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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보베르데 | 기니비사우 |
1. 개요
카보베르데와 기니비사우의 관계. 양국은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다가 20세기에 독립했다.2. 역사적 관계
2.1. 21세기 이전
대항해시대에 포르투갈인들은 아프리카지역을 개척하기 시작했다. 당시 카보베르데 지역은 무인도였는데, 포르투갈인들이 발견한 뒤에는 정착지로 개발되었다. 기니비사우 지역은 졸로프 왕국 등 여러 왕국들이 위치해 있었지만, 포르투갈인들이 발견하면서 마찬가지로 정착지로 이용되었다. 기니비사우 지역과 카보베르데 지역을 차지한 포르투갈 왕국은 식민지로 정했고 수많은 흑인 노예들이 카보베르데 지역을 통해 브라질과 유럽으로 끌려갔다. 이베리아 연합때에 포르투갈령이 잠시 스페인령에 포함되었고 카보베르데 지역과 기니비사우 지역도 스페인령이 되었다. 이베리아 연합이 다시 스페인 왕국과 포르투갈 왕국으로 나뉘어지면서 다시 포르투갈령이 되었지만, 포르투갈의 세력은 이미 약해졌다.19세기에 들어서면서 포르투갈은 많이 쇠퇴했지만, 카보베르데 지역과 기니비사우 지역 등 아프리카의 포르투갈령 식민지는 계속 남아 있었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카보베르데 지역과 기니비사우 지역을 포함한 포르투갈령 식민지에서 독립열기가 거셌다. 포르투갈 식민지 전쟁 참조. 결국 카보베르데와 기니비사우는 포르투갈 내부의 카네이션 혁명으로 포르투갈이 정권교체 되자 이후 독립을 승인받는다.
2.2. 21세기
양국은 독립 직후에 한나라를 이룰려고 했지만, 무산된 적이 있었다. 양국은 포르투갈어 사용국 공동체, 아프리카 연합, 아프리카 대륙 자유무역지대에도 가입되어 있지만, 주변국과 프랑스의 영향으로 프랑코포니에도 가입되어 있다.[1] 양국은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포르투갈어가 공용어이지만, 일상생활에선 포르투갈어 크레올이 널리 쓰이고 있다.양국은 한나라를 이룰려고 했었고 현재에도 교류와 협력이 이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