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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대 미합중국 전쟁부장관 | }}}}}}}}} |
<colbgcolor=#176183><colcolor=#fff> | |||
본명 |
찰스 티머시 헤이글 Charles Timothy Hagel |
||
출생 | 1946년 10월 4일 ([age(1946-10-04)]세) | ||
네브래스카 노스플렛 | |||
재임기간 | 제24대 국방장관 | ||
2013년 1월 27일 ~ 2015년 1월 17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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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176183><colcolor=#fff> 학력 |
네브래스카 대학교(역사/석사) 브라운 대학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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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 정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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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무 | 미합중국 육군 | ||
1967년 ~ 1968년 | |||
주요 참전 | 베트남 전쟁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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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24대 국방장관. 리언 패네타가 계속 실언을 하는 등 반응이 안 좋자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두 번째 임기에 맞춰서 2013년 2월 27일에 새로 장관으로 선임되었다.2. 생애
네브래스카 주 노스플랫 출신의 폴란드계 미국인으로 1967년 미 육군에 자원입대하여 보병 병장으로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다. 즉 미국의 국방장관 중 유일하게 사병 출신인 장관이다.[1] 미국은 국방장관을 철저히 문민 중심으로 돌리기 때문에 군인 출신들은 대부분 소위나 중위 출신인데 로버트 게이츠가 소위 출신이었고 리언 패네타는 중위 출신이었다. 딕 체니는베트남전 당시의 척 헤이글 병장. 오른쪽이다. 왼쪽은 척과 같이 베트남전에 참전한 척의 동생인 토머스 헤이글이다. 16세에 아버지를 여의었고 동생을 부양했는데 베트남전에서 동생과 같은 소대에서 근무했다. 당시 입은 부상으로 심장에 들어간 파편은 아직도 꺼내지 못 한 상태이다.
전역 후인 1969년에 네브라스카 주립대학에서 입학하여 역사학을 전공하였고 졸업후에 공화당(미국)에 들어가 네브래스카의 연방하원의원인 존 매콜리스터의 보좌관으로 일했다. 1977년부터는 로비스트로 일했고 로널드 레이건의 선거캠프에 들어가 일했다. 1982년에 제대군인부에 들어갔으나 상관과 갈등을 빚어 사직하고 사업을 했다. 당시 장관이었던 밥 니모(Bob Nimmo)가 재향군인단체를 "탐욕스러운 자들"이라고 표현하거나 고엽제가 청소년 여드름보다 나쁘지 않다고 말한 것 때문이었다. 베트남전 참전용사였던 헤이글의 입장에선 받아들이기 힘든 상관이었다.
나와서는 휴대폰 회사인 뱅가드 셀룰러를 열었는데 이 회사는 뒤에 AT&T에 합병될 정도로 성장했다. 1996년엔 네브래스카 연방상원의원 투표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2008년 대선엔 버락 오바마를 지지하였고 2013년 국방장관이 되었다. 베트남 전쟁 참전용사로는 첫 국방장관이다.
왼쪽이 척 헤이글이고 가운데는 버락 오바마, 연단에 선 이는 전임 국방장관이었던 리언 패네타이다.
3. 활동
2013년 10월에 치도리가후치 전몰자 묘원을 참배한 바 있다.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 대한 무언의 압박이라고 보는 평가.2014년 4월 7일에 중국을 방문했는데 중국인이 아닌 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랴오닝함에 승선했다.
4. 사임
2014년 11월 24일 공식 사임했다. 이슬람국가(IS) 등에 대한 대응 부족에 따른 문책이라는 것이 외견상의 이유지만, 공화당에 대한 의회 중간선거에서 여당 민주당이 패배한 데 따른 정국 쇄신 차원이라는 평가가 중론. 8년 전 부시 행정부가 도널드 럼스펠드를 경질한 것도 중간선거 패배 직후였던 점과 유사하다.후임자가 임명될 때까지는 일단 직무는 계속할 예정. 후임자는 애슈턴 카터이다.
5. 성향
공화당 소속이지만 자유주의 성향에 가깝고 참전용사 출신인데도 전쟁에 상당히 부정적이다. 조지 W. 부시 때문에 버락 오바마를 지지했다. 인준 당시에 공화당의 집중포화를 맞아 인준이 50일 가량이 걸렸다. 특히 같은 참전용사 출신인 존 매케인의 견제가 심했다. 리언 패네타의 경우 상원의 만장일치로 통과됐지만 헤이글은 반대표가 40표 가량이 나왔다.사실 반전 성향 등을 문제삼는 게 아니라 2006년에 유대계 로비스트들을 반대한 발언 등을 한 그를 반유대주의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본 유대인 단체들의 견제 때문이란 설도 있다.
6.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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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위 | 명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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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1]
10대인 멜빈 레이어드 장관이 해군에서
수병으로 1년을 근무하긴 했지만 OCS로 장교가 되는 바람에 해군 중위가 최종 계급이다.
[2]
하지만 럼즈펠드는 워낙 삽질을 해놓은지라, 그리고 워낙 어린 나이로 국방장관까지 오른지라 럼즈펠드도
미필로 오해받곤 한다. 해군 항공대 예비군 신분으로 40대 초반에 대령까지 올랐다가(예비군 부대도 진급이 이어지기 때문에 가능) 예비역에서 물러남과 동시에 국방장관에 선임된 사례. '문민' 국방장관으로서 대령까지 달고 퇴역한 뒤 국방장관에 올랐다는 것 자체는 럼즈펠드의 국방장관으로서의 행적과 관계없이 앞으로도 다시 찾아보기 힘들 레어한 사례다. 문민이란 조건이 군인 물 빠지는 기간 10년이라고 안하고 현역 물 빠지는 기간 10년이라고 정해놓은 것에서 기인한 것. 제도적 허점은 아니다. 왜냐 하면 어느 나라든 간에 병사와 달리 장교는 현역에서 물러나더라도 예비역기간이 아주 길기 때문이다. 이것은 유사시 군대를 확대할 때 장교를 갑자기 늘리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장교했으면 아예 공직맡지 말라고 할게 아니면 현역을 기준으로 둘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