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마추어 시절
장충고 시절.
서울사당초, 이수중을 거쳐 경기고에 입학했으나 장충고로 전학하여[1] 투수 겸 타자로 활약했는데, 투수로서는 시속 140km대 중반대의 빠른 공을 던졌고 타자로서는 경력이 1년이 채 안 되었음에도 거포로서의 뛰어난 자질을 보였다. 미네소타 트윈스에서 데려가려 했을 정도.[2]
하지만 정작 2차지명에서는 1라운드에서 8순위인 삼성 차례까지 밀렸다.[3] 그리하여 삼성 스카우트진은 외야수 최원제를 지명했다. 이 때 최원제는, "나를 택하지 않은 구단을 후회하게 해주겠다." 라는 멋진 포부를 담은 인터뷰를 했다.
또한 최원제는 당해 1차 지명자 우동균과 더불어, 삼성 신인선수로서는 2001년 이정호 이후 7년 만에 계약금 2억 원 이상을 받은 선수가 되었다. 그동안 삼성에서 [4] 1차·2차 상위라운더 신인 계약금은 다소 짜게 줬던 걸 감안하면, 그만큼 타자로서 재능을 크게 본 것.
2. 프로 시절
투수 시절 모습.
2007 시즌 마무리훈련에 참가했을 때에는 투수와 타자 양쪽 모두 다 훈련을 받았지만 선동열 감독이 오승환 스타일의 투수라고 평가했고 조계현 당시 투수코치의 설득으로 결국 투수 보직으로 가게 되었다. # 145km/h대의 중반대 공을 던져 기대를 모았으나 데뷔 시즌인 2008년 5월 3일 데뷔전만 1이닝 무실점으로 호투했을 뿐, 이틀 뒤인 5월 5일 어린이날에 1이닝 4피안타 1볼넷 4실점이라는 충격적인 피칭 내용을 보이며 1군 투수로는 여전히 멀었다는 평을 받으며 다시 2군으로 내려갔다.[5]
기대 이하의 성적은 2009 시즌에도 계속되면서 조현근, 김상수, 박성훈, 차우찬과 더불어 조원수박차로 불리며 삼성팬들에게 원망만 샀다.
2.1. 경찰 야구단 시절
결국 2009 시즌 후 경찰청 입대가 결정되었다. 2010 시즌 초반에는 선발로 나서며 2010년 4월 14일에는 기아 2군을 상대로 9이닝 완봉승을 거두었으나 이후 마무리로 보직이 변경, 15세이브를 올리며 2군 남부, 북부리그를 통틀어 세이브 1위를 하지만 평균자책점이 4.99.2011 시즌 초반에도 선발과 중간계투를 오가며 작년과 마찬가지로 그다지 좋은 기록을 올리지 못하는 듯 했으나, 하반기 무렵부터 각성했는지 결국 12승을 기록하며 경찰청의 에이스인 우규민을 잇는 2선발로서 활약했다. 시즌 평균자책점은 4.36으로 높은 편이지만, 시즌 초반 워낙 안 좋아서 그랬던 것이지 하반기에만 평균자책점 2.43을 기록했다. 또한 12승 중 선발승만 10승. 2011 시즌 삼성 2군 투수유망주들이 폭망하며[6] 가치가 높아졌다.
2.2. 2012 시즌
하지만 제대 후 삼성 트레이닝 센터에 입소했다. 무리한 피칭으로 부상이라도 입은 것인지, 참고 운동한 것을 후회한다는 글을 쓰기도 했다. 2012년 전지훈련에도 불참했다. 7월초 복귀해 2군에서 9경기 출장해 1승 1패 1홀드 평균자책 4.88을 기록했다. 9월 19일 KIA와의 더블헤더 1차전에서는 7이닝[7] 완투승을 기록하기도 했다. 10월 4일 1군에 올라와 1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2.3. 2013 시즌
전지훈련에는 참가하였으나 이번에도 시즌을 2군에서 시작하게 되었다. 5월 10일까지 2군 성적은 선발과 불펜을 오가면서 7경기 등판 22⅔이닝 18피안타 14탈삼진 5실점 방어율 1.99 기록 중. 5월 10일 박근홍의 반대 급부로 인해 1군으로 올라왔다.2013년 5월 11일 KIA전에 9:0으로 크게 이기고 있던 9회초 이번 시즌 첫 등판했으나 1이닝 2피안타 2볼넷 1실점을 하며 팬들에게 까였다. 그리고 5월 15일 다시 2군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선발 로테이션에도 제대로 참여하지 못하고 김건필은 물론이고 신고선수인 박상원에게 밀렸다. 그나마 유망주로서의 가치가 있던 빠른 속구가 망해버리면서, 속구 구위도 별로이고 제구도 그다지이고 위력적인 변화구도 없는 이도저도 아닌 투수로 몰락해버린 상황. 그래도 8월달 2군 코칭스태프의 눈에 들어, 8월 29일 이우선을 대신해 1군에 올라왔다. 하지만 계속되는 순위 싸움에 한참 동안 못 나오다가 9월 말에야 겨우 2경기 등판했다.
2013년 시즌 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타자로 전향한다는 글을 남겼다.
2.4. 2014 시즌
타자 전향 후 장기적으로 육성할 계획에서인지 신고선수로 전환되었다. 정확히는 육성 시스템인 BB아크에 선발되어 최정예 훈련을 받았다. 팬들은 이런 소식에 기대했다. 시즌 후반 들어서 2군 경기에 출장하기 시작해, 1루수나 지명타자로 출장하면서 11경기 13안타 1홈런 7타점 4득점 .325의 타율을 기록했다.2.5. 2015 시즌
3군서 시즌을 시작하여 5월 말부터 2군에서 뛰고 있다. 포지션은 주로 1루로, 6월 중순까지는 백승민과 번갈아가며 1루수로 나오다가 6월 14일 롯데와의 2군 경기 중 백승민이 주자와 충돌해 부상당하면서 이후로는 붙박이 1루수로 나오고 있다.시즌 최종 성적은 53경기 158타수 45안타(2루타 11개 3루타 1개 홈런 9개) 38삼진 6사구 12볼넷 .285 .356 .538 OPS .894. 타자로서 풀타임은 첫 시즌이라 시즌 중반에 페이스가 떨어져서 후반기에 페이스가 좋았음에도 결국 두자릿수 홈런에는 실패했다.
2.6. 2016 시즌
사비를 들여 개인 트레이너까지 고용해가며 비시즌 훈련에 매진했으나, 시즌 개막 후 다리쪽에 부상을 당하면서 올스타 브레이크를 불과 하루 남겨둔 7월 13일에서야 2군 경기에 출장했다. 7월 23일 이후로는 결장하면서 6경기 밖에 나오지 못했다.2.7. 2017 시즌
차우찬이 LG로 FA 이적하고 조현근이 방출되면서 조원수박차 중 유일하게 팀에 남은 멤버가 되었다.2월 28일 히로시마 도요 카프와의 연습경기에서 2타수 2안타 1타점을 기록했다. 그러나 이후 이렇다 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최영진에게 밀려났고, 시범경기 중반부터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2군행.
2군에서 주전 1루수로 맹활약했고, 엔트리가 확장되는 9월 1일에 정식선수로 전환되면서 2013년 이후 4년만에 1군 등록됐다. 타자 신분으로 1군에 등록된 것은 데뷔 이후 처음.
9월 1일 문학 SK전[8] 9회초에 대타로 나와 박정배를 상대로 데뷔타석에서 데뷔 첫 안타를 때려냈다. 데뷔 첫 안타 공의 경우 수비를 보던 SK 선수들의 도움으로 챙기게 되었다.
10월 1일 잠실 LG전[9] 에 대타로 나와 1타점 2루타를 터뜨렸다. 하지만 3루석에는 약간의 야유도 섞여나왔는데, 이승엽의 잠실 마지막 타석을 기대한 삼빠들은 아쉬움이 크게 남아, 감독 김한수를 향해 야유를 보낸듯 하다. 하지만 경기 후 이승엽이 최원제에게 직접 타석을 양보했다는 기사가 나오자, 삼빠들은 이승엽 찬양, 최원제에게는 사과를 이어갔다.
2.8. 2018 시즌
부상 때문에 약간 늦게 시즌을 시작했고, 백승민과 2군 주전 1루수 경쟁에 밀리며 주로 지명타자로 출장했다. 시즌이 끝났을때 2군에서 60경기 출장, 177타수 61안타 타율 0.345에 10홈런 30타점, 출루율 0.383-장타율 0.582로 맹활약했고 확대 엔트리로 1군에 왔으나 1군에서도 백승민이 보다 더 눈에 띄는 활약을 하면서 9월 14일 1군에서 제외됐다.10월 18일, 끝내 꽃을 피우지 못하고 구단에서 배영섭, 장원삼, 조동찬 등과 함께 방출되었다. 스프링캠프가 시작되기 전 자비를 들여 미국으로 건너가 저스틴 터너를 리그에서 손꼽히는 3루수로 탈바꿈시킨 덕 래타 코치에게서 타격을 전수받는 등, 시즌 초만 하더라도 엄청난 기대를 모으며 기사가 쏟아져 나왔지만 끝내 1군에서 터지지 못했다.
방출된 후에도 야구를 계속하려는 것인지 덕 래타에게 지도받기 위해 12월 말에 또다시 미국으로 갔다. 그리고 2019년 2월, 팜 스프링스 파워 라는 미국 독립리그 팀에 입단했다.
2.9. 방출 이후
앞에 서술한 것처럼 2019년 2월, 팜 스프링스 파워라는 미국 독립리그 팀에 입단했으나 이내 은퇴를 결정했다. 이후 덕 레타 코치 지도하에 지도자 연수를 받고 있다. 현재는 LA 한인타운 근교에서 주니어들을 대상으로 타격을 가르치고 있다.현재 김하성의 개인 타격 코치를 맡고 있다.
[1]
이수중 시설 스승인
유영준 감독이 장충고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많은 이수중 출신 제자들이 장충고 유니폼을 입었다.
[2]
당시 장충고 스쿼드가 짱짱했는데 동기로
박민석,
김경모,
백용환,
김상호가 있다. 1년 후배로는
이홍구와
강윤구,
김준완이 있다. 1년 선배는
이승우,
이용찬,
이두환,
김명성,
김동한, 전진호가 있다.
[3]
다른 구단에서는 투수로서의 최원제를 높게 평가하지 않은 듯하다.
[4]
2002년 1차 지명
권혁, 2004년 1차 지명
박석민을 제외하면 2000년대 대구-경북 지역의 팜에서는 프로에서 성공한 선수는커녕 1군에서 보기 힘들 정도로 지역팜이 황폐한 수준이었다.
[5]
심지어 이날 경기에 대해
안지만이 개인방송에서
썰을 푼 것이 있는데, 안그래도 못이기고 끌려다니던 경기를 9회초에 최원제가 등판해서는 대박살이 나고 있자, 한 팬이 "야! 선동열! 어린이날 아 잡을 일 있나?!"라면서 소리를 지르자 경기를 지고 있는 탓에 조용히 눈치보던 선수들도 차마 웃음을 못참고 터졌고, 감독이었던 선동열마저 어처구니가 없었는지 피식하게 만들었다는 후문. 다만 안지만의 기억에 약간 왜곡이 있었는지
양일환 코치에게 투수교체하라고 지시를 했다는데 실제로는 최원제가 9회초를 어렵게 마무리 짓고 내려오긴 했었다.
[6]
팀내 최다승은 8승을 올린
명재철로 8승 모두 구원승인데다 평균자책 4.44로 중간계투로서는 높은 편. 팀내 최다선발승은 6승을 올린
김기태로 평균자책 6.00에 시즌 중 부상인지 중도에 시즌 아웃. 선발투수 중 가장 좋은 기록을 보인 선수는
박민규(3승 1패 평균자책 3.70). 삼팬 모두 망픽이라 생각하는 그 박민규다.(…)
[7]
퓨처스리그의 경우, 잔여경기를 소화하면서 더블헤더 1차전은 7회까지로 정했다.
[8]
팀 선배
이승엽의 마지막 문학 원정경기이기도 했다.
[9]
팀 선배
이승엽의 마지막 잠실경기 (은퇴투어는 전날에 완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