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特功武術, TEUK GONG MU SUL[1]한국의 군용무술로 특공무술의 뿌리는 대한민국 특전사다. 특공무술은 '특전사가 창시부대이며 특전요원들이 창시자인 전장무술'이다.
2. 특징
해병대의 일부 부대에도 1990년대 중반부터 '무적도'라는 이름으로 보급되어 있다. 1994년에 해병수색대에서 특전사의 특공무술 교범을 그대로 도입해서 특공무술 수련을 시작했다. 처음엔 특공무술이라는 명칭을 그대로 사용했으나 이후 '무적도'라는 새로운 이름을 만들어서 붙였고, 1995년경 한때는 수색대 뿐 아니라 해병대 1사단 전 부대에서 잠시 수련하다가 1996년경 이후론 다시 주로 해병수색대에서 훈련하고 있다. 매달 해병대 신병입소식과 각종 해병대 행사에서 해병수색대 대원들이 시범을 보이고 있다.
자세가 화려하고 뭔가 폼나보이는데다, 군용살상무술 이라는 환상이 존재하지만, 현재에는 종합격투기 등의 위상으로 인해 그렇게까지 실전적이지는 않다는 인식이 있다. 이상이 어떻 건 실제 부대에서 가르치는 특공무술은 정말로 품새, 정확히는 시범 위주로 가르치는 게 현실이다. 한국군 특성이 수색대 등을 비껴갈 리가 없다.[2] 1단의 경우 1~3수를 동시에 평가받는데 이 3품새를 모두 하는데 소요되는 시간이 태권도 품새 1개하는 시간과 거의 비슷하다. 더군다나 군대에서 특공무술 승단심사는 특전사들이 심사관으로 오게되는데, 이들이 중시하는 것도 품새가 아니라 겨루기나 발기술들이다. 다만 품새도 나름대로 단련하는 이유가 있기 때문에 무턱대고 간소화 시키는 게 좋은 건지는 의문이다. 차라리 품새 자체를 제외시키면 또 모를까.[3] 그나마 아래에 서술된 민간 특공무술 대련경기 수준의 스파링을 자주 한다면 장병들의 맨손전투능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되겠지만 현재 국군의 맨손무술 훈련은 품새나 시범공연 연습이 대부분이며 제대로 스파링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
기본 준비자세가 다소 무리가 있다고 여기는지 이전의 품을 갈아치우고 새로운 형태로 전파되었다. 기합짜기, 유급 기본형 이외에 대검형 등이 있었으나 새로 형태가 바뀐 이후에는 명칭도 바뀌었다.
꼭 무술 외에도 호신술이나 낙법, 단검, 목도, 쌍절곤, 삼절곤, 창, 봉, 도끼, 야삽 등을 이용한 무기술도 가르친다. 권총을 빼앗아 제압하는 호신술을 가르치기도 한다. 한마디로 합기도와 비슷한 정체성을 지녔다.[6] 타격기, 유술기, 무기술, 제압술 등 온갖 무술에서 따온 다양한 기법을 배울 수 있다는 게 장점이라면, 여러개를 배우는 만큼 타격기면 타격기, 유술기면 유술기, 무기술이면 무기술 하나를 가르치는 무술에 비해 깊이가 크게 떨어질수밖에 없다는 건 필연적이다.
기술의 범위가 넓고 깊이가 얕다는 특징은 거의 모든 군대 격투기의 한계이며 실전성 논란이 꼭 한국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현재 군 내 특공무술 교육의 문제점은 기술체제의 문제 보다는 품새 및 시범공연 위주의 훈련과 실전대련의 부재 다. 물론 많은 실전 경험을 통해 발전을 거듭해온 크라브 마가나 필리핀 무술 같은 무술들에 비해서는 기술 발전이 정체되어 있어 상대적으로 부족한 감이 있기는 하지만 민간 특공무술 경기영상만 봐도 주먹질, 발차기, 꺾기, 메치기 등 최소한 격투에 필수적인 기술은 대부분 사용하며 이정도만 있어도 맨손 싸움 발생시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고 무기술도 안전장비를 착용하고 고무 나이프 등의 훈련용 무기를 이용한 대련을 자주 하면 상당한 전투력 증가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런 기술들을 연습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스파링체계가 사실상 전무하다는 것으로 품새만 주야장천 해봤자 그것을 실제 교전시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터득할 수가 없다. 군 내에서도 이런 지적이 자주 있지만 상부에서 이를 개선할 만한 의지를 보이지 않기 때문에 상황은 더 악화되는 중이다.
특히나 무기술의 경우 한국식 합기도의 영향을 크게 받아 대부분 가차없는게 대부분인데, 예를 들어 단검으로 상대방 가슴을 계속 찔러서 난자한다든지, 창으로 복부를 뚫어버린다든지, 쌍절곤이나 단봉으로 목을 꺾는다 등, 무기술 비쥬얼은 흉악하다.
심지어는 발차기 기술 중에 상대방 무릎을 차서 관절을 반대로 접어버리는 기술도 있다. 흠좀무.[7]
호신술을 할 때도 주의를 요하는데, 대부분 호신술을 업어치기를 시전하고 넘어가는 중에 관절을 잡고 넘어지는 힘으로 관절을 반대로 접히게 만드는 기술이 원본이라, 연습할 때는 끊어서 하지만 실전에서는 거의 동시에 나간다. 애초에 유도나 브라질 유술에선 탭을 하게 만들지만, 진짜로 생사결이라면 탭이 아니라 바로 꺾는 것이다.
그리고 도장마다 다르지만 기본적인 장애물 뛰어넘기나 벽타기, 파쿠르 기술을 가르치기도 한다[8] 그런 훈련의 탓인지, 출발 드림팀의 52회 방송인 '특공무술팀' 편에서는 대한 특공무술 협회장이 인간을 초월한 움직임을 보여줬다. 결국은 특공무술팀이 드림팀을 이겼다.
3. 경기 규칙
특공무술의 경기(스파링) 규칙은 태권도나 합기도와 비교하면 실전성이 상대적으로 높다. 그라운드는 허용되지 않지만 유도와 씨름에서 사용되는 다리걸기[9]와 우슈 산타 혹은 택견과 비슷한 모양새의 메치기[10]와 한국식 합기도의 방족술과 입식 상황에서의 팔꺾기 등의 관절제압술[11], 태권도의 발차기[12]를 사용하며 무엇보다도 권투처럼 주먹을 이용한 안면타격이 제한없이 허용된다.[13] 또한 레슬링, 삼보에서 자주 보이는 다리잡아 메치기[14] 역시 허용된다.
때문에 전체적인 모습은 발차기 비중이 늘어난 우슈 산타와 비슷한데 글러브, 헬멧, 몸통보호대를 착용하며 그라운드 싸움과 클린치 상태에서 무릎, 팔굽 등을 이용한 더티복싱이 불가능하여[15] 근접 상태에서 테이크다운 공방을 벌이는 풀컨택트 격투기라고 할 수 있다.
무술 수련 경험이 없는 일반인들은 종종 특공무술과 합기도의 겨루기를 구별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특공무술과 합기도의 기술체계가 겹치는 부분이 적지 않고[16] 시범공연에서 보여주는 모습(대동류식 관절기, 무기술, 화려한 발차기 등) 흡사하며 합기도 도장에서 특공무술을 병행교육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으로 추정된다.[17] 하지만 겨루기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상당히 달라 대련영상을 비교해보면 쉽게 구별할 수 있다.
우선 허용되는 기술을 비교할 경우 공통점으로 팔꿈치와 무릎을 이용한 타격이 불가능하지만 합기도 경기는 주먹 사용 역시 불가능하고 태권도 발차기와 유도 메치기를 주로 사용하며 드물게 대동류식 제압술과 (협회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일부 그라운드 기술이 허용된다.
반면 특공무술은 (종종 허용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기에서 그라운드가 금지된 대신 글러브를 착용한 상태에서 주먹으로 안면을 포함한 모든 부위를 가격할 수 있다.
또한 방어구 착용법도 다른데 합기도는 몸통 보호대를 도복 안에 입거나 아예 입지 않는 경우가 많으며 펀치를 쓸 일이 없지만 도복을 잡아야하기 때문에 글러브를 안끼거나 오픈핑거 글러브를 낄 때가 많고 대회에 따라 성인 참가자들은 헬멧 착용을 하지 않기도 한다.(이 경우 상단 발차기가 금지되기도 한다.)
특공무술은 보호구를 도복 밖에 입고 주먹기술을 사용하기 때문이에 권투용 글러브를 착용한다.
발차기의 경우 두 무술 모두 태권도의 영향을 크게 받아 태권도식 발차기를 주로 사용하지만 합기도 경기는 몸통을 노릴 때는 올림픽 태권도 겨루기처럼 위력이 약해도 빠르게 차서 점수를 얻는걸 목적으로 차는 경우가 많고 강한 발차기는 하단이나 상단을 노려서 다운을 노린다.
반면 특공무술은 빠르게 차는 발차기는 사용빈도가 적고 대부분 기습이나 견제용으로 사용하며 일반적으로는 하단, 중단, 상단 발차기 모두 상대에게 최대한 충격을 주기 위해 올림픽 태권도나 합기도 겨루기의 발차기에 비해 체중을 더 많이 실어 강하게 차는 것을 선호한다.
유술을 사용할때는 공통점으로 상대의 발차기를 잡고 반격하는 방족술이 자주 사용되지만 합기도는 위에서 서술된것처럼 도복을 방어구 위에 덧입고 손가락을 자유롭게 쓸 수 있지만 상대방의 다리를 손으로 잡지 못하기 때문에 선 채로 옷깃을 잡고 메치는 유도식 메치기를 주로 사용하며 맞잡은 상태에서는 등장 빈도가 적은 기술이긴 하지만 빈틈을 노려 팔을 붙잡고 누르거나 비틀어 항복을 받아내는 대동류식 관절기를 사용한다.
특공무술은 도복을 방어구 안에 입거나 아예 입지 않아 상대방의 옷깃을 잡지 못하고 글러브때문에 손가락을 쓸 수 없어 대동류식 관절기가 거의 사용되지 않지만 상대방의 다리를 잡을 수 있기 때문에 서있는 상태에서는 택견의 태질( 택견의 유술체계)처럼 상대의 몸에 직접 팔을 둘러감은 후 메치거나 자유형 레슬링처럼 하단으로 파고들어 오금이나 엉덩이를 붙잡고 밀어 넘어트리거나 들어올린 후 땅에 내리꽂는 등의 종합격투기와 흡사한 테이크다운 기술을 사용한다.
요약하면 도복을 입은 사람들이 주먹을 쓰지 않고 태권도 발차기+유도 메치기+(드물게) 대동류 팔꺾기를 하며 싸우면 합기도 경기고, 전신 방어구로 완전무장한 사람들이 권투 주먹+태권도 발차기+택견 메치기+레슬링 태클을 하며 싸우면 특공무술 경기다.(물론 경기에선 금지되었지만 자기들끼리 체육관 안에서 대련할때는 정말 배운사람의 개싸움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별의 별 기술이 나온다.)[18]
4. 창시자 논란
아직도 특공무술은 창시자․명칭․기술 문제를 비롯한 많은 부분에서 정체성과 관련된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특공무술' 자체의 창시는 장수옥 총재가 군용무술을 목적으로 만들었다고 주장하지만 사실과 다르다. 특공무술은 77년 대한민국최초대테러부대(606특공부대)가 만들어지면서 특공부대에 맞는 무술을 만들었고 부대가 특공부대이었기에 특공부대 특공사격 특공장애물등 그래서 부대원들이 특공무술이라고 하였고 이를 당시 차지철경호실장에게 보고 하였고 차지철 경호실장이 박정희대통령께 보고 하여 무명(武名) 특공무술이 탄생하게 되었다 여기서 위험한 기술 등 여러 요소를 개편하고 바꾼 것은 협회마다 기술이 다르고 품새 또한 다르다. 때문에 특공무술을 생활 스포츠나 건강 등 일반인도 편하게 즐길 수 있게 개편한 것은 협회마다 다르다는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논문 참조.[19]
하지만 군용 무술의 특성상 이런 창시자나 계보 논쟁은 무의미하다. 특공무술은 군대에서, 또는 부대의 특성에 따라 계속 변화하는 것이다. 그리고 파편화된 특공무술 단체들도 뿌리는 군대에서 특공무술을 배운 사람들이 전역하고 도장을 만든 것이다. 그 1세대가 도장을 만든 시점에서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은 기술 체계가 다 다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이것의 연장선에서 현재 일반인이 군대 외부에서 배울 수 있는 특공무술은 과거의 특공무술이 생활체육화한 것이다. 현 한국군은 무사트 같은 시스템을 독자적으로 만들거나, 크라브 마가 같은 외국 무술을 들여온 시점에서, 과거 군용무술이 지금 특공무술 도장에서 가르치는 무술과 동일하진 않을 것이다.
특공무술이 협회가 난립하고 서로가 창시자라고 하는 것은 이렇게 각각 특수부대들에서 배우던 특공무술 버전과 기술이 다르고 사회로 나오면서 전역자들이 새롭게 정리한 기술들이 다르기 때문이다.
4.1. 특전사
70년대 당시 대통령경호실에서는 유도, 태권도, 합기도, 검도를 수련했고, 군대에서는 태권도가 전군에 보급되었으며, 606특공부대의 군소속인 특전사에서는 ' 특전무술'이라는 명칭으로 총검술 등을 훈련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대테러 특공작전에 투입될 606특공부대는 경호실이나 군에서 수련하고 있는 무술보다 더욱 실전적인 공격술, 방어술, 응용 기술이 추가된 무술이 필요했다.한국특공무술협회
대한민국특공무술협회
제606특공부대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1978년 6월 1일에 창설된 특전사 소속 606부대는, 1978년 7월 2일 대통령경호실에 배속되어 국내 최초의 항공기 대테러를 목적으로 비밀리에 운용되었다. 그리고 606부대에서는 기존 무술들의 장점을 합한 실전 종합무술로서 특공무술을 만들었다.
특공무술은 경호무도의 특성을 가지고 개발되었다. 606특공부대원들은 대통령경호실 소속 특공부대의 일원으로 특공무술을 개발했고, 이에 특공무술은 개발단계부터 경호무도로서의 특성을 포함하게 되었다.
606특공부대의 특공무술은 군과 경호실로 나뉘어 발전했다. 군에서는 제5공수특전여단에 의해 새롭게 구성한 국방무술로 보급되었고, 대통령경호실에서는 기존에 수련하던 합기도를 특공무술로 교체하여 보급되었다.
따라서 개발 과정으로 볼 때, 특공무술은 어느 한 개인이 만든 것이 아니라 부대차원에서 체계화한 것이다.
제5공수특전여단
606부대의 특공무술과 달리, 제5공수특전여단의 특공무술은 장병들을 보다 효율적으로 훈련시키기 위해 기술체계의 간소화, 태권도 비중 증대, 전투복 착용 등에서 차이가 났다. 그렇기 때문에 군에 보급된 특공무술은 606부대의 특공무술을 모태로 하여, 5공수특전여단이 군부대에 맞는 전장무술의 특징을 살려서 새롭게 구성한 것이라 할 수 있다.
5공수특전여단의 특공무술은 1980년 9월 20일부터 11월 21일까지 약 2개월간, 특전사령관의 지시로 새로운 무술연구에 착수하여 25특전대대 15지역대에서 당시 15지역대장인 황인기대위를 필두로 15지역대원들에 의해 개발했다. 1980년 11월 21일 사령관 및 육본 참모부장, 각 여단장이 모인 가운데 시범을 실시하여 전시 공격형 군대무술로 인정받았으며, 특전사 이하 여단 교관요원에 대한 집체교육을 2차에 걸쳐 실시하여 이를 보급하였다.
1981년 4월 22일에 선보인 대한민국 육군본부 시범으로 인하여 보급에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되었고, 전국의 우수 장교들을 교육하여, 특공무술의 군 보급이 급속하게 진행되었다.
4.2. 장수옥
장수옥 총재 |
장수옥은 대한기도회 소속 합기도 사범을 하던 중에, 1978년 7월 1일부터 1980년 10월 31일까지 제606특공부대, 제27특공부대의 무도사범으로 활동했다. 이후 1980년 11월 1일 대통령경호실의 합기도사범으로 임용되었고 2002년 3월 31일 퇴직하였다.
장수옥 총재에 의하면 박정희대통령 시절에 대통령 경호실에서 쓸 무술을 필요로 하자 자신과 부인 철선녀 김단화씨가 경호실에 초청받아 만든 무술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것은 장수옥씨 본인의 주장일뿐 당시 606특공부대원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미 만들어진 특공무술에 술기 몇가지를 좀부드럽게 수정하였을뿐이라고 했다 당시 606특공부대 전원이 유단자라서 총검술을 비롯한 유도와 태권도 합기도 권투등 특공무술 관련 기술개발은 부대 자체 내에서도 가능했기에 특공무술을 만들었다고 당시 부대원들은 말한다. 그러나 부대원들 가운데 경호실의 무도종목인 합기도를 담당할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당시 사회에서 합기도사범으로 활동하고 있는 장수옥을 27특공부대장의 추천으로 시간제로 고용하게 되었다. 장수옥은 부대원들에게 합기도를 일부 교육하면서 특공무술 개발의 일부분이었던 합기도를 담당했다. 결국, 특공무술은 김택수의 지시로 번역한 세계 각국의 무도서적, 제606부대원들의 유도와 태권도 기술, 장수옥의 합기도 기술의 일부분을 종합한 것이었고, 이 기술들의 체계화는 특공무술 교범작업을 통해 진행되었다.
이에 대해서 특공무술 창시자라 주장하는 다른 사람들과 이견이 있다. 다른 특공무술 창시자들과 이견이 생기는 것은 주로 '특공무술'이라는 단어를 누가 먼저 쓰기 시작했느냐 하는 차이인 것으로 보인다. 장수옥 총재는 주로 합기도와 태권도를 수련했고, 철선녀씨는 쿵후를 수련했다고 하며, 때문인지 기술체계에서 이 무술들의 특징이 보인다고 한다.
대한특공무술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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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박노원
박노원 회장 |
제5공수특전여단에서 특공무술을 개발할 당시 민간의 무술지도사범(박노원)을 위촉교관으로 5개월간(1980.09.02~198011.20까지 민간무술사범으로 참여하였고 3개월은 5공수특전여단 교관들이 경찰대학 상무관에서)교육으로 술기와 교안을 완성하였다고 한다.
1980년 당시 특전특공무술 교범의 모든 기술지도는 박노원회장 자신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말하며, 1986년에 대한민국 육군본부에서 특공무술 교육참고 교재를 발간하였는데, 이때 박노원 회장의 자료와 기술을 정리하여 교재를 발간하였다고 한다. 당시 1980년
박노원회장의 (1956년생) 나이가 23세이다
국제특공무술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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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이원익
이원익 총재 |
5공수특전여단장 장기오의 지시으로, 이원익은 육군 사단에 있는 수색부대에 수 개월간 특공무술을 배운다음 제대하기 몇 개월 전 동두천에 있는 미 2사단에 가서 미군에 특공무술을 가르쳤다. 그 후 1982년 미국에 도장을 열어 텍사스 주립대(University of Taxas at Austin)를 시작으로 미국에 특공무술을 보급했다.
1986년 4월5일 장기오 당시 교육사령관 등 여러 군 실무자들이 텍사스 주립대를 방문하여 세계특공무술연맹 창립총회를 갖게 되어 장기오는 초대 총재로, 부총재로 이원익이 임명 받게 된다. 후에 장기오는 명예총재로, 이원익은 연맹총재로 부임하게 된다. 임명장
세계특공무술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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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명칭의 유래
특전사 특전무술 |
→ |
제606특공부대 특공무술 |
→ |
제5공수특전여단 특전무술 & 특공무술 |
→ |
육군 수색대, 특공대 특공무술 |
초기에는 순수한 무술이 결합되지 않고, 흉기를 가지고 특전작전을 수행하는 '특전무술'로 불리다가, 606부대에서 각종 무술을 종합한 뒤에는 김택수[20]중령이 606특공부대 장교들과 상의하여 '특공작전에 쓰는 무술'이라하여 '특공무술'이라 지었다고 한다. 무술무명을 차지철경호실장
에게 보고하고 박정희대통령이 승인후 특공무술이라는 무명이 탄생하게 되어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는 무술이다
1978년 11월 16일 청와대 연무관에서 606특공부대가 최초로 특공무술 시범을 보였고, 연이은 시범에서 사람들로부터 극찬을 받아 흡족한, 차지철 경호실장은 일반 군부대에도 특공무술을 보급시키라고 지시했다. 임무를 맡은 5공수특전여단장 장기오[21] 준장은 기존 시범위주의 특공무술에 만족하지 않고 군의 성향에 맞춰서 새롭게 구성하고자 했다. 결국, 당시 25대대장이었던 이정균[22] 중령은 606부대의 특공무술을 시범의 화려한 면보다 장병들에게 보급할 수 있는 간단하면서도 효과적인 특공무술로 재구성하였고, 이 당시에는 명칭을 '특전무술'과 '특공무술' 두 가지 모두 공동으로 사용 했다고 한다.당시 25대대 15지역대장을 역임하신 황인기대위를 중심을 15지역대 대원들의
노력으로 특공무술이 전장무술로서 확고히 다져지는 계기가 되었다
그 후 5공수특전여단은, 특전사이기 때문에 '특전무술'이라는 이름으로 한두 번 시범을 보이다가, 육군본부 시범 전, 특전무술이라고 하면 특전사만 하는 무술로 오해하기 쉽다고 판단, 육군에 보급하기 위해 기존 606특공부
에서 사용하던 '특공작전에 쓰는 무술'에서 이름을 가져와 사용하던 '특공무술'로 보급하였다고 한다.
6. 군대 전설 루머
북한에서 귀순하거나 포로로 잡힌 북한 특수부대원들과 한국 특수부대원들을 대련을 시켜보니 항상 깨져서 대비책으로 북한 무술+한국 무술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카더라가 내려오지만 근거 없는 군대전설일 뿐이다. 장수옥 총재와의 인터뷰에도 나오듯이, 귀순자 등과 대련을 한건 아니고 단지 북한의 격술을 확실히 능가할 새로운 무술을 만드는 걸 창설목표로 했던게 실제 대련 운운 스토리로 와전됐던 것이다. 남북한 군인이 실제 대련을 했다는 얘기는 어떤 소스에도 나오지 않는다.다만 종편채널인 TV조선에서 탈북자들을 모아놓고 토크와 장기자랑을 병행하는 프로그램인 ' 모란봉클럽' 을 방영하고 있는데 2016.9.17.날 방송된 53회차 방송에서 조선인민군 경보대대 출신 탈북자가 "북한군 특수부대 출신 탈북자인 자신이 1979년 4월 청와대에서 격술시범을 보이고 나서 청와대 경호실 인원들간의 대련에서 압승을 거두자 이에 충격받은 박정희대통령과 차지철 경호실장의 지시에 의해 기존 경호실 무술을 대체 무술을 만들었고 그게 바로 특공무술이었다." 라는 이야기를 한다. 그 이야기를 하니 출연진 중 한명이 위에서 서술한 군대전설 이야기를 하며 역사의 산증인을 만났다며 악수를 청한다. 하지만 아무 증거가 없이 본인 한 명의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므로 그 발언이 신뢰할만 하다고는 보기 어렵다. 정작 특공무술을 처음 개발하는데 관여했던 인물들은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없다. 게다가 저 위에 역사에서 나와 있듯이 이미 1978년에 특공무술이 만들어져서 수련하고 시범까지 보이고 있었다는게 공식적으로도 기록되어 있는데도, 이 탈북자에 따르면 '1979년'에 대련을 벌인 것을 계기로 만든게 특공무술이었다니 시간상으로도 전혀 맞지 않는다. 즉 명백한 허풍소설에 불과하다.
7. 사단 법인
대한특공무술총연합회국제특공무술연합회
대한무예특공무술협회
대한민국특공무술협회
대한특공무술연맹
대한특공무술협회
대한특전무술협회
대한호국특공무술총연합회
세계특공무술연맹
세계특공무술협회
실전특공무술협회 - 고양신문 기사.
특공무술국제연맹
특공무술협회 - 총재 트위터.
한국특공무술협회
[1]
다른 무슬들과 마찬가지로 한국어 발음 그대로 음차해서 영명으로 사용한다.
[2]
특공무술 승단 심사시 필요한 품새의 경우 상당히 간소화 되어있다.
[3]
단 민간의 특공무술은 협회가 난립하고 있는데 대충 가르치는 단체라면 그럴 수도 있다.
[4]
애초에 훈련의 대부분을 차지하는건 사격, 병기본, 각개전투지 맨손격투가 아닐 뿐더러 일반 징병제 병사들은 제대로 된 전투 훈련마저 받지 못 한채 작업을 하는게 주 업무이다. 물론 군대는 전투집단인만큼 다른나라처럼 맨손격투의 비중이 어느정도 있긴 하지만 대한민국 국군에서 실시하는 맨손격투 훈련은 태권도 뿐이다. 그리고 크라브 마가와 필리핀 무술은 각각 실전을 밥먹듯이 겪는 이스라엘군과 원래부터 연장 잘 다루기로 유명한 필리핀에서 생긴 극한의 실전 무술이다.
[5]
아무도 서커스를 무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과 맥락이 같다.
[6]
사실 요새 종합격투기가 하도 유행해서 초딩들 다니는 도장 말고 좀 실전적인 무술 도장에서는 사범이 배워본 무술을 이것저것 가르치는 경향이 있다. 아예 '종합격투기 체육관' 이라는 개념까지 생겼고. 그게 시합에 나가기엔 최적이긴 하다.
[7]
말이 발차기지, 사실상 그냥 밟아버리는거다. 진짜로 관절을 반대로 접는건 김성모 만화에나 나올 법한 물리학을 비틀어버리는 소리고 무에타이 등에서 볼 수 있듯 무릎을 차서 발차기가 나오지 못하게 경직시킨다든지,
택견에서 볼 만한 촛대차기[23] 라든가 아예 상대 무릎을 밟고 뛰어올라 찬다든지[24] 가라데의 관절차기와 같이 비슷한 기술들이 있다. 참고로 가라데에서 관절차기는 기본기 중의 하나지만, 급소공격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에 대련에서는 금지되어 있다.
[8]
물론 그러한 하나하나는 그 항목을 찾아보면 알겠지만 그 분야에 있어서 오랜 수련과 자격을 요구를 하는데 특공무술 교관들이 그러한 능력이 있다고는 할 수 없지만, 하나하나를 깊이 익힌다기보다는 가볍게라도 여러가지 훈련을 하는 게 도움이 될 수 있는 군용무술의 특성상 그러한 전인적 교육이 필요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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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기술은 도복, 글러브 착용 여부가 기술 시전에 크게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에 유도식 기술이 자주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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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도와는 다르게 옷깃을 잡지 못하고 권투 글러브를 착용해서 전체적인 기술 동작이 비슷하게 장비(몸통보호대+권투 글러브)를 착용하는 산타와 흡사하다.
산타 기술 영상1,
2,
3,
4 택견의 경우는 글러브는 안 끼지만 시합규칙상 옷을 잡지 못하고 상대 몸을 직접 팔로 붙들어야해서 비슷한 모양의 기술이 나온다.
택견 기술 영상1,
2,
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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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애초에 합기도 경기에서조차 합기도의 모체인
대동류 합기유술의 관절제압술은 잘 사용되지 않는데다가 특공무술은 글러브를 착용해 손가락으로 팔을 붙잡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사용빈도가 더 적다. 드물게나마 사용될때는 상대와 밀착한 채 팔이 얽힌 상태에서 기습적으로 사각으로 파고들어 자신의 팔뚝이나 팔꿈치로 상대의 팔을 짓누르거나 상대 팔꿈치 안쪽에 자신의 팔을 끼워넣고 꺾어눌러 고통을 줘서 항복을 받아내거나 자세를 무너트리는 용도로 쓰인다. 또한
합기 체계가 이미 한국식 합기도에서는 소멸된 상태라서 특공무술에서도 관절기를 걸기 위해 상대의 균형을 무너트릴 때 합기 기술은 사용하지 않고 그냥 체중을 실어 힘으로 찍어누르거나 직접 주먹이나 로우킥으로 타격해 자세를 흔드는 방식을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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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공무술의 발차기는 태권도의 영향을 상당히 많이 받았기 때문에 태권도 경기에서 등장하는 화려한 발차기(
내려차기,
나래차기, 뒤차기[25],
뒤돌려차기, 돌개차기[26] 등)의 기술이 자주 등장하며 여기에 합기도 겨루기처럼 로우킥 역시 허용된다. 사실 특공무술이 만들어질 때 태권도가 합기도와 함께 큰 영향을 주었고 현재 합기도나 특공무술 사범, 관장들이 태권도를 복수전공으로 배운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이상한일은 아니다. 하지만 점수를 위해 위력을 약화시킨 대신 빠르게 연달아차는
WT 태권도(올림픽 태권도) 겨루기식 발차기와는 달리 전신에 보호구를 찬 상대를 무력화할 수준의 타격을 입혀야 하기 때문에 같은 태권도식 발차기라도 체중을 최대한 실어 강하게 차는 것을 선호한다. 어찌보면 특공무술의 발차기는 경기에서 점수를 따기 위해 약화된 태권도 발차기를 실전격투에 사용할 수 있도록 다시 위력적으로 강화한 산물이라고 할 수 있으며 특공무술의 발차기가 WT 태권도에 비해 격투기로서의 실전성을 중시하는
ITF 태권도의 발차기와 비슷하다는 평가도 있다. ITF 태권도 경기 역시 점수제로 승부가 결정되지만 WT 태권도 경기와 달리 주먹질을 하며 거리를 좁혀오는 상대 선수를 저지할 위력이 필요해 몸통 발차기도 최소한 상대를 뒤로 밀어낼 수 있을 정도의 힘을 실어서 차며, 맞히기 어렵지만 명중에 성공하면 상대를 다운시키거나 아예 K.O시킬 가능성이 높은 상단 발차기는 기회를 노려 최대한 힘을 실어 강하게 차서 일격으로 상대를 무력화하는 것을 노린다.
ITF 기술 영상1,
2,
WT 기술 영상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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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는 권투 기본 기술인 잽, 스트레이트, 훅, 어퍼가 허용되며 등주먹치기(백스핀 블로우) 등의 변칙기술은 불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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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태클이라고 부르는 싱글/더블레그 테이크다운을 말하며 위 영상의 0분 21초, 2분 26초, 2분 55초 부분에 더블레그 태클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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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시합에서는 제한적으로 무릎차기를 허용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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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을 꺾는 제압술,
방족술, 나이프 호신술은 합기도 기술과 거의 동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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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국내 무술도장들은 기본적으로 가르치는 주 무술 외에 다른 무술을 병행해서 가르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끌어들일 수 있는 관원의 폭을 조금이라도 넓히기 위해서다. 예를 들어 태권도장에서 검은띠까지 올라간 수련생이 이제 태권도는 질렸으니 합기도를 배우러 가겠다며 도장을 떠나버리면 관장 입장에서는 손해가 크기 때문이다. 때문에 관장과 사범들은 기존 수련생이 타 무술을 수련하겠다며 도장을 옮기지 않게 잡아두기 위해, 그리고 새로 들어오는 수련생들에게 '우리 도장은 도장 주류 무술뿐 아니라 원하면 다른 무술도 함께 배울 수 있다' 고 홍보하기 위해 다른 무술을 복수전공하는 경우가 많으며 종종 그 과정에서 도장 주류 무술과 전혀 관련이 없는 무술을 끌어들이기도 한다. 예컨대 태권도장에서 한때 브라질리언 주짓수가 전국에서 유행했을때 일부 주짓수식 서브미션 기술과 그라운드 기술을 '누운 겨루기'라는 명목으로 가르치기도 했고 합기도장에서 태권도나 특공무술을 함께 가르치며 아예 간판에 '합기도/특공무술'이라고 무술 이름을 둘 이상 써놓는 일은 아주 흔하며 권투 체육관에서 무에타이와 킥복싱을 함께 가르치기도 한다.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에서 무술을 업으로 먹고 사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알려주며 도장 주류 무술이 인지도가 높고 인식이 긍정적이지만 국내에 보급이 잘 되지 않아서 도장 수가 적어 희소성이 높거나 관장의 실력과 명성이 입관을 원하는 사람들이 줄을 설 정도로 뛰어나지 않는 한 이 문제는 해결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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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차이는 합기도가 협회가 중구난방으로 난립한 채로 기술이 체계화되지 못한 채로 민간을 위한 생활체육으로서 스포츠화된 반면 특공무술은 협회 대립은 있을지언정 협회의 수가 적어 대립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고 무엇보다도 협회와 상관없이 무술의 시초가 국군(특전사)으로 통일되어있어 구심점이 존재하며 기술체계도 다양한 상황의 실전을 염두에 둔 군용무술로서 착실하게 체계화된 점에 기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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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호경비학회지, 2008, 제15호 서울대학교 체육교육과 강사 김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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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사 19기, 1978년 6월부터 1980년 5월까지 제606부대의 초대 부대장으로 특공무술의 개발에 관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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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사 12기, 1978년 10월 3일부터 1981년 3월 1일까지 5공수특전여단 여단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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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사 23기, 1980년 9월 13일부터 1981년 12월 30일까지 5공수특전여단 25특전대대장으로 특전무술(특공무술)의 개발에 실무를 담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