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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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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물질을 새기거나 깎는 예술
1.1. 개요1.2. 재질에 따른 분류1.3. 역사
1.3.1. 고대1.3.2. 중세1.3.3. 근세1.3.4. 근현대
1.4. 조각을 다루는 곳1.5. 종류1.6. 직업1.7. 도구1.8. 문화1.9. 항목이 있는 조각상
2. 물질의 파편
2.1. 조각을 활용한 경우2.2. 창작물에서
2.2.1. 조각이 스토리 진행에 영향을 주는 작품
3. 법률용어4. 내각을 조직함5. 짐승의 발톱과 뿔6. 조각달7. 창빈, 승민 듀엣곡8. 관련 문서

1. 물질을 새기거나 깎는 예술

1.1. 개요

/ Sculpture
조각05 (彫刻/雕刻) 「명사」 『미술』 「1」재료를 새기거나 깎아서 입체 형상을 만듦. 또는 그런 미술 분야. 주로 나무·돌·금속 따위로 만든다. ≒각06「2」·조전06(彫鐫).¶ 그는 회화보다는 조각에 소질이 있다. 「2」=조소01 (彫塑). 「참고 어휘」소조09(塑造), 조각하다/조각되다/조각적
- 표준국어대사전
그저 돌덩이를 멋지게 깎는 것이 아니야. 천국의 모습을 만드는 것이지.
- 미켈란젤로

조각이란 미술의 일종으로 좁게는 이런저런 물질을 새기거나 깎아 만드는 행위 또는 그 가공물을 뜻하며, 폭넓게는 '조각을 하는 주체'의 기준에서 어떠한 매체를 ' 가공'하는 행위, 가공된 물질 등의 전반적인 것을 지칭한다.

회화와 함께 그 기원을 확실히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래된 표현 기법이다. 선사 시대부터 '빌렌도르프의 비너스상'과 같은 작품이 존재했다.

인간에게 있어서 조각이란, 예술의 모든 시초가 그렇듯 모든 인간이 지구상에서 살아가면서 생애 한번쯤 시도해볼 수 있는 의미가 담기는 의도적인 창작 행위이다. 이러한 행위를 직업으로 삼아 살아가는 이들을 조각가라고 부른다.

'깎아내서' 원하는 모양을 만들어내는 행위다. 미술에서는 입체 표현 방법 중에서 금속이나 돌 같은 단단한 물체를 깎아내는 것만 조각으로 부르고 있다.[1] 반대로 찰흙처럼 부드러운 것을 붙여가면서 모양을 만드는 것은 소조라고 부르며, 조각과 소조를 합쳐서 함께 조소라고 부른다.

시대가 지날수록 조각가는 미켈란젤로 성 베드로 대성당을 지었을 때를 넘어서는, 더 확장된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1.2. 재질에 따른 분류

석상, 석재를 이용하여 만들어진 조각상이다.

동상 청동, 동 소재로 주물을 통해 캐스팅기법으로 만들어진 조각상이다. 니켈, 아연 등 다른 금속이 들어간 합금으로 만들기도 하나 주로 장식품 수준소품이고, 등신대 이상은 대개 청동 재질이다.

목각상은 나무, 목재를 깎아 만들어낸 조각상이다.

2000년대에는 3D프린터를 사용하여 만들기도 하는데, 재질도 플라스틱부터 금속, 콘크리트까지 다양해졌고 규모도 수십미터 크기까지 된다.

1.3. 역사

조각의 역사 또한 중요하고 매우 거대한 예술의 역사이기에 인간의 문명과 함께하며, 구체적인 사건들이 기록되어 오고 있으며, 사조에 대한 학습이 가능하다.

여러 재료로 만들어졌지만 나무는 쉽게 썩기 때문에 남아 있는 목재조각은 적다.

1.3.1. 고대

메소포타미아는 돌로도 조각을 했으나, 딱딱하게 굳은 커다란 점토로 조각을 많이 했다. 라마수상이 대표적이다.

고대 이집트는 주로 파라오와 고위층을 모델로 조각을 했기 때문에 굉장히 정형화된 조각상을 많이 만들었다. 그러나 아케나톤 시절의 대대적인 미술 개혁으로 섬세한 포즈와 모델의 얼굴 표정를 중시하게 되었다. 여담으로 고대 이집트 조각상만의 특징이 하나 있는데, 바로 조각상을 제작할 시점에 조각의 모델이 살아있으면 왼발 부분을 앞으로 나오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반대로 이미 죽은 이를 조각할 때는 두 발을 붙인 차렷 자세로 만들었다.

파일:d26f244477fd942edfad6648478b513f.jpg
상술한 두 문명의 조각 기술은 이후, 지중해를 건너서 조각 문화의 끝판왕인 고대 그리스에서 결실을 맺게 된다. 미켈란젤로가 경악에 가까운 감탄을 내뱉게 만든 라오콘상은 물론이고, 사모트라케의 니케상은 파손이 서서히 진행됨에도 그 아름다움을 잃지 않아 우리가 천사라고 부르는 것의 원형이 되었다.[2] 현대 조각가들도 이 시대에 정립된 기법을 그대로 쓰고 있을 정도로, 고대 그리스가 조각사에 끼친 영향은 무척 크다.

이후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 원정으로 그리스식 조각 기법이 유라시아 대륙 곳곳으로 퍼졌고, 특히 인도에서 변형된 간다라 양식은 멀리 극동까지 전해져 석굴암이란 걸작을 만들어냈다.

헬레니즘 문화를 이어받은 로마도 그리스처럼 조각에 열광했다. 로마 황제들은 광적으로 자신들의 조각상을 만드는데 집착했는데, 군주의 신격화를 위해서 무척이나 위엄 넘치게 만들었다. 물론 사실성을 중요시하던 헬레니즘 조각술의 후계답게 위엄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사실적으로 묘사하려 애썼고, 후술할 중세 조각의 특징 탓에 로마 황제는 과거의 인물일수록 그 생김새를 파악하기 쉬운 기현상이 발생했다.[3]

동양에서는 많은 불상이 조각으로 만들어졌는데, 한국사에서는 삼국시대 때에 많은 반가사유상 석탑들이 만들어졌다. 통일신라에서는 석굴암 본존불이 대표적이며, 불상 외에도 경주 장항리 서 오층석탑 금강역사 부조 등 불교와 관련된 상이나 무열왕릉 거북모양 능비, 성덕왕릉이나 김유신묘 십이지 조각상 등이 남아있다.

페트라 유적이나 이집트 스핑크스 같은 것은 암석을 깎아 만들었지만 수십 미터 크기로 거대하다. 조각품이면서 동시에 건축물. 아시아 여러 지역에는 절벽을 깎아 만든 종교적 조각상이 많다. 이스터 섬 모아이 석상도 유명하다.

1.3.2. 중세

파일:십자고상 우상.jpg
중세 유럽은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와 달리, 조각이란 표현 기법이 영 힘을 못 쓰던 때였다. 이는 기독교 이슬람교의 영향이 크다. 둘 다 우상 숭배를 금지했고, 우상 숭배의 주요 방식이었던 조각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때문에 조각상의 제작 빈도가 급격히 낮아졌고, 이는 조각가들의 질적 하락과 표현 기법의 단순화를 부르고 말았다.

그 기원은 고대였으나, 중세 시대에도 존속했던[4] 로마 제국의 조각상을 보면 이런 점이 두드러진다. 콘스탄티누스 1세의 조각상은 아우구스투스의 것에 비하면 미숙할지언정 그나마 옛 헬레니즘 시절의 정교한 양식을 보이나, 포카스의 조각상은 여러모로 이전 시기의 조각에 비해 표현이 많이 생략되었음을 알 수 있다. 심지어 전통 교회가 추진한 성상 파괴 운동으로 포카스 이후의 황제들은 조각상을 거의 남기지도 못했다.

그나마 기독교 중, 가톨릭은 조각에 마냥 부정적이지는 않아서[5] 십자고상 성상의 형태로 계속 이어나가게 했다.

대륙 너머 한반도 지역도 마찬가지로 조각의 기법 면에선 여러모로 고대 시절에서 퇴보를 면치 못했다. 특히 논산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은 국내 미술사학계에서 졸작이라고 폄하 받기도 했다.

유럽과 다르게 한반도는 기존 종교의 몰락이 아닌 번영으로 이렇게 된 케이스다. 불교가 고위층의 전유물이었던 삼국 시대와 달리, 한국사에서 중세에 해당하는 고려 시대에는 일반 민중에도 불교가 퍼져 융성했다. 이 여파로 불상 또한 대중화 되었는데, 문제는 일반 민중들은 돈이 없다는 것. 때문에 삼국시대에 쌓아 올린 고급 조각 기술을 자유롭게 쓸 수 없었고, 비용을 적게 들여 만들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다.[6] 그래도 파주 용미리 마애이불입상처럼 해당 지역 민중의 염원을 담아 만들다 보니, 독특한 지역색을 낼 수 있었다.

파일:800px-Banteay_Srei_Kala.jpg
유럽과 한반도의 조각가들이 죽을 쑤었던 것과는 별개로, 동시대[7] 크메르 제국의 조각가들은 역사상 길이 남을 걸작을 만들어냈다. 크메르 제국인들은 사암을 건축물의 재료로 애용했는데, 퇴적암인 사암은 대리석과 화강암에 비해 물러서 조각이 쉬웠다. 때문에 이들은 자신들만의 조각 문화를 발전시킬 수 있었고, 특히 벽을 깎아서 만든 부조 형식의 조각은 그 정교함에 훗날 정복자로 들어온 프랑스인들조차 입을 다물지 못하고 경외를 표해야만 했다.

1.3.3. 근세

르네상스.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8] 레오나르도 다 빈치[9]의 시대다.

이 시기의 조각가들은 그리스-로마 시절의 조각풍으로 돌아가고자 했다. 교회가 사회에 대한 영향권을 서서히 잃어감으로써[10], 그동안 기독교 사회에서 우상 숭배라고 멀리시 된 고대식 조각[11]이 유행하게 된 것이다. 때문에 메디치 가문을 비롯한 귀족들은 열성적으로 조각가들을 후원했으며, 시민들을 세금을 털어 자신들의 도시에 훌륭한 조각상을 하나라도 더 전시하고자 했다.

파일:프란체스코 케를로.jpg
이 시기의 조각품들은 제작자들이 그토록 동경했던 그리스 시대의 것과 비교했을 때, 질적으로 전혀 밀리지 않았다. 위 사진은 '프란체스코 케이롤로'라는 당시 조각가의 <환멸>이란 작품으로, 언뜻 조각상에 그물을 씌운 것으로 보이지만 저 그물도 조각의 일부다. 심지어 인물 부분과 통짜로 만들어졌다. 그리스-로마 시대에 이런 시도가 있었다는 것은 알려진 바가 없으며, 3D 프린터의 발명 이전에는 복제는 어림도 없었다.

대항해 시대가 열림으로써, 앞서 말한 동아시아의 불상과 크메르 제국을 비롯한 남아시아의 힌두교 석상이 서양에 소개된 시기이기도 했다.

1.3.4. 근현대

19세기에 오귀스트 로댕이 비로소 조각을 건축과 분리된 독립적인 미술로 승화시켰다.

20세기 들어와 초현실주의, 추상주의 예술이 조각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알베르토 자코메티, 콘스탄틴 브랑쿠시 등이 이 사조를 이끌었다.

1차 대전 당시의 몇몇 군인들이 참호 속에서 시간 때우기로[12] 전선에 굴러다니는 탄피나 쪼개진 나무 개머리판으로 여러 조각품을 만들었다. 총검으로 새기고, 미친듯이 두들겨서 만들었다고. 대부분 치열했던 전장에 휩쓸려 유실되었지만, 그만큼 희소성이 높아져서 살아남은 것들은 '트렌치 아트'란 이름으로 귀하게 거래되고 있다.

1.4. 조각을 다루는 곳

이러한 조각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을 연구하고 조각 예술품을 만드는 사람을 조각가라고 한다.

조각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정식적이고 학술적인 연구로서의 조각 공부는 미술대학의 조소과(Dept. of Sculpture)에서 전문적으로 다룬다.

1.5. 종류

1.6. 직업

1.7. 도구

1.8. 문화

1.9. 항목이 있는 조각상

2. 물질의 파편

Shard, Spall
한 물건에서 따로 떼어 내거나 떨어져 나온 작은 부분. 또는 그 단위. 같은 물건이 지만 조각을 내면 하나가 아닌 서로 다른 여럿이 된다.
1번 단어와 달리 이쪽은 고유어로, -내다의 동사형으로도 쓰인다.

화약이 등장한 이래로 셀 수 없이 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물질이기도 하다. 폭탄 자체의 폭발력도 사람을 많이 죽이나, 사람이 폭탄으로 인해 죽는 사인은 폭발 직격 뿐 아니라 그 폭발력으로 인해 부서져 날아간 다른 물질이 중요 부위에 수없이 박히며 관통상이나 출혈, 운 나쁠 경우엔 박힌 파편을 제때 뽑지 못해 염증이나 파상풍 등으로 사망하는 경우가 많다. 이 용도로는 거의 '파편'이라고만 쓰는 편. 수류탄부터 항공폭탄까지 여러 종류의 인마살상용 폭탄처럼 안에 작약이 들어 있는 것은 물론이고, 그냥 쇳덩이라도 충분히 고속으로 날릴 수 있다면 맞은 지점을 기점으로 파편이 사방팔방 튀는 것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마찬가지다. 전장에서 대부분의 사상자가 파편 때문에 생길 정도로 현대전에서 비중이 큰 공격 수단이며, 총탄은 거의 막지 못하는 '방탄'모를 쓰는 이유도 총알이 아니라 파편으로부터 머리를 보호하기 위함이다.

함포가 등장한 초기에는 포탄이라고 해도 화약이 없는 무거운 쇠공일 뿐이었지만 그것이 나무 선체를 뚫고 지나가면서 뿌려지는 뾰족한 나무파편도 살상 수단이었고, 현대까지 전차를 잡기 위해 쓰이는 철갑탄도 전차 내부에 피해를 입히는 수단은 장갑재가 파괴된 파편(스폴, Spall)과 관통자가 분쇄되며 뿌리는 파편이다.

냉전기부터는 기갑차량같은 군용 장비들이 포탄에 피격당할때 장갑이 깨지거나 관통되면서 만들어지는 파편 입자들이 내부 인원과 장비들에 피해를 줄이는걸 방지하기 위해 파편 방지대라는 보조적인 방호 장갑이 개발되었다.

2.1. 조각을 활용한 경우

2.2. 창작물에서

게임 등에서는 크리스탈이나 각종 광석의 조각이 나오며, 이를 모은 뒤 제련하는 과정이 있기도 하다. 노가다의 시작이다.

2.2.1. 조각이 스토리 진행에 영향을 주는 작품

조각을 모두 모으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작품들이 여럿 있는데, 그 작품은 다음과 같다.

3. 법률용어



'막힐 '+ '물리칠 '으로 '방해하거나 물리친다'는 의미이며, 한자로는 위와 같이 쓴다.

법률용어로 쓰이는 한자어로 실생활에서는 쓰이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나마 가장 널리 쓰이는 경우는 위법성조각사유라는 표현이며, 어떤 사람이 범죄에 해당하는 행동을 저질렀다고 하더라도, 그럴 만한 사유가 있으면 '위법성'이 인정되지 않아서 죄가 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대표적인 경우가 정당방위가 있는데, 상대방에게 중대한 상해를 가했다 하더라도(심지어 사망에 이르게 하였더라도)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는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다고 판단되면 죄가 되지 않는 것이다. 비슷하게 책임조각사유의 경우 형사미성년자· 심신장애 등 책임을 질 수 있는 대상이 아니기에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4. 내각을 조직함

組閣

집권당이 내각을 조직한다는 의미이다. 특히 비례대표제, 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는 국가에서는 국회에 다수의 정당이 진출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연립정부가 아니면 내각 구성이 거의 불가능하다. 심각할 경우 벨기에처럼 몇 년씩 국정공백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14]

5. 짐승의 발톱과 뿔

爪角

짐승의 발톱과 뿔이라는 뜻으로, 자신을 적으로부터 보호하여 주는 물건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6. 조각달

초승달 상현달 사이, 하현달 그믐달 사이에 나타나는 반달보다 얇지만 초승달이나 그믐달이라 부르기에는 두꺼운 달을 통틀어 말한다. 각각 음력 5일 전후, 음력 25일 전후로 나타난다. 시의 단골 소재이다. 2019년 4월 23일 러블리즈의 멤버 베이비소울은 이 이름으로 싱글 곡을 내기도 했다.

7. 창빈, 승민 듀엣곡

조각(창빈, 승민) 문서 참조.

8. 관련 문서



[1] 금속을 용접으로 붙여서 다양한 철조 작품을 만드는 것은 포함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이는 결국 용접할 금속을 깎는 행위를 해야 하기 때문에 이에 포함된다. [2] 원래 아브라함 계열 종교에서 묘사하는 천사는 날개달린 커다란 눈깔이거나(...), 머리만 둥둥 떠다니는 등, 현대인은 물론이고 고대인의 눈으로도 좀 아닌 외형이었다. [3] 당장 우리는 고구려의 시조인 동명성왕의 실제 얼굴을 모르지만, 동명성왕보다 더 과거의 인물인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얼굴과 신체 특징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4] 사실 존속했단 수준이 아니라, 중세 시대의 시작을 장식한 나라다. [5] 이는 이들의 주요 신자였던 게르만족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잘 믿지 않았던 탓이 크다. 이들은 기독교 전래 전까지 번개, , 까마귀 같은 실제로 접할 수 있는 걸 섬겼다. 반면에 정교회가 주류인 땅은 히브리인의 영향이 커서, 실체가 없는 신을 섬기게 하는 것이 수월했다. [6] 대신 이 시대 석조 불상들은 당시 기술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 최대한 크게 깎아 만들었다. [7] 다만 세계사에선 중세에 포함되지만, 캄보디아 사학계는 이 때를 고대로 여긴다. [8] 피에타상과 다비드상이 대표적이다. [9] 다만 다빈치는 직접 남긴 조각품이 없고, 인체 비례와 같은 조각의 필수 요소를 연구했다. [10] 물론 생각만큼 많이 잃지는 않았다. 여전히 교황의 권한과 권위는 막강했으며, 여전히 시민들은 기독교적 윤리관에 맞춰 살았다. 당장 미켈란젤로의 조각들도 죄다 성경 속 인물들을 묘사한 것이다. [11] 사실 대외적으로나 그렇지, 이전 시대의 조각상들을 선호했던 사제들은 종파 가리지 않고 있었다. [12] 살인이 일상인 전장에서 일말의 인간성을 유지하기 위한 몸부림이기도 했다. [13] 반대로 적들이 조각을 모으고 주인공은 이를 막는 역할이다. [14] 출처: 비정상회담, 줄리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