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각 국가에서 활동하는 귀화 축구 선수에 대해 정리해놓은 문서.귀화선수의 유형은 크게 두 가지 경우로 나뉘는데, 해당 국가와 혈연적으로 관련이 없지만 해당 국가의 리그에서 오래 활동한 뒤 귀화요건을 갖추어 귀화한 경우와 혈통상 해당 국가와 연관되어 해당 국가의 국적을 취득하는 경우가 있다. 과거엔 혈통적 연관도 없으면서 그 국가의 리그에서 오래 활동하지도 않았던 상태로 해당 국가의 금전적 보상이 수반된 스카우트 형식의 귀화 선수도 있었고, 해당국의 국적을 저렴하게 매입하는 방식으로 귀화하는 편법도 있었으나, FIFA의 규정이 확립된 이후에는 더 이상 유효한 방법이 아니게 되었다.
2. 대한민국
대한민국 축구계는 귀화에 대해서 소극적이었고, FIFA의 귀화 선수 규정을 만족한 케이스도 거의 없었다. 귀화 한국인 축구 선수 1호라고 할 수 있는 신의손의 경우는 K리그에 외국인 골키퍼 금지라는 로컬룰이 만들어지지 않았다면 나오지 않았을 케이스. 개최국으로써 좋은 성적이 절박했었던 2002 월드컵 준비기간에 당시 K리그 공, 수 최고의 외국인 선수로 평가받았던 샤샤 드라쿨리치, 마시에우 루이스 프랑쿠를 귀화시켜 대표팀에 합류시키자는 여론이 나왔지만 무산되기도 했다.[1]이후 데니스 락티오노프, 라디보예 마니치, 야센코 사비토비치 등이 귀화하여 한국인이 되었으나, 대표팀에 뽑히는 일은 없었고, 모따, 제난 라돈치치, 에닝요, 히카르두 로페스, 말컹, 조나탄등 항상 월드컵 시즌만 되면 당시 K리그 정상급 외국인 선수들의 귀화설이 나왔지만 FIFA에서 요구하는 귀화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해서 성사된 적은 단 한 건도 없다.
귀화선수에 대한 문턱이 높은 이유는 기본적으로 한국말과 한국인의 정신이 없는 사람이 단순히 월드컵만을 위해 귀화해 대표팀에서 활동하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는 국민적 정서가 강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대한민국 축구팬들은 카타르, 중국과 같이 성적만을 위해 무분별한 귀화정책을 펼치는 국가들을 절대 좋게 보지 않는다. 2000년대 이후에는 자국 선수들의 수준이 올라서 그 실력을 바탕으로 유럽 리그에 입성하는 선수들도 늘어난 편이고 K리그 자체의 평가도 당시보다 꽤 오른 상황이라, 굳이 귀화 선수에 목을 맬 이유가 없어진 것.[2]
하지만 인식의 변화가 최근 일어나고 있다. 2020년 6월 대구 FC의 세징야의 귀화 의사는 기존 케이스와는 많이 다른 유형의 케이스인데, 특별귀화 과정을 거치지 않고 선수 본인이 이싸빅이나 데니스처럼 거주 목적으로 일반귀화 시험을 준비하고 있어 축구 팬들의 보기드문 지지를 받고 있다.
2025년부터는 K리그의 경우 홈그로운 제도가 생겨 대한민국의 유소년 시스템에서 축구를 배운 외국인 선수들은 첫 프로계약을 K리그 팀과 하면 앞으로 영원히 외국인 쿼터에서 제외될수 있게 되었다. 이 제도의 혜택을 받는 건 대체로 유년시절부터 한국에서 나고 자란 국적만 외국인 유소년 선수들인 만큼, 나중에 이 제도로 한국에서 커리어를 시작할수 있게 된 유소년 외국계 선수들이 성인이 된 후 한국으로 귀화할 가능성도 커졌다. 2024년에는 연령별 대표에 사상최초로 러시아계 한국인 찰릭 아르카디로마노비치가 선발되었다
2.1. 귀화 선수 목록
- 발레리 사리체프 / 타지키스탄에서 귀화[3] / 귀화명 : 신의손 / K리그 통산 320경기 356실점
- 데니스 락티오노프 / 러시아에서 귀화[4] / 귀화명 : 데니스[5] / K리그 통산 272경기 57골 59도움
- 야센코 사비토비치 / 크로아티아에서 귀화[6] / 귀화명 : 이싸빅 / K리그 통산 271경기 9골 7도움
- 리창 / 중국에서 귀화[7] / 귀화명 : 이강[8] / K리그 경력 없음, 대한민국 17세 이하 대표 20경기 13골 기록.
- 쑤칭산 / 중국에서 귀화[9] / 귀화명 : 허청산 / K리그 0경기 출전[10]
3. 일본
일본은 역사적으로 귀화선수에 대해 적극적이었다. 하지만 일본 또한 실질적으로 귀화인들의 대표팀 진출은 1990년대나 되어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일본 귀화 1세대 선수들은 피지컬 열세를 보완하기 위한 목적이었으며, 이 무렵부터 J리그의 출범 등 일본 축구계가 상승곡선을 타기 시작하며 일본 국대에 귀화 선수들이 자주 보이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귀화선수 1세대가 1989년 귀화한 라모스 루이. 1992년 AFC 아시안컵 우승멤버이면서 1994 FIFA 월드컵 미국 본선 진출을 노리기 위한 일본축구협회의 비장의 카드로 한국에서도 유명했다. 이후 일본이 아시아의 강호로 자리매김한 뒤에도 로페스 바그너, 산토스 알레산드로, 세르히오 에스쿠데로, 다나카 마르쿠스 툴리오, 마이크 하프나, 리 타다나리 등 많은 귀화선수들이 일본 대표로 선발되어 대표팀의 주축으로써 활약했다. 다만 이후에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과 마찬가지로 자국 선수들의 수준이 오르고 대한민국과 맞먹을 수 있을 정도로 자국 선수들의 피지컬도 개선된 데다가 유럽 무대에서 주전으로 자리잡는 선수가 늘어나기도 했고, 귀화 선수들이 예전만큼의 기량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부터는 단 한 명도 귀화 선수가 차출되지 않고 있다.[11]3.1. 귀화 선수 목록
- 요시무라 다이시로[12] / 브라질에서 귀화[13][14] / JSL 1부 189경기 30골 기록, A매치 46경기 7골
- 조지 요나시로 / 브라질에서 귀화[15] / JSL 1부 143경기 40골 기록, A매치 2경기 출장[16]
- 루이 라모스 / 브라질에서 귀화 / J리그 147경기 9골[17], A매치 32경기 1골
- 디도 하베나르 / 네덜란드에서 귀화 / J리그 148경기[18], A매치 경험은 없으나 1993년 일본 대표팀 골키퍼 코치를 했다.[19]
- 호르헤 알베로 / 아르헨티나에서 귀화[20] / JSL 71경기 6골
- 차화야[21] / 재일교포로 일본 귀화 / J리그 3시즌간 활약[22]
- 자이르 마사오카 / 브라질에서 귀화 / J리그 경험 없음[23][24]
- 세르히오 아리엘 에스쿠데로[25] / 아르헨티나에서 귀화 / J리그 0경기[26]
- 로페스 바그너 / 브라질에서 귀화 / J리그 125경기 69골[27], A매치 20경기 5골
- 이시카와 고 / 볼리비아에서 귀화[28] / J리그 239경기 4골[29], A매치 0경기[30][31]
- 산토스 알레산드로 / 브라질에서 귀화 / j리그 353경기 67골, A매치 82경기 7골
- 다나카 마르쿠스 툴리오 / 브라질에서 귀화 / J리그 395경기 75골, A매치 43경기 8골
- 오카야마 카즈나리[32] / 대한민국에서 귀화[33] / J리그 64경기 6골
- 리 타다나리[34] / 재일교포로 대한민국에서 귀화[35] / J리그 301경기 71골, A매치 11경기 2골
- 마이크 하프나[36] / 네덜란드에서 귀화 / J리그 77경기 21골[37], A매치 18경기 4골
- 마이클 제임스 피츠제럴드 / 뉴질랜드에서 귀화[38] / J리그 97경기 1골
- 세르히오 에스쿠데로[39] / 아르헨티나에서 귀화[40][41] / J리그 81경기 7골, A매치 0경기[42]
- 프랑크 로메로 / 페루에서 귀화 / J리그 42경기 3골
- 박일규 / 재일교포로 일본 귀화 / J리그 119경기
4. 중국
중국은 본래 일반적인 외국인이 귀화를 할 수 없는 나라다. 본토에만도 인구가 15억 가까이 있는데다 전 세계에 중국계 혈통인 화교들이 무지하게 많으므로, 중국에서의 귀화는 중국계 혈통을 가진 화교들만을 위한 제도였다. 하지만 축구굴기를 주창하며 시진핑 주석 주도 하에 했던 투자로도 중국이 여전히 월드컵과는 거리가 먼 실력을 유지하자, 특단의 조치를 내리게 되고, 중국 혈통이 섞이지 않은 자국리그의 우수한 외국인 선수들을 하나 둘 귀화시키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중국계 선수들을 찾아내서 중국으로 귀화시키는 작업도 병행했다. 2018년 첫 귀화선수인 욘 세테르가 등장한 이후 약 10여명의 선수들이 중국으로 귀화한 상태며, 이 중 니코 예나리스와 엘케손은 중국 대표팀 데뷔전까지 치렀다.이들 귀화선수의 수준이 상당한 수준이라서, 중국 축구가 미래를 포기한 결정이라고 비난을 받아도 확실히 대표팀의 성적은 올라가고 있다. 엘케손, 알랑 카르발류 등의 브라질계 귀화 선수들은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 경력이 있는 선수들이라 우레이 말고는 확실한 골잡이가 없는 중국의 전방에 큰 힘이 되고 있으며, 니코 예나리스, 타이어스 브라우닝 같은 유럽계 귀화선수들이 수비에서 큰 전력상승을 돕고 있다. 자존심을 버려가면서까지 귀화선수에 올인한 중국 대표팀이 2022 월드컵 본선에 진출할 수 있을지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었으나 결국 본선 진출에 실패하고 브라질 귀화 선수들이 모두 중국을 떠났다.
4.1. 귀화 선수 목록
-
욘 호우 세테르[43][44] / 노르웨이에서 귀화[45] / 귀화명 : 허우융융(侯永永) - 알렉산더 은둠부[46] / 가봉에서 귀화[47][48] / 귀화명 : 찬지에게이 (钱杰给)
- 니코 예나리스[49] / 잉글랜드에서 귀화[50] / 귀화명 : 리커 (李可) / A매치 5경기
- 페드로 델가도[51] / 포르투갈에서 귀화[52] / 귀화명 : 더얼지아둬 (德尔加多)
- 엘케손[53] / 브라질에서 귀화 / 귀화명 : 아이커썬 (艾克森) / A매치 4경기 3골
- 타이어스 브라우닝[54] / 잉글랜드에서 귀화[55] / 귀화명 : 장광타이 (蒋光太)
- 알로이시우 / 브라질에서 귀화 / 귀화명 : 뤄궈푸 (洛国富)
- 알랑 카르발류 / 브라질에서 귀화 / 귀화명 : 아란 (阿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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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카르두 굴라르[56]/브라질에서 귀화/귀화명 : 가오라터 (高拉特) - 페르난지뉴 엔히키 / 브라질에서 귀화 / 귀화명 : 페이난두오 (费南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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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토 시우초[57][58] / 페루에서 귀화[59] / 귀화명 : 샤오타오타오(萧涛涛) -
연진추 라미레스[60][61] / 페루에서 귀화 / 귀화명 : 연진추(曹阳正)
5. 동남아시아 지역
태국, 베트남,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가릴것 없이 모두 귀화선수를 적극 활용한다. 자국 축구 인프라의 취약성을 만회하기 위한 조치이기도 하지만, 식민역사를 겪으면서 생긴 유럽 교포들이 적잖기 때문. 이중 가장 귀화선수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국가는 필리핀. 필리핀 축구 국가대표팀 문서를 참고하길 바란다. 베트남은 본래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역사가 있었지만, 중국, 대한민국과 비슷하게 순혈주의가 강했고, 국가대표팀에도 귀화선수는 전무하다시피 했다. 그러나 박항서 감독 취임 이후 베트남이 기대 이상의 선전을 펼치며 아시아의 다크호스 위치로 올라섰고, 이후 탄력을 받기 위해 베트남계 선수들을 물색하며 귀화선수 영입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것으로 바뀌었다.인도네시아는 네덜란드 교포 위주로 귀화를 추진하고 있는데, 이미 과거부터 어느 정도 귀화 선수에 대한 정책이 있었다고 한다.
5.1. 귀화선수 목록
5.1.1. 베트남
5.1.2. 싱가포르
5.1.3. 인도네시아
- 이유준 / 대한민국 → 인도네시아
- 조르디 아마트 / 스페인 → 인도네시아
- 제이 이즈스 / 네덜란드 → 인도네시아
- 저스틴 허브너 / 네덜란드 → 인도네시아
- 라그나르 오랏망운 / 네덜란드 → 인도네시아
- 나탄 추아온 / 네덜란드 → 인도네시아
- 마르크 클록 / 네덜란드 → 인도네시아
- 엘칸 바곳 / 영국 → 인도네시아
- 마르턴 파스 / 네덜란드 → 인도네시아
5.1.4. 태국
- 샤를 샤푸아 / 스위스 → 태국 / A매치 20경기 5골
5.1.5. 필리핀
6. 중동 지역
FIFA가 국가대표 선수 규정을 바꾸게 된 가장 큰 원인을 제공한 동네다. 과거 오일머니로 불리는 악명높은 외국인 국가대표 영입행태로 유명했다. 사실상 클럽이 선수 영입하는 수준으로 축구 강국의 우수 선수들을 많이 모셔왔으며, 가장 대표적인 케이스가 카타르 축구 국가대표팀이다. 어느 정도였냐면, 한창 분데스리가에서 잘 나가던 브라질 국적 공격수 아일톤 곤칼베스 다 실바[65]가 2000년대 풍족하다 못해 넘쳐난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의 공격 자원때문에 자국 국가대표로 1경기도 출전하지 못하자, 2004년 카타르가 대뜸 귀화를 제시했고, 국가대표 커리어가 없던 아일톤도 이에 응하여 카타르로 귀화한다. 하지만 그는 카타르와 혈통적으로도 관계가 없었으며, 하다못해 카타르 리그에서 1경기도 뛰어본 적이 없다는 점이 FIFA에게 지적당했고, 월드컵 예선까지 100만 유로, 그 이후에도 카타르 대표팀으로 뛰면 매년 40만 유로를 수령한다는 귀화 조건이 알려지면서 바로 귀화가 취소된 사례가 있다. 당시 아일톤과 더불어 도르트문트의 주전 수비수였던 데데 또한 카타르로 귀화하기로 했으나 같은 이유로 무산. 하지만 이후에도 카타르는 귀화 정책을 고수했고[66] 세바스티안 소리아, 알모에즈 알리 같은 대박 케이스도 등장하는 등 서서히 귀화 효과를 보다가 2019년 드디어 AFC 아시안컵 첫 우승을 일궈내기까지 한다.또 다른 중동의 귀화 케이스는 전쟁으로 피난간 이민 2세들의 컴백. 현대사 들어 중동은 항상 전쟁 위험이 끊이지 않는 곳이었다. 과거 아프가니스탄이 그랬고, 이라크가 그랬고, 팔레스타인이 그랬으며, 현재 시리아가 그러하다. 이들 국가는 모두 굵직굵직한 전쟁을 겪었고, 많은 난민이 발생하는 아픔을 겪었는데, 이 난민들 중 일부 축구 선진국으로 간 사람들의 후손이 그 나라의 축구 시스템의 뜻하지 않는 수혜자가 되어 준척급 자원으로 성장하는 경우가 생긴다. 혼란국면이 진정된 나라들에서 난민 2세들을 찾아내고 하대표팀에 합류시키는 케이스가 2010년대부터 활발히 일어나는 중이다. 이들 이민 2세들의 활약으로 이라크 축구 국가대표팀은 2015 AFC 아시안컵 준결승에 올랐으며, 팔레스타인 축구 국가대표팀은 2015년과 2019년 아시안컵에 2회 연속 본선진출을 일궈냈고, 시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은 2018 FIFA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에서 호주와의 플레이오프까지 진출해 대륙간 플레이오프도 노려보는 중동의 다크호스가 되었다.
6.1. 귀화선수 목록
7. 유럽 지역
유럽은 귀화선수들이 정말 많다. 솅겐 협정으로 인해 국경이 자유롭게 개방된 유럽 국가들의 특징이기도 하고, 비교적 좁은 대륙안에 40여개국이 위치한 지정학적 조건때문이기도 한데, 복수국적까지 귀화로 따지면 정말 한도 끝도 없이 귀화 선수들은 많다. 이를 제외해도 여전히 귀화 선수들이 많은 이유는 유럽이 프로축구가 제일 활성화된 곳이기 때문. 많은 남미의 선수들이 어린 나이에 유럽으로 진출하고, 이들 중 실력 좋은 선수들은 유럽에서 오랫동안 활약하며 귀화요건까지 채우게된다. 리그 정상급의 외국인 선수들이 그 나라의 대표팀으로 뛰게 되고 자연스레 대표팀의 전력은 업그레이드 된다.[67] 이들 국가로 귀화하는 축구선수들은 자국 대표팀이 강해서 선발되지 못할뿐 뛰어난 선수들이다. 또한 FIFA가 한 차례 국가대표 룰을 변경하며 본국에서 친선 A매치만 뛰었다면 한 차례에 한해 타국 대표팀으로의 이적이 가능해지면서[68] 귀화선수들은 더 자주 보이게 되었다.첫 번째 케이스는 정치적 분쟁으로 인한 망명 및 이주로 귀화하는 경우다. 주로 아프리카에서 스위스, 오스트리아, 덴마크 등 중립국, 난민에 적극적인 국가로 귀화하는 경우며, 이에 해당하는 선수들의 대부분은 사실상 그냥 그 나라 사람이라고 봐도 무방할 수준으로 어릴때부터 귀화하는 국가로 온다. 또 90년대 한창 분쟁이 많았던 발칸반도발 난민들의 후손들도 유럽 여러 국가대표에 존재한다. 이들은 아프리카계 귀화선수들과는 달리 자신의 뿌리에 대한 정체성이 강한 편이며 이로 인해 귀화한 국가대표로 뛰면서도 자주 자신의 뿌리에 대해 언급하고, 심지어는 몬테네그로, 코소보 같은 신생 독립국이 생기면 그 국가로 국적을 스위치하는 경우도 왕왕 볼 수가 있다. 특히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이 과거 자신들의 식민지였던 알제리, 세네갈 같은 아프리카의 프랑코포니 출신 이민자들과 그들의 자손들을 활발하게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두 번째 케이스는 선조의 뿌리를 찾아가는 케이스. 이탈리아가 가장 대표적이다. 이탈리아는 조부모의 혈통에 따라 국적을 부여하는 국적법이 있다. 아르헨티나, 브라질, 우루과이 등에는 선조가 이탈리아인인 연유로 이탈리아 이중국적으로 가진 선수들이 많다. 그 예전의 라이문도 오르시, 루이스 몬티부터 해서 이 계보는 생각보다 오래되었다. 비슷한 예시로는 그리스가 있다. 폴란드 또한 이런 귀화선수가 한때 많았다. 단 이들은 귀화한 뒤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부작용을 겪기도 한다.
마지막 케이스는 상술했던 리그 최고 외국인선수들의 귀화. 브라질 선수가 압도적으로 많은 케이스다. 세계에서 가장 선수풀이 넓다고 하는 브라질이기 때문에 브라질 국가대표 경쟁 또한 압도적으로 치열하며 웬만한 커리어를 쌓아서는 주목해주지 않는다. 대표적인 예가 데쿠. 브라질 리그 최고의 공미로 손꼽혔으나 당대의 경쟁자들이 히바우도, 호나우지뉴였기에 유럽 진출을 해도 이들과의 경쟁은 버거웠고 결국 FC 포르투소속으로 뛰면서 포르투갈로 귀화하여 포르투갈의 40년만의 월드컵 4강진출에 핵심적 역할을 했다.
귀화선수가 정말 너무나 많은 지역이라 국가별로 주요 선수들만 나열한다.
7.1. 귀화선수 목록
7.1.1. 독일
- 카카우 / 브라질 → 독일[69] / A매치 23경기 6골
- 파울루 힝크 / 브라질 → 독일[70] / A매치 13경기 0골
- 프레디 보비치 / 슬로베니아 → 독일[71] / A매치 37경기 10골
- 게랄트 아자모아 / 가나 → 독일[72] / A매치 49경기 6골
7.1.2. 프랑스
- 클로드 마켈렐레 / 자이르 → 프랑스[73] / A매치 71경기 0골[프랑스]
- 파트리스 에브라 / 세네갈 → 프랑스[75] / A매치 81경기 0골[프랑스]
- 스티브 만단다 / 콩고민주공화국 → 프랑스[77] / A매치 32경기[프랑스]
- 리오 마부바 / 무국적[79] → 프랑스 / A매치 13경기 0골[프랑스]
- 플로랑 말루다 / 프랑스령 기아나 → 프랑스 → 프랑스령 기아나[81] / A매치 80경기 9골[프랑스] + 4경기 0골[프랑스령기아나]
- 장 알랭 붐송 / 카메룬 → 프랑스 / A매치 27경기 1골[프랑스]
- 마푸 양가-음비와 중앙아프리카공화국 → 프랑스[85] / A매치 4경기 0골[프랑스]
7.1.3. 이탈리아
- 루이스 몬티 / 아르헨티나 → 이탈리아[87] / A매치 16경기 5골[아르헨티나] + 18경기 1골[이탈리아]
- 라이문도 오르시 / 아르헨티나 → 이탈리아[90][91] / A매치 12경기 3골[아르헨티나] + 35경기 13골[이탈리아] + 1경기[아르헨티나]
- 알시데스 기지아 / 우루과이 → 이탈리아[95] / A매치 12경기 4골[우루과이] + 5경기 1골[이탈리아]
- 후안 스키아피노 / 우루과이 → 이탈리아[98] / A매치 21경기 9골[우루과이] + 4경기 0골[이탈리아]
- 마우로 카모라네시 / 아르헨티나 → 이탈리아[101] / A매치 55경기 4골
- 아마우리 / 브라질 → 이탈리아[102] / A매치 1경기 0골
- 주세페 로시 / 미국 → 이탈리아[103] / A매치 30경기 7골
- 에제키엘 스켈로토 / 아르헨티나 → 이탈리아[104] / A매치 1경기 0골
- 에데르 마르틴스 / 브라질 → 이탈리아[105] / A매치 26경기 6골
- 다니엘 오스발도 / 아르헨티나 → 이탈리아[106] / A매치 14경기 4골
- 조르지뉴 / 브라질 → 이탈리아[107] / A매치 50경기 5골
7.1.4. 스페인
- 페렌츠 푸슈카시 / 헝가리 → 스페인[108] / A매치 85경기 84골[헝가리] + 4경기 0골[스페인]
- 호세 산타마리아 / 우루과이 → 스페인[111] / A매치 20경기 0골[우루과이] + 16경기 0골[스페인]
-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 / 아르헨티나 → 콜롬비아 → 스페인[114] / A매치 6경기 6골[아르헨티나] + 4경기 0골[콜롬비아] + 31경기 23골[스페인]
- 디에고 코스타 / 브라질 → 스페인 / A매치 2경기[브라질] + 24경기 10골[스페인]
- 마르코스 세나 / 브라질 → 스페인[120] / A매치 28경기 1골[스페인]
- 라슬로 쿠발라 / 체코슬로바키아 → 헝가리 → 스페인[122] / A매치 6경기 4골[체코슬로바키아] + 3경기 0골[헝가리] + 19경기 11골[스페인]
7.1.5. 잉글랜드
7.1.6. 네덜란드
- 조나단 데 구즈만 / 캐나다 → 네덜란드[128] / A매치 14경기 0골
- 테렌스 콩골로 / 스위스 → 네덜란드[129] / A매치 4경기 0골
- 브루노 마르틴스 인디 / 포르투갈 → 네덜란드[130] / A매치 34경기 2골
- 에드손 브라프하이트 / 수리남[131] → 네덜란드 / A매치 10경기 0골
- 조지 보아텡 / 가나 → 네덜란드 / A매치 4경기 0골
- 로메오 카스텔렌 / 수리남 → 네덜란드 / A매치 10경기 1골
7.1.7. 포르투갈
- 페페 / 브라질 → 포르투갈 / A매치 133경기 8골[포르투갈]
- 에데르 / 기니비사우 → 포르투갈[133] / A매치 35경기 5골[포르투갈]
- 윌리암 카르발류 / 앙골라 → 포르투갈[135] / A매치 59경기 4골[포르투갈]
- 리에드송 / 브라질 → 포르투갈[137] / A매치 15경기 4골[포르투갈]
- 홀란두 / 카보베르데 → 포르투갈[139] / A매치 21경기 0골[포르투갈]
- 다니엘 페르난데스 / 캐나다 → 포르투갈[141] / A매치 2경기[포르투갈]
- 데쿠 / 브라질[143] → 포르투갈[144] / A매치 75경기 5골[포르투갈]
- 다닐루 페레이라 / 기니비사우 → 포르투갈[146] / A매치 70경기 2골[포르투갈]
- 오타비우 / 브라질 → 포르투갈[148] / A매치 19경기 3골[포르투갈]
7.1.8. 벨기에
- 음보 음펜자 / 자이르 → 벨기에[150] / A매치 56경기 3골
- 나세르 샤들리 / 벨기에 → 모로코 → 벨기에[151] / A매치 1경기[모로코] + 66경기 8골[벨기에]
- 크리스티앙 카바셀레 / 콩고민주공화국 → 벨기에 / A매치 2경기
- 크리스티안 벤테케 / 콩고민주공화국 → 벨기에[154] / A매치 45경기 18골
- 앙토니 반덴보르 / 자이르[155] → 벨기에 / A매치 28경기 1골
- 롤란드 라마 / 코트디부아르 → 벨기에 / A매치 5경기 0골
7.1.9. 스위스
- 브릴 엠볼로 / 카메룬 → 스위스[156] / A매치 62경기 13골[스위스]
- 이봉 음보고 / 카메룬 → 스위스[158] / A매치 5경기[스위스]
- 프랑수아 무반제 / 카메룬 → 스위스[160] / A매치 21경기[스위스]
- 요한 주루 / 코트디부아르 → 스위스[162] / A매치 76경기 2골[스위스]
- 젤손 페르난지스 / 카보베르데 → 스위스[164] / A매치 67경기 2골[스위스]
- 제르단 샤키리 / 유고슬라비아[166] → 스위스[167] / A매치 119경기 29골[스위스]
- 발론 베라미 / 유고슬라비아[169] → 스위스[170] / A매치 83경기 2골[스위스]
- 아드미르 메흐메디 / 유고슬라비아[172] → 스위스 / A매치 63경기 9골
- 이노센트 에메가라 / 나이지리아 → 스위스[173] / A매치 9경기 0골[스위스]
- 블레즈 은쿠포 / 자이르 → 스위스[175] / A매치 34경기 7골[스위스]
- 엘딘 야쿠포비치 / 유고슬라비아 → 스위스[177] / A매치 1경기[스위스]
- 요한 폰란텐 / 콜롬비아 → 스위스[179] / A매치 40경기 7골[스위스]
7.1.10. 러시아
- 마리오 페르난데스 / 브라질 → 러시아 / A매치 1경기[브라질] + 16경기 1골[러시아][183]
- 로만 노이슈테터 / 소련 → 독일 → 러시아[184] / A매치 2경기[독일] + 12경기 1골[러시아]
- 길레르미 마리나투 / 브라질 → 러시아 / A매치 13경기[러시아]
7.1.11. 크로아티아
- 사미르 / 브라질 → 크로아티아[188] / A매치 7경기 0골[크로아티아]
- 에두아르도 다 실바 / 브라질 → 크로아티아[190] / A매치 64경기 29골[크로아티아]
7.1.12. 스웨덴
- 에미르 쿠요비치 /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 스웨덴[192] / A매치 5경기 1골[스웨덴]
- 에르칸 젠긴 / 터키 → 스웨덴[194] / A매치 21경기 3골[스웨덴][196]
- 알렉산다르 밀로세비치 / 세르비아 → 스웨덴[197] / A매치 7경기 0골[스웨덴]
- 베랑 사파리 / 이란 → 스웨덴[199] / A매치 31경기 0골[스웨덴]
- 에미르 바이라미 / 유고슬라비아[201] → 스웨덴 / A매치 18경기 2골[스웨덴]
7.1.13. 오스트리아
- 요르기 갸릭스 / 헝가리 → 오스트리아[203] / A매치 41경기 2골
- 즐라트코 유누조비치 / 유고슬라비아[204] → 오스트리아 / A매치 55경기 7골
- 롤란트 게르찰리우 / 알바니아 → 오스트리아[205] / A매치 14경기 0골
- 이비차 바스티치 / 크로아티아 → 오스트리아[206] / A매치 50경기 14골
7.1.14. 덴마크
7.1.15. 알바니아
7.1.16. 그리스
- 호세 홀레바스 / 독일 → 그리스[215] / A매치 38경기 1골[그리스]
- 파나기오티스 코네 / 알바니아 → 그리스[217] / A매치 28경기 2골[그리스]
- 루카스 빈트라 / 체코슬로바키아 → 그리스 / A매치 57경기 0골[그리스]
7.1.17.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 아스미르 베고비치 / 캐나다[220] →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 A매치 61경기[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 세아드 콜라시나츠 / 독일 →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222] / A매치 30경기 0골[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 멘수르 무이쟈 / 크로아티아 →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224] / A매치 37경기 0골[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 이제트 하이로비치 / 스위스 →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 A매치 1경기[스위스] + 27경기 6골[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 아넬 하지치 /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 오스트리아 →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228] / A매치 14경기 0골[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7.1.18. 폴란드
- 루도빅 오브라니악 / 프랑스 → 폴란드[230] / A매치 34경기 5골[폴란드]
- 다미엥 페르퀴 / 프랑스 → 폴란드[232] / A매치 14경기 1골[폴란드]
- 오이겐 폴란스키 / 독일 → 폴란드[234] / A매치 18경기[폴란드]
- 호제르 게헤리우 / 브라질 → 폴란드[236] / A매치 25경기 4골[폴란드]
- 에마누엘 올리사데베 / 나이지리아 → 폴란드[238] / A매치 25경기 11골
7.1.19. 벨라루스
7.1.20. 세르비아
- 네벤 수보티치 / 유고슬라비아[241] → 미국[242] → 세르비아[243] / A매치 36경기 2골[세르비아]
- 즈드라브코 쿠즈마노비치 / 스위스 → 세르비아[245] / A매치 50경기 6골[세르비아]
7.1.21. 코소보
7.1.22. 튀르키예
- 마르코 아우렐리오[252] / 브라질 → 튀르키예[253] / A매치 37경기 2골[튀르키예]
- 콜린-카짐 리차즈 / 잉글랜드 → 튀르키예[255][256] / A매치 37경기 2골[튀르키예]
8. 아프리카 지역
8.1. 귀화 선수 목록
8.1.1. 가나
8.1.2. 가봉
- 피에르에메릭 오바메양 / 프랑스 → 가봉[262] / A매치 65경기 26골[가봉]
8.1.3. 기니
- 모하메드 바요 / 프랑스 → 기니[264] / A매치 18경기 4골[기니]
- 무크타르 디아카비 / 프랑스 → 기니[266] / A매치 6경기 1골[기니]
- 세루 기라시 / 프랑스 → 기니[268] / A매치 18경기 3골[기니]
8.1.4. 세네갈
8.1.5. 기니비사우
8.1.6. 중앙아프리카공화국
- 조프레 콩도그비아 / 프랑스 → 중앙아프리카공화국[276] / A매치 5경기[프랑스] + 4경기 1골[중앙아프리카공화국]
8.1.7. 코트디부아르
- 윌프리드 자하 / 코트디부아르 → 잉글랜드[279] → 코트디부아르[280] / A매치 2경기[잉글랜드] + 18경기 5골[코트디부아르]
- 에방 은디카 / 프랑스 → 코트디부아르[283] / 12경기 0골[코트디부아르]
- 세바스티앵 알레 / 프랑스 → 코트디부아르[285] / 26경기 10골[코트디부아르]
8.1.8. 나이지리아
- 아데몰라 루크먼 / 잉글랜드 → 나이지리아[287] / A매치 20경기 6골[나이지리아]
- 올라 아이나 / 잉글랜드 → 나이지리아[289] / A매치 38경기 0골[나이지리아]
- 조 아리보 / 잉글랜드 → 나이지리아[291] / A매치 32경기 2골[나이지리아]
- 브라이언 이도우 / 러시아 → 나이지리아[293] / A매치 10경기 1골[나이지리아]
- 윌리엄 트루스트에콩 / 네덜란드 → 나이지리아[295] / A매치 64경기 4골[나이지리아]
- 케빈 아크포구마 / 독일 → 나이지리아[297] / A매치 8경기 0골[나이지리아]
8.1.9. 콩고민주공화국
- 아르튀르 마쉬아퀴 / 프랑스 → 콩고민주공화국[299] / A매치 26경기 3골[콩고민주공화국]
- 테오 봉곤다 / 벨기에 → 콩고민주공화국[301] / A매치 10경기 3골[콩고민주공화국]
8.1.10. 카메룬
- 스테판 바호켄 / 프랑스 → 카메룬[303] / A매치 22경기 4골[카메룬]
- 해롤드 무쿠디 / 프랑스 → 카메룬[305] / A매치 11경기 0골[카메룬]
- 장샤를 카스텔레토 / 프랑스 → 카메룬[307] / A매치 19경기 2골[카메룬]
- 카를 토코 에캄비 / 프랑스 → 카메룬[309] / A매치 61경기 14골[카메룬]
- 올리비에 은참 / 프랑스 → 카메룬[311] / A매치 3경기 0골[카메룬]
- 에릭 막심 추포모팅 / 독일 → 카메룬[313] / A매치 73경기 20골[카메룬]
9. 오세아니아 지역
9.1. 귀화 선수 목록
10. 남아메리카, 북아메리카 지역
브라질, 아르헨티나 두 강호들의 인맥 풀은 정말 어마어마한 수준이라, 남미에서는 귀화한 대표팀 선수를 찾아보기 정말 쉽지 않다. 반대로 다른 나라로 귀화해 활약하는 선수들은 정말 많다. 그렇기 때문에 타국으로 귀화한 선수, 타국에서 귀화한 선수 두 경우를 모두 기재한다. 미국으로 귀화한 축구선수 목록은 위키피디아의 미국으로 귀화한 남자 축구 선수 목록를 참고하면 된다.10.1. 브라질에서 타국으로 귀화한 선수들
10.1.1. 브라질에서 대표선수로 선발되지 못한 선수들
- 카카우 - 독일 - 2010 FIFA 월드컵 / A매치 23경기 6골
- 파울루 힝크 - 독일 - 1999 FIFA 컨페드컵, EURO 2000 / A매치 13경기
- 레오나르도 쿠트리스 - 그리스 - 2018-19 UEFA 네이션스리그 / A매치 5경기
- 마를루스 - 우크라이나 - 2018 월드컵 예선, EURO 2020 예선 / A매치 13경기 1골
- 메멧 아우렐리우 - 터키 - EURO 2008 / A매치 37경기 2골
- 프란실리우두 산투스 - 튀니지 - 2004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2005 FIFA 컨페드컵, 2006 FIFA 월드컵 / A매치 40경기 22골
- 도나투[316] - 스페인 - EURO 1996 예선 / A매치 12경기 3골
- 카타냐[317] - 스페인 - EURO 2000 예선 / A매치 3경기 0골
- 마르코스 세나 - 스페인 - 2006 FIFA 월드컵, EURO 2008 / A매치 28경기 1골
- 아리 - 러시아 - 친선경기 / A매치 2경기 0골
- 길레르미 마리나투 - 러시아 - EURO 2016 / A매치 13경기
-
에메르송 - 카타르 - 2010 월드컵 예선 / A매치 3경기[318] - 파비우 세자르 - 카타르 - 2011 AFC 아시안컵 / A매치 28경기 11골
- 루이즈 주니오르 - 카타르 - 친선경기 / A매치 24경기 0골
- 마카로네 - 카타르 - 2010 월드컵 예선 / A매치 15경기 1골
- 호드리구 타바타 - 카타르 - 2018 월드컵 예선 / A매치 18경기 2골
- 페페 - 포르투갈 - 2010, 2014, 2018 월드컵 , EURO 2008,2012,2016, 2017 컨페드컵 / A매치 109경기 7골
- 리에드송 - 포르투갈 - 2010 FIFA 월드컵 / A매치 15경기 4골
- 데쿠 - 포르투갈 - 2006,2010 월드컵, EURO 2004,2008 / A매치 75경기 5골
- 로제르 게헤이루 - 폴란드 - EURO 2008 / A매치 25경기 4골
- 나엘송 시냐 - 멕시코 - 2006 FIFA 월드컵 / A매치 59경기 6골
- 알레산드르 기마라에스 - 코스타리카 - 1990 FIFA 월드컵 / A매치 16경기 2골[319]
- 에두아르도 다 실바 - 크로아티아 - 2014 FIFA 월드컵, EURO 2008, 2012 / A매치 64경기 29골
- 삼미르 - 크로아티아 - 2014 FIFA 월드컵 / A매치 7경기 0골
- 더글라스 테셰이라 - 네덜란드 / A매치 0경기[320]
- 다닐루 클레멘티누 - 적도기니 - 2012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 A매치 19경기
- 에두아르두 페헤이라 - 적도기니 - 친선경기 / A매치 3경기 0골
- 레안드루 - 헝가리 / A매치 16경기 0골
- 파울루 비니시우스 - 헝가리 / A매치 7경기 0골
- 아마우리 - 이탈리아 / A매치 1경기 0골
- 에데르 마르틴스 - 이탈리아 - EURO 2016 / A매치 26경기 6골
- 조르지뉴 - 이탈리아 - 2018-19 UEFA 네이션스리그 / A매치 22경기 4골
- 와그너 로페스 - 일본 - 1998 FIFA 월드컵, 1999 코파 아메리카 / A매치 20경기 5골
- 루이 라모스 - 일본 - 1992 AFC 아시안컵 / A매치 32경기 1골
- 산토스 알레산드로 - 일본 - 2002, 2006 월드컵, 2004 아시안컵, 2003, 2005 FIFA 컨페드컵 / A매치 82경기 7골
- 다나카 마르쿠스 툴리오 - 일본 - 2010 FIFA 월드컵, 2007 AFC 아시안컵 / A매치 43경기 8골
- 루이즈 올리베이라 - 벨기에 - 1998 FIFA 월드컵 / A매치 31경기 7골
- 이고르 지 카마르고 - 벨기에 / A매치 9경기 0골
- 헤난 브레산 - 벨라루스 - 2012 런던 올림픽 / A매치 28경기 3골
- 마르코스 곤잘레즈 - 칠레 - 2006 월드컵 예선 / A매치 29경기 2골
- 케빈 쿠라니 - 독일 - EURO 2004, 2008 / A매치 52경기 19골
10.1.2. 브라질에서 대표선수로 발탁된 경력의 선수들
- 마리우 페르난지스 - 러시아 - 2018 FIFA 월드컵 / A매치 1경기[브라질] + 22경기 2골[러시아]
- 호세 알타피니 - 이탈리아 - 1958, 1962 FIFA 월드컵 / A매치 8경기 4골[브라질][324] + 6경기 5골[이탈리아][326]
- 티아고 모타 - 이탈리아 - 2003 CONCACAF 골드컵, EURO 2012 / A매치 2경기[브라질][328] + 30경기 1골[이탈리아]
- 엘케손 - 중국 - 2022 월드컵 예선 / A매치 0경기[330] + 4경기 3골[중국]
- 히카르두 굴라르 - 중국 - 2022 월드컵 예선 / A매치 1경기[브라질] + 0경기[중국]
- 디에고 코스타 - 스페인 - 2014, 2018 월드컵 / A매치 2경기[브라질] + 24경기 10골[스페인]
11. 기타 사례
[1]
당시
거스 히딩크 대표팀 감독이 대놓고 귀화선수를 원하지 않는다는 인터뷰로 일축했다. 언어 문제로 피치 위에서의 소통이 힘들어서 전술을 정상적으로 수행하지 못할 위험을 크게 봤기 때문.
[2]
여기에 귀화 선수의 경우 한 명을 귀화시키는 데에 드는 비용이 지나치게 높게 발생하는 터라 그 돈이면 차라리 국내 선수 육성에 투자를 하는 것이 더 이득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 귀화로 넘어올 법한 외국인 선수의 기량은 국내 선수와 크게 차이가 있다고 보기 어려운데, 실력 대비 연비가 너무 구린 탓에 귀화 선수를 쓰지 않는 쪽으로 가게 되는 것.
[3]
타지키스탄 대표팀으로 A매치 1경기 소화
[4]
러시아 대표팀으로 A매치 2경기 소화
[5]
K리그 등록명을 이성남으로 지었으나, 주민등록은 귀화전 본인의 이름인 데니스를 그대로 사용했다.
[6]
크로아티아 올림픽 대표팀 경력이 있다.
[7]
대한민국에 살던 화교로 중학교 1학년때 한국인으로 귀화
[8]
중국 이름의 한자를 그대로 음차.
[9]
조선족 출신의 재중교포, 중국에선 중국 2부리그 난징 팀에서 뛴 경력이 있다. 팀이 해체된 후 한국으로 건너와 명지대 축구부에 입학한 뒤 드래프트를 통해 수원 삼성에 입단.
[10]
2군리그만 뛰고 1년만에 방출
[11]
사실 위에 언급된 일본의 귀화 선수들의 경우 실제로 전력강화를 목적으로 귀화를 했던
라모스 루이를 제외하고는 타 국가와는 다르게 전력강화를 목적으로 전략적으로 귀화를 했다기보다는 5년 연속 거주요건을 채운 선수들이 J리그에서 국내 선수 자격을 노릴 겸 일본에서 거주를 노리고 귀화를 시도한 선수들이 많을 정도로 타 국가의 귀화 선수와는 조금 다른 케이스가 많은 편이다.
마이크 하프나의 경우 온 가족이 일본에 정착하는 것을 원했던 아버지를 따라 어린 시절에 귀화했던 케이스이며,
로페스 바그너와
산토스 알레산드로는 J리그에서 국내 선수 자격을 노리고 귀화를 시도했다가 귀화 이후 언어 적응과 기량을 인정받고 대표팀에까지 승선했던 것. 이 중 로페스 바그너의 경우 귀화 시험을 한 번에 통과하지 못해서 재수를 한 끝에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지역예선이 진행중인 시점에서야 귀화에 성공했다. 다만 이들 중 은퇴 이후에도 실제로 일본에 정착까지 성공한 경우는
라모스 루이와
리 타다나리,
마이크 하프나뿐이며 나머지는 각자의 생업 문제 등으로 인해 모두 브라질로 귀국했다.
[12]
2003년 11월 1일 타계
[13]
일본계 선수
[14]
일본 축구 최초의 외국인 선수로 기록되었으며, 브라질에서 일본회사인 얀마에 근무하면서 선반공으로 근무하여 그 인연을 통해 JSL 얀마 팀[336]에 입단했다.
[15]
일본계 선수(오키나와 혈통)
[16]
1986 멕시코 월드컵 최종예선 대한민국과의 홈앤 어웨이 2경기에 출전했다.
[17]
1977년부터 일본무대에서 뛰었다. J리그 전신 JSL에서는 210경기 69골 기록.
[18]
골키퍼이며 1986년부터 일본무대에서 뛰었다. JSL에서는 48경기 출장
[19]
그리고
도하의 비극(일본)를 현장에서 목격했다.
[20]
선수 은퇴 후 귀화하여 일본에서 지도자 생활중.
[21]
귀화명 마쓰다 카즈야
[22]
감바 오사카의 창단멤버다.
[23]
J리그 참가 전
교토 상가에서 1시즌 활약
[24]
최근까지 교토 상가의 코치를 역임했다.
[25]
이 사람의 아버지다.
[26]
1993년
우라와 레즈에서 2군리그 7경기 출전 후 은퇴.
[27]
1987년부터 일본무대에서 뛰었다. JSL에서는 69경기 16골.
[28]
볼리비아 U-16 대표로 1985년 FIFA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하여 3경기 뛴 경력이 있다.
[29]
1989년부터 일본무대에서 뛰었으며, JSL에서는 50경기 출장.
[30]
1992년 스파르타크 모스크바와의 B매치에 1경기 출장
[31]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예선에서는 주전으로 뛰었다.
[32]
한국명 강일성
[33]
후에 K리그 포항 스틸러스로
아시아 쿼터로써 뛰게 된다.
[34]
한국명 이충성
[35]
대한민국 U-19 대표팀에도 소집된적 있으나, 소집 후 일본으로의 귀화를 결정한다. 자세한 내용은 항목 참조
[36]
디도 하프나의 아들
[37]
네덜란드 에레디비지와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에서 전성기를 보냄
[38]
뉴질랜드 대표로 A매치 3경기 출전
[39]
세르히오 아리엘 에스쿠데로의 아들
[40]
정확히는 아르헨티나, 스페인, 일본 3중국적
[41]
이후 2008년 올림픽에 일본대표로 출전한다.
[42]
U-23 5경기 1골
[43]
중국인 어머니를 두었다.
[44]
노르웨이 국적 회복
[45]
노르웨이 16,17,18세 대표팀 출신
[46]
중국인 어머니를 두었다.
[47]
가봉으로 A매치 3경기
[48]
가봉 올림픽 대표로 2012 올림픽 출전
[49]
중국계 어머니를 두었다.
[50]
잉글랜드 17,18,19세 대표팀 출신
[51]
중국 혈통과 무관한 최초의 귀화 축구선수
[52]
포르투갈 16~21세 대표팀 출신
[53]
중국 혈통이 없는 최초의 중국 국가대표 선수
[54]
중국계 할아버지를 두었다.
[55]
잉글랜드 17,19,21세 대표팀 출신
[56]
코로나 19 시국 때문에 중국에서 브라질로 몇 개월간 가있었고 이것 때문에 연속거주기간이 깨지게 되어 귀화가 반려되었다
[57]
중국계 할아버지를 두었다.
[58]
페루 국적 회복
[59]
페루 17, 20세 대표팀 출신
[60]
중국계 혈통의 페루 선수.
[61]
페루 국적 회복
[62]
모스크바 태생에 아버지가 베트남인
[63]
귀화전 이름은 삼손 카요데
[64]
순수 한국인인데, 생계 문제로 싱가포르에 건너간 뒤 두 번이나 귀화 시험을 불합격하고 삼수만에야 성공했다고 한다.
[65]
과거 베르더 브레멘 임대시절
이동국의 가장 큰 경쟁상대였다.
[66]
카타르는 인구 300만이 안되는 작은 나라이기도 하지만 이 인구들 중에서도 90% 이상의 비율을 외국인이 차지하고 있다. 즉 순수 카타르인의 비율이 너무 낮아서 귀화 정책을 고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67]
물론 잉글랜드, 프랑스,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등의 축구 강대국에는 상대적으로 귀화 선수가 적긴 하다. 물론 없는건 아니다.
[68]
물론 이적하는 나라는 본인의 혈통이나 거주요건을 만족하는 국가여야 한다.
[69]
분데스리가 슈투트가르트에서 10년 가까이 활동하면서 독일 국적을 취득.
[70]
K리그 전북 현대에서도 뛴 적이 있다.
[71]
1990년대 독일로 이주해서 시민권 획득.
[72]
2001년 독일 국적 취득.
[73]
그가 4살 때인 1977년 이주해왔다.
[프랑스]
[75]
그가 1살때 프랑스로 이주.
[프랑스]
[77]
킨샤샤 태생이며, 동생도 축구선수인데 동생은 콩고민주공화국 대표팀을 선택했다.
[프랑스]
[79]
아버지가 자이르, 어머니가 앙골라 사람이며 앙골라 내전 중에 올라탄 피난선이 공해상을 지날 때 태어났다. 즉 어느 나라에도 소속되지 않은 바다 위에서 태어난거라 출생지가 그냥 바다 위인 특이한 케이스. 프랑스에 거주하면서 20살 되던 2004년에 정식으로 프랑스 국적을 발급받았다.
[프랑스]
[81]
엄밀히 말해 국적법상 모두 프랑스 국적이다. 단 축구의 세계에서는 이 두 지역은 따로 대표팀이 구성되어있다. 프랑스령 기아나 태생으로 프랑스 대표팀에서 월드컵 준우승까지 경험한 뒤 말년에는 프랑스령 기아나 대표팀으로 5경기를 소화했다. 프랑스령 기아나는 CONCACAF에 속해있기 때문에 2017 골드컵 본선에서 온두라스와의 조별리그에 출전까지 했고 이후 FIFA의 유권해석에 의해 이 기록은 말소되었다. 하지만 친선전 4경기는 A매치 기록으로 남아있다.
[프랑스]
[프랑스령기아나]
[프랑스]
[85]
8살에 마르세유로 이주.
[프랑스]
[87]
이중국적자 룰이 정교해지기 전이라 두 국적으로 모두 월드컵 본선무대를 밟았다. 심지어 두번 다 결승을 갔다!
[아르헨티나]
[이탈리아]
[90]
루이스 몬티 이전에 이탈리아에 진출해 먼저 국적을 바꿨다.
[91]
그리고 말년에 아르헨티나 대표로 한번 더 바꿨다!
[아르헨티나]
[이탈리아]
[아르헨티나]
[95]
AS로마에서 8년동안 활약하며 국적취득
[우루과이]
[이탈리아]
[98]
기지아와 같은시기 선수로 AC밀란에서 활약하며 국적취득
[우루과이]
[이탈리아]
[101]
이탈리아계 선조를 두었기 때문에 국적 회복의 개념으로 취득했다.
[102]
이탈리아계는 아니지만 세리에 A에서 활동하며 이탈리아 국적 취득
[103]
2006년 월드컵을 준비하던 미국 대표팀에 소집되었으나 선발되지 못했고, 이후 21세 이하 대표팀과 올림픽에 이탈리아 대표로 참가하면서 이탈리아 국적을 택했다.
[104]
조부모의 혈통을 통해 2009년 이탈리아 국적을 취득했다.
[105]
이탈리아계 조부모를 두어 세리에 A 두시즌 만에 이탈리아 국적 발급.
[106]
역시 조부모의 이탈리아 혈통으로 곧바로 국적취득
[107]
역시 조부모 혈통이 인정되어 국적 발급.
[108]
헝가리 반정부 시위 이후 본인이 활약하던 레알 마드리드의 스페인으로 망명.
[헝가리]
[스페인]
[111]
레알 마드리드에서 오래 활약
[우루과이]
[스페인]
[114]
거의 유래가 없는 3개국 대표팀 경력이다.
[아르헨티나]
[콜롬비아]
[스페인]
[브라질]
[스페인]
[120]
11년간 비야레알에서 핵심으로 활동.
[스페인]
[122]
슬로바키아계 아버지와 헝가리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체코슬로바키아와 헝가리 이중국적자였고, 이후 FC 바르셀로나에서 활약하며 스페인으로 귀화한다.
[체코슬로바키아]
[헝가리]
[스페인]
[126]
12살 때 런던으로 이주.
[127]
5살때 영국으로 이주
[128]
12살부터 네덜란드에서 살았고 이후 2008년 귀화
[129]
부모의 국적인 콩고민주공화국, 태어난 곳 스위스 대신 이주해서 자란 네덜란드를 선택해 유소년 국가대표부터 네덜란드 대표로 뛰었다.
[130]
3살 때 네덜란드로 이주.
[131]
수리남 파라마리보 태생.
[포르투갈]
[133]
3살 때 포르투갈로 이주했다.
[포르투갈]
[135]
어렸을 때 포르투갈로 이주.
[포르투갈]
[137]
스포르팅 CP에서 그야말로 리그를 폭격하는 활약을 보이면서 2009년 국적 취득과 동시에 파울레타 이후 중앙공격수 부재에 시달리던 포르투갈 대표팀에 선발되었다.
[포르투갈]
[139]
14세 이후 포르투갈로 건너가 2006년 귀화
[포르투갈]
[141]
캐나다 태생으로, 2006년 아버지의 나라 포르투갈로 국적을 바꿨다.
[포르투갈]
[143]
브라질 리그에서 정평이 난 공격형 미드필더였는데 그 당시 브라질 국대에는 히바우두, 호나우지뉴가 있던 시기라 리옹의 주니뉴도 후보였던 시절이다.... 그가 브라질 국대에 뽑힐 가망성이 거의 없던 상황.
[144]
FC 포르투 소속이던 2003년 귀화했다.
[포르투갈]
[146]
5살 때 포르투갈로 이주.
[포르투갈]
[148]
2021년 3월 포르투갈 국적 취득
[포르투갈]
[150]
어렸을 때 가족이 전부 벨기에로 이주. 이주 후 동생인
에밀 음펜자가 벨기에서 태어났다.
[151]
원 국적은 벨기에. 부모의 혈통인 모로코를 택했으나 다시 벨기에 대표팀으로 환원
[모로코]
[벨기에]
[154]
1993년 벨기에로 이주.
[155]
현 콩고민주공화국
[156]
2003년 스위스로 이주 후 2014년에 국적 취득
[스위스]
[158]
역시 카메룬 야운데 태생으로 스위스로 이주.
[스위스]
[160]
카메룬 두알라 태생으로 스위스로 이주함.
[스위스]
[162]
태어난지 17개월만에 스위스로 이주
[스위스]
[164]
5살 때 스위스로 이주
[스위스]
[166]
현 코소보 질리안
[167]
현재는 코소보 대표팀 이적도 가능하다.
[스위스]
[169]
현 코소보 미트로비차
[170]
코소보 대표팀 선택도 가능하다.
[스위스]
[172]
현 북마케도니아 고스티바르
[173]
13살 때 스위스로 이주.
[스위스]
[175]
7살 때 스위스로 이주.
[스위스]
[177]
내전을 피해 스위스로 이주.
[스위스]
[179]
스위스로 입양되면서 자연스레 스위스로 국적 변경
[스위스]
[브라질]
[러시아]
[183]
8강 크로아티아전에서 연장 막판 동점골을 넣은 주인공
[184]
현 우크라이나 드니프로페트로우시크 태생인데 독일계다. 분데스리가 진출 후 독일 국적을 취득하며 독일 대표팀에 선발되었는데 친선경기 2경기만 뛰고 다시 본래 정체성인 러시아로 국가대표 변경.
[독일]
[러시아]
[러시아]
[188]
크로아티아 리그에서 5년 활약 뒤 크로아티아로 귀화
[크로아티아]
[190]
역시 크로아티아 리그에서 5년 활약 뒤 귀화했으며 아주 어릴때 귀화하여 21세 이하 대표팀도 크로아티아에서 지냈다.
[크로아티아]
[192]
보스니아 내전 당시 스웨덴으로 이주
[스웨덴]
[194]
태어나고 나서 몇주 후 바로 스웨덴 이주
[스웨덴]
[196]
청소년 대표는 터키대표팀을 택했었다.
[197]
부모의 나라 세르비아에서 청소년 대표로 잠깐 활동했다가 스웨덴 국대로 국적을 바꿨다.
[스웨덴]
[199]
2살 때 스웨덴으로 이주.
[스웨덴]
[201]
현 코소보 프리슈티나
[스웨덴]
[203]
14살 때 오스트리아로 이주
[204]
현 세르비아 로즈니카
[205]
1997년 오스트리아로 이주
[206]
1996년 귀화했다.
[207]
태어나자마자 덴마크로 이주했는데, 이 때문에 FIFA에서 덴마크 국가대표 자격을 인정해주지 않고 18세 이후 5년간 거주하는 일반 귀화요건으로 귀화할 것을 요구했다가, 덴마크 협회에서 이의제기를 한 것이 받아들여지면서 덴마크 국가대표로 즉시 선발되었다.
[덴마크]
[209]
3살 때 덴마크로 이주.
[덴마크]
[211]
스웨덴 대표로 올림픽에 나온 뒤 1년 후 알바니아 대표로 A매치 데뷔
[알바니아]
[213]
스위스 태생으로 올림픽도 스위스 국적으로 나왔으나, 이후 부모의 국적인 알바니아로 2013년 귀화해 알바니아 대표팀으로 활약.
[알바니아]
[215]
2011년 그리스 시민권을 발급받았다.
[그리스]
[217]
2살때 아테네로 가족이 이주함.
[그리스]
[그리스]
[220]
2007년 FIFA U-20 월드컵 캐나다 대회에서 캐나다 팀 주전으로 뛰었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222]
2013년 부모님 혈통의 보스니아로 귀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224]
청소년 대표는 크로아티아에서 활동.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스위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228]
출생은 보스니아, 오스트리아에서 성장하여 프로생활도 오스트리아에서 시작했고 청소년 대표도 오스트리아에서 지냈으나 2013년 9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로 국적변경.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230]
할아버지의 국적 폴란드로 귀화
[폴란드]
[232]
2011년 폴란드 국적 취득
[폴란드]
[234]
독일 청소년 대표로 프리츠 발터 메달을 받기도 한 유망주였으나 성인대표에 들지 못한채 부모의 국적인 폴란드로 귀화
[폴란드]
[236]
특별 귀화 형태로 신속하게 귀화했다. 폴란드 거주 3년만.
[폴란드]
[238]
폴란드 리그에서 활약하던 중 대표팀 전력 강화를 위해 특별귀화.
[239]
벨라루스 리그에서 6년간 활약하며 국적 취득
[벨라루스]
[241]
현재의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지역
[242]
1999년부터 미국 솔트레이크로 이주. 미국 청소년 대표팀으로 FIFA U-17 선수권 대회도 출전했다.
[243]
2008년 성인이 되면서 세르비아 국적을 선택
[세르비아]
[245]
스위스 태생으로 부모의 국적인 세르비아로 귀화.
[세르비아]
[247]
지금의 코소보 질라니
[248]
8살 때 스위스로 이주.
[249]
코소보 FIFA 가입 후 제일 먼저 코소보 국적 취득한 선수.
[스위스]
[코소보]
[252]
귀화 후 메멧 아우렐리오로 개명
[253]
튀르키예 리그에서 7년간 활약
[튀르키예]
[255]
북키프로스인인 어머니를 따라 튀르키예 국적을 취득.
[256]
북키프로스인은 튀르키예 국적 신청시 즉시 발급된다.
[튀르키예]
[258]
아버지가 가나 국가대표 출신
아베디 펠레이며, 아버지를 따라 가나 국적을 취득.
[가나]
[260]
아버지가 가나 국가대표 출신
아베디 펠레이며, 아버지를 따라 가나 국적을 취득.
[가나]
[262]
아버지가 가봉 국가대표 출신 피에르 프랑수아 오바메양이며, 프랑스 태생으로 프랑스 청소년 국가대표로 뛴 경력도 있다.
[가봉]
[264]
기니인인 부모의 국적을 따라 기니 국적 취득.
[기니]
[266]
기니인인 부모의 국적을 따라 기니 국적 취득.
[기니]
[268]
기니인인 부모의 국적을 따라 기니 국적 취득.
[기니]
[270]
세네갈인인 부모의 국적을 따라 세네갈 국적 취득.
[세네갈]
[272]
세네갈인인 부모의 국적을 따라 세네갈 국적 취득.
[세네갈]
[274]
기니비사우에서 포르투갈로 6살때 이주했다가 재혼한 아버지를 따라 덴마크에 가서 살았다고 한다. 그래서 프로데뷔도 덴마크, 덴마크 국적도 취득하여 덴마크인으로 올림픽에 출전했으나, 이후 기니비사우로 다시 국적을 바꾸어 A매치 소화중
[기니비사우]
[276]
프랑스 태생으로 프로생활도 프랑스에서 시작했고 청소년 대표도 프랑스에서 지냈으나 2018년 8월 중앙아프리카공화국으로 국적변경.
[프랑스]
[중앙아프리카공화국]
[279]
4살 때 잉글랜드로 이주.
[280]
프로생활, 청소년 대표 모두 잉글랜드에서 지냈고 잉글랜드에서도 A매치 2경기를 뛰었으나 2016년 11월 원래 국적인 코트디부아르로 환원.
[잉글랜드]
[코트디부아르]
[283]
코트디부아르인인 어머니의 국적을 따라 코트디부아르 국적 취득.
[코트디부아르]
[285]
코트디부아르인인 부모의 국적을 따라 코트디부아르 국적 취득.
[코트디부아르]
[287]
나이지리아인인 부모의 국적을 따라 나이지리아 국적 취득.
[나이지리아]
[289]
나이지리아인인 부모의 국적을 따라 나이지리아 국적 취득.
[나이지리아]
[291]
나이지리아인인 부모의 국적을 따라 나이지리아 국적 취득.
[나이지리아]
[293]
나이지리아인인 부모의 국적을 따라 나이지리아 국적 취득.
[나이지리아]
[295]
나이지리아인인 아버지의 국적을 따라 나이지리아 국적 취득.
[나이지리아]
[297]
나이지리아인인 아버지의 국적을 따라 나이지리아 국적 취득.
[나이지리아]
[299]
콩고민주공화국인인 부모의 국적을 따라 콩고민주공화국 국적 취득.
[콩고민주공화국]
[301]
콩고민주공화국인인 부모의 국적을 따라 콩고민주공화국 국적 취득.
[콩고민주공화국]
[303]
카메룬인인 부모의 국적을 따라 카메룬 국적 취득.
[카메룬]
[305]
카메룬인인 부모의 국적을 따라 카메룬 국적 취득.
[카메룬]
[307]
카메룬인인 어머니의 국적을 따라 카메룬 국적 취득.
[카메룬]
[309]
카메룬인인 부모의 국적을 따라 카메룬 국적 취득.
[카메룬]
[311]
카메룬인인 부모의 국적을 따라 카메룬 국적 취득.
[카메룬]
[313]
카메룬인인 아버지의 국적을 따라 카메룬 국적 취득.
[카메룬]
[315]
덴마크 출신 새아버지를 따라 덴마크로 이주하여 국적을 취득했고, 청소년 대표도 덴마크 대표를 지냈다. 그러나 월드컵을 1년 앞둔 뉴질랜드 대표팀에 전격 합류하며 원래 국적으로 돌아갔다.
[316]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 데포르티보에서 400경기 가까이 뛴 레전드
[317]
셀타비고 레전드 공격수
[318]
1999년 브라질 청소년 대표로 남미 청소년 선수권에 나간 경력이 발목을 잡아 카타르 대표로써 FIFA 공식전에 나갈 수 없다는 유권해석이 내려지며 그대로 대표팀 경력은 끝났다.
[319]
후에 코스타리카 대표팀 감독으로 2002, 2006 월드컵을 지휘한다.
[320]
2014 FIFA 월드컵 대비 명단에 소집은 되었으나 최종 명단에 들지는 못했다.
[브라질]
[러시아]
[브라질]
[324]
1958 월드컵
[이탈리아]
[326]
1962 월드컵
[브라질]
[328]
골드컵
[이탈리아]
[330]
2011년 한 차례 소집되었으나 경기 출전은 불발
[중국]
[브라질]
[중국]
[브라질]
[스페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