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8-23 18:33:03

구대진

구대진의 역대 등번호
{{{#!folding [ 펼치기 · 접기 ]
{{{#000000 [[쌍방울 레이더스|쌍방울 레이더스]] 등번호 31번}}}
팀 창단 구대진
(1990)
박성기
(1991~1998.6.4.)
{{{#000000 [[쌍방울 레이더스|쌍방울 레이더스]] 등번호 53번}}}
결번 구대진
(1991)
송진호
(1992)
}}} ||
파일:구대진91년도.png
구대진
具臺鎭 | Dae-Jin Koo
출생 1967년 6월 2일 ([age(1967-06-02)]세)
대전광역시
국적
[[대한민국|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파일: 기.svg
속령
]]
학력 대전신흥초 - 충남중 - 대전고 - 경남대[1]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 입단 1990년 신생팀 특별우선지명 ( 쌍방울)
소속팀 쌍방울 레이더스 (1990~1991)
지도자 대전제일고등학교 야구부 코치 (2017)
가족 동생 구대성

1. 개요2. 선수 경력3. 지도자 경력
3.1. 고교 야구부 학원폭력 은폐 논란
4. 연도별 주요 성적5.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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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쌍방울 레이더스 소속의 투수. 전 대전제일고등학교 코치.

2. 선수 경력

1990년 신인드래프트에서 쌍방울 특별지명으로 입단했으나 별다른 활약없이 방출되어 은퇴했다.[2] 딱히 부진한 것도 아니었으니[3] 재정 악화 명목으로 방출한 것으로 보인다.

10할 타자 중에도 한익희[4]처럼 이런 사례가 있었다. 근데 1년차만 보낸 신인을 방출한다는 것의 불합리를 떠나, 한익희는 2차 10라운드라는 최하위 지명 입단자라서 홀대받은 것에 대해 최소한의 이해는 되지만, 구대진 쪽은 1차 지명 다음으로 했던 창단팀 특별지명자, 그것도 투수라서 우선 순위가 상당히 높은 신인이었기에 한익희와 많은 것이 달랐는데도 쉽게 방출이 되었다는 것이 의심스러운 부분이 크다. 쌍방울은 저때 망한 팀도 아니었고 1999년[5]까지 갔던 팀인데, 재정 사정만으로 1군 성적도 큰 문제없는 특별지명자를 방출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언론에 공개 안된 부상이건, 개인이 선수단 내부에서 공개 안된 문제를 일으켰건 다른 사정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참고로 구대성이 야구부를 시작한 계기도 형 구대진을 따라다니다가 야구를 배우면서 생긴 상황이었다고 밝혔다. 막상 정식가입은 형이 중학교[6]에 들어간 뒤인 초등학교 4학년때 했다고 한다.

3. 지도자 경력

대전고 야구부와 양대 산맥이었던 대성고 야구부가 1973년 해체되면서 대전고가 유일한 대전지역 야구부로 남았으나 2016년에 창단한 대전제일고등학교 야구부 코치로 선임되었다. 당초 감독으로 발표되었으나 실제 감독은 이봉섭이다.

3.1. 고교 야구부 학원폭력 은폐 논란

[엠스플 추적] ‘폭력 은폐’ 논란 야구부 감독 “제가 누군지 아시죠?”

2017년에 창단된 대전제일고 야구부 코치로 학원폭력에 은폐 논란에 휘말렸다.

야구부 2학년 선배가 1학년 후배에게 군기를 잡는 중 폭력을 행사하여 후배의 신장(腎臟)이 파열된 사건으로 그는 이 사건에 대해 "제가 누군지는 아시죠?""40년 만에 대전광역시에 고교 야구부가 생겼는데 이런 일로 문제가 발생하지 않길 바랍니다"라는 등 전형적인 고교 야구부의 병폐를 보여주고 있다.

그 또한 권세를 등에 업고 프로 진출 및 대학 진학 권한을 가지고 권력을 휘두르며 폐단을 오히려 조장하는 전형적인 악질 야구부 감독으로 밝혀졌다.

아무튼 2018년 11월 22일 엠스플뉴스 보도에 의하면 강요교사 혐의 인정으로 검찰에 송치되었으며 문제는 학교 교장, 교감이 학교 체면을 살리려고 그러는지 은폐를 축소시킨다고 의심을 받고 있다. [엠스플 이슈] 대전제일고 야구부 코치 ‘강요교사 혐의’ 인정, 검찰에 송치

이미 안우진으로 인해 야구계에 학원폭력에 대한 경각심을 알렸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오히려 유망한 가해자 학생은 실명을 언급하지 않고 보호하며 그렇지 않은 피해자 학생은 실명을 언급하며 역으로 야구판에서 매장시키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또한 신장이 운동 선수에게 있어 중요한 장기 중 하나란 것을 생각하면 안우진의 경우보다도 심각함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안일하게 생각하는 것을 보면 더 괘씸하다 볼 수 있다.

여담으로 동생 구대성 한양대 재학 시절 그 당시 창궐하던 한대 야구부의 폭력을 근절시킨 정민태[7]를 존경하여 형이라 부를 정도로[8][9] 학교폭력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 사건으로 구대진은 그런 동생 이름에 먹칠을 했다고 더 까였다.

그리고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에서 자격정지 10년의 징계를 내렸다.

4.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볼넷 사구 탈삼진 WHIP
1991 쌍방울 7 12⅓ 0 1 0 2.84 9 1 6 0 0 1.18
KBO 통산
(1시즌)
7 12⅓ 0 1 0 2.84 9 1 6 0 0 1.18
  • 여담으로 동생 구대성 KBO 리그 통산 평균 자책점이 2.85로 형제의 통산 평균 자책점이 거의 비슷하다. 그러나 동생은 13시즌을 뛰면서 낸 성적이고, 형은 1시즌 뛰고 방출되었다. 물론 위에 언급한대로 못해서 방출당한것은 아니고 구단의 문제이긴 했다.

5. 관련 문서


[1] 86학번 [2] 특히, 입단 첫해인 1990년은 쌍방울 레이더스가 2군리그에만 참가했던 해라 사실상 1년만에 방출된 것이다. [3] 7경기 12⅔이닝 1패 4자책점 평균자책점 2.84였다. 막 프로에 데뷔한 신인치고는 꽤 준수한 성적이다. [4] 시즌말에 2군에서 1군으로 올려서 한경기만 나가서 데뷔경기에 전타석 안타(4타석 4타수 4안타)라는 대단한 활약을 하고 시즌을 끝냈는데 그 다음해에 방출당했다. 구대진과 똑같은 쌍방울 선수였다. 방출 선수를 정할때 고려된게 한익희가 뽑힐때 자체가 2차 10라운드, 즉 전체 마지막으로 뽑힌 선수라서 홀대받은 듯. [5] 한익희는 1998년에 방출된거라 재정상황도 납득이 가는 사유이다. 근데 이쪽은 1992년인데 재정상황 이야기는 보편적 관점에서 납득이 가지 않는다. 1992년에 재정사정으로 창단팀 특별지명자까지 방출할 정도의 팀이면 1990년대 후반까지 갈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6] 두사람은 2살 차이이지만, 동생 구대성이 입학유예를 하여 학년은 3학년 차이가 났다. [7] 구대성의 말을 들어보면 정민태가 혼자 주도한건지는 알 수 없다. 정민태가 4학년, 구대성이 3학년일때 정민태의 동기가 정민태 본인까지 4명이었는데, 그 4명이 전부 "이제부터 우리는 후배 때리는 일 없다."고 선언하며 후배들을 안 때렸다고 한다. 그래서 구대성은 그 4명을 다 존경했다고 한다. 그 중에 정민태도 있는 것. 그리고 사실 근절이라기에는 12년 후배인 심수창이 본인때도 맞았다고 말했기 때문에 부족해보이고, 잠시 없어졌다가 금방 부활한 것으로 보인다. 진짜 근절된건 2000년대 중반에 감독이 바뀌고 자율야구로 바뀌면서 근절된 걸로 보인다. 이해창, 고종욱 등이 한양대에 있던 시기에 자율야구를 했었다. [8] 참고로 정민태는 70년생으로 구대성보다 한 살 어리지만 빠른 생일 때문에 주위 69년생들과 친구이다. 하지만 구대성이 초등학교를 1년 늦게 입학한 케이스라 그냥 동갑 선배들에게 형이라고 불렀다. [9] 정민태도 형이라고 불리는 것이 부담스러운지 구대성에게 형이라고 한다고(...). 취소선 내용은 잘못된 풍문이다. 정민태는 스톡킹에 출연했을때 "대성이"라고 계속 불렀을뿐만 아니라, 드립은 섞여있지만 구대성의 중매를 서준것에 대해 말할때 "중매해주면 예전부터 고급 양복 한벌은 사준다는데, 내가 대성이 와이프된 친구도 직접 소개해줬는데 이 새끼가 아직까지도 양복은 커녕 나한테 아무것도 안 해줬다니까"라고 웃으면서 욕설까지 섞은 말을 했었다. 서로 형이라고 부르는 관계에서는 절대로 할 수 없는 말이고, 구대성이 계속 선배로 대우하고 있고 정민태는 후배로만 대하는 관계이다. 근데 구대성은 한 유튜브에 출연했을때 "지금도 직접 만났을때는 형이라고 부르지만 화날때는 반말을 어쩌다 한번씩 한다."고 말했고, 대신 남 앞에서는 그냥 "그때 민태가"라면서 반말로 부르는 특이한 모습을 보였다. 일단 한국 운동선수 세계에서 친구까지는 가능해도, 학제 개편(2009년) 이전 출생자인데 1월생이 동기를 형이라고 하는 경우 자체가 없다. 운동선수 사회에서 학교다닐때 구대성처럼 입학유예가 아니고서야 학년이 달랐는데, 1월생보고 동갑이니 친구를 하자고 하거나 반대로 1년 어리다고 1월생보고 자신을 형이라고 부르라고 하는 사람 자체가 없다. 그러니까 정민태가 구대성을 아무리 대우를 해도 친구가 전부이지 1970년 1월생이 1969년생을 형이라고 부르는 일은 존재하지 않는다. 일반인의 뇌피셜인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