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8 22:37:09

창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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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표기3. 현황
3.1. 창조설의 분파
4. 다른 음모론/ 유사과학과의 관계5. 과학철학에서 바라보는 창조설
5.1. 유사과학( 사이비 과학)
5.1.1. 입증 불가능성5.1.2. 반증 불가능성
5.2. 과학이 아니라 믿음의 영역
6. 과학이라고 우기는 창조설자들7. 창조설의 논리와 과학적 방법론의 충돌8. 세계 동향
8.1. 미국8.2. 유럽8.3. 중동 및 이슬람권8.4. 한국
9. 관련 작품10. 관련 문서

1. 개요

과학에는 확실성 없는 증거가 있다. 반면 창조설 신봉자들에게는 증거로 뒷받침 되지 않는 확실성이 있다.
애슐리 몽태그[1]

, Creationism

우주 만물이 초자연적인 존재인 에 의해 창조됐다는 교리인 창조론[2] 과학의 영역에 도입하려는 유사과학적 시도에 의한 가설. 젊은 지구설, 지구 평면설 등과 함께 근본주의자들의 대표적인 반지성주의 사례이다.

창조설과 창조론은 엄연히 다른 개념이다. 자연과학은 어떤 가능성에 대해서 '가설 → 이론 → 입증'의 순서를 밟는데, 창조설은 해석과 추측으로부터 비롯된 분석만 있지, 제대로 된 체계와 추론과정이 없으므로 '이론'의 단계에 도달하지 못했다. 진화론은 실험과 관측, 추론, 모형 등으로 이루어진 이론이지만, 창조설은 제대로 된 과학적인 추론이나 그럴듯한 패러다임이 없는 단순 억측이라 할 수 있다.

2. 표기

창조론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론(論)"이라는 한자어는 이론, 담론, 공론, 의논, 논변, 논문 등의 준말로 사용되므로 일반적인 자리에서 창조론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고 있다. 오늘날 무신론 갤러리 및 네이버 캐스트에서는 창조"설"이 대표적인 표기법이 되었다. 그 후 유신론적 진화론에서 창조신화와 창조과학을 분리하고자 전자는 창조론, 후자는 창조설이라는 명칭을 쓰는 경향이 생겼다.

3. 현황

창조설은 과학 이론이 아니며, 신에 대한 증명을 상정하지 않는 기독교 교리상 과학과 양립할 수도 없다. 공통점은 진리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다만 방식은 반대이다. 창조설은 기독교의 창조교리를 과학의 이름으로 정당화하기 위한 프로파간다이며, 종교적 운동에 가깝다.

창조설자들이 '창조설의 내용은 객관적 사실이고, 창조설은 과학이론이다'고 주장하는 근거는 결국 하나다. 바로 성경. 즉 근거를 대라고 하면 그들은 "성경에 나와 있다.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한가?"라고 반문한다.

비신자에게는 성경이 권위 없는 책이므로, 이 시점에서 소통이 불가능해진다. 또한 주장 근거를 성경으로 들면서 성경 비판론에 대한 반박으로 비판받은 성경의 다른 부분을 다시 근거로 드는 회피성 순환논리의 추태를 보인다. 이들에게 창조설은 명명백백한 사실이고, 남들이 비판하면 그건 신께서 부여하신 악마의 유혹이며, 신의 뜻에 따라 창조설이란 '사실'을 설득시켜 불쌍한 그들도 같이 구원해야 한다는 사명만 남았을 뿐이다. 즉 '신께서 계실 것이다'의 믿음 수준이 아니라 '신께서 계시는 건 이미 증명된 사실이며 진리이다.' 수준인 것.

창조설은 근본주의적 기독교로부터 지지받고 있다. 미국의 기독교계가 창조설을 주도하고, 미국을 벤치마킹한 한국 기독교계에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난다.

현대 과학이 발전하면서 과학자 및 다수의 일반인에게 창조설은 인정받지 못하고 있으며, 이를 가르치는 것 또한 금지되어 있다. 1990년대 중반에 지적설계로 이름을 바꾸어 창조설을 가르치려고 했으나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가르치는 것은 각국 정부에 의해 금지되었다. 신학이나 철학으로 가르치는 것을 금지한 적은 없으나 지적설계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과학 카테고리에 넣으려 하기에 문제가 된다.

창조설은 젊은 지구설 / 오래된 지구설로 나뉘기도 한다. 젊은 지구설은 성경에 나오는 시간을 그대로 받아들여 우주의 나이가 6천 년이라고 추측하는 주장으로, 창조설 중 한국창조과학회를 비롯한 가장 광신적인 부류에서 지지하고 있는 주장이다.

창조설은 단일격변설 / 다중격변설로 나뉘기도 한다. 단일격변설은 태초부터 현재까지 '노아의 홍수' 단 한 번만이 환경을 변화시켰으며 나머지 기간은 계속해서 안정된 상태였다는 주장이다. 다중격변설은 여러 번 격변이 일어났다는 주장이다.

진화론에 대해서는 아예 부정하는 입장 / 처음 창조가 있었고 이후 진화론에서 주장하는 방식으로 진화가 일어났다는 입장과, 진화 개념을 둘로 나눠서 소진화는 인정하지만 대진화는 인정하지 않는 입장이 있다.

즉, 그들 내부에서도 의견이 통일되지 않았다. 한국창조과학회 같은 단체의 글을 보면 저런 주장이 섞여있다.

이러한 현상은 창조설이 내부적으로 상호 모순되는 주장을 가다듬고 비논리적인 주장을 걸러낼 수 있는 자체 검증 시스템이 없으며, 일단 진화론을 비판하는 말은 인정해주고 보는 진영논리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단 말이 되든 안 되든 터뜨려놓고 반박을 받으면 그제서야 슬그머니 주장을 접든가 말을 바꾸고 있다.

창조설 지지자들의 다른 중요한 특징은 자체적인 연구나 실험을 거의 실시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들의 주장은 대개 다른 학문의 성과나 연구 결과를 그대로 가져온 후 거기에 종교색을 덧붙인 것이다. 어차피 창조설은 스스로 연구 주제를 잡는 것이 불가능하다. 상식적으로 신이 창조했다는 것을 입증하는 실험 설계가 가능하겠는가? 결국 남이 해놓은 연구 결과들 중 자기 구미에 맞는 것만 골라서 창조의 증거인 것처럼, 또는 진화를 부정하는 증거인 것처럼 덧칠하는 수준 이상의 생산적 성과를 내놓지 못하는 것이다.

또한 창조설 설파를 위해 자연사 박물관을 만들었다. 국내 최초 창조론 중심의 자연사 박물관...이라고 스스로는 주장하고 있다. 거기에다가 Creation Wiki라는 창조위키까지 만들어서 창조설을 전파하고 있다. 한 번 들어가서 뭘 설명하는지 확인해 보자.[3]

3.1. 창조설의 분파

한국창조과학회가 젊은 지구 창조설을 주장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창조설=젊은 지구 창조설로 본다. 실제로 그들의 영향력이 강하지만, 창조설에는 여러 분파가 있다. 기본적으로 젊은 지구 창조설/오랜 지구 창조설로 분류되고 오랜 지구 창조설도 또 나뉜다.[4]
  • 오랜 지구설: 어린 지구설에 반대하여, 방사성 원소를 이용한 연대측정이나 기타 과학적 방법으로 계측한 우주와 지구의 나이를 인정한다. 다만 진화는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으며, 오래된 지구 위에 생명이 창조되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이와 관련된 창세기의 해석에 따라 이들도 둘로 나뉜다.
    • 간격 창조설: 창조가 2번 있었다고 주장한다. 창세기 1장 1절이 첫 창조로서 우주의 역사와 고생물의 등장은 이때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 후 창세기 1장 3절에 나온 창조가 이루어졌는데, 여기서 기존의 생물들은 멸종하여 화석이 되고 인간과 현생종들이 새로 창조되었다고 주장한다.
    • 날-시대 창조설: 성경의 행간에 어떤 의미가 담겨있을지 모르니 섣불리 해석하면 안 된다는 창조설. 아우구스티누스(354 ~ 430)가 내놓은 이론이다. 기독신학의 교부(敎父)로 추앙받는 4세기의 철학자 아우구스티누스는 6일에 창조했다는 성경 구절에 대하여 본인의 저서 「창세기의 문자적 해석」(De genesi ad literam)에서, "1일이 우리가 아는 1일과 같지 않을 수 있다. 주님께는 1일이나 1000년이나 다를 바 없다."라고 주장했다. 여기서 보듯 날-시대 창조설은 1일이 문자 그대로 하루가 아니라 긴 지질학적 연대를 말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현대 과학과 최대한 공존하려고 하는 유신론적 진화론자들도 이 창조설을 지지하는 경우가 많다.

4. 다른 음모론/ 유사과학과의 관계

  • 지구 평면설: 그야말로 환상의 궁합이다. 특히 젊은 지구 창조설과 케미가 잘 통한다. 지구 평면설과 창조설은 과학계의 권위 부정, 음모론적 성격, 자의적 해석의 존재 여지, 독자적 (유사)과학 분야 창설(창조종류학, 창조과학, Zetetic Astronomy, 홍수지질학 등), 입증되지 않은 특정 주장에 대한 확신, 기독교 교리를 근거로 한다는 점, 인간이라는 종에 대한 선민의식 등 닮은 점이 많고, 호환도 잘 된다. 그래서 지구평면설을 믿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젊은 지구 창조설을 함께 믿으며, 둘은 양측에게 서로 모델을 제공해주는[5] 윈윈하는 관계에 있다. 무엇보다도 지구 평면설 역시 특정 성경 구절에 대한 문자주의적 해석으로 생겨난 주장으로, 창조설과 태생이 같다.

    그 상관관계와 반지성주의라는 접점 때문에 해외는 물론 국내에서도 창조설자를 보면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냐'며 조롱하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으며, 실제로 창조설자 중에서 지구평면설자의 비율은 일반인에 비해 유의미하게 높은 편이다. 무신론 갤러리 등에서도 지구평면설을 신봉하는 창조설자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 뒤에 내가 보니 땅 네 모퉁이에 천사가 하나씩 서서 땅의 네 바람을 제지하여 땅에나 바다에나 어떤 나무에도 불지 못하게 하고 있었습니다.



    요한의 계시록 7장 1절[6], 공동번역 성서


    다만 당연하게도 모든 창조설자가 지구 평면설을 믿지는 않는다. 지구 평면설은 창조설을 믿는 사람들에게도 허무맹랑한 소리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성경 창세기에 따른 역사관은 19세기부터 과학계에서 배제되기 시작했으나[7] 지구 구형론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있었던 주장이며, 중세부터 상식이자 정설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그만큼 직관적인 결론을 내기 쉬웠다.

    참고로 평평한 지구 학회에서는 빅뱅 우주론과 지구 구형론, 진화론을 3대 적으로 규정했다.
  • 지적설계: 창조설을 과학 교과서에 집어넣기 위해 종교색을 뺀 주장이다.
  • 21세기의 천동설 주장: 창세기라는 같은 근거를 공유하고, 창조설과 21세기 천동설을 엮어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기에 연관이 없지는 않다. 링크로 들어가 보면 알겠지만 진지하게 성경에 더 잘 들어맞는다는 이유로 지동설[8]을 부정하고 천동설을 주장하는 사람이 존재한다.

5. 과학철학에서 바라보는 창조설

5.1. 유사과학( 사이비 과학)

과학철학의 주요한 과제 중 하나는 '과학'과 '과학이 아닌 것'을 구분하는 일이다. 이에 대해서는 학자마다 여러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극단적인 무정부주의적 과학관을 피력하는 파울 파이어아벤트(Paul Feyerabend)를 제외한 대부분의 과학철학자는 창조설을 유사과학으로 보고 있다. 이 중 칼 포퍼, 토마스 쿤, 임레 라카토슈의 이야기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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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1. 입증 불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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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철학은 ' 과학적 연구방법론'에 대해서 연구한다. 과학철학계에서는 창조설에 대해 '과학적인 검증이 불가능'한 주장이라고 말한다. 이는 창조설이 유사과학이라고 분류되는 주요한 이유 중의 하나다.

우선, 창조설의 기초가 되는 '신의 존재'는 과학적 연구방법론에 의한 입증이 불가능하다. 신의 존재를 입증하기 위해 어떤 실험을 설계해야 할지 모르고, 또 어떻게 실험을 설계한다고 해도 그게 옳은 실험인지에 대해서도 알 수가 없다. '현상 발견 → 가설 세우기 → 가설 입증을 위한 실험 설계 및 실험 → 결과 분석'이라는 과학적 연구 방법에서 '입증을 위한 실험 설계'가 불가능하다. 애초에 과학적 실험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찌어찌하여 신의 존재를 입증했다고 해도, 그 신이 생명을 창조하는 행위를 했는지, 그리고 창조 행위를 했다면 어떤 방식으로 창조했는지에 대해선 아무도 모른다는 문제에 부딪힌다. 제아무리 실험실에서 생명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다고 해도, 신이 그와 같은 방식으로 생명을 창조했다는 근거는 없으므로, 그 실험으로 '신이 생명을 창조했다'는 것을 입증한다고 말할 수 없다. 오히려 그 실험은 '뜨거운 원시 지구에서 원자들의 화학적 결합에 의하여 생명이 자연 발생되었다.'는 현대 과학의 생명 탄생 가설에 대한 강력한 실험적 증거가 될 수도 있는 노릇이다.

5.1.2. 반증 불가능성

그나마 그들에게 위안이 되는 사실이라면, 창조설은 과학과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반증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창조설은 '신이 모든 것을 설계했다'고 한다. 그러므로 반증을 위해 그 어떤 사례를 제시하더라도, 창조설은 "그 역시 신이 설계한 것이다"라고 답할 것이다. 따라서 창조설에 대한 반례 제시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반증이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다. 역설적으로 반증할 수 없기 때문에, 창조설은 무적의 이론인 셈이다. 인간 경험의 한계라고 할 수 있다. 막말로 만유 인력도 어느날 사과가 위로 떠오르는 것이 관찰된다면 틀린 것이 된다.

그래서 저 이론은 '틀린' 이론이 된다. 왜냐하면 창조설에서 내세우는 논리는 대부분 "순환 논증의 오류"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국어적, 언어적으로 순환논증의 오류에 해당하는 논리는 애초에 반박할 필요도 없는 틀린 논리다. 일반적으로 논리란 어떠한 명제가 참이냐, 거짓이냐를 근거를 들어 밝히는 언어 사고를 의미한다. 그런데 순환논증의 오류에서는 명제가 근거가 되고, 근거가 명제가 된다. 즉 '어머니'가 왜 어머니인지 밝히려면 그 근거로 어머니의 '자식'이 등장해야 한다. 그런데 순환논증의 오류에서는 "어머니가 어머니인 이유는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라고만 한다. 자식이 없는 여성을 어머니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냥 여성일 뿐이다. 창조설도 마찬가지다. 신이 생물은 설계한 게 맞다면 그 근거를 들고 와야 한다. 그런데 신이 생물을 설계하고 창조한 것은 성경에 써져 있고, 그 성경은 신이 썼다고만 한다. 신이라는 명제를 증명하기 위한 근거로 '신'만 내세우는 꼴이다.

마찬가지로 과학철학자인 칼 포퍼는 이처럼 "반례 제시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이론, 즉 반증이 원천적으로 봉쇄된 이론은 과학이 아니다"고 하였다.[9][10] 그리고 칼 포퍼는 과학이 아님에도 과학이라고 주장하는 것들을 사이비과학 또는 유사과학이라고 불렀고, 유사과학은 과학 시간에 들여 놓아선 안된다고 주장했다.

5.2. 과학이 아니라 믿음의 영역

물론 '신이 설계했다'는 가설이 참일 수도 있다. 그리고 유신론자들 중 생물의 진화 자체는 인정하는 사람들은 '신이 생명을 설계하면서, 진화도 같이 설계해 놓았다'는 주장( 유신론적 진화론)을 펼치기도 하는데, 그 가설 역시 참일 수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신이 설계했다'는 가설은 위에서 보았듯이 검증도 불가능하고, 반증도 불가능하다. 해당 가설의 참/거짓에 대해서 연구할 방법이 없고, 따라서 연구자는 할 일이 없다. 가설만 존재할 뿐 그에 대한 과학적 연구는 존재할 수가 없다.[11] 따라서 '신이 설계했다'는 가설은 과학의 영역에 속할 수는 없고, 그저 믿음의 영역에 속할 수밖에 없다. 그러한 가설은 과학적 가설이 아니라, 교리적 성격을 가질 뿐이다. 물론 그러한 가설을 믿을지 말지는 각자의 선택이다. 하지만 믿더라도 과학적 근거는 있을 수 없고, 그저 종교 경전 정도만이 그들 입장에서의 나름 근거가 될 수 있다.

따라서 과학철학계에서는 단지 종교의 영역에 속할 뿐인 창조설을 과학이라고 우기는 자들은 과학이 뭔지 모르거나, 반지성적 사고를 가진 사람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유일신계 종교를 가진 과학자들은 과학과 종교를 아예 구별지어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가령 그리스도교 신자인 과학자들은 대개 성경은 도덕율 구원론을 제시하고 세상을 살아갈 용기를 주기 위해 저술된 책이지 과학책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식이다. 물론 일부 근본주의 성향이 강한 종교인들은 이런 생각 자체가 과학자들의 지적인 교만이자 인류가 신앙적으로 부패한 증거라고 비난하기도 하지만, 현대에는 신학계에서도 이런 극단적인 관점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관점이 늘어가는 추세다.

6. 과학이라고 우기는 창조설자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종교의 자유가 엄연히 보장되므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나의 신을 독실히 믿겠다'는 사람을 비난할 구실이 없다. 하지만 다수의 창조설 지지자는 창조설이 '과학적'이며, '다른 사람이 믿어야 한다'고 하며, 공식적인 교육과정에 진화론과 함께 포함되어야 한다고 피력한다. 그리고 논리적인 반박을 무시하고 모든 것을 신앙적 영역으로 주장하며, 종교적인 믿음으로 해결하려 하는 데서 과학의 영역을 침해하며 많은 지성인의 심기를 건드리고 있다.

창조설 이론이 성서무오설 축자영감설에 근거한 기독교 근본주의 신학의 한 분야라고 한다면 기독교 밖에서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 창조과학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창조과학을 수많은 성경 해석의 방법들 중 하나로 주장하는 것이라면, 신학계 밖의 학자들 중에 뭐라고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실험 설계를 통한 과학적 입증 자체가 불가능한 영역을 가지고 과학이라고 주장하기에 까이는 것이다.
▲ 과학으로 다시 쓰는 창세기. 창조설을 과학에 넣으려는 시도를 풍자하는 동영상이다.

어쩌면 처음부터 창조설자들에게는 '과학'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반증 불가능하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들의 목적은 단지 과학의 이름을 빌려서 성서무오설/ 축자영감설이 맞는다는 주장을 하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창조설자들이 자신들의 주장이 사실이라는 것을 입증할 노력은 하지 않고, 그저 진화론을 거짓이라고 공격하는 이유다. 실험적 연구가 가능하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실험상의 오류 역시 생길 수 있는 진화론에 대해서 갖은 주장으로 공격함으로써, 어떠한 반례 제시도 불가능한 자신들의 학설이 더 우위에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설령 진화론이 거짓이라고 해도, 그것이 창조설이 우위에 있다는 뜻은 아니며, 창조설은 실험이라도 가능한 진화론과 달리 그들의 주장이 사실인지 입증하는 과정을 어떤 방식으로도 전혀 거칠 수 없다.

창조설이 과학의 영역에 속한다는 주장을 하는 이들은 주로 진화론이 가지는 불확실한 부분을 지적하며 "진화론이 틀렸으니 창조설이 옳다."는 주장을 한다. 하지만 이는 단순한 흑백논리에 지나지 않아 진화론이 틀렸다고 해서 창조설이 맞는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고, 누군가가 생물을 만들었다고 해서 그들의 종교에서 주장하는 식의 창조설이 맞는다는 보장 역시 없다. 가령 신이 아닌 외계인이 지구상의 생물을 만들었을 수도 있는 것이다. 외계에서 왔다는 주장은 그럼 그 외계에서 온 놈은 어떻게 창조되었냐 하는 질문 하나로 순환논리의 덫에 빠지기는 하지만... 최소한 종교처럼 스스로 존재하는 자 드립으로 무책임하게 회피하지는 않는다.

기본적으로 기존의 진화론에서 잘못된 부분이 발견되면 그 잘못된 부분을 수정해서 계속 발전해나가는 것이 과학이다. 만에 하나, 진화론이 근본적으로 거짓이라고 과학적으로 입증된다면, 과학자 입장에서는 그냥 진화론을 폐기하고 새로운 가설을 세워서 실험을 통해 이론을 발전시켜 나가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창조설은 결코 과학적 이론으로 발전할 수 없는 수준의 주장에 불과하다.

하지만 창조설자들은 과학적인 주장이 있다며 외국인 교수들의 해설문이나 논문을 자료로 제시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자료들이 대부분 날조거나 인정받지 못한 논문들이다. 대표적으로, 미국의 세인트 헬렌스 화산이 1980년 폭발했을 때의 예를 들어 그랜드 캐니언이 노아 시절의 대홍수로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고 주장하며 지각 변동에 대한 자료를 토대로 만들어진 논문이 있다. 그런데 지구과학계에서는 "말이 되냐?"라고 비웃었고, 주장을 뒷받침한다며 인용된 논문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또 비웃음을 샀다. 애초에 상당한 권위를 가진 지질학자 중에서 저 논문의 발표자가 한 말을 믿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창조설을 지지하는 사람 중 과학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사람은 창조설을 굳이 과학과 연결하려 하지 않는다.

종교는 무조건적인 믿음을 가장 중요시하는 데 반해, 과학은 의심하는 자세를 중요시하므로 둘은 본질적으로 전혀 다른 영역이다. 그럼에도 서로 다른 두 영역을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어서 창조설에 과학이라는 글자를 붙여서 '창조과학'이라는 용어를 만들어 내는 것은 비판받을 지점이다. 창조설 지지자들은 창조설을 과학으로 입증하겠다고 말하지만, 위에서 말했듯이 창조설은 과학적 입증과 반증이 불가능하다. 그리고 창조설이 과학적으로 입증되어야 믿을 수 있다면, 굳이 종교의 카테고리에 구속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물론 과학적으로 입증하지 못하는 존재를 절대적으로 믿는 것이 옳은 일인가는 또 별개의 문제일 것이다.

7. 창조설의 논리와 과학적 방법론의 충돌

1. 종교적인 문제를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

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과학적, 논리적으로 증명할 수 없다. 종교는 믿음의 영역인데, 그것을 과학적, 논리적으로 증명하려는 시도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과거 인간이 자연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을 때엔 우리가 과학으로 알고 있는 자연의 작동방식도 철학의 형이상학의 범주에 머물러 있었다. 일례로 우리가 아는 과학을 예전에는 자연철학이라고 불러 서술한 서적이 많았다. 하지만 르네 데카르트로 대표되는 계몽시대 이후 과학적 방법론이 발달하면서 자연이 그리 이해할 수 없거나 알 수 없는 신이 마음내키는대로 좌지우지 되는 것이 아닌 변하지 않는 일정한 규칙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고, 비로소 자연이 형이하학의 범주로 내려오게 된 것이다. 즉, 신과 신의 창조라는 것은 그 신이란 존재가 직접 모두 앞에 관측가능한 방법으로 나타나 소통하고 입증하지 않는 이상 입증도 반증도 할 수 없는 영역의 것이다.

어떤 연구자가 개인의 종교적 믿음과 그것으로 인한 효과, 소위 기적이란 것을 과학적 방법을 통해서 입증하려는 시도는 가능하지만, 그 결말은 미리 결론을 정해놓고 자신의 믿음을 지지하는 것만 취사선택하는 확증 편향이 되기 쉽다. 이런 이들은 연구자의 윤리를 준수한 실험과 결과 분석을 통해 자신의 믿음을 지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결과들을 얻어내도 자신의 믿음에 근거한 자신의 가설을 버릴 가능성이 적다. 불리한 조사 결과가 나와도 신의 신앙심 테스트, 해석 실수, 악마의 속임수 같은 Ad Hoc으로 땜질하면 그만이다.

종교를 통해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은 질책당할 행위가 아니다. 또한, 굳이 종교를 통하지 않아도 인간은 자연스럽게 삶의 의미를 갈구한다. 삶의 의미가 꼭 객관적인 진리일 필요는 없다. 과학자도 과학이 자신에게 어떠한 의미를 주기 때문에 연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주관이 객관의 영역과 연구윤리를 침범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2. 창조설을 도입할 타당성과 개연성에 공감하는 사람이 드물다.

무종교인의 입장에서 많은 자연현상이 종교를 통하지 않아도 충분히 설명되고, 재현성의 신뢰도까지도 충분히 검증이 되어 다양한 응용과학의 꽃으로까지 피워낸 자연의 작동원리에 대한 인류의 이해를 이제와서 굳이 종교의 시각을 통해서 보아야 하는 것 자체가, 문학과 예술의 관점이라면 모를까 객관적으로는 개연성과 타당성이 심히 떨어지는 일이다. 이는 라플라스가 굳이 신을 가정하지 않아도 자신에겐 과학적 저술이 가능하다고 나폴레옹에게 했던 발언의 태도와 같다. 이런 개연성과 타당성의 부재는 3번항목의 문제로 이어진다.

게다가 이 세상에 종교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세계 4대 종교 뿐만 아니라 천도교, 전통 신앙, 북유럽 신화 등도 각각 다른 주장을 하고 있다. 그 많은 신화 중 굳이 기독교의 세계관을 받아들일 당위성은 없다.

3. 창조설이 진화론 및 "반창조"적 자연과학에 기반을 둔 기존의 응용과학에 어떤 대체 학술 기반을 제공할 수 있는가?

순수/기초/자연과학이 충분히 발달해 검증된 재현성 신뢰도를 쌓고 나면 응용과학의 기반이 될 수 있다. 고전물리학의 역학이 여러 공학들이 성립될 수 있게 학문적 기반을 제공했다면, 진화론은 생물학의 응용과학인 의학, 수의학, 농경학, 생태/환경공학/보호학 등에 제공할 수 있는 학문적 기반들이 된다. 예로 집단내의 유전병이나 사랑니 같은 퇴화기관, 가축이나 반려동물들의 종 개량 및 유지 보수, 멸종위기종의 유전적 다양성 같은 주제도 있으며, 더 나아가 인공지능 분야에서 진화 및 유전적 알고리즘을 통해 문제의 해법을 찾아내는 발상에도 기여하고 있다.

창조과학이 기존의 과학보다 신뢰도 높고 재현성 좋은 예측력[12]을 제공할 수 있다면 기존의 과학은 더 이상 없어도 된다. 그러나 창조설의 예측은 그저 "신 마음대로"가 될 것이 뻔하다. 한 예를 들자면, 기상학이 발달하기 전에는 가뭄이 들면 대다수의 종교가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그런 식으로 신이 노여움을 풀고 비를 내려줄 때까지 소위 '인디언식 기우제'를 지냈다. 당연히 기상현상에 대한 과학적 설명이 가능해진 현대에는 어떤 나라도 기우제를 지내지 않는다.

4. 전문성이 전혀 없다.

학술적 엄밀함이란 쉽게 말해 이때까지 이 학문의 학자가 무엇을 해왔고, 지금 학회의 흐름은 이것인데, 그에 대한 대답을 지금까지 학자들이 쌓아왔던 학술적 전개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사용해서 학술적 책임을 질 수 있는 대답이나 반박을 내놓을 수 있느냐는 것을 말한다. 다른 분야의 연구자나 비전공자가 어떤 학술지에 논문을 내지 못한다는 법은 없다. 단지 검증된 학교에서 그 학문을 정식으로 공부 및 연구를 했던 적이 있는 사람이 그런 엄밀한 논의를 전개 할 수 있는 역량을 뒷받침하는 성적이나 검증된 연구경험 및 실적들이 압도적으로 더 많을 뿐이고, 학술적으로 까고 까이는 교차검증과 피어 리뷰에서 논문이 채택될 확률이 상대적으로 더 높을 뿐이다. 요구되는 엄밀함을 보여줄 능력이 있으니깐. 하지만 창조설이나 창조과학을 한다는 사람들치고 자신들의 논문을 통해 이런 학술적 엄밀함을 보여주는 사람들은 전무하며, 그 대신 5번 항목에서 이야기 할 신자와 대중을 위한 쇼맨쉽에 더 많은 투자를 하며 기존 과학이론을 단순화하거나 창조설의 이야기가 맞아 보이게끔 취사선택하거나 왜곡해 사용하는 일도 밥먹듯이 한다.
설사 앞서 언급한 학술적 엄밀함의 측면을 떠나 소위 전공/학부 같은 정통성이나 자격의 측면에서 따져보더라도, 창조설자 대부분은 관련 과학분야를 전공하거나 관련 과학분야에서 일하지 않는다. 굳이 창조설을 입증하겠다면 성경에 있는 내용부터 과학적으로 증명해야하므로 물리학, 고생물학, 천문학 분야의 전문가가 있어야 그나마 신자들과 대중에게 신빙성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 내부엔 저 3개의 전공을 가진 과학자들은 전혀 없으며, 설령 비슷한 전공이라고 하더라도 세부 전공이 다른 케이스를 볼 수 있다. 그나마 이런 경우라면 다른 전공 지식을 대학에서 배웠기 때문에 자신의 논리 전개를 시도할 수 있겠지만, 문제는 이런 케이스도 앞의 것보다 비율이 다소 높을 뿐, 비율상으로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이들 중에서 전자공학, 기계공학, 의학 등 여기에 상관이 거의 없거나 직접 언급하지 않아도 자기 전공 분야의 지식은 전개가 가능한 학문[13]을 전공한 과학자도 많고, 심지어 변호사 같은 인문학 계열도 있다. 이 현상이 반복되다보니 해외에선 심지어 기계, 전자공학자들과 창조설의 상관관계에 대해 비꼬는 Salem Hypothesis 라는 가설도 있다.

5. 창조설을 연구한다는 과학자들이 학술적 연구성과는 보여주지 않고, 신자와 대중을 위한 쇼맨쉽으로 점철되어있다.

과학자는 과학적 방법론으로 그가 제안한 가설을 재현가능한 실험들을 통해 신뢰도를 강화시켜 더 예측력과 재현성의 신뢰도가 높은 이론으로 만들어가는 사람이다. 즉 그가 제시하는 가설은 그 가설을 테스트 해볼 수 있는 실험방법을 통해서 그 가설의 입증을 지지하거나 지지하지 않거나라는 1차원 축 위에서 수치화 할 수 있을수록 모범적 과학적 방법론의 사례로 여겨진다. 물론 과학자는 자신의 가설이 맞길 바라기는 하겠지만, 틀린다 한들 거기에서도 새로운 학문적 발견이나 배울 수 있는 것이 많다. 아무리 유명한 스타 과학자라 한들 가장 기본은 이 과정과 결과물을 자신의 논문을 통해 엄밀하게 말하는 것이다.

반면 창조설은 과학적 방법론을 통해 입증한 것이 부족하다. 창조설이 과학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14] 창조설에서 엄밀한 전문성이 담긴 논문을 찾기 어렵다. 이에 대한 반론은 미주크리스천신문 - 왜 창조과학자의 주장은 학술지에 없을까?처럼 "진화론이 세속 학회를 장악해서 창조과학 논문이 출판되지 못하게 검열한다"는 식이다.

이처럼 연구와 논문을 통해 입지를 강화해 나가기는커녕, 적을 비판함으로써 자신의 입지를 강화시키는 패턴이 대부분이다. 한국창조과학회의 홈페이지에도 논문은 안 보이고 게시판을 통해 "기존 과학의 이러이러한 부분에는 심각한 오류가 있다"라는 비판이 태반이다. 설파자 자기 자신이 그 용어를 제대로 이해하고 비판하는 건지조차 의문이다. 이런 비판들에 자신이 비판하고 있는 과학적 용어/개념, 예제들에 대한 학술 논문은 커녕 대중과학매체에 대한 레퍼런스조차 찾아보기 힘들다. 반지성주의적인 신자와 대중을 설득시키는 게 목표이기 때문인지 과학 용어/정의를 심각하게 단순화하거나 왜곡해 설명하는 것이 태반이다. 비판하는 내용의 사실 여부에 상관없이 비판을 하는 시늉만 조금 해줘도 마치 다윗과 골리앗 사이의 의로운 진리의 싸움이라도 목격했다는 듯 신앙심이 고조되는 신자가 많은 것이 근본주의에 경도된 개신교 교회들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6. 그릇된 탐구 과정을 따르기 때문에 과학 이론이라 부를 수 없다.

그릇된 탐구 과정이라는 것은 과학적 방법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과학적 방법이란, 과학자들이 따르는 종교적인 교리나 신앙고백 같은 것이 절대로 아니다. 이것은 본질적으로 엄밀한 논리학이 적용된 연역법 귀납법의 절묘한 조합이다. 자연의 패턴들을 귀납적으로 관찰해서 공통점을 추려낸 뒤, 그 공통점을 기반으로 일반화된 가설을 세우고 다른 현상들에 연역적으로 적용해서 가설을 증명하며 점차 수학적으로 법칙화된 이론으로 가공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데카르트 뉴턴이 활동하던 르네상스 시기의 연구방법론에서부터 현대까지 축적된 노하우들이 체계화된 것이라고 봐야 한다. 즉 직관과 추론, 논리와 메타논의, 증명과 성찰들[15]의 정수를 추려내 체계적인 철학으로 정리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16] 과학이 발전함에 따라 과학의 패러다임들이 새로운 기발한 아이디어와 과학철학적 성찰을 통해 개선되고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대체될 수도 있겠지만, 앞서 말한 과학적 방볍론에서 벗어난 적은 없다.

물론 과학적 방법을 적용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가설에 맞지 않은 데이터들을 고의적으로 누락시킨 뉴턴의 사례처럼, 결론을 미리 정해놓고 데이터 중에서 그를 지지하는 증거들만 골라 취사선택하는 경우가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 역시 이것들이 정확한 데이터라는 근거가 부족해서 반증가능성을 충족하지 않고, 설령 정확한 데이터라고 하더라도 기존의 패러다임을 대체할 만큼 더 신뢰성이 있는 이론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이론의 논리적 개연성을 유지하기 위해 누락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누락시킨다는 것은 절대 이것을 은폐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으며, 그 데이터가 정확하다는 가정 하에 기존의 이론에 한계가 있음을 인정하고 더 발전된 이론을 정립하기 위해 다른 연구과제로 따로 다루는 것으로 봐야 한다. 반대로 말하면, 정확한 데이터가 가설을 반증할 만큼 많고 그 데이터들을 더 잘 설명할 수 있는 패러다임이 있다면 과학은 과학적 방법론에 근거해 기존의 가설을 폐기해야만 한다. 그런 면에서 이 과정은 자연으로부터 귀납적인 가설에 대해 일종의 연역적인 피드백을 얻는 과정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자연으로부터 가설을 지지하는 결과를 얻었다면, 성공적으로 이행한 실험 내용과 가설은 학회에 발표된다. 그리고 그 연구 과정을 재현하려는 시도가 다른 학자로부터 나올 것이다. 그 과정에서 재현성이 떨어진다면 그 가설은 이론으로 격상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된다. 재현성이 좋다면 이론이 되는데에 좋은 첫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이후 이 실험방법 외에도 다른 방법으로 가설을 실험해보는 시도들이 나올 것이고, 그 과정에서 가설의 신뢰도가 떨어질 수도, 더 높아질 수도, 추후에는 이론으로 격상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격상된 이론이 틀렸다는 결정적인 과학적 증거가 있거나 지지하는 근거가 쌓이면 그 이론은 버려지고 그 반례들까지 실험으로 포괄 가능한 이론으로 보강된다.[17]

반면 창조설을 주장하는 연구자들은 "성경에 나온 이야기는 전부 다 실제 일어난 일이다"라는 결론을 정해 놓는다. 그리고 이 결론이 부정되면 자신의 신앙이 무너지기에 이 결론은 어떻게든 참이어야 한다.[18] 그렇기에 이 연구자는 자신의 신앙을 위해 자신의 결론에 기존 과학개념이 맞도록 짜집기할 수밖에 없다. 반증이 불가능하고 반증되어서는 안 되는 결론을 정해놓는 것이며, 그 결론보다 더 설득력이 있는 가설은 이단으로 취급될 수밖에 없고 또 신앙적으로 그래야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창조설은 일종의 교리를 가설/이론인 것처럼 부르는 것이기에 과학적 방법론이라고 볼 수 없다. 이는 연구자의 이해상충 혹은 이해충돌이라고 해석할 여지까지도 있으며, 꼭 과학적 방법론이나 연구 윤리에 대한 이해가 없더라도 상식적인 선에서 왜 치팅인지 납득할 수 있다.

창조설자들은 자신이 학술적으로 기여하는 것은 없으면서 적을 비판함으로써 자신의 입지를 넓힌다. 창조설에 모순이 있더라도 무시해버리고, 진화론을 지지하는 "위험한 이론들"의 "허점"만을 집요하게 찾아낸다. 근거 A를 다른 근거들과 같이 보거나 전체적으로 볼 때는 특정 이론에 적합하지 않더라도, 근거 A만 따로 보면 특정 이론에 적합해 보이는 경우가 가끔 있다.[19] 창조설자들은 수많은 과학 개념과 연구 결과 중 조금이라도 허점을 발견하면 그 개념을 창조설의 근거로 제시한다.

마지막으로, 창조설은 이론에 모순이 있어도 그 간극의 신으로 떼워 넣으면 그만이고, 자신이 무너뜨린 "위험한 이론"들의 부재로 공백이 생기든 말든 또 다시 기독교의 신으로 떼워넣으면 그만이다. 이처럼 간편한 데우스 엑스 마키나[20]가 따로 없다.

8. 세계 동향

8.1. 미국

1925년, 스코프스 재판으로 인해 40여 년간 테네시주 교육계에서 진화론이 퇴출되었다. 교육 과정에서 진화론의 재도입은 한동안 지지부진했다. 1951년 스푸트니크 쇼크가 발생하고 과학/공학 인력 확충의 필요성이 급격하게 대두되면서 대다수의 생물학 교과서에 재수록되었다. 4개 주가 끝까지 버텼지만, 1987년 에드워드-아귈라드 재판에서 미국 대법원은 정교 분리 원칙 위반을 이유로 공립학교에서 창조설을 가르치는 것을 금지하였다. 물론 신학대학교까지 터치하지는 않고, 공공교육기관에서 가르치지 못하게 한 것이다. 당시 대법원은 창조설 교육을 "과학으로 위장해서 특정 종교의 교리를 전파하려는 시도"로 판단했다. 다인종/다민족/다종교 국가인 미국은 특정 교리를 옹호하고 보조하는 가설이 발표될 경우 특정 민족/종교의 세력을 확대시키려는 움직임으로 판단해서 제지하곤 한다.

이 때문에 "특정 종교와 아무 상관이 없다"고 주장하는 지적설계가 나왔지만, 야훼를 지적 설계자라는 이름으로 바꾸었을 뿐, 사실상 눈 가리고 아웅이란 조소를 받으며 위법 판결을 받는다. 지적 설계를 지지하는 교회 연합의 높은 지지를 받던 펜실베니아 주에서는 이에 대한 소송을 걸었는데 자료부터 주장까지 신의 뜻이라는 말을 주장해서 패소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패소 직전까지 자신들은 창조론과 전혀 관계가 없다고 주장했으나 이를 뒤엎는 문서가 발견돼서 패소했다. 이 재판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고 싶다면 이 다큐멘터리를 시청하자.

지적 설계를 주장한 교회 연합과 신의 뜻을 주장한 펜실베니아 주의 재판은 큰 화제가 되었고, 이 재판에 참가한 과학자와 재판의 내용을 접한 과학자들을 중심으로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이라는 패러디 종교가 만들어지게 된다.

또한 2006년, 교회 연합이 창조설을 가르치게 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려고 애를 썼으나 부결되었고, 교회 연합은 이에 반박 재판까지 벌였으나 3심 모두 기각되었다. 그러나 몇몇 지역에서 보수 대학들이 창조설을 가르치고 있으며, 밥 존스, 리버티, 펜서콜라에서 성행하고 있다. 창조론 기반의 자연사 박물관은 미국이 원조다. Creation Museum이라 해서 몇 군데 있는데, 특히 칼 보(Carl Baugh)가 운영하는 박물관은 발자국 유물을 위조하기로 유명하다.

2014년 미국에서의 설문조사 결과 창조설을 믿는 사람이 42%, 유신론적 진화론을 믿는 사람이 31%인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대졸자에 한해서는 양쪽 모두 27%에 그쳤다. # 현역 과학자 수준으로 올라가면 창조설 1%, 유신론적 진화론 7%로 한자리 숫자로 떨어진다. #

2015년에는 이러한 창조설자들의 주장이 어떻게 진화해 왔는지에 대한 과정을 정리한 도표가 사이언스지에 직접 공개된 바 있으며, 이것으로 계통수까지 그려졌다.

하지만 어떤 성향을 지닌 사람이든 일반적인 대학을 가고 싶다면 진화론을 공부해야 한다. 스푸트니크 쇼크라는 선례가 있는 만큼 미국의 명문대와 주립대는 현대 과학에 대한 이해를 중시하는 것이 당연하며 이렇게 창조론 교육만을 받고 온 사람을 받아주지 않는다. 심지어 신학대학이 있는 하버드 대학교조차 현대 과학에 대한 어느 정도의 이해를 필수적으로 요구할 정도다.

8.2. 유럽

2007년 유럽의회 의원총회(PACE)는 47개 회원국의 공립학교에서 과학 수업시간에 창조설을 가르치지 못하도록 하는 결의안을 표결했다. PACE 측은 "종교적인 이유로 창조설이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이는 과학적 지식에 대한 도전일 뿐만 아니라 인권도 위협할 수 있다."고 밝혔다.

2009년 영국에서의 설문조사 결과, 51%가 "진화론이 생명체 탄생을 완전히 설명하기에는 충분하지 않고, 중요한 단계에 '설계자'의 개입이 필요하다."는 의견[21]에 동의했다. 40%는 이 같은 의견에 동의하지 않았고, 나머지 9%는 모른다고 대답했다. "신이 1만 년 이내의 어느 시점에 우주를 창조했다."는 창조설을 진실로 믿고 있느냐는 질문에는 32%가 '믿는다'고 답했고, 60%는 '믿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나머지 8%는 '모른다'고 답했다. # 리처드 도킨스는 영국인들이 과학에 얼마나 무지한지를 나타내는 설문조사라고 평가하였다.

다만 유럽의 기독교는 미국과 달리 진화론과 다투려는 경향이 거의 없다. 그 이유는 유럽의 기독교가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을 거치면서 자연 연구는 과학에 맡기고 우리는 신과 인간의 관계에만 집중하자는 경향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런 경향이 현대까지 이어져 20세기 기독교 신학이 실존주의적 성향을 띄게 되었다. 스티븐 제이 굴드의 NOMA 개념과 비슷하게 과학은 과학의 언어가 있고, 기독교는 기독교의 언어가 있기 때문에 서로 간섭하지 말자는 경향이 내려오고 있다.

8.3. 중동 및 이슬람권

이슬람권도 중등교육과 고등교육 과정에서 서구와 똑같이 수학과 과학을 배운다. 그러기에 우수한 인재들이 서구로 유학을 갈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종교 교육은 따로 하지만, IS나 탈레반 같은 사이비 막장이 아닌 이상 국력과도 관련이 되어 있는 과학을 안 가르칠리가 없다. 따라서 진화론을 대충이나마 배우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신정국가인 이란 학교 과정에서도 진화론을 가르친다고 한다 한편 세속주의 국가인 튀르키예에서는 튀르키예 독립 전쟁 이후 쭉 진화론을 가르치고 있었으나 2017년 교과서에서 삭제한다고 밝혔다.

무슬림 역시 진화론과 창조설을 두고 진영이 갈린다. 일반 대중은 창조설을 지지하는 편인데, 기독교인처럼 진화론을 적대하는 의식이 명확해서 창조설을 지지하기보다, 어려서부터 꾸란으로 교육받았기 때문에 상식처럼 받아들이곤 한다. 많은 이슬람 국가는 소수 엘리트를 제외하면 보통교육이 완비되지 않았으며, 평균 교육수준이 높지 않다. 통계에 따르면, 무슬림이 진화론을 받아들이는 비율은 복음주의 계열 개신교인보다 높다.

이슬람에서도 기독교와 마찬가지로 창조설을 비유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견이 예전부터 있었다. 찰스 다윈보다 천년이나 앞서 진화론을 주장한 알 자히즈라는 신학자도 있었다. 꾸란 성경보다 훨씬 뒤에 성립되었다. 구약성경의 창세기가 BCE 1500~400년경에 성립되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꾸란은 이보다 최소 천년 뒤에 쓰여진 셈이다. 다만, 꾸란은 연대기순으로 편집되지 않다보니, 성경에 비해 과학과 충돌할 여지가 적은 편이다.

8.4.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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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1960년대부터, 각급 학교 교과서 집필 규정에는 창조설이 들어갈 수 없도록 법적으로 제재를 걸어왔다. 법조계에 따르면 미국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고 한다.

1970년대 중반, 일부 미션스쿨계열의 고등학교가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려 했지만 시대가 시대인지라 그냥 무시되었다.

1981년 한국창조과학회가 설립되어 창조설을 퍼뜨려왔으며, 2009년 5월 창조과학회에서는 창조설을 가르치지 못하게 하는 법규의 삭제를 요청하는 헌법소원을 준비했었다.

그러나 그들의 시도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교과서 진화론 개정추진회 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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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진화론을 옳다고 생각하는 비율은 대략 60% 정도. 원본 글처럼 EBS 다큐프라임 신과 다윈의 시대에서 나온 것이라면 2009년의 조사 결과로, 결코 안심할 수준이 아니다. 가톨릭 개신교의 차이가 인상적이다. 사실 불교 쪽도 의외로 비율이 낮은데, 종교적으로 별로 중요치 않아서 그럴 확률이 높다. 종교 없음인 경우도 중요하지 않은 사안이라서 역시 비슷한 맥락이다. 오히려 가톨릭은 교황청이 진화론의 가능성을 인정하기 때문에 불교와 무종교보다 높게 나온다. 즉 사실상 개신교 쪽이 비정상적으로 낮은 셈이다.

근래에 들어서 일부 개신교계 선교단체에서는 유신론적 진화론을 인정하려는 듯한 추세를 보이는데 그 이유인즉 사범대 자연과학계열 학생들의 집단 반발 때문이라는 소문이 있다고 한다.[22] 그래서 요즘 창조과학 세미나에서는 '창조설만 맞는다고 하진 않아요. 하지만 진화론과 같은 레벨의 가설적 이론이라는 것을 알아주세요'에 초점을 맞춰서 강의하고 있다.

2018년, 전혀 말이 되지 않는 가짜 뉴스를 인용해 다시 창조설을 주장하는 황당한 행동을 시작했다.[23]

2015년 8월 11일, 연세대학교에서 2학기에 창조과학 수업을 개설할 예정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1학년만을 대상으로 하는 1학점 짜리 교양으로, 수업을 담당할 교수는 전기공학 전공자이다. 교수의 말에 따르면 진화론도 빅뱅 이론도 모두 하나의 가설에 불과한 것이며 누가 본 것도 아니므로 창조과학을 가르치는 것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한다. 수업 내용은 생명의 출현, 종(種)의 기원, 노아의 홍수, 우주의 기원, 공룡 이야기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강의 계획서에는 '창조론과 진화론에 관한 과학적 접근을 통해 성경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대전의 장로교 계열 4년제 대학교인 한남대학교에서 유신론적 진화론에 기초한 창조과학 교양과목을 진행한다.

그리고 2017년 3월 기준으로 부산의 고신대학교에서 정병갑 교수가 창조과학 과목을 개설하여 강의 중임이 확인되었다

포항의 한동대학교에서는 교양 필수 과목으로 '창조와 진화'나 '기독교 세계관'과목을 이수해야 하는데, 둘 모두 창조과학을 다루며 진화론을 부정한다. 그 외의 종교 과목에서는 교수의 강의 스타일에 따라 정도나 비중은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진화론을 부정하는 것은 같다.

2017년 들어 문재인 정부의 첫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인 박성진 포스텍 교수가 한국창조과학회 이사였다가 문제가 불거지자 2017년 8월 25일에 이사직을 사임하고 창조과학회 홈페이지의 자기 기고 글을 삭제했다. 그전에 역시 문재인 정부의 미래창조과학부 첫 장관인 유영민도 창조론자 논란이 있자 청문회에서 자신이 창조과학론자가 아니라고 부정하기도 했다. 2017년 8월 25일 네이버-JTBC뉴스룸 비하인드 뉴스 종교관 논란 …다시 등장한 '창조론'
[기자] 첫 번째 키워드는 < 다시 등장한 '창조론' >입니다.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로 박성진 포스텍 교수가 지명이 됐는데요. 박 후보자가 '한국창조과학회' 이사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앵커] 한국창조과학회. 낯선 시청자분들도 계실 텐데 어떤 단체인지 간단히 설명을 해 주시죠.
[기자] 설명드리면 그러니까 진화론을 부정하면서 과학을 통해서 성서에 등장하는 창조론을 증명하고자 하는 학회입니다. 그래서 박 후보자는 과거 학술대회에서 이렇게 모든 분야가 진화론의 노예가 되었다는 말을 하면서 모든 분야에 성경적인 창조론으로 무장된 사람들의 배치가 필요하다, 이렇게 주장을 하기도 했습니다.
[앵커] 지난달에 임명된 유영민 미래창조과학부 장관도 같은 논란이 있었죠.
[기자] 그렇습니다. 그런데 청문회에서 유 장관은 "자신은 창조과학론자가 아니다. 그리고 진화론을 부정하지 않는다"고 해명을 해서 논란이 잠재워졌습니다.
[앵커] 그렇군요. 박 후보자의 과거 이런 활동들 청와대에서도 미리 알고 있었겠죠.
[기자] 그렇다고 합니다. 오늘 청와대에서 "임명 전에 알고 있었다" 이렇게 얘기를 했고요. 그러면서 종교가 공직자의 임명 기준이 될 수 없다. 그래서 종교관이 만약에 문제가 된다면 청문회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본인의 해명을 듣는 게 맞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관 후보자의 비주류 과학에 대한 신념이 새로운 기술을 다루는 벤처기업의 성장을 돕는 데 걸림돌이 되지 않겠냐, 이런 지적은 지금도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이렇게 논란이 좀 커지니까 박성진 후보자가 오늘 이사직을 사임했습니다.
[앵커] 창조과학회 이사직을 사임했다는 거죠?
[기자] 그렇습니다. 그리고 어제까지 이렇게 창조과학회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던 기고글도 삭제가 된 상태고요.

2024년 윤석열 정부에서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으로 안창호 전 헌법재판관을 임명하면서 다시 논란이 불거졌다. 놀라운 점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까지 자신의 신념을 지켜 "진화론에 대한 과학적 증명이 없다고 생각한다"는 등의 극단적 주장을 되풀이했음에도 임명이 강행되었다는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문서의 비판 및 논란 항목 참조.

9. 관련 작품

10. 관련 문서



[1] Science and Creationism. Oxford University Press. p. 9. [2] 보통 이 문서의 내용을 창조론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은데, 나무위키에서는 둘을 구별하고 있다. 창조론은 종교 교리를, 창조설은 사이비 과학 이론을 말하는 것으로 쓰인다. 자세한 것은 후술. [3] 영어 사이트이다. 영어가 되면 가보도록 하자. [4] 강건일, '진화론 창조론: 논쟁의 이해', 참과학, 2009, p 76-78 [5] 예를 들면 지구평면설은 우주가 물로 가득 차 있다며 궁창이 실재한다고 주장하며, 창조설은 지구평면설에서 설명하지 못하는 세상과 지구의 기원을 신의 창조 정도로 설명해 준다. [6] 문제의 근거 구절 [7] 18세기까지 대홍수가 먹혔다는 흔적으로, 홍적세라는 명칭이 있었다. 지질 시대가 처음 제기될 당시 과학계는 지금의 창조설처럼 지층이 과거의 대홍수로 인해 형성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8] 일반인들이 착각하기 쉬운데, 지동설은 현재 정설이 아니다. 지동설은 태양을 우주의 중심에 놓기 때문에 '중심이 존재하지 않는' 현대 우주 모형과 모순된다. 즉, 지동설도 틀렸다. 지구가 태양을 돈다는 명제는 계승되어 오고 있는데, 이것도 '태양 역시 지구를 미약하게나마 돈다'라는 식으로 수정되었다. [9] 여기서 헷갈리지 말아야 하는 게 있는데, '현재 반례가 제시됐냐, 아니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반례 제시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이다. 즉, 어떤 이론에 대해 현재까지 (다행히도) 반례가 발견되지 않았더라도, 반례 발견 가능성이 원천적으로 봉쇄된 것이 아닌 한, (이론과 모든 경우가 완전히 완성되어 더 이상 가능한 모든 반증이 틀렸다는 게 증명되어 완성되는 경우도 포함해서) 그 이론은 과학이다. 예컨대 지동설은 현재까지 반례가 발견되지 않았을 뿐, 앞으로도 반례가 영원히 발견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즉 반례 제시가 원천적으로 봉쇄되어 있진 않다. 따라서 지동설은 반증 가능성이 있는 이론이고, 그러므로 과학이다. 사실 지동설의 경우는 이미 반례가 있다. 그 반례는 목성으로 목성과 태양 사이의 공통 질량 중심이 태양 밖에 있기 때문에 목성은 태양을 공전하지 않는다. [10] 과학철학에서 명제의 반증 가능성은 해당 명제가 과학적(합리적)인지 아닌지를 가늠하는 기준 중 하나로 여겨진다. 칼 포퍼의 주장으로 인해 특히 유명해진 반증 가능성은, 이론적으로는 훌륭하나, 현실적으로 과학적 명제를 분간하는 필요충분조건으로 기능하고 있지는 않다. 그리고 현장의 과학자들은 사실 과학철학자들처럼 그리 과학 여부에 대해 엄격하게 따지지는 않고, 논리실증주의 내지는 이런 반증주의적 입장을 막연히 따를 뿐이다. [11] 그러다 보니 창조과학자들은 대부분 진화론 비판에 몰두해 있고, '신이 설계했다'는 가설 자체에 대한 검증/반증에 대한 과학적 연구는 내놓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설령 창조과학자들이 주장하듯이 진화론이 틀렸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곧 창조설이 옳다는 결론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12] (1) 기상청의 기상예보도 최선을 다해 계산은 하지만 항상 맞지는 않는다. 라플라스의 악마 같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비가 올 확률이 50% 50%이라는 무의미한 확률을 제공하는 것은 최대한 피하며, 항상 조금이라도 더 가능성이 있는 기상 이벤트에 60%, 40%같은 최소한의 의미와 책임감이 담긴 "편향된" 확률을 붙여서 제공하려고 노력한다. (2) 많은 산업이나 공장에서 생산하는 부품, 상품들은 모두 원자단위까지 정확히 같은 규격을 맞출 수 없지만 적어도 ±오차 같이 개런티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생산하기 때문에 우리도 그 오차범위만큼 품질을 신뢰할 수 있는 것이다. 대게 더 작은 오차를 보장하는데에는 들어가는 돈이나 기술력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13] 예를 들어 의사라 유전학은 부정할 수 없는 입장에서 "소진화만 인정하고 대진화는 인정하지 않는다"고 주장할 경우 [14] 창조설을 과학으로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 논변이 어느 순간까지 가면 결국 신을 불러들여야 하는 상황이 반드시 온다. 자신이 모르는 미지의 영역에 신에 대한 서사를 가져다 붙이는 것은 고대부터 인간이 늘 해오던 일이다. [15] 여기서 말하는 성찰이란, 성공한 이론들이 어째서 성공했으며 실패한 이론들이 어떻게 논파되어 실패했는지 그 사례들의 원인을 분석하는 것을 의미한다. [16] 일례로 과학(Science)라는 단어의 라틴어 어원 #부터가 "way of knowing" #, 즉 " 알 수 있는 방법"을 가리키고 있다. 이러한 과학의 연구방법론을 사용해서 지금의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과학의 산물 – 응용과학 – 즉, 스마트폰, 컴퓨터, 인터넷 통신, 의학 등 과거 초강대국의 황제들조차 누리지 못했던 수많은 현대문명의 혜택을 만들어내는 법을 알아내고 이룩해내게 도와준 어마어마한 실적을 생각해보면, 과학적 방법을 맹목적인 교리나 신앙고백으로 여기는 것이 오히려 부당하다. [17] 오히려 이론이 폐기되지 않고 고전으로 남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예는 고전역학이 상대성이론이 나온 뒤에는 엄밀히 말해서는 비상대론의 아주 특수한 상황에서만 맞는 반쪽짜리 이론이 되었지만 일상의 비상대론적인 상황의 공학에서는 여전히 쓸 수 있을만큼 충분히 신뢰도를 유지하는 경우가 있겠다. [18] 좋은 예시로, 미국의 창조설 단체 Answers in Genesis의 회장 켄 햄과 과학교육 프로그램 "빌 나이 아저씨의 과학이야기" 진행자로 유명한 빌 나이의 창조설 vs 진화론 토론 영상 중 시청자와의 Q&A 코너가 있었다. 질문으로 "만약 당신의 생각을 바꿀 수 있는 게 있다면 무엇이겠습니까?"에 대한 각 토론자의 답변을 한마디로 간추리면: 빌 나이는 "증거입니다"라고 답변했는데 켄 햄은 "없습니다"라고 답변했다. [19] 예를 들어 조건부확률의 함정 같은 경우. [20] 보통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문학에서의 이야기의 전개 형식을 말하는 단어지만, 그것을 형식논리의 언어로 분석해보면 컴퓨터 과학이나 형식논리 수학에서 말하는 자유변수의 성질을 공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수식의 지역 문맥의 계산 과정 영향 바깥에서 그 값을 변경 해버리는게 가능한 변수이기 때문에 여러 수식의 지역 문맥의 의미를 전혀 생각도 예상치도 못한 방식으로 뒤바꿔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실용적 혹 공학적 관점에서는 수식이나 함수의 계산 따위의 입-출력 재현성을 보장하기 어려운 결과를 낳게된다. 더 구체적인 실생활의 예제로, 만약 당신이 프로그래밍을 조금 해본 사람이라면 왜 전역변수를 남발하는게 좋지 않은지에 대한 격언은 아마 한번쯤은 들어봤을 것이고; 더 경험이 있는 프로그래머라면 이 부분이 왜 명령형 언어나 절차적 언어적 사고에 비교해 함수형 언어적 사고의 장점이 부각되는 부분인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21] 창조설, 지적설계설, 유신진화론을 모두 포함. [22] 사실 종교가 있든 없든 자연과학계열 학생은 대체로 진화생물학은 믿음의 문제가 아니란 걸 알기에 당연하다. [23] 국민일보의 가짜 뉴스, 그리고 이를 비판한 뉴스앤조이의 기사. 해당 논문 저자들의 인터뷰를 통해 국민일보의 글은 완전한 가짜 뉴스로 판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