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30 20:33:03

쿠만-킵차크 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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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속기간 10세기~1241년
수도 사라이
국가원수 카간
민족 킵차크인, 쿠만인, 하자르인
언어 킵차크어
종교 텡그리
성립 이전 하자르 칸국, 페체네그족, 킵차크족
멸망 이후 킵차크 칸국

1. 개요2. 루스 공국들과의 혈투3. 부족 연맹 국가4. 멸망과 그 이후5.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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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Cuman/Cumania. 또는 Cuman-Kipchak Confederation 혹은 러시아어 표현을 옮겨 폴롭치, 폴로베츠(Polovtsy)라고도 부른다.

11세기 말~13세기 초 몽골의 침공 때까지 볼가 강 하류 평원부터 오늘날의 카자흐스탄 일대에 이르는 광활한 영토를 다스린 튀르크계 부족 연맹체로 페체네그족이 레부니온 전투, 베로이아 전투에서 동로마 제국에게 대패하며 소멸한 이후에는 다뉴브 강 ~ 카프카스에서 발하슈 호 인근에 이르는 광대한 영역을 차지해 그 곳에서 거주했다.

11세기 말에 동로마 제국의 용병으로 고용되었으며 전성기인 12세기에는 다뉴브 강에서 아랄 해 북안의 드넓은 스텝 지역을 다스리며 헝가리( 마자르), 페체네그족, 동로마 제국, 루스 공국들, 볼가 불가리아, 조지아 왕국, 카라키타이( 서요), 호라즘 왕조 등과 접경하며 교류 및 전쟁을 치렀다.

특히 키예프 공국과 100여년 간의 혈투를 치러 10세기 말 ~ 11세기 중반에 이르렀던 키예프 루스의 번영을 종식시키고 둘 다 몽골 군대의 말발굽에 짓밟히게 되었다.

당대 연대기등에서는 쿠만을 킵차크(Kipchak)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쿠만족이 킵차크인의 일파이기도 했지만 당시 동유럽인들이 주로 접한 킵차크인이 쿠만족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시기 동유럽사나 캅카스사에서 언급되는 킵차크인은 보통 쿠만족을 부르는 거라고 봐도 무방하다.

일명 ' 쿠만 마스크'라고도 불리는 남성의 얼굴을 묘사한 듯한 면갑의 이미지로도 상당히 유명하다.

2. 루스 공국들과의 혈투

쿠만의 역사는 루스 공국과 전쟁의 역사라고 해도 될 만큼 시작부터 끝까지 루스 공국들과의 교역과 전쟁이 빈번했다.

키예프 공국은 지형적으로 흑해에 맞닿은 크림반도와 드네프르 강의 하류를 통해 동로마 제국과 직접 교역하며 동로마의 물건들을 육로를 통해 중부 유럽으로 실어 나르고 동시에 운하와 강으로 연결되는 북해 쪽 해로로 북유럽 국가들에게 파는 중개 무역으로 번영했는데 이는 키예프 공국이 11세기 초 번영을 누릴 수 있었던 비결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권이 모이는 곳에는 언제나 경쟁이 있듯 모든 무역의 시발점인 크림 반도로 진출하려는 흑해 북안의 유목민족들( 페체네그 - 쿠만 등)은 키예프 공국의 경계대상 1호였다. 특히나 우크라이나의 대평원 지대는 가축을 방목하기에도 너무 적합한 환경인데다 무역로의 부는 유목민들에게도 탐스러운 이권이었다.

결국 어떻게든 무역로만은 사수하려던 키예프 공국 앞에 11세기 중반, 페체네그족을 쫓아내고 나타난 쿠만족은 그리 만만한 세력이 아니었다.

두 세력의 역사적인 첫 만남은 1055년에 예상외로 평화적으로 이루어졌다. 아직은 쿠만 세력이 드네프르 강 동쪽에서 완전히 세력을 다잡지 못해서 그랬던 것으로 여겨지며 1061년, 유력한 부족장 소칼의 지휘 하에 쿠만족 군대가 키예프 남쪽의 프레야슬라프 공국을 잔혹하게 짓밟았다. 이 사건이 175년 동안 이어질 기나긴 전쟁의 시작이었다. 1068년, 얄타 강 전투에서 쿠만 군대는 야로슬라프 1세 무드르이의 세 아들이 이끄는 군대를 물리쳤고, 뒤이어 대규모 물적•인적 약탈을 자행하여 이슬람 세계에 슬라브인 노예가 넘쳐나게 되었다. 쿠만인들이 어찌나 날뛰었던지 오늘날 우크라이나의 대부분 지역이 몽골의 침입에 앞서서 11세기 말에 이미 초토화되어 있었다고 한다.

1093년 5월에는 체르니코프 공이자 훗날 키예프 대공이 되는 블라디미르 2세 모노마흐(1073~1125 재위)를 스투그나 강 전투에서 격파하여 기세를 올렸으나, 다른 루스 공국들의 지원군을 받아 지휘한 모노마흐에게 패배하여 일시적으로 물러났다. 이 혼란의 와중에 쿠만족의 지배를 받고 있었던 페체네그족 일부와 오구즈 튀르크족 일부가 탈출하여 키예프 루스로 귀순했고, 변방 방어군이 되었다.

11세기 말에 쿠만인을 이끈 보냐크 칸(Boniak khān)은 1096, 1097, 1105, 1107년 등 수시로 키예프 원정을 나갔다. 특히 1096년에는 키예프를 점령한 이후 궁전을 불태우고, 우크라이나 중부에 이주해 정주하기도 했다. 키예프의 유명한 동굴 수도원도 이때 파괴되었다. 그 와중에 보냐크 칸은 1099년, 헝가리 원정을 떠나 승리하고 왕실 보물을 약탈해 오기도 하는 여유를 부렸다. 쿠만인들의 키예프 점거는 1107년, 대공들이 이끄는 루스 연합군이 루브니 전투에서 승리할 때까지 이어졌다.

루브니 전투 이후, 쿠만은 루스 공국들과의 대결에서 한동안 밀리는 형세를 보였다. 블라디미르 2세 모노마흐가 키예프 대공이 되어, 분열되어 있었던 루스 공국들을 일시적으로나마 재통합한 덕분에 통일된 힘 앞에서 처참하게 밀려버린 것이다.

그러나 그 시기는 오래 가지 않았다. 모노마흐와 그의 아들이 죽자, 루스 공국들은 키예프 대공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기나긴 내전에 돌입했고, 쿠만족은 그 틈에 힘을 회복했을 뿐만 아니라 루스 공국들을 마구잡이로 약탈하며 공세로 전환했다. 이러한 약탈은 13세기 초엽까지 계속되었다. 그들의 약탈이 중단된 것은 루스 공국들과는 차원이 다른 몽골 제국의 침입 때문이었다.

3. 부족 연맹 국가

12세기경 유대인 여행가의 기록에 의하면 그들에게는 왕이 없었고 부족 연맹의 형태로 존재했다고 한다. 전쟁시를 제외하면 하나로 단결하지 않은 점이 특기할 만하다. 또한 전쟁이 끊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시의 지도자가 세습 왕조를 창건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여러 세력끼리의 견제가 잘 이루어졌다고 볼 수도 있다.

4. 멸망과 그 이후

1239년, 이미 루스 공국들 대부분을 평정한 몽골군에게 패배하며 흑해 이북의 스텝 지대를 잃었고, 1241년에는 왈라키아와 다뉴브 강 유역마저 빼앗기면서 몽골에 의해 멸망했다. 몽골이 쿠마니아를 지배하던 시기엔 킵차크 칸국이라는 명칭으로 불리기도 했는데, 당시 그 지역에 살던 다수의 튀르크계 토착민이 킵차크족이었기 때문이다.

몽골이 유라시아 스텝 지역의 쿠마니아를 무너뜨린 이래 많은 쿠만인들이 포로로 붙잡혔고 근동을 비롯한 여러 지역에 노예로 팔려 나갔다. 그 후예 중에는 아인잘루트 전투에서 키트부카의 몽골 서정군을 무찌르고 맘루크 왕조의 전성기를 연 바이바르스도 있었다. 복수닷! 쿠만 출신 노예 용병이 이슬람의 방패가 되기까지

쿠마니아의 멸망 이후, 쿠만인들 중 상당수가 인접한 헝가리 왕국으로 피난을 갔다. 당시 몽골과의 참혹한 전쟁 이후 심각한 인구 부족에 시달리던 헝가리[1]는 이들을 받아들였다. 쿠만인들은 중부 헝가리에 정착한 뒤 약 17세기까지 천천히 동화되면서도 정체성을 지켜나갔다. 이때 쿠만족을 이끌었던 군주는 코티얀[2]이었는데 그는 헝가리인들에 의해 죽임을 당했고[3] 이에 쿠만인들이 봉기하여 상당수가 불가리아로 옮겨 갔지만 헝가리의 요청으로 일부는 다시 돌아왔다.

또한 쿠만인 공주[4]와 헝가리의 왕이던 이슈트반 5세의 혼인 동맹 이후, 둘 사이에서 라슬로 4세가 태어나기도 했는데 그는 '쿠만 왕 라슬로'라고 불릴 만큼 친쿠만적인 정책을 펼치다가 헝가리 귀족들의 반감을 사서 쫓겨나기도 했다.[5]

쿠만인들은 동로마 제국처럼 헝가리에서도 주로 용병으로 활약했다. 1403년에 헝가리-크로아티아 국왕 지그몬드가 보헤미아 국왕인 이복형 바츨라프 4세를 유폐했다. 보헤미아의 친 바츨라프파 귀족에 대항해 지그몬드는 수천 명의 쿠만인 전사들을 용병으로 고용하여 보헤미아를 침공했다.[6]

쿠만인들은 헝가리 중부 일대에 정착했는데 이들의 정착지역은 크게 부다페스트 남쪽의 소(小)쿠마니아(little cumania, Kiskunsag)와 동쪽의 대(大)쿠마니아(greater cumania, Nagykunsag)로 나뉘었다. 헝가리의 쿠만인들은 왕실을 위해 봉사하며 자치권과 문화 전통을 이어나갔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들은 점차 주류 헝가리인에 천천히 동화되었다. 대쿠마니아와 소쿠마니아는 헝가리 왕국 내에서 무려 대타협 이후인 1870년대까지도 존속했다. 쿠마니아는 이후 헝가리 왕국이 근대화 과정을 거치는 와중에 다른 지역들과 이런저런 통폐합과정을 거치면서 사라졌다. 소쿠마니아는 현재 헝가리 남부의 바치-키슈쿤(Bács-Kiskun) 주로 통합되었고, 대쿠마니아는 헝가리 동부의 야스-너지쿤-솔노크 주(Jász-Nagykun-Szolnok)로 통합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오고 있다.

5. 기타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2: 결정판에서 타타르, 불가리아, 리투아니아와 함께 신규 문명으로 추가되었다.

토탈 워: 아틸라의 mod로 Medieval Kingdoms Total War 1212 AD에서 플레이가 가능한 57개 세력 중 하나로 추가되었다.

Kingdom Come: Deliverance에선 주요 적으로 쿠만족 용병들이 등장하는데, 실제 시대상으론 몽골 제국의 침략으로 쫓겨나 헝가리에 정착한 이후이기 때문에 작중에 등장하는 쿠만족들은 헝가리어로 말하며, 이와 관련된 이벤트들도 존재한다.

마운트 앤 블레이드 2: 배너로드의 국가 중 하나인 쿠자이트의 모티브가 된 민족 중 하나이다. 쿠자이트의 무장(특히 안면마스크), 작위 명칭 등 대부분이 실제 쿠만과 흡사하다.

후스 전쟁을 배경으로 하는 만화 소녀전쟁에서 헝가리 국왕 지기스문트의 휘하에서 종군하는 쿠만인 용병들이 등장한다. 왕의 부하로 고용된 입장이면서도 말은 거의 안 듣는다.


[1] 쿠만인들이 피신한 당시 헝가리 왕국의 군주는 벨러 4세였다. [2] Kotian Khan 또는 Koeten.(1205~1241) [3] 쿠만인들이 헝가리 왕국에 정착하는 데 있어서 벨러 4세가 도움을 준 것에 대해 불만이 있었던 헝가리 왕국의 귀족 및 기사들이 오스트리아의 공작인 프리드리히 공작(신성 로마 제국 황제 프리드리히 2세와 다른 인물이다.)과 결탁하여 코티얀을 암살한 것으로 추정된다. [4] 상술한 코티얀 칸의 딸이다. [5]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혈통을 지닌 쿠만인들에 의해 암살당하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 [6] 후술할 게임인 < Kingdom Come: Deliverance>의 프롤로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