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6:08:50

고비(후백제)


姑比
(?~?)
1. 개요2. 창작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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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후삼국시대의 인물. 고비(姑比), 혹은 고비녀(古比女)라고 한다.[1]

일반적으로 후백제 창업왕 견훤, 즉 후궁으로 알려져 있다. 그녀와 그의 딸(로 추정되는) 애복은 후삼국시대에 극히 드물게 공식적으로 이름이 전해지는 여성들이다.[2] 그녀가 기록에 등장하는 것은 일관되게 견훤이 신검 쿠데타 금산사에 유폐되어 있다가 탈출하는 기사에서이다.
견훤은 금산에서 석달 동안 있었다. 6월에 막내아들 능예(能乂), 딸 애복(哀福), 첩 고비(姑比) 등과 함께 금성(錦城)으로 달아나서 사람을 태조에게 보내 만날 것을 청하였다. 태조가 기뻐하며 장군 금필(黔弼) 만세(萬歲) 등을 보내 뱃길로 가서 그를 위로하고 데려오게 하였다. 견훤이 오자 후한 예로 그를 대접하고 견훤이 나이가 10년 위라 하여 높여 상보(尙父)라고 불렀으며, 남궁(南宮)을 숙소로 주었으니 직위가 백관의 윗자리에 있게 되었다. 양주(楊州)를 식읍으로 주고 겸하여 금, 비단, 병풍, 금침과 남녀 종 각 40여명 및 궁중의 말 10필을 내려주었다.
삼국사기 제50권 열전 제10 견훤
태조 18년(935년) 여름 6월에 견훤이 막내아들 능예(能乂)와 딸 애복(哀福), 폐첩(嬖妾) 고비(姑比) 등을 거느리고 나주에 와서 고려로 들어오기를 청하였다.
고려사 권2 태조 18년
견훤은 아내와 첩이 많아 10여 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넷째 금강(金剛)은 키가 크고 지혜가 많아 견훤이 특히 사랑하여 왕위를 물려주려고 생각했다. 그의 형 신검· 양검· 용검은 그 사실을 알고 걱정했다. 그때 양검은 강주 도독이었고 용검은 무주 도독이어서 신검만이 견훤의 곁에 있었다. 이찬(伊飡) 능환(能奐)은 사람을 강주와 무주에 보내 양검 등과 모의하여 청태 2년(935) 을미 봄 3월, 영순(英順) 등과 함께 신검을 충동하여 견훤을 금산(金山)의 불우(佛宇)에 가두고 사람을 보내 금강을 죽였다. 신검은 대왕이라 자칭하고 사면령을 내렸다.[등등] 견훤이 잠자리에서 아직 일어나지 않았을 때 멀리 궁궐 뜰에서 함성소리가 들리자 “이게 무슨 소리냐”고 물었다. 그러자 신검은 “왕께서 연로하여 군국(軍國)의 정사에 어두우시므로 맏아들 신검이 왕위를 대신하게 된 것을 장수들이 환호하는 소리입니다.”고 대답했다. 곧 신검은 아버지를 금산의 불당으로 옮기고 파달(巴達) 등 장사 30명에게 지키도록 하니 “가엾구나, 완산아이. 아비 잃고 눈물짓네”라는 동요가 떠돌았다. 견훤은 후궁과 어린 남녀 2명—시비(侍婢) 고비녀(古比女), 나인[內人] 능예남(能乂男) 등—과 갇혀있었는데 4월이 되어 술을 빚어 장사 30명에게 먹여 취하게 했다. 태조는 소원보(小元甫), 향우(香又), 오염(吳琰), 충질(忠質) 등과 해로로 가서 맞이했다. 도착한 뒤 견훤이 10살 많았기 때문에 존칭으로 상보(尙父)로 하고 남궁(南宮)에 모신 뒤 양주(楊州)의 식읍과 전장, 노비 40명, 말 9필을 주고 후백제에서 항복해 온 신강(信康)을 아전(衙前)으로 삼았다.
삼국유사 권2 기이2 후백제 견훤
견훤이 고려로 달아났다. 견훤이 금산(金山)에 있은 지 석 달만에, 지키던 군사 30인에게 술을 마시게 하여 취하게 하고는, 막내아들 능예(能乂)와 딸 애복(哀福), 폐첩(嬖妾) 고비(姑比) 등과 함께 나주로 달아나, 사람을 보내어 고려왕에게 뵙기를 청하니, 왕이 장군 유검필, 대광(大匡) 만세(萬歲), 원보(元甫) 향예(香乂)·오담(吳淡)·능선(能宣)·충질(忠質) 등과 함께 군선(軍船) 40여 척을 거느리고 해로를 거쳐 그를 맞이하게 하였다. 그가 이르자 예로써 후하게 대우하고, 다시 견훤을 일컬어 상보(尙父)라 하였으며, 남궁(南宮)의 관사를 주고 직위는 백료(百僚)의 위였으며, 양주(楊州)를 주어 식읍(食邑)을 삼게 하고 겸하여 금백(金帛)과 노비(奴婢) 각 40구(口)와 구마(廐馬) 10필을 주었으며, 먼저 투항한 신강(信康)을 아관(衙官)으로 삼았다.
동국통감 권12 신라기 신라 경순왕 9년, 후백제 견훤 44년, 고려 태조 18년, 을미년(乙未年-935년) 여름 6월

신검의 쿠데타 당시 살해된 금강 어머니로 많이 알려져 있는데[3], 고비가 금강의 어머니라는 명시적인 기록은 없다. 다만 견훤의 후궁들 중에서는 유일하게 이름이 전할 뿐더러 견훤의 유폐와 탈출 당시에도 곁에 있었을 정도로 총애를 받았으니 견훤과 함께 했던 그녀의 아들이 후계자로 낙점받았던 금강이라는 추측이 제법 개연성이 있을 뿐이다.

견훤이 탈출할 당시 데리고 있던 막내아들 능예와 딸 애복은 일반적으로 고비가 낳은 자녀들로 추정하고 있다. 이런 추정대로라면 신검은 쿠데타를 통해 자신의 직접적인 경쟁자인 금강은 죽였으되 그 모친과 친동생들은 살려놓았다는 말이 된다. 하지만 여동생들은 그렇다 쳐도 남동생인 능예를 어째서 죽이지 않은 것인지는 불명이다. 막내아들이라는 언급을 보아 아직 어린 나이었기에 경쟁자로 인식하지 않았을 수도 있고,[4] 아버지인 견훤의 마음을 돌리기 위한 마지막 노력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2. 창작물

드라마 태조 왕건에서 금강의 어머니로 등장한다. 배우 조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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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姑妃가 아니다. 후술하지만 고비는 견훤의 후궁이지 왕비가 아니다. [2] 그 외에는 아자개이자 견훤의 누이 대주도금 정도. [3] 한국어 위키백과의 고비 항목에서는 아예 금강의 어머니라고 명시해놓았다. [4] 후계자가 이미 결정된 후에 태어났거나 아니면 갓난아기라서 후계자 경쟁에 아예 포함도 안 된 경우라면 굳이 죽이지 않는 경우도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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