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07 22:07:06

광주 고려인마을

1. 개요2. 상세3. 교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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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법인 고려인마을 홈페이지

1. 개요

광주광역시 광산구 월곡동에 위치한 고려인들이 모여 사는 마을.

2. 상세

다큐 3일 : 우리가 꿈꾸던 고향 - 광주 고려인마을 72시간 풀버전
인천 함박마을, 안산 땟골마을과 함께 국내 최대의 고려인 정착지역으로, 약 7,000여 명의 고려인들이 구 소련 국가에서 귀환하여 살고 있다.

2001년 우즈베키스탄 출신 고려인 3세 신조야 씨가 처음 이곳에 정착했고, 당시에 외국인 근로자들을 돌봐주며 봉사하고 있던 이천영 목사를 만나 국내 고려인들을 돕는 일을 시작했다. 이후 고려인들에게 이 곳에 오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입소문이 퍼지며 국내외에 있던 고려인들이 광주로 모이기 시작했고, 여러 개인과 단체의 노력으로 현재와 같은 마을을 이루게 되었다.

다모아어린이공원( 홍범도 공원)을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되어있으며 고려인종합지원센터, 라디오 방송국, 고려인역사유물전시관, 문빅토르 미술관, 어린이집, 지역아동센터, 노인복지센터, 진료소 등이 존재한다.

러시아어를 주로 사용하는 고려인들이 정착하다보니 동시에 같은 러시아어를 쓰면서 근처 하남산단에서 근무하는 중앙아시아 출신 외국인 노동자들도 덩달아 많이 넘어오게 되었고, 이들은 주로 고려인마을 건너편에 거주하고 있다.

월곡2동의 목련로와 산정공원로를 따라 상권이 형성되어있다. 키릴 문자로 쓰인 간판들이 즐비하며, 평범한 한국 동네에서 볼 수 있는 가게들 뿐만 아니라 다양한 러시아 및 중앙아시아 식의 식당이나 베이커리, 마트 등이 있다. 이러한 가게들에서는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한국어 이상으로 러시아어가 널리 쓰인다. 또한 무슬림이 대다수인 중앙아시아 국가 출신 외국인 노동자[1]도 많은 관계로 할랄 인증을 받은 음식이나 식재료들을 파는 가게들도 꽤 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살 곳을 잃은 고려인들 중 일부가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900명 가까운 우크라이나 고려인들이 이 곳으로 이주하기도 하였다. 2022년 우크라이나 난민 사태 참고.

광주 고려인마을에 대해서는 다음 영상을 참조하면 좋다.
KBS 2TV 다큐멘터리 3일 - 우리가 꿈꾸던 고향 - 광주 고려인 마을 72시간 (2021년 12월 방영)
광주MBC 공간다큐 그 곳 - 카레이스키 고향으로 돌아오다 : 광주 고려인마을 (2014년 3월 방영)
YTN - 광주 고려인마을에서 만난 우크라이나 탈출 가족ㅣYTN과 채코제의 1박 2일 여행 [소파트래블러] EP.4
홍고고 - “한국에서 살고 싶어요”소련에게 억울하게 끌려갔던 한국의 후손들【광복절 특별편】

3. 교통

||<-2><table width=100%><table bordercolor=#000000,#dddddd><table bgcolor=#ffffff,#1f2023> 월곡시장(5315·5316) ||
광주광역시 시내버스
간선
지선
마을

||<-2><table width=100%><table bordercolor=#000000,#dddddd><table bgcolor=#ffffff,#1f2023> 월곡2동행정복지센터(5540·5541) ||
광주광역시 시내버스
간선
지선


광산구의 주요 남북축 도로인 사암로에 인접해있어 교통은 좋은 축에 속한다. '월곡시장'에 정차하는 시내버스들을 타면 시외교통거점( 광주송정역, 유스퀘어, 광주역)이나 번화가( 시내, 상무지구, 전대후문, 수완지구, 첨단지구)는 물론, 광주를 연고로 하는 프로스포츠 구단들의 홈구장(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 광주축구전용구장, 페퍼스타디움)까지 환승 없이 전부 한 방에 갈 수 있다.

시내버스 이용은 편리한 반면 지하철은 멀리 떨어져있다. 1호선 송정공원역을 이용할 수 있기는 한데, 대략 4km 가량 떨어져있어 시내버스나 택시 환승이 강제된다. 때문에 송정공원역까지 시내버스 타고 지하철 갈아타고 하느니 그냥 목적지까지 한 번에 가는 시내버스를 이용하기 마련이다. 2029년 2호선이 완공되면 고려인마을에서 2km 떨어진 곳에 신가역이 생긴다.


[1] 물론 이들은 강경한 무신론을 추구한 소련의 구성국이었던 영향으로 상당히 세속화되어있다. 우리가 흔히 이슬람교라고 하면 떠오르는 극단주의적이고 근본주의적인 모습과는 거리가 먼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