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10 01:25:40

클르츠 아르슬란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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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 앗 딘 클르츠 아르슬란
페르시아어, 아랍어 : عز الدین قلج ارسلان بن مسعود
튀르키예어 ʿIzz ad-Dīn Kilij Arslān ibn Masʿūd

생애 1113년 ~ 1192년 8월
재위 1156년 ~ 1192년 8월

1. 개요2. 즉위3. 영토 확장4. 혼란과 십자군5. 내전과 죽음6. 기타

1. 개요

룸 술탄국의 5대 술탄. 부왕 메수트에 이어 룸 셀주크를 안정적으로 통치하였고, 동로마 제국 다니슈멘드 모두를 격파하며 동서로 영토를 확장하였다. 다만 말년에 아들들에게 영토 분봉을 해준 것이 내전으로 이어졌고, 여기에 3차 십자군까지 남하하며 혼란을 겪었다. 다행히 막내 아들이자 후계자인 케이휘스레브 1세의 도움으로 내분은 어느정도 종식된다.

2. 즉위

1156년 부왕 메수드 1세 사후 43세의 나이로 계승하였다.[1] 1159년 동로마 제국 마누일 1세 십자군 국가들을 복속시키고 누르 앗 딘 마흐무드와 협약을 맺은 후 회군하며 콘야 인근을 지나자 공격했으나 별 타격을 입히지 못하였다. 그리고 이듬해 마누일의 조카 요안니스 칸타쿠지노스가 보복 원정을 가하자 그에 맞섰으나 패배하였고, 평화를 대가로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친히 나아가 복속을 표하는 굴욕을 겪어야 했다. 1173년 클르츠 아르슬란은 누르 앗 딘과 연합하여 모술 장기 왕조의 사이프 앗 딘 가지 2세에 맞섰다.

3. 영토 확장

한편 동로마 제국과의 평화는 15년간 이어졌지만 그동안에도 양측은 국경에 요새를 증축하며 서로를 방비하였다. 그러던 1175년 클르츠 아르슬란은 누르 앗 딘의 사망으로 무방비 상태에 놓인 다니슈멘드를 공격해 여러 지역을 점령하였다. 마누일 1세는 룸 셀주크에게 속국으로써 해당 영토의 양도를 요구했는데, 클르츠 아르슬란이 거부하자 협상을 거부하고 콘야 점령을 목표로 친정에 나섰다. 이로써 벌어진 1176년의 미리오케팔론 전투에서 클르츠 아르슬란은 승리하였고, 영토의 현상 유지와 도릴라이온 요새 철거를 조건으로 평화 협정을 맺었다.

1178년 클르츠 아르슬란은 남은 다니슈멘드 영토를 병합하며 그를 멸망시켰고, 이로써 동부 아나톨리아를 평정할 수 있었다. 이듬해에는 예루살렘 순례에 나선 샹파뉴 백작 앙리 1세를 사로잡았고, 후자는 마누일의 보석금 납부로 풀려났으나 영지로 돌아가던 중 사망하였다. 1180년 적수 마누일이 사망하자 동로마 제국의 혼란을 틈타 남부 해안을 원정하였고, 와지르 (재상) 이크티야르 앗 딘을 시리아로 보내어 아이유브 왕조 살라흐 앗 딘 유수프와 동맹하였다. 1182년에는 동로마령 요새도시 코타이온 ( 퀴타히아)을 점령하였다.

4. 혼란과 십자군

1185년 클르츠 아르슬란은 동로마 황제 이사키오스 2세와 휴전을 맺어 10여년간 이어진 전쟁을 마무리지었다. 이듬해 고령이라 여긴 그는 11명의 아들들에게 영지를 나눠주었는데, 그들은 곧장 골육상쟁에 돌입하며 룸 술탄국에 혼란을 초래하였다. 얼마 후 프리드리히 1세 3차 십자군을 이끌고 나타나자 클르츠 아르슬란은 그에게 자유 통행을 보장했으나 쿠트브 앗 딘을 포함한 일부 아들들과 호족들은 항전에 나섰고, 필로멜리온 전투와 이코니온 전투 결과 모두 패배하였다. 그 과정에서 수도 콘야는 십자군의 약탈과 학살로 폐허가 되었다.

5. 내전과 죽음

십자군이 떠난 후 쿠트브 앗 딘은 패잔병을 모아 콘야로 돌아와 수도를 장악하였고, 클르츠 아르슬란은 카이세리로 피신하였다. 이에 쿠트브 앗 딘은 술탄을 칭하였으나 1192년 클르츠 아르슬란은 다른 아들 카이휘스레브와 함께 콘야를 수복하고 쿠트브 앗 딘이 피신한 악사라이를 포위하였다. 다만 포위 도중 클르츠 아르슬란은 77세의 나이로 사망하였고, 카이휘스레브 1세가 술탄으로 계승하였다.

6. 기타

1186년 클르츠 아르슬란은 11명의 아들들에게 영토를 분할하였다.
같은해 막내딸 셀주키 하툰은 압바스 왕조의 칼리파 앗 나시르와 결혼하였다. 다만 그녀는 2년 후에 요절한다.

뤼베크의 아르놀트에 따르면 벨프 가문의 작센- 바이에른 선제후인 사자공 하인리히가 1172년 예루살렘 순례를 위해 아나톨리아를 지나자 클르츠 아르슬란은 타르수스에서 그를 영접하고 '피의 형제'라며 포옹했다 한다. 이에 하인리히가 연유를 묻자 클르츠 아르슬란은 먼 옛날 한 게르만 여인이 루스의 군주와 결혼하여 딸을 낳았고, 그녀가 아나톨리아로 와서 룸 셀주크 왕가의 선조가 되었다 답했다 한다.

사후 콘야의 알라에딘 모스크 옆에 조성된 고깔형 영묘에 매장되었다.


[1] 룸 술탄들 중에서는 처음으로 분란 없이 계승하였다. 2대 클르츠 아르슬란의 경우 부왕의 사망 당시 포로 신세였고, 3대 멜리크샤 역시 그러했으며 4대 메수트도 형을 폐위하고 술탄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