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필리프 드 생폴 Philippe de Saint-Po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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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년도 | 1404년 7월 25일 ~ 1430년 8월 4일 | |
출생지 | 프랑스 왕국 아라스 | |
사망지 | 브라반트 공국 브뤼셀 | |
아버지 | 앙투안 드 브라반트 | |
어머니 | 잔 드 뤽상부르생폴 | |
형제 | 장 4세 | |
아내 | 앙주의 욜랑드(약혼자), 바르바라 피렌스(정부) | |
자녀 | 앙투안( 사생아), 필리프(사생아), 장(사생아), 기욤(사생아), 이자벨(사생아) | |
직위 | 브라반트 공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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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브라반트 공국의 공작. 3년간 브라반트 공국을 다스리다 사망했다.2. 생애
1404년 7월 25일 프랑스 왕국 아라스에서 브라반트 공작 앙투안 드 브라반트와 생폴 백작 발레랑 3세 드 뤽상부르리니와 모드 홀랜드[1]의 딸인 잔 드 뤽상부르생폴의 차남으로 출생했다. 1415년 10월 25일 아버지가 아쟁쿠르 전투에서 전사한 뒤 형 장 4세 드 브라반트가 브라반트 공작이 되었을 때 생폴과 리니 백작이 되었다.1417년 삼촌인 부르고뉴 공작 용맹공 장과 함께 아르마냐크파에 맞서 싸웠고, 부르고뉴파가 파리를 접수한 뒤 파리의 군사 총독에 선임되었다. 1420년 브라반트로 돌아온 뒤 형의 무기력한 통치에 반감을 품은 브뤼셀 주민들의 설득을 받아들여 브라반트의 루와드(ruwaard: 섭정)을 자처했다. 장 4세는 이를 피해 도시 외곽에 숨어 있다가 1421년 필리프와 화해하고 브뤼셀로 돌아왔고, 그는 섭정 직을 사임했다. 1425년 선량공 필리프의 지휘하에 에노의 자클린과 랭커스터의 험프리와의 전쟁에 참여했다.
1427년 4월 17일 예루살렘 순례를 준비하던 중 형이 급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브뤼셀로 돌아와서 브라반트 공작이 되었다. 이후 선량공 필리프의 권세가 저지대 국가에서 갈수록 강해지는 것에 위협을 느끼고, 앙주 공작 루이 2세와 아라곤의 욜란다의 딸인 앙주의 욜랑드와 결혼하려 했다. 그러나 결혼이 미처 성립되기 전엔 1430년 8월 4일에 브뤼셀에서 사망했고, 브뤼셀 인근 테르뷰젠의 성 요한 복음사가 교회에 안장되었다. 사후 브라반트 공국은 선량공 필리프의 소유가 되었다.
필리프는 생전에 바르바라 피렌스라는 정부와의 사이에서 다섯 자녀를 두었는데, 그중 장은 수아송의 주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