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9 13:04:03

제인스 어딕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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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10px -10px" <tablealign=center><table bordercolor=#000> 파일:jane's addiction logo.png 제인스 어딕션
Jane's Addi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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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Jane's addiction2.png
▲ 왼쪽부터 : 스티븐 퍼킨스, 에릭 에이버리, 페리 패럴, 데이브 나바로
<colbgcolor=#000><colcolor=#fff>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
결성
1985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데뷔 1987년, 앨범 'Jane's Addiction'[1]
해체 1991년
재결성 2001년 ~ 2004년[2]
2008년 ~ 현재[3][4]
데뷔 앨범 [5]
멤버
페리 패럴 ( 보컬)
데이브 나바로 ( 기타)
에릭 에이버리 ( 베이스 기타)
스티븐 퍼킨스 ( 드럼)
장르 얼터너티브 록, 얼터너티브 메탈

1. 개요2. 상세3.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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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85년에 결성된 얼터너티브 록 밴드.

2. 상세

1985년, 포스트 펑크 밴드 Psi Com의 보컬이었던 페리 패럴[6]의 주도로 당시 LA 인디씬의 실력파 뮤지션들이 모여서[7]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락음악을 하는 밴드를 만들자"는 모토하에 결성되었다.

밴드 멤버들의 포부에 걸맞게 1988년 8월 23일, 여성 샴쌍둥이 누드 조각상을 표지로 내걸어 발매한 밴드의 데뷔 앨범 <Nothing's Shocking>은 미국 락, 메탈 씬에 일대 충격을 주었다.[8] 이들의 등장은 90년대에 메탈이 쇠퇴하고 너바나를 위시한 그런지 얼터너티브 록이 등장할 것임을 미리 예견하는 하나의 사건이었다.

하지만 밴드 멤버들의 헤로인 중독 문제와 인세 문제로 인한 다툼[9] 때문에 제인스 어딕션은 1990년 8월 21일 2집 앨범 <Ritual de lo Habitual>[10]을 발표한 뒤 1991년 고별 투어를 마지막으로 해체되었다. 2집 앨범은 스래시 메탈, 펑크 록, 훵크(Funk), 재즈 등 다양한 요소들이 혼합된 얼터너티브 록 사운드를 선보였으며 플래티넘을 차지하는 등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1991년 고별 투어 당시 제인스 어딕션은 흑인 메탈 밴드 리빙 컬러(Living Colour), 영국의 ‘고딕 여왕’ 수지 수(Siouxsie), 갱스터 래퍼 아이스 T(Ice-T), 하드코어 펑크의 대부 헨리 롤린스(Henry Rollins) 등 국적과 인종, 장르를 가리지 않고 여러 뮤지션들과 합동으로 투어를 돌았고 페리 패럴은 제인스 어딕션의 해체 후 이를 발전시켜 롤라팔루자 락 페스티벌을 런칭하였다. 롤라팔루자는 젊은이들과 평단의 전폭적인 지지를 등에 업으며 단발성으로 그치지 않고 매 해마다 열리는 최고의 록 페스티벌로 자리 매김 하기에 이르렀다. 여담으로 2022년에는 방탄소년단의 제이홉이 헤드라이너로 서기도 했다.

제인스 어딕션이 해체된 후 페리 패럴과 스티븐 퍼킨스는 Porno for Pyros라는 밴드를 결성했고, 에릭 에이버리와 데이브 나바로는 Deconstruction이라는 밴드를 결성했다. Deconstruction이 해체되자 에릭 에이버리는 Polar Bear라는 밴드를 결성했고, 데이브 나바로는 레드 핫 칠리 페퍼스에서 활동했다. 이후 에릭 에이버리는 Garbage의 베이시스트로 활동했으며, 솔로 앨범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3. 여담

  • 레드 핫 칠리 페퍼스와 굉장히 친한 밴드다. 존 프루시안테가 레드 핫 칠리 페퍼스에서 탈퇴하자 데이브 나바로가 레드 핫 칠리 페퍼스에 가입해서 활동하기도 했으며 제인스 어딕션이 1997년에 이벤트성으로 잠깐 재결성했을 때 플리가 베이시스트로서 이들의 공연에 참여하였다. 2002년에는 두 밴드가 같이 내한 공연을 오기도 했다. 다만, 한국에 그리 알려지지 않은 밴드여서 그런지 티켓 판매량은 저조했다.[11] 또한 존 프루시안테의 두 번째 RHCP 재합류 전까지 기타를 맡았던 조쉬 클링호퍼가 2022년 이후 제인스 어딕션의 몇몇 라이브 공연에서 메인 기타를 맡기도 했다.
    • 다만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앤서니 키디스와 데이브 나바로 사이에 갈등이 생기며 데이브 나바로가 탈퇴하고 결국 존 프루시안테가 돌아오게 된다. 앤서니 키디스의 경우 절친이었던 힐렐 슬로박 헤로인 중독으로 사망하자 마약에서 손을 완전히 뗐었는데, 앤서니를 다시 헤로인 중독자로 만들어 버린 장본인이 바로 데이브 나바로였다.[12] 문제는 앤서니의 헤로인 중독 증세가 나날이 심각해지면서 시작되었는데, 앤서니가 이렇게까지 심각하게 마약에 절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었던 데이브는 죄책감을 느끼며 앤서니를 구제해야겠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고, 앤서니를 몰래 속인 후 마약 재활시설에 반강제로 처넣어버린다. 덕분에 앤서니는 마약에서 다시 손을 떼게 되지만, 데이브에 대해 엄청난 배신감을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 데이브는 진심어린 사과를 하게 되어 화해를 하긴 한 상태. 그리고 존 프루시안테 경우 One Hot Minute 앨범에 대해 히트 곡만 몇 곡 들어봤을 뿐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이 때문에 제인스 어딕션에 반감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산 적이 있다.[13] 하지만 존 프루시안테가 2019년 재합류한 이후 베벌리 힐즈에서 나바로와 함께 라이브 공연을 함께하는 등의 행보를 보면 단순한 루머였거나 갈등이 봉합된 것으로 보인다.
  • 디페시 모드의 보컬 데이브 가안은 제인스 어딕션을 보고 자신이 10대 시절 펑크 밴드 댐드를 봤을 때 느꼈던 전율을 다시 느꼈다고 한다. 데이브가 이 밴드의 보컬리스트 페리 페럴을 동경해서 외모를 그런지 락커 스타일로 바뀌었다는 얘기가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두 번째 부인의 취향을 따른 것이라고 한다. 두 번째 부인이 머리 긴 남자를 좋아했다고. 이 여성은 원래 디페시 모드의 미국 홍보 담당자였는데, 제인스 어딕션 관련 업무도 담당하고 있어서 그에게 미국 얼터너티브 록을 소개했다. 문제는 그에게 헤로인까지 소개했다는 것.

[1] 워너 레코드와 계약하고 정규 앨범을 제작하기 직전, 밴드의 첫번째 레코드만큼은 인디 레코드로 내고 싶다는 멤버들의 생각 때문에 밴드의 라이브 실황에 오버더빙을 하여 급조한 앨범이다. [2] 에릭 에이버리는 참여하지 않았다. [3] 오리지널 멤버들이 모두 모인 실질적인 재결성. 다만, 에릭 에이버리는 2010년에 다시 밴드를 탈퇴했다가 2022년에 재가입했다. 2023년 현재 밴드는 오리지널 멤버로 5집을 작업 중이다. [4] 참고로 에릭 에이버리의 탈퇴 후 밴드에는 2001년 재결성에 참여한 베이시스트 크리스 채니가 다시 가입해서 활동하다가 에릭이 2022년에 밴드에 재가입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자 크리스가 밴드에서 해고당했다. 이 일 때문에 현재까지 페리 패럴과 크리스 채니와의 사이가 험악한 상태라고 한다. [5] 1988년 8월 23일 발매 [6] 본래는 드러머로 뮤지션 생활을 시작하였다가 Psi Com 시절부터 보컬리스트로 전향했다. [7] 데이브 나바로는 "자신과 페리 패럴은 어린 시절에 어머니를 비극적으로 잃은 과거를 갖고있었기 때문에 서로 깊은 유대감을 가질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8] 밴드의 1집을 프로듀스한 데이브 저든은 이들이 갖고 온 18곡의 데모를 듣고 전에 없던 새로운 음악에 충격을 받았고 자신이 이들의 데뷔 앨범 프로듀싱을 맡게 되자 "점프"하며 환호했다고 한다. 페리 패럴 역시 데이브 저든과 함께 일하게 되어 뛸 듯이 기뻤다고 한다. 페리 패럴은 브라이언 이노의 광팬이었는데, 데이브 저든이 브라이언 이노와 데이비드 번의 명반 My Life in the Bush of Ghosts의 엔지니어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9] 정규 1집을 제작할 무렵 보컬인 페리 패럴은 자신이 작사를 도맡아서 하고 작곡에도 일부 관여하기 때문에 혼자 인세의 50%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고 다른 밴드 멤버들은 당연히 반발했다. 프로듀서 데이브 저든은 어느 날 녹음실로 가보니 밴드 멤버들이 녹음실에 오지 않아서 기다리다가 페리 패럴에게 연락했더니 "밴드는 해체됐고 1집 앨범의 제작은 없던 일이 되었다."는 말을 들었다고. 당황한 워너 레코드 사는 긴급히 멤버들을 모아 인세에 대한 의견을 조율했고 결과적으로 페리 패럴의 주장이 채택되었다고 한다. 에릭 에이버리는 이 결정이 밴드에게 있어서 엄청난 파장을 몰고왔고 멤버들의 결속력이 붕괴되는 시초가 되었다고 회고했다. [10] 앨범 자켓이 논란이 되어 클린 버전이 유통되기도 했다. 앨범 커버는 Three Days라는 곡을 상징하는데 이 곡은 페리 패럴이 Casey Niccoli, Xiola Blue 라는 2명의 여성들과 3일 동안 마약을 동반한 쓰리썸을 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쓴 11분짜리 대곡이다. 두 여성은 당시 패리 패럴의 여자친구들이었는데 이 중 Xiola Blue는 1987년 6월, 헤로인 과다복용으로 18살의 나이에 요절했다. [11] 두 밴드를 메인으로 하고, 레이지본, 크라잉넛, YB까지 합하여 One Hot Day라는 이름의 록 페스티벌 형태로 공연이 이루어졌다. [12] 이 외에도 데이브 나바로는 스매싱 펌킨스의 드러머 지미 체임벌린에게 헤로인을 처음 권한 인물들 중 한 사람으로 알려져있다. # 훗날 지미 체임벌린은 "당시 나는 락스타가 된 후 무엇이든지 해도 상관없다는 자만심에 빠져있던 상태였고 아무 생각 없이 주위 사람들이 권한 헤로인을 투여하기 시작했다."고 회고했다. [13] 다만 존 프루시안테는 절친인 조쉬 클링호퍼가 활동하던 시기의 레드 핫 칠리 페퍼스 앨범 두 장 역시도 거의 듣지 않았고 아는 노래도 없다고 밝힌 적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