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29 18:25:02

포츠머스 신포니아



1. 개요2. 연혁3. 연주 음원들

1. 개요

Portsmouth Sinfonia

영국 포츠머스에서 1970년부터 1979년까지 활동한 관현악단. 이름만 보면 그냥 영국의 어느 번듯한 악단처럼 보이지만, 사실 연주를 너무 괴상하게 해서 인기를 얻은 관현악단이었다.

2. 연혁

포츠머스 예술학교에서 음악 교사로 일하던 콘트라베이스 연주자 겸 작곡가 개빈 브라이어스가 창단했는데, 그가 의도한 것은 일반적인 의미의 조직적이고 정확한 음악을 들려주는 관현악단이 아니었다. 오히려 관현악이라는 편성을 이용해 듣기 좋던 싫던 소리 그 자체의 본질에 다가서기 위한 실험을 목적으로 악단을 구성했는데, 프로와 아마추어 모두에게 문호를 열어 연주하고 싶은 이는 모두 받아들였다.

아마추어 연주자들은 어떤 악기를 연주해도 상관없었지만, 프로의 경우에는 입단 조건이 '지금까지 한 번도 연주하지 못한 악기를 연주할 것'으로 되어 있었다. 전체 연주자들에게 주어진 규칙은 딱 두 가지였는데, 리허설에 반드시 참석할 것과 일부러 이상하게 연주하려 하지 말고 진지하고 성심성의껏 연주하라는 것이었다.

물론 합주 경험이 전혀 없던 아마추어도, 자기가 능숙하게 연주한 악기 대신 처음 잡아보는 악기를 잡은 프로도 아무리 진지하게 연주하려 한 들 당연히 '제대로 된 소리' 를 낼 수 없었다. 삑사리는 기본이었고, 리듬 처리도 엉망인 데다가 피치(음높이)도 매우 불안정해서 듣는 사람은 이 곡이 무슨 곡인 지 대충 윤곽만 알 수 있을 뿐 깔끔하게 정돈된 연주와는 매우 거리가 멀었다. 어쨌든 브라이어스의 의도대로 조직된 이 관현악단은 바로 그 해 학교 졸업 발표회에서 로시니 오페라 기욤 텔(윌리엄 텔) 서곡을 연주했는데, 물론 고전적인 기준으로 보면 완전히 망했어요 수준이었지만 이들은 이걸 녹음해서 음반으로 만들었다.

브라이어스는 일단 프로던 아마추어던 어느 정도 들어서 다들 귀에 익은 기본 연주곡들을 골랐는데, 악기 편성도 악단 사정에 맞추어 그때 그때 바꾸었기 때문에 악보를 엄격히 따라가는 연주라는 개념도 별 의미가 없어졌다. 이렇게 해서 연주자 개개인이 제대로 된 음을 울리던 벗어난 음을 울리던, 정확한 박자로 연주하던 갈짓자 걸음을 걷던 그 소리가 섞여서 생겨나는 우연적인 음향이 다양하게 빚어질 수 있었다. 이 시도는 여러 실험적 음악을 하던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주었는데, 심지어 브라이어스의 친구이자 앰비언트의 창시자로 유명한 브라이언 이노도 악단 활동 초기에 입단해 클라리넷을 연주하기도 했다. [1]

하지만 브라이어스가 진지하게 생각한 것과는 달리 청중들은 이 관현악단이 빚어내는 온갖 어설프고 괴상한 연주를 몸개그처럼 받아들이면서 박장대소했다. 악단 활동이 컬트적인 유명세를 얻게 되자, 기존 레퍼토리가 아닌 창작 현대음악이기는 하지만 즉흥연주 그룹을 이끌며 비슷한 시도를 하고 있던 작곡가 마이클 파슨스가 이 악단을 런던의 로열 페스티벌 홀 소강당인 퍼셀 룸에서 공연하도록 주선해 주었다. 이렇게 런던 무대까지 진출할 수 있었던 덕분에 세계 최악의 관현악단이라는 상업적 수식어가 붙어서 공연과 음반 활동을 활발히 벌이게 되었다.

1974년에 이들의 명성은 영국 뿐 아니라 나라 밖으로도 퍼지게 되었는데, '포츠머스 신포니아가 연주하는 유명 클래식 작품집' 이라는 LP가 트란스아틀란틱 레코드라는 음반사에서 이들의 첫 공식 상업반으로 출반되었고 로열 앨버트 홀에서 존 팔리의 지휘로 개최한 연주회에서는 수천 명의 유료 관객을 동원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이 공연의 실황 역시 트란스아틀란틱 레코드에서 LP로 발매되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 독특한 악단의 활동은 단원들이 수 년에 걸친 연주 활동으로 악기 연주와 합주에 익숙해지면서 빛이 바래기 시작했는데, 창단자 브라이어스나 단원들 자신도 이 점을 알고 있었는 지 1979년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무대에 서지 않아 사실상 해체 혹은 영구 활동 중단 상태가 되었다. 음반도 같은 해 필립스에서 발매된 록 음악 팝 음악 넘버들을 세미 클래식으로 편곡해 연주한 20 Classic Rock Classics이라는 앨범을 끝으로 더 이상의 신보가 나오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이들의 이름을 단 음반이 이후에도 몇 장 더 나왔다. 1981년에는 바로 같은 해 루이스 클라크 편곡/지휘로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녹음해 대박을 친 디스코 리듬의 클래식 메들리인 훅트 온 클래식스(Hooked on Classics)의 아이디어를 패러디 싱글인 클래시컬 머들리(Classical Muddley)가 발표되었다. 프로듀서 마틴 루이스가 훅트 온 클래식의 제작 방식과 마찬가지로 디스코 리듬 위에 이들의 녹음들을 섞어서 더빙하고 편집한 것이었는데, 이 싱글은 브리티시 싱글 차트의 40위권에 들며 컬트적인 인기를 입증했다.

여러 모로 1970년대의 영국 음악계에서 미친 존재감을 발산한 악단이었지만, 브라이어스의 진지한 의도와 상관 없이 이들의 연주는 지금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망가져서 유명해진 것들에 속해 개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유튜브를 통해 이들의 연주를 담은 음원들이 재공개되어 그 당시처럼 컬트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데, 특히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교향시: 차라투슈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서주 부분은 'Orchestra fail' 이라는 제목의 필수요소로 나돌며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오프닝 영상과 합성되거나 어느 학교 아마추어 관현악단이 개판쳤다는 식의 왜곡이 더해져 업로드되기도 한다.

3. 연주 음원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교향시: 차라투슈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서주. 코끼리 울음소리 같다는 코멘트들이 인상적이다(...).



로시니의 기욤 텔 서곡 후반부



베토벤 교향곡 제5번 단축판



요한 슈트라우스 2세 왈츠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차이콥스키 1812년 서곡. 실황 녹음이라 사람들이 웃는 소리와 연주 후의 환호성이 들린다.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제1번 단축판. 역시 실황 녹음이다.



최후의 걸작(?)인 클래시컬 머들리
[1] 참고로 브라이언 이노 역시 원래 악기는 굳이 말하자면 건반 악기나 기타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