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보수주의 관련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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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세기 현대 기준 일본에서 Ethnic nationalism이 아닌 단순 Nationalism을 지칭할 때에는 '민족주의'(民族主義)라는 용어보다는 '내셔널리즘'(ナショナリズム)이라는 용어가 선호된다. 일본에서 '민족주의'는 전적으로 Ethnic nationalism을 의미하는데, 이는 과거 천황제 파시즘과 결합해
야마토 민족의 우월성을 내세웠던 극우 민족주의를 연상시키는 데다가, (야마토 민족이 아닌)
류큐인이나
아이누인같은 전통적 일본 내 소수민족까지 배제하기 때문에 현재의 주류 보수우익에서 거리를 두는 편이다. 보수주의/분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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青年民族派
청년민족파는 1960년대 후반, 일본 신좌파의 대립항으로서 탄생한 혁명적 청년 우익 세력으로 신우익의 일종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신좌파에 장악된 학원 정상화'를 내세웠지만 결과적으로는 전후 일본 체제 자체에 대한 투쟁으로 흘러갔다.
그들은 다른 반미보수나 민족파처럼 반공을 민족보다 내세우는 기성 일본 보수 세력에 큰 불만을 품었고, 당시 한창 체결 중이던 핵확산금지조약에도 반대했다. 미국 중심 기성 정체체제를 YP체제( 얄타- 포츠담 체제)라 부르며 민족혁명을 통해 이를 타도하고 국가와 야마토 민족 중심의 국가를 건설해야 한다고 보았다. 일부는 아예 이성과 합리를 이용해 인간 정신의 고유한 분야들을 양적으로 환원시키는 서양 근대 사상 자체가 문제라고 주장하며 당시 민속학에서 가끔 쓰이던 개념인 조민(常民, じょうみん)[1] 개념을 바탕으로 반근대주의를 주장하기까지 했으며, 일부는 서구식 파시즘을 추종했다.
이들은 신좌파와 대립했지만 반공주의적 관점은 약했으며, 심지어 일부는 전공투에 합류하기도 했다.(민족파 전공투) 이들 역시 신좌파들처럼 하이바를 착용하고 학생운동을 벌였는데, 주로 검은색을 착용했다. 공산주의자 출신 전향자도 있었는데 이들은 미 제국주의 타도를 내세우며 신좌파와 손잡고 나리타 공항 투쟁에 참가하는 등의 행보를 보였으며,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의 동남아 침공을 서구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민족자결주의적 투쟁이라고 치켜세웠지만 동시에 일본 제국주의에는 반대하는 노선을 견지했다. 이들은 빨간색 하이바를 착용했다.
신좌파가 인터네셔널가를 상징으로 채택한 것처럼 이들은 쇼와 유신의 노래를 상징으로 채택하였다. 신좌파의 대립항으로 성장한 신우익 세력이니만큼, 다른 나라의 신우익 세력처럼 신좌파 학생운동이 쇠퇴하자 청년민족파 역시 쇠퇴하기 시작했지만 지금도 세력 자체는 있다. 쇠퇴 이후로는 YP체제 타도라는 구호는 접고 현행 일본 헌법이 전후 점령체제의 산물이라며 한법 타도 노선으로 구호를 변경했다. 일본 학생회의, 일본학생연맹, 전국 학생회 연락 협의회가 있는데 이 중 일본학생연맹은 지금도 활동 중이다.
대학들 중에는 와세다대학에서 이들의 세력이 가장 강했으며, 국학원대학과 나가사키대학에서도 세력이 강해 80년대까지도 활발히 활동했다. 이외에는 야마구치대학 공학부와 약학부, 교토외국어대학, 시즈오카대학에서도 세력이 강했으며, 각종 많은 대학들에도 세력이 분포하고 있었다.
[1]
개념 자체는 좌파들 사이에 쓰이던 것으로 본래는 산을 유랑하는 유랑민을 가리키는 민속적 용어에서 비롯해 점차 '평범한 사람들', 즉 전근대의 착취당하던 평범한 기층민중 전반을 가리키는 용어로 바뀌었고, 청년민족파는 이 개념을 역으로 '일본의 순수한 민속을 보존한 사람들'이라고 해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