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irlight | ||
창립 | 1975년 | |
창립자 | 찰스 카만 | |
본사 | 호주 시드니 | |
링크 | (공식 사이트) |
1. 개요
호주 시드니에서 1975년 설립된 디지털 오디오 회사.1980년대 출시되었던 샘플러이자 워크스테이션 신디사이저인 Fairlight CMI시리즈로 유명하다. 2016년 호주의 영상장비 및 소프트웨어 제조사 블랙매직 디자인에 인수되었다.
2. 역사
시드니 출신 킴 라이리와 피터 포겔은 당시 주류였던 아날로그 방식이 아닌 마이크로프로세서를 기반으로 최고의 신디사이저를 만드는데 관심이 있었다.그들은 모토로라 6800 프로세서를 기반으로 한 Qasar M8이라는 신디사이저를 개발하지만 실패했고 계속 연구를 하던 어느 순간 라디오의 피아노를 1초 녹음하고 다른 피치로 재생하는 소리가 당시 아날로그 합성에 의한 피아노 사운드보다 훨씬 리얼하게 들린다고 깨달았다.
이렇게 그들은 특정 녹음음을 가져온다는 과정으로 “ 샘플링”이라는 개념을 최초로 만들었다.“ 이를 기반으로 악기를 제작하게 된다. 그 악기가 바로 80년대 샘플러 시장을 주름잡던 페어라이트(Fairlight) CMI 신디사이저이다.
3. 제품
3.1. Fairlight CMI
3.1.1. Series I (1979)
1979년 당시 영국에서 12,000파운드로 출시됐다.당시로선 획기적인 건반과 8인치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가 있는 모니터, 본체, 쿼티 키보드, 터치 팬으로 구성되어 있다.
샘플링 사양은 8kHz에서 최대 24kHz / 8-bit.
기술적 한계로 내부 용량이 16kB로 작고, 여기에 여러 샘플을 담기 위해 샘플레이트를 낮추어 탑재되었다.[1] 물론 당시엔 이런 샘플러 기술이 없던 시절이어서 이것도 굉장히 획기적으로 받아들여졌다.
굉장히 비싼 가격과 208kB의 부족한 램, 복잡한 내부 소프트웨어라는 문제점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당시 상당한 주목을 받았었다. 특히 영국 BBC의 Tomorrow's World에 방송되면서 당시 영국 음악가 연합은 이 악기에 대해 치명적인 위협이라고 반응을 보였다.
이러한 인식을 타파하고자 개발자 피터 포겔은 싱어송라이터 피터 가브리엘에게 접근한다. 당시 가브리엘은 페어라이트를 시연하고 굉장히 마음에 들어 했으며 당시 녹음하고 있던 자신의 음반에서 사용한다. 당시 그와 같이 있단 엔지니어 스티븐 페인은 "디지털 멜로트론 같다."고 평가했다. 이후 가브리엘과 페인은 페어라이트의 영국을 수출을 위해 Syco Systems를 설립했다.[2]
영국 수출 직후 레드 제플린의 존 폴 존스이 가장 먼저 이 악기를 구입했으며, 이후 버글스의 트레버 혼, 제프 다운스, 필 콜린스, 케이트 부시, 알란 파슨스, 릭 라이트 뿐만 아니라 미국 아티스트인 스티비 원더, 허비 행콕등 여러 아티스트들이 이 악기를 구매했다.
3.1.2. Series II (1982)
Fairlight CMI Series II의 시퀀서 Page R 모습 |
샘플레이트가 최대 32kHz까지 늘어났으며, 내부 인터페이스를 개선해 최초의 진정한 뮤직 시퀀서라고 평가 받는 Page R 기술을 탑재했다. 이 기술이 당시 레코딩 테이프나 하드웨어 패턴 시퀀서에 의존했던 당시로선 굉징히 혁신적인 방식이였고 현대 DAW의 시퀀싱 시스템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실제로 현대 미디 작업에서 주로 쓰이는 퀀타이즈 기술도 이 악기에서 최초로 정립되었다.
이러한 기술적 발전으로 인해 두배 가까이 뛴 가격에도 불구하고 많은 뮤지션들이 사용했으며, 특히 사운드 라이브러리중 오케스트라 히트 사운드인 ORCH 5과 보이스 패드인 ARR 1은 80년대를 상징하는 사운드로 자리잡았다.
몇년 뒤 출시된 업그레이드 기종 Series IIX에선 MIDI 규격이 추가 되었다. 출시 30년뒤인 2012년 100대 한정으로 재생산되었다.
3.1.3. Series III (1985)
전작보다 많은 개선이 이루어 졌다.우선 내부 용량이 기존 채널당 16kB에서 14MB로 대폭 늘어났으며, 내부 인터페이스도 개선되었다. 특히 오디오 사양이 당시 샘플러로선 최초 사양인 CD 품질인 44.1kHz / 16-Bit로 대폭 좋아졌다. 모니터에 팬을 사용하는것이 불편하는 불만을 받아드려 키보드 옆에 스타일러스를 도입했다.
당시로선 획기적인 최고 사양이였지만 당시 경쟁업체인 E-MU에서 페어라이트 3/1 가격도 안되는 Emulator를 출시해서 히트를 쳤으며, 당시 신생업계인 엔소닉에서 저가 샘플러 신디사이저인 Mirage을 Emulator보다도 훨씬 저렴한 무려 1700달러에 출시에 역시나 히트했다. 또한 당시 AKAI에서 아타리 ST 에디터를 사용하는 S900/S1000등 훨씬 저렴한 고품질 샘플러가 나오는 시대에 페어라이트는 굉징히 고가의 악기였고 결국 판매 감소로 이어지자 1989년 페인은 영국에서 판매를 중단했다.
4. 평가
“현대 DAW와 샘플링, 신디사이저등 디지털 전자악기 기술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 명기“로 평가 받는다.국내에선 아무래도 지금 기준은 물론 당시 기준으로 굉장히 비싼 악기였기에 사용한 경우가 없어 야마하 DX7, 롤랜드 D-50등 기종들과 Pro Tools등 시스템에 묻혔지만, 해외에선 이 악기들을 넘어 상당한 영향을 끼친 악기로 인식되고 있다.
샘플링이라는 개념을 확립했으며 이전에 비슷한 방식에 아날로그 악기인 체임벌린이나 멜로트론이 있었지만 이 악기들은 오르간, 피아노 방식에서 가져온 모두 아날로그에만 국한되어 있었지 디지털 기술로 샘플링이라는 용어를 만들고 이를 구현한건 페어라이트가 최초이다.
또한 Page R이라는 시퀀싱 기술로 디지털 시퀀서 시스템을 적립했며, 퀀타이즈 기능 또한 이 악기를 통해 도입되었고 이러한 방식은 현재 로직 프로, 프로툴즈, 큐베이스, 에이블톤, 디지털 퍼포머등으로 대표되는 DAW의 시퀀서 시스템에 모태가 되었다.
5. 대중음악계에서 사용
페어라이트 CMI를 사용하는 피터 가브리엘 | 피터 가브리엘의 Shock the Monkey (1982) |
위에서 언급했듯 피터 가브리엘은 이 악기를 맨 처음으로 사용한 뮤지션으로 그의 대표적인 명반인 So(1986)를 비롯해 많은 음반들에 광범위 하게 사용했다.
ORCH 5 사운드 시연영상 | 예스의 Owner of a Lonely Heart(1983) |
이후 나오는 수많은 히트곡들엔 이 오케스트라 히트 사운드가 필수요소 수준으로 많이 사용되었고, 이후 출시되는 여러 샘플러, 신디사이저에도 대부분 빠짐없이 탑재되었다.
아트 오브 노이즈의 Beat Box (1984) | 얀 해머의 마이애미 바이스 사운드트랙 Crockett's Theme (1986) |
장 미셸 자르 - Ethnicolor (1984) | 마이크 올드필드의 킬링필드 메인테마 (1984) |
아시아권에서는 사카모토 류이치가 옐로 매직 오케스트라와 솔로 시절 사용했으며, 마지막 황제 크레딧에도 등장한다. 이 사운드트랙 작업에선 한스 짐머가 페어라이트 프로그래밍을 맡았다. 지브리 영화음악가로 유명한 히사이시 조도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와 천공의 성 라퓨타, 이웃집 토토로, 마녀 배달부 키키 사운드트랙에서 페어라이트를 사용했다.
이 악기가 당시 얼마나 심하게 사용되었냐면 필 콜린스가 No Jacket Required 음반에서 “이 레코드에는 Fairlight가 없습니다.” 라고 라이너 노트에 기입할 정도 였다.
6. 사용 뮤지션
※ ㄱ-ㅎ/A-Z 순서로 작성- 닉 로즈 ( 듀란 듀란)
- 리처드 라이트 (ZEE)
- 마사야 마츠우라 ( Psy · S)
- 마이크 올드필드
- 보즈 버렐 ( 배드 컴퍼니)
- 사카모토 류이치 ( 옐로 매직 오케스트라)
- 스티비 원더
- 알란 파슨스
- 장 미셸 자르
- 제프 다운스 ( 아시아, 버글스, 예스)
- 존 폴 존스 ( 레드 제플린)
- 케이트 부시
- 키스 에머슨
- 토니 벵크스 ( 제네시스)
- 트레버 래빈 ( 예스)
- 트레버 혼 ( 아트 오브 노이즈)
- 펫 샵 보이즈
- 피터 가브리엘
- 필 콜린스
- 한스 짐머
- 허비 행콕[3]
- 히사이시 조
7. 여담
- 페어라이트 개발자 피터 포겔은 앱스토어에서 페어라이트를 어플화한 " Vogel Cmi Pro"와, 여기서 시퀀서, 샘플러 기능을 뺀 "Vogel Cmi"라는 앱을 제작해 출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