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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d(아이돌)/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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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반 목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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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 1집

Chapter 1
1999.01.13
정규 2집

Chapter 2
1999.11.25
정규 3집

Chapter 3
2000.11.03
라이브

2001 god Live Concert
2001.08.09
정규 4집

Chapter 4
2001.11.15
정규 5집

Chapter 5 Letter
2002.12.27
정규 6집

보통날
2004.12.08
정규 7집

하늘속으로
2005.10.28
디지털 싱글

미운오리새끼
2014.05.08
정규 8집

Chapter 8
2014.07.08
디지털 싱글

Thanks Edition '바람'
2014.10.22
싱글 1집

god Single Album
2015.12.09
디지털 싱글

눈이 내린다
2018.11.27
20주년 기념

THEN & NOW
2019.01.10
[ 참여 음반 ]
||<tablebgcolor=#FFFFFF,#191919><tablecolor=#000000,#FFFFFF><width=33.3%> ||<width=33.3%> ||<width=33.3%> ||
OST

챔피언 OST
2002.07.03
OST

올림포스 가디언 OST
2003.04.22
OST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OST Part.2
2020.09.07
[ 콘서트 목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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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 god CONCERT
||<bgcolor=#000000><color=#ffffff>
2002 CONCERT
||<bgcolor=#000000><color=#ffffff>
2005 CONCERT
||
다섯 남자 이야기 100일간의 휴먼 콘서트 god is back
2005 god CONCERT
2014 CONCERT
2015 CONCERT
god The Last god 15th Anniversary Reunion Concert CONCERT
2017 god CONCERT
2018~19 CONCERT
2022 CONCERT
god to MEN GREATEST god ON
2023 KBS 대기획
2023 god TOUR
2024 god CONCERT
ㅇㅁㄷ 지오디 god's MASTERPIECE Chapter 0


1. 개요2. 연습생 시절3. 1집 < 어머님께>, 착한 그룹 god의 등장(1999)4. 2집 <애수>, 성공의 시작5. 3집 < 거짓말>, 확고부동한 국민그룹으로서의 가열찬 활동
5.1. 리더 박준형의 퇴출 사건
6. 4집 <길>, 각종 가요대상 석권과 국민그룹의 100회 콘서트7. 5집 <편지>, 윤계상의 이탈과 전성기의 끝8. 공백기 사이의 해체설9. 6집 7집, 결별을 준비하는 시기10. 재결합과 컴백, 7년 후의 8집11. 2015년12. 2018년13. 2019년

1. 개요

god의 활동을 정리한 문서.

2. 연습생 시절

god의 시작을 거슬러 가자면 90년대 중반까지 내려간다. 데니 안과 손호영, , 김환성으로 이루어진 4인조 혼성 그룹으로 데뷔를 준비하던 도중, 슈가 SM에 캐스팅되고 김환성이 천명훈에 의해 낚아채어져 NRG로 데뷔하게 되며 데니 안과 손호영만 남게 되었다.[1] 여기에 박준형과 윤계상, 김태우가 합류해 god가 결성되었다. 슈가 합류한 SES와 김환성이 합류한 NRG가 각각 97년 11월,10월에 데뷔한 반면 god는 1999년 1월에야 데뷔하였는데, 이는 '너만 오면 돼' 상태였던 SES와 NRG와 달리 혼성그룹으로 데뷔하려던 기존 계획이 어그러진 상태에서 새 멤버가 합류해 새로운 컨셉으로 데뷔해야 했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연습생 시절이라 변변한 수입이 없어 박준형 혼자 드라마 등에 단역으로 출연해 출연료가 들어오면 그걸로 겨우 밥을 먹고 굶는 때도 많았던 등 상당히 힘든 연습생 시절을 보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3. 1집 < 어머님께>, 착한 그룹 god의 등장(1999)

어머님은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어머님은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후렴)야이야이야~ 그렇게 살아가고~
god 1집 어머님께 中
파일:god 1집 1999년.jpg
데뷔 초 풋풋했던 모습

1999년 1월 1집 타이틀곡 <어머님께>로 데뷔. 이 곡이 사회적으로 훈훈한 반응을 일으키면서 '착한 그룹 god'의 이미지를 성공적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당시만 해도 H.O.T. 젝스키스가 청소년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던 시기였지만 이들마저도 데뷔 초에는 이상한 헤어스타일에 가사도 도통 알아먹을 수 없는 사랑노래나 부른다며 무시당하는 분위기가 많았는데,[2] god는 착한 컨셉에 어머님께는 그야말로 착한 노래였다. 1집만 내고 사라질 수도 있었던 god가 2집을 낼 수 있게 된 것은 이 '착한 그룹' 이미지로 호감을 얻은 덕도 있을 것이다. 특히 어머님께가 발표되고 얼마 후 가출 청소년들을 다룬 다큐 방송에서 가출 청소년들이 술집에 모여있다가 가게에서 튼 이 노래를 들으며 하나같이 '우리 엄마 얘기야.'하면서 오열하는 장면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3]

당시 1집 판매량은 16만 장 정도로 지금에서 보면 엄청난 판매량이지만 몇십만 장씩 파는 게 기본이었던 그 시기로 보면 중박도 못 되고 소박~본전치기 정도의 판매량이었다. 그렇지만 IMF로 음반 시장이 위축된 때라 다들 큰 폭의 하락세를 겪었기 때문에 망한 수준은 아니다. IMF가 터진 당시에 데뷔한 NRG가 1집에서 40만장을 팔아치웠지만 2집은 15만장 정도였다는 걸 보면 98년~00년은 꽤나 음반시장이 위축되던 때라는 걸 알 수 있다. 당시 순위제를 운영했던 인기가요에서는 1위 후보까지 올라갔으며 그 뒤 후속곡 '관찰'로 활동한 다음 1집 활동을 마무리 지었다.

멤버들에 따르면 당시 데뷔를 같이 한 신인가수가 4명이나 되었는데 그 가운데서 뒤쪽으로 거의 1등이었고 거기다 유일하게 상을 못 받아서 정말 없어질 뻔했다고 한다. 당시 데뷔를 같이 했던 가수들이 원타임, S#ARP, 코요태였는데 세 그룹 모두가 데뷔곡부터 대박을 터트린 그룹이라는 걸 생각하면 경쟁상대가 너무 강했던 셈이었다.

신인 4대 천왕으로 불리던 이들이 내놓은 곡은 1tym의 원타임, 코요태의 순정. S#ARP의 'Yes'였다. 심지어 god를 제외한 이 그룹들의 노래는 전부 힙합이거나 댄스곡이라 매우 신나는 노래였고 클럽 등에서 많이 흘러나왔던 걸 생각하면 '어머님께'라는 곡의 인지도 자체는 높은 편이었다. 다만 샾의 경우에는 데뷔곡 'Yes'가 크게 부진했지만 후속곡 'Lying'으로 5위권 안에 들었으며, 혼성그룹 필드에서 보자면[4] 샵은 순조로운 출발에 속했기에 각자의 필드에서 보자면 god 경우 당시 터지던 남자 아이돌 필드 안에서 입지가 애매한 편이어서 곡 인기로 따지자면 크게 뒤처지지 않았음에도 더 부진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거기다 당대 최고 프로듀서였던 박진영 프로듀서 하에 큰 기대를 업고 데뷔한 거에 비하면 기대 이하의 결과였다고 한다. 그래서 1집으로 첫 정산을 받던 날, 김태우가 제일 먼저 사무실에 도착했는데 그때 직원들이 "이렇게까지 했는데 이 정도면 망한 거다"라고 웅성거리고 있었다고. 결국 매니저가 난처해하는 사장에게 2집까지는 믿고 해보고 안되면 접자고 설득하여 2집이 안되면 해체하기로 합의가 되었던 상황이라고 한다. 다만 1집이 그저 실패작으로 평가받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이, '어머님께'로 굳어진 '착한 청년들' 이미지는 이후 이어진 god 활동에서까지 이어가면서, 보컬에 주력한 보컬그룹의 이미지를 확립하여 소녀들만이 아니라 어린이에서 부모님 세대까지를 아우르는 호감을 이끌어내는 원동력이 되었다.

사실 이 뮤직비디오를 처음 촬영했을 당시에는 감독이 가사를 사회에 대한 불만으로 해석해서 셰도우 복싱만 하는 뮤직비디오였는데 사장이 완성된 뮤직비디오를 보고는 바로 재촬영을 지시, 영화감독을 섭외해 급하게 만들어서 완성된 게 현재의 뮤직비디오다. 만약에 오리지널 뮤직비디오로 갔다면 훈훈한 이미지 얻어놓고도 뮤직비디오로 다 까먹었을지도 모를 뻔했던 사건이었다.

참고로 뮤직비디오에서 장혁이 어머님을 그리워하며 하모니카를 부는 배경은 경기도 양평의 양수리로, 뮤비의 가장 명장면인 농수로는 2013년 공원조성사업을 하면서 철거되었다. 링크에서 2013년 이전 로드뷰를 클릭하면 해당 농수로를 확인할 수 있다. #

후일 박준형이 해피 투게더 3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원래는 짜장면이 아닌 잡채였으며 가사의 내용은 본인과 어머니 사이에서 있었던 일이 가사의 모티브가 되었다고 한다.

특히 이들에게는 '한밤의 TV연예'에서 첫 데뷔 무대를 했을 때가 정말 잊지 못할 기억이라고 한다. 이 방송을 했을 때 카메라에 비친 본인들의 모습을 보며 망하는 줄 알았다고. 특히 첫방에서 김태우가 안경을 쓰지 않고 나오는 본인 장면을 보자 방으로 들어가 펑펑 울었다고 하며 이때는 복장 기준이 엄격했던 터라 박준형은 금색 머리를 검은색 스프레이로 염색했는데 스프레이가 부족해서 어쩔 수 없이 정면 쪽만 염색을 했다고 한다. 지금도 자료화면으로 이 모습을 보여줄 때마다 멤버들은 다 부끄러워한다고 한다.

현재 이 '어머님께' 노래는 싸이의 '아버지', 김진호의 '가족사진'과 더불어 부모를 주제로 한 대표적인 노래로 손꼽히고 있으며, '어머님은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구절은 어머니의 사랑을 표현한 아주 유명한 구절로 알려져 있다.

4. 2집 <애수>, 성공의 시작

파일:god 재민군.jpg
한재민 군과 함께 찍은 사진

1999년 11월 2집을 냈고 타이틀곡 <사랑해 그리고 기억해>, 후속곡 <애수>, <프라이데이 나이트>로 활동했다. 타이틀곡 '사랑해 그리고 기억해'도 대중적으로 많이 불렸고 1위도 많이 차지했지만 음악프로그램에서 집중적으로 불렀던 것은 댄스곡이었던 후속곡 두 곡이었다. 이 시기 비주얼적으로도 갈고 닦은 데다 2000년 초부터 god의 육아일기가 방송되면서 god는 그야말로 전 국민적인 호감을 얻었다. 말이 안되는 소리 같지만 2집 후속곡 '애수'는 god의 육아일기에 1살짜리 재민이가 선곡했다.[5] 2집 노래를 재민이에게 다 들려 주었는데 재민이가 '애수'에만 반응을 보였던 것. 그래서 농담처럼 god 멤버들이 이곡을 후속곡으로 하자고 했는데 진짜로 그렇게 되면서 일종의 더블 타이틀 곡이 되었다.

어머님께를 불렀던 젊은 애들이 아이를 키운다는 갭 모에, 화면에 출연한 다섯 청년들은 그야말로 그림으로 그린 듯한 착한 청년들이었던데다 프로그램 중간중간 숨기지 못하고 내비치는 혹독한 데뷔사는 시청자들의 호감과 연민을 동시에 불러일으켰다. 당시 경쟁 프로그램이던 개그콘서트의 시청률을 반토막나게 하고, 순간 시청률 60%까지도 찍은 적이 있다는 기록을 보면 얼마나 인기 프로그램인지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아빠! 어디가? 이전의 선구자 프로그램일지도 모를 이 프로그램을 통해 god는 전 국민적인 관심을 받게 됨과 동시에 무지막지한 숫자의 소녀팬들도 확보했다.

사실 1집 부분에서도 언급되어 있듯이 2집까지만 해보고 안되면 접기로 된 상황에서 원래 육아일기는 H.O.T.에게 섭외가 들어갔던 프로그램이었다. 하지만 H.O.T.는 방송시 메이크업 등의 부분에 있어서 아이돌로서의 신비감을 유지하기를 원했고, 당시로는 드물게 리얼을 추구했던 담당pd가 캔슬을 놓으면서[6] 포맷이 붕 떠버렸고, 이걸 기획사에서 우린 다 벗어도 된다며 덥석 물어온 것. 다만 1집의 반향이 미적지근했던지라 정규 프로그램도 아닌 파일럿으로 출발했는데 반응이 예상 외로 뜨거워서 정규 코너로 편성이 되었다.

거기에 2집 곡은 멤버들을 때빼고 광내서 비주얼적으로도 1집보다는 훨씬 나아졌으며, 특히 god의 육아일기를 통해 손호영이 왕엄마로 불리며 당대 최고의 꽃미남의 반열에 올랐다. 또한 댄스곡 위주로 활동한 결과 1집 때의 대체 누구 보고 좋아하라고 만든 건지 아리까리했던 '관찰'이나 지나치게 건전했던 '어머님께'와 달리 10대 소녀들의 팬심도 사로잡을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2집에서는 가요 프로그램에서 1위를 여러번 차지했으며 공식 통계 57만장이라는 판매고를 달성했다.

5. 3집 < 거짓말>, 확고부동한 국민그룹으로서의 가열찬 활동

파일:god 3집.jpg
god 3집 자켓사진

2000년 11월 3집 앨범 <거짓말>로 활동을 시작했다. 이 때의 god는 전 국민적인 애정과 다수의 소녀팬들을 확보한 말 그대로 국민그룹의 행보를 이어갔다. 이는 동시에 미칠듯이 가혹한 스케줄 행보의 시작이기도 했다. 당시에는 공홈이나 팬페이지에서 스케줄을 다운받아서 달력에 정리해 나오는 프로그램을 녹화하거나 라디오를 듣거나 녹음 현장에 쫓아가거나 하는게 일반적이었는데 하루에 소화스케줄이 적게는 너댓 개에서 많게는 일곱, 여덟 개가 되는 등 살인적인 스케줄을 자랑했다. 멤버별로 별도로 움직여 하루 소화스케줄이 두자릿수를 찍는 일도 왕왕 있었다.

타이틀곡 <거짓말>은 역시 공전의 히트곡이 되었으며, 이때 노래의 빈 후렴구에 넣는 팬들의 응원구도 화제가 되었다.[7] 특히 모든 팬이 합심해서 외치는 내레이션의 싫어, 싫어![8]와 노래 절정구의 '제발 가지마~' 뒤에 목터져라 이어지는 g!o!d! 짱!!!!은 god팬이 아니어도 누구나 알고 있었을 정도. 요즘에 와서도 노래방에서 거짓말을 부르면 심심치 않게 저 'god짱'까지가 가사에 자동포함되는 사람들이 많다. 후속곡으로는 <니가 필요해>와 <촛불 하나>로 활동했으며 촛불 하나는 힘들 때 힘을 잃지 말라는 내용을 담은 곡으로 '착한 국민그룹'다운 이미지를 이어갔다.

여담이지만 3집 타이틀곡 거짓말은 이별노래였으므로 소속사측에서 곡의 분위기를 맞추기 위해 너무 웃지 말라는 오더를 내려놓은 상황이라 1위를 휩쓸고도 멤버들이 그다지 웃지 못하는 황당한 상황도 발생했다. 1위하고서 mc가 왜 안 웃으세요~라고 묻자 손호영이 당황하여 아 컨셉이라서라며 폭로 아닌 폭로를 해버린 적도 있었을 정도였다.

3집의 성공은 말하기 입아플 정도인데 현재 역대 남성그룹부문 최다 음반 판매량 1위 음반이 god 3집이었으나 2018년, 무쌍을 찍은 방탄소년단에 의해 4위로 밀려났다. 그래도 18년간 1위 자리를 지켰으니 대단할따름. 공식 판매량 185만장을 기록하면서 각종 음원차트와 음반차트를 그야말로 쓸어버렸고 그 인기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KBS 연말 가요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달성했다. 참고로 그 때는 조성모가 '아시나요'라는 곡으로 가요대상을 휩쓸어 갔던 때라 이들은 이 상을 받게 되자 다섯 명 모두 목놓아 울음을 터트리는 모습이 전파를 탔고, 립싱크였지만 피날레 무대에서 노래를 부를 때도 울먹거리느라 잘 소화해내지 못했다. 또한 대상 수상자들 중 최초로 소감발표를 가요대상이 아닌 다른 방송에서 수상소감을 전한 팀이 되었다. 그 뒤 후속곡인 '촛불 하나'와 '니가 필요해'도 히트를 치면서 3집 활동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5.1. 리더 박준형의 퇴출 사건

하지만 3집 활동이 마무리 되었을 즈음에 예기치 못한 사건이 터졌는데 바로 2001년 9월 9일에 일어난 박준형 퇴출사건이 그것이었다. 박준형과 한고은 사이에서 열애설이 터졌고[9] 둘다 실제로 사귀고 있다고 인정하자 이 사실을 알게 된 싸이더스가 박준형을 방출하겠다고 선언한 것이었다. 사실 박준형은 god 내에서 개인 팬이 가장 적은 편이었고, 나이도 나이였기 때문에 소속사측에서는 물갈이하려는 측면도 있지 않았나 싶은데 당연히 팬들의 반발은 엄청났다. 공식 홈페이지에서 탈퇴가 이어졌고 퇴출 반대운동이 거세게 일어났다. 이때 얼마나 팬들의 단결력과 분노가 쩔어줬냐면, 팬들이 모금을 통해 퇴출 반대 서명을 조중동 3사에 실었다. 퇴출 반대 연합 홈페이지가 만들어지고 일주일만에 반대 서명광고를 싣기 위한 모금액이 3천만원이 모였으니 당시의 열기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박준형을 제외한 멤버 넷이 이를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기자회견을 소속사 허락없이 진행하고[10] 뒤이어 박준형도 해명 기자회견에서 "나 서른 두 살이에요. OK? 서른 두 살이면 여자친구 있어야죠."라는 그 유명한 발언을 했으며[11] 이 과정에서 팬들이 싸이더스 본사에 god 굿즈들을 반품하고 강제로 가져다놓는 운동이 이어지자 소속사는 결국 8일 만에 방출 선언을 철회했다. 이후 한고은과 박준형은 결별 전까지 god 팬들이 인정하는 공식 커플로 지냈다.

스캔들이 터지면 상대 여성에게 면도칼정도는 우스웠었던 시절로서는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렇다고 god 팬들이 꼭 마냥 순진하거나 착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고, 이 때로부터 1년 전에 젝스키스가 여러 오해 속에 해체를 했고 비슷한 시기에 H.O.T.가 해체를 했던지라 아이돌 팬덤입장에서 소속사가 팬들의 존재여부와 상관 없이 그룹의 향방을 독단적으로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팬덤의 반발감과 위기의식이 전반적으로 하늘을 찌를 때였다. 거기다 애초에 god는 데뷔 초 컨셉부터 소녀팬들에게 환상을 심어주는 빛나는 아이돌이라기보단 노래 잘하고 밑바닥에서 열심히 해서 여기까지 온 동네 오빠,총각 이미지를 유지했기 때문에 '이 오빠들은 우리가 지켜줘야돼.'라는 보호본능을 자극할만한 요소가 많았고, 특히나 박준형의 역할은 소녀들이 선망하는 오빠라기보단 소녀들이 좋아하는 오빠들의 정신적 지주, 삼촌에 가깝다는 점도 있었다.[12] god팬들도 박준형의 과거나 데뷔과정을 들어서 아는데, 한국인이라면 연예인 되려고 몇년을 고생한 오빠들 지켜주느라 20대를 다보낸 큰형이 30살이 넘어서도 결혼은커녕 연애도 못하고 열심히 하는데 회사가 그럴수 있냐라는 사회적 문제까지 일었을 만큼 큰 이슈였다.[13]

어쨌든 이 사건은 인기 있는 아이돌 그룹 중 특정 멤버의 열애설에 대하여 비난하거나 강제로 퇴출시키면 위험하다는 선례를 남기게 되었으며 이 사건 이후로 다른 아이돌 그룹들도 열애설이 보도되면 긍정적으로 인정하는 등 아이돌 그룹의 연애에 관하여 대중들의 시선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6. 4집 <길>, 각종 가요대상 석권과 국민그룹의 100회 콘서트

파일:god 4집.jpg
커리어하이를 기록했던 4집 앨범 자켓사진

2001년 11월에 발매된 4집은 타이틀 곡 <길>로 활동했다.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날 데려가는지 그 곳은 어딘지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지만 이렇게 난 걸어가고 있네'로 이어지는 가사로 앞서 언급된 3집 말의 박준형 퇴출사건 때문에라도 팬들에게는 감정적인 곡이었고 방황하는 당시 세대들한테도 받아들여지는 좋은 곡이었다. 후속곡 <니가 있어야할 곳>은 분위기를 확 바꾼 밝은 댄스곡이었는데 당시에는 충격적인 비주얼로 팬들의 경악을 불러왔다. 볶은 머리 손호영, 머리에 줄그은 박준형, 너덜너덜한 힙합 복장등등... 거기다 김태우 파트는 후렴구를 제외하면[14] 순 애드립뿐이라서 더더욱 충격을 주었다. 그 덕에 손호영이 김태우보다 노래를 더 많이 부르는 특이한 현상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 시기에 박준형이 라이브 무대 도중에 허리 부상을 당해 랩을 하던 도중에 갑자기 쓰러지는 사고가 일어났었다. 그 날 박준형의 파트는 데니 안이 대체해주었고 그 이후, 박준형은 한 동안 무대에서 같이 춤 추지 못 하고 따로 마련한 자리에 앉아 랩을 했었다. 이날 무대를 자세히보면 바닥에 온통 꽃가루가 뿌려져있는데 이를 밟고 미끄러진 사고다.
4집은 2개월 동안 173만장의 판매고를 올려 역대 남성그룹 부문 음반 판매량 5위에 랭크되어 있다. 상술했듯 18년간 1위를 지킨 거짓말과 함께 한 그룹이 1, 2위를 십수년간 차지 했었던 셈. 연말 가요 시상식에서는 MBC, KBS, SBS 3사에서 모두 대상을 차지하는 그랜드슬램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으며[15] 거기에 그룹 사상 최초로 골든디스크 대상[16], 엠넷 뮤직비디오 페스티벌 최고 인기 뮤직비디오상도 수상하였다.[17][18] 각종 수상 기록과 판매량, 그리고 가요계 뿐만이 아닌 전체 문화계에서 god의 영향력이 가장 컸던게 이 4집 시기로 사실상 그룹의 커리어 하이로 평가 받는다. 이 때의 god는 그나마 관록이 붙어 수상소감을 남길 수 있었다. 다만 가장 높은 인기를 자랑하던 시기였던 만큼 이 때 과도한 스케줄로 박준형이 무대에서 춤추다 쓰러져 허리디스크 판정을 받고 실려가는 등, 멤버들이 활동 중에 몸고생을 가장 많이 하던 시기였다. 그래도 박준형은 절대안정 조치를 받았음에도 이후 의자에 앉아서 노래하는 프로 정신을 보였다.
파일:god 100일 콘서트.jpg
2002년, 100일간의 휴먼 콘서트에서 공연하는 god

4집 활동을 성공적으로 마친 2002년에도 활발한 활동을 보였다. 2002년 7월부터 100일간의 휴먼 콘서트를 진행했는데 지금은 사라진 정동 팝콘하우스(구 정동 이벤트홀)에서 매 공연 다른 테마로 100회의 공연을 치르는 빡빡한 스케줄이었다. 1차는 2002년 7월 11일부터 9월 22일까지 매주 목, 금, 토, 일 45회 공연을 했고 2차는 2002년 12월 25일부터 3월 30일까지 55회 공연을 했다. 100회 전 공연이 매진되어 한 장소에서 가장 오래한 공연으로 국내 기네스에 올라가 있으며, 특히 마지막 공연이었던 2003년 3월 30일 공연은 암표가 200만원 치에 거래되기도 했다. 3집과 4집의 밀리언셀러, 2001년 방송 3사 통합가수왕과 더불어 god의 최전성기를 상징하는 최고의 커리어로 남아있다. 2002년 10월에는 Fangod 3기 창단식을 거행했는데 잠실 주경기장에서 팬미팅을 진행했다.

이전까지 god는 김태우를 제외하고는 가창력이 좋다고 보기는 힘든 그룹이었지만, 이 100회 공연을 계기로 멤버 모두의 실력이 급상승하게 된다. 다만 성장한 실력을 발휘할 기회는 많이 주어지지는 않았다.

여담이지만 당시 최고 시트콤인 MBC 뉴 논스톱에 2001년 2월과 12월에 2번 5명이 모두 각 에피소드 주인공을 맡아서 연기에 도전했었다. 특히 12월에 4집 활동중이었는데 PD가 god 타이틀곡 길에 대한 스토리를 적절히 에피소드에 넣어주면서 멤버들을 극대화 시켜줬고 마지막 회차 엔딩에는 거짓말 뮤직비디오까지 자체제작으로 삽입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

7. 5집 <편지>, 윤계상의 이탈과 전성기의 끝

파일:2002년 god 편지.jpg
5집 <Chapter 5 Letter> 인터뷰 사진

2002년 12월 5집은 타이틀곡 <편지>로 활동했다. 감옥에서 나오는 남자가 밖의 연인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구성된 소울 힙합곡이었다. 100회 콘서트로 방송활동이 줄어들고 월드컵의 여파로 방송이 점령되면서 전파를 많이 못 탔지만 후속곡인 <0%>는 인기를 끌었다. 이 시기까지가 god의 최전성기였으며 이 후 긴 공백기를 가지는 동안 윤계상의 그룹 탈퇴가 이루어진다. 1세대 선발주자였던 H.O.T.가 데뷔 후 1997년 ~ 2000년까지 인기를 끌고 바로 해체했던 것처럼 god도 2000년~2002년 최전성기를 맞은 직후 그룹의 재편이 이루어지며 비슷한 행보를 걷게 되었다.

5집 이후에 god는 또다시 긴 공백기를 가졌다. 간략하게 정리하면 싸이더스는 계속해서 god와 계약을 이어가는 한편 윤계상을 배우쪽으로 돌리려는 시도를 하고 있었다. 원래 윤계상이 배우 쪽을 하고 싶어했다고 알려진 정보는 잘못된 것.[19] 후에 윤계상이 진행했던 프로그램에서는 당시 연예인 자체를 그만두려 했었다고 본인이 직접 말했다. 그래서 god 6집 쇼케이스에서 윤계상이 마지막에 무대에 올라왔던 것은 자신이 군대를 가면 모든 것이 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연기를 시작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흥미를 가지게 되고 거기서 많은 위안을 얻었다고 한다.

어쨌든 윤계상이 탈퇴를 했다가 2012년 윤계상의 One Table이라는 프로그램에서 그동안의 오해를 풀었고 2014년 god는 15주년을 맞아 다시 완전체로 돌아왔다.

추가로 윤계상의 원테이블의 방송 이후에 라디오스타에 나온 데니안의 증언에 의하면 당시 윤계상과 데니안은 싸이더스에, 박준형, 손호영, 김태우는 JYP에 소속되어 있는 등 각 멤버들과 소속사와의 계약에서 생긴 갈등들로 인해 윤계상이 많이 지쳐있었다고 한다.[20] 다만 윤계상이 진행했던 해당 프로에서 다른 멤버들도 윤계상의 말에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사실 멤버들끼리도 서로의 생각을 잘 몰랐던 듯 한데, 소속사 문제가 예민하게 얽혀있다보니 서로가 솔직하게 말할 기회가 잘 없었던 듯 하다.[21]

8. 공백기 사이의 해체설

100회 콘서트가 끝난 이후 Fan god 4기 창단식 이외에는 god가 모습을 많이 드러내지 않아서 2003년 하반기부터 해체설이 돌기 시작했다. 또한 일명 괴문서라고 하는 문서가 god 팬들 사이에서 떠돌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당시 god의 소속사 싸이더스 HQ의 대표 정훈탁이 윤계상을 god 멤버에서 제외시키기 위해 마치 윤계상이 god 활동에 싫증을 느끼고 연기자로 전향한다는 식의 기사를 퍼뜨려 팬들에게 윤계상에 대한 악감정을 심어 god 6집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로 인해 괴문서를 믿었던 일부 팬들이 윤계상을 '배신자' 라고 칭하며 god에서 나갈 것을 요구했던 적이 있었다고 하지만 이 문서에 대해서 약간의 정리가 필요하다. 일단 god는 위에 서술했다시피 김태우와 나머지 멤버들의 소속사와 계약기간이 서로 달랐었는데, 싸이더스 HQ가 윤계상을 배우쪽으로 돌리려고 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렇게 윤계상을 배우 쪽으로 돌리고 나머지 김태우, 손호영, 박준형, 데니안 이 4명을 6집에 참여시키려는 방법으로 하려고 했던 것이었다. 그렇게 JYP와 싸이더스 HQ간의 계약 갈등으로 윤계상은 연예계 활동에 싫증을 느끼게 되고, 결국 god를 떠나버리기에 이른다. 하지만 god를 떠난 뒤 우연치 않게 연기에 재미를 붙이게 되었고, 그렇게 연기자 활동을 해온 것이었다.

9. 6집 7집, 결별을 준비하는 시기

2004년 11월에 god는 윤계상을 제외한 네 명으로 6집 타이틀곡 '보통날'로 컴백했고, 탈퇴 후 연기자로 전업하려는 계획을 가진 윤계상은 같은 시기에 군입대를 하였다. 때문에 전성기 시절의 큰 인기를 누리지는 못했지만 순위 프로그램 1위를 이어가는 등 꾸준한 위치를 유지해갔다. 6집은 트랙 1번부터 마지막까지 이야기가 이어지는 뮤직드라마 컨셉이었는데, 그래서인지 앨범 자켓 안쪽에 god 멤버들이 아닌 남녀 배우가 끌어안고 있는 사진이 들어있기도 했다. 다만 드라마는 그다지 잘 만든 편은 아니었고, 타이틀곡 "보통날" 외에 "반대가 끌리는 이유"가 인기를 끌기도 했다.

이 때 손호영과 불화가 있었던 전 의붓엄마[22]가 언론에 대고 손호영이 병역기피자라는 둥 불량아였다는 등 어처구니 없는 발언을 쏟아내서 잡음이 있었다. 이 여자는 억 대 연봉의 보험왕 출신 보험설계사였는데 손호영의 아버지와 이혼을 진행하며 재산권을 놓고 다투다가 잘 진행되지 않자 손호영을 공격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던 것이다. 손호영에게는 어두운 그늘이 늘어나는 상황이 되었다. 이후 6집 앨범 활동을 끝내고 god는 콘서트를 가졌고, 2005년 10월에 7집 앨범을 내었으나 너무 많은 새로운 그룹들이 줄지어 나와 이들의 위치는 이미 중견가수가 되어있었고, 이 때문에 음반판매량과 인기도는 점점 하락하게 되었다. 결국 god는 7집을 끝으로 활동을 잠정 중단한다고 선언했다. 헤어짐이 있으면 만남도 있다는 가사의 "두개의 문"을 마지막 트랙으로 했지만, 그 바로 앞 트랙인 "하늘 속으로"가 너무 절절한 이별통보였다.[23]

이후 팬들의 애정과 미움을 한몸에 받았던 윤계상은 연기자로 전업했고 손호영은 뮤지컬 쪽에서, 데니안은 방송인으로, 김태우는 가수로 활동하며 박준형은 해외에서 연기활동을 이어갔다. 그렇게 8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이 흐르고...

10. 재결합과 컴백, 7년 후의 8집

2013년 11월 4일, 별안간 떠돌았던 재결합 발표가 기사화되었다. 2014년 초에 정규 앨범을 발표할 예정이라고.[24]

2014년 2월 24일 다시금 기사가 올라왔는데 재결합에는 합의했고 이단옆차기가 프로듀싱할 것이란 기사가 떴다. 처음엔 3월 컴백이라고 떴으나 수정되어 컴백시기는 미정이라고 한다. #

그렇게 떡밥만 무성하게 올라오다가 5월 4일 드디어 구체적인 활동 계획이 담긴 기사가 올라왔다.[25] 7월에 정규 8집 앨범을 발매하고 데뷔 15주년 콘서트를 열 계획이지만 방송활동은 없다고 한다. 또한 5월 8일엔 싱글을 발매하고 그 수익금을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 희생자와 유족을 위한 성금으로 기부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

2014년 5월 8일 오후 12시에 싱글 미운오리새끼가 발매되었다. 전성기 때의 god 히트 발라드곡인 '길', '거짓말' 등을 떠올리게 하는 잔잔하고 감성적인 발라드로 음원 공개 직후 멜론, 엠넷닷컴, 올레뮤직, 네이버뮤직, 소리바다, 지니, 벅스, 싸이월드뮤직, 몽키3 등 9개 음원 차트 1위를 석권했다. 인기에 힘입어 이듬해 열린 가온 K-POP 어워드에서 음원부문 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예전 감성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는 평과 음악적인 성장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 같다는 평이 엇갈린 바 있다.

7월 8일 앨범을 발매하고, 같은날 0시 타이틀곡을 공개한다. 고심끝에 '우리가 사는 이야기', 'Saturday Night', 'Stand up' 세 곡을 타이틀곡으로 한다고 발표했다. (기사) '우리가 사는 이야기'에는 김태우의 소속사 후배인 메건 리가, '노래 불러줘요'에는 아이유가 피쳐링을 했다.

7월 1일, "하늘색 풍선"과 "촛불하나"의 스핀오프 형식으로 "하늘색 약속"이 공개 되었다. 공식 뮤직비디오

7월 8일 "Saturday Night"의 MV도 공개했다. 공식 뮤직비디오 또한 정규 8집의 수록곡들로 각종 음원차트에서 줄 세우기에 성공했다.

7월 11일 새벽, SBS 나이트라인 초대석에 데니 안, 박준형, 김태우가 출연했다. 인터뷰 영상 방송 직후에는 "우리가 사는 이야기" MV가 공개되었다. 공식 뮤직비디오

이렇게 음원도 올킬하고 계속해서 화제가 되니 복귀 초반의 "방송출연은 없다"라는 결정을 번복하고 방송에 출연해야하나 고심하고 있다는 기사가 나왔다. # 물론 팬들은 "제발 나와주세요!!"를 외치고 있다. 또한 방송사에서도 이들을 섭외하기 위한 치열한 물밑작업을 진행중이라고 한다. # 그리고 ' 유희열의 스케치북' 9월 5일분 방송에 출연이 확정되었고 팬들은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

앨범이 발매된 날 윤계상이 뇌수막염으로 입원했다는 기사가 올라왔다. # 일단 입원치료 중이지만 콘서트엔 문제가 없을 것이라 한다.

드디어 2014년 8월 2일 방영된 무한도전 열대야 특집에 출연하여 간만에 입담을 뽐냈다. 출연자는 박준형, 데니안, 손호영. 윤계상과 김태우는 개인 스케줄로 인해 불참.

9월 5일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출연했다. 최초의 단독 게스트, 단일 가수 특집.[26] 여기에 80분 편성에서 10분 추가되어 90분 편성까지 됐다. 유희열이 1년 5개월 전 김태우와 손호영이 출연했을 때 5인 god의 출연을 요청해 약속을 받아내고, 그 후로도 손수 멤버들에게 끈질기도록 전화로 출연을 독려했다고 한다. 폭발적인 시청률과 반응에 유례없는 재방송이 결정되었다. 재방송은 추석 연휴 마지막날인 9월 10일 오후 3시 50분. 방송 클립을 보면 이제는 애 엄마가 다 되어가는 여성 팬들이 딱딱 맞춰가며 호응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다만 저작권 문제로 유희열의 스케치북 홈페이지에선 다시 보기가 불가능한 상황이다.[27]

11. 2015년

완전체로 다시 재결합해 돌아온 8집 이후 새로운 곡이 1년 6개월 만인 12월 9일에 발표되었다. # 이번 앨범은 정규앨범이 아닌 싱글앨범이며 웃픈 하루, 네가 할 일 두 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웃픈 하루는 8일에서 9일로 넘어가는 자정, 네가 할 일은 9일 정오에 각각 공개되었다.

12. 2018년

2018년 다섯 멤버 모두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JTBC 같이 걸을까에 출연하였다.

13. 2019년

2019년 1월 20주년을 기념하는 스페셜 앨범 THEN & NOW가 발매되었다. 그 남자를 떠나와 눈을 맞춰가 더블 타이틀이다.

2019년 부산 국제 록 페스티벌에 1일차 헤드라이너로 내정되었다. 해당 축제 유료화 첫 해에 록밴드가 아닌 팝 그룹이 헤드라이너라는 사실에 많은 논란이 일고 있다.


[1] 사실 슈가 나가고 그 자리에 김환성이 들어온 것이라고 한다. [2] 이 당시에는 랩이 대중가요에 등장하기 시작한지 몇 년 안 되었던 시기라 랩이 들어간 노래가 흘러나오면 질색하면서 '저딴 것도 노래냐?'는 반응을 보이는 기성세대들이 꽤나 많았다. 사실 어머님께 역시 후렴구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랩이었지만, 가사가 워낙 건전하다보니 기성세대들에게도 나쁘지 않은 반응을 얻을 수 있었다. [3] 라디오스타에 데니안이 나왔을 당시 윤종신이 말하길 god는 데뷔 때 그 어느 아이돌 그룹도 컨셉으로 잡지 못한 효심을 정복하였다고 했다. [4] 90년대 후반, 가요계에서 혼성그룹이 차지하는 입지가 보이그룹만큼 크지 않았기 때문에 필드 자체가 크지 않았고, 그 중에서 샵은 신인 혼성그룹 중에서 두드러지는 편이었다. [5] 여담으로 그 당시 만 1세였던 재민이는 2023년 기준으로 26살이다. 2014년 무도 열대야 특집에 게스트로 출연한 박준형이 재민이가 (당시) 고등학교 1학년이라고 밝힌 바 있다. god 멤버들도 최근 예능에서 "그 때(육아일기)는 재민이에게 분유를 타서 먹였는데, 이제 조만간 같이 술 한 잔 할 수 있을 것 같다." 고 간간이 얘기했다. [6] 문희준의 말로는 "됐다 그래"라고 했다고 한다. [7] 여담으로 '거짓말' 뮤직비디오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이 지금은 분노의 질주 시리즈의 한 역으로 유명해진 한국계 미국인 배우 성강이다. [8] 배우 전지현이 직접 녹음한 것이다. [9] 당시 한고은은 연예가 중계의 MC로 활동하고 있었다. [10] 이 때 멤버들의 "박준형 없는 god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는 발언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11] 게다가, 박준형은 청소년들의 연애 문화에 자유로운 미국에서 성장한 사람이었다. 미국에서는 청소년이 되면 알아서 연애도 하고 섹스도 하는 자유로운 곳이었으니, 한국 아이돌의 답답하기 짝이 없는 문화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12] 박준형은 god 둘째인 윤계상보다 9살이 많고, 그 시절 god 소녀팬들이 나이가 많아봤자 윤계상보다 겨우 4,5살 어렸음을 생각해보자. 그쯤 되면 거의 막내삼촌 뻘이다. [13] IMF시절이다. 박준형과 비슷한 처지였던 청년들이 줄줄이 젊은 나이에 해고되었던 시절이다. 거기에 당시 연예계도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 서태지 이후 계약관행 개선과 함께 혹사,분배,가혹한 훈련등 연예인들도 인권이 있다는 문제의식이 대두되던 시절이다. 박준형의 32살 인터뷰는 이미 수년간 누적된 연예인의 기본권 보장에 대한 인식전환점이 된 사회적으로도 의미가 있는 사건이 된 것이다. [14] 그나마도 후렴구에서도 단 두 줄만 부르고 나머지 두 줄은 코러스가 부른다. [15] 그랜드슬램 기록으로는 1994년의 김건모, 1998년의 H.O.T. 이후 역대 세 번째 기록이며 트리플 크라운 기록으로는 1994년의 김건모, 1998년의 H.O.T., 2000년의 조성모에 이어 역대 네 번째 기록이다. 이후 그랜드슬램과 트리플 크라운은 2005년의 김종국이 마지막으로 기록하였다. [16] 아이돌 그룹으로서는 1997년의 H.O.T. 이후 두 번째 수상 기록이다. [17] 단 엠넷 뮤직비디오 페스티벌 최고 인기 뮤직비디오상은 길이 아니라 작년 11월에 발표한 거짓말로 수상하였다. [18] 아쉽게도 2001년 서울가요대상 대상은 수상하지 못하였는데 이 때 대상은 미안해요를 히트시킨 김건모가 차지하였다. [19] 사실 윤계상은 원래 락커 지망생이었고 오디션때 락을 불렀다고 한다. 정확히는 에메랄드 캐슬의 발걸음. 하지만 그걸 듣고난 사장님이 "어, 너 괜찮다. 당장 내일부터 춤이랑 랩 배워"라고 하여 락커의 꿈이 그대로 좌절당하고 god에 합류하게 된것이다. [20] 사실 초창기 김태우를 제외한 4명은 싸이더스 소속이었으나 박진영이 프로듀서로 합류하고 소속 연습생인 김태우를 넣으면서 GOD가 된거고 당시만해도 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손호영과 박준형이 JYP로 옮겨버리면서 싸이더스와 JYP의 갈등이 시작된걸로 추정된다. [21] 소속사에서 멤버들의 대화를 단절 시켰고, 윤계상이 영장이 나오면서 본인 스스로 짊어지고 탈퇴를 한것이다. [22] 손호영의 아버지는 어린 시절 호영과 누나 정민을 데리고 어머니와 이혼한 후에 정미애와 재혼했는데 이후 다시 이혼했다. [23] 가사 중에 하늘 속으로 모두 띄워보내요 우리 함께한 시간 추억들 푸른 빛에 물들게 / 시간이 흘러 하늘을 볼 때마다 생각이 나겠죠 얼마나 소중했었는지 행복했었는지라는 가사가 있었을 정도. 이쯤되면 빼박 해체라고 봐도 무방한 분위기였다. [24] 같은 날 반박기사도 나왔다. 하지만 사실무근이라는 게 아니라 '논의 중이며 시기가 확정된 것은 아니다'라는 식의 반박인 것으로 보아 실제로 얘기가 오간 것은 사실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25] 사실 기사가 올라오기 전, 당일 오전 JTBC에서 15주년 콘서트 홍보영상이 뜻하지 않게 먼저 방송을 타면서 컴백이 급물살을 탔다. 덕분에 god팬들은 방송이 나오고 기사가 뜨기 전의 반나절을 혼돈의 카오스 속에서 보내게 된다. [26] 이후 6년만에 아이유가 두 번째 단독 게스트로 초청되었다. 흥미롭게도 아이유는 fangod으로 유명하다. [27] 방송중에 부른 어머님께가 표절곡이라 저작권이 투팍측에 넘어가서 그런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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