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5 12:25:54

타케 코시로

파일:일본중앙경마회 흰색 로고.svg JRA상 최다 승리 신인 기수 {{{#!wiki style="margin:0 -11px -5px; color:#f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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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
타케 유타카
1988
오카 준이치로
1989
츠노다 코이치
1991
후지타 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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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케 코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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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Take_Koshiro.jpg
<colbgcolor=#268300><colcolor=white> 이름 타케 코시로([ruby(武幸四郎, ruby=たけ こうしろう)], Koshiro Take)
국적 일본파일:일본 국기.svg
출생 1978년 11월 3일([age(1978-11-03)]세)
시가현 쿠리타군 릿토마치[1]
신체 177cm[2], 52kg, A형
직업 경마 기수
소속 일본중앙경마회
타케 쿠니히코(릿토)
→ 프리(릿토)
가족 아버지 타케 쿠니히코([ruby(武邦彦, ruby=たけ くにひこ)])(향년 77세)[3]
타케 유타카([ruby(武豊, ruby=たけ ゆたか)])([age(1969-03-15)]세)
데뷔 1997년(기수) 2018년(조교사)
은퇴 2017년 2월 28일 -
성적 및 상세정보 파일:netkeiba_logo.png 파일:netkeiba_logo.png

1. 개요2. 경력3. 주요 기승마 목록4. 주요 조교마 목록5.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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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의 전 경마 기수이자 현 조교사. 경마학교 13기생으로 아키야마 신이치로, 이마무라 야스나리[4] 등과 동기이다.

2. 경력

데뷔 2일차에 마일러즈 컵을 재패하며 아직도 깨어지지 않고 있는 최연소 중상재패 기록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형에 못지 않은 기수로 기대받았으나, 잦은 부상과 형보다도 훨씬 더 큰 키(178 cm)로 인한 신체조건의 불리함과 감량의 어려움 등으로 빠르게 슬럼프가 왔다.

2013년 메이쇼 맘보로 2관을 달성하며 부활의 조짐을 보이는가 했으나, 이후로도 기수순위 50위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다 2017년 커리어 20년만에 은퇴하였다. JRA 통산 693승.

3. 주요 기승마 목록

  • 굵게 표시된 경기는 GI/JpnI 경주.

4. 주요 조교마 목록

  • 굵게 표시된 경기는 GI/JpnI 경주.

5. 기타

  • 타케 유타카의 동생 아니랄까봐[6] 여기도 사생활이 굉장히 화려한 편이다.
  • 2011년 집 근처의 식당에서 경마꾼에게 얻어맞아 턱 부상을 당한 적이 있다. 현역 기수들이 폭행으로 물의를 일으키는 경우는 몇번 있었지만 생면부지의 인간에게 얻어맞아 다치는 흔치 않은 사고를 당한 것. 아무튼 이 부상으로 하반기를 통으로 날리면서 이 해는 통산 7승으로 커리어 로우를 기록하고 말았다.
  • JRA 통산 7번째의 JRA 중상 동착 달성 기수다. 달성 년도는 2002년. 달성 경주는 케이세이배.[7][8]
  • 메이쇼 도토의 마주이자 일본 경마업계에서 거의 성인 취급을 받는 대인배 마주인 마츠모토 요시오와의 관계도 유명하다.
    • 부친 타케 쿠니히코 시절부터 인연이 있던 마츠모토씨는 타케 형제를 자기 자식처럼 아꼈는데, 형 유타카가 부진에 빠져있던 암흑기 시기에도 자신의 말을 끊임없이 이어 줘 결국 부활하는데 공헌했고 이는 코시로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코시로의 데뷔전도 마츠모토 마주의 말에 기승한 것이었다. 특히 2010년대 초반에는 연간 승리수도 10승을 못 올리는 경우도 있었고 2009년부터 2012년까지의 4년간은 아예 중상 승리수 0승이라는, 내리막을 넘어서 거의 기수인생이 끝날지도 모를 부진에 빠져있었음에도 꾸준히 밀어주었고 2013년에는 메이쇼 군단에서도 오랜만에 큰 기대를 받던 메이쇼 맘보의 안장을 맡긴다. 하지만 3관 첫 관문인 오카상에서 기대에 못미치는 10착 대패를 당하고, 당연히 마츠모토 마주의 주변인물들은 "코시로는 이제 글렀다. 기수를 교체해야 한다"라고 주장을 했다. 이를 알게 된 코시로는 마츠모토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차마 뭐라 말은 못하고 머뭇거리게 되는데 마츠모토 마주가 조용히 "오크스, 가고 싶은거니?"라고 물었고 의지를 다진 코시로는 "네, 반드시 오크스에 가고 싶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이에 마츠모토 마주가 "알았다. 등록해 두마" 라며 200만엔의 추가 비용을 내 가며 오크스에 등록[9]하고 다시 안장을 맡겼다. 이에 분발한 코시로는 결국 오크스에서 우승하게 되고, 승리 후에는 감격에 겨워 마츠모토 마주와 함께 펑펑 울었다고. 두 사람이 함께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카메라에도 잡혀서 타케 코시로의 "남자의 눈물"로 유명해 지기도 했다. 이후 코시로는 메이쇼 맘보로 GI 2승을 더한 총 3승으로 은혜에 보답한다.
    • 여담이지만, 해당 오크스에는 형 타케 유타카는 물론 친한 선배인 요코야마 노리히로도 참가했었다. 두 사람 모두 코시로의 부활을 바라고 있었는데 최종직선에서 메이쇼 맘보가 쭉쭉 치고 나가자 아끼는 후배의 부활을 바라던 요코야마가 "코시로! 달려!"라며 응원을 했고, 우승을 하자 잘했어 라고 외치며 아주 좋아했다고 한다. 이 모습를 옆에서 보던 타케 유타카는 "형인 나보다 더 좋아하더라"라며 회상했다. 그리고 정작 요코야마 노리히로 자신은 14착으로 대패했다(...)


[1] 現 시가현 릿토시 [2] 체중을 항상 50kg 내외로 유지해야 하는 기수들에게 있어 정말 큰 키. 이 때문에 현역 당시 골밀도가 70대 노인 수준이었다고 한다. [3] 1938년 10월 20일생이며 2016년 8월 12일에 사망했다. 대표적인 말은 토쇼 보이가 있으며, 1957년부터 1984년까지 25년 넘게 기수 생활을 하였다. [4] 이마무라 세이나 기수의 부친. [5] 기수 데뷔 다음날이다. 첫 중상 출주인 것은 물론 커리어 첫 승리, 그리고 아직도 깨어지지 않은 최연소 중상재패 기록이다(18세 3개월 28일). [6] 타케 유타카도 여성 편력이 화려한 편이다. [7] 1955년 쿠모하타 기념(1980년 폐지), 1961년 닛케이 신춘배, 1976년 아이치배, 1979년의 후쿠시마 기념, 1988년의 타마모 크로스가 참가한 한신 대상전, 1997년의 신코 윈디가 참가한 헤이안 스테이크스에 이은 7번째. 이 다음으로 2007년 한큐배, 2010년 우준 빈마(오크스)(최초 GⅠ 동착), 2019년 필리즈 레뷔, 2021년 튤립상까지 11번 발생했다. [8] NAR 관할의 지방경마라면 JRA보다 동착이 잦아서 현재까지 1956년 후나바시 기념, 1959년 퀸 상, 1982년 아랍 왕관전, 1984년 토츠카 기념, 1985년 블루버드 컵, 1988년의 코즈카타 상과 우라와 기념, 1991년의 서일본 아랍 더비와 미치노쿠 대상전, 1992년 제왕상, 1996년 니이가타 사츠키상(新潟皐月賞), 1997년 스파킹 레이디 컵, 2000년의 오팔 컵, 셋츠배, 효고 아랍 퀸 컵, 2013년 하가쿠레 대상전, 2018년 소노다 FC 스프린트의 17번이나 동착이 발생했다. [9] 오카상 상위권에게는 오크스 출전권이 주어지지만 10위인데다 다른 조건도 조금 모자라서 따로 등록을 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