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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d4a1a1><colcolor=#fff,#000> 이름 |
체비 체이스 CHEVY CHAS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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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파일: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영화 심볼.jpg 영화 | ||
입성날짜 | 1993년 9월 23일 | ||
위치 | 7021 Hollywood Blvd. | }}}}}}}}} |
Chevy Chas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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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111216><colcolor=#ffffff> 본명 |
코넬리우스 크레인 체이스 Cornelius Crane Chas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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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43년
10월 8일 ([age(1943-10-08)]세) 미국 뉴욕 주 뉴욕 시 로어 맨해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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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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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장 | 192cm | ||||||||
학력 | 바드 칼리지 영문학 (B.A.) | ||||||||
직업 | 코미디언, 배우 | ||||||||
데뷔 | 1968년, 'Walk... Don't Walk' | ||||||||
활동 기간 | 1967년 ~ 현재 | ||||||||
가족 | 슬하 1남 3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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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코미디언이자 영화 배우이다. 1993년에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헌액되었다.코미디언으로서는 호쾌하게 넘어지는 특유의 몸개그 스킬과 유쾌하고 훈훈한 인상의 허당 캐릭터로 유명하다.
상당히 미국색이 강한 코미디언이고 히트작도 내수 성향이 짙어서 미국과 해외 인지도가 차이가 상당히 나는 코미디언이다. 미국에서는 가족 코미디인 휴가 대소동 시리즈가 유명하지만 해외에서는 정극인 투명인간의 사랑이나 미드 ' 커뮤니티'로 주로 알려져 있다.
2. 상세
- 1962년 하버드 대학교에 합격했을 정도로 수재였지만 [1] 정작 대학에 입학해서는 학업에 열의를 보이지 않아서 결국 2학년 때 하버드를 중퇴했다. 체비 체이스는 하버드 재학 당시 본격적으로 코미디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덕분에 학교 내에서 워낙 괴짜인 학생으로 소문이 나서 4층 방에서 몰래 소를 키우다 들켜서 퇴학당한 전설의 학생이라는 도시전설이 하버드 재학생들 사이에서 지금도 유명하다고 한다. 체비의 하버드 동창생이 밝히기를 하버드에 비싼 등록금을 내고 입학해서는 수업에 출석을 거의 안해서 성적 불량으로 퇴학당했다고... 체비 체이스 본인도 하버드 대학교 내에서 자신에 대한 도시전설이 전해내려온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인정한 바 있다. 이후 체비 체이스는 뉴욕주에 위치한 바드 칼리지 의과대학에 재입학하여 1967년 예과를 졸업한 것을 마지막으로 [2] 학업을 마쳤다.
- 의과대학 재학 시절에 교내 재즈 밴드에서 드럼을 연주했던 경력이 있었으며 1973년 미국의 코미디언 집단 네셔널 램푼(National Lampoon)[3]에서 코미디언들이 직접 연주와 노래를 하며 우드스탁 페스티벌과 히피들을 풍자하는 코미디를 펼치는 공연 Lemmings를 런칭했을 때 드러머로 참여하여 수준급의 드럼 연주를 들려주었다. 당시 공연 영상
- SNL 시즌 1에 출연한 오리지널 크루 멤버 중 한명으로 사실상 시즌 1의 주역이었다. SNL이 본격적으로 시작한다는 것을 알리는 구호인 "Live from New York, it's Saturday Night!"와 SNL의 대표 코너인 Weekend Update를 만든 사람도 체비 체이스다. Weekend Update의 시그니처 클로징 멘트인 "That's the news...good night, and have a pleasant tomorrow."도 체비 체이스의 작품.
- 제럴드 포드가 대통령으로 재위하던 시절에 SNL 시즌 1에서 대통령 역으로 출연하면서 포드가 자주 덜렁거리는 점에 착안해 미끄러지는 포드라는 몸개그를 하여 유명해졌는데 이를 재미있게 본 제럴드 포드 대통령이 1976년 4월 17일 직접 SNL에 영상으로 출연해서 체비 체이스의 멘트를 가로채는 개그를 선보였다. 콜드 오픈 스케치에서 체비 체이스가 앞으로 고꾸러지는 몸개그를 했는데 포드 대통령이 영상으로 갑툭튀해서 본래 오프닝에서 체비 체이스가 외치는 "Live from New York, it's Saturday Night!"멘트를 외쳤고 체비 체이스가 평소처럼 "전 체비 체이스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체비가 아니죠 (I'm Chevy Chase and you're not) 멘트를 하고 Weekend Update의 진행을 시작하려고 할 때 다시 포드 대통령이 영상으로 갑툭튀해서 "전 제럴드 포드입니다. 그리고 체비는 제가 아니죠(I'm Gerald Ford and you're not)라는 멘트를 했다. 이후 포드 대통령은 백악관 골프 모임에 체비 체이스를 초대했고 이를 계기로 포드 대통령과 체비 체이스는 매우 친해져 사적으로도 종종 만났다고 한다. SNL 위키
- 미끄러지는 포드 개그를 봐도 알 수 있듯이 몸개그 실력이 좋은 편이다. SNL의 크루로 출연했을 때 부터 192cm의 큰 키를 살려서 인정사정 없이 넘어지는 몸개그를 자주 선보였다. 덕분에 한창 활동했을 당시 진통제 중독에 시달리기도 했다고 고백한 바 있다.
- SNL 시즌 1이 종료된 후 체비 체이스는 SNL 출연으로 얻은 인기로 영화계에 본격적으로 진출하였는데 영화 촬영과 SNL 출연을 병행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판단했고 때 마침 결혼한 아내도 LA로 이사를 가자고 했기 때문에 SNL 시즌 2의 6번째 에피소드를 끝으로 SNL에서 하차하였다. 체비 체이스는 SNL의 오리지널 크루들 중에서 가장 먼저 하차한 멤버였으며 SNL에서 하차한 후에도 SNL의 호스트로서 쇼에 굉장히 자주 출연하였다.
- 눈치가 없고 덜렁거리지만 유쾌한 성격과 훈훈한 인상을 지닌 신사 코미디언 이미지와 달리 실제로는 성격이 상당히 까칠하고 안좋은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같이 일하는 주변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가 안 좋은 것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1978년에 빌 머레이하고 같이 프로그램을 녹화하던 중 서로에게 시비를 걸다 주먹다짐까지 했고[4], 1980년에 케리 그랜트가 호모라는 개그를 했다가 캐리 그랜트에게 모욕죄로 고소를 당하고 발언을 취소한 적도 있다. 1984년에 방영된 미국의 사고뭉치 코미디언 앤디 카우프먼의 마지막 TV 출연작 <The Top> 도 원래는 체비 체이스가 진행자로 내정되어 있었으나 체비 체이스가 연출 방향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제작진들과 싸우다가 녹화 직전에 갑자기 프로그램에서 하차해버려 제작진이 이미 폐암으로 투병중이던 앤디 카우프먼을 급하게 섭외해서 체비 체이스의 대타로 출연시킨 것이었다고 한다. [5] 1992년에 투명인간의 추억을 촬영했을 때도 존 카펜터와 계속 충돌해서 [6] 결국 촬영 도중 영화가 엎어질 뻔하다가 관계자들이 겨우 수습해서 촬영을 끝냈다고 하며 커뮤니티에서도 피어스 호소른 역으로 출연하다가 댄 하몬과의 불화가 심각해서 체비 체이스가 결국 제작진을 비난하면서 촬영 도중에 드라마에서 하차하기도 했다. 이외에 커뮤니티 출연자였던 도널드 글로버도 체비 체이스가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내뱉는 것을 들었다고 폭로했다.
- 체비 체이스는 National Lampoon의 원로 크루들 중 한 명에다 1976년과 1978년에는 에미상을 수상하고, 1978년에는 골든글로브상에 노미네이트 되었으며 휴가 대소동 시리즈가 한창 인기를 끌던 80년대에는 몸값이 무려 편당 7백만달러에 달했던 거물 코미디언이다. 1993년에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헌액 되었을 정도로 미국 코미디계의 정점을 찍었던 코미디언 겸 배우인지라 체비 체이스 본인의 자부심이 대단할 수밖에 없다. 물론 아무리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연예인이라고 해도 보통은 다른이들과 불협화음을 일으키지 않기 때문에, 체비 체이스의 성격 자체가 모난 것은 어느정도 사실로 보인다.
- 세 번 결혼했다. 두 번의 결혼은 4년 안팎으로 짧게 끝난데다 자식도 없었고, 1982년 세번째 결혼은 성공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세 딸을 두었다. 로스앤젤레스 퍼시픽 팰리세이즈에 오래 살았으나 뉴욕주 북부로 다시 이사갔다고 한다. 부상 때문에 진통제 중독에 빠져 한동안 중독 치료 클리닉에 다녔고 알코올 중독도 있어서 2016년 9월 다시 입소하기도 했다.
[1]
집안 자체가 상당히 학구적이고 온갖 유명인을 배출한 집안이다. 아예
험프리 보가트처럼
뉴욕 이민 역사에 올라와 있는 조상대부터 뉴욕 토박이 집안. 아버지는
프린스턴 대학교 출신 편집자였고 어머니는 콘서트 피아니스트였다. 다만 체비 본인은 이런 얘기를 하는 걸 싫어했고, 어머니를 포함한 외가가 가식적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본인 회고에 따르면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웠으나 부모가 이혼하고 양외할아버지랑 어머니 간 불화가 있어 재산 상속에서 배제되고, 체비 본인도 어머니와 새아버지에게 학대당하는 불우한 환경이었다고 한다.
[2]
졸업 학위는 영문학.
[3]
1876년부터 발간되고 있는
하버드 대학교의 유서 깊은 유머 잡지 하버드 램푼(Harvard Lampoon) 집필진들 중 일부가 대학을 졸업하고 출판사를 세워서 1970년부터 발간을 시작한 유머 잡지 네셔널 램푼(National Lampoon)을 기점으로 하는 일련의 코미디언 집단. 잡지가 상업적으로 성공하자 출판사는
존 벨루시, 체비 체이스,
댄 애크로이드,
빌 머레이 등의 신인 코미디언들을 섭외하여 1973년부터 1974년까지 내셔널 램푼 라디오 아워 라는 라디오 방송을 런칭했고 이 라디오 방송에서 이들인 선보인
블랙 코미디,
허무 개그,
초현실 유머가 기존의 고리타분한 유머에 지쳐있던 청취자들에게 큰 충격을 주며 미전역에서 큰 호응을 얻었다. 그 결과 론 마이클스가 라디오 방송에 출연한 코미디언들과 방송의 작가진을 TV 무대로 끌어들여 새 TV 쇼를 제작하는데 그 프로그램이 바로
새터데이 나잇 라이브였다. 이들은 이외에 네셔널 램푼에서 제작하는 일련의 코미디 영화에도 출연하였다. 휴가 대소동 시리즈도 네셔널 램푼에서 제작한 것이기 때문에 영화의 원제목이 National Lampoon's Vacation이다.
조찬 클럽 등 일련의
브랫 팩 영화들과
나 홀로 집에 시리즈를 만든
존 휴즈도 이 잡지에 유머 글들을 기고하며 커리어를 시작하였다. (존 휴즈는 <휴가 대소동>의 원작자이자 각본가이기도 하다.) 잡지는
1998년에 폐간되었다.
[4]
녹화 도중 쉬는 시간에 빌 머레이가 체비 체이스의 결혼생활을 비꼬며 체이스에게 시비를 걸었는데 곧바로 체비 체이스가 머레이의 외모를 비꼬는 걸로 받아치면서 불화가 터졌다고 한다. 1980년에 화해했다고.
[5]
당시
앤디 카우프먼은 이미
폐암 말기라서 암세포가 오른팔까지 퍼져있던 상태였고 실제로 The Top 출연본을 보면 오른팔을 잘 움직이지 못하는 앤디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일화는 생전 앤디 카우프먼이 대중들에게는 돌발행동을 자주 일으키는 사고뭉치로 바춰졌지만 실제로는 방송 관계자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었던 프로페셔널한 엔터테이너였다는 것을 증명하는 사례이기도 하다.
[6]
카펜터 주장에 따르면 체이스는 특수 효과 메이크업을 거부하고 일찍 퇴근해버려서 촬영에 문제가 많았다고 한다. 투명인간이 주인공인 내용 특성상 그냥 영화 전체를 보이콧했다고 봐야할 수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