | 1932 뉴욕시 | 메리벨 빈슨 | 20회 | 1933 뉴헤이븐 | 메리벨 빈슨 | |
21회 | 1934 필라델피아 | 수잰 데이비스 | 22회 | 1935 뉴헤이븐 | 메리벨 빈슨 | |
23회 | 1936 뉴욕시 | 메리벨 빈슨 | 24회 | 1937 시카고 | 메리벨 빈슨 | |
25회 | 1938 필라델피아 | 조앤 토저 | 26회 | 1939 세인트 폴 | 조앤 토저 | |
27회 | 1940 클리블랜드 | 조앤 토저 | 28회 | 1941 보스턴 | 제인 본 | |
29회 | 1942 시카고 | 제인 본 | 30회 | 1943 뉴욕시 | 그레천 메릴 | |
31회 | 1944 미니애폴리스 | 그레천 메릴 | 32회 | 1945 뉴욕시 | 그레천 메릴 | |
33회 | 1946 시카고 | 그레천 메릴 | 34회 | 1947 버클리 | 그레천 메릴 | |
35회 | 1948 콜로라도 스프링스 | 그레천 메릴 | 36회 | 1949 콜로라도 스프링스 | 이본 C. 셔먼 | |
37회 | 1950 워싱턴 D.C. | 이본 C. 셔먼 | 38회 | 1951 시애틀 | 소냐 크로퍼 | |
39회 | 1952 콜로라도 스프링스 | 텐리 올브라이트 | 40회 | 1953 허시 | 텐리 올브라이트 | |
41회 | 1954 로스앤젤레스 | 텐리 올브라이트 | 42회 | 1955 콜로라도 스프링스 | 텐리 올브라이트 | |
43회 | 1956 필라델피아 | 텐리 올브라이트 | 44회 | 1957 버클리 | 캐럴 하이스 | |
45회 | 1958 미니애폴리스 | 캐럴 하이스 | 46회 | 1959 로체스터 | 캐럴 하이스 | |
47회 | 1960 시애틀 | 캐럴 하이스 | 48회 | 1961 콜로라도 스프링스 | 로런스 오언 | |
49회 | 1962 보스턴 | 바버라 롤스 퍼즐리 | 50회 | 1963 롱비치 | 로레인 핸런 | }}}}}}}}} |
51회(1964년) ~ 100회(2013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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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3c3b6e,#141425><colcolor=#ffffff> 51회 | 1964 클리블랜드 | 페기 플레밍 | <colbgcolor=#3c3b6e,#141425><colcolor=#ffffff> 52회 | 1965 레이크플래시드 | 페기 플레밍 |
53회 | 1966 버클리 | 페기 플레밍 | 54회 | 1967 오마하 | 페기 플레밍 | |
55회 | 1968 필라델피아 | 페기 플레밍 | 56회 | 1969 시애틀 | 재닛 린 | |
57회 | 1970 털사 | 재닛 린 | 58회 | 1971 버팔로 | 재닛 린 | |
59회 | 1972 롱비치 | 재닛 린 | 60회 | 1973 미니애폴리스 | 재닛 린 | |
61회 | 1974 프로비던스 | 도로시 해밀 | 62회 | 1975 오클랜드 | 도로시 해밀 | |
63회 | 1976 콜로라도 스프링스 | 도로시 해밀 | 64회 | 1977 하트퍼트 | 린다 프래티아니 | |
65회 | 1978 포틀랜드 | 린다 프래티아니 | 66회 | 1979 신시내티 | 린다 프래티아니 | |
67회 | 1980 애틀랜타 | 린다 프래티아니 | 68회 | 1981 샌디에이고 | 일레인 자약 | |
69회 | 1982 인디애나폴리스 | 로잘린 섬너스 | 70회 | 1983 피츠버그 | 로잘린 섬너스 | |
71회 | 1984 솔트레이크시티 | 로잘린 섬너스 | 72회 | 1985 캔자스시티 | 티파니 친 | |
73회 | 1986 유니언데일 | 데비 토머스 | 74회 | 1987 타코마 | 질 트레나리 | |
75회 | 1988 덴버 | 데비 토머스 | 76회 | 1989 볼티모어 | 질 트레나리 | |
77회 | 1990 솔트레이크시티 | 질 트레나리 | 78회 | 1991 미니애폴리스 | 토냐 하딩 | |
79회 | 1992 올랜도 | 크리스티 야마구치 | 80회 | 1993 피닉스 | 낸시 케리건 | |
81회 | 1994 디트로이트 | - | 82회 | 1995 프로비던스 | 미셸 콴 | |
83회 | 1996 산호세 | 타라 리핀스키 | 84회 | 1997 내슈빌 | 미셸 콴 | |
85회 | 1998 필라델피아 | 미셸 콴 | 86회 | 1999 솔트레이크시티 | 미셸 콴 | |
87회 | 2000 클리블랜드 | 미셸 콴 | 88회 | 2001 보스턴 | 미셸 콴 | |
89회 | 2002 로스앤젤레스 | 미셸 콴 | 90회 | 2003 댈러스 | 미셸 콴 | |
91회 | 2004 애틀랜타 | 미셸 콴 | 92회 | 2005 포틀랜드 | 미셸 콴 | |
93회 | 2006 세인트루이스 | 사샤 코헨 | 94회 | 2007 스포캔 | 키미 마이즈너 | |
95회 | 2008 세인트 폴 | 미라이 나가수 | 96회 | 2009 클리블랜드 | 알리사 시즈니 | |
97회 | 2010 스포캔 | 레이첼 플랫 | 98회 | 2011 그린스보로 | 알리사 시즈니 | |
99회 | 2012 산호세 | 애슐리 와그너 | 100회 | 2013 오마하 | 애슐리 와그너 | }}}}}}}}} |
101회(2014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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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3c3b6e,#141425><colcolor=#ffffff> 101회 | 2014 보스턴 | 그레이시 골드 | <colbgcolor=#3c3b6e,#141425><colcolor=#ffffff> 102회 | 2015 그린스보로 | 애슐리 와그너 |
103회 | 2016 세인트 폴 | 그레이시 골드 | 104회 | 2017 캔자스시티 | 카렌 첸 | |
105회 | 2018 산호세 | 브래디 테넬 | 106회 | 2019 디트로이트 | 알리사 리우 | |
107회 | 2020 그린스보로 | 알리사 리우 | 108회 | 2021 라스베이거스 | 브래디 테넬 | |
109회 | 2022 내슈빌 | 머라이어 벨 | 110회 | 2023 산호세 | 이사보 레비토 | |
111회 | 2024 콜럼버스 | 앰버 글렌 | 112회 | 2025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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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겨 스케이팅 내셔널 역대 챔피언 {{{#!wiki style="display: inline; padding: 2px 3px; border-radius: 3px; background: #3c3b6e; font-size: 1e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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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55295b><colcolor=#ffffff> 토냐 하딩 Tonya Harding |
|
|
|
이름 |
토냐 막센 하딩 Tonya Maxene Harding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출생 | 1970년 11월 12일 ([age(1970-11-12)]세) |
오리건 주 포틀랜드 | |
학력 | 밀워키고등학교 (중퇴)[1] |
종목 | 피겨 스케이팅 → 복싱, 격투기 |
신체 | 155cm |
가족 |
前 배우자 제프 길룰리[2](1990~1993) 前 배우자 마이클 스미스(1995~1996) 現 배우자 조셉 프라이스(2010~) 아들 고든 프라이스[3]([age(2011-02-19)]세) |
링크 |
[clearfix]
1. 개요
미국의 前 피겨 스케이팅 선수이며, 세계에서 두번째로 트리플 악셀을 성공한 여자 선수이다. 토냐 하딩 습격 사건의 가해자로 유명하다.2. 피겨 스케이팅 선수 경력
3살 때부터 다이앤 롤린슨 코치에게 스케이트를 배웠으며 1986년 전미선수권 대회에서 6위를 기록했다.2.1. 1986-87 시즌
1986 올림픽 페스티벌에서 3위, 1986 스케이트 아메리카에서 2위, 1987 전미선수권에서 5위를 기록했다.2.2. 1987-88 시즌
1987 NHK 트로피에서 3위, 1988 전미선수권에서는 작년과 동일하게 5위를 기록했다.2.3. 1988-89 시즌
1989년부터 도디 티치먼 코치에게 배우기 시작했으며 1989 전미선수권에서 3위를 차지했다.2.4. 1989-90 시즌
1989 스케이트 아메리카와 1989 나치온스 컵에서 우승함으로서 1990 전미선수권의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혔다. 하지만 독감과 천식으로 인해 프리 스케이팅을 잘 타지 못했으며 최종 7위에 그쳤다. 이때까지 하딩은 프리 스케이팅에서 강했으며 대체로 컴펄서리에서 약한 편이었다.[4]2.5. 1990-91 시즌
1990 올림픽 페스티벌에서 2위, 1990 NHK 트로피에서 2위를 했다.1991 전미선수권 | 1991 세계선수권 |
이후 국제대회인 1991 세계선수권에서 트리플 악셀을 다시 한 번 성공시켰다. 크리스티 야마구치에 이어 은메달을 차지했고 동메달을 딴 낸시 케리건과 함께 세계선수권 여자 싱글 포디움을 휩쓸었다. 1991년은 하딩에게 짧다면 짧은 전성기였다.
2.6. 1991-92 시즌
1991 스케이트 아메리카 대회에서 우승과 함께 3개의 기록을 남겼다.- 쇼트 프로그램에서 트리플 악셀을 성공한 최초의 여자 선수
- 단일 대회에서 2개의 트리플 악셀을 성공한 최초의 여자 선수
- 트리플 악셀 컴비네이션(3A+2T)을 최초로 성공한 여자 선수
그러나 이러한 기록에도 불구하고 하딩은 1991년 이후 다시는 트리플 악셀을 성공시키지 못하였다. 따라서 하딩의 성적은 점점 하락하기 시작했다.
1992 전미선수권 |
1992년 3월 1일, 하딩은 티치먼에게 즉석에서 해고당했고 어린 시절 코치인 다이앤 롤린슨에게 돌아갔다. 1992 세계선수권에서는 6위를 기록했다.
2.7. 1992-93 시즌
1992 스케이트 캐나다에서 4위를 차지했다.1993 전미선수권 |
2.8. 1993-94 시즌
1993 스케이트 아메리카 3위, 1993 NHK 트로피 4위를 기록했다.1994 전미선수권 | 1994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 |
1994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에서, 프리 스케이팅 경기 도중 갑자기 울면서 심판에게 스케이트 끈이 풀려서 다시 묶고 하고 싶다고 어필하였고, 심판들이 이를 받아들여 다시 처음부터 재경기를 했다. 그러나 트리플 악셀을 싱글로 처리하며, 좋지 못한 점수를 받아 최종 8위에 그쳤다. 한편 금메달은 옥사나 바이울이 차지했고 낸시 케리건은 은메달을 획득했다. 이후 재판을 통해 하딩은 미국 빙상 연맹에서 영구제명되었다.
3. 은퇴 이후
USFSA 출전 금지에도 불구하고 이후 프로 무대에 올라 1999년 ESPN 프로 스케이팅 챔피언십에서 2위를 차지했다.2000년대 초 하딩은 프로 복서로 전향했고, 그녀의 삶은 수많은 영화, 다큐멘터리, 책, 그리고 학문의 주제가 되어왔다. 2014년, 하딩의 인생과 스케이팅 커리어에 관한 두 편의 TV 다큐멘터리가 제작되었고, 이는 스티븐 로저스 감독, 마고 로비 주연의 영화 아이, 토냐(2017)가 제작된 영감으로 작용했다. 2018년에는 ‘댄싱 위드 더 스타’ 시즌 26에 출전해 3위에 올랐다.[6] 2019년에는 ‘미국 최악의 요리사: 셀레브리티 에디션’ 시즌 16에서 우승했다.
4. 기술 및 주요 기록
3A+2T | 3Lz |
사실 토냐 하딩의 경우 불명예스러운 은퇴 이후 각종 미디어에 의해 선수로서의 기량이 과대평가 된 점 역시 부인할 수 없다. 그녀의 특기로 알려진 트리플 악셀은 사실상 선수생활 중 한 시즌만 건재했으며, 가장 중요한 올림픽 무대에서는 아예 싱글링을 하며 성공시키지 못했다. 자국의 라이벌이었던 낸시 캐리건이 결국 더 좋은 성적을 거둔 이유 역시 캐리건이 비록 트리플 악셀 만큼은 아니더라도 당시로는 고난이도였던 트리플 토룹 - 트리플 토룹과 같은 연속 점프를 깔끔하게 성공했고 점프 성공률 역시 더 안정적이었기 때문이다.
주요 기록
- 이토 미도리에 이어 트리플 악셀을 성공한 두번째 여자 선수
- 트리플 악셀을 성공한 최초의 미국 여자 선수
- 쇼트 프로그램에서 트리플 악셀을 성공한 최초의 여자 선수
- 단일 대회에서 2개의 트리플 악셀을 성공한 최초의 여자 선수
- 트리플 악셀 컴비네이션(3A+2T)을 최초로 성공
5. 커리어
세계선수권 | ||
은메달 | 1991 뮌헨 | 여자 싱글 |
국제대회 | |||||||||
대회 | 85–86 | 86–87 | 87–88 | 88–89 | 89–90 | 90–91 | 91–92 | 92–93 | 93–94 |
올림픽 | 4th | 8th | |||||||
세계선수권 | 2nd | 6th | WD | ||||||
스케이트 캐나다 | 4th | ||||||||
나치온스 컵 | 1st | ||||||||
모스크바 뉴스 | 1st | ||||||||
NHK 트로피 | 3rd | 2nd | 4th | ||||||
스케이트 아메리카 | 2nd | 1st | 1st | 3rd | |||||
국내대회 | |||||||||
전미선수권 | 6th | 5th | 5th | 3rd | 7th | 1st | 3rd | 4th |
|
미국 올림픽 페스티벌 | 5th | 3rd | 2nd | ||||||
WD=기권 |
6. 기타
- 불우한 가정사를 지녔는데, 언니가 매춘을 할 정도로 가난한 러시아계 가정에서 태어나 비싼 피겨 스케이팅을 배울 돈이 없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식당 웨이트리스로 일하면서 하딩을 뒷바라지했는데, 경제적 여유가 없어 하딩의 의상을 직접 바느질해야 했다. 하딩은 어릴 때 아버지로부터 자동차 정비법을 배우기도 했다. 부모님은 하딩이 16살 때 이혼했다. 어머니의 학대도 심각했는데, 후원자 중에서는 토냐의 어머니가 토냐를 때리고 욕하는 모습을 보고 후원을 그만둔 사례도 있었다. 이 당시 코치들은 유능한 제자를 키우는 재미로 자원 봉사를 했고, 스케이트화나 의상을 저렴하게 공급할 공급자들과 재정 후원자들을 찾아야 했다. 훈련할 빙상장을 찾기도 어려웠다.
- 어릴 때부터 성격이 거칠고 반항적인 편으로 말썽을 적지 않게 일으켰다. 훗날 토냐 하딩의 각종 추문을 조사한 고향 지역 언론인은 토냐 하딩이 싸이코패스라고 단정할 정도였다. 또한 기본적인 경기 준비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올림픽에서 경기 직전에 도착하여 컨디션 확보에 실패한다든가, 경기 도중 스케이트 끈이 풀려 중간에 끈을 묶은 후 다시 재경기를 치르는 등 다른 선수들에게서는 보기 힘든 문제를 자주 겪었다.
- 그녀의 결혼 생활도 문제가 되었다. 훗날 토냐 하딩 습격 사건의 주범인 前 남편 제프 길로리의 폭력을 피하기 위해 법원으로부터 접근금지명령을 얻어냈는데, 길로리가 다시 접근하자 거부하지 못하고 같이 살기도 했다.
- 1994년 전미선수권에서 우승을 했지만, 토냐 하딩 습격 사건으로 미국 피겨 스케이팅 연맹은 투표를 통해 토냐 하딩이 1위라는 사실을 표기하지 않기로 결정하였다. 당시 2위는 미셸 콴, 3위는 니콜 보벡, 4위는 일레인 자약이었지만 순위는 올라가지 않았다.
- 파워풀한 스케이터로 아이스 링크 가까이에 있는 관객은 얼굴에 바람이 확 불어 오기 때문에 이 선수의 힘을 체감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를 바탕으로 다른 선수들보다 한층 어려운 기술들을 선보일 수 있었다. 그러나 힘의 바탕인 근육질의 다리 때문에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7. 사건 사고
자세한 내용은 토냐 하딩 습격 사건 문서 참고하십시오.8. 관련 문서
[1]
운동에 집중하기 위해 2학년 때 고등학교를 그만뒀으며 1988년 일반 교육 개발(
GED) 자격증을 취득했다.
[2]
토냐 하딩 습격 사건의 범인 중 한 명이다.
[3]
성을 봐도 알 수 있듯이 세번째 남편인 조셉 프라이스와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4]
이 시즌 이후로 컴펄서리가 대회에서 폐지되었다.
[5]
나중에 타이틀을 박탈당했다: 미 연방 안전청 징계 위원회는
낸시 케리건에 대한 습격 사건 조사에 따라 1994년 6월에 타이틀을 박탈했다.
[6]
댄싱 위드 더 스타 시즌 26 우승자는 전직 피겨 스케이팅 선수인
아담 리폰이, 2위는 NFL 코너백인 조시 노먼이 차지하였다.
[7]
위 3A+2T 움짤만 봐도 축이 심하게 흔들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