Т-72 «Урал» | ||||
파생형 | 실전 | 운용국 | 미디어 | 평가 |
1. 개요
T-72의 실전 기록들을 정리한 문서이다.T-72는 아프카니스탄 전쟁에는 투입되지 않았다. 몇몇 실험용 프로토타입이 테스트를 위해서 아프가니스탄으로 보냈지만 역시 실전 투입 기록은 없다.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개전 시점에서 T-72는 아직 양산 초기였고 T-64는 워낙에 낮은 신뢰성을 가진지라 당연히 아프가니스탄에 투입되지 못했다. 결국 아프가니스탄에서 실전 투입된 전차는 이미 구식화된 T-55와 T-62 뿐이었다. 그리고 이후에는 굳이 고성능 전차가 필요한 일이 적어지면서 T-64도 T-72도 T-80도 투입되지 않았다. 하지만 T-72는 레바논 내전을 시작으로 1980년대의 이란-이라크 전쟁, 1991년의 걸프 전쟁, 냉전이 끝난 이후에는 유고슬라비아 전쟁과 소련 붕괴 중 각 공화국에서 발생한 내란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었으며, 최근에는 리비아 내전과 시리아 내전에 등장하였다.
동부 우크라이나 위기에서는 러시아군의 지원을 받은 친러 반군을 통해서 최신형 T-72B3가 투입되었다.
2. 이란-이라크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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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이라크 전쟁 당시의 이라크 공화국 수비대 소속 T-72 우랄 |
이로 인해 이라크군은 T-72의 성능을 지나치게 과신하였고, 수입도 모자라서 심지어 1989년에는 자국 내에서 T-72를 조립하기로 하였다. 이렇게 이라크 내에서 조립된 형식이 '바빌론의 사자(아사드 바빌)'이다. 일부에서는 단순 조립뿐 만 아니라 전반적인 제조까지도 이라크가 자체적으로 진행했다는 말도 있다.
3. 레바논 내전
1982년 레바논 내전에 이스라엘군이 다시 개입하여, 시리아군의 T-72 전차와 이스라엘군의 M60 전차가 맞붙게 되었다. 시리아군 주장에 따르면 이스라엘군보다 우세한 성능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당시에 이스라엘에서 운용하던 메르카바 전차와 교전하여 패배하였다. 추가로 AH-1 코브라 공격헬기와 BGM-71 TOW 탑재 지프에게 9대가 당했다고 한다.그래도 당시 시리아 대통령 하페즈 알아사드는 T-72를 "세계 최고의 전차"로 칭송하였다.
4. 스리랑카 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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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 내전 당시의 인도 평화유지군 소속 T-72 |
5.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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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 당시의 소련 육군 소속 IMR-2 |
6. 1989년 루마니아 민중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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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72에 올라탄 반차우셰스쿠 시위대, 1989년 12월 22일 루마니아 부쿠레슈티 |
7. 걸프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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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이라크 공화국 수비대 소속 T-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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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파된 이라크 공화국 수비대 소속 T-72M1 |
이렇게 T-72를 위협적으로 본 미군은 걸프전에서 무려 1800대나 되는 에이브람스 전차를 배치하였고[2] 여기에 챌린저 1 Mk.III ODS, AMX-30B2, C1 아리에테, M-84 같은 동맹국들의 최신예 전차들도 이라크군과 싸우기 위해 배치되었다.
반면 이에 맞서야 하는 이라크군의 T-72 계열 전차는 고작 500대[3]였고, 이 중에서도 쿠웨이트에 배치된 것은 300대 수준이었으며 그나마 연합군 전차에 대충 1:1 수준의 물량이라도 맞출 수 있는 양적 주력은 중국제 69식 전차였는데 당시 이라크군은 대포밥 전술이랍시고 2선급 전차인 T-55나 59/69식 따위를 앞세워 적의 전력과 보급을 소모시키고 1선급인 T-72가 나선다는 개념을 사용했으나 애초에 성능을 떠나 물량에서도 주력전차급 물량에서 1:1이나 겨우 맞추는 수준에서 한번에 밀려 들어오는 연합군을 상대로 그나마의 전력도 분산 배치된 상태였으니 이런 전술이 먹힐 수가 없었다. 여기에 이 전술의 핵심이 되어야 할 T-72라는 것들도 이라크에 수출된 형식인 T-72M/M1은 당시 소련군의 최신형 T-72B 89년형 계열에 비하면 적게 잡아도 2~3단계 구형인 사양으로[4], T-72A 초기형의 사통에 1973년형 T-72 우랄과 비슷하거나 그보다 약간 높은 수준의 방어력을 가졌으며 그 외에는 딱히 업그레이드가 된 것도 없는 구식 사양이었다.[5] 여기에 T-72M1을 라이센스 생산하던 바르샤바 조약기구의 체코슬로바키아나 폴란드 같은 국가들도 T-72M은 물론이고 조금 더 개량된 T-72M1 역시 NATO의 레오파르트 2나 M1 전차에게 상대가 되지 않는 구식 전차가 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상태로, 1989년 소련이 바르샤바 조약기구 회원국에 수출형 T-72B 라이센스 생산권을 제공하지 않기로 결정하자 그대로 구식 T-72M1을 그대로 사용할 수가 없어서 자체적인 현대화 개량형들을 개발하고 있던 상황이었고 이후 PT-91로 발전하는 T-72M2 Wilk 같은 전차는 이미 기술검증용시제품의 개발은 물론이고 평가까지 완전히 끝난 시점이었다. 결국 이라크군의 T-72M/M1들은 걸프전 시점인 1991년에는 이미 구식화된 상태로서, 미국의 최신형 전차이자 전장에서 마주쳤던 M1A1 HA는커녕 그 이전 세대 전차에도 우위는 커녕 훨씬 밀리는 성능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소련이 수출을 허용한 최고의 날탄도, M60은 어떻게 때려도 한 큐에 보낼 수 있고 M1이나 레오파르트 2같은 신형 전차의 초기형도 어느정도 상대가 가능한 3BM42 날탄[6]이 아닌 70년대 초반에 실전 배치된 3VBM7/3BM15/3BM16인데, 이 탄은 관통력이 2000m 거리에서 310mm~400mm 정도로 T-62 전차의 115mm 활강포와 별 차이가 없거나 약간 높은 수준에 불과한 위력이었으며 2km에서 250mm도 될동 말동한 구형탄까지 쓰고 있었다. HEAT의 관통력은 450mm까지 나왔지만 M60A1 RISE는 ERA로 도배를 하고 있었고 M1에게는 무효했다.[7] 결국 이라크군의 T-72는 근접거리에서도 M1A1 전차의 전면 장갑을 관통하지 못했고[8],야간전은 꿈도 못 꿨다.
그렇다고 이라크군의 훈련도가 높았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이라크군이었고 상대인 미군은 당시 소련을 비롯한 바르샤바 조약기구의 침공 대비 훈련을 받아서 독기가 상당히 오른상태였으니 제대로 된 전력이 될 리가 없었다. 이 때문에 당시 미군 M1A1 전차들은 이라크군에 피탄된 것보다 아군의 오인사격으로 격파된 게 더 많았다. 거기다가 특수한 예이긴 하지만 미군의 IFV인 브래들리, 프랑스군과 영국군의 IFV인 AMX-10P, FV510 워리어 나 2세대 전차인 프랑스군과 카타르군의 AMX-30, 미 해병대의 M60A1 RISE(P)나 프랑스군의 정찰 장갑차/경전차들인 AMX-10RC나 ERC-90에게도 격파당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장비의 통일성도 문제였다. 위에 언급했듯이 이라크의 T-72들은 소련의 수출모델, 동유럽 모델, 자체 제작 모델이 뒤죽박죽으로 섞여 있었는데, 이것도 굉장히 관대하게 분류한 거다. 실제로 뜯어보니 벨기에산 장비를 사용하는 T-72가 있었을 정도로 장비 통일성이 개판이었다. 이는 이라크가 무역제재를 당하면서 더욱 심해졌고, 이에 따라 T-72들을 더 유지하고 생산하기 위해 닥치는대로 아무 장비나 껴다 박기도 하였다. 당연히 그에 따라 정비도 엉망이었으며, 이를 운용하는 병사들도 잘 싸울 수가 없었다.
종합하면 전선에 배치된 물량부터 애초에 300대 vs 1800대로 T-72가 M1A1 HA에 비해 크게 열세했는데 성능마저 크게 떨어졌고 여기에 미 공군과 다국적군 공군이 이라크군 전차 전력을 우선적으로 박살내고 나니 허접한 이라크군 전차병들에게 남은 결과는 학살 뿐. 걸프전에서 T-72M/M1/아사드 바빌은 3세대 전차인 M1A1 HA와 챌린저 1, 2세대 전차인 M60A1 RISE, AMX-30B/B2에 거의 아무런 피해를 주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파괴당하게 되었고 공산권 위성국가들도 자신들이 운용중인 T-72M1이 M1A1 HA 에이브람스보다 훨씬 약한 전차라는 것을 머리로는 이미 알고 이에 대응하여 개량형들을 개발중에 있었으나 실전에서 이 정도로 절대적인 열세를 보일 줄은 몰랐기에 커다란 충격을 받게 되었다.
걸프전에서 T-72M/M1/아사드 바빌의 한심한 전과는 T-72M1보다 훨씬 개량된 전차를 운용하고 있던[9] 소련에게도 당연히 큰 충격이었으며 걸프전에서의 악평 이후 우랄열차공장은 89년에 개발된 Object 188, 즉 T-72BU의 이름을 아예 T-90이라고 바꿔버린다.[10] 80년대 말 소련은 T-80U, T-64B 계열을 동독 전차사단에 배치하여 나토 전차와 방어선을 돌파할 질적 주력전차로 삼고서 T-72B를 그 뒤를 이어 물량으로 압도할 범용 주력전차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우크라이나 하리코프의 T-64는 일단은 계보가 크게 다르지 않은 T-80 계열로 통합되었지만 80년대 중후반부터 가스터빈 전차에 대한 부정적인 연구가 나오기 시작하며 T-80U에 대한 러시아군의 반응이 좋지 않자 하리코프는 원래 뽑으라고 명령이 내려온 T-80U는 소수만 생산하고 자사의 디젤 엔진을 장착한 T-80UD를 개발/생산하기 시작했으며 이후 소련이 통합전차로 이 전차와 T-72B를 T-80U급 사양으로 업그레이드한 T-72BU 중 하나를 골라야 하는 상황이 왔고, 차기 통합전차로 T-72BU가 거의 확정적인 상황에서 소비에트 연방이 붕괴하며 우크라이나가 떨어져나가자 하리코프 역시 러시아어인들이 러시아어쓰는 남의 나라 지역이 되어 T-80UD은 자연스럽게 퇴출, T-72BU는 방어력 개선을 요구받아 쉬토라 APS와 다른 사소한 개량을 받은 뒤 T-90이 되어서 러시아의 단일 주력 전차로 양산되게 된다.
8. 유고슬라비아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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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고슬라비아 전쟁 당시 사라예보에서의 우크라이나 유엔평화유지군 소속 T-72B, 1996년 |
9. UNOSOM 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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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OSOM II 당시의 인도 유엔평화유지군 소속 T-72A |
10. 제1차 체첸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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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파당한 T-72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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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폐물로써 사용중인 T-72A와 T-72B obr.1989 |
11. 제2차 체첸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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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격중인 러시아 육군 소속 T-72B |
12. 남오세티야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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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오세티야 전쟁 당시의 조지아 육군 소속 T-72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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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파된 조지아 육군 소속 T-72 SIM-1 |
13. 제1차 리비아 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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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리비아 내전 당시의 리비아 정부군 제32여단 소속 T-72M1 |
14. 시리아 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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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의 T-72 |
15. 돈바스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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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바스 전쟁 당시 격파된 러시아군 제6전차여단 소속 T-72B3의 포탑 |
기존의 동급 125mm 구형 차량들끼리의 교전에서 1:1 수준의 교전비가 나오던 상황에서 현대화된 T-72는 구형 125mm 차량과 3:1 수준의 교전비가 나왔다는 논문자료가 나왔다.
서방 측이 러시아의 개입을 확신한 계기중 하나가 바로 T-72B3가 투입된 뒤다. 그 이전까지 러시아 정부는 의용군 위주로 우크라이나에 보낸 건 맞지만 자발적으로 간 것이라 자신들과 무관하다고 주장했고, 우크라이나군과 러시아군의 장비가 중첩되는 게 많기에 서방 국가도 100% 확신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러시아 정규군이 운용하고 다른 데 수출한 적이 전혀 없는 T-72B3가 투입된 것을 보고는 러시아군의 개입을 확신하게 된 것이다.
16. 2016년 나고르노-카라바흐 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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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나고르노-카라바흐 분쟁 당시의 아르차흐 공화국 방위군 소속 T-72A |
17. 2020년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
양측 모두 T-72B를 주력전차로 사용하였으며, 서로의 항공 폭탄에 격파되는 중, 탄약고가 유폭해서 불을 뿜는 T-72도 있었다. 불타는 아제르바이잔군 소속 T-72B, 유도폭탄 시점에서 본 영상18.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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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육군 소속 T-72B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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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육군 소속 T-72B |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에 이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양측 모두가 T-72를 투입하였으며, 2024년 4월 기준 우크라이나는 234대를, 러시아는 1423대를 손실하였다. # 이 때문에 T-72가 T-72를 포격으로 격파하는 영상이 찍히기도 했다.[11]
T-72A/B형이 손실이 T-72 손실의 상당수를 차지하는데 중앙아시아 방면 부대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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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군의 공격으로 완파된 러시아 육군 소속 T-72B3 |
BTR-4에게 시가전에서 측면을 통해 격파당했다.[12]
포탑의 방어력 한계를 드러냈다. 7월말 우크라이나군의 대전차무기에 가장 단단한 포탑 정면이 관통당한 사진이 돌기도 했다. #
러시아군이 침공 시기를 잘못 잡은 탓에 침공 초기에 라스푸티차로 T-72의 운용이 힘들어졌는데 라스푸티차 때문에 생겨난 거대한 진흙밭에 빠져서 기동이 힘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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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72B3M을 저지하는 우크라이나 시민 |
우크라이나군은 전차 수량이 부족하다는 약점을 안고 있으므로, 체코제 T-72M1과 폴란드의 비축장비인 T-72M1R, PT-91 트바르디 100여대를 공여받았다. 이후 폴란드는 자국 전차전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PT-91 트바르디, T-72M1R로 대표되는 T-72M 계열 개량형들을 통째로 우크라이나에 넘기고 빈 자리를 M1 에이브람스와 K-2PL들로 대체하고 있다.
러시아군의 T-72B3가 포발사 대전차 미사일로 M1A1 SA 에이브람스의 측면을 노려 격파하기도 했다. # # #
실전에서의 평가는 다소 엇갈린다. # #가 부정적으로 보는 쪽은 T-72의 전투 생존성 부족을 지적하고 있고, 긍정적으로 보는 쪽은 T-72의 뛰어난 가성비에 주목하고 있다.
상반된 평가와 별개로 방산 비리로 T-14 양산에 실패한 러시아는 전쟁 시작부터 쭈욱 T-72가 주력이고 원래 T-64 계열이 주력이었던 우크라이나는 오랜 소모전으로 T-64들이 대거 소진되어 구 공산권 국가들의 지원한 T-72와 노획 T-72를 다수 운용하게 되면서 언제 끝날지모를 동족상잔을 벌이고 있다.
19. 2022년 키르기스스탄-타지키스탄 국경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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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지키스탄 육군 소속 T-72B |
[1]
걸프전 기간 동안 미군 아파치의 오인사격으로 헬파이어 미사일을 맞은 사례가 4번 있는데, 4번 다 전면장갑이 방호해 냈다. 때문에 당시 헬파이어 미사일의 관통력인 CE 1200mm를 넘는 수준일 것으로 여겨진다. 다만 정면이 막아내서 완파가 되지 않았다는 말이지 헬파이어에 면역은 아니었기 때문에 죄다 기동불능에 빠졌다.
[2]
소수 정예인듯한 미군의 이미지 때문에 잘 매치가 되지 않는 사실이지만 M1 에이브람스는 신규 생산형 3세대 및 3.5세대 전차 중 가장 많은 숫자가 생산된 전차다. 그것도 그냥 많이 생산된 정도가 아니라 전 세계의 3/3.5세대 전차 신규 생산량의 거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한다. 사실 M1 에이브람스의 원래 개발 이념도 MBT-70 같이 최첨단 기술을 적용하여 비싸고 강력한 전차를 만드는 대신 적절한 기술/가격으로 뽑을 수 있는 적당한 전차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3]
당시 미국 언론들은 이라크군 T-72가 4천대니 2천대니 하며 떠들어댔고 지금 현재도 여러 블로그 등지에서 당시 이라크군 T-72가 1천대였니 2천대였니 하는 글들이 있으나 실제 당시 이라크군의 T-72는 500대 수준이었는데 89년도 아머지 11~12월호의 자료를 볼 수 있듯 당시 미군도 언론들의 호들갑과는 반대로 이라크군의 T-72가 고작 500대인 것을 알고 있었고 냉전이 끝나고 공개된 동구권쪽 자료들에서도 동구권 국가들이 이라크에 수출한 T-72를 합쳐보면 총 500대 수준이었기에 이 500대라는 것은 실질적으로 검증된 상태다. 물론 예외적으로 이라크 내에서 생산된 아사드 바빌이 있지만 아사드 바빌은 그 정의부터가 이라크에서 수입한 원래 부품들을 조립 생산한 차량인지, 나름대로 여러 부품들을 모아서 신규 생산한 차량인지, 단순히 이라크에서 개조한 T-72인지 아니면 그냥 이라크군 T-72면 다 아사드 바빌인지 불분명하며 자체적인 생산 차량으로만 치자면 89년부터 90년의 짧은 시기에 이라크에 대한 무기 수출 금지까지 떨어진 상태였기에 많은 수가 나올 수 없다.
[4]
T-72B 89년형이면 M1A1 HA보다 세다는 주장이 아님을 주의.
[5]
T-72M은 T-72A의 차체에 기본형 T-72의 포탑을 얹고 사통을 개량한 수준이며 T-72M1은 포탑도 개량되어 러시아군의 T-72A 초기형과 거의 대등한 수준은 되었다. 그러나 그 T-72A 초기형급 사양도 당시 최신 양산형 T-72인 T-72B 89년형 계열과 비교하면 크게 뒤떨어지는 성능이었다. M1으로 치면 열화우라늄 장갑재도 없는 기본형 M1A1 vs M1A2 SEP 수준의 차이라고 볼 수도 있다.
[6]
2km에서 80% 보증 관통력이 450mm급으로 국군의 T-80U도 이 탄을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T-80U는 알려진 것 처럼 방어력과 기동성에서 K1보다 우세했으며 화력에서도 105mm 날탄을 사용하고 있었던 K1의 105mm포를 능가하는 위력과 관통력, 자동장전 등 뛰어난 성능을 보여주어 국군이 K1A1 배치에 박차를 가하는 계기가 되었다.
[7]
소련도 미국과 얼추 비슷한 시기에 열화우라늄탄, 장갑의 개발에는 성공했고 Object 187 같은 차량에서 신형 포와 세트로 써보기도 했는데 이때가 소련경제가 한참 안좋을 때였다. 자국내에서도 숫자가 많지 않았고 심지어 망고탄도 수출을 안하는 상태에서 이런 신형 포탄과 포의 수출은 엄두도 못냈다.
[8]
다만 걸프전에서 M1이 T-72에게 손실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고(3대 손실이 있긴 있었다) 흔히 말하는 허벌창 즉. 포탑링을 맞춰서 기동불능으로 만든 경우나 후방에서 엔진이나 탄약고를 맞아서 격파된 적은 있다.
[9]
소련 역시 T-72M1보다 확실히 더 개선된 전차들을 운용하던 것은 NATO와의 전면전에 대비하고 있던 최전방 1선과 그 뒤를 이어 유럽을 몰아칠 1.5선급 부대 뿐이었다. 그보다 더 후방의 2선급 전차로는 T-72M1과 비슷하거나 조금 더 나을 뿐인 초기형/개량형 T-72A나 기능적으로는 T-72M1보다 우세한 부분도 있으나 하드웨어 스펙에서는 부족한 T-55M/62M 계열을 운용하고 있었다. 후방의 T-72A들도 교범상으로는
콘탁트-1를 장착하는 개수를 받을 수 있었으나 실제로는 후방까지 보급되는 콘탁트-1은 거의 없었고 콘탁트 1을 사용하는 T-72AV와 중기형까지의 T-72B는 콘탁트-1이 나름대로 보급된 전방에서도 물량의 부족으로 부대마다, 심하게는 차량마다 다르게 부착되어 있었다.
[10]
T-90으로 이름이 바뀌기 전에 임시로 T-88이란 이름을 가지기도 했다.
[11]
격파하는 쪽이 러시아 육군의 T-72B3, 격파되는 쪽은 우크라이나 육군의 T-72M이다.
[12]
사실 이 경우는 측후면 장갑이 다 얇은 현대 전차들의 숙명이긴 하다. 해당 격파영상의 열상조준경 화면에선 탄종이 고폭탄으로 세팅되어있긴 했지만 30mm 분리철갑탄 혹은 날개안정식 분리철갑탄이 기관포 탄띠 사이에 끼워져 섞여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