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2 10:54:15

가톨릭관동대학교/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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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관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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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대학교 역사
2.1. 설립 과정2.2. 설립 직후2.3. 명지학원 시절2.4. 인천가톨릭학원 시절
2.4.1. 이종서 ~ 천명훈 총장 재임기2.4.2. 황창희 ~ 김덕현 총장 시기2.4.3. 김용승 총장 시기
3. 의과대학 역사
3.1. 명지병원이 있었던 시절3.2. 명지의료재단 명지병원 매각 이후, 교육협력병원 협약 폐기까지3.3. 프리즘병원의 부속병원화 시도, 그리고 실패3.4. 인천가톨릭학원으로의 피인수과정3.5. 인천성모병원과의 관계

1. 개요

가톨릭관동대학교의 역사를 설명하는 문서.

2. 대학교 역사

2.1. 설립 과정

1953년 7월 27일 종전 이후에 강릉 지역 유지들이 이종명 강릉군수를 위원장으로 하여 관동대학 설립 추진위원회를 설립했다. 당시 관선 강원도지사였던 최헌길을 비롯한 많은 도움의 손길이 있었고 1954년 5월 31일부로 재단법인 관동대학관이 문교부 제408호 허가를 통해 설립되었다. 초대 이사장은 이종명 강릉군수가 내정되었으며, 최준집, 최돈영, 전상순, 정순응, 유재수, 최헌길, 김윤기, 민병걸 등으로 이사회가 꾸려졌다.

2.2. 설립 직후

1955년에 4월 26일에 관동대학이 강릉시 내곡동 산 72번지 일원에 개교했다. [1] 초대 학장은 니혼대학 법학과 출신인 최병원 교수가 내정되었다.

1957년 2월 5일에는 최준집 이사가 이사장에 취임했고, 1957년 12월 28일에 구 본관이 완공되었다. 1959년 2월 26일에는 4년제 정규대학 승격이 이뤄졌다. 그러나 1960년에 들어 재정난에 휩싸이면서 최준집 이사장과 이사진은 1961년 5월 1일부로 관동대학을 한국복음주의동맹선교회에 운영권을 넘기게 되었다. 이사장은 김홍전 박사로, 학장은 갈필드 선교사로 교체되었다.

한국복음주의동맹선교회로 재단이 바뀐 1962년에 광산학과가 개설되었으나 1년만에 폐과되었고, 1963년에 성문학과가 개설되었다. 1964년에는 재단법인 관동대학관이 학교법인 관동대학으로 개편되었다.1968년에 농촌개발학과가 개설되었고, 1970년에 학과 체제를 농학과, 신학과, 경영학과로 개편했다.

그러나 한국복음주의동맹선교회도 재정 문제를 겪으면서 관동대학은 새 재단을 찾아야 했다. 연세대학교, 숭전대학교와 교섭했으나 결과는 실패였고 대한불교조계종에서 인수 의사를 표명했으나 거절했다. 명지학원 유상근 이사장은 같은 교회 장로였던 관동대학 신학과 최양순 교수의 주선을 통해 사정을 알게 되었고 1970년 10월 29일에 관동대학을 인수했다.

2.3. 명지학원 시절

유상근 이사장 체제에서 신학과가 폐과되었다. 하지만, 1971년에 국어교육과와 영어영문학과를 새롭게 개설하여 4개 학과 체제가 되었으며, 제147학군단의 부대 창설이 이뤄졌다. 1972년부터 농학과가 폐과되었으며 동년 12월 12일에 학교법인 관동대학을 해산하고, 명지학원에 흡수합병했다.

1973년에 음악교육과, 미술교육과, 일어교육과[2]가 신설되었으며, 1974년에 국사교육학과와 가정교육학과가 개설되었다. 1975년에는 관광경영학과가 개설되었고, 1976년에는 지리교육학과가 개설되었고 동년 11월 30일에는 본관(현 가브리엘관) 건물이 완공되었다.

1977년에는 수학교육학과, 체육교육학과가 개설되었다. 1978년에는 무역학과가, 1979년에는 전자공학과, 건축공학과, 토목공학과와 경영학과(2부), 행정학과(2부), 국어교육과(2부)가 개설되었다. 동년 11월 30일에는 여학생 기숙사 건물이 완공되었다.

1980년에는 법학과, 행정학과, 무역학과(2부)가 개설되었고 1982년에는 경제학과가 개설되었고, 동 시기에 공학관(현 진실관)[3]이 준공되었다. 1984년에는 불어학과와 환경공학과가 개설되었으며, 동년 9월 1일부터 제1학생회관이 완공되어 쓰이게 되었다.

1985년에는 사무국 경리과장이던 최 아무개가 175억원의 어음사기를 총장 직인을 위조하여 저지르는 바람에 대학이 혼란에 빠지면서 1985년 2학기부터 1987년 1학기까지 학장이 4번이나 교체되는 혼란에 빠졌다. 명지대학교 백영철 교수가 관동대학교 총장으로 취임하여 사건을 수습했다. 혼란 중에도 1985년에 정보처리학과[4]의 개설과 도서관 증축공사 완공, 과학관(현 미카엘관) 준공이 있었으며, 1986년에 국어국문학과(2부)[5]를 설치하고, 국어교육과와 음악학과, 미술학과를 일반학과로 전환하고 교직과정 설치를 단행했다. 1988년에는 산업공학과 개설과 교육대학원 신설이 일어났다. 1989년에 성악과 신설 및 종합대학인 관동대학교로 승격이 이뤄지면서 일반대학원이 개설되었다. 동년 6월에는 구 체육관이 준공되었다.[6]

1990년에 경영행정대학원이 신설되었고, 산업미술학과 개설, 정보처리학과의 전자계산통계학과로 개편이 이뤄졌다. 또한 교육과학대학이 사범대학으로 전환되었다.[7]

1991년에는 정보통신공학과가 신설되었고 정문과 민주광장의 랜드마크였던 쌍마상이 완공되었다.[8] 또한 동년 10월 8일에는 예술관(현 대건관, 하상관)이 준공되었다. 1992년에 영어영문학과(2부), 환경공학과(2부), 경찰행정학과가 개설되었다. 1993년에 피아노학과가 신설되었다. 1995년부터 교통공학과, 토목공학과(2부), 건축공학과(2부), 관광경영학과(2부), 사회체육학과[9]가 개설되었다. 또한 양양캠퍼스 신설이 이뤄지면서 공과대학이 양양으로 이전했다.

1996년에 기독교학과, 중국학과, 북한학과, 컴퓨터교육과, 교육공학과가 개설되었으나, 일부 학과가 학부제로 전환이 이뤄지면서 경제학과 + 무역학과 = 경제무역학부, 경영학과+관광경영학과=경영관광학부, 전자공학과+전자통신공학과=전자정보통신공학부, 토목공학과+환경공학과+교통공학과=건설환경시스템공학부, 음악학과+피아노학과+성악과 = 음악학부, 미술학과+산업미술학과=조형예술학부로 개편되었다. 또한 의과대학이 신설되었다.

1997년부터 의학관과 행정관(현 바오로관)의 사용이 시작되었고, 1998년에는 학부제를 확대하여 사범대학과 의과대학을 제외한 나머지를 학부로 개편했다. 문과대는 인문학부, 법정대는 법정계열과 경찰행정학과, 경상대는 관광경영학과와 경상학부, 이공대는 건설환경시스템공학부와 정보기술공학부, 예술대는 음악학부, 조형예술학부, 사회체육학과로 개편되었다. 또한 1998년부터 학과 별로 전용 강의실 배정이 이뤄짐에 따라 본관에는 인문대학과 경영대학이, 공학관에는 법정대학과 사범대학이 들어섰다. 1999년 2학기부터 제2생활관이, 2000년 2학기부터 제3생활관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1995년부터 서서히 몰락의 징조가 보이고 있었는데, 문어발식 확장 때문이었다. 의대, 간호학과, 체육계열 학과의 창설이 일어났지만 의대를 설치하면서 기존에 운영하던 공과대학을 따로 떼어내어 양양군에 양양캠퍼스를 설립했는데 이게 상당한 뻘짓이었다는 것.

그렇게 강릉시 내곡동에 강릉캠퍼스가, 양양군 양양읍에 양양캠퍼스가 위치하고 있으나, 가톨릭관동대학교/캠퍼스 문단에서도 볼 수 있듯이 양양캠퍼스는 학령인구 감소와 적자 심화로 인해서 2006년 2학기를 끝으로 철수했다. 대학이 양양군과 협약을 맺고 후적지를 실버타운으로 개조하기로 협의를 맺으면서 사회복지학과가 개설되고 혼자 사용했지만, 학습권 침해를 학생들이 호소한 결과, 2008년 2학기부터 사용되지 않는다.[10]

게다가 이 시기에 고양시 덕양구에 명지의료재단 명지병원 신축도 했고, 각종 건물 신축 공사를 진행하여[11] 재정 압박이 더 가해졌다. 사실 관동대 입장에서는 양양에 굳이 무리해서 캠퍼스를 조성하기보다는 차라리 돈을 더 주고서 산을 깎거나 5생활관 뒷 부지를 활용해서 건물을 더 올리는 쪽이 더 나았을 것인데 근시안적인 경영을 한 이사회가 제2캠퍼스를 밀어붙인 것.[12] 또한 2002년에는 학교 시설 재배치가 단행되었다. 그 과정에서 대학본부를 겸하던 박물관의 행정사무실은 전부 철수하고, 사회과학관은 사범대학이 단독으로 사용[13], 과학관은 법정대학이 단독으로 사용하게 바뀌었다. 교수회관은 제4생활관으로 바뀌었으며, 연구관은 평생교육원이 입주했다. 청송관은 당초 의학2호관으로 사용할 계획이었으나 무산되고, 대학본부로 바뀌었다. 구 축구부 숙소에는 도예실습실이 들어섰다. 또한 관광계열 학과 신설과 사범대학 증축이 끝났다.

학교가 확장을 끝낸 이 시기의 편제는 다음과 같았다.
캠퍼스 단과대학 학부/계열 전공
강릉 인문대학 국제문화학계열 역사문화학과
중국학과
프랑스문화학과
어문학계열 미디어문학과
영어영문학과
일어일문학과
법정대학 법학과
행정학과
경찰행정학과
북한학과
경영대학 경영학부 경영학전공
경영정보학전공
국제경영학전공
경제학과
의과대학 의학과
간호학과
예술디자인대학 음악과
피아노과
미술과
산업디자인학과
인테리어디자인학과
관광스포츠대학 관광학부 관광경영학전공
호텔경영학전공
호텔조리외식학전공
관광영어통역학전공
스포츠레저학부 사회체육학전공
경기지도학전공
스포츠레저산업전공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가정교육과
지리교육과
수학교육과
체육교육과
컴퓨터교육과
교육공학과
양양 공과대학 SOC공학부 토목공학전공
환경공학전공
교통공학전공
해양항만공학전공
건축학부 건축학전공
건축공학전공
IT학부 전자미디어공학전공
정보통신공학전공
멀티미디어공학전공 컴퓨터공학전공
멀티미디어공학전공

대략 이 시기에 관동대학교는 아서앤더슨의 자문을 받아 학과 개편을 시도했다. 가정교육과, 성악과, 프랑스문화학과를 2003년부터 폐과를 시도했고, 가정교육과는 일반학과인 호텔조리외식학과와 의상디자인학과를 신설하여 대체, 초등교육과 신설, 성악과는 음악과로 통합, 프랑스문화학과는 관광통역학과와 영상문예창작학과를 신설하여 대체할 예정이었다.

2005년에 역사문화학과를 사학과로 환원시키고, 경제학과를 경제금융학과로 개칭했다. 또한 SOC 공학부는 환경학부로 개칭, IT학부는 전자정보통신공학부로, 멀티미디어공학부는 컴퓨터학부로 개칭되었다. 스포츠레저학부는 경기지도학과가 스포츠건강관리학과로, 스포츠레저산업학과가 스포츠경영학전공으로, 관광영어통역학전공이 관광여행정보학과로 개칭되었다. 2006년에 학부제가 다시 학과제로 환원되었다. 이 때 프랑스문화학과, 컴퓨터멀티미디어전공이 폐과되었고, 북한학과가 정치외교학과로 변경되었다.

2007년에는 공과대학이 다시 강릉캠퍼스로 복귀함에 따라 본관에 공과대학이 입주, 다시 행정관에 인문대학과 경영대학이 입주하게 바뀌었다. 또한 50주년기념관이 새롭게 준공되면서 대학본부와 행정부서의 위치가 일원화 되었다. 또한 의료공학과, 의료경영학과, 사회복지학과, 광고홍보학과가 신설되었으며 정치외교학과, 교통공학과, 미술학과, 멀티미디어디자인학과가 폐과되어 유사 학과에 흡수되었다.

2008년에 양양캠퍼스를 폐지하고[14][15] 사회복지학과를 강릉캠퍼스 법정대학에 편제했다. 음악과와 피아노학과가 다시 음악학부로 합쳐졌다.[16] 교육공학과의 폐과와 영어교육과 신설도 이 시기.

2011년에 경찰행정학과를 경찰행정학부로 개편하여 경찰행정학전공과 범죄수사학전공으로 이원화했다. 항공여행학전공이 폐지되었고, 의료경영학과, 사회복지학과, 의료공학과를 묶어 관광스포츠대학으로 넘겨 관광의료복지대학을 신설했다. 관광스포츠대학의 체육계열은 예술디자인대학과 합쳐져 스포츠예술대학으로 개편되었다. 사범대학 건물은 방목관, 법정대학 건물은 방목관으로 개칭되었다.
의대사범대의 존재 때문에, 본진인 명지대학교와의 통합설[17]이 2011~2013년에 돌았다. 통합[18]이 시행된다면, 연세대 - 연세대 미래캠 처럼 본교 - 분교로 굴러가거나, 아니면 명지대 본진마냥 문과 - 이과 - 舊 관동대처럼 3 캠퍼스로 운영되었을 수도 있었다. 덕분에 지방대학에서 인서울 4년제로의 학력세탁을 노리고 들어 온 13~14학번도 여럿 있었다.

명지학원 측의 방만한 경영에 힘입어 2011년 9월 7일에 2012년도 정부재정지원제한대학으로 지정되었으며, 2013년 해제되었다. 인테리어디자인학과를 건축학부 산하 전공으로 개편, 호텔관광학부의 학과 개편이 있었고, 공과대학에 최단기 존속 학과 에너지플랜트공학과가 신설되었다. 도예실습싱이 철거되고 다목적체육관이 건설되었다.

2014년 8월 29일 2015년도 정부재정지원제한대학으로 다시 지정되었다. 2014년 초 부터 재단 인수 이슈[19]로 학교행정에 공백이 생긴 상태였을 것이고, 몇 년 전에 학교지표를 올릴려고 취업률을 허위로 공시했다는게 교육부에 적발되면서 이에 대한 불이익이 가해졌을 것이다. 새로 학교가 출범하는 과정에서 신규 재단이 지정유예를 위해서 대대적인 정원 감축을 받아들여지기 어려웠을 테니 지정은 불가피했을지도. 그래서 천주교 인천교구의 인수와 함께 폐교[20] 후 재개교[21]라고 교육부에 이의 신청을 했고, 결국은 정부재정지원제한대학 지정이 승계되지 않았음이 확정되었다. 대학 홈페이지 공지사항 그러나 지정은 대대적으로 보도되었지만, 해제 기사는 거의 나지 않았다는게 문제.

한 편 인천가톨릭재단에 인수되기 이전에 학생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는데, 국제가톨릭대학교, 관동대학교, 가톨릭관동대학교 3가지 안이 있었다. 학생들의 대다수는 조롱과 부정적인 이미지가 되어버린 '관동'을 버리고 국제가톨릭대[22]를 선택했으나 지역사회와 총동문회의 여론을 받아들여 가톨릭관동대로 교명을 변경했다(...). 물론 60년간 써먹은 이름을 쉽게 버리는 것이 쉽지는 않았던터라 불가피한 부분이었다.

2.4. 인천가톨릭학원 시절

2.4.1. 이종서 ~ 천명훈 총장 재임기

재단이 교체되면서 학사개편이 대규모로 이뤄졌다. 인문대학이 그 직격탄을 맞아 기독교학과와 무역학과, 인테리어디자인학과, 음악학부 음악전공이 정리되었다. 관광계열은 다시 학부제로 개편되었다. 폐교 후 재개교인 탓에, 舊 관동대학교의 59년 역사는 청산되나 싶었지만, 2015년이 개교 60주년인 탓에, 중간에 舊 관동대학교의 역사를 계승할 것을 표방하는 해프닝이 있었다. 그런데 60주년에 줄줄이 사건사고가 터진 바람에 체면을 제대로 구기게 되었다. 민주광장[23]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창조관의 기공식을 했다. 또한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을 위해서 체육관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관동하키센터의 기공식을 했다. 그 무렵 이종서 총장이 사임하고 천명훈 국제성모병원장이 총장으로 내부승진했다.

2016년부터 공과대학이 다시 학과제로 환원되었다. 경찰행정학부 범죄수사학전공은 다시 경찰행정학과에 흡수되었고, 일어일문학과, 영어영문학과, 사학과, 미디어문학과가 폐과되었다. 역사교육과, 방송연예학과, 방송제작학과, 미디어창작학과, CG학과, 뷰티미용학과, 의생명과학과, 항공서비스학과, 항공경영학과가 신설되었다. 취업율이 낮은, 인문경영대학이 직격탄을 맞아서 경찰법정대학(공공인재대학)에 흡수되어 사회과학대학으로 재편되는 작업이 2017년까지 일어났다. 사실상 舊 인문대학 출신 과들은 완전히 없어졌다[24] 또한 통폐합 과정에서 행정계열 학과들의 TO가 대량으로 감축되었다.[25] 워낙 많은 학과들이 없어졌으니 이 부분에 대해서는 가톨릭관동대학교/학부에서 폐지된 학과 문단을 참조하자.

2017년부터 경제금융학과, 경영정보학과와 중국문화관광학과, 컴퓨터공학과, 정보통신공학과, 보건환경학과, 에너지플랜트공학과가 폐과되었다. 대신의료IT학과, 항공운항학과, 바이오융합공학과, 소프트웨어학과가 개설되었다. 창조관의 사용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관동하키센터는 주요 경기장 중 하나로 활용되었다. 이후 리모델링을 거쳐서 체육관으로 활용중이다.[26]

2018년부터 무인항공학과, 안경광학과, 임상병리학과가 신설되고 휴먼서비스대학도 개설되었다. 동년에 시행된 대학구조개혁평가에서 역량강화대학으로 분류되어 국가로 부터 지원을 받을려면 추가적인 정원감축을 해야 하게 되었다. 그래서 천명훈 총장이 사퇴하고, 김영인 의무부총장의 직무대리를 거쳐 황창희 인천교구 신부가 총장으로 임명되었다.

2.4.2. 황창희 ~ 김덕현 총장 시기

사범대학, 사회과학대학, 공과대학, 관광스포츠대학 일부 학과에서 인원 감축이 일어났고, 이듬해부터 치위생학과 신설 및 가정교육과가 폐과되었다. 그리고 2020년부터 통합 교학팀 개편 및 LINC 사업단을 통해 확보한 예산으로 강의실 시설 개선이 이뤄졌다.

2021년 일반재정지원 미선정 대학으로 분류되었다. 코로나 19의 여파로 인해 관광, 항공업계가 큰 불황을 겪으면서 학교에서 나름 비중있던 관광스포츠대학의 관광계열과 항공대학이 취업률이 나오지 않았고, 학령인구 감소에 따라 21학년도 신입생 대규모 미달사태로 위기를 겪었던 것이 원인이다. 또한 사회과학, 관광계열의 중퇴율이 높은 점도 변수였다. 게다가 이 여파로 인해 입결 수준이 갈수록 떨어져서 그나마 학교에서 수준이 높다고 평가되는 사범대에 내신 7~8점대가 합격하는 대 참사가 일어났다.[27] 대학 측에서 공과대학 일부 학과들을 정리해버린 것을 보아 입결 수준이 낮거나 취업율이 낮은 학과들은 앞으로의 생존여부가 불투명해진 상황. 결국 황창희 총장이 사임하고, 인천교구로 복귀하면서 다시 의무부총장이 직무대행을 맡았다.

2022년에 새로 취임한 김덕현 총장은 학사구조의 개편을 예고했다. 지금까지 학과/학부 중심의 교육과정으로 운영하던 것에서 탈피하여, 1학년은 자유대학 단위로 학생을 모집하여 교양 및 학생이 원하는 전공 과목을 수강하며, 2학년부터 본격적인 전공을 정해 공부하도록 바꿀 것이라고 밝혔다. 계획안이 발표되었는데, 의대(의예+간호)와 의료융합대학(임상병리+치위생), 사범대학, 휴먼서비스대학은 현재 그대로 유지되는 것이 확정되었다. 다만 의융대는 2개 과만 남겨서 헬스케어융합대학으로 변경되며, 나머지 학과들은 트리니티 자유대학이라는 이름으로 운영된다.[28] 동시에, 일부 학과의 신설이 이뤄진다. 군사학과, 전통문화예술융합학과, 다문화사회복지학과, 평생교육복지상담학과, K-퓨전아트전공학과가 그 대상이다. 지금까지 이공계라는 특성 때문에 그나마 공과대학이 유지되었는데 폐지가 확정되었다.

김덕현 총장 부임 이후 시행된 트리니티자유대학 제도는 학령인원의 감소를 감안해도 완벽히 실패했음이 입증되었다. 그나마 학과별로 구분하던 시기에는 학생이 학과를 선택하여 갈 수 있었기 때문에 모집이 잘 되는 과와 그렇지 않은 과가 확실히 나눠져 있었으나, 트리니티 자유대학 개편 이후에는 마구 뒤섞어놓고 1학년 재학 후에 선택권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운영을 하게 되고 이게 학생들에게 어필하지 못 하면서 폭망해버린 것. 의대/간호/사범대/치위생/임상병리 같은 학과들은 예년 수준의 평이한 수준의 경쟁률을 보이고 있으나, 유독 트리니티자유대학 혼자서 처참한 경쟁률을 보여주었다. 심지어 이를 추진했던 김덕현 총장도 모종의 이유로 퇴진해버려서 비싼 수업료만 치르고 다시 2023년부터 원점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그나마 자교 출신인 장정법 前 학군단 선임교관을 홍보팀장으로 영입하고 이후 관부기 마스코트를 만드는 등, 이전까지 부족했던 홍보를 강화한 것이 실적이라 할 수 있겠다.[29]

2.4.3. 김용승 총장 시기

2023년부터 가톨릭대학교 부총장/명예교수와 대통령비서실 교육문화수석비서관을 지냈던 김용승 총장이 취임했다. 김덕현 총장이 신설을 시도한 학과들의 신설은 전부 무산되었고, 자율전공의 인원을 크게 줄여서 다시 학과제로 환원이 이뤄졌으며, 김규한 산학협력단장을 주축으로 하여 계약학과인 스마트항만공학과가 개설되었다.[30]

한 편, 김용승 총장은 가톨릭관동대학교가 대학 회생을 위해 영입한 인물로, 가톨릭대학교 산학협력단장과 부총장을 역임한 경륜있는 인사이다. 인천교구가 임명한 이전 총장들에 비해 교육행정 경험이 더 많고, 과거 박근혜 정부 말기에 교육문화수석비서관을 지낸 이력이 있어 정무 감각이나 대외협력 분야에도 더 우수한 인물이다.

김용승 총장이 부임하고 이이표 G1 상무이사를 대외협력본부장에 영입했으며, 연호탁 관광경영학과 명예교수의 석좌교수 위촉, 여명주 캐나다 온타리오스쿨 이사장의 석좌교수 위촉이 있었다. 그리고 토목공학과 김규한 교수(산학협력단장)를 교학부총장으로 선임하면서 공석이던 부총장 TO를 채웠다.

3. 의과대학 역사

개교 이래, 2014년 중반까지 대한민국에 단 하나 있었던 부속병원 없던 의대가 관동의대였다. 그 서남대학교도 꼴에 남원시내와 광주광역시에 작게나마 부속병원이 있었다.[31]

사건의 전후전말을 아래에 시간순서대로 기술하니 참고할 것. 역사는 반복된다. 잊지 말자.

3.1. 명지병원이 있었던 시절

관동대학교는 문민정부 시기에 지방 의대 TO를 받는데 성공했고, 1994년 의과대학을 신설했다. 명지학원이 소유한 병원이 명지병원의 시작인데, 하필이면 얘는 1987년 11월 사회복지법인 경로복지원 부설 새마음종합병원과 새마음한방병원[32]을 인수한 것이 시작이다. 물론 중간에 이 병원을 처분하고, 실질적으로는 1997년 9월 세영병원(선제의로재단)을 인수하고 구)명지병원과 구)명지한방병원과 합병하고 신)명지병원을 설립한 것이 시작이다.

그러나 문제점이 여러가지가 있었는데, 첫 번째로 법률상 의과대학 부속병원은 해당 대학에 소속되는 형태로 설립되었어야 하나, 명지병원은 학교법인과 별도로 재단법인 형태로 만들어져 법률적인 의과대학 부속병원으로 인정받을 수 없는 게 첫째였다. 2번째로 관동대 의대는 강릉에 설립된 의과대학이나 병원은 강릉이 아닌 전혀 무관한 고양에 설립되었다는 점이였다. [33]

암튼, 의과대학의 소재지와 부속병원의 위치가 다른 경우는 상당수 있기에 그냥 그렇게 넘어갈 수 있었지만, 대학교 부속병원이 아닌 점은 후에 큰 문제로 지적받았지만 실질적인 재제조치는 받지는 않었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명지병원의 건설은 명지학원 파멸의 시작이었다. 명지의료재단은 명지병원의 건설비 1,000억 이상을 명지건설에 주지 못하며 명지건설의 부도 원인이 되었다. 그리고 명지학원의 이사장이자 명지건설의 소유주이던  유영구 前 이사장은 연대보증이 걸리며 2,000억 이상의 빚을 지게 되었고, 결국 명지학원을 통으로 잃기는 싫었는지 관동대학교의 교육병원으로 설립된 명지병원을 2009년에 인천사랑병원의 원장 겸 이사장이었던 이왕준 박사에게 넘기게 되었다. 사실 의료법인은 법적으로 비영리재단인지라 경영권 매각은 법적으로 불법적인 형태이나[34] 관동대 의대의 교육병원을 유지하고 명지학원에 기부금을 넘긴다는 조건으로 병원의 경영권이 넘어가게 되었다. 

3.2. 명지의료재단 명지병원 매각 이후, 교육협력병원 협약 폐기까지

2009년 초 명지의료재단[35]이 인천사랑병원 이왕준 원장에게 매각되고, 2012년 말 명지의료재단 명지병원과 관동의대의 교육협력관계가 깨짐으로써 문제[36]가 되기 시작하였다.[37]

비싼 돈을 들여 지은 (사실상의) 부속병원을 팔아버린 관동대학교와 명지학원측은 부속병원을 마련하기 위해 2009년부터 2012년말까지 창원 한마음병원, 서울 선한이웃병원, 강릉 동인병원[38]의 기부채납 및 부속병원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하였고 2013년 초에는 인천 프리즘병원 인수 등 부속병원을 신설하기 위해 노력해왔다고 주장[39]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2011년, 명지병원 이왕준 이사장이 명지의료재단 인수과정에서의 채무를 일부 변제하는 조건으로, 관동의대에 2014년 현재 200병상을 가동하고 있는 제천명지병원[40]제천병원을 인수하여 새로 출범시킨 종합병원이었다.]을 부속병원으로 기부채납할 것을 약속하였다. 관련기사 하지만, 명지학원과 관동대학교 측은 이 제시안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명지학원의 입장에서는 인수비용은 안 주면서 다른 병원을 인수해서 시세확장을 시도하던 명지의료재단의 행보가 상당히 마음에 안 들었을 터.

2012년 말, 명지병원과 관동의대의 관계악화로[41] 협력병원 관계를 청산하였다. 의대임에도 불구하고 대학병원이 없어서 이 학교 의대생들은 그 동안 명지병원에서 실습을 하였으나, 명지병원과의 교육협력병원 관계가 깨짐에 따라 학생 교육에 차질이 불가피해지게 되었다. 이 당시 명지병원 임상의학관에는 80여명의 전문의 선생님들 (즉 겸임교원)이 있었으며, 관동대학교측에서는 명지병원 소속 겸임교원들에게 공문을 보냈었다.

내용은 관동대학교 의과대학 임상의학관으로 거취를 유지하여 관동의대 교수직을 유지하던지, 명지병원에 잔류하되 교수직을 사직하던지 둘 중 하나를 2013년 2월까지 결정하라는 것이었다. 당연히 겸임교원[42]들은 고심하였고, 30여명의 교원들이 명지병원을 등지고 관동의대 임상의학관 교수가 된다. 그리고 2년여를 쌩고생하시게 된다. 명지병원에서의 임상의와 관동의대교수직을 병행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2013년 1월 말, 협력병원으로 경기도 광명시 서울시 영등포구에 자리한 성애의료재단 소속 광명성애병원과 서울성애병원 측과 긴급하게 협력병원 협약을 체결하게 되었다. 관련기사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문제점이 없다고 볼 수는 없었다.

3.3. 프리즘병원의 부속병원화 시도, 그리고 실패

관동대학교(이하 학교당국)는 의학과 학생들에게 "광명성애병원에서 2013년 4월까지 임시적으로 수업이 진행되며, 4월 이후부터는 인천시 계양구 작전동에 소재한 가칭 "프리즘병원"에서 수업을 할 것"이라고 공고하였다. 프리즘병원 매입/리모델링 대금은 교육과학기술부가 보증하여 시중은행으로부터 대략 300억 정도의 대출을 받아 진행한다고 알려졌었다. [43]

2013년 3월, 결국 시사매거진 2580에 학교문제[44]가 방영되어 전국에 관동의대 이름을 알리게 된다. 그리고 같은 해 5월, 부속병원이 없는 문제가 있어 결국 의평원에서 관동대학교 의대에 경고장을 보냈다.

중간에 프리즘병원의 인수[45]가 어긋나면서 계속해서 2013년 내내 광명성애병원을 협력병원으로 하여 학부생 실습과 교육을 진행하였으나 여전히 의대 사정이 엉망이어서 2013년 11월 첫째 주에 의대 전체가 모여서 총장실이 있는 50주년 기념관 앞에서 시위하기도 했다. 역시나 총장은 커녕 학장도 안 나왔다(...). 비슷한 시기에 위에 서술한 제천명지병원 제안을 명지병원 측에서 재차 제시해왔고, 이 와중에 명지학원과 명지의료재단은 다시 협상 테이블에 다시 앉았다는 소식이 들리게 된다.

2013년 12월, 제천명지병원 부속병원화 제시안을 관동의대 학부모회와 학생들은 많이 고민하였고, 제천명지병원의 부속병원화를 원하는 쪽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명지학원과 관동대학교 측에서는 명지의료재단과 협상중이라는 입장을 표명할 뿐이였다. 2013년 12월-2014년 1월에 걸쳐 학부모회에서는 임상의학관 교수진과 의학과 1~5학년을 모셔서 대책회의를 열었으나 특별한 해결책이 나오지는 않았다. 결국 학교당국에서는 답변을 하지 않았다.

2014년 1월, 학부형들과 학생들의 지속적인 건의로 주교육협력병원이 성남시 분당구 서현동에 소재한 분당제생병원으로 결국 변경되었다.[46] 분당제생병원은 의대 교육에 차질이 없도록 최선의 지원을 다하겠다고 약속하였다. 관련기사 명색이 개신교 재단이라는 대학에서 신흥종교인 대순진리교가 운영하는 병원에 학생을 맡기는 상황이 일어난 것이다. 결국 분당제생병원에서 의학과 5,6학년의 임상실습이 진행되고 있으며, 분당제생병원 별관 1층에서 4학년들의 임상과목 이론수업이 진행되었다.

강원도와 딜을 해서 강원도에 양양캠퍼스를 통째로 넘기고, 강릉의료원[47]을 인수하는 빅딜을 하려고 했으나 이마저 무산되었다. 아무리 양양캠퍼스 부지가 크다고는 해도, 사안이 중대한 만큼 도의회에서 브레이크를 걸었을 가능성이 크다.

3.4. 인천가톨릭학원으로의 피인수과정

2014년 4월, 천주교 인천교구 소속의 인천가톨릭학원이 전격적으로 관동대학교를 인수하게 되었다.[48] 모든 직원, 학생, 동문이 승계되는 조건이며, 특히 의대의 경우, 다른 단과대학과는 다르게 부속병원으로써 국제성모병원이 생기게 된다.

2014년 6월 30일, 관동대의 경영권 변경과 더불어 국제성모병원의 부속병원안이 교육부 승인[49]을 받았다. 국제성모병원 초대 병원장 천명훈[50]원장은 국제성모병원의 부속병원화를 밝혔다. 단, 현재 3,600억이 넘는 것으로 알려진 국제성모병원의 부채해결이 선행되어야 한다. 부속병원으로 기부채납되는 병원은 부채가 0원 이어야 하는데, 이는 교육용 자산은 일종의 국가자산으로, 학생의 교육권이 빚 독촉으로 인하여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2014년 7월 30일까지 담보를 없애겠다고 국제성모 측에서 밝혔다. 부채는 가톨릭 인천교구에서 상환하기로 하며, 병원의 채무는 사라진다.

2014년 7월 1일부로 국제성모병원이 관동대학교 의과대학 부속병원[51]으로 되었다. 국제성모병원 측에서는 학생들의 임상실습/수업/교육이 국제성모병원 내에서 조속히 이뤄지기를 희망하고 있다고 한다.

3.5. 인천성모병원과의 관계

현재, 천주교 인천교구 소속의 병원은 국제성모병원과 더불어 인천성모병원이 있다.
소속 기관
서울대교구 가톨릭의대, 서울성모, 여의도성모, 의정부성모병원
인천교구 가톨릭관동의대, 인천성모병원[52],국제성모병원 [53]
수녀회 성 빈센트[54], 성바오로, 부천성모병원[55]
대전교구 대전성모병원

표에서 보듯이 인천성모병원은 인천교구 소속이지만 같은 인천교구의 가톨릭관동대가 아닌 가톨릭대의 부속병원이다.

2014년 인천가톨릭학원이 관동대를 인수한 후 인천성모병원도 가톨릭관동의대의 부속병원이 될 수 있다는 소문은 끊임없이 나왔으나 인수 10주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변화는 없다. 현재 가톨릭관동대 의대의 부속병원은 국제성모병원이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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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설립 자재의 조달은 미8군에서 했으며, 공사는 제1101공병단에서 진행했다. [2] 후일 음악학과, 미술학과, 일어일문학과로 존속하다가 인천가톨릭학원 인수 이후에 전부 폐과되었다. [3] 1995년 이전까지 해당 건물은 전자공학과, 건축공학과, 토목공학과, 환경공학과, 컴퓨터공학과가 사용했으며 1998년부터 사범대학이 입주했다. 이후 방목관을 거쳐 진실관으로 개명되었다. [4] 후일 컴퓨터공학과. [5] 국어교육학과 2부를 개편했다. [6] 이 때부터 총장직은 교수들이 직선을 통해 선출하도록 바뀌었으나, 다시 재단에서 임명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7] 이 과정에서 진통이 있었는데, 1988년 11월 고시에서 교육학부가 사범대학이 아니라 교육과학대학으로 개편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야당에서 교육과학대학과 사범대학의 법적 지위 동등성을 증명하면서 결국 사범대학으로 전환되었다. [8] 둘 다 시각디자인학과 백병람 교수가 설계했다. [9] 현 스포츠레저학과 [10] 하지만 13년도부터 14년도 1학기, 15년도 1학기, 16년도 1학기까지 잠시간 양양캠퍼스 중 생활관에 한해서 사용했었다. 하지만 캠퍼스 자체는 현재까지도 쓰이지 않고 있는 상태다. [11] 2, 3, 5 생활관 신축, 학군단 신축, 제2학생회관 신축. [12] 물론 강릉이야 노후된 기존 건물들을 밀어버린 것이니 다시 지을 필요가 있었지만 양양은 누가 봐도 뻘짓이었다. 명지학원의 유관 건설업체인 명지건설의 실적 쌓기 용이 아닌가 의심을 많이 받았을 정도. [13] 과학관을 쓰던 컴퓨터공학과와 교육공학과는 사범대학으로 재배치. [14] 이런 문제 때문에 양양캠퍼스는 양양군에서는 상당한 지역이슈인 상태이다. 양양군의 캠퍼스 활성화 요구를 명지학원은 계속 묵살해 왔으며, 대학의 경영권이 넘어가자 양양군에서 행정타운을 위한 매각을 인천가톨릭학원에 요구했으나, 일단 새 재단은 매각을 거절하고 새로운 활용 방안을 찾겠다고 양양군에 답변한 상태다. [15] 이 문제는 인근 속초시에서도 반복되고 있는데, 경동대학교가 같은 재단의 동우대학을 합병하고 학사개편을 하면서 원주시 문막읍 일대와 경기도 양주시에 새 캠퍼스를 지어서 속초와 고성에서 발을 빼려고 시도하고 있기 때문. 먼저 설악캠퍼스(속초)는 부속유치원을 빼면 전부 방치된 상태이고 고성캠퍼스도 학생 모집을 중단했다. [16] 이 때 실용음악전공이 신설되었고 음악과의 명맥을 잇고 있다. [17] 전설적인 명지대-관동대 통합안 [18] 이종서 관동대 총장 “같은 재단 명지대와 교명통합 할 것” [19] 관동대학교 총장부터가 명지대학교와의 합병을 원하던 상황이었다. [20] 2014년 8월 31일 폐교. [21] 2014년 9월 1일 개교. [22] 정황상 국제성모병원에서 따 온 이름임을 알 수 있다. [23] 광장 가운데의 쌍마상 때문에 쌍마광장이라는 별명이 있었다. [24] 명목상으로 남아있는 학과가 있긴 하다. 미디어예술대학의 콘텐츠제작학과와 사범대학의 역사교육과인데, 공식적으로 이 학과들은 미디어문학학과와 사학과의 후신이다. 하지만 학생회의 대 수를 초기화시켰고, 더군다나 콘텐츠제작학과는 예전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둘 다 폐과 후 신설로 보는 편. [25] 지금이야 46명 뽑는 행정학과는 2014년까지만 해도 75명을 뽑았고, 지금도 172명을 뽑으며 교내 최대로 유명한 경찰행정학과는 무려 215명을 모집했었다. [26] 단 건물자체의 소유권(지상권)은 강원도로 되어 있다. 부지만 제공하고 건설비용은 세금이였으니 당연할지도. 이후 완전히 매입했다. [27] 최종 합격자의 내신은 영어교육과 7.34, 수학교육과 8.48. 본래 사범대학에서 입결 최하위는 컴퓨터교육과가 도맡아서 했으나 이 기록이 깨졌다. 물론 최종합격자가 이렇다는 것이고 평균적으로 보면 모든 학과가 다 떨어졌다. [28] 존속 대상 학과는 사회과학대학 전체 학과(행정, 경찰행정, 해양경찰행정, 경영, 사회복지, 광고홍보), 의료융합대학 일부학과(의료경영, 의료공학 - 디지털헬스케어로 변경, 의생명공학 - 바이오메디컬로 변경)[56], 관광스포츠대학 일부학과(조리외식, 호텔경영, 스포츠 레저, 스포츠건강관리, 경기지도학)[57], 항공대학 일부학과(항공운항, 항공교통물류, 항공정비학)[58], 공학대학 건축학부(건축학과, 건축공학과)[59], 미디어예술대학 일부학과(실용음악, 콘텐츠제작, CG디자인)[60]이다. [29] 한 때 홍보가 입학처의 부수 업무였던 적도 있고, 이전까지는 경영지원실에서 계장 1명과 주무관 1명, 학생 N명으로 블로그 홍보단을 꾸리고 있었다. [30] 해당 학과의 행정업무는 공과대학 교학팀이 담당한다. [31] 물론 부속병원 비스무리하게 있던 명지병원을 팔아버리면서 이 사태가 터진 것이지만. [32] 최태민 박근혜가 총재로 있던 새마음봉사단과 연관 [33] 다만 대학과 부속 병원이 다른 지역에 있는 사례는 여기도 있다. 성대의 경우에도 부속병원인 성대 삼성창원병원은 경상남도 창원시에 있는 반면, 성대 의대는 경기도 수원시에 있다. (참고로 성균관대의 공식 부속병원은 삼성창원병원 뿐이며, 서울병원과 강북병원은 모두 산학협력 관계일 뿐이다.) [34] 사실 관동대학교도 그런 식의 이유에서 가톨릭 인천교구에게 기부금을 받고 양도한 형태이다. [35] 前 관동대학교 의과대학 협력병원인 명지병원의 소속재단 [36] 200억에서 시작된 갈등…새우등 터진 관동의대생들 [37] 2011학번만 해도 입학 후에 명지병원에서 환자체험및봉사 병원장한테 강연들은 후에 수료증받았을 정도로 협력관계였으나 후술할 인수비용 문제로 관계가 깨진다. [38] 강릉시 포남동에 위치한 종합병원 [39] 돈이 없어서 중견 건설사인 효자건설의 세금포탈이나 도와주는 신세였던 명지학원 자체의 상황을 생각해보면 어찌어찌 해서 병원을 구한다고 해도 인수비용을 원 소유주에게 제대로 줬을지나 의문 [40] 제천명지병원은 이왕준 체제에서 [41] 인천사랑병원도 무리하게 명지병원을 인수한 탓에 자금이 모자라서 약속된 후원금을 안줬다. 명지병원 자체도 1,000억대의 빚덩어리였지만... [42] 시간강사의 연장선인 겸임교수들과는 다르다. 이 쪽은 명지병원에 소속을 두고 관동대학교 의과대학에 출강하는 교수들이다. [43] 2012년 중반 서울 선한이웃 병원의 부속병원화도 같은 방식으로 시도하였으나, 그당시에는 교육과학기술부의 보증을 받지 못해서 매입하지도 못했었다. [44] 관련기사 [45] 프리즘병원 前 주인, 소유권 반환소송…'돈 없으면 다시 내놔' [46] 광명성애병원은 부속병원 없이 떠도는 학생들 받다가 토사구팽 당한 거라고 보면 된다. [47] 관동대 양양캠퍼스-강릉의료원 맞교환 추진 [48] 실제로 교육적인 목적을 가진 대학교를 매매하는 것은 불가능하나, 명지학원 산하의 관동대학교를 별도의 법인(관동대학교 재단)으로 분리한 뒤, 인천가톨릭학원이 관동대학교 재단을 산하재단으로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진행된다고 한다. [49] 교육부, 인천가톨릭학원의 관동대 인수 최종 승인…협력병원 찾아 떠돌이 수업 설움 씻어 [50] 천명훈 박사는 이후 인사이동에서 가톨릭관동대 총장으로 이동했다. [51] 인천 국제성모병원 ‘가톨릭 관동대 부속병원’으로 [52] 구 성모자애병원으로 인천교구가 설립하고 한국순교복자수녀회( 천안시의 명문인 복자여자중학교& 복자여자고등학교 설립자이기도 함)에서 한때 운영하다 현재는 CMC산하의 부속병원이나 인천교구 소속 [53] 2014년 9월부터 가톨릭관동의대 부속병원 [54] 성 빈센트 드 뽈 자비의 수녀회가 설립한 수원 최초의 대학병원이며, 현재도 수녀회가 병원을 운영(참고로 수녀가 원장이고, 수녀회 본원이 바로 옆에 있음). 아주대병원 설립 후 수원의 최고병원이라는 타이틀은 사라졌지만, 현재도 병원운영은 상당히 건실한 편 [55] 가톨릭 수녀회 성가소비녀회가 설립한 병원으로 원 이름은 부천성가병원, 병원 옆의 소명여자중학교& 소명여자고등학교의 설립자이기도 함. 경영문제(순천향대 부천병원 설립 등 병원경쟁 격화)로 인해 성가병원은 서울대교구에 운영권을 넘겨주었고, 후에 부천성모병원으로 개명후 CMC가 전적으로 경영권을 행사. 옆의 소명여중고교는 관할상 인천교구이기 때문에 인천가톨릭학원에 경영권 이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