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262633><colcolor=#fff> 차마스 팔리하피티야 Chamath Palihapitiy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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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76년 3월 9일 ([age(1976-03-09)]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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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
[[캐나다| ]][[틀:국기| ]][[틀:국기| ]]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직업 | 벤처 투자자, 기업인 |
현직 | 소셜 캐피털 (CEO) |
학력 | 워털루 대학교 (전자공학 / 학사) |
링크 | |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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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차마스 팔리하피티야는 캐나다와 미국 국적의 벤처 투자자이다. 과거 페이스북에서 주요 보직을 맡은 바 있으며, 올인 팟캐스트[2]와 트위터를 비롯하여 TV 방송에서 자주 출연하는 등 왕성한 미디어 활동 덕분에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인물이다.2. 생애
스리랑카에서 태어났으며 6살이 되던 해 공무원인 부친이 캐나다로 발령받으며 이주했다. 이후 부친이 실직하고 스리랑카 내전이 발생해서 캐나다에 눌러 살게 된다.워털루 대학교에서 학사 졸업 이후 몬트리올 은행[3]을 거쳐 음악 재생 프로그램 개발사인 윈앰프로 이직한다. 1999년 윈앰프가 AOL에 매각된 이후에는 승진을 거듭하며 AOL의 최연소 부사장이 되었다.
이후 벤처캐피털인 메이필드를 거친 뒤 2007년부터 2011년까지 페이스북에서 주축 팀 중 하나인 성장팀을 이끌며 부사장[4]으로서 활동했다.[5]
모바일 시대의 도래는 페이스북 입장에서 중대한 위험사안이었는데, PC와 다르게 스크린 크기가 작기 때문에 배너광고를 넣기 힘들어 수익이 급감했을 뿐만 아니라 페이스북 플랫폼 기반의 소셜 앱 개발자들은 일제히 모바일로 이동하며 생태계가 붕괴되기 시작했다. 따라서 차마스는 저커버그의 승인을 얻은 뒤 비밀리에 지난 소셜 운영체제 실패를 만회하고 모바일 시대를 장악할 자체 스마트폰과 운영체제 개발에 착수했다.
이후 인텔, 폭스콘과 협업하여 페이스북의 소셜 기능을 중점으로 둔 시제품을 제작했으나, 이 사실이 사내에 살려진 뒤 내부 반대[6]에 못 이겨 안드로이드 기반으로 규모를 축소시켰고, 2011년 HTC와 함께 페이스북 버튼이 탑재된 HTC 살사와 차차를 출시했으나 폭망한다.
안그래도 입사 초기부터 실패한 프로젝트인 비컨에 깊게 관여되어 자질에 대한 의심을 받고 있던 차마스는 2011년,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퇴사했다.[7] 저커버그의 전기에 의하면, 그의 독단적이고 불 같은 성격으로 인해 팀원들과 갈등이 매우 컸으며 항상 배척 당했다고 한다.
퇴사 이후에는 왕성한 미디어 활동을 하면서 본격적인 벤처 투자자 활동을 시작한다. 2011년, 소셜 캐피탈이라는 벤처 투자사를 설립한다. 슬랙, 야머, 그록, Box 등에 초기 투자했으며, 2019년 버진 갤럭틱을 시작으로 SPAC 플랫폼으로 활동 범위를 넓힌다. 이 외에도 소파이, 오픈도어 등과의 SPAC 합병이 대표적이다. 다만 2021년부터 미국이 경기둔화 사이클을 맞으면서 본인이 투자한 기업의 수익률도 상당한 낙폭을 겪는다.
3. 기타
- 퇴사 이후에는 페이스북에 대한 부정적 언급을 자주 하고, 주활동 소셜 미디어도 페이스북이 아닌 트위터를 애용한다. 단기적인 시각에서 성장과 수익성만을 바라보고 회사를 키운 탓에 가짜 뉴스, 광고 남용, 혐오 컨텐츠, 여론 조작 같은 부작용들이 너무 크게 나타나고 있고, 이를 후회하고 있다고 한다. 유저들을 광고주들의 요구에 의해 최적화된 데이터 생성기 정도로 취급했다고 한다. 소셜 미디어는 억 단위의 사용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인 만큼, 인류 역사상 유례가 없던 거대 분야라 기술 윤리성을 상당히 간과하고 있던 것이다. 넷플릭스 시리즈 “소셜 딜레마”를 통해 그의 생각을 옅볼 수 있다.
[1]
호스트로 참여하고 있는 All-In 팟캐스트
[2]
차마스 외에 Launch라는 엑셀러레이터 창업자인 제이슨 칼라카니스,
야머 창업자
데이비드 삭스, 엔젤투자자 데이비드 프리드버그가 호스트로 출연한다.
[3]
이 당시 파생상품 거래를 담당했는데, 훗날 시간을 가장 따분하고 한심하게 보내는 방법이었다고 일컬으며 비판적인 회고를 한다.
[4]
사실상 COO 격이었는데, 야후의 페이스북 인수 시도 당시 찬성한 임원진 대다수가 갈려나가는 과정에서 COO 자리가 일시적으로 없어졌기 때문이다. 차마스는 기존 COO였던 밴 내타의 대체자 격으로 영입되어 제품 마케팅 및 운영 분야를 총괄했다.
[5]
윈앰프에서 인연을 맺은
숀 파커에 의해
마크 저커버그와 인연이 닿아, 페이스북 입사 전 AOL 재직 당시 이미 상관에게 페이스북 인수를 요청하기도 했다.
[6]
모바일 생태계가 이미 iOS와 안드로이드 양강체제로 굳어진 상황에서 굳이 독자적 운영체제를 만드는 것이 헛수고에 불과하다는 주장이었다.
[7]
이후에도 차마스의 자체 스마트폰과 운영체제 프로젝트는 축소된 규모로 이어지며 HTC 스마트폰에다 안드로이드 기반 인터페이스인 페이스북홈을 적용시킨 HTC 퍼스트로 출시되었으나, 이번에도 실패를 겪으며 페이스북은 해당 시장에서 철수한다. 이로 인해 모바일 주도권은
구글과
애플에 완벽히 넘어가고, 이는 아직까지도
마크 저커버그가 자주 언급하는 후회스러운 순간으로 뽑히게 된다.