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02 02:00:17

하다나라 마푸타

馬夫大/馬福塔/瑪福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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哈達納喇 馬福塔

?~1640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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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청나라 초기의 관리이자 장수.

2. 생애

후금의 명문가 태생으로 후금 초기의 공신인 만다르한의 동생이었다. 초기에 태조 천명제 누르하치의 신하로 출발했다.

1631년에 후금은 명나라의 관제를 모방하여 6부를 설치했는데, 호부참정이 되었다. 호부를 맡은 것에서 보듯이 후금의 재정가였다.

조선에 사신으로 파견되어 1631년 6월에 아지호와 함께 안주로 가서 25, 26일에 철수해 돌아가겠다고 전했으며, 1632년에는 타타라 잉굴다이, 만월개, 중남 등과 함께 사신으로 파견되었다.

1634년 3월 29일에 호차, 잉굴다이와 함께 조선에서 보낸 사신의 회답이라 해서 부하 100여 명을 거느리고 용천으로 파견되었으며, 8월 16일에는 하인 30여 명을 이끌고 중강 건너편에서 진을 친 후에 임경업에게 구련성까지 진군할 것이라면서 , 고기, 식량 등을 요구했다. 이때 명나라군을 만났으나, 5명을 죽이고 한 명을 포로로 잡았으며, 다른 한 명은 귀를 벤 후 사신으로 돌려보냈다.

12월 28일에는 하인 113명을 이끌고 조선 조정으로 들어가 옛 병조를 관소로 정하고 머물렀으며, 1636년 12월에 청나라가 조선을 공격해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마푸타는 호부승정을 지내면서 기병 300명을 이끌고 선봉대로 조선을 공격했다.

이후 남한산성을 포위하고 숭덕제가 오기까지 계속 조선측과 밀당을 하며 조선측의 반격 시도를 지연시켜 시간을 벌었고, 후속부대가 계속 도착했고 숭덕제가 이끄는 본군이 남한산성에 도달하면서 인조는 항복했다.

청나라의 병자호란 승전의 일등공신이 마푸타이며, 선봉장으로 알려진 잉굴다이는 사실 청태종이 친정하는 본군과 함께 움직였기에 병자호란에는 군공을 올리지 못했다.

이후에도 호부 일을 계속 하면서 조선과의 외교업무에 계속 관여했다.

1640년 2월에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