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20 10:24:47

육중완

커피자루에서 넘어옴
<colbgcolor=#009bcf><colcolor=#fff> 육중완
陸仲完|Yook Joongwan
파일:육중완(장미여관).jpg
출생 1980년 1월 4일[빠른생일] ([age(1980-01-04)]세)
(정부 직할) 부산시 서구 감천동
(現 부산광역시 사하구 감천동 감천문화마을)[2]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본관 옥천 육씨 (沃川 陸氏)[3]
신체 182cm|87kg
학력 삼성중학교 ( 졸업)
경성전자고등학교 ( 졸업)
동의과학대학교 ( 전기과 / 전문학사)
가족 부모님
배우자 정현주(1980년생, 2016년 결혼)[4]
육온음(2018년 3월 19일생)
병역 대한민국 육군 병장 만기전역
데뷔 2011년 11월 12일 장미여관 데뷔
소속사 록스타뮤직앤라이브
소속그룹 육중완밴드
포지션 보컬, 기타
링크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1. 개요2. 활동3. 논란4. 방송 내역5. 기타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 싱어송라이터.

과거에 장미여관에서 메인보컬로 유명했지만 현재는 장미여관 전 멤버 강준우와 함께 2인조 육중완밴드로 활동 중이다.

2. 활동

장미여관의 멤버 중에서 개인 예능 활동이 활발하며 무한도전 자유로 가요제 출연 이후 나 혼자 산다에서 맹활약을 펼쳤다. 여기서 그의 옥탑방이 공개되었으며 소싯적의 정형돈보다 조금 나은 수준의 청결도라서 노홍철이 놀라는 건 물론이고 어머니가 놀라자 "어머니께 걱정 안 끼쳐드리려고"라는 설정(혹은 변명) 드립을 친 적이 있었다.

고정 멤버가 된 뒤에는 옥탑방에서 무지개 모임을 열면서 2년 동안 활동했으며, 2016년 3월 18일을 끝으로 결혼으로 인해 명예 하차했다. 그리고 하차한 지 2일 뒤에 정현주와 결혼했고, 나이 마흔에 늦둥이 딸을 얻었다.

이렇게 활발한 활동을 한 덕분에 2014년에는 MBC 방송연예대상에서 올해의 뉴스타상을 수상했고, 2015년에는 SBS 연예대상에서 베스트 엔터테이너상를 수상했다.

2015년에는 복면가왕 4차 경연에서 우리 아빠 힘내세요라는 가명으로 참여했으며, 대중들한테서 웃기고 지저분하고 뚱뚱하고 무식한 아저씨라는 인식이 많이 퍼져있어서 자신이 '노래 부르는 아저씨'라는 것을 대중에게 각인시키기 위해 나왔다고 밝혔다. 그 뒤 유부남 대열에 합류한 강준우 역시 복면가왕 참여해서 그가 결혼하는 날짜에 나와 결혼을 축하하면서 자신도 유부남이 될 것이라는 걸 알렸다.

2015년 8월 14일 노브레인 이성우와 함께 SBS 나이트라인 초대석에 나왔다. 인터뷰 영상

그 뒤 2018년 복면가왕 82차 경연에서 소매는 안 돼! 통 큰 도매남! 커피자루로 재참여했다. 해당 경연에서 갈아갈아 갇혀 확 갇혀! 그라인더, 우주 라이크 우주선?을 이겼으며 나한테 걸리면 마이아파~ 동막골소녀에 이어 준우승했다. 정체를 밝힐 때 요요 현상이 온 적이 있었고 이제는 복합적인 생각을 음악으로 표현하고 싶었다고 밝혔으며 설레는 느낌을 오랜만에 느꼈고 첫 출연 때의 아쉬움을 해소해서 좋았다는 소감을 전했다.

그 외에도 불후의 명곡 전설을 노래하다에서 그룹으로 종종 참여를 하고 있다.

2022년 9월 4일~9월 11일 복면가왕 371회에서 고유진과 같이 꽃 같은 가창력으로 가왕을 노린다! 꽃보다 가왕이라는 가명으로 참가했다.

3. 논란

3.1. 장미여관 해체

2018년 11월 12일에 장미여관 멤버 간 갈등 끝에 7년 만에 밴드를 해체했다. # 이후 육중완 강준우 두 명이서 "육중완 밴드"로 활동한다고 한다. 그런데 소속사가 해체라고 발표한 것에 대해 장미여관 전 드러머 임경섭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장미여관은 해체가 아니라 분해됐다"라며 " 육중완 강준우 두 사람이 나머지 세 사람에게 장미여관에서 나가달라고 했다"라며 불만을 드러냈다. 장미여관 임경섭 "육중완·강준우가 나가달라고 했다" 장미여관 3인 "육중완과 불화 사실…수익 N분의1 아냐" 장미여관 3인 "육중완·강준우 합의금 1억 제시, 큰 충격"

이에 대해 소속사는 장미여관의 해체 과정을 전했는데 그동안 육중완, 강준우를 주축으로 하게 되면서 멤버들 간에 의견 차이가 생겼으며 이로 인해 두 사람이 나머지 세 사람(배상재, 임경섭, 윤장현)에게 밴드에서 나가달라고 했다고 한다. 그 후 육중완, 강준우는 장미여관의 이름을 계속 쓰고자 했는데 나머지 세 사람이 반대를 했고 육중완, 강준우도 다시 생각해 보니 장미여관으로 활동하는 것은 아닌 것 같아 나머지 세사람을 내보낸 후 육중완 밴드로 재편한 것이라고 한다.
파일:2인조 장미여관.jpg

육중완‧강준우, 안 쓴다더니 여전히 '장미여관'

장미여관 해체 후 2인조 "육중완 밴드"로 활동할 것이라는 당초 소속사의 발표와 달리 여전히 장미여관이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하고 있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2018년 10월부터 강준우와 함께 SBS파워 FM 최화정의 파워타임의 멤버로 고정출연중이지만 원래 녹음방송이고 2018년 11월 15일 방송분에 급히 취소를 했으며 2018년 11월 22일 방송분에 다시 복귀했는데, 최화정의 위로 몇마디와 함께 육중완은 "해체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하는 거라 조심스럽다"며 해체 자체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최파타' 육중완X강준우 "밴드 해체, 불편함 얹어드린 것 같아 죄송"

자세한 사항은 장미여관에 상세히 기술되어 있다.

육중완 밴드는 2019년 2월 중순쯤에 첫 컴백 목표를 잡을 것이라고 했다. 육중완 인터뷰

3.2. 록 밴드 관련 발언

자우림 이선규 "육중완, 다른 밴드들 얼마나 안 친한지만 보지 말라" 일침

장미여관 해체 후 MBC 라디오 스타에 600회 게스트로 출연해 해체 심경 밝힌 가운데 "오래 가는 밴드들을 보면 멤버들끼리 데면데면하다. 안 친하다"며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서로가 서로에게 위안이 안됐다. 앞으로 사업이나 동업을 할 때 신중해야겠다"고 한 발언해 논란을 일으켰다. 이에 대해 자우림의 이선규는 SNS를 통해 "다른 밴드들이 얼마나 친한지, 데면데면한지만 보지 말고, 그들이 과연 밴드를 사업, 동업으로 생각하는지도 보셨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일침했다. 이후 육중완은 이선규의 SNS를 찾아가 사과를 남겼고, 이선규가 사과를 받아주며 상황은 정리 되었다.

다만 이 부분은 처음에 김구라가 장미여관 해체를 언급하며 오래 가는 팀들은 사실 별로 안 친하다라며 먼저 얘기를 하여 분위기가 그렇게 이어진 느낌이 강하다. 윤종신 역시 회사 동료처럼 지내는 경우가 오히려 오래 간다라며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뒤이어 노브레인은 친하지 않냐는 김구라의 반문에 전혀 그렇지 않다고 한 점이나, 밴드 활동을 상업, 동업과 동일하게 언급한 뉘앙스는 확실히 문제가 있었다.

4. 방송 내역

5. 기타

  • 아내 정현주와는 동갑내기로 16년 전에 기타 선생을 하던 시절 제자로 만나서 6년 넘게 연애한 사이였다고 한다. 정현주 씨의 말에 의하면, 16년 동안 만나다가 자기가 잘못한 게 많아 결혼으로 만회하고 싶었다고 한다.
  • 나는 자연인이다에서 게스트로 출연한 적이 있었는데, 본인이 언급한 바에 따르면 기타를 사기 전까지만 해도 막노동을 했었으나, 기타를 산 이후로는 음악만 해서 막노동에 대한 기억이 없어졌다고 한다. 그러면서 손이 떨린다면서[5] 표고목이 무겁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고 한다.[6]


[빠른생일] [2] 감천문화마을 출신이며 육중완씨의 부모님은 아직도 이곳에 거주중이다. 이곳은 6.25 직후 태극도 신자들이 전국 각지에서 모여 형성한 신앙촌으로 시작한 마을로, 부산 내에서도 외지인 비율이 가장 높은 곳 중 하나다. 실제로 옥천 육씨 자체가 충청북도 남부와 대전광역시에서는 흔한 편이지만 부산광역시 경상남도에서는 아주 희귀한 성씨다. [3] 비투비의 멤버인 육성재와는 먼 친척 관계라고 하며, "성재는 집안의 기적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물론 본관만 같아서 사실상 남이나 다름없다. [4] 아내와는 동갑내기로, 10년은 친구로, 6년은 연인으로 지냈다고 한다. # [5] 윤택의 표고목을 나르고 나면 기타를 치겠냐는 물음에 육중완 본인이 이런 대답을 했다. [6] 진행을 맡고 있는 윤택의 경험담에 의하면 참나무의 무게가 어마어마하게 무겁다고 하면서 7~80대 자연인들도 표고목을 어깨에 짊어지고 다니신다고 한다. 그 모습을 보고 윤택은 너무나 창피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