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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bson/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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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오빌 깁슨과 브랜드의 탄생3. 깁슨 일렉트릭 기타의 시작4. 테드 맥카티와 레스폴, ES-3355. Norlin Era 시기6. 헨리 저스키위츠 산하의 깁슨7. 파산과 부활

1. 개요

미국의 악기 브랜드인 깁슨의 역사를 정리해놓은 문서.

2. 오빌 깁슨과 브랜드의 탄생

파일:Orville_Gibson_Photo.jpg
오빌 깁슨
오빌 깁슨이 1900년경에 직접 제작한 만돌린.
영상에 따르면 현재까지 그가 직접 제작한 악기중 살아남은건 약 25개 정도이다.
1856년 출생인 오빌 깁슨(Orville H. Gibson, 1856년 5월 8일 ~ 1918년 8월 19일)[1]은 원래 미시간 주 칼라마주에 있는 구두방 직원이었다. 그는 구두를 만드는 것 이외에도 음악을 좋아하였으며, 특히 만돌린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만돌린의 소리를 개선하고자 개인적으로 많은 연구를 하였는데, 그 도중에 악기 제작에 재능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만돌린을 만들기 시작한다.

그는 유선형의 아치가 울림에 많은 도움이 된다는 점을 발견하였고, 기존의 만돌린은 뒷면만 아치형이고 상판은 평평한 것을 개선하여, 마치 바이올린과 같은 부류의 악기들처럼 앞판을 통판을 깎아서 아치형으로 볼록 튀어나오게 제작한 만돌린을 개발한다. 1898년 그는 이러한 자신의 디자인을 특허 출원하였고, 이후 1902년 Gibson Mandolin-Guitar Mfg. Co, Ltd.를 설립하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오빌 깁슨이 회사 자체를 경영한 건 아니고 회사를 설립하고 악기 개발에 조금씩 참여하며 도움과 피드백만 해줬다. 즉 오빌 깁슨은 깁슨 역사의 초기에만 연관된 사람이며 현재의 깁슨에게는 사실상 이름밖에 준것이 없다.

3. 깁슨 일렉트릭 기타의 시작

파일:Lloyd_Loar_with_Mandolin.webp
로이드 로어
1918년 오빌 깁슨이 죽고난 뒤인 1919년에 깁슨사는 연주가이자 악기 디자이너인 로이드 로어 (Lloyd Loar)를 고용한다. 그는 1922년, 이후 만돌린의 주 종류 중 하나가 되는 F-5 만돌린을 개발하였다.

F-5 만돌린이 발표된 같은 해인 1922년에, 로이드 로어는 당시의 팝 음악의 주류였던 블루그래스 음악에 있어서 스패니쉬 기타가 유행한다는 것을 반영하여, 일반적인 포크 기타의 앞뒤가 평평한 디자인에 깁슨 특유의 아치를 접목시킨 아치탑 어쿠스틱 기타인 L-5를 발표하였다.[2]

로어는 1924년 회사를 떠나고, 1930년대에 이르러 깁슨사는 이미 개발해놓은 아치탑 어쿠스틱 기타에 픽업을 부착하는 것에 관심을 갖게 된다. 1936년 깁슨은 자사 최초의 아치탑 할로우바디 일렉트릭 기타인 ES-150을 발매하고 이 때 깁슨의 할로우바디 일렉트릭 기타 라인인 ES(Electric Spanish) 시리즈가 확립된다.

하지만 제2차 세계 대전 때문에 깁슨사의 공장은 군용 목재품을 만드는 공장으로 전환되고, 1944년에는 Chicago Music이라는 회사로 매각되게 된다. 하지만 그들은 기타의 판매망을 관리했을 뿐 악기의 연구 개발에는 관여하지 않았다.

1949년에는 깁슨의 상징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하단부 컷어웨이를 적용하여 연주의 편의성을 올린 ES-175가 발표되었으며, 이는 풀사이즈 할로우 바디 기타의 기준점 중 하나가 되었고 많은 재즈 기타리스트들이 깁슨의 악기를 선택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4. 테드 맥카티와 레스폴, ES-335

1948년 깁슨사는 악기 전문가 테드 맥카티(Ted McCarty)[3]를 스카웃한다. 그는 단 2년 후인 1950년에는 깁슨의 사장 자리에 오르게 된다. 1952년 경쟁사인 펜더사에서 당시 최첨단 악기였던 텔레캐스터를 발표하자 테드 맥카티는 기타리스트 레스폴과 함께[4] 솔리드 바디 일렉트릭 기타를 개발하여, 현재까지도 대표적인 일렉트릭 기타로 위세를 떨치는 레스폴을 발매하기에 이른다.

처음 개발했을 때의 깁슨 레스폴에는 흔히들 솝바 픽업 (Soap Bar)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P-90 싱글 코일 픽업이 장착되었으나, 깁슨은 오랜 연구 끝에 1957년 험버커 픽업을 개발하여 이를 레스폴에 적용한다. 깁슨이 이를 특허권으로 보호하면서 독점 생산하던 개체들을 PAF(Patent Applied For) 픽업이라고 부르며, 강한 톤이 아닌 부드러운 톤으로 현재까지도 빈티지 성향 험버커 픽업의 가장 성공적인 제품군으로 자리잡았다. 당연히 1950년대 ~ 1960년대에 제작된 깁슨제 오리지널 PAF 픽업은 그 희소성 탓에 매우 비싸기 때문에 메인스트림급 거대 악기 브랜드부터 소규모 악기 공방에서까지 정말 별의 별 곳에서 복각품을 만들고 있다.[5]

1950년대 중반에는 이후 "세미할로우"로 불리게 되는 Thinline 시리즈를 발표한다. 본래 판매되던 풀 할로우 바디 일렉트릭 기타(ES 시리즈)가 일반적인 어쿠스틱 기타와 비슷한 크기의 바디를 가지고 있었는데, 테드 매카티는 이러한 풀 할로우 바디 아치탑 일렉트릭 기타의 단점인 고음량에서의 하울링 문제 등을 개선하고 연주성과 휴대성 등을 개선하기 위해 바디의 깊이를 만돌린수준으로 줄인 기타를 만들어 Thinline 시리즈로 판매한다. 최초의 모델은 ES-175와 비슷한 모양에 깊이를 줄인 "The Byrdland"였으며, 이것을 바탕으로 약간의 수정을 거쳐 양산형인 ES-350을 발매한다. 1958년에는 당시 유행하던 더블컷 디자인과 개발된지 얼마 안된 험버커 픽업을 적용시킨 전설적인 모델 ES-335를 발표하여 많은 퓨전, 기타리스트들에게 현재까지도 사랑받는 악기가 된다.

펜더에서 텔레캐스터의 후속작으로서 스트라토캐스터를 발표하고 이 모델이 엄청난 인기를 끌자 당시 깁슨사의 사장이었던 테드 맥카티는 깁슨의 혁신성을 보여주어야 한다며 Flying V Explorer와 같은 혁신적인 모델을 발매하지만 판매량이 수십 대에 그치는 등 처참한 판매량을 보여주면서 좌초 위기에 몰린다.[6]

이를 타개하기 위하여, 1961년 스트라토캐스터의 더블컷 디자인에 착안하여 깁슨에 본래 있던 "레스폴 스페셜 더블컷"모델에 주목하게 된다. 이를 바탕으로 SG를 발표하고 이후 상당한 인기를 얻으며 많은 유명 기타리스트들이 사용하는 기타가 된다. 또한 펜더의 아마추어용 악기들에 대항하기 위해 Explorer의 디자인을 부드럽게 다듬고 여러 추가적인 기술을 도입한 Firebird 1963년 발표하며 어느 정도의 성과를 얻게 된다.

깁슨은 이맘때 즈음 베이스 기타 사업에도 뛰어든다. 대표적으로 1963년 Firebird의 자매품으로 개발한 Thunderbird가 있다. 깁슨이 상대적으로 Fender에 비해 베이스는 잘 알려져 있지 않고 기타 모델들만 알려져 있지만, 베이스 역시 디자인이 독특하고[7] 소리도 강한 출력의 따뜻한 빈티지 톤이라 록 음악에 많이 사용된다.[8][9]

5. Norlin Era 시기

1966년, 사장이었던 테드 맥카티가 회사를 떠나고, 1970년부터 깁슨은 'Norlin Era'라고 부르는 시기로 접어든다. 당시 깁슨의 경영권을 가지고 있던 CMI(Chicago Musical Instruments Co,)가 ECL Corporation[10]이라는 회사에 인수당한 뒤, Norlin Corporation[11]이라는 이름으로 깁슨의 경영 및 제품 개발에 관여하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회사 경영진들의 요구로 깁슨은 Marauder, S-1과 같은 여러 신모델을 급하게 출시하게 되었고, 이 급조 모델들은 현재까지도 깁슨의 흑역사로 남아있다. 기존에 멀쩡하게 생산되던 모델들도 마감이나 완성도 면에서의 퀄리티 하락이 있었는데, 라이벌 회사인 Fender의 CBS Era를 떠올리게 만드는 부분이다.[12]

6. 헨리 저스키위츠 산하의 깁슨

파일:Henry_Juszkiewicz_with_Gibson_LP.jpg
헨리 저스키위츠
헨리 저스키위츠 (Henry Juszkiewicz)는 본래 하버드 대학교 비즈니스 스쿨을 졸업한 인텔리 출신으로, 이맘때 즈음 자신의 친구들과 인수할 회사를 알아보고 있던 중이었다. 그는 우연히 Norlin Corporation에서 1,500만 달러에 깁슨을 내놓았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고, 협상 끝에 1986년 1월, 제시가의 1/3 수준인 500만 달러에 깁슨을 인수하는 데 성공한다.

회사를 매입한 헨리 저스키위츠는 회사 인력을 감축하여 인건비 절감을 꾀하였고, Norlin Era 시기에 출시된 검증되지 않은 모델들을 전부 쳐낸 뒤, Les Paul, SG와 같이 Norlin Era 이전의 검증된 모델들만을 생산하도록 만들었다. 그와 동시에 품질검사를 통과하지 못한 모델들을 전부 폐기처분한다는 극강의 수를 통해 나락으로 떨어진 깁슨의 브랜드 이미지를 다시 원위치로 돌려놓으려 애썼고, 이 수가 제대로 맞아 떨어지며 최종적으로 Norlin Era를 극복하게 된다.

Norlin Era를 극복해낸 헨리 저스키위츠 시대의 깁슨은 자사 모델들의 고급화 전략 및 마케팅을 위해 기존에 리미티드 런으로 생산되던 모델들에 붙던 커스텀 샵이라는 이름을 정식적으로 자사의 고급 라인으로 출범시키고 Norlin Era 이전에 나온 검증된 모델들만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모델들도 어느정도 개발하는 등[13] 나름의 개혁을 거친다.

이후 깁슨은 약 20년에 걸쳐 여러 음향기기 회사들을 차례로 인수해가며 공격적인 사업 확장을 시도하는데, 이렇게 여러 회사들을 인수하여 함께 얻어낸 기술력을 바탕으로 신모델을 개발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전개한다. 당연히 이러한 공격적인 사업 확장은 회사가 온전히 감당할 수 있는 정도를 넘어선 수준이었고, 깁슨은 이런 무리한 사업확장에서 생기는 적자를 꾸준히 실적이 나와주던 전통적인 일렉트릭 기타 모델들의 매출로부터 메꾸게 된다. '오직 깁슨만이 만족스럽다'라는 캐치프레이즈에서 나오던 훌륭한 브랜드 이미지에 다시 금이 가기 시작하던 것이 대략 이 때부터다.
파일:gibson-firebird-x-redolution-2011-cons-full-front.jpg
2007년에 로봇 기타, 2009년에 다크파이어 시리즈를 발표한데에 이어 깁슨은 2010년 야심차게 파이어버드X를 발표한다.[14] 수많은 이펙터들과 편의기능들을 내장한 파이어버드X는 일렉트릭 기타 업계에 일대 혁명을 일으킬 정도로 혁신적인 모델이었지만, 시장의 반응은 차갑기 그지 없었으며 사람들은 이 기타를 깁슨 역사상 최악의 실패작이라고 평가하였다. 당시의 깁슨은 어지간히도 이 기타에 큰 기대와 확신을 걸었었는지 이 모델을 대량으로 만들어놨다가 판매량이 폭망하면서 그대로 어마어마한 양의 악성재고를 떠안게 되었으며, 결국 깁슨이 보관중이던 대부분의 파이어버드X 악성재고들은 CEO가 바뀐 2019년 중순에 전부 폐기처분된다.[15]

혁신적인 시도들과는 별개로, 2008년부터 깁슨은 그 전까지 잘 생산되던 레스폴의 사양을 크게 변경한다. 커스텀 샵을 제외한 모든 레스폴 모델들에 기존의 9개의 구멍을 뚫어 무게를 줄이던 트레디셔널 웨이트 릴리프 방식에서 바디 내부를 통째로 파내는 챔버드 웨이트 릴리프를 도입하였으며, 그나마 다행으로 2009년부터는 예전의 스탠다드를 대신하는 트레디셔널이라는 새로운 라인을 내놨다. 트레디셔널은 가난한 자의 히스토릭이라는 별명으로 그나마 깁슨의 개념 라인으로 자리를 지켰다. 레스폴의 웨이트 릴리프 이슈가 거세지자 깁슨은 2012년 봄부터 모든 레스폴 모델들에 개선된 모던 웨이트 릴리프를 도입한다.

2015년도는 특히나 깁슨이 유저들의 혹평을 심하게 받은 해이기도 한데, 정신나간 스펙 변화를 내놓으면서 예전의 위용을 전부 잃을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G-Force 자동 튜닝 시스템, 금속 제로프렛 너트 등 다양한 시도를 접목하였으나 하필이면 이 모든 변화를 스탠다드 라인 뿐만 아니라 트레디셔널 라인에까지 강제로 적용하면서 유저들의 원성을 샀다. 편리한 튜닝을 모토로 제작된 G-Force 튜너는 툭하면 고장나기 일수였고, 신형 너트는 마모에 약하다는 치명적인 단점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가격은 역대 깁슨 연식들 중 최고가를 갱신하였다. 오죽하면 2015년 중고 깁슨은 절대 사지 말라는 말까지 진지하게 나올 정도이다.

2015년도의 혹평을 이기지 못한 깁슨은 2016년 황급히 라인업을 개편하였으나 이번에도 꿋꿋이 트레디셔널 라인에까지 High Performance 스펙 모델(Traditional HP)을 포함시켜 내놓는 등 아직도 정신 못차렸다는 평가를 들었다.[16]

7. 파산과 부활

2018년 2월 20일 미국 CNBC방송에서 깁슨의 파산위기를 전했다. 장르의 사양세, CEO인 헨리 저스키위츠의 무리한 사업확장이 경영악화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결국 위태위태하게 유지되며 앞날이 불투명해진 깁슨은 2018년 5월 2일에 파산하였다.

2019년도 라인업 발표 이후인 2018년 10월 4일, CEO였던 헨리 저스키위츠가 사실상 경질되었다. Norlin Era를 극복한 주역이었으나, 사업 확장 및 밀어붙인 시리즈가 폭망하면서 파산 보호 신청으로 입지가 좁아졌고 채권자들에 의해 퇴출 되었다.

2018년 11월 1일부터 리바이스의 사장이였던 제임스 컬리그(James Curleigh))가 사장 겸 CEO로 취임했다. 기존의 High Performance로 대표되던 개판 라인업을 싹 정리하여 Original Collection과 Modern Collection으로 나누고, 검증된 모델들만을 주력으로 생산하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

2021년 기타 앰프로 유명한 메사 부기를 인수하였다.

2023년 5월에 CEO가 세자르 가이키안(Cesar Gueikian)으로 바뀌었다. 아르헨티나 출신이며 깁슨을 되살린 제임스 컬리그와도 같이 일한 경력이 있다. 링크드인


[1] 참고로 일렉트릭 기타 업체로 유명한 것과 별개로 정작 창립자의 생전에는 일렉트릭 기타, 심지어는 픽업이 달린 어쿠스틱 기타라는 개념조차 탄생하지 않았었다. [2] 이후 L-5의 탑에 픽업을 부착하여 일렉트릭 기타로 만든 L-5 CES도 나온다. 또한 레스폴의 초기 모델로 간주되는 The Log도 L-5의 디자인을 따르고 있으며, 넥은 아예 L-5의 것을 떼어다 붙였다고 한다. [3] PRS의 McCarthy 시리즈 모델명이 리스펙트의 의미로 그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실제로 PRS의 창립자 폴 리드 스미스는 기타 제작을 연구하며 노년의 맥카티에게서 많은 부분을 배우고 전수받았었다고 밝힌 바 있다. [4] 사실 처음 컨셉 제시를 제외하면 테드 매카티의 재능이 더 발휘된 작품이라고 보는 견해도 많다. [5] 이 깁슨의 험버커 픽업 독점권 탓에 펜더가 1970년대에 CuNiFe 자석을 사용한 와이드 레인지 험버커 픽업을 개발했다는 일화는 아주 유명하다. [6] 역설적이게도 이 때 구입한 사람들의 악기를 사용해본 다른 기타리스트들의 생산 요구가 많아지자 이 모델들은 리이슈되어 다시 팔리게 된다. [7] 깁슨 베이스를 싫어하는 사람들 한테는 가장 큰 단점이 되는 요소다. 디자인이 독특한게 눈으로 보기에 별로라서가 아니라, 디자인으로 인한 넥 다이브 문제가 심각하기 때문. 깁슨 제품 안에서는 레스폴을 제외하곤 설계가 다르므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조금씩은 있는 문제이다. 깁슨 제품들 중에 가장 이 문제가 두드러지는 SG도 기타보다는, 넥이 더 길게 뽑힌 베이스쪽이 아무래도 더 심각하다. 실제로 SG 베이스 기타와 바디는 같고 넥만 더 길어진 꼴이라서 심화된 부분도 있다. 그 밖에도 전체적으로 연주 편의성 자체가 좋은 편은 아니다. 깁슨 베이스에 호의적이지 않은 사람들의 인식은, 이걸 사용하더라도 소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감수하며 쓴다는 인식이 강한 편이다. [8] 피킹 주법과의 궁합은 하나의 로망으로 여겨질정도로 개성있다. 깁슨의 베이스는 간혹 한 두 대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중고 매물을 거의 안 내놓는다는 독특한 특징도 있다. [9] 흔히 기타로 얘기할때 비교로 예시를 들면 후대의 모던 지향 기타들의 정갈한 클린톤, 차가운 드라이브 톤과는 다른 따듯한, 화끈한 특유의 기름진 톤이 실린다고 표현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게 다른 표현을 빌리면 펜더와는 다른 방향성을 가진 또 다른 빈티지 톤이다. 이는 베이스로 넘어와서 타사의 제품들과 비교해도 똑같이 적용되는 깁슨 브랜드안에서 대체로 적용되는 특징이다. 실제로 깁슨 베이스는 조금 희귀한 편. LB 시리즈와 썬더버드 등등이 존재한다. 베이스 업계를 꽉 잡고 있는 펜더에 치여서 많은 바리에이션이 나오진 않았다. [10] 남미의 재벌 그룹으로 주류 양조를 주 사업으로 삼고 있었다. [11] ECL Corporation의 사장이었던 H. Norton Stevens와 CMI의 사장이었던 William Berlin의 이름에서 따와 Norlin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12] 실제로 공통점이 많다. 일렉트릭 기타, 심지어는 악기 그 자체에조차 큰 흥미가 없던 회사가 인수했다는 것, 1970년대 회사 운영에 큰 변화가 있었다는 것, 그리고 품질 하락과 같은 여러 이슈로 현재까지도 스스로 흑역사로 간주하는 시기라는 것 등 [13] 물론 이 때 개발한 신모델들은 Norlin Era 시기의 신모델들과 마찬가지로 판매량이 잘 나오지 않아 현재는 일부 모델들을 제외하고는 리이슈도 거의 되지 않고 있다. [14] 이 파이어버드X의 출시 직전에 당시 깁슨 CEO였던 헨리 저스키위츠가 기자들 앞에서 한 퍼포먼스가 어마어마한 구설수를 낳았는데, 옛 것을 타파하겠다면서 멀쩡한 깁슨 SG직접 부숴버리는 퍼포먼스를 선보인 것. 관련 글 당연히 파이어버드X가 폭망하고 이 인물까지 경질된 현재에는 역대급 웃음벨로 취급당하고 있다. [15] 이 폐기처분 방식이 참으로 과감하고 무식한데, 거의 세자릿수에 달하는 기타들을 공장 앞마당에 일렬로 놓고 그 위를 거대한 포크레인으로 짓밟는 방식으로 폐기처분했다. 이 장면을 보고 전세계 수많은 기타 덕후들이 경악하고 탄식한 것은 덤. 관련 영상 [16] 이런 평가를 듣는게 당연했던게 깁슨을 구입하는 소비자들 중 많은 수가 빈티지 스펙의 기타를 원하기에 트레디셔널 시리즈 모델들을 구매해왔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으로 봤을 때, 깁슨의 Traditional HP 모델들은 현대적인 스펙의 기타를 찾는 (소수의) 소비자들이 보기엔 불편한 연주감과 마음에 들지 않는 소리를 가진 것으로 비춰졌고, 빈티지 스펙의 기타를 찾는 (다수의) 소비자들에게는 원치 않는 잡다한 편의기능과 어딘가 이상한 외관을 가진 것으로 비춰졌을 것이다. 모두가 외면할 정도로 애매한 라인에 껴있었던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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