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6 07:41:44

김형석(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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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6348b><colcolor=#fff> 대한민국 제13대 독립기념관장
김형석
金亨錫 | Kim Hyoung-suk
파일:김형석.jpg
출생 1955년 9월 30일 ([age(1955-09-30)]세)
경상남도 진주시
현직 독립기념관장
재임기간 제13대 독립기념관장
2024년 8월 6일 ~ 현직
배우자 김옥희
학력 건국대학교 문리과대학 ( 사학 / 학사)
단국대학교 대학원 ( 사학[1] / 석사[2])
경희대학교 대학원 ( 사학[3] / 박사[4])
종교 개신교 ( 장로회)[5]
경력 오산고등학교 교사
총신대학교 사범학부 역사교육학과 교수
우리민족서로돕기 사무총장
한민족복지재단 사무총장·회장
그레이스교회 담임목사
통일부 정책자문위원
통일과나눔재단 운영위원장
안익태기념재단 연구위원장
대한민국사연구소장
고신대학교 대외협력처 연구기금석좌교수
재단법인 대한민국역사와미래 이사장
제13대 독립기념관장 ( 윤석열 정부)

1. 개요2. 생애3. 논란 및 사건 사고
3.1.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임명 논란 관련
3.1.1. 뉴라이트 논란3.1.2. 독립기념관 광복절 경축식 취소 논란3.1.3. "친일파 명예회복" 발언 및 친일인명사전 수정 논란3.1.4. '일제강점기 때 우리 국민들은 일본 국적이었다' 발언 논란
3.2. 샘물교회 선교단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건 책임소재 관련 논란3.3. 독립기념관 행사 중 졸음 논란3.4. 정무위 중 태도 논란3.5. 대북지원 보조금 부정 수령
4. 저서5. 수상 경력6. 관련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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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 역사학자, 사회기관단체인. 제13대 독립기념관장이다.

2. 생애

1955년 경상남도 진주시에서 태어나 건국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오산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며 단국대학교 대학원에서 사학 석사, 경희대학교 대학원에서 역사학 박사 학위까지 땄고 남강문화재단에서 연구원으로 재직하며 이승훈 연구에 참여하기도 했다. 1991년부터 총신대학교 교수로 일하다가 1995년 북한 대홍수 소식을 듣고 '인도지원 사업'에 투신해 1996년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창립으로 초대 사무총장을 맡았다가 1997년 '한민족복지재단' 설립 후 초대 사무총장 및 회장을 10년 동안 맡으며 대북지원 및 국제 구호 활동에 진력하며 2003년 통일부 정책자문위원으로 위촉됐고 2006년 한민족복지재단이 북한 복토직파 기술을 이용한 농업지원이 유엔 경제사회이사회로부터 혁신사례로 인정받아 제1회 국제NGO혁신박람회의 아시아 대표로 선정되는 데 공헌하기도 했다. # 2015년에는 통일과나눔 창립 때 운영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참고로 통일과나눔의 컨퍼런스를 주최하는 곳은 조선일보이다.

2016년부터 안익태기념재단 연구위원장을 맡으며 역사학 연구를 다시 시작하여 2020년 대한민국사연구소 소장, 2021년 고신대학교 석좌교수를 맡았고 2022년 '대한민국역사와미래'를 설립한 후 초대 이사장으로 재직했다.

2024년 8월 6일, 윤석열 대통령의 추천으로 독립기념관장으로 임명되었다.

3. 논란 및 사건 사고

3.1.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임명 논란 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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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1. 뉴라이트 논란


김형석은 2023년 12월 자유민주를 위한 국민운동 행사에서 "대한민국이 1945년 8월 15일 광복됐다며 그게 광복절이라고 이야기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역사를 정확하게 모르는 것"이라고 주장한 적이 있다. #

그래서 독립기념관장 임명 소식이 알려지자 광복회와 야당인 민주당은 그를 뉴라이트로 지목하며 임명에 반대했다. 이종찬 광복회장 등은 그의 임명을 두고 그가 1945년 8월 15일 광복절을 부정하며 " 1948년 8월 15일 나라가 세워지며 대한민국이 시작된 것"이라고 발언하거나 홍범도 흉상의 철거를 주장하는 등 뉴라이트적 관점을 가진 인물이기에 독립기념관장에 알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국가보훈부는 "뉴라이트는 1948년 건국절을 주장하는데, 김 관장은 그렇지 않다"는 이유를 들어 그가 뉴라이트라는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6]

그는 취임 이전부터 작곡가 안익태를 두고 "항일과 친일이라는 이분법적 잣대로 재단할 수 없다"고 평하거나 백선엽 장군에 대해 " 간도특설대에 근무한 사실만으로 진실을 오해", "친일파라는 불명예를 쓰고 별세했다" 등의 주장으로 옹호하는 등 기존에 친일 행적이 드러난 인물들에게 관심을 두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


2024년 8월 26일 '1945년 광복을 인정하는 것인지' 묻는 유동수 의원 질문에 "관장 자격으로는 제가 코멘트(답변)할 내용이 없고요."라고 답변했다. 독립기념관장이 된 후에도 여전히 광복절을 시인할 수 없다는 태도를 보인 것이다. #

3.1.2. 독립기념관 광복절 경축식 취소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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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은 그의 독립기념관장 취임에 반발해 2024년 광복절 경축식 보이콧을 검토한 것으로 알렸고 # 광복회 윤석열 대통령이 광복절을 기념해 독립운동가 후손들을 초청하는 오찬에 불참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 임명에 대한 항의로 2024년 8월 15일 광복절 경축식에 불참한다는 뜻도 밝혔다. 광복회가 1965년에 창립된 이래 정부 주최 광복절 행사에 불참하는 것은 처음이다. #

MBC 8월 7일 뉴스데스크 클로징 멘트를 통해 우리 사회가 수십 년간 지켜온 선을 넘다 못해 지워버리려 하는 위헌적인 일이라고 질타했다. #

이에 김형석 측은 취임 당일 기자간담회를 직접 열어 " 대한민국은 1919년에 건국을 시작해 1948년에 완성했다고 본다"고 주장하며 독립운동가들의 희생적 활동을 폄훼해 온 적은 없다고 했으면서도 "극단적인 역사문제 대립을 멈추고 화합과 미래로 나갔으면 한다"는 식으로 입장을 냈고 뉴라이트 논란에 대해서도 "처음 듣는 개념이지만 학생 운동권 출신 보수 내지 일제 식민사관 동조자를 일컬은 걸로 보이나 나는 어디에도 해당 안 된다"는 식으로 해명성 입장을 냈다. 광복회원들의 취임식 참석 거부에 대해서도 언제든지 광복회와 대화할 용의가 있다고 하며 향후 독립기념관 내에 '40주년 기념도서관'을 세우는 등 낙후된 연구환경 개선에 노력하겠다고도 했다. #

결국 야5당, 그리고 광복회 등 여러 독립운동 관련 단체들이 모두 일제히 불참을 선언하자 독립기념관 창사 후 최초로 광복절 기념 행사를 취소했다. 독립기념관 광복절을 기념하지 않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난 것이다. 천안시와 박상돈 시장이 직접 나서서 독립기념관 행사를 따로 꾸리겠다고 결정하며 애꿎은 천안시가 사태를 수습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개혁신당의 경우 12일 지도부에서 "김형석 관장 임명에 반대하지만 대한민국 전체의 행사이기에 참석하겠다"라고 밝혔으나 천하람 원내대표와 이주영 정책위의장, 이준석 의원은 14일 (지도부 방침과 별개로) 불참 의사를 밝혔다.

8월 12일, 그는 용산 서울보훈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광복회와 야당 등이 사퇴 요구를 하는 것에 대해 "사퇴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독립기념관장 지원자 면접 당시 '일제시대 우리나라 국민의 국적이 어디냐'는 질문에는 "일제시대 국적은 일본이다. 그래서 국권을 되찾기 위해 독립운동을 한 것 아니냐"고 답변했다고도 말했다. # 이것을 두고 이종찬 광복회장은 " 독립기념관장으로서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으로서도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 김 관장을 비판하면서 "일제시기 밀정이 자신을 밀정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나. 이 분은 일제강점기 우리 국민의 국적을 일본이라고 강변하는 사람이다. 너무도 당연하게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는 인식이 깔려있는데, 이 분이 독립기념관장 자리에 있으면 과연 누가 인정을 할까”라고 비판했다. #

해당 기자회견에서 그는 "만약 나의 주장이 잘못됐다면 학문적으로 지적하면 되는데 마치 중세교회가 지동설을 주장하는 갈릴레오를 종교재판에서 화형에 처한 것처럼 여론몰이를 통해 마녀사냥하듯 인민재판을 벌이고 있다"고 주장했으나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종교재판의 결과로 화형을 당한 적이 없다.

8월 12일 독립기념관 주최로 열린 한 학술행사에서는 발언하는 동안 토론에 참석한 역사학자 전원이 돌아앉아 버리는 수모를 당했다. #

8월 13일 경향신문 동북아역사재단, 국사편찬위원회, 한국학중앙연구원 등 역사 관련 8개 공공기관과 위원회에 최소 21명의 뉴라이트 인사들이 25개의 요직을 맡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 # 윤석열 정부에서 뉴라이트 관련 인사들을 주요 요직에 임명했다는 것이다.

11대 독립기념관장인 이준식은 김형석이 당장 사퇴해야 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

더불어민주당 소속 추미애 의원은 " 윤석열 정부 조선총독부 같다"며 비판했고 조국혁신당 대표인 조국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을 "제10대 조선 총독"으로 취급하는 발언을 하며 강하게 비판했다. # #

8월 14일 2차 기자회견에서도 사퇴할 의사가 없다고 밝혔다. #

일본 극우 언론인인 무로타니 가쓰미(室谷克実)는 반으로 갈라진 한국의 광복절 경축식을 조롱하고, 논란의 중심인 김형석 독립기념관장을 옹호하고 나섰다. 무로타니는 이어 “과거 광복절은 한국 전체가 일본을 저주하는 날이었다”며 15일 행사엔 광복회원도 야당 의원도 참석하지 않는 이례적인 형태가 됐다”고 언급했다. #. 무로타니는 기자 출신으로 ‘일본인이라면 알아둬야 할 반일 한국 100가지 거짓말’ 등 다수의 ‘ 혐한 서적’을 쓴 일본의 대표적인 극우 인사다.

3.1.3. "친일파 명예회복" 발언 및 친일인명사전 수정 논란


취임 후 독립기념관장으로서 무슨 일을 중점적으로 하겠냐고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 친일인명사전의 내용에 오류들이 있다"고 주장하고 "잘못된 기술로 인해 억울하게 친일 인사로 매도되는 분들이 있어서는 안 된다"며 "친일파로 매도된 인사들의 명예 회복에 앞장서겠다"라고 답했다. 그는 백선엽을 향해 친일파라는 불명예를 쓰고 별세했다며 간도특설대에 근무한 사실만으로 오해한 것이라 말하며 안익태는 세계평화를 이루려한 것이라고 각별한 관심을 밝혔다. #

이에 대해 MBC는 " 독립기념관장이 취임 첫날부터 친일파 명예 회복을 언급한 셈"이라며 비판했다. #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당대표 직무대행은 "'친일파로 매도된 인사들의 명예회복에 앞장서겠다'가 김형석 신임 독립기념관장의 취임 일성"이라며 "역사 바로 세우기를 위해 8년간의 노력이 집중된 친일인명사전 폄훼도 모자라 독립기념관을 친일파 명예 회복을 위해 존재하는 위원회로 추락시켰다"며 비판했다. #

광복회 등 독립운동가 유족측은 "친일 관장 웬말이냐 역사 앞에 사죄하라!"며 독립기념관의 입구 앞에서 취임식장을 막고 항의했으며 민족문제연구소 방학진 실장은 "평소 지론대로 ' 안익태에 대한 독립운동을 연구해라' 지시할 가능성이 높죠. 독립기념관장으로 앉아서 친일파들을 다시 복권해낼 가능성이 높다"라며 우려했다.

한시준 전 독립기념관장은 "간도특설대는 한국 사람들로 하여금 독립군 활동을 탄압하도록 조직된 특수부대"라며 "거기서 활동했던 백선엽을 옹호하는 것은 독립기념관장으로서 할 일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반병률 한국외대 사학과 명예교수는 "백선엽은 친일 행위를 인정했고, 안익태가 친일 행위를 한 것도 분명하다"며 "이를 부정하고 별것 아니라 하는 분이 독립기념관의 수장이 되는 것은 독립기념관의 설립 취지와는 맞지 않는다"고 밝혔다. #

그가 2021년 블로그에 기고한 글에서 “ 박정희가 만주국군 장교였다는 사실만으로 ‘독립군 토벌 부대원’이라고 단정 짓고 이에 기초해 그를 적극적인 친일파로 분류하는 것은 역사의 왜곡“이라고 주장한 일이 발굴되었다. # 인용된 경향신문 기사에서 쟁점은 독립군 토벌 여부로, 김형석이 지적하는 것은 작가 류연산을 비롯한 일군의 사람들이 '박정희가 만주군 장교 시절 독립군 토벌에 참가했다'는 주장에 대한 반론이고 그때문에 '적극적' 친일파는 아니었다고 김형석은 주장하고 있다.

3.1.4. '일제강점기 때 우리 국민들은 일본 국적이었다' 발언 논란

[팩트체크] 일제 강점기 우리 국민은 일본 국적인가?

김형석은 독립기념관장 면접 당시에 일제강점기에 우리는 어느 나라 국적이었냐는 질문에 "일제강점기에 우리 국민들의 국적은 일본이었죠. 그래서 우리가 국권을 되찾기 위해서 독립운동을 한 것 아닙니까?"[7]라고 답변했다고 한다. CBS 방송에 출연하여 자신의 발언을 해명하는 과정에서 국적은 법적인 자격을 말하는 것이라고 했으며, 손기정 선수가 올림픽에 출전하기 위해 국적을 일본으로 했던 점을 근거로 들었다. #[8][9]

하지만 김형석의 발언은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이 일본법의 적용을 받은 일본 국적자가 아닌 점을 밝힌 법원 판결에 어긋난다.
현행헌법도 그 전문에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대한민국 헌법의 규정에 비추어 볼 때, 일제강점기 일본의 한반도 지배는 규범적인 관점에서 불법적인 강점(强占)에 지나지 않고, 일본의 불법적인 지배로 인한 법률관계 중 대한민국의 헌법정신과 양립할 수 없는 것은 그 효력이 배제된다고 보아야 한다.
대법원 2012. 5. 24. 선고 2009다68620 판결 #

일제강점기 때 조선인에게는 일본인에 상응하는 권리와 의무가 주어지지도 않았다. 일제는 일본인에게는 국적법을 적용한 반면, 조선인에게는 감시하고 관리하기 위한 호적법을 만들어 적용했다.

현재 일본은 강제징용 일본군 위안부 피해에 대해 적법한 행위로 자발적 지원에 의한 노동이라고 강조하는데, 일제강점기에 조선인이 일본 국적이었다는 발언은 일본 측 주장에 힘을 실어줄 수 있다. #

반병률 교수는 "일제가 해외로 이주해 독립운동하던 분들을 탄압하고 잡아들일 때 내세웠던 논리가 '너희들은 일본시민'이다"라며 "해외에서 독립운동 하던 분들을 고려하면 독립기념관장으로서는 상당히 위험한 발언을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광복회는 보도자료에서 "우리 정부가 일관되게 주장해온 '일제강점기 일본의 국권 침탈은 불법·무효'라는 입장을 뒤엎어 식민 지배 합법화를 꾀하는 일련의 지식인이나 단체가 뉴라이트"라고 규탄했다. #

국민의힘 김성태 전 의원은 "후손인 우리들은 IOC에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우승자 손기정 선수 국적을 대한민국으로 바꿔달라'고 국적 반환 소송을 내고 지금 투쟁 중이다"며 "그런 마당인데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발언은 적절치 못했다"고 지적했다. #

극우 성향의 산케이신문 구로다 가쓰히로 전 서울지국장도 김형석 관장을 옹호하고 나섰다. 구로다 전 지국장은 17일 산케이신문에 “김 관장은 일제 당시 한국인의 국적을 일본이라고 답한 것이 비난의 대상이 됐다”며 “역사적 사실을 그대로 말했는데도 일본 지배의 역사를 용인하는 매국노 등으로 매도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한국은 일본과의 병합 조약이 불법·무효라고 주장한다”며 “중국 상하이에 있던 항일 운동가들의 망명 정권을 건국의 뿌리로 삼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특이한 역사 인식의 확산으로 이제는 일제 강점기 국적을 포함해 역사의 진실을 실감할 수 없게 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

김창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일본 신민의 자격은 법률에 따라 정하게 돼 있고, 그걸 정한 것이 국적법인데 국적법을 적용하지 않으면서 필요할 때만 우리나라 사람들을 일본 신민으로 여긴 것"이라며, "1910년 한일병합조약이 무효라는 한국 정부의 입장은 한반도 통치권이 일본에 넘어간 적이 없어서 일제의 영토가 된 적도, 일제의 신민이 된 적도 없다는 의미"라고 했다. 이철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또한 "만약 일본 법제상 일본 국적이라고 보더라도 한일병합이 불법이라 무효였다면 논리상 일본 국적을 강제로 부여받은 것도 무효가 된다"고 했다. #

3.2. 샘물교회 선교단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건 책임소재 관련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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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기사1, 아카이브

한민족복지재단 사무총장 및 회장을 맡았던 2007년에 샘물교회 측에 비자 발급을 도와주어 무리한 선교 활동을 진행시켰다.

3.3. 독립기념관 행사 중 졸음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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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8월 14일 오전 독립기념관 밝은누리관에서 열린 행사에 참석해 졸고 있는 모습이 사진으로 찍혔다. #

3.4. 정무위 중 태도 논란

#

3.5. 대북지원 보조금 부정 수령

과거 부정한 방법으로 대북지원 보조금을 받아 대법원에서 벌금형을 확정받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2008년 9월 대법원은 보조금 예산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됐던 김형석에게 벌금 500만 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김형석은 대북지원사업을 하는 민간단체인 한민족복지재단 회장으로 있으면서 2005~2006년 대북지원을 한다는 명목 아래 부정한 방법으로 세 차례에 걸쳐 약 5억 원 가까운 남북협력기금을 타낸 의혹을 받았다. #

검찰이 밝힌 범죄사실에 따르면 재단은 2005년 12월 북한에 손수레 1만2000대를 보내기로 했다. 손수레를 공급하기로 한 A사로부터 회사 명의의 통장을 받게 된 재단은 해당 통장에 돈을 입금한 다음 다시 빼내는 방식을 통해 6억3360만 원에 달하는 구입대금을 모두 지급한 것처럼 입금내역을 조작했다고 한다. #

4. 저서

  • 남강 이승훈과 민족운동(참여) - 남강문화재단 편. 남강문화재단 출판부. 1988.
  • 한민족독립운동사논총: 수촌 박영석 교수 화갑 기념(참여) - 수촌박영석교수화갑기념논총간행위원회 편. 탐구당. 1992.
  • 일재 김병조의 민족운동 - 남강문화재단. 1993.
  • 기적을 이루는 사람들 - 중앙북스. 2013.
  • 한국교회여, 다시 일어나라 - 새물결플러스. 2015.
  • 광주, 그날의 진실: 다시 쓰는 5.18 - 나남. 2018.
  • 안익태의 극일 스토리: 애국가로 일본을 덮다 - 교음사. 2019.
  • 끝나야 할 역사전쟁: 건국과 친일 논쟁에 관한 오해와 진실 - 동문선. 2022.
  • 고하 송진우와 민족운동 - 동문선. 2024.

5. 수상 경력

  • 제3회 통일문화대상 화해협력부문 (2003)
  • 제8회 정일형이태영민주시민상 민주통일상 (2004)

6. 관련 문헌



[1] 한국사 전공 [2] 석사 학위 논문: 서북지방의 삼·일운동 (1983) [3] 동양사 전공 [4] 박사 학위 논문: 明末의 經世家 徐光啓 硏究 (1995) [5] 그레이스교회 담임 목사였다고 한다. [6] 실제 김형석은 2022년 블로그를 통해 '1948년 건국론'을 주장하면서도 일각의 '건국절' 제정 움직임에 대해선 부정적인 입장을 피력하였다. 해방정국 당시 정부 관계자와 각종 언론 자료를 토대로 광복절 제정 전까지 1945년 8월 15일을 해방, 1948년 8월 15일 정식 정부를 수립하여 건국을 완성함으로써 진정한 의미의 독립과 광복을 달성하였다는 게 그의 논지이다. # 건국론에 대한 더 자세한 논쟁은 건국절 논란을 참고 바람. [7] 최근에 밝혀진 김문수 국무위원의 발언과 같은 논리로 자기 방어를 펼치고 있으나 이는 자칫하면 일본 극우에게 면죄부를 줄 수 있는 논리다. 일본의 대한제국 주권침탈은 당시 기준으로도 엄연한 불법이자 강압이었으며(물론 당시 열강들의 식민지 사업이 다 그딴식이기는 했다. 애시당초 식민지라는게 절대 선량한 의도로 시행하는게 아니기도 하고.), 을사조약이 직후부터 전국적인 반발이 일어났었다. 독립운동은 절대로 단순하게 한국인의 국적 회복을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그것보다 훨씬 넓은 국가의 주권을 되찾고 일본의 식민통치 자체가 부당함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8] 정작 손기정 선생이 아셨다간 저 세상에서 기함을 할 소리다. 손기정 선생은 금메달리트임에도 침통한 표정으로 시상식에 섰던 분이시다. 그정도로 한국인으로서 온전한 정체성을 지닌 사람이었다. [9] 더군다나 손 선생이 일본대표로 나선 것도 일본이 '내선일체'라는 말 같지도 않은 사상을 우긴 결과나 다름없고 되려 손 선생을 내치려고 갖은 수를 다했다. 왜냐하면 '조선인이 어떻게 일본대표가 되느냐'라는 일본내부의 반발이 어마어마했기 때문이다. 이 에피소드만 들어도 당시 한국인들의 국적 문제는 일제의 통치를 위한 우기기에 불과하며 실제 당시 일본인들 역시 한국인을 자국 국민으로 여기지도 않았다는 증거이다. 애초에 당시 기록과 분위기를 기록 및 증언하거나 역사학계의 연구 결과가 넘쳐나건만 앞뒤 안 맞는 헛소리만 주구장창 외는게 뉴라이트라는 인간들의 어이없는 행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