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9:16:20

콜롬비아-베네수엘라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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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 베네수엘라

1. 개요2. 역사적 관계
2.1. 현대 이전2.2. 현대
3. 관련 문서4. 외부 링크

1. 개요

콜롬비아 베네수엘라의 관계. 양국은 과거에 스페인의 지배를 받았고 스페인에서 독립했을 때 잠시 대콜롬비아란 국가를 이뤘다.

2. 역사적 관계

2.1. 현대 이전

대항해시대 당시 콜롬비아와 베네수엘라는 스페인의 지배하에서 누에바 그라나다 부왕령에 속했다. 카르타헤나 데 인디아스(오늘날의 카르타헤나 데 콜롬비아)는 스페인의 아메리카 식민지에서 가장 중요한 식민 거점 중 하나였고, 베네수엘라에 해당하는 지역은 대항해시대 당시 카르타헤나를 보조해주는 역할을 맡았다.

페루 부왕령의 포토시 은광[1]에서 생산된 막대한 양의 은은 노새에 실려 카르타헤나로 이동되어 대서양을 건너 유럽 스페인 본토로 운송되었다. 한 편 카르타헤나 데 인디아스는 서아프리카와 해안 지대와 비교적 가까운 위치라서 포르투갈인 노예 상인들이 판매하는 흑인 노예들이 스페인령 아메리카 식민지로 들어오는 입구 역할도 맡았다. 카르타헤나를 중심으로 막대한 양의 돈이 오고가자 영국의 사략선들이 이를 노리고 스페인 선박들을 나포하곤 했으며, 심지어 카르타헤나까지 약탈하려 시도하곤 했다. 스페인 제국 측은 이를 방어하기 위해 카르타헤나 동부 밀림 지역의 해안 식민지들을 추가로 건설, 확장하였는데,[2] 이는 오늘날 베네수엘라의 식민 도시 개발로 이어졌다. 오늘날의 베네수엘라의 수도가 되는 카라카스는 당시 스페인 제국 해군에 식량을 공급하는 역할을 맡았고 동쪽의 아라야 반도 염전에서는 상당한 양의 소금이 생산되었다. 물론 식민 도시들을 몇 개 더 세웠다고 영국 사략선들을 완전히 격퇴할 수는 없었지만 대신 적대국들의 카리브 해 식민지 기지들이 추가로 건설되는 것은 막고, 영국이나 네덜란드 배들이 카르타헤나 대신에 좀 덜 중요한 도시나 섬들[3]을 약탈하게 만드는 효과는 얻을 수 있었다.[4]

스페인 식민 시절 아메리카 대륙의 은을 카르타헤나 항구로 이동시키는 나귀와 노새들은 야노스 평원에서 사육되었는데, 이는 오늘날 콜롬비아 동부와 베네수엘라 서부에 위치한 야노스 평원(Llanos)에 살던 목동들인 야네로들의 역할이었다. 거친 환경에 익숙하고 승마술이 뛰어났던 이들은 후일 이들은 19세기 초 스페인에 대항한 반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는데 이 때문에 콜롬비아와 베네수엘라는 그란 콜롬비아라고 해서 독립 직후 한 나라로 엮었던 적이 있다. 시몬 볼리바르는 미국을 모방하여 연방국가를 이룰려고 했지만, 시몬 볼리바르가 대통령에서 물러나고 사망한 뒤에 그란 콜롬비아는 콜롬비아와 베네수엘라, 에콰도르로 따로 분리되었다.

2.2. 현대

양국은 스페인의 지배와 영향을 받아 스페인어가 공용어이고 천주교도 퍼져 있지만, 정치적으로 대콜롬비아의 정통성을 둘러싸고 미묘한 경쟁심리가 있다. 한 편 20세기 중반에 베네수엘라의 유전이 개발된 것을 계기로 베네수엘라 경제가 콜롬비아를 압도하는 가운데 콜롬비아는 내전으로 뒤숭숭한 상황이 되면서, 베네수엘라인들은 자신들이 콜롬비아를 역전했다며 조롱하기도 했다.[5] 21세기 기준 콜롬비아는 친미국가이고 베네수엘라는 반미 외교 노선을 타게 되었다. 콜롬비아에는 미군이 주둔하고 있다.

두 나라는 시도때도 없이 투닥거리더니 2010년 7월 결국 국교단절을 선언했다. 콜롬비아가 반군 지원을 해오던 베네수엘라를 계속 비난해오던 차에 결국 돈 베네수엘라가 2010년 7월 외교 관계를 단절, 콜롬비아 외교관들에게는 72시간 내 출국 명령을 내렸다. 물론 콜롬비아도 지지 않고 국교단절을 선포하며 베네수엘라 외교관들을 전부 추방했다. 그것으로 모자랐는지 군에 비상상태를 선언하고 2300㎞에 달하는 국경지역으로 병력을 대거 투입하는 군사적 압박도 보였으나[6] 남아메리카 국가연합(UNASUR)의 주도로 화해했다. 그러다가 콜롬비아도 멕시코, 미국과 함께 베네수엘라를 제재했다. # 이는 후에 베네수엘라 경제가 몰락하면서 콜롬비아 쪽으로 망명 내지 피난을 떠난 베네수엘라인들에게 커다란 악재로 작용했다. 또한, 베네수엘라는 콜롬비아와 정치, 외교관계를 단절했다. # 영사관계조차 단절된 상태이다. #

콜롬비아의 두케 대통령은 2019년 1월 14일에 라디오연설에서 남미국가연합을 대신해서 남미의 친미국가들을 중심으로 한 프로수르(PROSUR)를 출범시켜 베네수엘라의 영향력을 막겠다고 발언하자 베네수엘라측은 반발했다. #

베네수엘라가 산유국으로 여유로울 동안 베네수엘라인들은 이주 근로자로 온 콜롬비아인들을 차별하였으나 베네수엘라 경제 위기 이후 상당수의 베네수엘라인들이 콜롬비아로 난민이 되어 이주한 상황이다. 콜롬비아내의 베네수엘라인들은 콜롬비아에서 차별을 받고 있다.
콜롬비아가 100만 명의 베네수엘라 난민을 수용한 이유
베네수엘라 경제난으로 인한 난민이 300만명을 넘은 시점에서 콜롬비아는 100만명 이상의 난민을 수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베네수엘라의 로스몬헤스 군도를 두고 콜롬비아와 베네수엘라는 영토갈등이 있다. #

콜롬비아의 이반 두케 대통령은 콜롬비아내 베네수엘라 미등록 이민자 100만명에게 체류 자격을 부여한다고 밝혔다. #

2022년 콜롬비아 구스타보 페트로 정부가 들어서자 다시 외교관계 복원가진다. # 7년 만에 국경 개방도 가졌다. #

베네수엘라가 콜롬비아 대선에 개입되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

3. 관련 문서

4. 외부 링크



[1] 오늘날 볼리비아에 해당하는 위치 [2] 참고로 오늘날 베네수엘라 동부부터 프랑스령 기아나에 이르는 기아나 일대는 토양이 무척 척박하여 개발이 힘든 지역이다. 이런 지역에 식민지들을 일부러 건설한 것은 경제적인 이유보다는 안보 상의 이유가 더 컸다. [3] 트리니다드 섬이나 바베이도스 섬 등등 [4] 실제로 영국과 네덜란드는 카르타헤나에서 한참 동쪽에 있는 비교적 만만한 대상이었던 아라야 반도 염전 식민지들을 집중 공격하면서 카르타헤나가 비교적 안전해졌다. [5] 반대로 2015년 이후에는 베네수엘라 난민들이 콜롬비아로 대거 유입되는 상황이다. [6] 물론 콜롬비아와의 전쟁은 미국과의 전쟁이라서 전쟁까지는 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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