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를 결정한 바비 톰슨의 끝내기 홈런.
1951년 10월 1일부터 3일까지 사흘간 벌어졌던 뉴욕 자이언츠와 브루클린 다저스간의 내셔널리그 페넌트레이스 우승 결정전. 3차전 9회말때 자이언츠의 3루수였던 바비 톰슨이 다저스의 랄프 브랭카의 투구를 극적 끝내기 홈런으로 연결시킨 세계에 울린 한방(The shot heard around the world)으로 유명한 경기였다.[1]
1. 배경
1950년 다저스는 필리스에 1게임 차 뒤진 2위에서 시즌 최종전에 필리스를 상대했는데, 그 경기에서 10회초 딕 시슬러에게 결승 쓰리런을 맞고 패해 타이브레이커 게임으로 끌고 가지 못했고, 필리스는 35년 만에 월드 시리즈에 진출한다. 그리고 뉴욕 자이언츠는 이 해 리그 3위를 기록했다.다음 해인 1951년, 많은 전문가들이 1951년 내셔널 리그 우승팀으로 브루클린 다저스를 꼽고 있었다. 시즌 전 기자들을 대상으로 한 투표에서도 다저스는 내셔널 리그 우승후보로 가장 많은 1천 413표로 최다 득표를 기록했고 자이언츠가 두번째로 많은 1,281표, 세번째가 필리스로 1,176표를 얻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내셔널 리그 페넌트 쟁탈전은 이 세팀으로 집중되었다.
다저스는 압도적인 성적으로 내셔널 리그 1위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8월 11일에 들어서서는 자이언츠에 13 1/2 경기차, 필리스에 14 1/2 경기차로 앞서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은 아메리칸 리그 우승팀인 뉴욕 양키스의 상대로 다저스를 꼽는것에 주저하지 않았다. 심지어 AP기자까지 " 다저스가 스스로 무너지지 않는 이상 다저스의 우승은 확정적"이라고까지 할 만큼 단정적이었다.
그러나 자이언츠가 12일부터 27일까지 무려 16연승을 기록하여, 6경기차로 줄였고[2] 9월 20일 4.5경기차로 앞선 상황에서 자이언츠가 시즌 마지막 남은 7경기 모두 승리로 이끌고 다저스가 시즌 마지막 필리스와의 경기를 연장 14회까지 가는 접전끝에 14회초 재키 로빈슨의 결승홈런으로 9대 8로 승리하면서 다저스와 자이언츠 모두 96승 58패로 동률 1위가 되어 3전 2선승제 플레이오프로 들어가게된다.
2. 플레이오프 1차전: 자이언츠 승
1951년 10월 1일 에베츠 필드 | |||||||||||||
팀 | 선발 | 1 | 2 | 3 | 4 | 5 | 6 | 7 | 8 | 9 | R | H | E |
NYG | 짐 헌 | 0 | 0 | 0 | 2 | 0 | 0 | 0 | 1 | 0 | 3 | 6 | 1 |
BRO | 랄프 브랭카 | 0 | 1 | 0 | 0 | 0 | 0 | 0 | 0 | 0 | 1 | 5 | 1 |
승리투수: 짐 헌(17승 9패)
패전투수: 랄프 브랭카(13승 11패)
브루클린에서 개최된 1차전에서 자이언츠는 다저스에 강한 면모를 보인 짐 헌을, 다저스는 랄프 브랭카를 선발로 올렸다. 선취점은 2회말 다저스가 2사 주자없는 상황에서 앤디 팹코의 좌월 솔로홈런으로 먼저 가져갔다. 그러나 자이언츠가 4회초, 몬테 어빈이 몸에 맞는 공으로 출루한 상황에서 타석에 선 바비 톰슨이 2점 홈런을 쏘아올려 2:1로 역전시킨 상황을 계속이어 간 후, 자이언츠의 어빈이 8회초 솔로포로 쐐기를 박아 3:1로 승리, 시리즈 1승을 챙겼고 헌은 여기에 완투승.
3. 플레이오프 2차전: 다저스의 복수
1951년 10월 2일 폴로 그라운즈 | |||||||||||||
팀 | 선발 | 1 | 2 | 3 | 4 | 5 | 6 | 7 | 8 | 9 | R | H | E |
BRO | 클렘 러빈 | 2 | 0 | 0 | 0 | 1 | 3 | 2 | 0 | 2 | 10 | 13 | 2 |
NYG | 셸던 존스 | 0 | 0 | 0 | 0 | 0 | 0 | 0 | 0 | 0 | 0 | 6 | 5 |
승리투수: 클렘 러빈(5승 1패)
패전투수: 셸던 존스(6승 11패)
폴로 그라운즈로 무대를 옮긴 2차전에서 다저스는 클렘 러빈을 올렸고 자이언츠는 6승 10패를 기록했던 셸던 존스를 등판시켰다. 다저스는 1회초 피 위 리즈가 안타를 치고 출루한 후 재키 로빈슨이 투런홈런을 쳐 2:0으로 앞서 나갔다. 이어 2회초에도 득점기회가 있었으나 무산되었고 3회초 역시 리즈와 로빈슨이 연속안타로 자이언츠 선발 존스를 3 1/3이닝만에 조기강판 시키고 릴리프로 조지 스펜서를 등판시켰다. 스펜서는 롱 릴리프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었다. 다저스는 5회초 듀크 스나이더가 2루타로 출루하고 로빈슨의 적시타로 3:0을 만들었고 6회초 길 호지스가 선두타자 홈런을 날리고 빌리 콕스가 실책으로 출루한 후 두번째 실책으로 홈을 밟아 5:0으로 점수차를 넓혔다. 그리고 우천으로 당일 밤까지 경기가 중단된다.
경기가 속개된 후 다저스는 리즈와 로빈슨의 연속 안타로 6:0이 되고 7회초 앤디 팹코의 홈런과 자이언츠의 실책으로 2점을 추가, 8:0으로 점수차를 더 벌려놨고 9회초 루브 워커의 투런포로 10:0의 스코어를 만들고 이 점수가 그대로 최종점수가 되어 시리즈 1승 1패로 원점으로 돌려놓았고 다저스 선발 러빈은 6안타 완봉으로 승리투수가 되었다.
그리고 여기서 역사에 기록될 3차전이 이어졌다.
4. 플레이오프 3차전: 다저스를 무너뜨린 바비 톰슨의 끝내기 3점홈런
1951년 10월 3일 폴로 그라운즈 | |||||||||||||
팀 | 선발 | 1 | 2 | 3 | 4 | 5 | 6 | 7 | 8 | 9 | R | H | E |
BRO | 돈 뉴컴 | 1 | 0 | 0 | 0 | 0 | 0 | 0 | 3 | 0 | 4 | 8 | 0 |
NYG | 살 매글리 | 0 | 0 | 0 | 0 | 0 | 0 | 1 | 0 | 4 | 5 | 8 | 0 |
승리투수: 래리 잰슨(23승 11패)
패전투수: 랄프 브랭카(13승 12패)
내일이 없는 이 마지막 승부처에서 양팀 모두 에이스를 등판시켰는데 다저스는 돈 뉴컴을, 자이언츠는 살 매글리를 등판시켰다. 선취점은 다저스가 첫 두타자를 볼넷으로 출루시킨 후 재키 로빈슨의 적시타로 1:0으로 앞서나갔고 이후로는 팽팽한 투수전이 전개된다.
그러다가 7회말, 자이언츠는 몬테 어빈이 2루타로 출루한 후, 희생번트로 3루로 진루한 뒤, 바비 톰슨의 희생타로 홈인, 1:1 동점으로 경기를 원위치 시켰다. 그러나 다저스는 다음 8회초에서 피 위 리즈와 듀크 스나이더가 연속안타로 나가있는 상황에서 매글리의 폭투로 리즈가 홈인하고 이어 재키 로빈슨이 볼넷으로 출루한뒤 앤디 팹코의 적시타로 스나이더가 홈인, 빌리 콕스의 적시타로 로빈슨을 홈으로 불러들여 8회초 3득점으로 4:1로 만든후 더 이상의 득점없이 8회말, 9회초를 넘기고 마지막 9회말로 넘어가게 된다.
9회말 다저스는 뉴컴이 그대로 마운드에 있는 와중에 자이언츠의 선발타자 앨빈 다크가 안타로 출루한 상황에서 다음 타자 돈 뮬러가 연속안타로 무사 1,2루를 만든 상황에서[3] 몬테 어빈이 1루 플라이 아웃으로 1사가 된 상황에서 화이티 록맨의 적시타로 다크가 홈인, 4:2가 되었으나 3루로 슬라이딩 하던 뮬러가 손목부상을 당해 대주자 클린트 하텅과 교체되며 경기에서 나오게 된다.
다저스의 감독이었던 척 드레센은 이 직후, 뉴컴을 강판하고 랄프 브랭카를 등판시켜 경기를 마무리 하고자 했고 브랭카의 상대는 바로 바비 톰슨이었다. 톰슨은 브랭카의 2구째를 휘둘러 왼쪽담장을 넘기는 끝내기 3점홈런으로 자이언츠를 1951년 월드 시리즈로 진출시켰다[4].
5. 다저스의 패인
바비 톰슨의 극적인 끝내기 홈런으로 너무나 잘 알려진 경기이지만 다저스가 질 수 밖에 없었던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5.1. 패인 1: 이게 무슨 홈그라운드 이점??
플레이오프 시작 전, 리그는 코인 토스, 즉 동전 던지기를 통해 플레이오프 일정을 결정짓는 시스템이 있었고 다저스가 동전 던지기에서 이겼다. 문제는 다저스가 여기서 이상한 결정을 내렸다는 것. 1차전을 자이언츠의 홈구장인 폴로 그라운즈에서 치르고 2,3차전을 자신들의 홈구장인 에베츠 필드에서 치르는 게 아닌 1차전을 에베츠 필드에서 치른 뒤 2,3차전을 적진인 폴로 그라운즈에서 치르는 방식을 택한것.게다가 기가 막히는게 아무도 다저스가 왜 이런 이상한 결정을 내렸는지에 대해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는것이다. 추측컨데 다저스는 나름대로 1차전에서 승리한 후, 2차전에서 보기좋게 자이언츠를 꺾어 모욕감을 줄 생각이었던 것 같으나 결국 현실은 그렇게 녹록지 않다는 점만 증명된셈이었다.
사실 5년 전인 1946년에도 다저스는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 동률 1위가 되어 플레이오프를 치렀고 여기서 카디널스에게 2연패를 당하면서 우승에 실패했는데, 이때 우승 실패가 결정된 2차전이 당시 다저스의 홈구장이었던 에베츠 필드에서 치러졌다. 어쩌면 2~3차전을 원정경기에서 정한건 5년전의 안 좋았던 경험 때문일지도.
5.2. 패인 2: 탈이 난 다저스 마운드
다저스의 마운드는 심각한 과부하에 걸려있던 상태였다. 그 원인은 다저스의 감독이었던 척 드레센이 당시 기준으로도 무리한 투수진 혹사를 강행했기 때문이다.[5] 자이언츠가 엄청난 폭주를 일으킨탓에 경기차를 늘려보겠다고 무차별적 투수기용을 한게 원인이었다.[6] 시즌 마지막 경기였던 필라델피아 필리스와의 연장 14회까지 가는 경기에서 무려 7명의 투수를 기용했으니[7] 성한 팔을 가지고 있던 투수가 남아나지 않았다. 오죽하면 플레이오프 2차전때 등판했던 클렘 러빈은 그해 신인이었다. 마지막 승부처였던 3차전의 선발이었던 돈 뉴컴은 9회때는 거의 바닥난 상황이었다. 당시 다저스에서 내세워 볼만한 투수는 칼 어스킨이었는데 어스킨이 커브와 변화구를 구사하는데다[8] 설상가상으로 이를 잘 받아내는 다저스의 주전포수 로이 캄파넬라는 부상중이라 3차전에 출전을 할수 없었다는 치명적인 결점이 있었다. 결국 내보낼 투수는 랄프 브랭카외엔 없었던 것이다.5.3. 패인 3: 호지스 너 지금 뭐하냐?
9회말 자이언츠의 선발타자 앨빈 다크가 안타로 출루했다는 점은 이미 상술했다. 문제는 그 이후에 있었다. 당시 다저스의 1루수 길 호지스의 수비위치가 이상했던 것. 바로 1루 주자 뒤를 수비위치로 잡고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름대로는 도루를 차단하겠다는 수비선정이었던 것 같으나 문제는 다음타자가 돈 뮬러였다는 것이고 그는 왼손타자였다는 점이었다. 1루와 2루 사이를 수비위치로 잡았다면 뮬러의 타구를 잡아 야수 선택 아니면 병살로도 잡을 수 있었을 것이었다. 이는 뮬러 다음 타자가 몬테 어빈이었다는 것과 그가 1루 플라이 아웃을 당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치명적인 오산이었던 셈. 게다가 이쯤에서 주자는 별 의미가 없었다. 4:1로 이기고 있었으니까.5.4. 패인 4: 뭐요? 신인을 놔두고 맹타를 휘두른 타자를 상대하라고?
랄프 브랭카가 올라온 후 주자 2,3루의 상황에서 다저스의 척 드레센 감독은 황당한 지시를 내리는데 타석에 들어온 바비 톰슨과 승부를 보라는 것이었다. 문제는 톰슨은 당시 맹타를 휘두르고 있었던데다 결정적으로 1차전에서 브랭카에 홈런을 뽑아냈던 타자였다. 여기에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자이언츠의 다음 타자가 윌리 메이스였다는 점. 지금은 명타자로 잘 알려져있지만 이 당시 메이스는 1951년 그해 데뷔한 신인 선수였고, 시리즈 내내 상당한 슬럼프에 빠져있었던 중이었다. 메이스 본인도 당시에 매우 긴장되어 있었다고 증언했다[9][10]. 드레센 감독으로서는 맹타를 휘두르던 톰슨보다 아직 신인티를 벗지못한 메이스와 상대하는 것이 더 나았을 터였지만 메이스의 이름에 주눅이 들었는지 톰슨을 상대하라고 한 것 같다. 그러나 결과는...6. 11년 뒤 다시 재현된 싸움
이 대역전극으로부터 11년 뒤인 1962년, 연고지를 로스앤젤레스로 옮긴 다저스는 공교롭게도 11년 전 자신들에게 참패를 안겨준 라이벌이자 같은 시기에 연고지를 샌프란시스코로 옮긴 자이언츠와 동률 1위가 되어 리그 우승을 결정짓는 타이브레이커 게임을 또다시 치르게 되었다. 그 과정조차도 11년 전과 다소 비슷했는데 9월 초까진 1위를 차지하던 다저스를 자이언츠가 치열하게 쫓는 형태였다가 다저스가 시즌 막판 13경기에서 3승 10패를 기록하며 DTD를 탄 반면 자이언츠는 시즌 막판 13경기에서 7승 6패를 기록해 어느 정도 선전한 덕에 두 팀의 승패/승률이 동률이 되었던 것.그리고 11년 뒤의 타이브레이커 게임에서도 다저스는 또다시(...) 자이언츠에게 1승 2패를 당하며 리그 우승을 내주고 만다. 심지어 전적도 패-승-패로 11년 전과 똑같았으며, 그렇게 올라간 자이언츠는 양키스에게 월드 시리즈를 조공(...)한 것까지 똑같았다. 다만 다른 점은 패전이 결정된 3차전은 다저스의 홈구장인 다저 스타디움에서 열렸다. 이때도 다저스 측에서 동전 던지기에서 이겨서 홈 어드밴티지 결정권을 얻었는데 11년 전의 악몽이 떠오른 탓인지 2~3차전을 다저스 쪽 홈구장에서 치르기로 결정한 것.
그리고 다저스는 먼 훗날, 2021년이 되어서야 복수에 성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1951년과 1962년의 자이언츠가 월드 시리즈에서 양키스에게 패퇴한것처럼, 자이언츠를 힘겹게 꺾은 다저스 역시 방전되어 NLCS에서 기다리고 있던 애틀랜타에게 2승 4패로 패퇴했다.
7. 자이언츠의 죄악
신문기자였던 조슈아 스프레이거는 월스트리트 저널을 통해 몇몇선수들이 자이언츠가 1951년 7월 20일부터 상대팀의 ' 사인 훔치기'를 저질러 왔다고 밝혔다. 당시 폴로 그라운즈의 중앙에 위치한 클럽하우스에 망원경과 버저를 배치해 상대팀의 사인을 훔쳐왔는데, 더욱 충격적인 것은 이 당시 사용된 망원경이 군대에서 사용되는 고성능 망원경이었다는 것. 당시 자이언츠의 포수 살 이바스에 따르면 상대팀의 투구를 분석 부저를 누르면 직구이고 아니면 다른 구종이라는 식의 신호로 자이언츠 타자들에게 전달해 왔다고 한다. 당시의 기술 수준을 생각하면 상당한 기술력을 동원해 사인 훔치기를 한 셈.
[1]
본래는
미국 독립전쟁의 시작을 장식한
1775년 4월 19일의 교전을 뜻하는 문구에서 유래했다.
[2]
필리스는 페넌트레이스 탈락했는데 최종 순위가 6위다. 그야말로 DTD를 시전한 셈. 실제로 8월 12일부터 필리스의 성적은 무려 15승 29패(...) 이 해 당시 자이언츠의 후반기 성적이 37승 7패였다.
[3]
여기서 다저스의 치명적인 실수가 있었다. 자세한 내용은 후술.
[4]
이 끝내기 홈런의 희생양이 된 브랭카는 경기가 끝난 후 라커룸에 들어와 "왜 나야? 왜 나냐고?"라며 목놓아 울었다고 한다. 그럴만도 한게 시리즈 동안
바비 톰슨에게만 무려 2개의 홈런을 맞았고 그 하나는 다저스의 월드 시리즈 진출을 좌절시킨 것이었으니..
[5]
참고로 이 감독은 1932년 필리스에서 승률 0.506을 기록했다. 이게 왜 특별한 거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필리스 항목에서도 드러나듯이 저 시즌 5할을 넘기지 못했다면 필리스는 무려 31년 연속 승률 5할대 미달이라는 전대미문의 기록을 남길 뻔 했다.
[6]
5선발에 집착해 선발투수를 너무 오래끌고 갔다는 점이 컸다.
[7]
프리처 로-랄프 브랭카-클라이드 킹-클렘 러빈-칼 어스킨-
돈 뉴컴-버드 포드비에란
[8]
게다가 그 커브라는 것도 거의 땅에 바운드로 오를 정도로 낮게 들어온다는 점도 있었다. 최악의 경우 공이 뒤로 빠질 우려도 있었다.
[9]
게다가 메이스 역시 다저스가 톰슨을 고의사구로 거를 줄 알았다고 증언했다.
[10]
헌데
바비 톰슨 자신도 굉장한 부담감을 느꼈던 모양이다. 회고에 따르면 타석에 오르기 전 "가자 이놈아, 넘기자 이놈아"라고 혼잣말로 자신을 다독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